아직은 살아 있는 회한의 시간 저쪽 매바위 설운 전설 멧새들이 읊고 간다 보아라 조선의 참솔 짙푸르게 얽힌 숲. 바람이 잠들어도 천연요새 맥이 뛴다. 한강물 굽어보며 불태우던 젊음의 피 듣는가, 수어장대의 저 쩡쩡한 불호령. <시인 약력> 전북 부안 출생 / ‘시문학’(시), ‘월간문학’(시조)으로 등단 / 노산문학상· 한국시조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수상 /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경인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 시조집 ‘바다 풍경’ ‘시간 위에서’ 등 다수 /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부회장
부대끼며 살아왔다. 매연 먼지 소음 속에 봄 여름 이 가을을 그늘 한껏 드리우다 뿌리로 가고 싶단다. 고운 수의 입고 있다 가는 길 막아 놨다 아스팔트 덮인 거리 수척한 몸 버스 뒤를 우르르 따라가다 새매 본 참새 떼같이 숨죽이고 엎드린다 비질하는 미화원들 수심 보태는 낙엽철에 쓸어 담긴 마대 속에서 갈 곳 걱정하는 뒹굴던 도로의 낙엽, 마른 기침 들리는가 <시인 약력> 충북 영동 출생(1924년) / ‘월간문학’으로 등단 / 경인시조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 제2회 경인시조문학 대상 수상 / 시조집 ‘선운사 이팝나무’
사물이 맨몸으로 왔을 때 박하 맛이었다 혀가, 입속이 우주란 걸 처음 알았을 때 첫마디부터 향이 났다 처음 꽃 피워 올린 꽃대궁은 눈부셨다 오래 깊게 패인 흉터가 늘 처음처럼 아팠다 처녀막같이 생살을 찢고 들어앉은 것이다 첫울음의 힘이 자궁 문을 밀고 나왔을 때처럼 세상의 빛이 주먹에 꽉 찼다 <시인 약력> 부산 출생 / ‘심상’으로 등단 / 시집 ‘걸어서 가는 나라’ ‘비누의 슬픔’ ‘낯선 길을 보다’ ‘햇빛 비타민’ 등 다수 / 동국문학상 수상 /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목월문학포럼 회원
기르던 사과나무에 꽃이 지거든미련 없이 여행을 떠나라꽃을 피웠던 힘으로 사과는 열릴 것이니쓰다만 편지는 가슴에 쓰고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누구와 약속도 하지 말아라산그림자가 마을을 보듬는 저물녘가슴에서 별이 지거든용서할 일은 흐르는 강물에 풀어누구나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귀띔해 주어라산봉우리 징검다리삼아 건너던 걸음이느티나무 아래 민박 들거든낯선 바람에게 길을 물어라가장 투명한 말로 답할 것이니기다림이라는 시간에 속지 말고사과꽃이 다시 피기 전에 미련 없이 여행을 떠나라시인 약력 전남 순천 출생 / 시집 어처구니 사랑으로 작품활동 시작
장곡사 가는 길에 들려준 님의 법문은 詩의 숲을 지나 별들이 소근대는 은하교를 지나 내 꿈속 깊은 곳까지 밝혀주는 불빛이었다 몰골이 남루한 내 손을 잡아 줄 때 나는 낯설지 않은 자아의 세계를 비로소 발견한 듯 기뻤다. 님이여! 기억 속에 잠든 내 삶의 밑바닥까지 찬란하게 밝혀주신 그 눈빛 그 속에서 나는 나고 죽는 한 송이 꽃이고 싶었습니다 <시인 약력> 1922년 경기 개풍 출생 / 극동사령부 주한 연락처 8240 번커부대 대대장 역임 / 문예지 ‘불교문학’ 발행인, 불교문학작가회 고문 / 시집 ‘전쟁일기’ ‘아버지의 城’ 등 다수
긴 시간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북받쳐겨울 강 기슭 안개 속을 헤메었다.이제는 먹이를 찾아 목덜미로 달려드는질긴 고통을 밀어내고 덜 아파하리라.누구나 절망의 순간에는토막토막 마디가 잘려나가는 대나무처럼하아얀 순교의 피를 흘리며산고의 응어리를 풀지못해 절규하지만보라~동터오는 여명의 아침 해 저 붉은 기운 속에희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가슴 가득 열정을 품고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생의 모래시계가 점점 줄어들고 있나니암흑 같은 죽음의 나날들이 먼 발치서 응시하고 있으므로그리하여슬픔도 아쉬움도 사위어 한 줌 재로 흩날릴지어니참고 견디면 어느 날 반드시인고의 꽃 피고 탐스런 열매도 맺으리니,슬픔이여 이제는 안녕. 영원히 안녕.시인 약력 충남 보령 출생 / 시와 비평 문학세계로 등단 / 시집 미친사랑의 노래 / 한국문인협회 안산지부경기시인협회 회원
산골마을 돌던 집배원 총각은 우리 언니 볼 발그레할 때 ‘창말’ 사는 내 친구 언니랑 연분을 맺었다 자전거에 동여맸던 큰 가방 속엔 그들의 붉은 사연도 들어있었던가 보다 나도 가끔씩은 우표 붙이는 편지를 받고 싶다 그 맘, 필적에 녹아든 흔적을 받아 담요에 코를 대는 어린아이처럼 킁킁 냄새 맡고 싶다. 그러다 이따금씩 가슴 바닥까지 적어 넣어 우표 딱 붙이고 싶다. <시인 약력> 충남 신도안(계룡시) 출생 / ‘월간문학’으로 등단 / 시집 ‘꽃불’ ‘눈뜨고 꿈꾸다’, 수필집 ‘둥지 밖의 새’ 등 다수 / 제1회 한하운문학상 수필대상·제3회 대한문학상 詩본상· 제4회 代表에세이 문학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아픔도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이 아픔은 꽃이 되었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몇십 년 걸려 돌아올 거리를 천만 리나 헤매어 다녔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숨 쉬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의 몸뚱어리와 날카로운 발톱 바람의 머리칼과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들키지 않게 둘러쓰는 바람의 망토까지도 샅샅이 뒤졌기에 바람, 하면 긴 숨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본 것은 안 본 것으로 되돌릴 수가 없지요 있던 것은 영원한 없음으로 보내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토록 오래 아파야 했는지 왜 그토록 덧문 흔들어댔는지 핏방울마다 피어난 꽃숭어리 그것이 그대가 쓴 혈서입니다 <시인 약력> 성신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 ‘시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시간의 칼은 녹슬고’, 영어시집 ‘Sand Relief’’ 등 다수 / 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부회장
패랭이꽃은 사랑입니다 재회의 반가움에 눈물을 흘려도 꿀처럼 달콤한 사랑입니다 달콤한 향기가 그윽한 웃음을 담은 갓난아이의 미소처럼 질박한 사랑이 비친 말간 거울입니다 해가 아직도 남아 있는 하늘에 반쪽으로 야윈 낮달이 설레는 마음을 전하는 몸짓입니다 끝없이 세상을 윤회하던 노랑나비가 나르는 푸른 들판에 철을 따라 원색으로 채색하고 피어나는 영혼입니다 <시인 약력> 경기 수원 출생 / ‘문예사조’로 등단 / 시집 ‘패랭이꽃’ ‘초록 세상의 꿈’ / 수원문인협회·경기시인협회 회원
이른 아침나의 산책길엔즐거운 思惟의 바다가열린다나의 사유의 공간에향긋한 봄기운이 돋고푸른 향의 잎들이 피어나고꽃망울 아롱지는 사유의바다를 떠올리면서내 스스로 바다에 빠져본다나의 일상의 고뇌의 불길 속,불길 속에 쌓여 간일체의 나의 존재의 목적과양식을, 이른 아침사유의 바다에 풀어 놨다가다시 건져 올린다청명한 하늘 같은나의 사유의 바다에서나의 존재를 건져 올린다위대한 思索의 바다를꿈꾸면서, 잃어버린나의 실체의 진실을건져 올린다, 길어 올린다.시인 약력 경기 수원 출생 / 한국현대시인협회한국문인회한국농민문학회 한국수필가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 제9회 새한국문학상 수상 / 시집 아가페 대춘부 빙허 등 다수
봄(春)에 싱그러운 새싹이 돋고갖가지 화려한 꽃이 향내를 피우듯,사춘기 인생도 발랄한 언행으로생동감 넘치는 삶을 구가하네.여름(夏)에 따듯한 햇볕을 듬뿍 받아왕성하게 성장하며 파랗게 수를 놓듯,청년기 인생도 생동감 넘치는활동으로 활기찬 인생을 만끽하네.가을(秋)은 단풍으로 얼굴을 치장하고땀 흘려 가꾸어 놓은 열매를 걷듯,장년기 인생도 좋은 결실을거두기 위해 아우성 발버둥 치네.겨울(冬)의 동동(冬凍) 추위를 견디기 위해낙엽이 귀근(歸根)하여 뿌리를 덮어 주듯,노년기 인생도 둔탁해진 행동으로 나마더 살아보려고 발을 冬凍 구르네.시인 약력 경기 용인 출생 / 수필문학(수필), 한국문인(시)으로 등단 / 소운문학상(2009) 수상 / 한국수필가협회한국문인협회새한국문학회 회원 / 수필집 개동모자 그림의 떡, 시집 웃음 꽃 소금 꽃 :하얀 눈꽃 등 다수
나의 무대 아무나 오르지 마라 노랫소리 들리거든 그 자리에서 귀를 세워라 더 높이 오르지 못하고 낮은 걸음으로 차지한 자리 다시는 빼앗기지 않으련다 햇살 눈부신 날 구름 위에 올라 부르던 노래 보리밭에 묻어두고 푸른 들판 눈에 품었다 단숨에 날아올라 보이는 곳까지 잊어버리고 몇 발자국 가면 끝나는 무대를 가까스로 차지했다 이제 어디든 마다않고 부르는 노래 누구도 넘보지 마라 <시인 약력> 전북 김제 출생 / ‘믿음의 문학’으로 등단 / 시집 ‘꽃과 나이테’ ‘날개’, 동시집 ‘하얀 꽃바람’ 등 9권 / 한국문인협회·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
언제부터였을까난 외로운 목마가 되어 있었다.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부활의 껍질을 갉으며내 작은 삶의 홀씨를 나부끼고그리움에 기댄 채환희의 포옹을 기도 했었다.이끼 낀 삶의 틈새로흔적의 조각들이 몸부림치는내 안의 마구간스치는 바람소리에오늘도 창가 먼 동공을 향해그리운 사람을 담아내고 있었다.시인 약력 경기 이천 출생 / 한맥문학(시), 아동문학(동화)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한국자유시인협회21한국시인회한국아동문학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역임 / 시집 패랭이꽃의 침묵 낮은 음자리 조용한 반란, 동화집 현이의 돛단배 등 다수
한줄기 하늬바람이 범종을 흔들고 지나갔다 경전속의 수많은 활자들은 종소리를 타고 일제히 강으로 흩어지고 있다 강물은 경전을 조용히 읽으며 귀먹은 생명들을 위해 나뭇가지마다 푸른 목어 떼를 풀어 놓았다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다 목어 떼들이 산허리를 거슬러 올라 오층석탑을 맴돌고 있다. 사시를 알리는 독경소리가 나의 검은 입을 씻어주고 백팔번의 오체투지로 잃어버렸던 참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버려라, 욕심도 노여움도 어리석음도 비워라, 몸도 마음도, 멀리 보이는 두물머리 강물과 강물이 만나고 있다 끊어 진 인연들이 이어지고 태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 * 수종사 : 남양주시 운길산에 있는 사찰 <시인 약력> 경기 화성 출생 / ‘세기문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 경기도공무원문학회·경기시인협회 회원 / 경기도 항만정책담당 사무관
산등성 두근 대는 메아리 고개 숙인 남한강 마음은 벌써 촬영 접고 뜨거운 구들장에 서 있다 몇일째 불사른 가마 속 도자는 벌써 제 모습 찾아 또아리 틀며 마중할 주인 상봉 들뜬 채 뚝뚝 눈물 쏟으며 홍당무로 변신 중 이다 익으면 익을수록 좋다던가 한 뱃속 새끼들 모습도 제 각각 어느 누가 주인공으로 환생될건가 오늘은 몇이서 날 상면 할 건가 나도 흥분 너도 흥분 뜨거운 가마 속 불길 만큼이나 심장도 들뜬다. <시인 약력>‘한맥문학’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한국문학도서관 회원, 한국문학작가연합 회장 / T.S엘리엇 기념 문학상 수상
잠잠히 흘러가는 강물에서 세월을 본다 두 손을 나팔지어 배 건너요, 소리치면 빙그레 마주 흔들어 주던 고마운 사공의 손짓 선하다 북적거린 숱한 발길 지워진 나루터에서 저 다리로 건너가야지 생각하니 하 그리운 건가 잔잔히 흐르는 물결위로 당산 그림자 띄워 타고 어슬막 그 길을 더듬어 내 마음 쓸쓸히 노 저어 간다 <시인 약력> 경기 여주 출생 / ‘한맥문학’(시), ‘문예춘추’(시조)로 등단 / 시집 ‘고향은 날더러’ ‘강변 내 고향’ 등 다수 /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21한국시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여주지부 부지부장
영월에 동강 어라연 - 물고기가 비단결같이 떠오르던 물 반 고기 반 노루 노루 노루를 좇아 달리다가 문득 천애를 만나 노루들이 돌단풍처럼 떨어지던 곳 노루목의 전설을 따라 빠지며, 물싸움을 하며 물결을 따라 총공격 파도가 우리를 덮치고 빙빙 도는 모험의 세계 삶이란 결국 이렇게 인연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희. 로. 애. 락. 파란만장을 겪으며 절로 절로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리 저어라, 저어 카누를 타고 회똑회똑 몇 번 전복의 스릴을 즐기며 가는 것이다 죽음이 노루목처럼 천애로 지키고 있을지라도 절정에서 스러지는 아, 우리들 벚꽃 불꽃은 한번 터져 여기 물속에 차갑게 잠긴다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한번 꿈으로 비상하다가 <시인 약력> 경기 용인 출생 / ‘문예사조’로 등단 / 수원문인협회·경기문학인협회·경기시인협회 회원 / 현재 화성 봉담초등학교 교사
백마는 간 곳 없고 낙화암에는 삼천궁녀 그림자로 지는 벚꽃 잎만 너울너울 고란사의 풍경소리 고요한데 고란초 사라진 절벽에는 풍상에 겨운 이끼만 푸르다. 잊혀진 왕국의 서러움 푸른 잔디로 덮힌 자리마다 두 눈 퍼렇게 뜨고 살아나는 백제의 혼에 가슴 아리다. 깊은 恨, 슬픔 풀 길 없어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말 없는 고요한 세월 백제인의 피눈물 되어 흐르는 아아 백마강이여. <시인 약력> 경기 오산 출생 / ‘문예사조’(수필), ‘지구문학’(시)으로 등단 / 수원 중부소방서장·경기도 공무원문학회장 역임 / 시집 ‘아름다운 구속’ ‘함께 가는 길’ 등 9권 /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경기시인협회 회원
흰 국화꽃 한 송이 영전에 바치고 절하고 물러설 때 홀연, 눈물이 솟구쳤다 바르게 깨끗하게 살고자 하셨던 그 분의 마지막 길이 너무도 슬펐기에 ‘생각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이 세상에 없으니 이제야 알겠어’ 친우의 소리 없는 호곡이 가슴 깊은 바닥을 아프게 헤집는 밤 하릴없이 난 혼자서 하늘을 본다 그가 이 세상에 있었을 때 나는 왜 그를 알아볼 수 없었을까 왜 좀 더 일찍 그를 사랑하지 못했을까 뒤늦은 깨우침이 어둠을 지우는 밤 영전에 때 늦은 한 말씀을 드린다 그대여, 평안하시라 그 무겁던 짐들,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고 그대여, 부디 가벼우시라 평안히 잠드시라
순환의 섭리 속에 고희자락 바라본다. 한시도 잊지 않고 기다리던 어버이 맘 왼 새벽 복을 빌듯이 창을 여는 그 정성. 기러기 바라보며 온갖 사연 다 일으키듯 주말마다 찾아주는 며느리며 손녀딸들 이 모두 기다림이며 희망이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