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많은 직장인들은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기업체, 심지어 초등학교의 교육기관까지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함으로써 변화된 생활 패턴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 또는 야간근무로 주 60시간 이상 열심히 일하던 ‘고단한 과거’가 주 40시간 근무의 ‘편안한 현재’로 바뀌었다. 이 편안한 시간은 다이어트, 헬스, 수영, 댄스 스포츠, 미용, 성형, 낚시, 골프, 등산, 여행, 바둑 아니면 쇼핑과 외식 등으로 더 바쁘고 피곤한 주말생활을 만들고, 모처럼의 ‘여가시간’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체로 몸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웰빙인양 인식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고는 외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고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요즘 학생은 물론 일반인들도 혼자 잘 있지를 못한다. 여럿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모습엔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왜 그럴까. 혼자 있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상실’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우리들의 시청각에 어필하는 대상에만 집중하지, 그 대상이 환기(喚起)시키는 내면의 기분과 감정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는 향수(享受) 태도에서 비롯된다. 즉 자기가 자기를 외출하여 자기가 자기를 만나지 못하고, 사유(思惟)의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시집을 읽고 있거나, 악기를 다루고 있거나,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은 우리들이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검은 구름 속에서 붉게 타고 있는 저녁노을을 볼 때, 갈대숲이 우거진 연못에 유영(遊泳)하는 백조를 만났을 때, 밤바다 수평선 멀리 떠있는 고깃배의 불빛이 파도를 타고 내 앞까지 흔들리며 다가와 있을 때, 비온 뒤 운무(雲霧)에 휩싸여 봉우리만 하늘로 내밀고 있을 때, 아니면 어떤 사건이나 장면을 듣거나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들로 감정이 흔들린다. 이 흔들리는 감정을 붙잡을 수 없을까. 인간은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글이나 그림으로 아니면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불만을 갖게 된다. 약간은 거칠거나 부족하더라도 그러한 감정들이 표현되었을 때 마음은 비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일상의 생활 속에 굳건한 나의 ‘취미의 성(城)’을 쌓자. 이 은밀한 ‘취미의 성’에서 창조된 글과 그림들은 바로 자아실현의 결과물이며, 그 속에서 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덤까지 가져갈 취미를 갖는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보람이요, 기쁨이요, 가치이다. 윤옥순 골드창작스튜디오·갤러리GL 관장
오피니언
윤옥순
2016-11-14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