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내한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연말을 맞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세밑 음악회였다. 공연 중 한 단원이 쓰러져 관객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지만, 겨울 한파에 얼어붙은 마음까지 사르르 녹이는 하모니임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흰 에봇에 허리띠를 두르고 십자가목걸이를 한 채 등장한 소년들은 영락없는 어린 사제의 모습, 흡사 동자승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들 소년합창단에서만 볼 수 있는 보이 소프라노의 태동은 유럽 종교사와 맞물린다. 예배당에 여성 출입을 엄금한 유럽 교회들은 성가대에 아름다운 고음역대가 요구되자 소프라노 대신 미성의 소년들을 단상에 세웠다. 1906년 창단된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시작도 프랑스 타미에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소년들의 미래는 종교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파리나무십자가 소속 단원들의 프로필에는 각자의 장래희망이 기록돼있다. 가수나 예술가도 눈에 띄지만, 로봇 과학자, 농업공학자, 엔지니어 의사, 군인 등 보다 다양한 꿈이 엿보인다. 그들의 음악회는 단순한 합창이 아닌, 그들의 미래가 녹아 흐르는 용광로였다. 지난 10일 수원SK아트리움에서도 소년소녀들의 합창공연이 열렸다. 창단 33주년을 맞은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의 정기음악회였다. 해를 거르지 않고 열리는 음악회이지만, 이날도 단원들의 미래를 기대하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공연시작이 5분이나 지연됐는데 기량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수원을 대표하는 미성년합창단 다운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합창단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무대에 섰다. 합창단을 거쳐갔던 소프라노 이영숙(상명대 교수), 한유미(제독 성악가), 강정우(중앙대 외래교수), 첼리스트 문태국 등이 그들이다. 이날의 주역인 현직 단원들도 갖가지 장래희망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20~30년이 지나고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반드시 문화예술가일 필요는 없다. 바라건데, 한껏 꿈을 키워서 문화를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주역이 됐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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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기자
2014-06-11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