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부터 시행될 상가 건물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문제점이 많아 보완책이 요구되고 있다. 건물주들의 횡포로 인한 임차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임차인들의 권익보호보다는 건물주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해주고 있어 입법 목적이 훼손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동 시행령의 골자는 상가보증금과 임대료의 일정폭 이상 인상금지, 임대차 계약 5년간 갱신 허용, 임대차 보증금 우선 변제 등이다. 그동안 과도한 임대료 인상과 잦은 계약 변경으로 인한 임차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특히 중소상인들의 관심이 상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또한 지역적 여건을 반영시키는데 소홀하여 이 법이 특별한 보완책 없이 실시되면 임대인 보호는 커녕 건물주만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우선 임대차보호법 적용대상을 서울을 제외한 경기의 대부분의 시는 수도권 과밀억제 권역으로 환산보증금이 1억9천만원 이하로 책정되었는데 이는 수원, 분당, 일산 등 상가밀집지역의 환산보증금이 대부분 이 금액을 상회하여 대부분의 상가가 적용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도 문제이다. 임대료를 인상할 경우, 기존 차임 또는 보증금의 12%를 초과할 수 없고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보증금의 15% 이상을 월세로 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상폭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 임대료 평균 상승률, 또는 시중 대출금리에 비하면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어 오히려 건물주들의 이익만 보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지난 8월 법무부 주최 공청회 등에서 이미 지적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행령 개정 작업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오히려 분쟁만 야기한다면 그런 공청회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부는 최대한 행정지도를 통하여 세입자들의 피해를 줄임과 동시에 시행 과정에 있어 야기된 문제점을 조속 보완하여 입법 취지를 달성해야 될 것이다.
정부가 팔당호 주변 난개발을 막기 위해 광주·남양주·용인·이천·가평·양평·여주 등 팔당호 주변 7개 지방자치단체를 1개로 통합관리하는 ‘광역도시계획’을 마련했다. 팔당호가 2천만 수도권 주민의 상수원인만큼 주변의 난개발 방지는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있다. 선계획, 후개발의 토지이용체제 확립도 당연하다. 진즉부터 적용했어야 할 토지이용체제다. 94년 이후 준농림지역 규제강화와 수변구역 지정, 외지인 건축제한 등의 조치로 팔당호 주변 난개발이 어느 정도 방지는 됐었다. 그러나 최근 일부지역에서 전원주택 건축을 위해 소규모 필지분할, 차명허가, 나대지 방치 등의 행위가 빈발하면서 팔당호 주변의 난개발이 또 다시 기승을 부려 정부가 ‘팔당 난개발 방지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로 인해 광주시, 양평군 등 팔당수계 7개 시·군의 산림형질 변경과 건축허가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등 개발행위가 엄격히 제한되고 준농림지가 세분화 돼 무분별한 개발이 어렵게 됐다. 특히 준농림지는 앞으로 보존(생태계 수질), 생산(농업), 계획(토지) 관리지역으로 각각 세분화 돼 보전과 생산지역은 거의 개발이 불가능해진다. 팔당 특별대책지역 및 주변 수변 구역 내 하천주변의 산림 형질변경도 토지 실소유자가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허가가 나며 일정규모 이상의 산지전용은 산림청 또는 시·도 산지관리 위원회의 사전심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다. 이번 조치로 팔당의 수질개선이나 난개발이 방지되기 보다는 지역경제의 침체와 주민들의 재산권만 제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기조시설에 대한 투자 없이 법규만 강화해서는 수질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팔당 상수원보호는 개인 재산 차원이 아니라 2천만명의 주민 생활과 직결된 국가차원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팔당 난개발 방지대책’ 가운데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수변구역의 토지매입도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은 환경보전이라는 미명하에 발생할 수 있는 주민들의 불편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형식적인 토지매입으로 주민들의 민원이 야기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친환경적인‘팔당 난개발 방지대책’으로 수질개선은 물론 난개발·편법개발이 근절되기 바란다.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취임 100일을 맞아 발표한 ‘6개권역 특별성장관리구역의 테마별 자족형 신도시 개발계획’ 자체는 평가할만 하다. 이미 보도된 각 권역(축)별 개발 방향의 테마 역시 보완해야 할 점은 있으나 대체로 수긍한다. 이 계획의 목적이 체계적인 대단위(2천만∼3천만평) 규모의 자족도시 개발로 더 이상 소규모로 이어지는 난개발을 막는데 있는 점은 명분 또한 충분하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중앙정부와 어떻게 협조관계를 갖느냐에 있다. 기초자치단체와의 유대도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난개발은 국토이용 계획을 행사하는 건교부가 택지개발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 기초자치단체에선 목전의 세입 때문에 기왕 조성된 택지에 건축허가를 내주곤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왔다. 손지사가 밝힌 건교부의 이러한 택지개발 거부 방침은 크게 환영할만 하다. 또 건교부가 당장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위해 추진하는 그린벨트 해제도 난개발을 이유로 협조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국민임대주택의 입주 대상은 영세민층이다. 영세민일수록이 생계수단이 도시와 밀접하다. 모두 2천310여만평의 그린벨트에 고작 평균 15만평 규모로 짓는 외딴 국민임대주택은 영세민의 생계수단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통망 등 자족기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난개발만 부추긴다. 결국 중앙정부와 이렇게 저렇게 생각이 크게 대치되는 입장에서 어떻게 제3차 수도권 정비계획과 수도권광역도시계획에 반영시킬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상위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독자적 장기계획은 규제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일은 있다. 기본적 개발구상을 연내 마련, 내년 말까지 각 권역별 구체적 지역, 규모, 방법 등을 확정 짓기까지 시일은 있으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개발이익으로 4개 권역을 관통하는 제2외곽순환도로와 순환철도망을 건설하고 북부지역에 3개 고속도로 등 광역도로망을 건설할 계획인 것은 필연적으로 아파트 등 주택건설에 치우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엔 이유가 있다. 또 하나, 앞으로 기본구상과 권역별계획 수립에 전문가와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을 자주 갖기 바란다. 공개리에 추진될수록 더욱 강한 탄력성을 지닌다. 최대 난제인 중앙과의 협의에 경기도는 자긍심을 갖고 이 정부와 좋은 협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건교부는 지방정부의 권능을 존중하는 재량권 남용의 자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해도 안되면 12월 대선 이후의 차기 정부와 구체적 협의를 않은 것도 방법이다. 내년 말까지 모든 계획을 확정 짓기로 한 시한의 의미가 이 또한 없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한글’이 세계의 모든 언어 가운데서 가장 과학적이요 문화적인 문자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유네스코가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정하고 세종대왕 탄신일을 ‘세계문맹퇴치의 날’로 정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된다. 우리말을 맛과 향과 결을 살려 그대로 글로 옮겨놓을 수 있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오직 한글뿐이다. 그러나 한글은 정작 한국에서 홀대를 받고 있어 국민적 각성이 절실하다. 우선 정부부터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고 그 많은 공휴일 가운데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일반 기념일로 격하시켰다. 5급이상 공무원 임용시험 과목에서 국어가 빠지는 지경이 되었다. 영어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 하면서 우리글 제대로 못쓰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더구나 인터넷과 통신의 게시판 및 대화방, 휴대전화 문자 전송 등 통신언어에서 왜곡되는 한글 오염은 심각한 수준의 도를 넘어섰다. 통신언어 대부분은 맞춤법 규정과 다르게 소리나는 대로 적고 의도적으로 바꾸는 등 해괴한 방법을 통해 한글을 파괴하고 있다. 초기에는 빠른 입력과 친근감 표시 등을 위해 자모음 일부를 변형 또는 줄여 쓰는 형태변이형, 새말형, 의미전이형 등을 주로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글자 띄어 쓰기, 한글 자모·한자·일본어·특수문자 등 입력 가능한 모든 글자와 기호를 마구 조합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이른바 ‘외계어’까지 등장했다. 통신 이용자들이 통신 공간을 마치 무법천지인 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000만(이만’), ‘듀그(죽어’), ‘랴됴(라디오)’ 등의 형태변이형이 있는가 하면, ‘냉텅텅(내용없음’)‘럽하다(사랑하다) 등 새말형이 있다. 일부 학생들은 무의식중에 시험지 답안 등에도 변형된 언어를 쓰는가 하면 심지어 성인들마저 일상 대화에서 ‘안뇽(안녕) ’, ‘어솨요(어서 오세요)’등 통신언어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왜곡된 언어는 국어의 파괴와 청소년의 언어 정체성 위기 등을 초래한다. 한글을 존중하고 무분별한 통신언어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문법교육을 강화하고 국어교육 속에 통신 언어와 관련된 내용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특히 통신 운영자들의 바른 언어 사용을 위해 가정과 직장 등에서도 교육을 강화해야할 것이다.
오랜 산고 끝에 김석수 총리가 정식으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임명장을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김 총리는 출석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훨씬 넘은 210명의 지지를 받아 총리로 인준되었다. 이로써 지난 7월 11일 이한동 전총리 사퇴 이후 장상, 장대환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의 부결에 따른 총리 공백상태가 마감됐다. ‘국민의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서 김 총리는 어제 국회에서 김 대통령을 대신하여 정부의 200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였다. 앞으로 각원내 교섭단체의 대표 연설이 있은 다음 오는 10일부터 대정부 질문이 예정되어 있어 정치, 경제를 비롯, 각 분야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김 총리는 국정운영에 대한 구체적 소신이나 정책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선 김 총리는 대통령의 시정 연설이나 대신 읽는 ‘대독 총리’가 아닌 내각의 책임자로서 안정적 국정운영과 오는 12월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음을 우선 명심해야 된다. 현재 각 정당은 대선으로 인하여 국정보다는 선거에 당운을 걸면서 정쟁을 일삼고 있어 국정이 상당히 혼란스럽다. 또한 관료들도 대선을 겨냥, 줄서기 등을 하고 있어 공직기강이 해이한 상태이다. 따라서 김 총리는 이완된 공직사회에 대한 기강을 확립, 남은 5개월 동안 김대중 정권의 국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해복구에 대한 최우선 지원 정책을 독려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 국민들의 경제불안 심리를 조속히 극복하여야 되며, 또한 남북화해를 위한 각종정책도 일관성 있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정책 중에도 김 총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선의 공정한 관리이다. 금년 대선은 어느 때보다 예측불능의 상황에서 각 정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주를 이루고 있어 혼탁한 선거가 예상된다. 김 총리는 엄정한 중립내각의 자세를 가지고 선거관련 업무를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과거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했던 김 총리이기에 중립내각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크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엄격한 중립성을 지켜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가장 모범적인 선거로 기록되기 바란다.
국방부는 김동신 전 국방장관이 지난 6월 북측의 서해도발 가능성을 묵살했다고 국감장에서 폭로한 한철용 5679부대장을 전격 해임했다. 군 지휘부의 조치가 거듭 충격이다. 우리는 대북 통신감청 정보를 총괄하는 육군소장의 한 장성이 국방부장관의 묵살부인 주장에 증언을 통해 반박하자 국감을 비공개로 진행한데 대해선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군기누설을 이유로 그를 해임한데는 의문이 많다. 한 소장은 도발 가능성에 대한 정보보고서를 삭제 당했다고 증언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국방부가 한 소장을 군기누설을 들어 보직을 해임했으면 그 증언의 진실 여부도 아울러 마땅히 밝혀야 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국방부는 다만 정보보고의 경위가 밝혀진 게 군기누설로 이를 문책한 것일뿐 김 전 장관이 묵살한 적은 없다고 여전히 강변할 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지나친 자의적 논법이다.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 진실에 대한 은폐를 폭로한 것이 맞다면 그것이 어떻게 군기누설에 해당하는 지 반문한다. 또 한 소장의 증언은 부대일지 등 관련 자료와 관계 장병들을 통해 확인하면 그 진위를 가리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군 조직의 적정보고는 지휘부나 장관의 입맛에 맞추는 것일순 없다. 묵살당했다는 증언을 중대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지휘 체계라면 국가 안보가 우려된다. 서해도발도 역시 그래서 미연에 방지 못했다 할 수 있다. 군은 어디까지나 군 자체의 판단을 가져야 한다. 군 자체의 판단은 작전상 개념이다. 정치적 개념은 통수권자의 판단에 속한다. 군이 정치적 판단에 예단을 가지면 작전에 혼란을 가져온다. 서해도발의 징후 보고가 햇볕정책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아 묵살된 것이 아니냐는데 우리의 의문이 쏠린다. 정치군인이 나라를 해치는 것처럼 국방부의 정치장관 또한 나라를 해친다. 국방장관은 군 조직의 장관이어야 한다. 김동신 전 국방장관의 묵살 의혹은 군 기강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선례가 될 수 있는 점에서 심히 걱정된다. 국방부가 한 소장을 군기누설 이유로 해임했으면 어느 부분이 군 기밀에 해당하는 지를 국민에게 밝힐 책임이 있다. 국민의 군대로 사랑받아야 할 군 조직이 수뇌부부터 정치적 의혹에 더욱 휩싸이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부시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북·미회담에 북측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장막에 가려졌다. 다만 켈리가 서울에 와서 전한 것은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북·미간의 입장 차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자 ‘위대한 선군(先軍)사상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전진하는 우리 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현 시대에는 군대의 위력이 사회주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면서 “누구나 다 선군사상의 절대적인 신봉자, 숭배자가 될 것”을 역설했다. 또 평양방송은 6일 “미국 행정부가 적대정책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없애기 위한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의 적대행위 포기를 먼저 요구했다. 켈리가 평양을 떠나기가 바쁘게 나온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의 이같은 발표는 매우 주목된다. 미국측 관심사인 핵문제는 이미 북·일회담에서 밝힌 ‘핵관련 합의사안 준수’ ‘미사일 시험발사 연기’등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 외에 켈리가 들고 갈 새로운 보따리를 쥐어준 게 아무것도 없다. 이밖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 해결, 재래식 전력 감축, 인권 문제 등엔 종전의 입장을 여전히 되풀이 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21개월만에 처음 가진 북·미회담은 결국 다음 회담도 기약하지 못한채 무위로 끝났다. 어떤 ‘깜짝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여겼던 관측통들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북측이 보인 이같은 강경 입장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 우선 북·일정상회담에서 시인한 일본인 납치 문제로 북측 안팎이 예상밖의 곤란에 처한 사실이 간과되기 어렵다. 신의주 특구의 양빈 행정장관이 중국에서 체포돼 특구선언 벽두부터 봉착한 난관 또한 무관하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한적 시장경제의 시도에 대한 내부 반발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켈리의 평양 방문은 북·미간에 강경파만 득세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곧 있을 북·일 후속회담 또한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이 당장 더 악화되기는 어렵다. 대 이라크 개전여부가 더 시급하고 11월 중간선거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정권 때까지 대북 접근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성립된다. 이 정부는 북·미간의 관계 개선에 희망적 낙관만 해왔을 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미 양측에 끌려만 다닌데 있다.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중반으로 접어든다. 37억 아시아인의 잔치다. 44개국 9천9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1951년 11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뉴델리대회를 시작으로 출범한 이래 역대 최대의 규모다. 이런 공식 국제 스포츠 행사가 성가만큼 국내에서 좀처럼 뜨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를 치렀다. 이태 뒤엔 서울올림픽을 또 치렀다. 지난 6월엔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를 가졌다. 두번째 갖는 대회에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빅 이벤트를 경험한 탓인지 이번 부산대회는 마치 동네 체육대회 보듯이 하는 감이 없지 않다. 1970년대에 MBC스포츠가 독일의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녹화중계하면서 한동안 국내 축구의 맛을 가게한 적이 있다. 근래에는 박찬호 투수가 활약하는 미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가 TV중계 돼 국내 프로야구에 맛을 잃은 팬들이 적잖다. 수준 높은 스포츠 중계는 스포츠 발전의 긍정적 면이 있는 반면에, 이처럼 관객의 눈 높이를 높여 식상케 하는 부정적 면도 있다. 부산 아시아드가 비록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비해서는 게임이 화려하지 못할 지 몰라도 ‘아시안 올림픽’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시아드에서 두각을 내지 못하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내지 못한다. 또 아시아 스포츠의 세계무대화에 요람이 되는 모든 아시아인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아시아경기대회는 1930년 중반에 중단된 극동선수권대회와 서아시아 경기대회를 통합 부활한 유서깊은 아시아인의 뿌리가 담겼다. 아시아드는 결코 수준 낮은 스포츠가 아니다. 특히 태권도 유도 레슬링 등 격투기는 아시아 제패가 곧 세계 제패로 이어진다. 구기종목에서도 이런 게 적잖다. 양궁같은 기록경기 역시 아시아무대가 바로 세계무대다. 양궁만이 아니다. 미국 선수가 10년이나 보유한 남자 평영 200m 기록을 일본 선수가 깨면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아시아인에겐 절벽이었던 수영의 세계무대 도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다. 부산 아시아드는 이밖에도 세계신기록 및 타이기록이 속출하고 있다. 평양의 미녀군단 응원만이 화제가 아니다. 국내외의 부부, 연인, 형제선수들 간의 아름다운 경기비화 또한 만발하고 있다. 오는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이 열린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주말의 아시아드 게임을 관전하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각 방송사의 TV 중계부터가 인색하다. 그렇고 그런 드라마를 크게 줄이고 아시아드 실황중계를 대폭 늘리는 편성이 요구된다.
각종 위급한 재난으로 부터 신속하게 인명과 재산을 구하는‘ 119 구조대’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119 구조대가 보여준 활동은 자신의 생명보다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먼저 생각하는 살신성인의 길이었다. 그러나 재난 발생시 응급 활동을 벌이는 소방서 구조대가 턱없는 인력부족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자격미달의 응급구조사를 투입하는 등 심히 곤란한 형편에 처해 있다고 한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도내 25개 소방서의 응급구조사는 고속도로 구급대를 포함해 158대의 구급차에 626명이 활동중이다. 하지만 24시간 근무체계인 갑·을부로 나뉘어 있어 실제 하루 근무인원은 313명에 지나지 않는다. 구급차 1대당 운전자를 포함해 평균 2명만이 출동 가능한 인원이어서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단시간에 구조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들 응급구조대원 중 응급상황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 소지자는 626명 중 286명이며, 이와 유사한 자격을 갖고 있는 간호사 14명을 포함해도 전체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행정자치부가 정한 소방력 기준은 구급자 1대당 3명이다. 소방서 구급대 운영규칙은 구급차에 1·2급 구조사 1인 이상이 탑승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응급구조대에는 구조사 교육 과정 9주가 끝나지 않은 2∼6주의 교육생들을 대거 투입하고 있어 유사시 응급처치가 불가능한 상태인데다 의료사고 부담까지 안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수원남부소방서 E파출소의 경우 1일 근무자가 2명이며 모두 2주의 교육만을 받은 교육생들이어서 응급환자 발생시 대응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이렇게 전문인력이 태부족인 것은 물론 빈약한 예산 탓이다. 올해 정부의 소방관련 총예산은 1조2천700여억원이다. 이중 95.1%인 1조2천여억원이 지방비고 국비는 겨우 4.2%인 542억여원에 불과하다. 소방예산을 확충하기 위한 공동시설세가 있지만 이로는 30%도 충족되지 않는다. 더구나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는 금방 표시가 나지 않는 소방에 대해 예산배정을 꺼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소방행정은 사고발생시 해결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보다 급선무다. 소방예산을 확충, 전문인력과 장비를 완벽히 갖춘 119 구조대가 운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