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原寺

수원 시내에 있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수원포교당(水原布敎堂)’은 원래 용주사(龍珠寺)포교를 목적으로 한 ‘수원불교보급소’였다. 1920년 당시 선구적 개화스님 중 한분이었던 대련스님이 수원 화성(華城) 4대문(창룡·화서·팔달·장안문) 안에 불교 홍포와 대중포교를 위해 수원천이 흐르는 남수문(南水門) 인근 길지에 산문(山門)을 열었다. 화성과 광교산(光敎山)의 첫자를 딴 ‘화광사’로 불리운 적도 있었지만 공식 사찰명칭은 수원포교당이었다. 일본강점기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실히 요구됐다. 선(禪)의 이치를 연구하고 선풍을 널리 떨쳐 궁극적으로 불교의 중흥을 목적으로 선학원(禪學院)이 개원되고, 한국불교 근대 3대 포교당인 마산포교당(1912년), 수원포교당(1920년), 강릉포교당(1932년)이 차례로 건립됐다. 당시 승려들의 도성출입이 어려워 대련스님은 사월 초파일을 기해 수원불교보급소로 창건했다. 적극적인 포교의 대안으로 도심에 사찰을 건립한 것은 당시로선 대단한 일이었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의 행정중심 사찰 조계사(曹溪寺)가 1910년 서울 수송동에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인 ‘각황사(覺皇寺)’로 창건돼 산중에 은거하던 조선의 불교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역사를 이은 불사(佛事)와 같다. 당시 각황사가 서울 4대문 안에 자리한 유일한 사찰로서 도시포교, 대중포교의 구심점이었듯이 수원포교당도 수원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심을 심어 주었다.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 날인 올해 사월 초파일 수원포교당이 ‘수원사(水原寺)’로 개명된 것은 뜻 깊은 일이지만 사실 너무 늦었다. 1900년대 수원포교당과 함께 문을 연 통도사 마산포교당의 사찰명은 정법사, 강릉포교당은 관음사로 개명된 지 오래됐다. 수원 역사와 함께 해 온 사찰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물은 생명의 근본이다. ‘수원(水原)’이란 어휘와 지명(地名)이 주는 상징성이 더욱 심오하다. 수원불교보급소, 수원포교당의 불사(佛史)를 이어 받은 명찰(名刹) ‘수원사’가 수원시민들과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 수행처로서 거듭났다. 부처님 재세시 사찰의 코살라국의 기타태자와 사위성의 급고독창자가 함께 부처님께 지어드린 ‘기원정사’ 설립의 설화가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박근혜

박근혜의 불과 1.5% 포인트 표차 패배, 이명박이 이긴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경선은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였다. 박근혜의 패인은 뭣이었을까? 박근혜가 15대 총선으로 정계에 입문할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선친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나올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선거구로 선택했다. 자력 진출을 보이기 위해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은 것이다. 그리고는 내리 3선 의원이 됐다. 재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됐을 땐 탄핵 역풍으로 당의 지지율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분연히 천막당사를 결행, 출퇴근을 택시로 하면서 민심에 부단히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2004년 4월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은 121석을 일궈 야당으로서의 강력한 기반을 회복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유세 땐 지금도 얼굴에 자국이 남아 있는 면도날 테러를 당했다. 쏟아지는 피를 자신이 손수건으로 막은 채 걸어서 입원하고는 퇴원하자마자 격전지였던 대전시장 선거 유세에 돌입했다. 지방선거를 한나라당 완승으로 이끌었다. 이번 경선은 말 그대로 ‘지독한 경선’이었다. 그 결과가 나온 전당대회에서 이미 패배를 감지하고 단상에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박근혜는 공식발표후 가진 인사말에서 또박또박한 말씨로 패배승복,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당원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낼 때, 캠프 요원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경선에 함께 나섰던 원희룡 예비후보는 “대인 같은 큰 사람의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과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이 성공하고나서 그가 누구인 가를 알기 위한 가족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었다. 서울 신당동 집마당에서 어머니 육영수와 함께 찍은 삼남매의 맏이인 근혜의 앙증스런 초등학생 모습을 기억하는, 지금의 나이든 이들은 오늘의 정치인 박근혜를 보면서 금석지감을 가질 것이다. 그 어린 소녀가 ‘담대하다’ ‘큰 정치인’이라는 평가속에 정치발전을 한발짝 앞당긴 야당 지도자로 성장한 것이다. 박근혜는 경선에서, 특히 여론조사에서 왜 석패했을까?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이라는 사실이 핸디캡 아닌 핸디캡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가 정치인 박근혜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역시 위대했다./ 임양은 주필

다인종사회

인류학은 약 5천년전 중국 북부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 농경과 수렵 및 어업으로 집단생활을 시작한 우리 민족을 한족(韓族)으로 분류한다. 인종별로는 퉁구스계몽골족으로 중국 북부·만주·시베리아·한반도 등지의 민족이 이에 해당된다. 언어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알타이산맥은 중국 신강성에서 러시아와 외몽고를 겹치는 2천여㎞의 산맥이다. 이 산맥의 동쪽 어군(語群)이 알타이어족이다. 한국·몽골·만주·일본·터키어 등이다. 남만주를 비롯한 함경도의 두만강 지역은 역사적으로 분쟁의 지역이다. 거란족은 10세기초 야율아보기가 부족을 통일, 그 아들이 열하를 중심으로 요(遼)나라를 세우고, 여진족은 12세기초 아골타가 동만주에서 금(金)나라를 세웠다. 이러한 거란족과 여진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유민들은 고구려·고려·조선조에 대항하기도 하고 귀화하기도 했다. 조선 세종조에선 함경도 북변을 중심으로 여진족에 대한 육진개척이 있었다. 이외에 또 말갈족이 있다. 만주 동북부를 무대로 한 이들은 숙신·읍루·물길 등 부족국가를 형성하였다가 고구려 백성이 됐다. 한반도의 북부지역은 이래서 한족(韓族)만이 아닌 말갈·여진·거란족의 혈통이 섞였다. 이만이 아니다. 고려에서는 수 십년에 걸쳐 몽골 침입에 대적한 항몽전쟁이 있었고 조선시대엔 임진왜란의 칠년전쟁을 치렀다. 백의(白衣)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관념상의 정의(定義)에 불과하다. 순수혈통주의를 내세우기가 어렵다. 그래도 말갈·여진·거란족이나 몽골·일본족 등은 같은 퉁구스계몽골족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 이민한 외국인 여성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베트남이나 필리핀을 비롯해서 서구 등 비퉁구스계몽골족이 허다하다. 이들 부부의 자녀로 많은 혼혈아가 태어나고 있다. 혼혈아는 이미 주한미군인 사이에 적잖게 태어났고 또 일찍이 한국인 남성이 월남에 가서 낳은 ‘라이 따이한’ 등이 있다. 여기에 이젠 본격적인 결혼 이민이 겹쳐 혼혈아가 보편화해 간다. 관념적이었긴 해도 단일민족 백의문화가 무너져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다. 민족을 말하면 소외되는 이민족 국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민족을 위한다”기 보다는 “국민을 위한다”고 해야 할 때가 됐다. 국수주의적 순수혈통주의는 이제 의미를 다 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가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개념의 극복을 권고해왔다./ 임양은 주필

논어 이야기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사서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이다. 논어는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가진 문답을 기록한 것으로 그의 도덕적 이상인 인(仁)이 강조됐다. ‘논어언해’(論語諺解)는 조선 선조 때 논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영조 땐 이를 한글(언문)로 더 자상하게 수정 보완했는데 활자본의 이 4권2책이 ‘논어정음’(論語正音)이다. 정조 시대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으로 유교를 소홀히 하면서도 논어는 존중됐다. 논어를 알기 쉽게 주석을 붙여 풀이한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펴낸 것은 실학파의 정약용이다.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하고 물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느니…”하는 공자의 말에 자공은 “그럼 자장이 위라는 말씀입니까” 했으나 공자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것이다.(논어 선진편) 중국 고대의 전설적 현자로 꼽히는 백이·숙제 형제를 비롯한 은둔자들의 인물평으로 공자는 제자들에게 나는 이들에게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는 뜻)하나, 이들을 따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자는 현실 도피의 은둔생활보단 현실 참여의 중도생활로 매사에 과부족이 없는 처신을 추구했던 것이다.(논어 미자편) 공자를 존경했던 위나라 명재상 거백옥이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도록 했다. “그래, 주인 어른께선 어떻게 지내시느냐”는 물음에 심부름 온 사자는 “주인 대감께선 잘못을 적게 저지르고자 힘써도 아직도 잘못을 적게하지 못하여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사자가 돌아간 뒤 제자들에게 “잘못이란, 정작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잘못을 고치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과이물탄개(過而勿憚改)의 고사다. (논어 위령공편) 한 제자가 집에가 낮잠을 자고온 것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자, 다른 제자들이 의아히 여기는 것을 본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썩은 나무엔 조각을 할 수 없고 흙손으로 벽을 바를 수 없으니 꾸짖은들 뭐하랴”라고 했다. 후목분장(朽木糞牆)이라는 것이다. (논어 공야장편) 이상은 논어의 몇가지 대목이다. 현세에도 교훈으로 삼을만 하다./임양은 주필

비아냥黨

“날 회장으로 뽑아 준다면 아이스크림을 쏘겠어.” “매일매일 수업을 딱 일교시만 하는 거야.” 학생회장으로 뽑아달라며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놓는 후보들에게 아이들이 외친다. “이 뻥쟁이들!”. 지난 6월 여성문화운동단체 ‘이프’가 제9회 안티페스티벌 ‘대통령과 함께 춤을’이란 행사를 개최했었다. 그때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발끈미래당’이 공연한 정치풍자 뮤지컬 ‘대통령이 되기 싫은 101가지 이유’의 한 장면이다. ‘이프’는 해마다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 ‘안티성폭력페스티벌’ 등 사회적 이슈의 안티페스티벌을 펼쳤는데 올해엔 17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를 소재로 삼았다. 안티페스티벌에 참가한 개인과 단체 13개 팀은 기존의 선심성 공약 남발, 지연·학연 정치, 구태 선거 등을 비판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선보였는데 ‘아름다울 수 있당’에선 ‘신데렐라의 구두를 던지고 슈퍼우먼의 망토를 찢자’는 공약으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고등학생 연극동아리 ‘쎈’은 ‘굿쎈당’을 결성하고 ‘오락가락 교육정책’을 풍자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김해여성복지회관의 여성 노인들은 ‘혈기왕성당’을 결성하고 노인들이 원하는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티페스티벌에 참가한 여러 당처럼 당명(黨名)이 희한하기는 요즘 생긴 정당도 마찬가지다. 범(汎)여권 신당의 정식 명칭은 ‘대통합 민주신당’이고 약칭은 ‘민주신당’이지만 정치권에서 민주신당을 당명대로 부르는 정파는 민주신당을 제외하곤 별로 없다. 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민주신당을 ‘도로 열린우리당’ ‘열린신당’ ‘도로 노무현당’이라고 부른다. 일부 신당 소속 의원들조차 ‘밤새 걸어 제집 한마당’ ‘돌고도는 열린당’ ‘다람쥐 체바퀴당’이라 부르는 실정이다. 민주신당이 ‘대통합’과 ‘신당’을 자처하는 걸 빗대 ‘짝퉁대통합’ ‘헌당’이란 호칭도 있고, 한나라당에선 ‘한탕주의 사기도박당’ ‘위장폐업 후 신장개업당’ ‘국정실패 세탁공장당’ ‘기획탈당 헤쳐모여당’이란다. 지난달 24일 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회가 가칭 ‘미래창조 대통합 민주신당’이란 당명을 내걸었을 때 다른 정파에선 ‘과거회귀 잡탕 군주 헌당’이란 명칭이 나왔고, 당명이 너무 길고 헷갈려 ‘열한 글자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너, 나 할것 없이 정치인들이 자초한 망신, 수치이지만, 앞으로 ‘거품당’ ‘허무당’도 나오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 부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절약정신이 대단했다. 물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항상 손빨래를 했고 한번 쓴 비눗물은 다시 모아 걸레를 빠는데 썼다. 특히 며느리에게도 매일 가계부를 쓰게 했고 보름마다 이를 검사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일본 유학파 출신의 재원이지만 내각제 하의 대통령인 남편의 위상을 고려해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두 자녀와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그는 청와대 안주인의 삶을 ‘조롱(새장) 안의 새’로 비유했다. 지인들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유감으로 생각하는 일이 청와대에서의 생활이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구설수에 자주 올랐다. 41세에 대통령 부인이 된 그는 취임식 때 손을 흔들며 남편과 같이 식장에 들어섰다 호된 비판에 시달렸다. 대통령 몇 발자국 뒤에서 내조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모습에 익숙했던 국민이 정서적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성지와의 인터뷰에 명품시계를 차고 나와 ‘명품족’으로 낙인찍혔고 해외 순방 때 고급의상을 싹쓸이한다는 소문 때문에 투서도 받았다. 본인도 이를 의식해 공식행사 때마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고민했으며 행사가 끝나면 비디오를 돌려보며 자신의 모습을 분석했다.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재임 중 단 한건의 인터뷰도 하지 않으면서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기독교 신자인 손명순 여사(김영삼 대통령 부인)는 1987년 대선 때 남편의 일요일 선거 유세를 막아 마찰을 빚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 부인)는 퇴임 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최초의 대통령 부인이다. 육영수 여사는 1961년 5월 15일 늦은 밤 치밀하게 쿠데타를 준비해왔던 박정희 소장이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하며 남편의 소매를 붙잡았다. 쿠데타에 실패하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식들의 얼굴을 한번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자는 아이들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본 박 소장이 집을 나가자 육 여사는 남편과 교환했던 편지를 하나씩 불태웠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했다.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큰딸 박근혜 의원이 아버지처럼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운명의 경선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임병호 논설위원

평론가

우리 사회엔 소위 ‘평론가’가 꽤 많다. 누가 평론가로 인정해 주었는지 각 분야마다 거의 평론가가 존재한다. 예전엔 문인과 문학평론가의 논쟁이 가끔 일어나 보기 좋은 싸움 구경을 시켜준 적이 많았다. 예컨대 A시인의 작품을 B 평론가가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악평을 하면, A 시인이 즉각 반론을 제기한다. B 평론가의 재평이 또 활자화된다. 이렇게 시작된 논쟁은 A 시인이 “그렇다면 (B 평론가가) 詩를 써서 발표하라. 그럼 내가 평론하겠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승부가 날 리 없다. 지난 9일 한 TV 토론회에 출연한 대중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심형래 감독의) ‘디워(D-WAR)’는 영화의 완성도에서 크게 떨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서 “평론가가 (팬들 때문에) 비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날 진씨는 “영화는 형편없는데 애국심 등 외적인 요소들이 현상을 이끌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엉망진창’ ‘꼭지가 돈다’ ‘개판’ 등의 원색적인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네티즌들이 즉각 “당신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모든 게 애국심이고 동정심이냐” “애국심이라는 한마디로 영화를 본 400만명이 바보가 됐다”며 진씨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있지만 부분을 전체인 양 해석하는 자체가 더 잘못된 것”이란 ‘디워 팬카페’의 공식입장도 나왔다. 그러나 영화 ‘디워’는 개봉 14일 만에 전국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600만명을 넘은 첫 영화로 기록됐다. 한 주 앞서 개봉한 ‘화려한 휴가’의 관객수도 앞지른 상태다. 평론가가 아니라 일반 관객이 담론 생산자로 떠올라 우월한 힘을 형성하는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디워’를 혹평하자 영화를 즐길만 하다고 생각한 대중들이 폭발한 현상이다. 미학과 재미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모두(冒頭)에서 말한 문학의 경우, 훌륭한 최종 평론가는 독자다. 같은 미술작품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평론이 다를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물론 비평을 막을 순 없다. “영화가 형편없다”는 평론가들에게 심형래 감독이 “그렇다면 직접 영화를 한번 만들어 봐라. 내가 평론하겠다”고 하면 어떤 답변이 나올 지 궁금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일제 식민지교육

운동장의 절반은 갈아엎어 밭으로 만들었다. ‘生産報國’(생산보국)을 한다는 것이다. 밭 작물 농사는 학생들이 도맡았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분뇨를 통에 퍼 담아 어깨에 둘러메어 옮기고는 밭에 뿌렸다. 지지대子가 일제말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포플러나무에 올라가 꽃처럼 돋은 솜털 같은 걸 따기도 했다. 낙하산을 만든다는 것이다. 산에서 소나무 뿌리를 캐어 드럼통 같은데에 고와 송탄기름을 짜내기도 했다. 군용으로 쓴다는 것이다. 그 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여덟살에 입학했으니까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과 나이가 같은 또래다. 수업은 오전에만 하고 오후에는 운동장 농사, 포플러나무 솜털따기, 송탄기름 일로 보내곤 했다. 게으름을 피우면 황국신민(皇國臣民)을 들먹이는 일본인 교사의 체벌이 죽도(竹刀)로 가해졌다. 학교 생활에서 우리 말을 쓰면 ‘후쿠로 다타키’(친구가 책보자기를 머리에 씌워 누가 때린지 모르게 떼거리로 군밤질을 가하는 것)를 시켰다. 학생들은 장난삼아 멋모르고 좋아 하지만 학교측은 그게 아니다. ‘國語常用’(국어상용)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어는 일본어였던 것이다. 매월 8일은 1941년 12월8일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2차대전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는 이른바 ‘다이쇼 호타이비’ 날이다. 그날은 신사(神社)를 참배해야 했다. 그땐 차렷 자세에 손바닥을 쫙 펴야 하는데 겨울철에 추워 손이 굽으면 어김없이 회초리가 날아들곤 했다. 이외에도 징병으로 군대에 끌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역까지 나가 환송하는 일이 잦았다. 아마 지금 초등학교 4학년 또래들에게 분뇨통을 메고, 포플러나무에 올라가고, 소나무 뿌릴 캐는 일을 시키면 부모들이 기겁을 할 것이다. 또 또래아이들도 그런 일을 감당 못할 것이다. 지금의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선생님에게 자녀가 죽도나 회초리로 매맞는 것을 보면 야단날 것이다. ‘후쿠로 다타키’ 당하는 것을 보아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제62주년 광복절이다. 1945년 8월15일 2차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주권을 회복한지 어언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그날, 기억되는 것은 학교 안가도 된다고 해서 일 안해도 되기 때문에 좋아했던 추억이다. 일제 치하를 모른 사람들에게 일제의 식민지 교육이 어떠했는 가를 알리기 위해 어린 시절 그들에게 겪은 체험담 몇가지를 간추려 써봤다. / 임양은 주필

수원천

수원천은 청계천과 비유된다. 산으로 말하면 팔달산은 남산과 비유할 수 있다. 수원천도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무허가 건물이 난립했었다. 하천 바닥에 높은 말뚝을 박아 달아낸 판자집이 즐비했다. 수상가옥이 아닌 하상가옥인 것이다. 6·25 전쟁통에 생긴 수원천 판자집은 1960년대 말까지도 골칫거리였다. 수원시에서 철거하려고 하면 주민들의 데모 바람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수원 출신의 L 국회의원 역시 표밭이어서 주민들을 두둔했다. 그런데 한 번은 큰 물이 져 주민들을 대피시킨 틈을 타 모조리 철거했다. 수원시는 이에 L 의원의 사전 양해를 얻었다. 나중에 주민들의 항의 현장에 나타난 L 의원은 시장에게 호통을 쳤으나 그것은 쇼였다. 그렇게 해서 하상 판자집이 없어지고 나니까 문제가 또 생겼다. 일부 철거민들이 이번엔 수원천 길가에 육상 판자집을 지은 것이다. 이를 또 철거하면서 생긴 묘안이 이동 판자집이다. 즉 땅바닥에 고정시킨 것은 집이지만 바퀴를 달아 이동하는 판자집은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이동 판자집은 몇해 전까지도 유물처럼 구운동에 한 채가 있었다. ‘문화·휴식이 흐르는 수원천 만들자’는 제하의 수원영복여고생들 토론회 기사(본보 13일자)를 보자니까 수원천에 한 때 숨은 그같은 어두운 과거사가 생각났다. ‘수원천 네트워크 청소년 수원천 지킴이’ 토론회는 수원천 보존 활용방안이 내용이다. 징검다리, 열차개통, 조명장치 등 만발한 풋풋한 아이디어가 생동감이 넘친다. 수원천은 한참동안 오염이 찌들어 회생이 절망적이었다. 일부를 복개했던 것은 그같은 절망적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우·오수관 분리 등 꾸준한 환경복원에 힘 입어 다행히 생태계가 살아났다.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다만 청계천과 다른 것은 청계천처럼 한강 물을 끌어댈 수 있는 물을 수원천은 달리 댈 수 없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날씨가 가물면 물이 말라 건천이 되곤하는 게 안타깝다. 그렇긴 해도 수원천은 수원의 전래 정서가 실린 대표적 자연환경이다. 종로나 남문 일원엔 포장되기 이전의 옛날에 팔달산서 흐른 맑은 물이 수원천으로 흘러들었던 개울이 길밑에 지금도 있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황구지천으로 유입된다. 많은 하천이 여러 시·군을 지나면서 흐르는데 비해 수원천은 수원 시내에서만 흐른다. 수원 시민이 오염시키지 않으면 깨끗하다. 수원천은 수원 시민의 양식을 나타내는 하천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골프장

경기도는 골프장 천국이다. 무려 105개의 골프장이 있다. 이 가운데 66%인 69개가 팔당호를 낀 7개 시군에 있다. 얼마전 경기도가 적발해낸 오폐수 골프장 6개 중 5개가 역시 용인 양평 가평 등 팔당호 주변의 시군이다. 기준치에 비해 최고 7배가 넘는 오폐수를 팔당호에 콸콸 흘려내 보냈다. 용인시는 경안천을 끼고 있다. 경안천은 팔당호 유입 하천 중 오염이 가장 심각하다. 경안천 정화 없이는 팔당호 1급수는 불가하다. 그런데 경안천 오염의 공범으로 골프장이 지목된다. 이번에 적발된 것만도 2개다. 경기도는 팔당호 수질개선대책의 일환으로 2010년까지 730억원을 들이는 경안천 정화사업에 역점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오폐수 골프장은 문을 닫도록 하든지 하는 엄중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해외 골프관광이 극성이다. 지난해 해외 관광객 1천160만명의 약 62%가 골프관광을 한 골퍼족이다. 올핸 15% 가량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휴가철을 맞은 지금도 인천국제공항에 가면 골프관광에 나선 골퍼족들을 떼거리로 볼 수 있다. 올 상반기 국내 서비스 수지적자가 72억 달러에 이른다. 해외 골프관광이 적자의 주요 요인인 것이다. 우리가 달러를 벌어들이는 길은 수출 뿐이다. 수출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수출 전선은 가히 총성없는 전쟁터다.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를 골프관광 같은 허망한 돈 놀음으로 까먹고 있는 것이다. ‘버는 것 보다 쓰길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는 속담도 있다. 골프관광이 과연 돈을 잘 쓰는 것인지, 정승 같이 쓰는 건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국내에서 골프를 쳐도 10만원 짜리 수표 몇 장이 나간다. 골프를 칠만한 사람들이 치면 그래도 괜찮다. 남의 라운딩에 곱살 끼기를 일삼거나 서비스카드를 긁어 달러를 빚내가며 골프관광을 즐기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반값골프장 얘기가 있었다. 해외 골프를 줄이기 위해 농지를 이용해 반값골프장을 만든다지만 당치 않다. 공연히 농지만 훼손시킨다. 골프관광은 의식 문제다. 반값골프장을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동탄신도시2지구는 골프장들은 놔두고 농민들 땅만 수용키로 해 특혜 시비가 이는 가운데 주민들의 세찬 반발을 사고 있다. 골프, 골프장은 이래저래 말썽이다./ 임양은 주필

입값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연설당 10만~45만 달러를 받는다. 2001년 퇴임 투 벌어들인 강연료가 4천만 달러에 이르고 지난해 강연료로만 1천20만 달러를 벌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의 강연료 수입은 상원의원인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재산신고를 하면서 공개됐다. 클린턴의 강연 장소는 IBM,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대기업이나 각종 협회 등 다양하다. 그의 ‘입값’은 특히 외국에서 크게 뛰어 오른다. 그는 지난해 9월 나흘 동안 영국·아일랜드·남아공·독일·덴마크를 돌아 174만 달러를 챙겼다. 그는 최근 부인이 대통령이 됐을 경우 “생계를 꾸리는 데 조금의 시간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인의 장래 뒷바라지를 위해 열심히 번다는 얘기다. 루돌프 줄리아나 전 뉴욕시장은 지난해 연설로 1천139만 달러를 벌었다. 9·11 동시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서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 지난해 124차례나 강연했다. 회당 평균 8만8천 달러를 받은 셈이다. 그는 시장 연봉으로 19만5천 달러를 받았기 때문에 강연 두 번에 거의 연봉을 챙긴 셈이다.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강연으로 39만5천 달러를 벌어들였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시간에 평균 15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30분 강연에 2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한 게 화제가 됐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20만 달러,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10만 달러 정도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가(超高價) 강연료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는 2005년 6월 ‘총리 부인의 삶’이란 주제로 90분 연설에 3만 파운드(약 5천500만원)를 받았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짧은 강연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눈이 멀어 자신과 남편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클린턴의 대변인을 지낸 제인 카슨은 “그는 자선행사에는 기조연설을 자청하는데,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만으로 훨씬 많은 기금을 모으게 된다”고 말했다. 유명인사가 참여하면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는 등 여러 기대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강연료가 얼마인지 공개를 잘 안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의 휴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재임 이후 지금까지 여름휴가 한달, 겨울휴가 보름을 누려왔다. 주로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이나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대통령이지만 여름·겨울 휴가를 빼먹지 않는다. 이라크 공격을 명령하던 곳도 휴양지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런 부시 대통령을 ‘휴가의 왕’이라고 평했다. 유럽 정상들의 휴가는 사생활인 만큼 대체로 비밀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간혹 무리한 휴가를 보내다 언론에 들통나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 고급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잘 알고 지내던 팝그룹 비지스 멤버인 로반 캅 소유인 500만파운드짜리 마이애미 대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려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바람에 휴가 계획이 들통났다. 대통령 당선 뒤 곧바로 지중해로 호화여행을 떠났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호화판으로 미국에서 보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인, 막내아들과 함께 휴가를 즐긴 곳은 영화 관람실, 배 4척을 정박시킬 수 있는 개인 호숫가도 갖춘 호화별장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휴가는 있지만 드러내 놓고 가지는 못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때까진 충북 청남대 등에서 휴가를 보내며 8·15 광복절 경축사를 구상하며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 때인 2001년엔 홍수가 나서 못 갔고 2002년에는 두 아들이 구속되고 장상 총리 인준이 실패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아 가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 29일부터 일주일간 진해 휴양지에서 쉬면서 김해 봉하마을에 들러 퇴임해서 살 집을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고가 터져 전면 취소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나치 독일을 섬멸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몽고메리 연합군 원수는 “이상적인 지도자는 머리가 좋고 게을러야 한다”며 특히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한 지도자는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중책을 맡은 지도자일수록 일부러 여유를 두고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라는 충고다. 그렇다면 휴가를 당당히 활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최선인지, 최악인지 모르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강남구의회 연봉 인상안

서울 강남구의회가 마련한 연봉(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 인상 방안은 전국의 다른 지자체 의회들이 따라서 할 것 같아 우선 걱정이 된다. 기가 막힐 지경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모양이다. 강남구 의정비심사위원회가 연간 보수를 6천96만원으로 잠정 결정했다니 제정신들이 아닌 게 분명하다. 현재의 연봉이 2천720만원임을 감안할 때 해도 너무 하는 인상이다. 온갖 핑계를 대가며 지방의원의 유급화를 관철시킨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이다. 아무리 후안무치, 아니 세상 물정을 모른다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다수 국민들이 일자리 부족과 물가 평균 상승률에 못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정치감각도 ‘제로’다. 강남구 의원들이 받고자 하는 연봉은 올해 전국 시·도의원 평균 연봉 4천680만원, 서울시 구의원 평균 연봉 3천300만원을 엄청나게 웃도는 금액이다. 지방자치법 시행령은 의정활동비 한도를 월 150만원으로 제한하고 대신 월정수당은 자율에 맡기고 있다. 지방의원들로서는 월정수당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게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활동 경비 명목의 의정비는 월 110만원으로 그대로 두고 급여 성격인 월정수당을 117만원에서 398만원으로 무려 3.4배나 올리기로 했다. 유급제 취지에 따른 연봉 현실화라 할지라도 정도를 넘어도 너무 넘어섰다. 혹시 부자자치구라고 하여 펑펑 써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경제상황도 좋지 않고 강남구의 경우 공동세 도입으로 구세의 상당부분이 줄어들 게 됐는데 구의원들이 자기들 잇속만 차린다는 주민들의 지적을 아직 듣지 못했나보다. 서슬퍼런 주민소환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 같다. 강남구의회는 곧 조례를 개정해 의원들의 겸직 조항을 없애고 연봉인상에 걸맞게 의정활동에 전념케 하겠단다. 그렇다면 이제까진 연봉이 적어서 의정활동에 태만했다는 얘기가 된다. 겸직 금지를 의결해낼지도 의문이다. 물론 강남구의원 연봉 인상안은 오는 10월 최종 결정된다. 구의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다곤 하지만 만일 인상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전국 광역·기초의회에도 영향이 미친다. 그러잖아도 국민 사이에서 기초의회를 없애자는 얘기가 나오는 판국인데 철없는 인상안을 만들어 여론만 악화시켰다. 괜히 큰코 다치지 말고 강남구의회는 월정수당 인상안을 즉시 철회해야 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창간 十九주년

‘십구공신회맹록’(十九功臣會盟錄)은 1627년 조선 인조때 이인거 난 등을 평정한 홍보 등 열아홉 공신들이 북악산에서 회맹제를 행한 기록이다. 당시의 조정 실정을 자상하게 알 수 있는 문건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하고 있다. ‘십구년칠윤법’(十九年七潤法)이 있다. 음력과 양력을 겸한 태음태양력으로 윤달을 두는 방법이다. 19태양년 동안에 7개월의 윤달을 둔다. 이에 의하면 1억월, 1억년이 실제 날짜 수보다 길므로 특별한 계산법을 쓰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춘추시대,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비슷한 이 방법을 쓴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일종의 고대천문법이다. ‘십구사략’(十九史略)은 중국의 태고에서 원(元)나라까지의 역사를 요약한 사서(史書)다. 19개나라 역사책이라 하여 ‘십구사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명(明)나라 유염이 유인이 따로 편찬한 ‘원사략’(元史略)을 첨가해 ‘십구사략’으로 편찬했다. ‘십구사략’ 1권을 한글로 음과 토를 달아 역문(譯文)을 붙여 간행한 것이 ‘십구사략언해’(十九史略諺解)다. 영조 48년(1772년)에 펴냈다. 한글(언문)을 쓴 사실이 획기적이다. ‘십구장원통기’(十九章圓通記)는 고려 초기의 고승 균여(均如)가 저술한 화엄경구 해설서다. 한국 불교의 사상적 흐름이 중국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는 귀한 저술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 보유판에 수록돼 있다. ‘십구로군’(十九路軍)이란 게 있었다. 1932년 상하이(上海)사변 때 일본군과 분전하여 명성을 떨쳤던 중국 육군의 정예부대다. 광둥(廣東)성 출신 장병들로 구성된 ‘십구로군’은 항일 영웅으로 유명했다. 나중에 ‘칠로군’으로 개편됐다. ‘십구세출가’(十九歲出家)는 불가에서 35세에 해탈한 석가가 득도를 위해 가비라성 왕궁을 19세 때 출가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는 가비라성 왕의 왕자였다. 이상은 ‘十九’(19)와 연관된 고사를 지면이 허락하는대로 몇 가지 열거한 것이다. 오늘은 경기일보가 1988년 8월8일 창간한 지 十九주년 되는 날이다. 경기일보와 함께 태어난 사람 같으면 이제 성년이 된 것이다. 어느덧 흘러간 十九개 성상을 회고하면서 지역사회와 독자 분들의 성원에 감사한다. ‘지지대’는 계속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약자의 보호막 노릇을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가짜 그림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의 공통점은 수명이 짧았던 점이다. 고흐는 37세에 요절했다. 박수근은 51세에 고인이 되어 요절했다고 할순 없으나 장수했다고도 할 수 없다. 이중섭은 나이 40에 타계했으니 요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생전에는 가난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사후의 그림값이 금값보다 더 나가는 것이다. 후대인들에 의해 이들의 가짜 그림이 성화를 부리는 것도 공통점이다. 고흐는 정열의 화가로 야수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호주 국립미술관에 고흐 작품으로 60여년 동안 전시된 ‘남자의 초상’ 그림이 가짜로 판명됐다고 최근 외신은 전했다. 역시 그의 그림으로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계곡’이 한동안 위작 소동이 벌어졌다. X선 투시에서 표면의 그림 밑에 다른 그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정밀감정 결과 다른 그림을 그리다가 ‘계곡’ 그림을 덧씌워 그린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유는 그에겐 캔버스가 귀했던 탓이다.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조선미전에 입선했다. 회백색 구도에 간결한 선묘로 생활주변의 소재를 주로 한 것은 그다운 성품이다. 지난 5월 그의 작품 ‘빨래터’가 국내 경매에서 무려 45억원에 거래됐다. 이중섭은 일본에 미술유학을 한 화가로 야수파 성향이 강하다. 동물을 많이 그렸다. 동물 중에도 개를 소재로 많이 다루었다. 6·25 땐 피란지 대구에서 진종일 다방에 죽치고 있으면서 빈 담뱃갑에 동물을 그리곤 했다. 아마 누가 이중섭의 그 담뱃갑 그림을 지금 지니고 있다면 부르는 것이 값일 게다. 얼마전 박수근·이중섭의 그림이라며 무더기로 나와 위작 시비가 일어나 검찰이 의뢰한 감정 결과 모두 가짜로 결론이 났다. 무엇보다 불우한 이들 천재화가가 사후에 무더기로 나올만큼 생전에 그림을 그릴 처지가 못됐다. 고흐나 박수근·이중섭의 그림이 사후에 평가받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화가의 혼이 화폭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비구상으로 가는 경향이 점차 짙어진다. 순수추상주의가 있다. 사진예술, 비디오 아트 등의 발달은 구상 분야 역시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손끝이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전에 가난했던 이들의 그림이 사후에 가짜가 쏟아질만큼 돈이 되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세태다./ 임양은 주필

인공섬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은 고도(孤島)와 제도(諸島)로 구분된다. 고도는 멀리 떨어진 외딴 섬으로 독도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여러 섬이 모인 제도는 또 군도(群島)와 열도(列島)로 나뉜다. 섬이 불규칙적으로 떼지어 모인 군도는 남해안 지방에 산재한 많은 섬을 군도라고 할 수 있다. 줄 지은 모양으로 여러 개의 섬이 늘어선 열도는 일본 열도를 생각하면 된다. 물속에 있는 수중 섬이 있다. 제주 서남방에 있는 이어도는 바닷속에 잠겼다. 제주지방 민요에 나오는 이어도는 환상의 섬이었던 것이 수중섬으로 발견됐다. 물속이긴 해도 물이 얕아 섬 구실을 하는 것이 여기에 해양관측시설을 해두었다. 중국이 이를 배아프게 여겨 정부에 무단시설을 했다며 턱없는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강에 인공섬을 띄운다고 한다. 서울시가 민자를 끌어들여 위락지로 인공섬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강 잠수교 부근에 본체섬 한 개에 부속섬 두 개 등 1만㎡(약 3천330평)규모의 인공섬을 조성, 3층 건물 규모의 영화관·쇼핑몰·레스토랑 등과 수영장·수상스키장 같은 레저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보도됐다. 인공섬은 여러개의 큰 바지선을 연결하는 대형 구조물을 물에 띄워 만든다. 바지선을 서로 묶어 연결하는 것은 일종의 연환계(連環計)다. 연환계엔 중국의 유명한 적벽대전 고사가 있다. 위나라 조조의 수군이 촉한의 제갈량과 오나라 주유의 연합군과 싸울때 장졸과 말이 심한 배멀미하는 것을 막기위해 병선을 서로 쇠고리로 묶어 목판을 깔고 평지처럼 군사훈련을 시켰다. 이 연환계는 제갈량이 책사 방통을 첩자로 보내어 조조에게 충동질하여 성사시킨 것이다. 이를 모르고 방심했던 조조는 난데없는 촉한·오나라의 기습적인 화공으로 병선은 모두 불타고 많은 장졸들이 궤멸당했다. 인공섬을 만드는 바지선 구조물은 강바닥에 닻을 내리고 육지에 체인으로 고정시켜 물살에 떠 내려가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조조가 병선을 묶었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연환계인 점에선 같다. 아무래도 큰 홍수가 나도 안 떠내려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인만으로는 미흡하여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 안전대책과 함께 한강의 오염원이 안 되도록하는 세심한 배려 또한 요구된다. 인공섬은 잘만하면 환상의 섬이 될만한 기발한 착상이긴 하나 문제점이 적잖다. 재앙의 섬이 안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는 신중한 검토에 거듭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사투리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 땅에 지역별로 다양한 사투리가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놀랍다. 산맥과 높은 고개, 그리고 강 등으로 구분지어진 전통사회에서 오랜 세월 살다보니 그랬음직 하다. 사투리는 각 지역의 삶과 정서, 역사의 관습이 녹아 있는 우리의 언어적 유산이다. 육지에서 동떨어진 제주도 말은 특히 이해하기 힘들다. “혼자옵서예”(반갑습니다)는 그래도 알아듣기 쉬운말에 속한다. 제주도에서는 지방선거 때마다 ‘괸당’이란 말이 부각된다. 혈족이나 친족 등을 일컫는 말이다. ‘무사경 빠르꽈, 서둘지맙써(왜 그렇게 빠릅니까. 서두르지 마세요).’는 제주 서부관광도로 위험지역 곳곳에 있는 사투리로 쓴 교통안내표지판이다. 생소한 표지판을 보고 외지 관광객들은 자연스레 속도를 줄인다. 제주도 홍보는 물론 교통사고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토종 방언이 거의 ‘외국어’ 수준인 제주도는 각 마을의 사투리를 체계적으로 조사, 1천500쪽 분량의 ‘제주말 사전’을 올해 말 발간할 예정이다. 부산의 대표축제인 자갈치축제의 슬로건은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이다. 자갈치 시장의 상인들이 손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옮겼다. ‘친구’는 영화 속 사투리의 한 획을 그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우리 친구 아이가”는 널리 회자됐다. ‘문둥이 가스나’도 정겹다. 전남 강진군은 ‘와보랑께 박물관’을 설립했다. 이 박물관엔 전라도 사투리 문장 200여개를 나무토막 등에 새겨 전시해 놓았다. 목포문화원은 매년 사투리로 단막극을 진행하는 전라도사투리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문학작품 속의 사투리는 질박한 향토색을 나타낸다. 김영랑 시인의 ‘오매, 단풍들겄네’와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섭섭하게 / 그러나 / 아조 / 섭섭치는 말고”는 더욱 감칠맛을 자아낸다. 박목월 시인의 ‘이별가’에선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하고 ‘뭐락카노’가 반복돼 이별의 안타까움이 더 깊다. 표준어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사투리 또한 소중하다. 강원도, 충청도의 사투리. 함경도, 평안도의 사투리를 방송, 영화 등에서 듣다보면 정감이 넘쳐 흐른다. 서울·경기 사투리도 있다. ‘한국 사투리사전’을 정부가 편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 임병호 논설위원

창업과 수성

‘창업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고 바꿔 말하기도 한다. 당나라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얘기다. ‘정관정요’는 태종 이세민의 치적을 수록한 책자로 ‘정관’은 당태종의 연호다. 수나라 양제를 몰아내고 자기 아버지가 당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세민이 뒤를 이어 제왕이 되고 나서 한 날 중신들에게 물었다. “제왕의 사업 중 창업과 수성 어느 쪽이 더 어렵냐“고 했다. 중신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방현령이란 대신은 창업이 어렵다고 하고, 위징이라는 대신은 수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신하들의 토론을 듣고 있던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방현령은 짐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면서 구사일생의 고비를 수차에 걸쳐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그대가 창업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제위에 오른 짐과 더불어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조금만 방심하면 대업이 다시 허물어질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도록 힘쓴 위징이야말로 수성이 어렵다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키면 창업의 어려움은 과거지사가 됐다. 앞으로는 경들과 더불어 수성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으니 이를 명심토록 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는 당 태종의 창업과 수성을 함께 경험한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 이세민은 인재 기용을 잘했다. 결점은 숨겨주며 장점을 크게 활용하는 인사 방침으로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을 했다. 이 때문에 제왕의 자릴 두고 친형을 죽인 허물을 덮을 수 있는 당나라 역대 제왕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평가받는 ‘정관의 치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을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황제에 올랐던 진시황의 창업이 아들 대에 15년만에 망한 것을 보면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을 알 수 있다. 패업(覇業)만이 아니다. 재벌기업의 흥망성쇠나 부침을 보아도 수성이 어려운 사례를 본다. 백년 정당을 표방하면서 거창하게 출발한 열린우리당이 불과 4년도 안되어 뿔뿔이 탈당해 지리멸렬한 것을 보아도 수성이 창업보다 더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합동토론회

올 4월 26일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8명이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90분간 가진 첫 공개토론회는 후보들의 단합대회와 같았다. 민주당 후보 중 1·2위를 다투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은 서로 후보를 퍼스트 네임(first name)으로 불렀고, 후보들은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칭찬’하는 등 ‘탐색전’으로 일관했다. 사회를 맡은 NBC 방송의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당신들 외에 누가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이길 것 같느냐”고 묻자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델라웨어)은 “여기 많은 승자들이 있다”고 답했고, 오바마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라는 주문을 받은 힐러리는 “오바마가 말한 것이 옳다고 본다”고 답했다.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오하이오)이 낙태권한을 옹호하자,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코네티컷)은 “데니스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맞장구쳤다. 이들 후보들은 남을 공격하기보다, 자기 ‘결점’을 옹호하는 데 애썼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선거자금에서 400달러짜리 이발요금을 낸 것과 관련, “어렸을 때 가족이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돈을 못 냈던 기억을 잊었다”고 사과했다. 평소 말이 길기로 유명한 바이든은 “세계를 이끌 준비가 됐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간단히 “예스”라고 만 답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집에 총을 가져본 사람은 손을 들라”는 질문엔 힐러리, 오바마, 에드워즈가 총이 없다고 밝혔다. 후보들의 유일한 공격 타깃은 이라크전쟁을 이끈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이날 상·하원을 통과한 이라크 전비(戰費) 법안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는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는 데 단 한 개의 서명만 남았다”면서 부시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러나 데이나 페리노 백악관 부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요즘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를 보고 있자니까 조선일보 최우석 워싱턴 특파원이 전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합동토론회 광경이 떠오른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상호 공격, 비방은 상식 이하의 행태여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원희룡·홍준표 후보가 한결 돋보이는 이유다. / 임병호 논설위원

미 하원 ‘위안부’ 결의

‘큰네’와 ‘작네’는 쌍둥이 자매였다. 상급학교 진학이 보편화되지 못했던 그 무렵엔 초등학교를 나온 자매는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큰네’는 열일곱살에 시집갔다.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바람에 조혼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젊은 여성일지라도 유부녀는 위안부 동원에서 제외했던 것은 그나마 일제가 차린 최소한의 염치였다. 그 대신 남정네들을 징용으로 끌어갔다. ‘작네’가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큰네’가 시집간지 얼마 안돼서다. 초저녁 어둠속에 ‘도라쿠’(트럭)에 실린 채 울며불며 “어머니! 어머니!!”하는 외침소릴 남기고 떠난 ‘작네’를 두고 동네 아낙들은 ‘데이신다이’(정신대·挺身隊)에 끌려갔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 하원이 지난달 30일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 분명한 시인 및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워싱턴포스트에 강제동원이 아니라는 거짓 광고를 내는 등 저지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벌인 로비에도 불구하고 표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랜토스 미하원 외교위원장은 지지 발언에서 “역사를 왜곡, 부인하고 희생자들을 탓하는 일본내 일부 인사들의 기도는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의안을 발의한 마이클 혼다 의원이 일본계 3세인 것은 시사하는 의미가 있다. 혼다 의원은 “하원 동아태소위에서 증언에 나섰던 이용수 할머니 등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미 하원의 결의안 채택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미국이 개입되지 않은 일에 문제를 들고 나온 건 이례적인 것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일본을 압박하는 영향력이 적잖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명예 회복과 정의 실현을 향한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것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측의 환영 논평이다. “어떤 나라도 과거를 무시할 수 없다. 종군 위안부들이 강압없이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는 일본측의 주장은 강간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강변이다”라고 한 랜토스 위원장의 말을 일본 정부는 부끄럽게 알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때, 그러고나서 ‘작네’가 남양(열대지방)의 어느 섬에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뒷소식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아홉살이 더 많다. “누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날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던 ‘작네’가 생각난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