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물

‘맹자(孟子)’에 나오는 얘기다. 중국 제(齊)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었다. 제나라는 지금 산둥(山東) 지역으로, 강태공이 무왕(武王)에게 땅을 분봉 받아 제후가 된 이후로 넓은 평야와 풍부한 수량으로 선진국 대열에 있는 나라였다. 제나라의 수도 임치는 수많은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지위가 바뀌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도시였다. 제나라 남자는 밖에 나갔다가 귀가하기만 하면 아내에게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들어왔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집에선 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 아내가 누구와 음식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그저 돈 많고 귀한 사람과 함께 식사했다고 말할 뿐 구체적으로 이름을 대진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그토록 존귀한 사람과 친하다고 하는 남편이 왜 평소에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데리고 집에 오지 않는가 하고 의아해하였다. 어느날 아내는 아침에 나가는 남편 뒤를 따라갔다. 집에서 나간 남편이 특별한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성문 밖 공동묘지에서 무덤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남편이 매일 어떻게 외식을 했는지 드디어 알게 됐다. 집에 돌아 온 아내는 통곡을 했다. 남편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처절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토록 높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자랑하던 남편이 비굴하게 사는 것에 대한 경멸이었을까. 맹자는 이 얘기를 제자에게 들려주며 말했다. “요즘 부귀와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그 자세한 내용을 알면 그 부인이 부끄러워 통곡하지 않는 자 드물 것이다!” 맹자는 성공과 출세를 위해 어떤 부끄러운 짓도 서슴지 않았던 당시 사회 풍토에 대한 비판으로 이 이야길 꺼냈다. 아울러 옳지 못하고 부끄러운 방법으로 부귀와 영달은 구하지 않겠다는 맹자의 인생관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부귀와 성공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직장에서 인정 받고 사는 것도 힘들지만 배우자나 자식에게 인정받고 산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가족을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접고 사는 이 시대 가장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비록 큰 성공과 부귀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족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제나라 남자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비굴한 게 아니었다. 그 아내의 눈물은 가장의 비애에 공감한 사랑의 눈물이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충신·간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당태종 이세민은 용인술이 독특했다. 어진 인재라고 판단하면 인물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곁에 뒀다. ‘위징’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징은 당태종과 왕위 다툼을 벌였던 친형 이건성의 책사였다. 권력의 향배에 동물적인 감각을 타고났던 위징은 주군에게 ‘하루 빨리 이세민을 죽이라’고 권했다. 그러나 역사는 우유부단했던 이건성의 편이 아니었다. 이세민은 태자 이건성을 죽인 후 아버지를 압박해 왕위에 올랐다. 위징은 천하의 역적이 되었다. 당태종은 위징을 불러 왜 그런 짓을 했는 지 물었다. 위징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태자가 신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과 같은 화는 없었을 것 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자의 면전에서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의 기개를 높이 평가, 그를 곧바로 군주에게 직언하는 ‘간의대부’에 임명했다. 위징은 모두 200여 차례나 거리낌없는 직언을 했다. 오죽했으면 당태종이 한때 “이 시골 촌놈을 죽여 버리겠다”며 크게 화를 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이 죽을 때까지 중요한 직책을 맡겨 국사를 처리하게 했다. 쓴소리를 잘하는 인재를 마음 속 깊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항우와 유방의 운명도 인재 활용 여부가 성패를 갈랐다. 유방은 공신 장량이나 말단 관리였던 소하는 물론 개백정 번쾌, 장례식장의 나팔수 주발, 남에게 빌붙어 먹고 살던 한신 등을 핵심 참모로 썼다. 유방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처럼 인재에도 귀천이 없다”며 이들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유방은 “내가 계책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장량에게 미치지 못했고 나라를 다스리고 군량을 전선에 보내는 일은 소하에게 미치지 못했다. 100만 대군을 움직여 싸움에서 이기는데는 한신을 못따라간다”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인재인 ‘범증’조차 의심해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결국 스스로 제 목을 찔러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가나 조직의 흥망성쇠는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기술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획예산처 국장이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나고선 “우리나라에 이런 공무원이 있는 줄 몰랐다”고 주변에 탄복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충신으로 흥하고 간신으로 망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月下老人

당나라 태종 이세민 치세에 위고라는 젊은 선비에게 혼담이 있었다. 상대는 지금의 하남성에 속하는 청하의 군주(郡主)딸이다. 그런데 혼담 때문에 새벽에 길을 가는데 웬 노인이 달빛아래서 책장을 뒤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노인의 대답이 자신은 저승의 관리로 이승사람의 혼인 장부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괴이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혼담이 궁금해 성사여부를 물었다. 장부를 한참 뒤적거리던 노인은 “자네 배필은 따로 있다”면서 지금 세살이니까 열일곱살되면 젊은이에게 시집 오기로 돼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는 화가 났지만 참고, 그럼 배필이 될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장터에서 채소를 파는 진씨 성을 가진 노파의 아이라고 일렀다. 날이 밝아 장터에 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아이를 안고 채소를 파는 노파가 있어 하인으로 하여금 아이를 죽이도록 했으나 칼이 빗나가 이마에 가벼운 상처만 입히고 말았다. 그 뒤 위고는 혼담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깨져 노총각이 된 지경에 비로소 기적처럼 성사된 혼사가 있게 됐다. 송성 현장(縣長)의 딸에게 장가를 드는데 신부의 나이는 방년 십칠세였다. 그런데 신부가 미간을 가리듯이 앞머리를 내리어 자세히 보니 약간의 흉터가 있어 들은 사연은 바로 자신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채소를 파는 노파는 유모였는데 유모가 죽고나서 현장의 수양딸이 됐던 것이다. 위고는 마침내 자초지종을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으며, 사위의 말을 들은 송성 현장은 위고가 노인을 만났던 곳을 ‘정혼점’(定婚店)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달빛 아래서 만난 노인을 ‘월하노인’(月下老人)이라고 했는데 국어대사전은 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위고에게 달밤에 만난 노인이 장래의 아내에 대하여 예언해 주었다는 데서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전설상의 노인’이라고 했다. 인간 살이의 만남 자체가 다 인연이다. 하물며 부부의 만남에 특별한 인연이 없을 수 없다. 인연중에서도 인연인 것이 부부의 만남인 것이다. 가을철 들면서 예식장마다 선남선녀의 혼례로 하객들이 붐비고 있다. 좋은 축복의 계절에 부부의 인연을 말하는 ‘월하노인’의 고사를 소개해봤다./임양은 주필

5일제 주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안식일은 일곱 째 날이다. 신이 6일간에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 째 날엔 쉬었다는 것이다. 일곱 째 날은 이래서 종교적 헌신의 날이 됐다. 일곱날에 요일이 붙은 것은 기원전 2세기 경이다. 당시의 그리스 천문학은 꽤나 발달했다. 비록 점성술에 의한 것이긴 했어도 7개의 천체를 생각했다. 토성·목성·화성·태양·금성·수성·달 등을 7개의 천체로 구분했다. 이것이 오늘의 월·화·수·목·금·토·일요일의 유래가 됐다. 요일이 동양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당나라다. 중앙아시아 등 서역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됐다. 실크로드는 중국 섬서성 오지에서 신강성 사막과 파밀고원, 아프가니스탄 등을 거쳐 지중해로 나가는 고대의 동서양을 이은 대상로(隊商路)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명주 등 비단이 유럽에 전파됐다 해서 ‘비단길’, 즉 실크로드로 불렸다. 당시 중국의 비단은 유럽 상류사회의 사치품으로 인기를 끌어 비단이 금값이었던 것이다. 일주일의 요일이 당나라에 전해지긴 했어도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요일과 가장 밀접했던 기독교가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록상으로도 요일 관련의 문헌은 나타난 게 없다. 국내에 요일이 전래된 것은 19세기경 조선조말 천주교가 청나라에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도 신도들은 주일(일요일)예배를 토굴에서 올렸다. 주일예배를 보다가 순교를 당하는 신도들이 많았다. 요일이 생활화한 것은 20세기초 개신교가 들어오고 학교가 세워지면서 본격화했다. 점점 요일 중심의 생활화가 짙어간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날이 며칠인 가를 묻기보단 무슨 요일인 가를 묻는 경향이 많다. 주 5일제가 되고나서 생겨난 현상이다. 그러니까 생활 단위도 1주일, 즉 주 단위로 되어간다. 이러다 보니 토·일요일엔 각자의 생활의 있다. 그러므로 남의 주말을 뺏는 것은 큰 결례다. 예컨대 예고없는 방문은 상대에 대한 실례가 되는 것이다. 예전엔 토요일을 ‘반공일’이라고 했다. ‘반공일’이 ‘온공일’이 되면서 세상 살이가 점점 더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임양은 주필

문희상 의원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노무현 등 전·현직 대통령의 영향력만으로 된 게 아니다. 1972년 사상과 이념을 초월, 민족적 대단결과 화합을 다짐한 7·4남북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발표됐다. 서울~평양간 직통전화가 개설되고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됐다.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돌연한 유고가 없었던들 같은 달 7월25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 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정돼있어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보다 6년 앞당겨 있었다. 북진통일도, 남조선해방도 다 거부되는 것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같은 전쟁을 피하려면 대화를 해야하고 그 중에도 정상간 대화가 가장 좋다. 대화를 하다보면 좀 잘 사는데서 못사는 곳에 퍼주게도 된다. 돈을 주고 평화를 사는 셈이 되지만, 전쟁을 하는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통일비용을 선불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퍼주긴 해도 퍼주는 틈새로 자유의 바람이 들어가고 있다. 꼴불견은 객꾼들의 잡소리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도 많은 사람들이 특별수행원으로 다녀왔다. 문희상 의원(대통합민주신당)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의장도 했다. 그가 “몇 달 후 큰 일이 터질 게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들에게 평양 다녀온 얘길하면서 그런 소릴 했다. 긴장한 기자들이 더 물었으나 (대통령과)“서로 이야기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농담이라는 것이다. “터질 게 있긴 뭐가 있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환담할 시간도 갖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또 뭐가 있는 것처럼 해보이는 모양이다. 정치인들 하는 짓이 원래 구렁이 담넘는 듯 하지만 너무 심하다. 화제는 다른 것도 아닌 남북 문제다. 남북 문젤 두고 농지꺼리나 하고 자기 과시용으로 내세우는 것은 양식을 의심케 한다. 그런데 문희상 의원 같은 특별수행원들이 적잖다. 남북 관계에 공치사 삼길 좋아하는 족속들은 좀 자중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전매 특허가 아니다. 박정희, 김영삼 시절부터 갈고 뿌린 밑거름이 깔려있다. / 임양은 주필

팔도미인

당대 최고의 인물화가였던 채용신(1850 ~ 1941)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팔도미인도’에는 서울, 평양, 경남 진주, 전남 장성, 강원 강릉, 충북 청주, 전북 고창 등 8개 (한 작품은 판독 불능) 지역 미인과 기생 등 8명의 전신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병풍엔 미인상이 실명으로 그려져 있는 데다 그동안 각 지역 미인의 얼굴 특징을 축적해 놓은 데이터베이스와도 잘 부합하는데 기방을 찾는 손님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 그림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으나 지금까지 인물의 특징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팔도 미인의 구체적인 얼굴형과 특징을 처음으로 규명한 조용진 한서대 교수의 논문이 재밌다. 전통 미술과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30년 동안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하고 복원해 온 미술학자 겸 얼굴학자인 조 교수는 병풍 속의 미인 8명 가운데 지역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미인으로 평양(평양 기생 계월향·桂月香), 장성(장성 관기 지선·芝仙), 진주(진주 관기 산홍·山紅), 강릉(강릉 미인 일선·一善), 서울(한성 관기 낭랑)을 꼽고 특히 진주 미인이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림 속의 진주 미인은 이마가 낮고 가로로 넓으며 눈썹이 높게 붙어 눈두덩이 넓고, 눈 사이도 넓은 편이다. 미인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진주 미인은 중안(눈썹에서 코끝 사이)이 길어 기품 있는 인상을 준다. 또 턱 부분이 작고 인중(코와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부분)이 짧아서 젊은 인상을 주는 등 현대적인 미인의 관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평양 미인의 경우 고구마형 두상, 앞으로 튀어나온 광대뼈, 뾰족한 턱 등 조선시대 평양 여성의 일반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강릉 미인은 긴 얼굴과 높은 이마 덕분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준다. 조 교수는 “조선시대엔 평양과 진주 여성을 미인으로 꼽았는데 평양 미인은 탤런트 최지우, 장성 미인은 송혜교와 닮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14회 부산 하계아시안게임 때 남쪽에 내려왔던 북한 ‘미녀응원단’처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고 환송한 평양 여성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성경 재개정

한국교회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 중 시급히 고쳐야 할 곳이 5천군데, 잘 번역된 성경을 오히려 틀리게 번역한 것이 70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1998년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예배용 성경으로 공식 결정한 뒤 지금 대다수 한국교회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준 성경’이다 하지만 예장 통합, 합동, 대신 총합 일부 노회의 ‘헌의안’에 따르면 같은 단어의 일관성 없는 번역으로 인한 통일성 논란, 누락과 첨가, 문법상 오류, 원문 오류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개역성경 창세기 14장 16절의 ‘인민(영어성경 people)을 ‘친척’으로 번역해 아브라함을 아주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골짜기에 …포도송이가 달린’ (민 13:23)은 단수를 나타내는 ‘골짜기에 … 포도 한 송이 달린’이어야 하며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민23:29)는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가 맞고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 서원물을 가져가고’(신12:11)는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 서원물을 가져가고’가 옳다고 한다. 지금의 개역개정판이 된 개역한글판(1956)은 1960년대부터 개정 논의가 시작돼 1983년부터 개정을 착수했다. 그후 10년 간 원고 작업을 거쳐 1993년, 17개 교단에서 파송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개정감수위원회가 4년 간 157회의 독회와 토론을 거쳐 개정 원고를 감수했다. 이후 1천600명 이상의 교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1998년 개역개정판을 출간했다. 예장 통합은 1999년 총회에서 개역개정판을 공식 사용하기로 했고, 예장 합동도 2005년 사용을 결의한 바 있다. 지난해엔 예장 고신과 예장 합동정통이 동참하면서 대다수 교단이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개역개정판이 한국교회의 예배용 성경으로 결정되기까지 들여온 노력을 뒤로하고 당장 폐기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대 변화로 고어투의 말은 현대어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교계전반에 형성됐고,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큰 테두리 안에서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작업, 특히 성경은 특성상 개정하고 난 뒤에도 미흡한 부분은 수정한다. 지속적인 번역 작업이 당연한 이유다./임병호 논설위원

저축은행 비리

이따금 불거지는 금융기관들의 비리나 부적절한 경영사례는 고객들에게 큰 실망감을 준다. 공익적 기관의 하나인 은행의 부조리는 고객들의 재산과 국고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저축은행들이 서민들에게 고리의 부담을 지우는 대부업체에 3천600억원대의 자금을 빌려줘 이들의 ‘돈놀이’를 도와 준 비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서민 금융기관인 저축은행들의 경영방침이 이 모양이니 본업인 서민 대출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달 30일 진수희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저축은행은 이미 서민 금융기관임을 포기한 셈이다.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저축은행 110곳 중 46곳이 120개 대부업체에 3천616억원을 대출해줬다. 이들 저축은행은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형식으로 연 7.5~18.0% 금리로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서민을 상대로 한 소액 신용대출 규모는 계속 줄여왔다. 2002년 말 2조8천억원 수준이었으나 2003년 2조4천억원, 2004년 2조원, 2005년엔 1조5천억원으로 점차 축소하였다가 지난해 1조1천억원까지 줄였다. 불과 4년여 만에 서민 대출 규모를 60%나 감소했다. 저축은행들이 서민들에 대한 대출에는 소극적이었던 반면, 서민들에게 고금리 부담을 지우는 대부업체의 돈벌이를 도와주는 대가로 일정 부분 수익을 확보해 온 셈이다. 저축은행들이 본연의 역할인 서민대출을 외면한 채 대부업체들의 전주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굽어진 서민들의 경제가 허리를 펼리 만무하다. 더구나 일부 저축은행들은 자산 대비 대부업체 대출 비중이 커, 만약 대부업체들이 부실에 빠지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는 문제까지 안고 있어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현재로선 대부업 대출이 저축은행업계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가 안돼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금감원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이 더 이상 확대되기 전에 저축은행들이 서민 소액 신용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저축은행들도 대부업체 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영업전략을 수정하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서민의 경제적 고통이 감소돼야 국가가 부강해지고 궁극적으로 사회가 밝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저축은행의 경영방침으로 삼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짜가 인생

‘인자불우(仁者不憂), 지자불혹(知者不惑), 용자불구(勇者不懼)’는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말이다. 어진 이는 사리사욕이 없으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걱정함이 없고, 아는 게 많은 이는 도리에 밝아 시비의 판단이 명료하므로 당혹지 않으며, 용기가 있는 이는 의로써 일을 결행하므로 아무것도 겁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한 말이다. 공자는 인·지·용 세 가지를 겸비하는 것을 군자로 쳤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느 한 가지도 이르지 못했음을 자책했다. 그런데 자공은 공자야말로 인·지·용을 겸비한 군자라고 평가했다. 뭣이 어질고, 얼마나 알아야 아는 게 많으며, 어떤 게 용기가 있는 것인 지는 예나 지금이나 확실하지 않다.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그려낼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자 역시 그 기준을 제시하진 못했다. 다만 기본적 소양으로 이런 말은 했다. ‘기소불욕(己所不慾)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이다’라고 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딴은 그렇다. 어진 사람 치고, 아는 게 많은 사람 치고, 용기있는 사람치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끼치는 것은 볼 수 없다. 그것은 불인(不仁), 부지(不知), 불용(不勇)이기 때문이다. 세상 살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 군자는 고사하고 범부로도 불인·부지·불용하지 않으며 살기가 힘든다. 자신이 하기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것도 안되지만, 자신은 못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것도 좋지 않다. 생각컨대 이 사회에서 과연 인자(仁者), 지자(知者), 용자(勇者)가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어질지 못하면서 어진 척, 아는 게 없으면서 아는 척, 용기가 미치지 못하면서 있는 척 하는 것은 가짜다. 먹거리에 가짜 원산지 표시가 판치고, 입성 등엔 가짜 명품이 숱하다. 마찬가지로 척하는 가짜 명품인생도 가짜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는 신신애의 ‘짜가인생’ 노랫말이다. 짜가인생, 즉 가짜인생이 ‘장삼이사’일 것 같으면 별로 해가 될 게 없다. 그러나 권력층이면 다르다. /임양은 주필

오키나와

일본은 북으로는 아한대지방의 홋카이도에서 남으로는 아열대지방의 오키나와에 이르는 열도로 구성된 나라다. 오키나와는 2만249.9㎢의 작은 섬이다. 16세기엔 유구(琉球)왕국으로 홍길동이 이곳으로 가 왕국의 꿈을 펼쳤다는 전설이 있다. 정사(正史)로는 1609년 가고시마 지방의 영주 시즈마가 오키나와를 정복, 1879년 메이지유신으로 오키나와 현(縣)이 된 것으로 전한다. 오키나와는 2차대전 막바지 고비의 비극의 땅이다. 1945년 여름,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앞둔 초토화작전은 오키나와에서 시작됐다.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작전, 일본군의 방어작전은 50여일을 끌면서 양쪽에 십 수만의 사상자를 냈다. 마침내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성공, 미군이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의 사진은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그 해 8월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잇따른 원폭으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없이 전쟁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참극은 비참했다. 비전투원인 주민들이 옥쇄란 이름으로 학살됐다. 옥쇄는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다같이 목숨을 끊는 집단자살이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수가 무위로 돌아갈 즈음에 무고한 주민들에게 수류탄 등을 나눠주면서 옥쇄를 강요, 수 천명의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죽어간 것이다. 오키나와는 제2차대전이 종전되고도 바로 일본으로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전쟁의 상흔이 깊었던 지역이다. 1945년 8월 미 군정, 1952년 반 군정·반 민정에 이어 일본에 복귀한 것이 1972년이다. 지난달 29일 오키나와에서 무려 11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주민궐기대회가 있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의 주민 옥쇄 강요를 삭제하는 교과서 왜곡에 항의해 들고 나선 것이다.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숨김없이 전하는 것이 더는 그같은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극성이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남아 참략사도 왜곡하는 그들이 이제는 자국의 전쟁사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유혈도시 ‘양곤’

지난 28일 후지TV에 방영된 APF 기자 나가이 겐지 씨(50)의 동영상이 일본 열도를 울렸다. 미얀마 시위현장에서 진압군의 총탄에 맞은 그의 오른쪽 가슴은 선혈이 낭자했다. 길에 쓰러진 채 한 손으로 치켜든 카메라 랜즈는 여전히 시위 군중을 향했다. 그러나 카메라를 쥔 오른 손이 이내 맥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숨진 것이다. 주검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잃지않은 직업정신은 가히 초인적이다. 총상의 가슴을 공포감 속에 부여앉고 구원을 청하는 것이 통상이다. 이와 거리가 먼 그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위대하다. 미얀마의 과거는 순탄치 않다. 영국에게 왕국이 멸망당해 인도와 합병된 1886년 이후 1937년 인도로부터 분리되어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됐다. 1948년 독립했으나 약 20년 째 군정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받고 있다. 나가이 씨가 숨진 양곤의 시위도시는 원래 미얀마어로 얀둔(Yandoon)이다. 1755년 알랑파야 왕국이 이 지방을 정복하고는 얀곤(Yangon)이라고 명명한데서 유래한다. ‘적의가 없다’ ‘전쟁은 끝났다’는 의미의 얀곤이 얀둔이 되어 양곤이 된 것이다. 국기의 좌상 모서리 청색 바탕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상징한다. 흰색 톱니바퀴는 노동자 농민, 14개의 별은 7개 주와 7개 지방을 뜻한다. 적색은 단결 등의 표상이다. 그 옛날 ‘전쟁은 끝났다’고 한 평화의 도시 양곤에서 연일 유혈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젊은 승려들이 중심이 된 젊은층이 군부에 저항, 새찬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는 전통적인 불교국가다. ‘원로 스님들은 군부에 매수당해 믿을 수 없다’면서 젊은 스님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미얀마판 4·19 의거’다. 미얀마 군부는 이미 많은 시위 군중을 살상한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 군부 발표는 축소한 숫자라는 것이다. 장막에 가려진 양곤의 시위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관심이 촉구된다. 나가이 씨는 그 가운데서 희생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야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분쟁지역을 마다않는 기자 정신이 존경스럽다. 부럽다. /임양은 주필

치매와 담배

치매와 건망증은 원인부터 다르다. 건망증은 기억이 일시적으로 잘 되지 않는 현상이다. 그러나 치매는 판단력과 통솔력은 물론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전반적인 지적능력의 이상(異常)에서 온다. 작용하는 과정도 다르다. 건망증은 뇌의 신경회로가 좋지 않을 때 나타나지만 치매는 뇌 신경 조직 손상으로 일어난다. 치매는 나이가 들어 신경세포 파괴가 심해지면서 기억력과 판단력의 장애를 부르는 증상이다. 진행 과정이 다른 만큼 원인에도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의 건망증 원인 중 하나는 과다한 정보량이다. 또 특정한 주제나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써도 건망증이 올 수 있다. 이 것은 뇌 손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많고 기억해야 할 약속도 많다보니 잊어버리고 혼동이 생긴다. 그러나 치매는 뇌세포가 외부충격으로 손상되거나 퇴행성 변화가 원인이다. 건망증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지만 치매는 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기억회로의 이상은 ‘수리’가 가능하지만 회로를 구성하는 뇌세포의 손상은 복구가 어려운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흡연이 치매를 예방한다는 설(說)이 있었다. 미국 역학잡지에서 보스턴과 메사추세츠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년에 40갑 이상을 피우는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서 노인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보고 결과가 나왔다고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의과대학이 발표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역학적인 것일 뿐 의학적으로 규명된 사실은 아니다. 치매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병이기 때문에 담배가 치매에 좋다, 나쁘다라고 잘라 말하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담배는 심장에 치명적이란 사실이다. 심장이 망가지면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해 뇌혈관에 악영향을 주어 뇌세포는 죽고 만다. 그렇게 되면 머리에 치매 증상이 오게 된다. 특히 담배는 심장이 약하거나 혈관계 질환이 있는 사람에겐 무서운 독이다. 그런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혈관이 좁아져 뇌경색증이 올 위험이 높아진다. 이것은 치매를 자초하는 일이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면서 치매에 관한 여러 가지 근거 있는 혹은 근거 없는 학설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담배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많다는 기호품이다. 하물며 치매에 좋을 리가 없다. / 임병호 논설위원

지지대/면후심흑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후(厚)라고 하고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흑(黑)이라고 한다. ‘후’는 ‘후안(厚顔)’, 즉 ‘얼굴이 두껍다’ 또는 ‘의뭉스럽다’는 의미이고, ‘흑’은 ‘심흑(心黑)’, 즉 ‘마음이 검다’는 뜻이다. ‘후흑론(厚黑論)’의 창시자인 중국의 기인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그 얼굴이 성벽만큼 두꺼워야 하고, 그 마음은 숯만큼이나 검어야 한다”며 “역사 속의 영웅호걸들이 성공한 비결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이라고 했다. 얼굴이 두껍기로는 ‘삼국지’의 유비를 빼놓을 수 없다. 전쟁에 지고 돌아올 때마다 목놓아 울며 동정을 얻어냈다. 유비의 필생의 적인 조조는 마음이 검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세상 사람들이 날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힘은 셌지만 후흑을 못한 항우는 졌고, 약했지만 후흑에 능한 유방은 이겼다. ‘후흑’이란 말이 언뜻 부정적 이미지를 주지만, 그 제시방향은 세상을 사는 겸손한 지혜란 게 적합하겠다. 리쭝우는 ‘후흑’의 요체를 ‘두려운 마음’으로 봤다. 남의 밑에 있을 때 고개를 숙이면 비난과 공격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 화를 참지 못해 윗사람과 대립하지 않으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을 면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주머니에 송곳을 넣어두면 자연히 튀어나오듯 두각을 나타내면 좋다. 그러나 무리하게 성공하려고 하면 번뇌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춘추시대 진나라에서 대를 이어 높은 벼슬을 지낸 범무자는 윗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재주를 드러낸 아들 범문자를 몽둥이로 다스려 경계했다. ‘후흑론’은 ‘모든 불행은 잘못 놀린 혀에서 비롯된다’고 마무리 한다. 헌제가 조조를 제거하려고 장인인 동승에게 밀지를 전했으나 말이 말을 낳으며 번지다가 끝내 누설돼 유비를 제외하고 관련자 전원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귀비까지 목숨을 잃었다. 한비자(韓非子)는 “일은 은밀해야 성공하고, 말은 누설되면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은밀하게 행동해야 하고 남의 충성맹세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급소를 적에게 내보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쓰는 권모술수가 ‘후흑론’에서 비롯됐다./임병호 논설위원

치매와 술

노년에 삶의 질을 가장 떨어뜨리는 질병 중 하나가 ‘치매’다. 전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들의 10%, 80세 이상의 노인들 5명 중 1명이 치매로 고생하고 있을 만큼 흔한 병이다. 현재 세계인구 중 1천500만명 이상이 치매환자라고 한다. 치매는 아직까지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의 경우엔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특별한 치료법도 아직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치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예방법이 있다. 화투 고스톱·바둑이 치매를 예방한다는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긴 아니다. 종합적인 지적능력을 요구하는 놀이는 치매예방에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치매 예방에는 바둑이나 고스톱보다 독서가 훨씬 낫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림 그리기도 효과가 크다. 노년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빨래, 청소와 같은 단순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치매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하루 1시간 이상 독서를 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치매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치매 예방을 위해선 고스톱이나 바둑을 두는 것 보다는 독서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술이 치매에 직접은 아니더라도 2차적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다. 술이 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적당한 음주라면 오히려 치매예방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 의과대학 크 브레텔 박사가 영국의 한 의학전문지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1~3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절반 가까이 낮다고 밝혔다. 하루 1잔에서 3잔의 술을 술을 마신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위험이 42% 낮았고, 1주일에 한잔 이상 마신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이 25%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하루 6잔 이상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치매 위험이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적당한 술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하루 6잔 이상이나 기억이 안 날 정도의 지나친 음주는 뇌 손상을 불러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술잔의 크기와 술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애주가들에게 술 먹을 수 있는 핑게꺼리가 생겼다. /임병호 논설위원

송편

‘추석(秋夕)’은 글자 그대로 달 밝은 가을밤이다. 연중 음력 8월 보름날의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가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부른다. 농경민족인 우리 선조들은 추석 때 쯤이면 봄부터 여름동안 정성들여 가꾼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계절적으로도 살기에 가장 좋아 예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였다. 추석 명절의 대표적인 음식은 햅쌀과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이다. 송편은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조상의 차례상에 바치는 떡이다. 송편은 반달 모양이지만 송편 안에 소를 넣고 접기 전에는 온달 모양이다. 달의 생성→ 숙성→ 소멸 단계처럼 곡식도 생성되고 숙성되므로 송편을 달의 열매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모양 내어 빚은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이용한다. 솔잎을 이용하는 건 떡에 솔잎의 향이 자욱하게 배어들도록 해 은은한 솔향기와 함께 가을 산의 정기를 한껏 받아 소나무처럼 건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솔잎엔 공기 중의 미생물이나 세균을 죽이는 피톤사이드란 살균물질이 들어 있어 더위가 가시지 않은 음력 8월에 떡을 오랫 동안 부패하지 않고 신선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송편의 종류와 모양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대개 북쪽 지방에서는 크게 만들고 남쪽 지방에선 작고 예쁘게 빚었다. 서울지역의 송편은 모시조개 모양으로 작고 앙증맞아 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로 빚는다. 강원도 지역에선 도토리송편, 감자송편을 많이 빚는다. 전라남도식 송편은 초승달처럼 갸름하다. 고흥 지방에선 푸른 모시잎으로 색을 낸 송편을 빚는데, 이 모시잎 송편은 빛깔이 푸르고 맛이 쌉쌀하며 쉽게 쉬지 않는다. 오미자, 치자, 송기, 쑥 등을 이용해 5색으로 빚은 꽃송편도 있다. 제주도 송편은 완두콩으로 소를 넣고 비행접시 모양으로 빚는다. 평안도 해안에선 조개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개송편을 만들어 먹는다. 송편소로는 밤·풋콩·강낭콩·검은콩·깨·거피팥·붉은팥 등을 쓰는데 쑥을 섞어 만든 쑥송편, 칡가루를 넣어 만든 칡송편, 가을에 나는 호박을 썰어 말렸다가 가루로 만든 뒤 이를 섞어 빚은 호박송편도 있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며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 앉아 송편을 빚는 미풍양속은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다. / 임병호 논설위원

비정상적 공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31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기념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언론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관련한 의혹을 철저히 검증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저희는 일개 공기업 사장 한 사람 (임명)하는데도 옛날에 음주운전했다고 자르고, 옛날에 부동산 상가 하나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 된다”고 대못질을 했다. 물론 다섯차례나 위장전입을 한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규용 환경부 차관의 위장전입 사실을 알고도 그를 장관에 내정했다. 괴이한 건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부동산 취득 목적이 아닌 자녀 취학 목적의 위장 전입은 인사검증 시 결격 사유로 보고 있지 않다”며 “(8월의) 노 대통령의 발언의 요지는 언론이 특정 대선 후보와 관련해서는 대개 의혹을 덮거나 적극적으로 검증하지 않는 데 비해 장관 등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투기 목적이든 자녀 진학 목적이든 간에 위장전입은 특히 공직자로선 해서 안 될 위법행위다. 자녀 교육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위장전입은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다.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7월과 8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원내 1당이던 한나라당이 두 사람의 위장전입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이규용 장관 내정자의 위장전입엔 꽤 관대해졌다. 나경원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장관 부적격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청와대 공격의 호재로 이용했을 한나라당이 우호적으로 바뀐 건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건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회 청문회 등의 과정에서 이 내정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부각되면 이명박 후보의 위장 전입 문제도 함께 쟁점화될 것을 우려해서 그러는 것이지만 이는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제1야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대선에서 표를 잃는다. 따라서 “분명한 결격 사유임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해임건의안 등) 상응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반대는 지극히 당연하다. 청와대가 내정을 철회하거나 아니면 이 내정자가 자진사퇴하는 게 순리다./임병호 논설위원

동티

옛 중국의 명의 편작이 채(蔡)나라 환공에게 말했다. “임금님께선 병이 살갗에 들어 있습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장차 깊어질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자 환공은 “과인에겐 병이 없다”고 했다. 편작이 물러가자 “의원이랍시고 병도 안 난 것을 공을 세우려한다”고 비웃었다. 얼마후 환공을 본 편작은 다시 말했다. “임금님의 병은 피부와 살속에 와 있습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장차 더 깊어집니다”라고 하니 환공은 이번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뒤 편작이 또 환공을 보게된 자리에서 환공은 편작을 나가도록 물리쳤다. 이에 편작은 탄식했다. “무릇 병이 살갗에 있을 땐 더운 물 찜질로 고칠 수 있고, 병이 살속에 있을 때에는 침질로 고칠 수 있으며, 장에 스몄을 땐 달인 약제로 고칠 수 있으나 병이 골수에 있게되면 명운을 맡는 신의 소관이어서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거늘 지금 임금님의 병은 골수에 있으므로 참으로 안타깝도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또 얼마후 환공은 갑자기 신열이 돌아 급히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뒤였다. 환공은 뒤늦게 편작의 말을 깨닫고 백방으로 찾았으나 끝내 찾지못한 째 죽고 말았다. 이 고사는 ‘한비자’(韓非子) 유노(喩老)편에 나온다. 한비자는 이에 ‘천길의 둑도 개미구멍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백 척의 큰 집도 굴뚝 틈의 불똥으로 말미암아 타버린다’면서 환공의 우매함을 탓했다. 편작은 중국의 고대사에서 화타와 쌍벽을 이루는 신의다. 화타는 외과의로 명성을 떨쳤고, 편작은 내과의로 명성을 떨친 두 거봉이다. 먼 훗날 ‘동의보감’을 펴낸 조선조의 허준은 편작과 화타를 통틀어 계승한 신의였다. 그런데 세상 만사의 동티 역시 인간의 몸에 나는 병과 같아 살갗에 닿은 초기에 다스리지 않으면 골수까지 뻗치는 불치의 지경에 다다른다. 잘못된 정권으로 인하여 살갗을 지나 살속에 닿아 동티가 날 일들이 우리 주변에 지금 너무도 많아 걱정이다. /임양은 주필

연임과 중임

웃옷을 벗고 낚시와 사냥을 즐긴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딱 벌어진 상체는 사진으로 보아도 탄탄해 보였다. 소련정보국 출신의 그는 유도 등 스포츠로 단련된 몸을 가졌다. 크렘린궁이 얼마전에 휴양지에서 휴가중인 푸틴의 그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푸틴은 내년 5월이면 재선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다. 이런데도 집권말기의 권력 누수현상이 없다.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지지도가 무려 84%에 이른다. 경제를 살린 탓이다. 푸틴의 3선 불출마 선언 이후 오히려 불안해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며칠전엔 내각을 총사퇴시켰다. “게으르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이바노프 제1부총리를 거세키 위한 것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런데 신임 주브코프 총리 지명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 측근으로 고분 고분한 주브코프를 내세워 당선시킨 뒤에 섭정 같은 퇴임 후의 영향력 행사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이 아니라 2012년 다시 대통령선거에 나서 권좌에 복귀할 요량이다. 푸틴은 이를 “그냥 은퇴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로 시사했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헌법을 지키면서 대통령을 세 번 하려는 것이 푸틴의 생각이다. 세 번째하면 네 번도 가능할지 모른다. 연임(連任)이란 말이 참 묘하다. 국어대사전은 연임을 두고 ‘임기뒤에 그 자리에 계속 임용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재선 연임으로 3선을 쉬고난 다음에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은 3선 연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푸틴은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해석은 좁은 의미의 해석이고 넓은 의미의 해석은 한 번 쉬어도 역시 불가하다고 봐야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중임이란 말이 있다. 국어대사전은 ‘먼저 근무하던 지위에 거듭 임용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연임과 중임의 차이점은 먼저 자리에 임용되는 게 계속이냐 거듭이냐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임 금지는 연임 금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 헌법은 다행히 ‘중임’이란 말을 썼다. 70조(대통령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했다./임양은 주필

아베 내각의 붕괴

일본 아베 내각의 붕괴를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된다. 하나는 아베 총리의 용퇴다.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에도 잇따른 각료 비리 등에 겹친 국정 파탄으로 국민의 지지율이 20%로 뚝 떨어졌다. 이에 아베는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퇴를 표명했다. 말로만 ‘총리직 못해먹겠다’고 하지않고 집권 자민당에 총재 선출을 요청한 것이다. 일본 같은 내각책임제를 하는 나라는 의석이 많은 집권당 총재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내각총리가 된다. 따라서 당총재 임기를 마치고도 다시 뽑히면 총리를 10년 이상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복귀 거절이다.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오자와 민주당 대표를 견제키 위해서는 대중적 인기와 국정 장악력이 높은 고이즈미 같은 거물이 필요하다고 보고 총재직 재수락을 요구했으나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말로 권좌 복귀를 사절했다. 대통령을 지내고도 미련이 남아 훈수정치를 일삼는 국내 어느 전직 대통령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일본 자민당은 그래서 한동안 아소 자민당 간사장을 후임으로 물망에 올려놨다. 아소는 4년전이던가, “일제치하의 조선인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망언을 한 사람이다. 한데, 자민당내의 아소 역풍이 분 것 같다. 아소 또한 아베의 측근으로 아베 내각 붕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후쿠다 전 관방장관이다. 후쿠다는 아소보다 비교적 온건한 사람이다. 이래 저래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자민당은 총재 선거를 오는 23일로 늦추었다. 제2차대전 전후세대인 아베는 일본의 최연소 총리로 고이즈미에 이어 지난해 9월26일 취임했다. 후임 물망에 올랐던 아소와는 먼 인척관계다. 아베의 할아버지인 기시 전 총리의 사촌이 아소의 할아버지인 요시다 전 총리의 딸과 결혼한 사이다. 정치 명문가 출신의 아베는 ‘도련님 총리’로 불렸다. 정치는 역시 경륜이 필요한 것인지, ‘도련님 총리’는 총리 실무의 격랑을 넘기지 못했다. 패기삼아 화려하게 출범했던 아베 내각은 가까스로 겨우 1년을 채우는 불명예 퇴진을 앞두고 있다. 고이즈미 집권 5년동안 정치적 안정과 함께 경제적 불황터널을 탈출한 일본 자민당이 아베 들어 민심이반으로 허덕이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는 타산지석이다. / 임양은 주필

대입 이혼

1990년대 일본에선 남편의 정년퇴직으로 퇴직금이 나온 뒤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 이혼’이 사회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엔 이혼을 결심하는 시기가 남편의 정년퇴직 후가 아닌 자녀의 대학 입학 시기로 더 앞당겨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2만 5천32쌍으로 2005년에 비해 2.7% 감소했다. 1980년대 말부터 급증하던 이혼은 2004년에 전년보다 16.6% 줄어든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 3월 성급한 이혼을 막기 위해 ‘이혼 숙려제’를 도입한 이후 이혼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65세 이상 노년 부부의 ‘황혼 이혼’이 늘더니 지난해엔 45~54세 중년 부부의 이혼이 더 크게 증가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이혼이 줄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45~49세 여성 중 이혼한 사람은 8천111명으로 2005년보다 10.1%가 늘었다. 50~54세 여성은 3천711명으로 2005년보다 16.9%가 더 이혼했다. 20대 중·후반에 결혼해 30대 초까지 자녀를 낳는 여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 여성의 이혼 시기는 자녀의 대학 입학 시점과 맞물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접수한 전체 이혼 상담 건수(8천460건) 가운데 40, 50대 중년 부부의 상담 건수가 4천454건으로 절반이 넘는 52.7%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혼 사유다. A씨의 경우 3년 전 부터 한 달에 한번씩 지방의 치매노인단체를 찾아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을 남편이 못마땅해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남편은 내가 집에만 있기를 원했고, 가정에서 왕처럼 군림하려 했다. 21, 20세 두 아들도 대학에 넣었으니 나도 새 삶을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이처럼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인 결혼 20년차쯤이 되면 상당수 중년 여성이 ‘제2의 인생’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고 한다. 이럴 때 자녀의 대학 입학은 이혼 결심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격 등의 차이로 이혼한다고 하니 자녀의 대학 입학이 경사가 되는 게 아니라 이혼사유가 되는 셈이다. 참 별난 세상이 됐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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