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한국땅’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서북쪽으로 1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2만894㏊의 초원은 법적으로 대한민국 땅이다. 서울 여의도의 70배에 이르는 큰 땅이다. 이 땅은 1978년 한국 정부가 211만5천 달러(약 20억원)를 주고 사들였다. 당시 돈으로도 10억원이 넘어 80㎏들이 쌀 4만 가마를 살 수 있는 거액이다. 그런데 이 땅이 30년 동안 방치돼 지금은 잡목만 드문 드문 서 있는 황량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 땅을 사들인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 해외개발공사(현 한국국제협력단·외교통상부 산하)였다. 당시 간호사· 광부를 모집해 유럽에 보내는 등 해외 이민을 관장하던 기구였다. “남미에 농업이민을 보내 새마을 운동 근거지를 일구자”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아르헨티나의 땅을 구입한 후 300명의 농업 이민자를 파견, 코리아타운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1차 이민자로 수십명을 파견해 수수·면화·콩을 시험 재배해 봤지만 작황이 형편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름철엔 40도를 넘는 폭염이고 겨울엔 일교차가 커 서리가 잦다. 강수량은 연평균 500~600㎜에 불과하다. 이 땅을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의 이름이 스페인어로 ‘소금기가 있는’ 뜻의 ‘살라도(salado)’다. 땅에 염분이 많다. 결국 1차 이주자 수십명은 농장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의 도시로 흩어졌고, 2차 이주자 모집은 불발로 끝났다. 그 후로 땅은 버려졌다. 당초 개발비로 2천600만 달러를 책정했으나 태부족이란 판정이 내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땅에서 돈을 벌기는 커녕 오히려 관리비의 명목으로 매년 1만2천 달러를 현지에 보낸다. 이 땅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몇차례 있었지만 무위에 그쳤다. 주(駐)아르헨티나 대사관이 좀 더 자세한 현지 조사를 실시했지만 그 때마다 ‘영농 부적절’만 나왔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엔 구조조정 차원에서 땅을 매각하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2만894㏊이면 전북 새만금 간척지 땅의 절반 정도인 거대한 땅이다. 정부가 최근 이 땅을 목축·조림지 등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기대된다. 개척단을 모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강점기 시절의 개척 정신을 발휘한다면 아르헨티나의 한국 땅은 옥토로 개간될 수 있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동물복지

동물 권익 보호의 효시가 된 ‘동물학대방지법’은 영국이 1876년 제정했다. 1990년대 이후 광우병처럼 사람과 동물 모두 피해를 주는 전염병에 시달린 영국은 1996년 축산물 생산 과정에서 동물복지를 한층 강화한 동물복지법을 시행했다. 좁은 공간에서 축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형 농장’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주요인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2000년 일본과 함께 동물복지 기준을 포함한 국제교역협약을 제안했다. 동물복지 기준을 준수하는 농가에 별도의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게 이 협약의 골자다. EU는 또 2009년부터 모든 가축 수송 차량에 위성추적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했다. 수송 과정에서 가축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스위스의 경우 가축을 도살할 때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전기봉의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미국도 도축장 안에서 가축을 옮길 때 가축이 걷는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운반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했다. 최근 개정안이 통과돼 내년 1월부터 개정동물법이 시행돼 ‘반려동물(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관계 기관에 등록해야 한다. 복지(福祉)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이 개념을 동물에 적용한 것이 ‘동물복지’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동물의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인간이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게 동물복지다. 동물복지론자들은 동물복지의 철학적 기초를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1748~1832)의 공리주의에서 찾는다. 벤담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히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동물도 인간과 다르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개 다섯 가지 자유를 통해 동물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해·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이탈리아 로마시가 2005년 동물권리법을 제정해 관상용 물고기에게 ‘둥근 어항에 살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둥근 어항에서 사는 물고기는 계속 확대된 상(像)만 보게 돼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물복지는 인간복지와 다른 게 없다. 머잖아 동물천국이 될 것 같다./임병호 논설위원

慶州 남산

신라의 천년 고도(古都) 경주 시내에서 계림을 지나 불국사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드넓은 논바닥이 보인다. 옛 서라벌 시가지는 지금의 경주시내가 아니고 바로 이 논바닥 터다. 서라벌 민가마다 숯으로만 불을 지펴 시가지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는 옛 기와집 기왓장 조각이 이따금씩 논에서 출토되기도 한다. 논바닥 가운데 저만큼 우뚝 솟은 산이 남산이다. 김유신이 김춘추와 밀애를 나눠 아이를 가진 누이동생을 집마당에 쌓아올린 장작에 올려놓고 불태우는 연기를 진덕여왕이 마침 보았던 곳이 남산이다. 주위에 물어 연유를 알게된 진덕여왕은 김춘추에게 두 사람이 혼인하도록 급히 명하여 화를 면해 전화위복이 됐다. 고인이 된 가수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 노랫말 중에 나오는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 신라의 노래를’ 하는 금오산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의 원래 이름이 금오산이다. 서울 남산의 원래 이름이 목멱산인 것과 같다. 지평선에 솟은 남산은 수원의 팔달산처럼 산맥이 이어지지 않는 야산이다. 야산이긴 해도 계곡과 암벽이 무수하다. 남산은 한 마디로 신라의 거대한 야외사찰이다. 종횡으로 치달은 계곡마다 절터·석불·석탑 등이 무수하고 암벽엔 부각된 마애불상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경주남산불적’(慶州南山佛蹟)이라고 부르는 남산은 고도의 성역이었던 것이다. 남산 열암곡(列岩谷)에서 통일신라 때의 여래입상(如來立像)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높이가 6.2m인 이 불상은 사진으로 보아도 당당한 위풍속에 머금은 잔잔한 미소가 1천300년 전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만큼 생생하다. 서라벌 사람들에게 불교의 도장(道場)이었던 남산은 눈에 띄는 불적 말고도 감춰진 불적이 이따금씩 출토되곤 한다. 지지대子가 조선일보 대구주재기자로 있을 땐 당시 국내 최대의 불두(佛頭)가 빗물에 씻겨 자연 출토된 적이 있었다. 수년 전 타계한 이규태씨가 문화부장으로 있을 적에 그와 함께 2군사령부민사부의 협조를 얻어 불두를 인양했다. 공병과 기중기 등 병력과 중장비가 동원된 발굴 작업은 불신을 찾을 길 없어 화강암으로 조각된 불두만 인양, 경주박물관에 안치했다. 지금도 경주박물관에 가면 마당에 모신 이 부처님 머리를 볼 수가 있다./임양은 주필

우측보행?

조선조까지의 도로는 그 기준이 소달구지나 가마였다. 상민들은 소달구지, 양반은 가마가 가장 큰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도로 중에 간선도로는 소달구지나 가마꾼이 서로 비켜갈만 한 노폭이었고 그 밖의 도로는 보다 좁았다. 화성 병점은 당시의 간선도로로 떡전거리였다. 보행 위주의 먼 길손들이 시장끼를 면할 수 있는 간식으로 떡을 사먹던 떡전거리로 유명했다. ‘서울이 무섭다니까 과천서부터 긴다’는 속담은 수도인 한양 물정이 두려워서만이 생긴 게 아니다. 과천은 한강 이남에서 서울을 가려면 거쳐야하는 요충지였다. 그런데 무서웠던 게 남태령 고개의 호랑이다. 지금은 고개를 깎아 낮아졌지만 옛날에는 험준했고 산림이 무성하여 남태령 호랑이는 북악산 호랑이와 더불어 소문난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과천 주막은 나그네의 집결지였다. 고개를 넘을 사람이 웬만큼 모아지면 무리를 지어 남태령을 넘곤 했다. 자동차 길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다. 그때 만든 길을 새로 만들었다 해서 ‘신작로’(新作路)라고 했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갈모래로 덧씌우곤 한 ‘신작로’는 일제가 그들의 수탈정책 편의를 위해 강제노역으로 만들었다. 좌측통행이란 것도 자동차길이 생기면서 자동차는 우측, 보행은 좌측으로 하는 통행질서로 1921년 조선총독부 훈령으로 시행됐다. 조선시대의 보행질서는 ‘군자는 대로행’이라며 양반은 길 복판을 팔자걸음으로 걷고 상민들은 양켠 길가로 다니는 게 관습이었다. 건설교통부가 도로교통법상의 좌측보행을 우측으로 바꾸는 문젤 검토한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나라의 대부분이 우측보행을 하고 일반인의 90%가 오른손 잡이어서 위급한 순간 우측으로 움직이는 순발력이 더 강하다는 것 등이 우측보행을 검토하는 이유인 모양이다. 문제점은 그동안 좌측보행에 길들여진 관습을 도로교통법을 고친다고 당장 적응이 되느냐는 것이다. 보도가 아닌 역구나 백화점 같은 다중의 공간 보행에서도 좌측통행이 일상화 됐을만큼 익숙된 것은 사실이다. 건설교통부는 이에 관한 연구용역을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했다. 용역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독자 분들의 생각이다./임양은 주필

교잡배아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정자, 인간의 난자에 동물의 정자를 주입하는 것을 교잡배아라고 한다. 이를테면 체외 수간(獸姦)인 것이다. 외신은 영국 정부가 이같은 교잡배아를 극히 한정된 연구진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승인했다고 한다. 교잡배아로 뇌졸중 파킨슨병 등 치료법 개발에 필요한 줄기세포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물의 난자나 정자는 유전물질을 99.5% 제거한다지만 남은 DNA 0.5%는 결국 동물의 특성을 지닌다. 동물의 특성이 0.5% 남긴해도 수정은 아니다. 인간과 동물은 염색체가 다르므로 수정이 안 된다. 교잡배아로 얻어지는 줄기세포는 식물성이다. 이렇긴 해도 신화나 전설속의 반인반수(半人半獸) 괴물이 생각된다. 인어는 전설적 괴미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의 케이론은 반인반마(半人半馬)다. 품종계통이 다른 암수의 교배가 교잡이다. 교잡육종법이 있다. 교잡에 의한 변이를 창출, 서로 좋은 장점으로만 새 육종을 이루는 것으로 동식물의 품종개량 방법으로 쓰인다. 동식물은 그런다 해도 인간과 동물의 교잡배아는 참 황당하다. 생명윤리의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특성을 훼손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것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하는 반대론의 주장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반면에 과학자를 중심으로한 옹호론은 “인간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연구를 막는 것이야말로 비윤리적이다”라고 반박한다는 것이다. 그럼, 옹호론자에게 묻고싶은 게 있다. 도대체 동물의 난자나 정자를 주입할 인간의 정자나 난자를 어떻게 구하느냐는 것이다. 설마한들 동물의 난자와 교잡할 인간의 정자를, 또 동물의 정자와 교잡할 인간의 난자를 알고 제공할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불사약을 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천금도 아끼지 않았던 진시황은 나이 불과 50에 죽었다. 사람이 살면서 건강은 챙겨야겠지만 많아야 백년도 못산다. 인간과 동물의 교잡배아로 만든 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법을 개발한다 해도 어차피 천수를 거역할 수는 없다. 신(神)의 섭리를 어기는 왜곡된 과학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되레 재앙을 안겨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토요일 오후, 낡아서 색이 바랜 조리대에 나무결 무늬의 코팅종이를 갈아 붙였다. 지난해에 붙였던 노르스름한 코팅종이를 떼어내는 데 힘이 모자라 스무 살짜리 아들의 도움을 받는다. 혼자 하는 것보다 낫기는 한데 어째 시원찮아 보이는 건 왜 일까. 돌을 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나이의 사내아이들이 요즈음은 가늘고 나약해서 통 미덥지가 않다. 강한 육체에 강한 정신이 깃들진대 우리의 미래가 연약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내가 나고 자란 전라도 여천에서는 해마다 칠월칠석날 들돌 들기를 했다. 들돌이란 두레나 농사행사에 관련한 대동품앗이 돌이다. 18세가 된 젊은이가 일정규격의 들돌을 들어 올리면 성인 품앗이꾼인 진쇠가 되었다. 이때 가장 큰 돌을 들면 수총각(首總角)으로 인정받았고 세 사람의 힘을 쓴다하여 보통 사람의 두 배 품삯을 받았다.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들돌이 대·중·소 세 규격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가 보고 들은 건 들돌과 그에 얽힌 단편적인 유·무형의 흔적뿐이었고 자세한 내용은 아버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돌 드는 연습을 하며 힘을 길렀다. 들돌 들기는 서민들의 성인식에 해당하였으니 당연히 혼례식도 함께 치렀다. 힘을 인정받아 명실 공히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농경 사회의 절반은 여자들의 힘으로 유지되었다. 많은 일을 함께 했지만 전라도에서는 남자들이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물 긷는 일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무거운 질그릇 물동이를 사용해서 물을 길었다. 어머니들보다는 조금 ‘좋은 시절’에 나서 어릴 때 우리는 가벼운 양은 물동이를 사용했다. 먹고 놀고 공부만 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걸음마만 떼면 뭔가 해야만 했던 아이들이 물 길러 다니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샘에서 물을 길어 가슴 높이만 통과하면 머리 위에 올려놓는 건 쉬운 일이었다. 가슴 높이를 통과하기 위해 수도 없이 덜 채운 물동이를 이고 다녀야 했다. 그렇게 팔 힘을 기르다보면 어느 날 불끈 물동이가 머리위로 올라간다. 나는 한참 크는 열여섯 살 때부터 성인 물동이를 채워 이고 다녔다. 물동이 안에서 출렁거리는 물이 넘치지 않도록 바가지를 띄운다. 수건으로 똬리를 틀어 물동이 아래 받치고 한 손을 내리는 여유까지 부리며 걷던 방천길에는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이 시대의 젊은 남성들은 힘보다는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하여 땀 흘려 운동을 한다. 수려한 외모에 금상첨화로 단단한 몸을 가진 일명 ‘몸짱 스타’들을 젊은 여성은 물론 중년 여성들까지도 좋아한다. 어쩌면 그에 정비례할 것 같은 리비도의 매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웃통을 벗고 장작을 패는 영화 속의 남자들처럼 적나라하게 과시하는 힘이 아닌, 어딘가에 깊숙이 키워가다가 제때에 꺼내 쓸 수 있는 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로봇이 판을 치고 별나라가 가까워도 음식을 섭취하고 대사를 하는 인간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적당한 노동으로 힘을 쏟아내야 한다. 오랜만에, 올해 고등학생이 된 둘째 아들과 팔씨름을 해 보았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힘을 쓰고도 저보다 작은 엄마를 이기지 못하는 아이를 어찌할까. 컴퓨터 자판위에서만 노는 아이들의 손은 힘을 기르지 않아도 빠르기는 번개 같다. 저 가늘고 여린 손으로 술을 따르고 담배를 피우고 때로는 열정적인 사랑도 할 것이다. 고루한 생각인지 몰라도, 사내란 무릇 사람 하나는 안거나 업고 뛸 수 있는 비상용 힘을 기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체격이 요즘 남자들의 평균 체중을 좀 웃돌더라도 말이다. 바꿔 말하면 남자란 쌀 한 가마니는 어렵지 않게 들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불시에 쓰러졌을 때, 길가다가 긴급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았을 때, 물에 빠져 촌각을 다투는 생명과 맞닥뜨렸을 때, 적어도 힘이 약해서 한 생명을 놓치는 결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 힘은 또 얼마나 멋지게 작용할 것인가.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 친구를 업어줄 수도 있고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하면서 착한 젊은이가 될 수도 있겠다. 체격이 건장하고 힘이 좋은 사내는 어디에 내 놓아도 믿음직스럽다. 최 연 숙 수필가

고흐의 사랑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은 광기(狂氣)다. 고흐 그림에 나타나는 색채와 질감은 일반적인 인간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해 있다. 고흐가 사랑 받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사람들은 고흐의 광기를 정서불안이라고도 하고, 또 정신병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흐가 처음부터 정서불안과 정신병에 시달린 건 아니다. 영국의 미술사가인 데릭 펠은 광기의 원인은 실연(失戀)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첫번째 단서는 고흐의 출생이다. 첫아이를 사산한 후 1년 만에 고흐를 얻은 어머니는 첫아이에게 지어주려고 했던 이름을 그대로 고흐에게 지어주었을 정도로 잃어버린 아이에게 집착했다. 고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대체물이라는 박탈감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고흐는 20대 중반 무렵 남편을 여읜 사촌 케이를 사랑했다. 그녀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무모한 애정을 퍼부었고 결혼에 반대하는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손등을 등불에 지지기도 했다. 고흐가 두번째 사랑한 사람은 미혼모 창녀 시엔이었다. 고흐는 고달픈 시엔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기사가 되어 시엔을 구해내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고흐는 시엔의 병을 고쳐주고 모델로 쓰면서 사실상 부부생활을 했다.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빈약한 여인을 그린 ‘슬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스케치는 시엔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시엔은 몸이 좋아지자 다시 매춘에 뛰어 들었다. 고흐는 결국 자신이 시엔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계를 정리했다. 시엔과 헤어지고 헤이그를 떠난 고흐는 독일 접경 근처 마을에서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은 전형적인 농촌 여인 마르호트를 만난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도 못한 채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또 다시 측은지심이 발동한 고흐는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마르호트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고흐의 연애는 늘 엽기적인 상처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고흐의 그림 ‘탕부랭 카페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델인 카페 주인 세가토리와의 관계가 그랬고, 고흐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가세 박사의 딸 마르게리트에 대한 짝사랑도 비극으로 끝났다. 마르게리트에 대한 사랑이 실패한 후 고흐는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다행히 그림은 남아서 빛을 발하고 있지만 고흐의 연애는 여자에게 농락 당한 남자의 사랑, 무모한 애정을 보여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後光

연예인들 가운덴 부모의 직업을 잇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부터 젖은 분위기와 유전 때문이겠다. 이들 중 최민수·이덕화·김희라·전영록·독고영재·박준규·허준호 등 탤런트들은 고인이 된 아버지나 어머니가 당대를 풍미한 스타들이었지만 요즘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2세들이 부쩍 늘었다. 3인조 록 그룹 ‘미로밴드’ 리더 서동춘은 개그맨 서세원과 모델 서정희의 아들이고, 하정우는 김용건의 아들이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유명하니까 ‘당연히’ 덕을 볼 것이란 게 일반인들의 생각이지만 모두 그렇진 않다. 2세 연예인은 아무래도 출연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순 있겠지만 그것으로 별처럼 ‘뜨는’ 건 아니다. 플러스 요인도 별로 되지 않는다. 가수 이루는 2005년 1집을 내고 활동할 당시만 해도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때도 ‘태진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이미 공개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루는 지난해 비로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태진아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수록곡 ‘까만 안경’, ‘흰눈’ 등이 잇따라 히트했기 때문이었다.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2세 연예인은 극소수다. 오히려 많은 2세 연예인들이 오랜 무명시절을 거쳤다. 아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거나 아직도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탤런트 김을동의 아들 송일국은 ‘해신’ ‘주몽’ 등을 통해 톱스타로 우뚝 섰지만, 5년 넘는 무명시절을 거쳤다. ‘용서 받지 못한 자’ ‘포도나무를 베어라’ 등을 통해 연기파 신인으로 인정 받고 있는 서장원은 연기학원에서 아버지(서인석)의 유명세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3세 연기자로 기대를 모았던 이덕화의 딸 이지현도 1년 넘게 연기수업만 하고 있다. 부모가 연예계를 너무 잘 알아 ‘든든함’보단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2세들도 많다. 장나라의 오빠이자 연기자인 장성원은 아버지(주호성)를 무서워 한다. 냉혹하리만큼 엄격한 부모의 평가 기준 역시 2세 연예인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7년 만에 컴백한 가수 김혜림은 어머니(라애심)로부터 단 한번도 노래 실력을 인정 받지 못했는데 앨범을 내고서야 인정을 받았다고 감격해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後光)으로 금배지를 단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얘기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의 리더십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의 공과(功過)를 정치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하게 평가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 강행, 전쟁 참화 속 안보 유지, 산업화 추진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나, 권위주의적 독재자, 독선적 성격, 장기집권으로 국민통합을 저해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 발전의 리더십, 역사적 현실에 투철, 한국 사회 대변동을 이뤄 냈으나, 유신 독재, 민주주의 발전 저해, 고도성장 정책의 폐해가 있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사심없는 공인, 청렴결백했으나 결단력 부족, 우유부단으로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막지 못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취약한 정통성 위기 극복, 경제 제일주의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치발전, 민주화의 시대적 과제에 부정적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일관성 있는 북방정책 추진, 정치 민주화의 진전이 있었으나 사회적 혼란과 위기 증폭, 부정적인 재산 축적, 이미지 정치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부세력의 탈정치화 완수, 금융실명제 실시, 세계화 정책을 수립했으나 개혁의 제도화에 실패, 지역주의 지속, 외환관리 체제를 수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 생산적 복지 추구, 햇볕정책과 남북 긴장완화에 기여했으나 측근과 자식의 부정부패, 허물어진 도덕적 리더십, 지역주의를 지속했다. 이들 중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재에서 가능한 가치를 추구한 가장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특징은 “토플러리즘과 포퓰리즘의 모순적 공존”이라고 안병진 창원대 교수가 정의했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의 이름에서 따온 ‘토플러리즘’은 미래 과제만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 교수는 “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래 과제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민의를 파악하고 실현 가능한 어젠다에 정치적 자본을 투자하지 않고 본인이 추구하는 미래적 과제만 공표하고 이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며 “또 다른 특징은 기득권층과 자신의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을 국민의 대변자로 위치 지우는 포퓰리즘적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성공한 대통령들은 국가적 위기 아래서 비전 제시 능력이 뛰어났다. 원만한 여야관계를 통해 정책의 법률화에 성공하고 지지층의 확대를 이룩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은 ‘설득과 조정의 힘’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노무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그리스의 산불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의 재앙을 가져온 ‘판도라의 상자’는 연유가 불에서 발단이 됐다. 주신(主神)인 제우스신은 인간들이 몹쓸짓 하는 것을 혼내줄 요량으로 불을 몰수했다. 그러자 불이 없어 고통당하는 인간들을 본 거인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돕기로 작심했다. 거인신은 제우스신에 따돌림을 당하곤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산삼의 마른 대를 옷속에 숨겨 하늘로 올라간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신의 마차 바퀴에 산삼대를 부벼 옮겨붙은 불씨를 지상에 내려와 인간에게 주었다. 이에 크게 노한 제우스신은 흙으로 빚은 아름다운 여인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 세계로 내려보내면서 상자를 주었다. 이 여인의 이름이 판도라다. 판도라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거인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했다. 형은 동생에게 판도라를 조심하라고 타일렀으나 워낙 미모가 뛰어나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사냥나가 혼자 무료하게 있던 판도라는 평소 궁금히 여겨온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마침내 뚜껑을 열어봤다. 이상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나타난 온갖 괴물은 지진·번개·화재 등 불에 관련한 재앙과 404가지 병마였다. 제우스신은 불의 몰수령을 어긴 인간을 판도라를 통한 재앙의 상자로 응징한 것이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사상 최악의 산불에 휩싸였다.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 등 전 국토 임야의 약 절반을 태운 산불은 가까스로 잡았으나 후유증이 심하다. 60여명이 죽고 가산을 잃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논란이 분분하다. 이달 총선을 앞둔 정치적 방화설, 유명무실한 그린벨트정책이 산불 확대를 빚은 화근이라는 환경단체의 주장 등으로 그리스 정부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도 판도라의 상자가 안겨준 재앙인가, 그리스는 신화만큼 많은 유적지가 있다. 큰 산불 바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둘러 떠나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마저 말이 아닌 모양이다. 그리스 소방당국은 유적지 보호에 안간힘을 다 했다. 아폴로 신전 앞까지 번진 불을 진화하는 등 화마의 위기에 처한 올림피아 유적지 등이 화를 면한 건 그래도 제우스신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그리스 사람들은 믿는다는 소식이다./ 임양은 주필

할머니

벌이라고 다 꿀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꿀벌과 벌이 따로 있다. 학계는 꿀벌이 인간에게 꿀을 제공한 것을 4천년 전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꿀벌은 원시시대부터 인간과 가까웠던 것 같다. 벌은 12만 종이 있다. 이 가운데 인간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말벌과 벌이다. 길이가 10~17㎜인 말벌과 벌은 독침을 쏜다. 검정말벌 노랑말벌 무늬말벌 등이 있다. 땅말벌도 있다. 땅벌이라고도 한다. 명절 밑에 성묘를 위한 벌초를 하다가 흔히 벌에 쏘이는 봉변을 당하는 것이 이 땅말벌 때문이다. 말벌은 같은 벌인 꿀벌도 해칠 정도로 성정이 포악하다. 부산에서 두살, 다섯살 짜리 손자를 데리고 산책나온 할머니가 아이들을 덮치는 말벌떼를 몸으로 막아 손자들은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는 기사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황급히 웃옷을 벗어 손자들을 감싼 할머니는 80여 군데나 말벌의 독침을 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는 것이다. 야산도 아니고 시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말벌떼의 기습을 받았다니, 할머니가 아니면 학교 어린이들이 말벌의 공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119구급대가 높이 18m의 나무에 지은 말벌집을 제거한 것을 보면 땅속에 집을 짓는 땅말벌은 아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도 사랑이지만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또 다르게 대단하다. 그래서 애를 봐주기도 하지만 이게 예삿일이 아니다. 탈없이 잘 봐주면 본전이지만 만약 조그마한 상처라도 나게 다치면 봐준 공덕은 간곳없고 온통 허물만 뒤집어 쓴다. 원래 아이의 안전사고는 순식간에 나는 것이어서 신경을 여간 써도 다치는 수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손자를 봐주다가 다친 아이의 엄마가 시어머니를 손찌검하는 게 방영되어 말썽이 된 적이 있다. 드라마가 아닌 그런 몹쓸 며느리의 실화가 있다. 그도 명색이 교원의 신분을 가진 여성이어서 한동안 인근 아낙네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말벌떼에 쏘여 숨진 그 할머니도 만일 손자들만 공격을 받았다면 ‘하필 그런 곳에 왜 갔느냐’며 아들 며느리에게 원망을 듣게 됐을 것이다. 또 그걸 모르는 할머니도 아닐 것이다. “애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외쳤다는 그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아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의 내리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걸 미처 알지 못한다./ 임양은 주필

싱가포르

인도 국민의 선조는 인도아리아(Indo Arya)인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반농반목 생활을 하던 이들이 인도의 서북쪽에 침입한 것은 BC 1000년 경이다. 인더스강 상류에 정착한 인도아리아인들이 점차 각지로 흩어진 그 후손이 오늘의 인도 국민이다. 그런데 옛 인도아리안들이 쓴 말이 속어(俗語)에 대칭되는 아어(雅語), 즉 고급어로 산스크리트(Sanskrit)라고 한다. 범어 또는 천축어라고도 한다. 인도의 불경이나 인도 고대문학은 거의 산스크리트 문자로 기록됐다. 싱가포르(Singapore)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인 singha와 거리인 Pura의 합성어 Singhapura가 진화한 것으로 ‘사자의 거리’란 뜻이다. 싱가포르의 섬 형태가 사자 모양을 닮은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동남아 말레이반도 남단 적도 부근에 있는 싱가포르 섬은 과거가 평탄치 않다. 1819년 영국령이 되어 1959년 연안방 자치국이 됐다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의 주(洲)로 편입됐으나 인종 및 경제적 대립끝에 지금의 독립국가가 된 게 1965년이다. 싱가포르섬, 크리스마스섬, 코코스 군도 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는 580㎢ 면적에 인구가 약 300만명인 도시국가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중국어·타밀어(인도 공용어) 등으로 화교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다인종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여러 공용어를 쓰는 다인종 사회의 자그만한 이 도시국가가 높은 소득과 안정된 사회질서로 세계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은 지상낙원을 건설했다. 천연자원도 공통문화도 없는 싱가포르가 성공한 나라가 된 것은 세계적인 모델 케이스다. 리콴유(李光耀·84)는 1965년 독립 당시부터 1990년까지 총리직에 있으면서 부자 나라를 만든 최고 지도자다. ‘국가 생존전략으로 뭣이 필요한 가를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의 흐름을 읽는 개방적 실용주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성장동력인 엘리트주의와 사회주역인 대중주의의 공존을 강조했다’. 그의 이같은 요지의 IHT 인터뷰는 국내 정치권이 곱씹어 볼만하다. 우리도 다인종 사회로 가곤 있지만 싱가포르와는 사정이 다르다. 공용어가 아닌 단일어다. 땅도 더 크고 인구도 많은 게 싱가포르는 비교가 안된다. 우리가 싱가포르보다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못한 게 현실이다. 한국도 큰 나라는 아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임양은 주필

돌 잔치

예전엔 아기들의 돌날 돌상에 ‘돌잡이’로 돈, 쌀, 연필 등을 올려 놨다. 돌맞이 아기가 쌀을 먼저 집으면 ‘식복은 타고 났다’고 좋아했고, 연필을 집으면 ‘공부 잘하겠다‘고 점쳤다. 돈을 집으면 ‘부자가 될 게 분명하다’고 흥겨워했다. 그런데 요즘 돌상엔 쌀, 연필, 실이 없어지고 청진기(의사), 마이크(연예인, 아나운서 등), 골프공 등 스포츠용품(스포츠 스타), 칫솔(치과의사), 마카 펜(교수), 외제차 키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때는 신용카드도 돌상에 올랐으나 신용불량자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져서 없어졌다. 돌상도 호화로워졌다. 떡, 과일 등이 올라가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돌상 한가운데엔 3단 케이크를 놓고 돌상 주변에는 화려한 풍선장식과 인형, 장난감으로 장식한다. 뒷편엔 아이 이름을 쓴 현수막을 걸고 아이의 동영상을 상영한다. 부모 취향에 따라선 아예 전통 상차림을 배제하고 선물꾸러미, 꽃바구니, 촛불을 올리기도 한다. 하객 답례품으로 떡 상자 돌리는 것도 구식이 됐다. 머그잔, 그릇세트, 산세베리아 화분 등으로 바뀌었다.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 어린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벌이던 돌잔치가 이젠 ‘돈잔치’가 돼 간다. “그랜드볼룸급에서 하객 300여명 정도 참석하는 돌잔치의 경우 장소와 식사에만 3천만원 쓰는 고객들이 많다”는 호텔 연회부 관계자의 말은 아닌 게 아니라 신문에 날 만한 얘기다. 인기 있는 돌잔치 장소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예약하지 않으면 빌릴 수 없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주말 저녁 등 좋은 시간대에 인기 있는 방을 원하면 1년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호화 돌잔치는 비단 상류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산층 가정에서도 자녀의 돌잔치를 위해 300만~500만원을 쓰는 건 기본이다. 초등학교에서 돌사진을 가져오라는 숙제도 있어 학부모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으려면 돌잔치부터 제대로 챙겨야 된다”고 한다. 저출산도 호화 돌잔치의 원인이다. 둘째를 낳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최고로 치러주고 싶어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업체에 일체를 맡기는 경향도 호화 돌잔치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그러는 건 아니다. 돌잔치 비용을 아껴 돌맞이 아이의 이름을 새긴 푯말을 걸어주는 묘이나 정원수를 심는 가정도 늘어난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애창곡 연습

대권 후보 시절 직접 기타를 치며 양희은의 ‘상록수’를 불렀던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은 ‘울고 넘는 박달재’였다. 2004년 10월 충북 제천서 열린 한 행사에서 충청지역 민심을 의식한 듯 “내 십팔번은 울고 넘는 박달재”라고 말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에서 ‘애창곡’이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서 유래된 ‘십팔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한때 ‘작은 연인들’을 애창곡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어 즐겨부르는 노래가 ‘그때 그때 달라요’임을 보여준다. 하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한 곡만 계속 부르는 건 듣는 사람들의 귀를 지겹게 한다. 이해찬 전 총리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노래를 즐겨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즐겨부르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노래를 멀리 한다’이다. 이 전 총리를 10년 넘게 보좌해 온 측근들 조차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나훈아의 ‘무시로’를 부른다고 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젊은 그대’를 잘 불렀지만 가끔 최신곡을 불러 주위 사람들을 놀래킨 적이 여러번 있었다. 대표시절엔 미니홈피 개통 1주년을 맞아 지지자들과 남산을 찾은 자리에서 당시 인기 트리오 ‘거북이’의 최신유행곡 ‘빙고’를 불렀는가 하면 은지원의 노래 ‘나우’, ‘만취’ 등도 잘 불렀다. 비교적 최신 유행곡에 강한 편이다.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애창곡은 팝송 ‘마이 웨이’다. 예전 당의장 경선에서 예선 탈락한 뒤 마이 웨이를 부르는 모습이 담긴 자신의 동영상을 지지자들에게 그룹 메일로 발송했다. ‘천신정’ 트리오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신 의원은 자신이 직접 작사하고 가수인 친형이 부른 ‘당신의 미소’를 소개하며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추미애 전 의원은 얼마 전 대선 출마를 시사하는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애창곡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행열차’라고 답했다. 대담자의 요청에 ‘추다르크’답게 ‘남행열차’를 한 소절 불렀다. 대선 후보 경선 때 노래솜씨를 겨루는 것도 아닐텐데 좀 짖궂어 보였다. 대선 후보 경선 대상자들이 노래방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는 게 헛소문 만은 아닌 모양이다. 코메디, 코메디언이 따로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교통사고 피해자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가슴을 앓는다.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고 입원했어도 문병을 오는 가해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해자는 형사 합의금을 제시한 후, 합의가 안 돼도 어차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니까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피해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치 않은 사람이 돼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가해자는 거의 죗값을 받지 않는 셈이다. 초등학생 A군이 하굣길에 1t 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다. A군이 왕복 2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 과실이 인정돼 가해자는 불구속 입건됐다. 하지만 A군의 부모는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기는 커녕 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가해자의 변호사가 합의금 2천만원을 제의해 왔을 뿐이다. A군의 부모는 ‘아, 사람을 죽여도 우리나라에선 아무렇지도 않구나’하는 생각만 들어 실의 속에서 살아 간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가해자 중 구속된 경우는 2000년 1만5천344건에서 2005년 8천539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경찰청의 자료다. 교통사고가 감소한 게 아니라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재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속이 급감하자 가해자들은 대형사고를 내고도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형사 합의금 대신 법원에 공탁금을 내놓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보험회사에 청구해서 공탁금을 도로 받아가곤 한다. 가해자들은 ‘처벌을 가볍게 해달라’며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제시하고, 합의에 실패하면 대부분 법원에 공탁금을 낸다. 피해자에게 줄 수 있는 돈을 맡겨 놓을테니 이 점을 정상 참작해서 벌을 가볍게 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탁금 제도가 악용되는 사례도 많다. 수년 전 부터 사망사고라고 해도 음주운전 등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 피해자측과 연락 한 번 없이 1천만~2천만원의 공탁금 통지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당국이 가해자의 인권을 중시하다보니 연간 수십만명에 달하는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소설가 K선생은 초보운전시절 사고를 내 사람이 크게 다친 모습을 보고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 심약한 사람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교통사고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가해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게 세상살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폭탄주

우리 음주문화의 진수는 권하는 맛이다. 서구식은 술잔을 권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본따기도 한다. 자기의 잔에 자기가 알아서 술을 채워 훌쩍거리는 것이다.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래선 술맛이 안 난다. 술좌석의 성격이 기계적 자리일 것 같으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먹어도 된다. 합리적인 것은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술은 대개 감성적으로 먹는다. 이해 관계의 주석이 아닌 정담의 주석에선 자기 잔을 자신이 채워 마시는 건 청승맞다. 술잔을 권하는 전래의 권주에 ‘권주가’가 있다. 나이 든 어른에게 장수를 비는 권주로는 ‘헌수’가 있다. 술은 서로 권하는 맛인 것이다. 합리주의 보단 정리주의인 것이 우리의 술자리다. 술은 잘 마시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다. 반면에 잘못 마시면 ‘광약지장’(狂藥之長)이다. 잘 마시면 심신에 더 할 수 없는 활력소가 되지만, 잘못 마시면 심신을 피폐시켜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잘 마시는 것은 적절하게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정철(鄭澈)의 ‘주문답삼수’(酒問答三首)는 적절한 음주를 다짐한 시조다. 현대 음주문화로 ‘폭탄주’가 있다. 양주나 소주를 담은 양주잔을 맥주잔에 넣어 맥주를 가득히 부어 마시는 것이다. 다 마시고는 맥주잔을 흔들어 양주잔과 부딪치는 소릴 달랑 달랑하게 내는 것이 ‘폭탄주’ 음주의 예절이다. 비난도 많고 예찬도 많은 것이 ‘폭탄주’다. 수년 전이다. 검찰 내부에서 불거지곤한 고약한 일들이 ‘폭탄주’ 바람에 생겨 내부 지침으로 ‘폭탄주’ 금지령을 내린적이 있다. ‘폭탄주’의 원조는 5·16 주체세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초대 중앙정보부장 시절의 김종필이다.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난 뒤에 밀려드는 흥분과 불안을 ‘폭탄주’로 해소시켰던 것이다. 발단이 어떻고 원조가 누구든 간에 ‘폭탄주’는 이제 부동의 현대 음주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 앙금을 풀기위한 모임으로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핵심 초선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폭탄배’ 순배가 있었다. 처음엔 서로 서먹 서먹해하다가 뼈있는 말을 주고 받더니, ‘폭탄주’가 몇 순배 돌고나서는 무겁던 분위기가 녹았다는 것 같다. 술이 깨고나면 다르긴 하겠지만 그런 좌석이 없었던 것 보단 나을 것이다. / 임양은 주필

가을의 문턱에서

날씨가 제멋대로다. 금방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 그치고는 뙤약볕이 쨍쨍거리곤 한다. 그리고 또 소낙비가 내린다. 같은 한 도시에서도 비가 내리는 곳이 있고 안 내리는 곳이 있다. ‘여름 소낙비는 논두렁 사이 하나로 다르다’란 말은 있다. 같은 들판의 논 가운데도 논두렁을 경계로 비가 내리고 안 내리고 할만큼 여름철 소낙비는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었긴 해도 이즈음 들어 더 실감하는 것은 날씨 변덕이 그야말로 죽끓듯이 해 갈수록 종잡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름철 비가 열대지방의 ‘스콜’을 닮아간다. 소낙비만이 아니다. 게릴라성 집중호우, 이도 천둥 번개를 예사로 동반하는 것이 영락없는 ‘스콜’을 방불케 한다. 한반도의 아열대화설이 제기되고 있다. 올 여름 해수욕장은 신바람이 났다. 여느 해는 8월20일이 지나면 해수욕장도 파장이다. 대자연은 실로 오묘하다. 전날까지도 해수욕이 가능했던 바닷물이 20일이 지나면 하룻밤새에 그만 차가워진다. 한류, 난류의 조류가 교차하기 때문인 것이다. 동해·서해·남해 할 것 없이 해수욕장이 거의 다 이래왔다. 그런데 올핸 아직도 성업중이다. 아마 오는 9월1일 주말에도 해수욕이 가능할 것이다. 이도 한반도의 아열대화설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모른다. 절후가 입추(8일) 처서(23일)를 지나 백로(9월8일)를 앞두고 있다. ‘처서에 비오면 곳간이 빈다’는 옛말은 결실의 계절에 비가 오면 해롭다는 뜻이다. 약 한달 남은 추석을 앞두고 오곡백과가 익어간다. 열매의 성숙을 위해선 햇볕이 쨍쨍거려야 한다. 열대야를 벗어나지 못하게하는 노염이 기승이다. 밤낮으로 더운 게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오곡백과가 무르익기 위해서는 더워야 한다. 비가 잦은 게 좋진 않아도 비가 온 끝에 뙤약볕이 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설은 기상 이변이다. 지구의 온난화 탓이다. 지구의 온난화는 먼 후에 언젠간 마침내 지구를 얼어붙게하는 동토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이래서 온난화의 주범인 석유의 대체 에너지 개발이 현안의 과제가 되고 있다. 변덕스런 여름 날씨를 보내다보니 올 해도 얼마 안 남아 새삼 달력을 들춰보게 된다. 참 빠른 게 세월이다./ 임양은 주필

엄마의 젖

모유와 우유의 차이점이 뭔가? 이 난센스퀴즈의 정답은 용기의 아름다움이다. 젖이 담긴 엄마의 유방은 우유의 플라스틱병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신비하다. 출산후 누런 색깔의 첫 젖은 면역성이 약한 아기에게 필수적 자연 항생제다. 조물주가 준 선물을 아기에게 먹이지 않고 멋모르고 짜내어 버린다면 너무 아깝다. 더욱 아까운 것은 우유를 먹이면서 젖을 버리는 우매함이다. 유방이 아플 정도로 불어난 젖을 마구짜 버려가면서 아름답지 않은 용기의 우유병을 아기 입에 물리는 것이다. 최근 젖을 1년 이상 먹인 엄마의 유방암 발병률은 젖을 안 먹인 것보다 훨씬 낮거나 거의 없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으로 순리다. 반면에 우유를 먹이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역리다. 젖을 먹이는 엄마의 유방암 위험률이 거의 없거나 낮은 것은 조물주의 섭리를 지킨데 대한 보답일 것이다. 뭣보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수유의 장면은 경외스럽다. 젖을 빨리는 엄마의 모습은 거룩해 보이고,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아기는 더없이 평안해 보인다. 그 자체가 인간적 정서의 평화인 것이다. 모유를 먹은 아기의 정서가 더 안정된다는 학계의 통설은 모유를 통해 엄마와 아기가 서로 나눈 정서적 교감의 발달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아기가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것은 그만큼 위대하다. 생명체가 아닌 플라스틱병 우유꼭지를 물리는 것과는 비유가 안 되는 것이다. 우유를 먹이는 덴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젖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엄마가 직장에 나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방을 곱게 보존하기 위해 아기에게 젖을 안 먹이는 것은 바보같은 생각이다. 젖을 먹이면서도 예쁜 가슴을 그대로 유지하는 지혜로운 엄마들이 많다.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수유에 있기보단 다른 연유에 더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아이를 낳았으면 사람의 젖을 먹여야 한다. 사람의 아이가 무슨 소 새끼라고 사람의 아이에게 소 젖을 먹인단 말인가, 근래 들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들이 점차 늘어가는 경향은 좋은 현상이다./임양은 주필

‘친족 성폭력 범죄’

언급하기 조차 민망하다.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2천317건의 사건 중 가해자가 친족이나 친·인척인 경우가 11.2%라고 한다. 여기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 257건 중 158건은 친부를 포함한 4촌 이내의 혈족, 2촌 이내의 인척 등 ‘성폭력특별법’에서 규정한 친족 간 성폭력에 해당하는 경우가 무려 72건이다. 실로 무참하다.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지자 ‘짐승보다 못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하다. 공소시효는 더 큰 문제다. 공소시효가 지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중엔 동네 사람이 10.8%, 주변의 지인이 4.3%, 친밀한 관계나 서비스 제공자가 각각 2.3%, 교육기관 관계자나 직장 동료가 각각 1.9%로 아는 사람인 경우가 86.8%다. 신고된 친족 성폭력 사건이 빙산의 일각인 점을 추정하면 성폭행범이 도처에 우글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한 연령은 유아와 어린이 시절이 대부분이다. 7세 이하의 유아가 24.9%, 8~13세의 어린이가 48.6%, 14~19세의 청소년이 13.3%, 20세 이상의 성인이 12.5%다. 전체 성폭력 상담 통계에서 성인 피해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대비되지만 이유가 있다. 공소시효가 지난 피해 사례 중 13세 미만 유아와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가 73.5%나 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상담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친아버지나 친오빠 등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가해자일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피해 사실을 주변에 이야기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성폭력상담소의 말이 입증한다. 친족의 성폭행이나 미성년자에게 피해를 입힌 성범죄는 어떤 중벌에 처해도 미약하고 부족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말 13세 미만 아동이나 친족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거나 공소시효를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무소식인 건 입법부의 직무 유기다. 관대한 법률 탓으로 처벌 받지 않은 성범죄자가 또 다른 약자를 대상으로 삼아 범행을 저지르는 건 상식이다. 반인륜적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법 제도의 정비가 정말 시급하다./임병호 논설위원

경기米

경기도가 평택쌀 ‘슈퍼오닝(Super Oning)’ 11t을 지난 6월 미국으로 처음 수출한 데 이어 추가 물량 20t을 최근 부산항을 통해 미국으로 또 다시 선적했다. 미국 뉴욕, 시카고, LA 등지의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슈퍼오닝이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한다. 슈퍼오닝의 주된 구매자는 현지에 거주하는 미국 동포들로 밥맛이 뛰어난 경기미를 선호하여 값이 비싼 데도 집중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출된 경기미의 ㎏당 가격은 2천800원으로 300원대의 베트남·태국산, 500~600원대의 미국·중국산, 1천500원대의 대만산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높다. 미국내 판매 가격도 캘리포니아산 칼로스 쌀보다 6배 이상 높은 ㎏당 4천500~5천800원 수준이어서 한·미FTA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농가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어 고무적이다. 경기미의 인기가 미국에서 급상승함에 따라 경기도는 오는 10월17~23일 뉴욕에서 열리는 농산물 판매행사인 ‘추석맞이 모국박람회’를 통해 경기미의 우수성을 집중 홍보하고 판촉전을 펼치기로 했다. 또 현지 교포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경기미를 홍보하는 동시에 미국인 소비자들의 입맛 공략에도 도전한다는 공략을 마련했다. 다른 한편으론 미국시장 외에 말레이시아, 스위스, 러시아 등지로 경기미를 수출하기 위해 현지 바이어와 협의하고 있으며 내년에 500t, 2009년엔 1천t의 수출목표를 세웠다. 문제점이 없진 않다. 전국 각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미국시장을 겨냥해 쌀 수출에 나섬에 따라 경기미의 가격이 다소 하락할 우려가 있는 점이다. 지난 6월 ㎏당 수출가격은 3천100원이었으나 여타 자치단체의 쌀이 2천원 이하로 수출돼 이번 2차 물량의 수출가격은 ㎏당 300원 가량 하락했다. 그러나 ㎏당 2천500원을 수출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그 이하로 내려갈 경우 수출을 하지 않을 예정이란다. 호남들녘에서 생산된 쌀도 수출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군산쌀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 리비아에도 수출되고 햅쌀이 나오는 10월쯤이면 캐나다와 호주, 유럽에서도 쌀을 수입해 가기로 바이어와 약정을 맺었다고 한다. 한·미FTA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품질 좋은 우리나라 쌀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니 기분이 좋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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