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뇌물?

뇌물과 선물의 차이는 우선 현금이냐 물건이냐에 있다. 물건이라고 해서 꼭 뇌물이 아니고, 현금이라고 해서 꼭 뇌물인 것은 물론 아니다. 물건도 희귀품이거나 고가일 것 같으면 뇌물이다. 현금도 상식으로 보아 부조돈 정도면 선물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아 뇌물은 현금인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예금실명제 이후 두드러진 게 뇌물수수 방법의 변화다. 실명제 전엔 가공인물계좌에 입금시켜 통장과 도장을 주고받곤 했던 것이 실명제가 되고 나서는 그런 방법이 막혔다. 이래서 현금을 직접 주고받게 됐는데 이게 또 묘하다. 케이크 상자나 사과 상자에 돈을 넣어 뇌물을 주고 받는 방법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상자에 넣지않고 직접 주고 받기도 하는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눈치가 높은 게 고단수다. 뇌물돈을 직접 수수하지 않고 책상이나 어디 한 구석에 슬그머니 놓는 것이다. 직접 주면 한사코 안 받다가도 가만히 놓고 나오면 모른체 한다. “내가 언제 돈을 받았느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뗄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중국 한나라 영제 때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최열이란 부호가 승상에게 500만금을 주어 대신급인 사도란 벼슬을 샀다. 그는 밑천을 뽑기위해 자신의 권세로 팔 수 있는 아랫자리 벼슬을 파는데, 직접 뇌물을 챙기지 않고 집사를 내세운 매관매직이 밑천을 뽑고도 남을 정도로 심해 사람들이 ‘동취’(銅臭)라고 불렀다. 돈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벼슬을 사려는 사람들의 불평이 많아 알아보니 집사가 뇌물을 가로챈 것이다. 배달사고가 잦았던 것이다. 그는 대로해 곤장을 때려 쫓아낸 집사의 발고로 결국 영어의 몸이 됐다. 정치인이나 고관현직의 사람들이 상당한 뇌물을 받고도 잡아떼는 것을 종종 본다. 물론 그 가운덴 무고의 예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는 수뢰사실을 잡아뗀 위인들이 결국은 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이 나는 것을 보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문의 당선 축하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안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당선 축하금 안 받았거든요”라면서 “어떻든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이 포함된 삼성비자금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하면 퇴임후에 특별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인 그 돈을 안 받았다면, 그럼 배달사고가 있었다는 건지 이 또한 궁금하다. / 임양은 주필

노인

할머니는 잡수던 밥을 드시던 숟갈로 듬뿍 떠 손주 밥그릇에 얹힌다. “많이 묵고(먹고) 후딱(빨리) 커라… 잉(엉)!” 손주는 할머니 침이 묻은 숟갈이 더럽게만 여겨져 찜찜하지만 내색을 못하고 꾸역꾸역 먹어댄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할머니로 생긴 걸로만 알았던 어린 손주가 철이 들면서 사람은 늙는단 것을 알았지만, 놀랍게도 할머니의 처녀시절을 실감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손주가 청년이 되어 어쩌다 빛바랜 사진에서 본 할머니의 처녀 적 모습은 자신이 사랑하는 처녀만큼 귀엽고 예뻤던 것이다. 그 손주도 이제 노인이 되어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늙는다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또 사람이 나이 먹어도 늙지 않으면 그도 자연스럽지 못하니 세월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의 아들되고 며느리되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젠 이 세상에 안계시고, 두 아들을 장가들여 손주 손녀들이 주렁주렁하여 내가 옛 할머니의 처지가 되다보니, 새삼 생각되는 것은 부모자식 간이다. 더러 자식들이 사소한 일에 노엽게 해도 나 역시 부모를 노엽게 한 적이 적잖으니 생각을 접어두곤 하는 것이다. 교장을 지낸 박종무 선생님이 한 노인시설에 붙여둔 작자 미상의 ‘허무’ 제하 ‘四四調(사사조)’ 노인 주제 인쇄본 글 내용이 세태의 단면을 풍자한다고 보아 이에 소개한다. ‘부생모유 그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큰데 / 청춘남녀 많다지만 효자효부 안보이네 / 시집가는 새색시는 시부모를 마다하고 / 장가가는 아들들은 살림나기 바쁘도다’ ‘제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싫은 표정이네 / 시끄러운 아이소리 잘한다고 손뼉치며 / 부모님의 회심소리 듣기싫어 빈정대네’ ‘제자식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므러나 / 부모님의 기침가래 불결하여 밥못먹네 / 과자봉지 들고와서 아이손에 쥐어주나 / 부모위해 고기한근 사올줄은 모르도다’ ‘애완동물 병이나면 가축병원 달려가도 / 늙은부모 병이나면 그러려니 태연하고 / 열자식을 키운부모 하나같이 키웠건만 / 열자식은 한부모를 귀찮스레 여겨지네’ ‘자식위해 쓰는돈은 아낌없이 쓰건만은 / 부모위해 쓰는 돈은 하나둘씩 따져보네 / 자식들의 손을잡고 외식함도 잦건만은 / 늙은부모 위해서는 외출한번 못하도다’ / 임양은 주필

1일 自省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은 널리 회자돼 왔다. 첫째, 가족들의 무고(無故)가 일락(一樂)이다. “군자는 인생의 행복이 세 가지가 있다. 왕 노릇하는 즐거움도 이 세 가지 행복 중에 끼지 못한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이 아무 일 없이 건강한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했다. 기쁨을 나눌 수 있고,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부모 형제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출세를 하고 부귀를 얻었다 한들 그것을 함께 할 가족이 없다면 행복은 반감된다. 누군가 옆에서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시작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다. 나에게 없어도 될 것 같은 주변의 사람들이 없어져 보면 그 의미를 안다. 부모, 형제가 있기에 내가 따뜻한 것이다. 가정의 행복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다. 둘째,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땅을 내려 보아 남에게 창피하지 않게 사는 인생이 두번째 행복이다”라고 했다. 맹자는 사람에게 가장 위대한 감정이 부끄러움이라고 했다. 내가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오늘도 부끄러움 없는 사람으로 살기를 희망하지만 그러나 돌아 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배우자, 자녀, 선후배, 동료 등 그 모두에게 부끄러움이 없이 하루를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나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면 정말 행복한 인생이다. 누구앞에서든 떳떳할 수 있는 힘은 부끄러움 없는 삶에서 나온다. 셋째, 인재양성의 즐거움이다. “천하의 똑똑한 영재들을 모아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인생의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천하영재를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의 삶을 가르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전해 주고, 훗날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 줄 수 있는 후학을 만나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아랫사람에게 배려와 존중의 정신으로 베풀어야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진정 내 사람을 얻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천하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내 인생의 세 가지 행복에 들지 못한다고 맹자는 말했다. 권력과 부를 위하여 부끄러움을 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늘도 생각해본다. /임병호 논설위원

필적감정

사람마다 글씨를 쓸 때 처음 시작하는 부분과 끝무리의 형태, 기재방향과 각도, 필획간의 연결위치와 간격, 배자(配字)형태, 특정 획을 쓰는 방법, 필기구를 누르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고 한다. 서명의 경우 모방을 했다면 글씨체가 유연하지 못하고 미세한 떨림이나 주저한 흔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사본이 아닌 원본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유서를 대필했거나 서명을 위조했더라도 한 개인이 친필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특징을 찾아내 진위 여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사람이 40년 동안 일기를 썼을 때 글씨체가 전혀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시기별로 글씨체가 상당히 변하는 사람이 있으며 필기구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속필인지 정필인지 글씨를 쓸 때 자세와 심리상태가 글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필적감정 전문가들은 글씨를 비교했을 때 보통 유사점이 70% 이상이면 같은 사람이 썼다고 보고, 45% 이하면 위조했다고 보는데 문제는 45~70% 사이란다. 유사점과 차이점이 비슷하게 섞여 있거나 대조물의 조건이 상이할 땐 판정불능을 내린다. 필적감정원에 의뢰하는 사건 대부분이 과거에 서명을 해놓고 자신에게 불리하니까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서명을 위조한 사람도 있지만 이는 감정해보면 꼭 티가 난다고 한다. 이른바 ‘BBK 의혹’과 관련, 검찰이 이명박 대선 후보의 친필서명 제출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이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거부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그제 KBS 초청토론회에서 “당이 어떤 방침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확인하려면 (내가)확인해 줘야 한다”고 친필 서명을 제출키로 했다. 정면돌파 차원에서도 매우 적절한 대처방법이다. 대선 후보를 보호하려는 한나라당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친필 서명 제출 거부는 괜한 오해만 살 당론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서명과 평소 필체는 이미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필적감정을 통해 진위여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다고 한다. 국립과학연구소도 “다양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내린다”고 했으니까 곧 판명날 터다. 누가 시커먼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을까. /임병호 논설위원

후안흑심

후안흑심(厚顔黑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과 어울려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도 없이 행동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말이 남들의 눈치와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불굴의 열정과 용기를 발휘하는 적극적인 마인드로도 활용된다. 명분과 예의, 염치를 중요시 여기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중국 역사를 보면 영웅호걸이나 최후의 승리를 얻은 인물들은 거의 명분과 자존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아니라 후안흑심의 사람이었다. 후안흑심의 후안은 방패다. 100만명이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정말 단단한 후안의 방패를 가진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와 체면에 얽매이지 않았다. 한나라 유방은 무릎을 꿇고 거짓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할 줄 알았던 후안을 가진 사람이었다. 심지어 경쟁자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는 오히려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던 낯가죽 두꺼운 사람이었다. ‘삼국지’의 유비 역시 후안의 대가였다. 유비는 목적을 위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눈칫밥을 먹어도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동가식서가숙’의 대가였고, 급한 일이 생기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무시로 대성통곡하여 살길을 찾았던 표정관리의 대가였다. 후안흑심의 흑심은 창이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을 동정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이 창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로지 목표에 집중하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이 이 창을 가질 수 있다. 간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조조는 승리를 위하여 가차 없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동정심을 극복하여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의 개척자들은 이 후안흑심을 지녔기에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 수 있었고, 아시아의 잘 나가는 화교 사업가들 역시 이 후안흑심의 마인드로 엄청난 성공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후안과 흑심이 성공의 열쇠라고 해도 회한은 남는다. 후안흑심으로 상대방을 이겼다고 그 승리가 진정한 승리는 아니겠다. 후안흑심으로 이긴다면 승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아름다운 승리라고 할 순 없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모두 후안흑심 소유자들로 보인다. /임병호 논설위원

‘첫눈’ 잡고(雜考)

엊그제 밤 첫눈이 내렸다. 펑펑 내린 함박눈이 아닌 흩날린 싸라기눈이지만 그래도 첫눈이다. 가로수마다 거의 다 낙엽졌다. 앙상한 가지에 어쩌다 떨어질듯이 매달린 한잎 이파리의 삭풍속 몸부림은 지고 싶어서일까, 지기 싫어서일까, 보도에 수북이 쌓인 채 이리저리 밀리는 노란 은행나무잎 더미를 밟기가 웬지 저어하다. 눈은 겨울철 꽃이다. 그런데 옛 눈이 아니다. 뭉친 눈으로 눈싸움을 하다가 냉큼 한입 베어도 티없이 맑던 그런 눈이 아니다. 눈속에 티 투성인 눈이지만 그래도 눈은 겨울철 꽃이다. 그런데도 예전같이는 반기지 않는 눈이다. 온 누리를 뒤덮은 하얀 눈 세상에 터뜨릴 감상 같은 건 이미 메말랐다. 조금만 뿌려져도 자동찻길부터 먼저 생각해야하는 걱정을 안겨주는 게 이즈음의 눈이다. 눈은 풍년을 가져온다. 그런데 눈이 내리는 것이 예전같지 않다. 인간의 극성으로 망가진 환경에 제 몸이 더럽혀진 탓일까, 아니면 지구의 온실 탓일까, 겨울철이 되어도 꽃눈 피우기를 점점 인색해 한다. 첫눈에 더욱 소회를 갖는 것은 눈이 귀해지는 탓이다. 눈은 세월을 재촉한다. 첫눈이 내리고 나면 이내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을 맞이한다. ‘희망의 새해…’라고 했는데, 이 해에 과연 뭘 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덧없이 간 세월에 보람보단 회한이 더 많은 삶의 궤적은 거듭 새로움을 다짐케 한다. 눈의 계절이 짙어간다. 비록 눈이 자주는 내리진 않을지라도 겨울은 눈의 계절이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먹고 살기에 더 힘든 것이 겨울이긴 해도 어차피 넘겨야할 고비다. 겨울은 재생을 채비하는 삼라만상의 휴식이다. 그리고 평화다. 비발디의 유명한 ‘사계’(四季)는 겨울을 평화로 묘사했다.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인 그의 그같은 비유는 신부였기 때문인 지 모르지만, 고전음악의 태두를 이룬 건 후세의 이유있는 평가다. 비발디의 곡엔 역시 달관의 경지가 있었던 것이다. 때가 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는 자연법칙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는 세월속에 변화의 수를 놓는 것은 인간사다. 고귀한 자수 그림을 세월에 각인하기도 하고, 추악한 자수 그림을 세월에 각인하기도 한다. 올 겨울의 한 가운데 서는 12월19일 대선은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큰 자수 그림을 수놓는 날이다. /임양은 주필

공부못한 학교, 문닫는다

학생들 성적이 나쁜 학교는 폐교한다. 한국의 얘기가 아니다. 영국에서 나온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성적이 나쁜 공립 초·중·고등학교는 대량 폐교도 불사한다는 것이 브라운 영국 총리의 교육개혁 방침이다. 그는 국정의 최우선을 교육에 두면서 그같이 밝혔다. 성적이 부진한 학교를 선별, 정비작업을 벌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워싱턴DC교육청은 최근 학생들의 성적이 나쁜 학교는 폐교하기로 하고 학력평가를 실시했다. 폐교 대상에 오른 학교는 학교만이 아니라 교원까지 퇴출키로 했다. 일시퇴출이 아니다. 교육계에서 추방하는 영구 퇴출이다. 이를 주도하는 교육감이 한국인 2세의 여성이다. 일본에선 수업시간을 늘렸다. 초등학교의 수업시간을 주 4시간 연장했다. 고등학교 평준화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고교 평준화 폐지에 따라 중학교 교육 또한 강화되고 있다. 고교 입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인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각별한 관심을 두는 것은 영국, 미국, 일본 등만이 아니다. 프랑스 등 서구, 핀란드 등 북구 등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21세기의 신 현상이다. 금세기는 지적산업시대다. 지적 능력이 경제를 가름하고, 지적 능력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더욱 치열한 두뇌 싸움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21세기다. 어느 때보다 실력이 우수해야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지적산업의 승부다. 이해관계가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대열을 나란히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적 실력은 학교 공부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기초부터, 중·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과정이 충실을 기하지 못하면 장차 국가경쟁력 대열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체격은 커지면서 체력은 떨어지는 것처럼, 학력(學歷)만 높고 학력(學力)은 떨어져선 국제사회의 지적 경쟁에 적응하기 어렵다. 이 정부는 하향 평준화를 교육개혁의 능사로 안다. 학교 공부 더 시키는 것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매도하기 일쑤인 잘못된 일부의 세력이 있다. 심지어 대학 입시를 폐지하겠다는 무책임한 대선 후보도 있다. 앞으로 20년, 30년 후를 생각한다면 이들이 씻지못할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한다. /임양은 주필

TV광고

초기 텔레비전 광고는 아나운서가 직접 상품을 들고 말하며 소개했다. 1956년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효시인 HLKZ-TV 시절이다. 민간자본으로 출범한 HLKZ-TV는 하루 2시간씩 방영했다. 텔레비전 광고에 CF가 등장해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은 영상과 음향의 저장 및 재생, 즉 녹화가 가능한 VTR 카메라가 나오고 나서다. 이 때가 1965년이다. VTR은 텔레비전 방송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 전에는 드라마 같은 것도 생방송으로 했다. NG가 나도 그대로 진행됐다. 당시의 드라마는 모두 단막극이다. 영상과 음향을 저장할 수 없어 연속극은 있을 수가 없었다. 연속극 또한 녹화방송이 가능한 VTR이 나오고 나서 시작됐다. 정보화시대 들어 CF는 더욱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컴퓨터 그래픽의 현란한 기능은 CF의 구도를 바꿔놨다. 그런데 문제다. CF 홍수시대다. 텔레비전 수상기에 넘쳐나는 것이 광고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석자리 반이다’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CF도 시간마다 되풀이 되는 덴 짜증이 안 날수 없다. “광고 때문에 텔레비전을 못보겠다”는 시청자들의 불평이 많다. 언론기본법이란 게 있었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낸 것으로 악법이다. 거기에 텔레비전 방송의 광고 방영규정이 있었다. 광고 방영을 1일 방영 시간대의 100분의 8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언론기본법은 그뒤 물론 폐지됐다. 지금의 광고 방영시간이 1일 방영시간대에 비해 얼마나 되는 진 잘 알 수 없다. 잘 알 수 없어도 100분의 8을 넘는 건 거의 분명하다. 악법이었던 언론기본법이 있을 때보다 시청자들이 더 텔레비전 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지상파 방송, KBS·MBC·SBS 등 TV에 중간광고가 나오면 지금은 또 약과다. 토막광고 앞뒤로 프로그램 제공 광고가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나오는 것도 모자라, 프로그램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광고를 또 지겹도록 봐야 하는 것이다. 지방파 방송의 중간광고는 연간 4천593억원의 수입을 더 늘리게 된다. 방송사들은 해마다 300억원에서 4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도, 이런 중간광고 수익을 보는 것이다. 중간광고는 일반광고보다 더 비싸다. 방송위원회는 이 정권말에 중간광고를 확실하게 대못질할 요량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청자 주권은 실종됐다. 시청자들을 보여주는대로 보는 방송사의 노예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감나무를 땔감으로 쓰면 7년을 빌어 먹는다’는 말이 전해 온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감나무를 소중히 여겼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감은 훌륭한 먹거리였다. 어릴 적 간식이었던 감꽃부터 시작해 늦여름엔 땡감을 소금물에 우려낸 우린감(침시)으로, 가을·겨울에는 홍시로, 봄이나 제사엔 곶감이나 감장아찌로 유일하게 사철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일년 내내 당분 공급원이었고, 미네랄과 비타민이 많아 과실 중 으뜸으로 쳤다. 감은 열매뿐 아니라 꼭지와 잎에도 효능이 있어 버릴 게 없는 과일이다. 민간요법에선 딸국질이 멎지 않을 때 물 1컵에 말린 감 꼭지 10개를 넣고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 꼭지 달인 물은 야노증이 있는 어린이에게도 도움이 된다. 떫은맛이 나는 땡감은 외약용으로도 사용해왔다. 타박상·화상· 동상 등을 입은 데나 벌에 쏘인 곳에 발라주면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출혈이나 설사를 할 때에도 감은 유용하게 사용됐다. 덜 익은 감을 깨끗이 씻은 다음 꼭지를 떼고 8쪽으로 나눈다. 솥에 물을 붓고 끓이다 감을 넣고 약한 불에서 끓여 한번에 2 ~3쪽씩 하루 2 ~ 3회 식사 전에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감잎의 효능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감의 어린잎엔 비타민 C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잇몸에 출혈이 있을 때 즙을 내어 치료제로 사용해왔다. 감잎차는 혈압을 안정시키고 음주 뒤의 숙취를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또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크며 노인이나 어린이들에게 특히 좋다고 전해진다. 꾸준히 마시면 고혈압·동맥경화증·당뇨병 등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감잎차는 떫은감이나 단감의 어린 잎을 깨끗이 씻어 뜨거운 솥에 덖은 다음 햇볕에 말려 만든다. 잎이 바싹 마르면 밀폐용기에 보관했다가 따뜻하게 데운 찻잔에 감잎 1찻술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 마신다. 감식초는 초산·구연산·사과산 등 유기산이 풍부하고 비타민C가 풍부해 입맛을 돋워주는 것은 물론 피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감나무 밑에 서있기만 해도 건강하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감은 가장 한국적인 과일이다. 선홍색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가을의 푸른 하늘을 이고 서있는 풍경을 보면 어디서나 고향처럼 푸근함이 느껴진다. 뒤란에 감나무 두 그루가 서있던 그 옛날 고향집이 그립다. /임병호 논설위원

구설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자녀의 ‘위장 채용’의혹과 관련해 일단 사과를 하긴 했지만 뒷말들은 여전히 많다. 자신의 딸이 미국에 가 있는 기간에도 월급을 준 일에 대해서만 잘못을 인정했을 뿐, 이 후보는 여전히 자녀들이 실제로 대명기업에 근무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나경원 대변인을 통해 “선거중인 상황에서 아들이 특정 직장에 근무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돼 올 3월부터 (이 후보 본인의 건물)관리를 시켰고 딸은 건물관리를 돕고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도의 급여를 줬다”며 “다만 딸의 경우 남편을 따라 유학간 동안 이 부분을 정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제 납부했지만 “만약 세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가 직접 해명한 것은 ‘위장취업의혹’에 대해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위장 전입 사건’의 경우처럼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답답하다. 이 후보의 딸과 아들의 위장 취업 회사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09-4번지 영포빌딩 지하 3층에 위치한 대명기업 사무실은 10㎡(약 3평) 정도의 좁은 사무실이다. 책상 3개와 소파 3개, 테이블 하나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명기업은 영포빌딩 내부의 기계장비 및 설비를 관리하고 청소와 경비 등 잡무를 맡아하는 관리업체로 기계직과 경비직, 청소원 등 1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지상 5층과 지하 3층 규모의 빌딩인데 직원들은 “이명박씨가 건물 주인이라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으나 아들이나 딸 등 자녀들의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후보는 큰 딸을 2001년 8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아들은 2007년 3월부터 현재까지 대명기업 직원으로 등재해 월 120만원씩의 급여를 지급했다. 이 후보의 사위는 검사 출신으로 2003년 9월 사표를 내고 2004년 7월 삼성화재 상무보로 입사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위가 있는데도 딸에게 건물관리를 시키고 한 달에 12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한 셈이다. 이 후보 같은 막강한 아버지가 있는 아들· 딸이 10㎡짜리 사무실에서 근무했을 것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 후보가 앞으로 또 무슨 구설수에 연루될 지 아슬아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잔대가리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염소들보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고 현지 외신이 전했다. 염소가 알아 들었다면 몹시 불쾌하였겠지만 마무드 대통령은 자신의 분배 위주 경제정책과 핵문제 처리 방식을 비판하는 개혁파와 보수파 인사들을 싸잡아 염소보다 못한 인간으로 표현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에서 스페인 총리의 발언에 끼어 들려다가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입 닥쳐”라는 폭언을 들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국왕이여, 입을 닥치지 않겠다”며 정면 반박했다고 한다. 그는 또 스페인 일간지와의 회견에서 “(스페인) 국민들이 국왕을 잘 통제해야 한다. 그는 매우 화가 나 마치 투우 같았다”고 비유한 뒤 “그러나 나는 솜씨 있는 투우사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 국왕을 투우로 격하시켰으니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외국 정상(頂上)들의 정상(正常)이 아닌 막말은 대만에서도 나왔다.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대만 중부 먀오리 지역의 반 정부 시위대와 마주친 자리에서 “중국이 그렇게 좋습니까? 중국과 사이에 막혀 있는 것도 없는데 중국이 좋으면 헤엄쳐 가보세요”라고 쏘아 붙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시위대의 반응이 어땠을까. 한국의 정치인들도 외국인들에게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보도된대로 지난달 22일 국회 법사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장에선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관련된 증인 채택 문제로 막말과 욕설이 난무했다. 두 정당의 대결은 이미 예상됐었지만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 선병렬 의원에게 “잔대가리 굴리지 말라”고 비아냥댔다. 선 의원이 “야, 이 XX야, 잔대가리가 뭐야”라며 욕설을 쏟아냈다. ‘대가리’는 ‘머리’의 속어다. 동물의 머리로도 통한다. ‘대가리가 터지도록 너희들끼리 싸워라’ ‘대가리를 잡다가 꽁지를 잡았다’ ‘대가리에 쉬 쓴 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 등 대가리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데 쓰인다. 대가리도 그러하거늘 ‘잔대가리’라고 했으니 그 기분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오늘날 특히 정치판에서 ‘잔머리’를 굴리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트루먼

트루먼 미국 부통령은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당선됐다. 루스벨트는 1930년대의 세계적 대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한 성공한 대통령이다.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이다. 소아마비의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1945년의 일이다. 백악관 집무실에 새로 달아놓은 샹들리에가 그는 귀에 거슬렀다. 원래가 검소하기도 하지만 미풍에 나부낄 때마다 ‘찰랑’ 거리는 소리가 매사에 골몰하게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됐던 것이다. 어느날 비서실에 대고 “저거 부통령 방에나 달아놔라”며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트루먼은 그 무렵 부통령으로 할 일도 별로 없었지만 루스벨트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다. 이러던 그가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것은 루스벨트가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뇌일혈을 일으켜 갑자기 숨진 유고 때문이었다. 부통령에 당선된지 82일 만이다. 트루먼은 대통령이 된 해인 1945년 고뇌끝에 단안을 내린 원자폭탄 투하로 그해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 2차대전을 종식시켰으나 원폭탓으로 한동안 악명을 얻었다. 1948년 임기가 끝날 즈음 그의 국민적 지지율은 30%였다.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의 유세를 벌인 여행길이가 3만5천㎞를 넘었다. 이해 11월2일 공화당의 듀이와 겨룬 미국 대통령선거는 민주당인 트루먼의 압승으로 끝났다. 1950년 6월25일 북측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와 같았던 한국 전선에 미군을 재빨리 투입시킨 것이 재선된 트루먼이다. 신장 169㎝는 서양인으로는 작은 키다. 이 단구의 대통령 매력은 서민적 행보와 결단력이다. 오늘날까지 용기있는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꼽는 ‘베스트 10’에 든다. 그런데 트루먼이 자신의 대통령 선거 체험을 통해 한 말이 있다. ‘인기와 매력은 승리의 요인 중 일부 일 뿐이다.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행운이다. 내 자신의 경우, 나에게 그토록까지 잘 되도록 할 의도가 결코 없었으나 운은 항상 생각보다 가까이 나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행운은 국민이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해도 그같은 운이 따르지 못하면 목적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회고록에서 밝힌 한 대목이다./ 임양은 주필

퇴짜 놓은 次官자리

대통령이 젊은 탐험가에게 청소년 담당 정무차관직을 제수했으나 젊은 탐험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각에 들어가서 나를 희생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외신으로 전해진 프랑스서 있었던 일이다. 프랑스는 참 흥미스런 나라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청소년 담당 정무차관직 제의를 거절한 것은 29세의 퐁트누아로 여성이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노를 저어 대서양을 횡단한 게 2003년이다. 이태 뒤엔 역시 노를 저어 남반구 일주 기록을 151일의 사투끝에 성공했다. 퐁트누아는 이외에도 여러 탐험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청소년들의 우상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녀에게 정무차관 자릴 주려고 한 건 퐁트누아의 용기와 희망을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불어넣어주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무차관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은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계속된다”는 것이 퐁트누아의 말이다. 세계 탐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과 방송프로그램 등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틈새없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을 정부의 차관 자리에 앉히려고 한 것도 파격적이고, 차관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마다한 것도 파격적이다. 차관은 장관직과 함께 별정직으로 정부 부처의 장관 다음 가는 수장이다. 국내에선 선망의 대상인 것이 장·차관이다. 장관이나 차관을 한 번 지내면 퇴임 후에도 평생 ○장관님, ○차관님으로 불리는 게 사회적 예우의 관행이다. 그같은 관행이 좋은건 지 나쁜건 진 둘째 치고, 단명의 장·차관을 지낸 사람이 많다보니 언제 무슨 장·차관을 지냈는지 모르는 사람도 숱하다. 그렇듯 장·차관을 지낸 이들이 많지만 매력있는 선망의 자리인 것은 여전하다. 웃기는 건 해당 부처의 업무엔 전혀 문외한이 장·차관에 기용되는 사례가 적잖은 사실이다. 이래서 ‘(○○부의) 국장은 못해도 장·차관은 한다’는 말이 있다. 실무 집행은 못해도 폼만 잡는 허수아비 장·차관은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라고 차관 자리가 우리나라와 다를 건 없다. 높은 벼슬 자릴 자신의 일이 바빠 내가 할 자리가 아니라며, 미련없이 거절한 젊은 퐁트누아의 처신이 신선하다./임양은 주필

가렴주구(苛斂誅求)

청와대는 전군표 국세청장의 사표를 미루다가 사상 처음 현직 국세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낭패를 맛보았다. 그토록 감싸야 했던 연유가 뭔지 배후가 알쏭달쏭하다. 전 청장은 알려진대로 지난해 7월부터 올 1월까지 수뢰혐의로 따로 구속기소된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포괄적인 인사청탁 대가로 수차에 걸쳐 현금 5천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전 청장은 취임 첫날부터 정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1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7월18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돌아와선 바로 뇌물부터 받아 챙긴 것이다. 이런 비리가 드러나자 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시켜 구치소에 있는 정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돈 준 사실을 가슴에 묻고 가라’며 은폐를 시도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한데, 또 충격인 것은 그같은 상납이 관행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에 의하면 국세청 조직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영장에 ‘관행적 상납’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관행적 개연성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관행이란 관습이다. 즉 보편적으로 자행되는 습관인 것이다. 국세청장에게 상납하는 게 보편적 습관이라면 비단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만이 상납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세청장이 지방국세청장의 상납을 받으면, 지방국세청장은 호주머니 돈으로 상납하는 게 아니다. 그도 상납받은 돈 가운데서 상납할 것이며, 이런 구조적 비리의 다단계 상납 돈은 납세자들을 울궈낸 돈인 것이다. 옛 중국의 공자가 지금의 산동성 태산을 지나는데 한 여인이 슬피 울어 연유를 물었다. 여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오래전에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는데, 얼마전에 남편이 물려간데 이어 이번에는 아들이 호환을 당했다는 것이다. 삼대가 이어 호랑이에게 변을 당한 것이다. 그럼, 왜 이 무서운 산중을 떠나지 않느냐고 하니까 여인의 말이 또 뜻밖이다. 관리들이 와서 세금 거둬가는 행패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을 보며 “가정(苛政)이 맹호보다 무섭구나!”하고 탄식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물론 대부분의 세무공무원들은 청렴한 가운데 열심히 일한다. 다만 전 군표 국세청장 같은 사람이 있어 그런 위인을 받들려다 보니 ‘명랑세정’ ‘조세정의’를 무색케하는 비리가 나오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공중전화

우리나라는 1954년 8월 16일 사람이 관리하는 유인(有人) 공중전화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8년 뒤 동전을 투입하는 공중전화기가 설치됐고 이후 공중통신망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공중전화가 사라져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도시지역의 낡은 공중전화 부스가 경관을 해친다며 철거를 요청하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 상가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적지 않다. 공중전화 부스를 뜯어낸 자리에 은행현금자동입출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도심을 벗어나면 공중전화 찾기도 어렵다. 물론 휴대전화 가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로 70, 80대 노인은 물론 중·고교생까지 대부분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해 공중전화는 애물단지 신세가 돼버렸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일 년에 한 차례도 공중전화를 쓰지 않을 정도로 통화량이 줄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접을 수는 없다. 공공성이 강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KT 자회사로 공중전화 사업을 하는 KT링커스가 문자메세지(SMS) 발송 기능이 있고 교통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는 신형 공중전화기를 올해부터 매년 1만 대씩 보급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전국에 보급한 신형 전화기는 고작 120여대 분이다. 그것도 지난주에야 설치했다. 내년 설치 계획은 아직 잡지도 못했다. 대신 기존 카드전화기 2만 대를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개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신형 전화기 제작 공정에 문제가 생겨 생산이 원활치 않아 보급이 늦어지고 있다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신형 전화기의 보급 예산을 제대로 학보하지 못했다. 적자를 내는 사업에 돈을 들일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중전화 통화료를 3분당 70원에서 1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공중전화 사업이 맥을 못 추기 시작한 것은 이동전화 가입자가 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다. 1997년 43만 대이던 공중전화 보급 대수는 현재 22만 대로 줄었고, 매출액도 2001년 3천406억원에서 지난해 말 784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적자 규모는 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이 공중전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사업 자체를 포기할 순 없다. 공중전화 부스 밖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던 모습도 이젠 추억 속의 풍경이 됐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은행나무

고생대인 3억년 전쯤 생겨났다는 은행나무는 공룡이 이 땅을 지배하던 ‘쥐라기’에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빙하기 때 대부분 멸종됐고 중국 저장(浙江)성 일대의 좁은 지역에서만 겨우 살아 남았다. 지금도 자연생태의 은행나무 자생지는 세계에서 그곳이 유일하다. 수천년 전 우리 땅에서 멸종됐던 은행나무는 중국에서 유학과 불교가 들어오면서 문묘와 향교, 사찰에 한두 그루씩 사람의 손으로 심어져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초등학교 교정이나 관청에 한 두 그루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지금은 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져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은행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은 없다. 은행나무가 우리 땅에선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수 많은 열매를 달지만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스스로 싹을 틔우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일일이 심고 가꾼 세월의 흔적이다. 우리나라엔 전국에 378건의 천연기념물이 있는데 그 중 은행나무가 22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대략 수령이 천년 정도된 ‘노거수(老巨樹)’들이다. 천년 세월도 그렇지만 자태도 빼어났다. 은행나무 노거수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을 따르자면 수령이 1천100살이다.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것은 충남 금산의 진악산 자락 보석사의 은행나무다. 보석사 창건 당시 심었다면 나이가 1천80살로 추정된다. 강원 원주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80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청춘이다. 가지가 넓게 퍼져 높이보다 폭이 더 넓어 그 가지마다 빽빽하게 은행잎이 달린다. 나무의 모습이 범상치 않은데 나무를 지키는 흰뱀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깃들었다. 영월읍의 1천년 된 은행나무에도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곤충이나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이 은행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보살펴준다는 전설이 있다. 충북 영동의 천태산 자락에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는 35m의 높이로 뒤편의 절을 온통 가리고도 남는다. 충북 괴산의 읍내리 은행나무, 충남 금산 요광리 행정의 은행나무, 부여 녹간 마을의 은행나무 등도 유명하다. 가을 이맘 때 은행나무를 바라보면 사람의 가슴도 노랗게 물든다./임병호 논설위원

북송 탈북자

북한과 일본 정부는 1959년 조총련계 재일동포와 가족들을 북한에 송환하는 이른바 ‘북송사업’을 체결했다. 그해 12월14일 975명의 동포를 태우고 북한 청진항으로 출발한 이래 1984년까지 총 186차례에 걸쳐 9만3천여명이 북한에 송환됐다. 북한은 노동력 부족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거주지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북송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 북송 탈북자와 가족들의 일본 입국이 부쩍 늘어났다. 탈북 이유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지만, 1996년 이후 11년 동안 170여명이 일본 땅을 밟았다. 올해 들어서만 21명이 새로 일본에 들어왔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시름은 점점 깊어진다. 북한에서 태어난 자식, 손자들이 탈북 대열에 합류하면서 탈북자들은 더욱 현지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일본 사회의 싸늘한 분위기 탓이다. 북송 탈북자와 가족들은 일본에 오기 전부터 마음의 병이 들었다. 북한에서 북송 동포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식량난으로 친족이 굶어 죽거나 지인이 공개처형을 당했던 기억 때문이다. 북한에선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와서는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과 설움을 받는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 중국에서의 힘들었던 도피생활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일본 당국이다. 인도주의보다는 ‘골칫거리 쫓아내기’의 측면으로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추진했던 일본 정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역사적인 빚을 의식하는 듯 북송 탈북자의 일본 입국에 대해 ‘허가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태도다. 일본 국적인 일본인처에 대한 지원조차 민단의 탈북자지원센터가 맡아서 할 정도다. 더구나 북송 일본인처를 제외하곤 탈북자를 원칙적으로 ‘무국적자(북한 국적자)’로 규정한다. 재일 동포사회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냉대와 압력이 “재일 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또 다른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북송동포에 대한 ‘결과적 책임자’로서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과 함께 북송사업을 추진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선 ‘북한 출신’이란 혐오를 받고, 조총련에선 ‘배신자’로 낙인 찍힌 북송 탈북자들의 문제를 우리 정부도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바위섬

지구의 온난화는 생태계를 위협하면서 환경의 돌연변이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남태평양 섬 가운덴 점차 수몰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북극해에서는 새로운 섬이 발견되어 연안국끼리의 영유권 다툼이 일 전망이다. 세계 최대의 섬으로 꼽히는 북구의 그린란드는 이름처럼 초원의 섬이 아니다.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동토의 땅이다. 그런데 올 여름 한 미국인 탐험가에 의해 그린란드 북방 4㎞ 해역에서 새로운 바위섬이 발견됐다. 지구 최북단의 섬으로 북극점에서 불과 700㎞ 거리인 섬의 규모는 길이 40m 폭 30m에 해발 4m 높이의 바위덩어리다. 세계 해양학계에서는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해의 유빙들이 녹아 이동하면서 바닷속 바위가 섬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얼음이 더 녹으면 바위섬의 면적도 더 넓어지고 또 다른 바위섬이 생길것으로 보여져 북극해 연안국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얼음덩어리 땅인 그린란드의 남부 또한 땅이 녹아 이름 그대로 초원지대를 나타내는 곳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바위섬의 발견으로 고무된 것은 그린란드에 주권을 행사하는 덴마크다. 덴마크가 북극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유권 주장은 어로권, 항로 개설권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지않은 나라가 많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극해 연안국들이 덴마크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치 않고 있는 것이다. 해양경계선 획정에 기준이 될 북극해의 이 작은 바위섬 하나가 북극해 영유권을 둔 연안국들의 새로운 분쟁의 씨로 싹트고 있다. 인류의 재앙인 지구의 온난화로 생긴 바위섬이 국제사회의 해양경계선 분쟁으로 비화한 건 비극인 지 희극인 지 모를 정말 아이로니컬 한 일이다. 북극해의 이 섬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생각되는 것은 역시 바위섬인 동해 고도의 독도다. 울릉도 동남 약 79㎞ 지점에 있는 독도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에 속한다. 일본과의 어로 등 해양경계선을 이루는데 결정적 거점의 역할을 한다. 1950년대 일본의 항공정찰, 함정탐사의 빈번한 위협을 무릅쓰고 끝내 지켜 오늘의 독도를 가져온 당시의 독도의용수비대는 젊은 민간인들이다. 해식지형을 이룬 독도는 그린란드 북방의 바위섬처럼 유빙이 녹아 생긴것이 아닌 태고적의 화산도다./임양은 주필

기초노령연금

일본의 제1금융권, 은행가에서는 노인 서비스를 위한 신상품 경쟁이 한창이다. 약 22%인 금융자산의 예금주가 은퇴자금을 맡긴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국내 노인의 은행 예치율은 잘 모르겠다. 잘은 몰라도 별무할 게 거의 틀림이 없다. 우리의 노인들은 일본 노인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돈이 없다. 공무원으로 있다가 퇴직해도 친구에게 삼겹살에다가 소주 한 잔을 사는 것은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은 사람은 자신이 사업을 한다던가, 아니면 아들 사업자금으로 빼앗기다시피 주어 다 날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내 S동 M노인정 회장은 건축업을 하다가 은퇴했다. 사업자금을 바라는 아들들에게 그 이는 이렇게 호통쳤다고 한다. “내가 평생 뼈빠지게 번 돈을 왜 너희들에게 주느냐? 공부시키고 장가들여 주었으면 됐지 뭘 더 바라! 너희들도 뼈빠지도록 벌어라!! 어차피 내가 죽으면 니네들 것인데 뭐가 그리 바쁘냐”고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 아들들 역시 자수성가 했다. 나이 많은 노인일수록 재산이나 돈을 지녔다가 자식들에게 나눠주어선 안 된다. 부모가 지녔을 땐 대접하다가도 일단 부모 손을 떠나 자식들 수중에 들어가면 또 다르다. 자식들이 불효해서가 아니라 원래 인간의 심성이 그렇게 돼 있다. 한국의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돈이 없긴해도 그 노인정 회장처럼 은행에 상당한 돈을 예치시킨 노인이 더러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분 말이 걱정이라고 한다. 내년 1월부터 실시되는 기초노령연금을 타기 위해 은행 예금을 찾아 차명계좌로 분산시키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차명계좌를 자녀 아니면 누구 앞으로 하는진 모르지만, 비밀번호를 숨기고 통장이며 인감은 갖고 있을지라도 차명계좌 본인이 분실신고를 내어 통장을 바꾸거나 돈을 찾으면 그만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좋지만 정부의 분배정책, 복지시책이란 게 이렇듯 헛군데로 새는 예산이 적잖을 것 같다. 상당한 돈을 갖고 있으면서 쥐꼬리만한 연금을 탐내는 노인들도 마뜩찮다. 월별로 기껏 2만원에서 8만원을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기 위해 차명계좌를 만들었다가 지닌 돈을 송두리 째 떼인 노인들이 안 나오리란 법이 없지 않을 것 같다./임양은 주필

양극화 해소

정부의 내년 예산안 총수입은 274조2천억원에 총지출은 257조3천억원이다. 겉으로 보면 16조9천억원의 흑자다. 그러나 속으로는 적자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예산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한 실제 나라살림 살이는 적자가 11조원이다. 내리 4년째 적자예산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설 무렵의 나라빚이 133조원이던 게 185조원이 늘어 무려 318조원에 이른다. 연간 이자만도 17조원이다. 방만한 국정 운영이 나라를 이런 빚더미 위에 올려놨다. 성장보다 분배에 치우친 균형상실의 원인도 크다. 노숙자에게 주는 돈을 예로 든다. 매월 40만원씩 나가지만 시루에 물붓기다. 자립을 위해 쓰여지기 보다는 대개는 낭비로 탕진된다. 예산 지출의 효과를 확인하는 장치도 없고 확인하러 들지도 않는다. 이 정부의 분배정책이란 것이 거의 이런 식이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한 말이 있다. “성장동력 악화로 재정 수입이 줄고, 사회통합과 복지확대를 위한 재정수요가 급증해 적자구조로 바뀐다”는 것이다. 경제의 성장동력은 온갖 규제로 옥죄면서 무분별한 과잉복지로 재정파탄이 우려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008년도 예산안 257조원도 성장보단 예의 분배에 치우쳤다. 이 정권 사람들은 물러가면 그만이지만 적자예산은 결국 국민 부담이다. 이 정부는 임기를 마치면 그만이지만 12·19 대선으로 들어설 다음 정부가 잘못된 적자예산을 떠안는다. 나라 살림이나 개인 살림이나 다 마찬가지다. 경제가 잘 돌아가야 수입이 늘어 살림 형편이 펴진다. 경제성장은 기업의 활성화가 전제되고 활성화는 규제가 풀려야 가능하다. 기업을 사갈시하는 규제 강화는 오히려 민중의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든다. 분배로는 양극화 해소가 불가능하다. 양극화 해소를 말하는 이 정부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 연유가 이에 있다. 물고기를 배급하기 보단 물고기를 잡도록 해줘야 한다. 잘 벌어먹고 살도록 하기 위해선 성장이 우선이다. 분배는 그 다음이다. 적자예산을 아닌 것처럼 둔갑한 것은 수치의 농간이다. 이 정부의 수치 놀음은 이미 이골이 났다. 조심해야 할 것은 요즘 대선 후보들이 갖가지 공약에 쏟아내는 수치 발표다. 달콤한 말일수록 허구가 많은 것을 유의해야 한다. 뭣보다 급한 것은 무너진 중산층 복구다. 양극화 해소는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비로소 가능하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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