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세계캠핑대회

올 여름철 가평은 특별하다. 그동안 가평군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세계캠핑대회가 드디어 성황을 이룬다. 오는 7월25일부터 8월4일까지 열리는 제74회 세계캠핑대회는 33개국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다. 캠핑을 통해 각국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우의를 두텁게 쌓는 국제레저문화 교류의 축제다. 참가자가 캠핑카나 야영텐트를 직접 가져오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며,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통나무집을 빌려 캠핑을 즐긴다. 산자수명한 북한강의 자라섬, 연인산 일원 34만㎡ 행사장에는 대규모 숙영시설, 클럽하우스, 공동샤워장 등 갖가지 편의시설 조성이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다. 국내 신규참가자 신청을 오는 4월 말까지 받는 것은 내국인 마니아의 기회 균점을 위해서다. 이번 대회 참가로 한국캠핑캐바라닝연맹에 가입되면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의 국제회원증이 발급된다. 국내외 캠핑장 이용에 할인 등 혜택을 갖는다. 대회 기간에 중·고·대학생 대상의 세계청소년 캠핑대회가 아울러 열리는 것은 금상첨화다. 조직위원회는 이에 참가할 국내 중·고·대학생 또한 500명을 모집한다. 가평군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청정의 고장이다. 청정의 자연경관을 살린 세계캠핑대회는 그 성가(聲價)를 국제사회에 널리 떨친다.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가져온다. 농업경제가 주축인 지역사회가 외국인 관광지로 발돋움하는 전기를 갖는다. 대회를 마친 뒤에도 각종 시설물을 관광자원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여름철이면 서울 등 다른 고장에서 몰려들곤 한 피서객 인파가 이젠 산골이 아닌 국제시설의 야영장 이용이 가능하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피서 고장이 되는 것이다. 대자연 속 낭만이 가득한 가평은 세계캠핑대회를 계기로 유서깊은 가요축제, 재즈페스티벌 등과 더불어 앞으로 격조높은 정서가 배양된다. 레저문화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것이다. 군세가 열악하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연 조건을 최대한 실리화하는 창의력과 단합력이 놀랍다. 자치단체가 노력하기에 따라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에게 행정가치 배분을 얼마나 많이 주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가평은 산도 수려하지만 북한강 수중섬 또한 청명하다. 우거진 숲과 맑은물이 공존한다. 세계 33개 나라의 캠핑 마니아들이 모여드는 것은 경하롭다. 올 여름철 가평은 특별하다./임양은 주필

용서와 이해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주변의 잠재적 범죄자들을 미리 알아내 경계하고 싶은 것은 안전한 삶을 희구하는 모든 이들의 본능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는 19세기 이탈리아 의사 롬브로소다. 그는 수천 명 교도소 수감자들의 외모를 분석한 끝에 ‘팔이 길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강한 턱에 주전자 손잡이 같은 귀를 한 사람’들을 ‘타고난 범죄자’ 유형으로 결론지었다. 그는 더 나아가 ‘폭력범은 이마가 넓으나 강간범들은 좁고, 방화범은 얼굴이 길고 말랐으나 사기꾼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쪘다’는 따위로 세분화했다. 범죄성향의 인간을 외양으로 파악하려는 이런 시도는 실증적 반박에 의해 곧 배척됐다. 굳이 엄밀하게 분석하지 않더라도 선량한 내 이웃, 내 가족 중에도 이렇게 생긴 이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선 영국 사회학자 고링 등에 의해 범죄와 지능 사이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범죄자들의 지능이 평균적으로 낮으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론이었다. 물론 이 역시 같은 이유로 폐기됐다. 현대의 범죄 연구는 외형적, 신체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 환경적 요소와 그에 따른 개인별 정신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동 성범죄는 어디서든 예전부터 큰 문제였다. 19세기 프랑스에선 연 평균 900건이 넘는 강간사건 피해자의 75%가 어린이였다. 이는 당시 광범위하게 유포되기 시작한 포르노소설 때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 범죄학에선 아동 성범죄의 특성을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유년시절 왜곡된 경험으로 인해 아동에게 특별히 성충동을 느끼는 도착자이며 또 하나는 열등감과 소외감, 무력감, 자기비하 등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부류다. 어느 경우든 정신분열증 환자거나 최소한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동 성범죄자의 완전 신원공개에서부터 전자팔찌, 주거 제한, 문패 부착, 공소시효 철폐, 집행유예 금지 등 온갖 처벌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장기 격리시킨들 풀려나는 순간 재범 가능성은 되살아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유의 정신병적 범죄자에 대해 치료와 교육을 염두에 두지 않고 중벌주의에만 의존하려는 것은 거꾸로 우리 사회를 자칫 더욱 위험한 환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용서를 이해로 착각하는 족속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도의원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급여를 월급제에서 일당제로 바꿨다. 일본 후쿠시마겐(縣) 야마쓰리마치(町) 기초의회다. 의회에 출석하는 날만 일당 3만엔(30만원가량)을 지급한다. 월급제에 비해 연간 2천500만엔(2억5천만원 가량)인 75%의 예산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방의원 일당제 전환 바람이 확산되는 모양이다. 국내 지방의회는 월급제를 시작하기가 바쁘게 이듬해 전국 평균 약 40%나 올렸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경기도의회는 보좌관·인턴·책상 타령을 늘어놓기가 일쑤다. 무슨 업무추진비도 올려야 한다고도 한다. 월급제가 아니고 일당제일 때도 의회에 출석한 날만 일당을 받은 게 아니다. 의회 출석에 관계없이 100% 전원이 100% 출석으로 월급에 버금가는 일당을 챙겼다. 이미 알다시피 11명의 도의원이 4·9 총선에 출마한다며 사퇴했으나 정당 공천은 단 1명만 받는데 그쳤다. 나머지 10명의 무소속 출마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분수를 모르는 처신에 골탕 먹는 건 지역주민이다. 지역주민 세금으로 도의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도의원 시켜달라고 해서 시켜주었으면 임기를 채우는 것이 선거구민과의 약속이다. 약속을 멋대로 어기고 그만 둔 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를 입히는 보선비용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도의원들이 국회의원을 넘본 것은 지역구만이 아니다. 전국구도 넘봐 적잖은 한나라당 도의원들이 비례대표 입후보를 당에 신청했다. 지역구와 달라서 전국구는 도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신청했는 데 모조리 낙방했다. 도의회 임시회 개회도 외면한 채 총선 바람에 들떠 의회를 비우고 다니더니, 탈락에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소식이다. ‘앉을 자릴 보고 다릴 뻗으라’고 했다.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들 줄 알았다면 정말 앉은 자리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현직 지방의원을 비례대표 후보로 넣어 보선을 치르게 만들면 당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을 건 자명한 일이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당이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워줄 줄 알고 헛물켜고 다닌 것은 당치않은 출세욕에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비우고 도의원 본연의 일에 충실을 기해야 한다. 지방의원의 본분은 지역주민의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는 데 있다. 지방의회가 지방세 잡아먹는 ‘하마’가 되어서는 직분을 일탈해도 심히 일탈하는 것이다. 일본은 지방자치 선진국이다. 일본의 지방의원처럼 지역사회, 지역주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방의원이 되어주길 바란다. /임양은 주필

‘외설’의 변화

드러낸 여성의 종아리를 두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화학당(이화여대) 초기에 여학생 교복인 통치마가 종아리를 드러냈을 당시엔 말이 많았다. 이화학당 교명은 1886년(고종 26년) 미국 선교사 스크렌튼 부인이 학교를 세운 이듬해 명성황후가 내린 이름이다. 드러낸 여성의 무릎 위를 외설적으로 볼 사람은 없다. 그러나 1915년 숙명고등여학교(숙명여고) 배구부 유니폼이 무릎살을 드러냈을 당시엔 부모들의 항의 소동이 거셌다. 1906년 엄 귀비가 세운 숙명고등여학교 첫 입학생은 5명이었다. 여성의 초미니 스커트 차림을 이상하게 보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엔 경찰관들이 잣대를 들고 다니며 무릎 위로 15㎝ 이상을 드러낸 여성은 붙잡아 훈방하거나 즉결심판에 넘겼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20대 여성의 다리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30대 남자가 ‘성폭력범죄처벌법’ 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규정 적용으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났다. 쉽게 말해서 외설 부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촬영에 동의를 얻지않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길 가는 사람을 허락없이 사진 찍었다고 모두 처벌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렇게 되면 우려되는 점은 있다. 사진을 마구 찍어댈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마구 찍어대다가는 또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사진찍은 것을 알고 삭제를 요구하거나 필름 반환요구를 거부할 시엔 사안이 무죄가 난 경우와는 달라서 처벌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계가 “무죄확정은 잘못됐다”며 발끈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여성계 어디서 그런진 몰라도 이젠 여성 문제를 좀 더 수준높게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할 때다. 감각적인 것 보다는 실질적인 문젤 추구하여야 한다. 예컨대 사법고시도, 외무고시도,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졸업도 으레 여성들이 수석을 싹쓸이 하는 세상이다. 전문직 진출에 여성 비율이 늘어 남성들이 위협받는 지경이다. 우먼 파워에 어울리는 여성계의 활동이 돼야한다. 봄이 왔다. 봄은 여성의 옷맵시 따라 짙어진다. 점점 엷어지다가 핫팬츠에 배꼽티 차림이 거리에 등장할 것이다. 돌아보면 신여성 출현 100여년만의 ‘상전벽해’ 같은 변화다./임양은 주필

사형제

‘법 살인’이라고 한다. 사형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하늘이 내려준 천부의 자연법적 생명권을 실정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것은 살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형 폐지론으로는 법원의 오판을 든다. 판사도 사람인 이상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재판으로 인명을 빼앗는 것도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국내 법조사상 사형의 확정 판결이 오판으로 입증된 예는 없다. 재판의 삼심제도 외에 재심의 길도 열려있다. 불행히도 정치재판으로 인명을 빼앗은 적은 있다. 진보당 사건, 인혁당 사건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정치재판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삼부를 장악한 독재체제에서 가능한 것이 정치재판이다. 군사정부 역시 이에 포함된다. 1인 독재정치, 군사독재정치가 가능한 시대는 이제 지났다. 사형제도는 있어도 집행이 되지 않은지가 벌써 10년이 넘는다. 김대중 정권부턴 단 1건도 집행되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사형 집행은 전에도 지지부진했다. 최종 집행 승인권자인 법무부 장관이 결재를 미적거리며 미루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가 130여명에 이른다. 교정정책 및 형사정책상의 문제점이 상당하다. 사형수 중에는 ‘묻지마 살인’, ‘생매장 살인’, ‘일가족 살인’ 등등 엽기적 살인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사회방어다. 사형제도는 사회방어의 경고적 의미가 내포됐다.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가 적잖으나, 우리 나라가 그들 나라만큼 사회가 안정되지 못한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이런 건 있다. 형사관련법 가운데 사형 조항이 너무 많다. 이를 점차 재정비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는 사회 혼란을 심히 부추긴다. 안양 두 초등생을 살해한 정 아무개는 집에서 본드를 흡입, 성 추행한 뒤에 죽여 시신을 유기하기 쉽도록 심하게 훼손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군포 전화방 도우미 실종 또한 정 아무개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여죄가 있을지 모른다. 사형 폐지론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그같은 피해를 입어도 사형 폐지를 말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 사형은 목적형주의가 아닌 응보형주의의 일면이 있긴하나, 무기징역으로 불가한 인성 상실을 인간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제도다. 자연법을 들먹여 사회의 인권방어를 침해하는 것은 본연의 해석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中國化?

티베트 유혈사태는 중국 정부의 티베트로의 한족 유입과 티베트인들에 대한 의식 변화 강요 정책 탓이다. 한족이 대거 유입되면서 일자리가 한족에게 더 많이 주어지고 있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중국이 티베트인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려하고 있는 점도 티베트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2005년 티베트 자치구 당 서기로 임명된 뒤 강경 노선을 취한 장칭리 당서기의 통치 방식이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공산당은 티베트인들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 장칭리는 ‘애국심 교육’ 등을 통해 중국 공산당을 미화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티베트 정부 산하 공무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는 글을 쓰라고 했으며 학생들이나 공무원들의 사원 방문이나 종교행사 참석을 불허했다. 미국 경제지 비지니스 위크는 티베트의 소요 사태가 낙후된 서부지역을 발전시키려는 중국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연안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한 서부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서부 대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중국 정부는 서부 지역의 12개 성에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해 400억달러를 투자했다. 서부지역 개발 이면엔 동부의 연안지역과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물론 소수민족들의 반발을 완화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서부지역은 지난해 14.5%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는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서부 12개 성 중 9개 성이 경제규모가 가장 낮은 하위 10개 성에 여전히 이름을 대거 올리는 상태다. 중국 정부는 관영 언론에게만 티베트 수도 라싸 현지 취재를 허용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라싸 시내 대부분의 상점이 영업을 재개했으며 초등학교 및 중·고교 등 각급 학교들이 정상정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 정부는 간쑤성 마취현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가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티베트를 속국화하려는 중국의 속셈이 드러났지만 ‘공산당은 티베트인들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란 강요는 국제정세를 무시하는 오만이다. 티베트 사태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김연아, 잘 했다!

200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군포 수리고등학교 학생 김연아 선수가 5위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20일(한국시간) 새벽 스웨덴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움 빙상장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오페라 박쥐 서곡에 맞춰 활기차게 연기를 시작했다. 김연아는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깨끗하게 뛰면서 가산점까지 확보했지만, 두 번째 과제인 트리풀 러츠를 뛰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어 새벽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던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실점이 안타까운 게 아니다. 착지 불안으로 넘어지던 순간의 김연아의 마음을 국민들은 더 걱정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의연하게 ‘강철 심장’ 다운 면모를 앞세워 안정적으로 연기를 이어나갔고, 스파이럴과 스핀, 스텝을 마친 뒤 더블 악셀(공중 2회전반)과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2분50초의 연기를 끝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사실 김연아의 이번 대회 참가는 ‘고관절 부상때문에 통증이 심해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연아도 연기를 마친 뒤 “(점프를 뛰고나서) 고관절에 통증이 왔다. 순간적으로 다음 연기에 대한 걱정이 생기면서 점프 타이밍을 놓쳤다”고 설명했다. “넘어진 이후로는 연기에 집중하느라 통증을 느꼈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김연아는 지난해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선 3위를 했었다.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선수라도 똑같이 갖고 있다. 지난해 3위를 했던 아쉬움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잘해서 우승을 하고 싶다”고 싶다는 소망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체력 상황이 100% 상태는 아니다. 통증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매일 정도에 차이가 있다”며 “아직 한 가지 점프가 확신이 서지 않아 힘들긴 하겠지만 집중해서 경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지만 “그동안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를 많이 해왔다. 이번 역시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본다”며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연아는 원래 ‘역전의 명수’다. 21일 치러지는 프리스케이팅 연기에서 한국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향한 대회에참가한다. 세계적인 빙상무대에서 펼쳐질 ‘김연아표 매직쇼’를 기대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종교 개혁

중세 유럽에서 교황의 권력은 국왕의 권력보다 강했다. 11세기 후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히리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 맞서다가 눈 속에서 3일 동안 빌어 겨우 용서를 받은 사건(‘카노사의 굴욕’)은 교황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고 주로 쥐나 벼룩이 옮기는 전염병 페스트(흑사병)가 퍼지면서 신자들의 신앙심이 떨어지면서 교회의 힘이 약해졌다. 그후 왕과 봉건 제후들은 교황의 권위에 대항했고, 13세기에 교황은 프랑스 국왕의 명령으로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끌려가게 되는 수모를 당했다(‘아비뇽 유수’). 힘이 약해진 많은 교회들이 권력과 타협, 세속화됐다. 당시 독일은 정치적 분열로 교황의 착취가 심했다. 이때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고쳐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벌을 면하는 증서인 이른바 ‘면죄부(免罪符)’를 판매했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발표, 교황의 권위에 맞섰다. 루터에게 구원이란, 면죄부가 아닌 오직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이었고, 권위는 교회가 아닌 오직 성서에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교황 레오 10세와 독일 황제 카를 5세는 루터에게 주장을 거두어들일 것을 요구했으나 많은 제후와 농민들이 루터를 지지했다. 루터파는 황제와의 오랜 싸움을 전개했고 그 결과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회의를 통해 독일에서 루터 파 교회가 공인됐다. 스위스 제네바에선 칼뱅이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그는 인간의 구제는 신에 의하여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다. 그는 신자가 자기의 직업에 근면하게 종사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중산 시민 계층에게 받아들여져 초기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됐다. 칼뱅교도를 영국에선 청교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네덜란드에선 고이센이라고 불렀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중세 기독교 세계의 통일은 무너지고 신교(루터 파, 칼뱅 파)와 구교(가톨릭)의 대립이 심해졌다. 대립은 종교 전쟁으로 폭발했는데, 가장 큰 종교 전쟁은 30년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1648년 가톨릭, 루터 파, 칼뱅 파에게 모두 신앙의 자유를 진정하는 내용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마무리됐다. 며칠 전 “하나님을 믿어야 면죄부를 받는다”고 호소하는 한 열성신도를 지하철 안에서 보았다. 종교 개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권력자의 도덕성

양키(Yankee)는 영국인들이 미국인을 얕잡아 하는 말이다. 머리에 든 거 없이 양복만 말쑥하게 입고 젠 채하는 태도를 ‘양키 스타일’이라고 한다. 또 이런 미국인 기질을 ‘양키이즘’이라며 비하한다. 양키는 원래 뉴잉글랜드의 원주민족 이름이다.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인이 미국인을 미개한 양키족에 빗댄데서 시작됐다. 프랑스는 미국인을 ‘상놈’으로 보았다. 유서깊는 전통문화를 자랑하는 프랑스인들로서는 역사가 얼마 안 되는 인종시장의 미국인들이 우습게 보였던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이런 정서는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오늘날도 잠재해 있다. 그런데 비교되는 게 있다. 권력층의 남녀 관계에 영국이나 프랑스는 비교적 관대하다. 예컨대 영국 국민들은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다이애나를 비운의 황태자비로 기억하고 있다. 찰스 황태자와의 이혼전 또 이혼 후의 사생활은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재결합한 부인 세실리아와 이혼하기가 바쁘게 모델 출신 가수 브루니와 터놓고 애정행각을 폈다. 만난지 한 달도 안 되어 결혼한 중간에는 애인을 데리고 이집트 등을 국빈 방문했다. 그래도 프랑스 국민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덤덤하게 넘겼다. 세실리아와 이혼하기 전에 이미 브루니와 깊은 관계가 아니었겠느냐는 의문 같은 것도 제기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한동안 불어닥친 탄핵 위기를 가까스로 면했다. 지난해 12월 크레이그 상원 의원은 동성애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다. 최근엔 스피처 뉴욕 주지사가 콜걸 뒤프레와의 성매매 파문이 일어 스피처는 끝내 뉴욕 주지사 자릴 물러났다. 미국 사회가 그렇다고 남녀 관계의 도덕성이 확립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란하기로 소문났다. 이런데도 권력자들에게 요구하는 도덕성은 권력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일반 시민 같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일도 대통령, 상원의원, 주지사 같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 미국 사회다.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역사적 전통문화가 없다. 민족 정서는 눈꼽만큼도 있을 수 없는 다원화 사회로, 오직 국민의 개념만이 지배된다. 이런 나라가 세계적인 초강대국이 된데는 연유가 있다. 일반 시민과 다른 권력자의 도덕성 확립에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 저력이 오늘의 아메리카 합중국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베이징과 인천

티베트 자치구의 거센 독립 시위에 중국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오는 8월 열릴 대망의 베이징 올림픽에 지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혈 무력 진압을 중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크 로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티베트 사태와 관련, 올림픽을 거부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거부설을 심심찮게 전하고 있다.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은 “일부 인사의 참가 거부 고려를 철회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골치 아픈 일은 또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또 다른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티베트 관련의 정치 문제로 불참하겠다는 게 아니다. 베이징의 공기, 대기오염이 심해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쥐스틴 에냉(26·벨기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테니스 단식 금메달리스트다. 지금은 세계 랭킹 1위다. 하일레 게브르 셀라시에(34·에티오피아)는 마라톤 2시간4분26초의 세계 신기록 보유자다. 이들이 베이징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둘 다 호흡기 계통이 안 좋은 상태여서 공기 나쁜 베이징에서 뛰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개인만이 아니다. 베이징 입성을 최대한 늦추는 나라들이 있다. 영국 호주팀은 대회 직전에 베이징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쁜 공기를 덜 마시자는 것이다. 심지어 호주 양궁 선수단은 한국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기로 했다. 미국 올림픽팀은 게임이 없을 땐 특수 마스크를 쓰기로 했다. 미국팀은 올림픽촌에서도 선수단의 식사와 식수를 본국에서 비행기로 수송할 계획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의 반대로 그만 두었다. 한국 마라톤의 이봉주도 최대한 늦추어 출발할 예정이다. 인천의 공기가 더 나빠진다고 한다. 인천보건환경연구원 조사결과 시내 대기측정소 10곳이 모두 미국 기준치인 15㎍/㎥을 훨씬 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중구 신흥동, 남구 숭의동은 기준치에 비해 3배에 육박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동차 매연, 비산먼지 등 억제에 신경을 쓰는데도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 인천은 오는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는 도시다. 경기장 신축 및 개보수·선수촌 건립·교통 및 도로 등 대비해야 할 일이 많지만, 대기환경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그때가서 베이징처럼 공기가 나쁘니까 출전할 수 없다는 소릴 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임양은 주필

가정당

평화통일가정당? 생소했다. 뭔가 싶었더니 통일교계라고 한다. 중세기의 정교(政敎) 일치가 생각됐다. 고대사회는 제정(祭政) 일치였다. 신문에 4·9총선을 앞둔 평화통일가정당 지역구 후보가 더러 비치곤해 그러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새 도내 51개 지역구에 모두 후보를 냈다. 며칠전 수원에서 51명의 후보가 모인 가운데 가정 중심의 3개 분야 12대 핵심 공약을 발표했다. 생긴지도 모르게 생긴 정당이 도내 지역구 공천을 다 마쳤다니 놀랍다. 전국 245개 지역구에 모두 후보자를 낸다는 것 같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도, 원내 1당이며 제일 야당인 통합민주당도 전국 지역구에 후보를 고루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나라당은 호남, 민주당은 영남에서 맥을 못쓴다.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낸 평화통일가정당은 그러고 보니 전국구역 정당인 셈이다. 공천 또한 소리 소문없이 해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공천 싸움을 두고 연일 시끄럽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당내에서 공천으로 어느 정도 소리가 나는 것이 좋은 건지 안좋은 것인진 판단하기에 달렸다. 아무튼 평화통일가정당의 공천은 일사불난하게 마쳤다. 또 하나의 특징은 후보들이 거의 무명의 신인이란 사실이다. 가정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한다. 다른 정당이라고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건 아니다. 행복한 가정이 많아야 사회가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해야 나라가 튼튼하다. 가정은 국가사회의 원초적 기초 단위다. 이런 가운데 가정을 당명에 직접 내걸고 나선 것은 이채롭다. 대한민국 정치는 정당 홍수다. 건국이래 명멸한 정당이 부지기수다. 그 중엔 생긴지도 모르게 없어진 정당도 숱하다. 지금은 43개의 정당이 있다. 공천 파동을 계기로 또 신당설이 나오는 판이다. 정당을 보고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보고 정당으로 모이는 이합집산이 무상하다. ‘정당 무상’ 현상은 정치 불안이다. 무명의 평화통일가정당이 4·9총선에 대거 참여하는 것은 이변이다. 일찍이 이런 군소 정당의 전례가 없다. 막상 총선이 시작되면 또 뭣을 보일 것인지 궁금하다. 다크 호스(dark horse)는 원래 경마 용어로 의외의 결과, 즉 이변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평화통일가정당이 ‘다크 호스’가 될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이번 총선에서 볼 수 있는 흥미 포인트의 하나다./ 임양은 주필

여성 우주인

지금까지 전세계를 통틀어 ‘여성 우주인’은 미국 41명, 러시아가 옛 소련을 포함해 3명, 캐나다 2명, 프랑스·일본·영국이 각 1명 모두 49명이다. 이소연씨는 50번째다. 세계 최초로 우주비행을 경험한 여성은 옛 소련의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다. 1961년 인류 최초 우주인이 된 유리가가린보다 약 2년 늦은 1963년 6월 16일, 테레슈코바는 보스토크 6호를 타고 6월 19일까지 총 2일 22시간 50분간 여성 최초로 우주를 비행, 전세계 여성들의 영웅이 됐다. 미국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83년 최초의 여성 우주인을 배출했다. 주인공 아일린 콜린스는 1995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도 탑승했으며, 1997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우주선 선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 120여명 중 여성은 3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NASA는 우주비행에서 여성을 부조종사나 제3조종사로 발탁하는 것은 물론 선장까지 맡긴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선장도 여성인 페기 윗슨이다. 일본은 무카이 지아키가 1994년 7월 우주왕복선에 탑승, 아시아 최초 여성 우주인 배출국이 됐다. 인도 출신으로 최초로 우주를 탐험한 여성 칼파나 촐라는 2003년 미국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던 중 컬럼비아호가 폭발,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최초의 여성 우주 관광객은 2006년 9월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란계 미국인 여성 아누셰흐 안사리다. 그는 일본 여성 기업인이 건강 부적격 판정을 받아 우주비행이 취소되면서 여성 최초 유료 우주관광객이 되는 행운을 잡았다. 지난해 10월 25일엔 여성 우주선 선장 2명이 우주공간에서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미국의 디스커버리호를 이끄는 파멜라 멜로이 선장은 승무원 7명과 함께 이날 ISS에 도착, 페기 윗슨 ISS 선장과 역사적 만남을 가졌다. 2007년 8월8일엔 미국 여교사 출신의 바버라 모건이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탑승하는 감격을 누렸다. 모건은 애초 1986년 1월 1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탑승 후보로 선정됐지만, 동료 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1986년 챌린저호 폭발사고로 사망)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가 20여년 만에 마침내 꿈을 이뤘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보다 최고의 우주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소연씨의 포부가 당차다. / 임병호 논설위원

비밀은 없다

대문호 괴테는 평생 부족함이 없이 살았지만 지독한 구두쇠였다. 원고료가 하루라도 늦으면 “출판업자들을 위해 지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부었으며 하인들에게 빵을 줄 때도 하나하나 저울에 달았다. 영미문학의 거봉 찰시 디킨스는 가족들에게 폭군처럼 행동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청소 상태를 검사하러 매일 방에 들어오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아내는 남편의 잔소리에 기가 죽어 얼이 빠진듯 행세했다. 1858년 디킨스는 22년 동안 함께 살았고 아이를 열이나 낳은 아내를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 불쌍한 여인은 남편의 명령대로 아들 집에서 여생을 보냈고, 그러는 동안 디킨스는 마흔여섯의 나이에 열아홉 살짜리 여배우한테 마음을 빼앗겼다. 독일을 통일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미신을 신봉한 소심한 인물이었으며, 영국의 넬슨 제독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제복으로 멋을 부리다가 적의 표적이 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에게 ‘천부인권’을 부여한 역사적 문헌으로 평가된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역설했다. 글 대로라면 제퍼슨은 인권의 가치를 온몸으로 구현한 현걸찬 영웅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퍼슨은 행복 추구권을 작성하는 동안 버지니아 농장에 175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숫자는 1822년까지 267명으로 늘어났다. 제퍼슨은 노예제도를 찬성했으며 새로 노예를 사기 위해 자신의 노예들을 먼 남쪽 지방으로 팔아버리기도 했다. 제퍼슨은 수십 년 동안 여자 노예를 정부로 두고 여러명의 아이를 낳았다. “인류가 과거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역사는 한 순간도 오류와 위조, 불확실한 속설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찍이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말한 것을 정확히 기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제삼자가 내게 전해준 것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직접 들었던 것 조차도 말이다.” ‘세계사의 비밀 220장면’을 쓴 독일의 유명한 역사학자이며 문화사가인 외르크 마이덴바우어의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후세에 밝혀질 비밀을 몇개씩 갖고 있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명박學’

‘대통령학(Presidential studies)’은 서구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학문이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을 둘러싼 미·소(美·蘇) 사이의 대결 구도 당시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라는 양쪽 총수의 캐럭티는 너무 판이했다. 그 무렵부터 대통령의 성격과 정책결정 과정, 참모들에 대한 연구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통령 성장기의 가정 환경과 연설, 정책 과정과 스타일,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의 사회활동까지도 대통령학의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내에선 함성득 고려대 교수가 1997년 처음으로 ‘대통령학’ 학부 강의를 개설, 대통령의 국정 업무 수행, 행정부와 대통령실 등 제도적·조직적 요인, 개인적·심리적 요인 고려 등을 연구 방향으로 꼽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의 발전 모델을 연구하는 ‘이명박학’이 외국 대학에서 정식 과목으로 속속 개설되고 있어 화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가 지난해 7월 첫 강좌를 연 데 이어 이달부터 두 개 강좌로 확대했다. 구 레닌그라드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대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 당선자도 이 학교를 나왔다. 오스트리아 국립 빈대학도 이달부터 ‘이명박학’ 강좌를 신설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정부 구조, 공리주의적 실용 리더십, 불도저 경영, 현장경영, 속도경영 등 이명박 실용주의의 특징, 국가가 통치의 대상이 아닌 경영의 대상이라는 신(新)국가관, 긍정마인드와 실천력 등 이명박 리더십의 원천, 독선적 리더십, 전시행정 등에서 나타나는 약점과 보완책 등이 상트페테르부르크대의 ‘이명박학’ 과목의 주요 내용이다. 해외 유수 대학에서 ‘이명박학’을 개설한 이유는 “‘이명박’이란 인물을 역동적인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으로 보고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을 딛고 단기간에 비약적 발전을 이룬 발전 모델을 연구하는 것”이란다. 이 연구 과정에서 ‘한국형 세계화’ 또는 ‘화합형 세계화’인 콜로벌리즘(Colobalism) 이론을 창출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동서사회연구원장이 설명한다. 한국의 대통령 더구나 5년 임기를 막 시작한 정치인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현상이 좋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끝까지 잘 해야 할 텐데”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임병호 논설위원

교황청의 변화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 등 교계(敎界)의 부패상을 고발하는 ’95개조의 고백’을 위덴베르크 교회 대문에 내걸며 종교개혁을 주창한 것은 1516년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엔 외면, 세속적 권력과 부정부패에 물들었다’고 질타했다. 결국 1521년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이단자로 규정, 사제직을 박탈하여 파문했다. 기독교의 대중화를 위해 히브리어 성서를 처음 독일어로 번역, 자국 국민이 읽게 만든 것은 파문당한 이듬해 시작해 수년간에 걸친 노력의 소산이다. 그는 인간해방을 종교개혁의 신념으로 삼았다. 종교적 해석의 작위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기독교 정신을 인간의 자연적 이해로 해석하고자 했다. “술과 여자와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일생동안 바보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방탕을 용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같은 비인간적인 사람은 신(神)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교황청에 의해 핍박받은 사람이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그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 1633년 체포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아 할 수 없이 천동설(天動說)을 시인했다. 한동안 로마 감옥에 유폐됐다가 나왔다.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고 한 것은 유폐됐다가 나오면서 한 말이다. 주목되는 외신보도가 있다. 로마 교황청 베네딕트 16세에 의해 마르틴 루터의 복권과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동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여름철 연례 세미나에서 루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토론을 갖는다. 종교개혁을 기독교의 분열로 보던 것을 부패 척결로 본다는 것이다. 또 갈릴레오 갈릴레이 동상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바티칸에 세우기로해 마르틴 루터의 복권 추진과 더불어 격세지감을 갖게한다. 교황청의 이같은 추진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는 11월엔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회동도 가질 것이라고 한다. 교황청은 대신 ‘세계화시대의 신(新) 7대죄악’을 제시했다. 환경파괴·반윤리적 과학실험·유전자 조작·마약거래·과다축재·낙태·소아 성애(性愛) 등이다. 로마 교황청의 변화는 극단적 보수 강경의 이미지 쇄신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임양은 주필

여성의 미(美)

고대 그리스사회는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인식했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의 몸도 그러했다. 고대 후기 올림픽을 알몸경기로 했던 게 그같은 사례다. 알몸 경기는 BC 720년 올림픽 달리기에서 오르십포스라는 선수가 달리다가 아랫도리에 감은 천이 풀린 채 뛴데서 시작됐다. 후세에 플라톤은 알몸경기를 “가장 인간적”이라고 평했다. 당시 올림픽 선수는 남성만 출전했고 여성은 관람이 금지됐다. 남성의 몸도 아름답게 여겼지만 여성의 몸은 특히 더 했다. 여성의 육체미는 곧 선(善)으로 평가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죄를 지어도 풀려났다. BC 4세기 중엽 신을 모독한 죄로 기소된 창녀 프류네를 법정은 심리과정에서 노출된 그녀의 눈부신 몸매를 보고 “이토록 아름다운 육체의 소유자에겐 죄가 있을 수 없다”며 방면했다. 1820년 4월8일 에게해의 한 작은 섬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발견된 대리석 나신 조각이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다. 비록 두 팔이 떨어져 나갔으나 풍만한 가슴의 기복과 함께 상체를 왼쪽으로 비튼 높이 2m의 나신 조각상은 관능미가 생동적이다. 마침 섬 연안을 항해하던 프랑스 해군 함정이 이를 입수, 루이 18세에 헌납해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전해지게 됐다. BC 2세기경 그리스 말기 작품으로 알려져 당시 그리스인들이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얼마나 탐미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나부(裸婦)는 서양 미술에서 역시 중요한 장르의 한 부분이 되어 현대에 이르렀다. 르누아르(1841~1919)는 인상주의 영향을 받은 거장으로 특히 ‘햇빛속의 나부’등 누드 작품은 걸작으로 꼽힌다. 섬세한 화풍에 윤택이 감도는 그의 나부 그림은 ‘빛나도록 풍만하다’는 것이 정평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의 미를 죄악시하기도 한다. ‘여성의 얼굴은 모든 타락의 근원이다’란 것은 탈레반의 논리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정통 이슬람주의 지향을 주장하는 탈레반은 지난 집권기간(1996~2001) 아프간 여성은 몸이 아파도 남자 의사에겐 진료를 받지 못하게 금하는 등 여성 인권을 억압했다. 그러나 여성의 아름다움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다. 미의 관점은 여러가지지만 가슴은 그중 한 포인트다. 일본 법정에서 큰 가슴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은 여성이 있다. 30대의 이 여성은 어느 누구의 집 문을 발로 부순 틈으로 들어간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연한 결과 폭 24㎝의 문틈으로 들어가기엔 가슴이 커 불가한 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봄이 짙으면 여성의 옷이 엷어진다./ 임양은 주필

수원사랑포럼

하늘은 춘색이 완연하고 대지는 봄기운이 움트며 겨울잠을 깬다. 음력 정월 그믐, 지난 7일 수원 만석공원 야외음악당 건너편 광장이다. 노인위한 한마당 잔치가 진하게 펼쳐졌다. 실버국악단, 정년을 마친 교육자들로 구성된 국악단이다. 신바람난 지신밟기 농악이 한바탕 질펀하게 울려퍼졌다. 수원시자원봉사센터의 협조로 봉사에 나선 공연이다. 주부들 출연도 있었다. 흥취 만발한 난타공연, 멋들어진 발리댄스가 분위기를 돋우웠다. 이들 두 주부팀은 수원문화원 문화생 출신의 전속 아마추어 팀이다. 역시 수원문화원 협조로 나온 자원봉사다. 점심은 별미다. 오곡찰밥에 곰취나물, 고사리나물, 버섯볶음은 찰떡궁합의 반찬, 여기에 도토리묵, 싱싱한 겉절이, 김, 돼지고기찌개 등에 백설기가 밥상을 풍요하게 채웠다. 이어 벌어진 윷놀이, 재기차기, 오자미놀이 등은 홍삼, 꿀, 마늘즙 같은 푸짐한 실속 상품으로 열기를 뿜었다. 막걸리통에 오징어숙회 등 안주 또한 넉넉했다. 저마다 가수 솜씨인 노래자랑도 있었다. 앞서 개회식에선 주최측의 이런 멘트가 있었다. “어르신들은 지난 세월 한 가정에서, 사회에서 열심히 살았던 분들로 그같은 노력이 있어 우리나라가 지금 이만큼 산다”고 했다. 눈시울을 붉히는 할아버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쳐내는 할머니들이 계셨다. 처음 시작 무렵엔 70여명이던 노인분들이 시간이 가면서 늘어 250여명에 이르렀다. 고희(古稀)나 희수(喜壽)의 합동잔치를 방불케 했다. 파할 무렵에는 각기 선물도 전해졌다. 이 행사는 ‘2008 노인위안추억만들기’다. 수원사랑포럼 지역사회봉사특위 홀몸노인후원분과가 본부 지원으로 주최했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음식장만 하는 주방 불이 전날밤 11시까지 켜져있더라”는 게 인근 사람들 얘기다. 100% 자급자족이다. 행사에 외부 협찬은 딱 한 군데 뿐, 중소기업은행 동수원지점에서 고맙게 베지밀 240개를 보내주었다는 주최측 말이다. 수원사랑포럼은 지난해 11월 발족한 수원 최대 규모의 순수 지역사회봉사 민간단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든다. 노인을 불행하게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못된다. 건강한 가정도 아니다. 노인 분야의 봉사사업은 이래서 중요하다. /임양은 주필

엘리자베스 여왕 & 해리 왕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는 제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9세의 공주였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쟁에 직접 참가해 기여하고 싶다”고 아버지 조지 6세를 졸랐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 그해 3월4일 WATS(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했다. 여성들로 구성된 WATS는 1938년 창설 당시엔 주 업무가 취사, 사환 업무, 부대 내 매점 관리 등이었지만 전쟁이 확산되자 운전, 탄약 관리 등으로 확대됐다.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는 왕위 계승자였음에도 다른 병사들과 똑 같이 운전, 탄약 관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녀는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던 손으로 흙바닥에 앉아 차량을 고쳤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 트럭바퀴를 교체하는 모습, 트럭의 보닛을 열고 수리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당시의 활동상황을 입증한다. 영국의 해리 왕자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 배치돼 탈레반 반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해리 왕자의 복무 근무지는 탈레반과 불과 500m 떨어진 최전선으로 하루에도 수시로 박격포와 기관총 공격을 받는 최전선이었다. 폭격 지점 등을 조정하는 전투기 통제관인 해리 왕자는 ‘윈도우 식스 세븐’이란 작전명으로 연합국 조종사들과 교신해 왔지만 아무도 그가 왕자인지 알지 못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둘째아들인 그는 왕위 계승 서열 3위다. 영국 국방부는 해리 왕자가 오는 4월 귀국하면 참전 사실을 밝히기로 하고 영국 언론들과 비보도 협정을 맺었지만 호주, 독일의 언론 및 미국드러지 리포트가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공개됐다. 국방부는 신변노출에 따른 위험 증가로 해리 왕자를 즉시 귀국시키기로 결정했고, 해리 왕자도 자신을 ‘총탄을 부르는 자석’이라며 전우들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복무 기간을 앞당겨 3월 1일 귀국했다. ‘영웅’ 대우를 받으며 전장에서 돌아 온 해리 왕자는 귀국 인터뷰에서 “영웅은 전장에 있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라고 말했다. 지뢰에 팔과 다리를 잃은 후 혼수상태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2명의 병사를 가리키며 “이들이 영웅”이라고 치켜 세웠다. 2차대전 때 운전병으로 복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손자가 얼마나 대견했을 것인가.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럽다. / 임병호 논설위원

노무현씨 살판 났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무현씨는 요즘 무척 행복해 보인다. 2월 25일 청와대를 떠나 돌아온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서울과는 달리 1만명이 넘는 환영 인파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1만여명의 군중이 200여m 이상을 줄지어 늘어서 태극기와 노란 풍선을 흔들며 “노무현”, “환영합니다”를 연호했다. 노무현씨는 고향에 돌아온 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5년 간 대통령직을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냐. 그냥 열심히 했으니 이쁘게 봐 달라”면서 “정말 마음 놓고 한 마디 하고자 한다”며 “야 ~ 기분좋다”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아닌 게 아니라 기분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차림으로 관광객들과 만난다. 청와대에서도 그랬지만 홈페이지를 참 좋아한다. 귀향 후 근황과 계획을 소개한 편지글을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올렸다. 지난 3일엔 ‘봉하에서 띄우는 두번째 띄우는 편지’를 통해 “홈페이지가 너무 빈약하고 불편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귀향한지 닷새만인 지난달 29일 홈페이지에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란 글을 올리고 “3월에는 이 홈페이지도 주제를 놓고 서로 활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려고 합니다”라고 밝혀 홈페이지를 통한 활발한 소통을 구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가 홈페이지에 처음 올린 글은 9만3천여회, 지난 3일 올린 두번째 글은 4만5천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난 주말도 봉하마을에 관광객이 몰려 들었다. 전임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공이 나오지 않자 한 사람의 구령에 맞추어 ‘하나 둘 셋’ 하더니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 ”라고 소리쳤다. 한참 만에 모습을 드러낸 노무현씨는 관광객들이 밥 먹을 곳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나도 매일 똑 같은 것만 먹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한 여성이 “우리가 밥 사드릴게요”라고 외쳤단다. 얼마나 홀가분한가. 청와대란 감옥(?)에서 나왔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개 전 대통령이 아니라 전임 대통령 아무개씨로 불리고 그 걸 흡족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봉하마을 노무현 아저씨, 노무현 할아버지로 편안하게 살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구식 가두 캠페인

대도시 백주대로에 경찰기마대, 경찰오토바이를 앞세운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가두 행진하는 광경이 등장했다. ‘바로 세운 교통질서 도약하는 선진한국’이란 플래카드를 두 사람이 양쪽에서 받쳐들고 보무당당히 행진하는 진풍경도 나타났다. 지난달 20일을 전후로 이런 행사들이 꽤 많았다. 강원경찰청이 주관 진행한 ‘2008 교통질서 확립을 위한 범도민 선포식’은 춘천시 강원도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새 정부의 국정기조인 ‘법질서 확립’과 관련해 범도민적인 붐을 조성하겠다”는 뜻으로 마련된 이 행사엔 원주국토관리청, 한국도로공사, 교통안전공단, 모범운전자회 등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 행사 뒤 펼침막과 팻말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대구경찰청도 대구 종각네거리에서 경찰관 등 100여명과 기마경찰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를 위한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을 가졌다.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렇게 각 지방경찰청이 결의대회와 캠페인 등 ‘전시성 행사’를 잇따라 열고 있는 것은 어청수 경찰청장이 기초·교통질서 확립 방안 등을 마련하고 실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데 따른 것이지만 기마경찰이 등장하는 등 떠들썩한 행사를 벌이는 건 시대 착오적이다. 전형적인 관변 단체들의 캠페인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경찰이 거리행진을 하며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많은 시민들이 “ 그렇다면 지금까진 경찰이 법질서 확립을 안 했다는 것이냐”고 조소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그러잖아도 한 지방경찰청은 집회신고도 하지 않은 채 거리행진을 벌였다는 비판을 받았고, 인권·시민단체들은 “경찰 스스로가 강조해 온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해가며 법질서 확립 캠페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며 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0~70년대 가두 캠페인은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다. 멋 있는 유니폼을 입은 남녀 고교생들의 밴드부나 고적대를 앞세워 실시한 새마을 운동, 자연보호 , 납세의무 이행 등 가두 캠페인은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면서 나름대로 목적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 하지만 경찰기마, 경찰오토바이를 앞세운 공공기관 캠페인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으로 위압감을 주고 볼썽만 사납다. 경기경찰청, 인천경찰청은 이런 캠페인을 하지 말기 바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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