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와 당선인

언론의 이명박씨에 대한 호칭이 갑자기 바뀌었다. 대통령 당선자라고 했던 것을 이명박(대통령)당선인 이라고 호칭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측의 그런 호칭 변경요청이 있었던 것 같다. 호칭 변경의 근거는 ‘대통령직인수에 관한 법률’에서 당선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者)와 인(人)의 개념 차이다. 자(者)는 사람을 얕잡아 말할 때 흔히 쓰긴 한다. “그 자가(어떻고)…”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인자(仁者)로 쓰인데서는 얕잡아 보는 말이 아니다. 물론 국어대사전엔 같은 뜻인 (仁人)이란 말이 있지만 경험법칙상 ‘인인’이라기 보단 ‘인자’라고 하는 것이 통념이다. 자(者)는 어조사자다. 실질적인 뜻은 없는 한문의 토씨로 조어(助語)다. 어(於·늘어) 야(也·이끼야)도 역시 조어다. ‘야’의 경우 어떤 문장 끝에 ‘무슨 무슨也(야)’라고 끝내는데 쓰여 ‘야’(也)자 자체엔 者(자)처럼 아무 뜻이 없는 어조사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당선인이라고 규정한데 비해 헌법에서는 자(者)로 규정해놓고 있다. 헌법 67조 (대통령의 선거·피선거권) 4항은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者)는…’ 이렇게 돼있다. 같은 조문 2항은 ‘당선자’라고 못박았다. 이렇다면 하위 법률인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보단 상위 법률인 헌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같은 유권해석을 내렸다. 실제로 이명박 당선자로 하는 것보다 이명박 당선인이라고 하니까 어색하게 들린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당선인이란 말이 당선자라는 것 보다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당선자라고 한다고 해서 ‘그 자(者)…’라고 할 때 쓰이는 자(者)처럼 얕잡아 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자(仁者)로 쓰는 자(者)처럼 성스럽게까진 안 볼지 몰라도 당선자가 결코 하대하는 지칭은 아닌 것이다. 또 당선자면 어떻고 당선인이면 어떤가, 다 그 말이 그 말인 터에 인수위의 신경과민은 이도 아부의 일종이 아닌가 싶어 벌써부터 걱정된다. 아무 문제될 게 없는 지칭을 굳이 문제삼는 형식논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실용주의 노선에도 위배된다. 쓸데없는 말초적 신경을 쓰기보단, 큰 국량으로 차질없는 정권 인수를 하는데 신경을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임양은 주필

인간이 만든 쥐

생명공학 시대에 쥐는 ‘황금 쥐’로 통할 만큼 각별한 존재다. 쥐는 인간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생명 현상의 이해 등에 없어선 안 될 동물이다. 전 세계에서 한 해 3천만 마리, 한국에서 연간 300만 마리의 쥐가 실험용으로 사용된다. 쥐는 진화 계통상 인간과 동일한 포유류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쥐가 약 7천500만~1억2천500만 년 전 살았던 ‘이오마이아 스캔소리아’라는 동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과 쥐는 진화 계통에서 보면 먼 친척뻘인 셈이다. 쥐는 색맹이다. 쥐는 파랑·노랑· 회색 계열의 색밖에 보지 못한다. 미국 UC센타바버라대 제럴드 제이콥스 박사팀은 사람의 X염색체를 쥐에 이식해 컬러를 볼 수 있게 했다고 2007년 5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었다. 쥐가 후천적으로 컬러에 필요한 유전자를 얻어 신이 만든 색을 다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 이전까진 인간처럼 컬러를 볼 수 있는 빨강·파랑·초록 삼원색 유전자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실험으로 유전자 하나가 인류에게 세상을 컬러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쥐가 유전자 시대에 ‘황금 쥐’로 불리게 된 데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있었다.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 넣거나 빼내는 기술은 쥐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그 이후 특정 유전자를 빼낸 수천 종의 쥐가 만들어졌다. 고양이에게 대드는 겁 없는 쥐, 털이 없는 쥐, 파킨슨 병에 걸린 쥐, 일반 쥐에 비해 네 배 정도 큰 쥐, 유전자 수백만 개가 없어진 쥐 등 유전자 변형 쥐가 속속 등장했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에디 루빈 박사는 쥐의 유전자 중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염기 230만 쌍을 빼내 버렸다. 그래도 생식 능력에 이상이 없었으며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빼낸 염기들은 사람의 유전자에도 70% 정도 있다. 과학자들은 그런 유전자를 ‘정크(쓰레기)DNA)’라고 부른다. 유전적으로 보면 이들 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새로운 종이다. 유전자가 변형된 쥐는 잡종이 섞이지 않는 한 대대로 그 종을 보존하며 새로운 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대든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과학적 실험 결과다. /임병호 논설위원

쥐값

미국 MIT 연구진은 2002년 12월 생쥐(mouse)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2001년 4월 인간 게놈이 파악된지 1년 반 만이었다. 유전자 연구 대상으로 다른 많은 동물 중에 생쥐를 선택한 것은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은 데다 쥐와 인간의 게놈이 97% 비슷하기 때문이다. 침팬지 같은 원숭이류가 더 적합할 수도 있지만 침팬지의 유전자를 바꿔 결과를 새끼에서 확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쥐는 1년 안에도 몇 대손을 볼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장점이 있다. 1994년엔 몸값이 100억원이 넘는 쥐가 탄생했다. 미국 록펠러 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 박사는 비만과 당뇨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앤 쥐를 만들었다. 거대 제약업체인 암젠은 2천만 달러(당시 160억원)를 들여 이 쥐에 대한 특허권을 사갔다. 쥐와 인간의 유전자가 공통점이 많은 만큼 쥐의 비만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의 비만도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몸값이 높아진 쥐들은 초호화 호텔에 준하는 거주 환경이 제공된다. 미세 필터로 미생물을 길러낸 깨끗한 공기를 공급받고 사료나 물도 멸균 처리한 것만 먹는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소음까지도 통제한다. 어렵게 만든 유전자 변형 쥐가 장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쥐는 인간을 대신해 각종 유전공학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화 촉진 유전자를 넣기도 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독성 검사도 대신한다.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검증하는 데도 이용된다. 예컨대 ‘베타 3-AR’이란 동물 유전자는 당뇨병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인체의 베타3-AR 유전자는 치료에 효능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부작용까지도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쥐의 베타3-AR을 지우고 사람의 같은 유전자로 대체하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20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유전자 변형쥐를 생산한 연구진에 주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곳간의 식량을 갉아 먹고 페스트 같은 몹쓸 병원균을 옮기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온 쥐가 지난 세월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넘어 인류의 구세주(?)로 떠오르다니 자연 세계의 변화가 놀랍다. / 임병호 논설위원

눈물

영화배우 문소리는 눈물이 많다고 한다. 영화를 촬영하며 또는 여배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가운데서도 눈물을 잘 흘린다. 문소리는 “예전엔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어요. 이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전엔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젠 진심을 알아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영화배우 특히 여우에게 눈물연기는 필수적이지만 영화계에선 문소리의 ‘눈물’을 ‘솔직한 울보’라고 한단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돌풍에 밀려 예상 밖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힐러리는 눈물을 글썽이는 감정적 호소까지 하면서 예비선거에 임하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뉴욕타임스, ABC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힐러리가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한 카페에서 평소의 차가운 이미지를 뒤집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여 참가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유권자 16명과 티타임 형식의 간담회를 갖던 힐러리는 처음엔 평소와 다름 없이 논리정연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늘 씩씩해 보이느냐”는 질문을 받자 “쉽지는 않다”고 답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 이 나라가 뒷걸음질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목소리가 떨렸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의 눈물은 힐러리가 얼마나 힘들게 고비를 넘기고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러나 ‘눈물 한 방울’ 역시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고 외신은 전한다. 정치인들의 쇼맨십과 문소리 같은 배우 기질은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여실히 나타났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눈물은 가식이 없는 눈물이란 생각이 들어 예감이 좋다. “곰국을 끓이다 보면 더 이상 우려낼 게 없을 때 / 맑은 물이 우러나온다 그걸 보면 /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뽀얀 국물 다 우려내야 나오는 /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는 저 눈물이 / 진짜 진주라는 생각이 든다 / 뼈에 숭숭 뚫린 구멍은 / 진주가 박혀 있던 자리라는 생각도 / 짠맛도 단맛도 나지 않고 / 시고 떫지도 않은 물같은 저 눈물을 보면 /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 뭔가 시원하게 울어내지 않았다는 생각 / 이 뽀얗게 우러나온다” - 성미정의 詩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임병호 논설위원

‘코리아 2000’ 哀話

미증유의 대참사, 이천 ‘코리아 2000’ 냉동창고 화재는 지하1층이 거대한 하나의 폭탄이었다. 보온 및 단열을 위해 마감재로 쓰는 우레탄폼과 인화성 액체를 섞는 발포작업으로 이들 원료가 굳으면서 뿜는 휘발성 증기가 지하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런 악조건속에 근로자들을 일 시킨 회사측 책임이 무겁다. 지하 작업장에 가득한 휘발성 증기는 불길만 닿으면 일시에 폭발, 번개처럼 번진다. 한데, 폭발을 일으킨 점화가 뭔지 분명치 않다. 용접설이 있지만 용접공사를 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여러 갈래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화재 당시 작업중인 창고에 224t짜리 물탱크를 갖춘 스프링클러가 있긴 있었는데 무용지물이 됐다. 폭발과 함께 건물이 붕괴되면서 파손된 걸로 볼 수도 있고, 시설 불량으로도 볼 수가 있다. 건축허가·소방준공검사·건물사용승인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일시에 40명이 숨진 화재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대 참사다. 신원이 확인 안 된 30명은 손상이 심해 앞으로 보름가량 걸리는 유전자 감식을 통해 누군지를 알아내게 된다. 날품으로 일한 사람들이다. 신원미상의 사망자 유가족 중엔 남편이나 누가 불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변을 당한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가족이 적잖을 것 같다. 신혼 3개월만에 아내의 몸에 유복자를 두고 비명에 숨진 신랑이 있는가 하면, 코리안 드림을 안고 국내에 온 이국인·중국 동포 등이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숨진 이들의 신원이 밝혀지면 기막히도록 애절한 사연이 또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일당 몇 만원을 벌기위해 폭탄속 같은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이들이다. 열심히, 성실히 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 왜 처참한 떼죽음을 당해야 했는가, 누가 이들을 죽게 만들었는 지를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필사의 탈출로 목숨을 기적적으로 건진 10여명의 중상자들 또한 거의 전신 화상으로 상태가 심각하다. 지옥과 같은 화재 현장의 충격적인 전율로 심적 안정도 아직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중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안전불감증이 심해도 너무 심하고, 인재이긴 해도 너무 어이없는 인재다. 누구의 책임인가? 정부는 선진국 진입을 말해도, 서민들의 근로 현장에는 후진국보다 더한 ‘저진국’ 수준의 이런 사각지대가 널려 있다. 당국은 이런 사고가 더는 없도록 각성해야 된다. 원혼의 명복을 빈다. 이천 시민회관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웬지 썰렁하기만 하다. / 임양은 주필

文化의 차이

정치인의 사생활에 관대한 나라가 프랑스다. 구랍 애인을 데리고 이집트에 정상회담하러 갔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바로 그 애인인 브루니와 다음 달에 결혼을 발표했다. 두 번째 아내인 세실리아와 지난해 10월 이혼한지 석달도 안 되고, 새 애인으로 모델출신의 가수인 브루니를 만난지 한 달도 안 되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오는 24일엔 인도를 국빈방문한다. 이에 인도 정부에서는 사르코지와 애인 관계인 브루니를 영부인으로 대접할 수도 없고 보통 예우를 하기에도 그렇고 해서 난감한 모양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한 사르코지는 취임하자마자 우파 개혁의 칼날을 빼어들었다. 노조의 불법파업에 엄정대처하고 공무원을 대대적으로 감원, 조직의 군살 빼기에 나섰다. 사르코지에게 당하는 반대세력 가운데서 대통령의 애인 동반외유에 비난이 나올법도 한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아무 소리가 없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엄격한 미국과 비하면 아주 판이하다. 미국에선 예컨대 지난해 12월 크레이그 상원 의원의 동성애 논쟁으로 정가에 파문이 일었다. 일본 마스다 총무부 장관은 국내 드라마 ‘대장금’의 주연 배우 이영애씨의 친필 사인이 든 사진 두 장을 받고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까지 말했다. 지난해 10월31일에 있었던 일이다. 한·일 행정자치분야 장관회의에 참석하러 일본에 간 박명재 행자부 장관이 준 선물인 것이다. 박 장관은 마스다 장관이 평소 지니고 다니는 열쇠고리에 자그마한 이영애씨 사진을 매달고 있을만큼 열성 팬이란 걸 알고 그같은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그렇긴 해도 공식 행사장에서 외국 배우의 사진을 받고 ‘가보’를 들먹일 정도로 기뻐하는 것은 채신머리가 없어보이는 데도 일본 언론에선 그같은 가십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사르코지의 애정 행각이나 마스다의 사진 가보는 문화의 차이다. 한국문화와 프랑스문화, 일본문화의 차이점인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고 안 좋고 하는 것을 가릴 계제가 안 되는 각기의 고유문화다. 그리고 이런 고유문화의 차이는 상대에게 존중해야 이쪽 고유문화도 존중받는다. 상대의 것이 이해가 안 된다 하여 무시하면, 이쪽의 것도 무시 당하는 것은 국제 사회나 개인사회나 마찬가지다. /임양은 주필

봉황 휘장

봉황(鳳凰)은 용과 마찬가지로 상상상(想像上)의 새다. 중국에선 고대부터 봉황·용·기린·거북을 사령(四靈)이라고 하여 고귀하게 여겼다. 봉황은 그중에서도 상스럽고 아름다워 신성시했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일컫는다. 봉황이 천자(天子·황제)를 상징한 것은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안정된다는 중국의 고대 전설에서 기인됐다. 나라를 새로 세운 황제가 도읍지를 옮기는 천도를 이래서 ‘봉성(鳳城)을 옮긴다’하고, 문에 봉황무늬를 새긴 궁궐을 봉궐(鳳闕)이라고 하고, 궁중 연못을 봉지(鳳池)라고 한 것이 이에 유래된다.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중국의 봉황사상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다. 고려 중기 이후 중국의 궁중음악이 전래되면서 노랫말에 봉황이 들어가고 또 봉황을 나타내는 춤사위가 나왔다. 조선 초기에는 봉황음(鳳凰音)이라는 송축가가 있었다. 세종실록에 나온 악보 봉래의(鳳來儀)는 궁중무용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를 때 춘 춤이다. 봉황은 궁중이 아니고도 백성들 사이에 매우 친근하게 여겨졌다. 특히 금실이 좋은 새로 알려져 부부의 좋은 인연을 봉황새에 비유했다. ‘울밑에 벽오동 심어 / 봉황을 보잤더니 / 봉황은 아니오고…’는 봉황을 둔 시가로 봉황은 옛 시가문학 역시 많이 등장한다. 대통령의 봉황무늬 표장(標章·휘장)은 무궁화를 가운데 두고 암·수 두 봉황이 꼬리를 길게 늘린 채 마주보고 있다. 대통령 관저, 집무실은 물론이고 승용차 등 교통수단,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 행사장 등엔 으레 이 봉황 표장이 그려져 있다. 대통령이 주는 임명장이나 표창장에도 있다. 대통령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1967년 대통령 표장에 관한 공고로 시작된 봉황무늬 휘장이 41년만에 사라지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오는 2월25일 취임하면 청와대에 있는 봉황무늬 표장을 없애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에 행사 때 보면 휘장이 너무 권위주의적인 것 같더라”며 대통령과 국민 간에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보아져 폐지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장에서도 봉황무늬 표장은 쓰지 않을 요량인 것이다. 봉황이 상스럽긴 해도 중국의 황제를 상징했던 고사를 보면 당선자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임양은 주필

사자성어

교수신문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국사회상을 잘 반영한다. 2001년엔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교육정책과 교수 신분 불안 때문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사자성어는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 ‘이합집산(離合集散)’ 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입신양명을 위해 철새 정치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정치인들을 빗대서 한 말이다. 2003년은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종잡지 못하는 모습이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각 분야에서 정책 혼선이 빚어지고 갈피를 못잡아서였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했던 2004년은 옳고 그름의 여하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이르는 ‘당동벌이(黨同伐異)’로 선정했다. 2005년엔 ‘상화하택(上火下澤)’이었다. 사히 각 분야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을 일삼은 행태를 꼬집은 사자성어였다. 2006년 사자성어는 ‘밀운불우(密雲不雨)’였다.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란 뜻이다. 2007년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사자성어였다.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이 들어 맞는 건 사회저명인사들의 학력위조, 대학총장과 교수들의 논문표절, 유력 정치인들과 대기업의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해서였다. 교수신문 필진,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주요 학회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이 선정한 사자성어답게 모두가 시의적절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008년 신년 사자성어로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발표했다. 여기에 이덕일 역사평론가가 “(시화연풍은) 원래 ‘모시정의(毛詩正義)’ 소아(小雅)편에 나온다. 만물이 성다하고 인민들이 충효한즉 시화연풍에 도달한다. ‘진서(晉書)’ 식화지(食貨志)와 ‘송서(宋書)’ 공림지(孔琳之) 열전에 ‘천하무사하고 시화연풍하니 백성들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한다(天下無事, 時和年豊, 百姓樂業)’라고 하였다”고 밝혔다. 사자성어의 뜻이 오묘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 전용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전용 헬기의 교체 예산을 내놨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청와대는 “우리가 타려는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해 초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보잉사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는 보잉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전용기를 사자고 했더니 국회에서 (예산을) 깎아버렸다”고 원망했다. 야당과 누리꾼들이 “국회와 국민을 모독한 발언”이라고 발끈했다. 대통령이 ‘미국 군산(軍産)복합체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보잉사 회장 앞에서 나라 흉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전용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간 급유 없이 지구 둘레의 3분의 1인 1만2천600㎞를 비행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1985년에 도입된 낡은 기종이고 201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항속 거리가 짧아 갈 수 있는 나라가 중국 일본 정도다. 그래서 청와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전세기를 임차해 사용한다. 임차 비용과 신형 항공기 구매가격을 따져 보면 새로 구입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청와대는 하소연했었다. 노 대통령은 “내가 타려는 것도 아니고 다음 대통령을 위한 일인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서운해 했었다. 2010년이나 돼야 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에어 포스 원’은 미국 대통령의 상징 중 하나다. 194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생겼고, 현재의 초대형 최첨단 B747-200은 1962년 존F 케네디 대통령이 장만했다. 그는 기체에 커다랗게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쓰고 성조기를 그려 자존심을 과시했다. 그것을 ‘하늘의 백악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악관처럼 안전하게 집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영국·프랑스는 물론 중국·이탈리아·스페인·멕시코 등도 ‘날아 다니는 집무실’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든 대통령은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처리할 업무가 많다. 형식과 체면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게 외교다. 전용기는 3부 요인도 이용하고 국가적 행사에도 쓰인다.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전용기 도입하자고 하면 국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최초

서양의 러브(Love)에 해당하는 ‘연애’라는 말은 한국에서 1912년 소설에서 처음 나왔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조중환의 번안소설 ‘쌍옥루(雙玉淚)’에서 청춘 남녀의 연애를 ‘매우 신성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상협이 쓴 ‘눈물’에선 연애를 순결·신성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썼다. 1920년대 들어 연애라는 말은 젊은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말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의생활에서 서양 복식을 처음 받아들인 것은 별기군이다. 1881년에 창설한 별기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근대식 훈련을 받으면서 복식도 서양식으로 바꿨다. 처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1881년 일본에 조사시찰단으로 갔던 김옥균, 서광범, 유길준, 홍영식, 윤치호 등이었다. 1884년 갑신 의제개혁, 1894년 갑오 의제개혁, 1895년 을미 의제개혁 등을 통해 군복과 관복 등에서 ‘거추장스러운 옷을 간편한 옷으로 바꾸도록’ 조치했다. 1900년엔 관리들의 관복을 양복으로 바꾸고, 일반인이 양복을 입는 것을 처음 정식으로 인정했다. 독일 여성 손탁은 1902년 고종이 하사한 서울 중구 정동 땅에 2층 양옥을 지어 ‘손탁호텔’을 열었다. 이 땅의 첫 레스토랑이었다. 그뒤 충무로에 양식전문점인 ‘청목당’이 들어섰다. 중국 음식점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중국 군인과 함께 중국 상인이 들어오면서 따라 들어왔다.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면서 1899년 무렵 화교들은 자장면을 기본으로 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점은 중국 사람이 많이 사는 서울 중구 북창동 일대를 비롯, 인천·평양 같은 곳에 많이 들어섰다. 서양 문명의 상징처럼 여겼던 커피는 한국인으로선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처음 맛을 보았다고 한다. 개항 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외교 활동을 위한 공간을 짓고 새로운 숙박시설인 호텔도 만들었다. 1884년 인천에 세운 세창양행 사택은 독일인 회사의 숙소로 쓰려고 지은 집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선 맨 처음 양옥으로 전해진다. ‘카인’만 빼고 ‘처음’ ‘최초’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 1912년 처음 등장한 연애란 말이 그 시절처럼 신성하고 순결하게 쓰여졌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백두산

해발 2천744m의 백두산은 고대 명칭이 태백산으로 단군 신화가 서린 민족의 영산이다. 최고봉인 병사봉에는 칼데라호인 천지가 있어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칼데라호란 커다란 솥모양이라는 뜻으로 지형이 화산체에 생긴 분화구보다 더 크게 움푹 파였다. 천지 둘레는 약 12㎞며 최대 수심은 312.7m다. 물고기가 살지못한 것으로 알려진 배두산 천지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하여 야단들이다. 중국은 지난해 천지에서 물범을 연상케하는 괴물을 보았다는 자국인들의 목격담을 토대로 ‘텐츠과이과이’(天池怪怪)란 이름까지 지어 백두산 관광홍보에 마스코트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북의 한 생물학자는 괴물이 아니고 48년전에 자신이 천지에 넣은 산천어일 것이라고 말한걸로 전한다. 1960년 여름에 산천어 9마리를 천지에 방류했는데 지난 2000년 측정한 산천어 길이가 85㎝에 무게가 7.7㎏이었다는 것이다. 서식 환경이 다름에 따라 보통 산천어보다 4배가량 크고, 생긴 모습도 변화된 새로운 생태형이어서 물범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근 50년 전에 방류한 산천어가 번식했다는 얘기인데 드넓은 천지에서 산천어를 잡아 측정했다는 것도 기이하고, 산천어를 물범으로 보았을 것이라는 것도 기이하다. 그 생물학자는 천지에 붕어도 16마리를 함께 놔주었다는데, 붕어는 살 수 없었던 것인지 이에 대한 뒷말은 없다. 백두산은 원래 한반도 땅이었던 것을 북측이 1953년 한국전쟁 정전직후, 중국이 참전해준 대가로 천지를 양등분한 일부를 할양해 반쪽은 중국땅이 됐다. 간도도 예전엔 우리땅인 마당에 백두산 반쪽의 국토마저 중국에 넘겨준 것이다. 그동안 많은 국내 사람들이 찾은 백두산 천지 관광길은 중국땅이 된 백두산을 통해 다녀온 것이다. 중국 지도는 백두산을 ‘창바이’(長白)라고 하여 자국의 영토로 표기해놓고 있다. 현대와 북측 당국간에 백두산 관광직항로가 타결되어 아마 올 봄부턴 중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천지에 정말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도 머지않아 확인되겠지만, 중국의 괴물 소동은 아무래도 관광 상술인 것 같기만 하다. / 임양은 주필

夏爐冬扇

반첩여(班?仔)는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이다. 한 때 총애를 받았던 그녀가 새로 총애를 받게 된 조비연(趙飛燕)의 참소를 받았다. 조비연은 황제의 총애가 다시 반첩여에게 쏠릴 것을 두려워해 무고했으나 원죄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반첩여는 시샘과 모함 투성인 후궁들 사이에서 떠나 황태후가 사는 장신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황제의 총애는 이미 포기했지만, 문득 문득 과거의 영화며 황제에 대한 그리움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반첩여가 지은 시가 ‘한서’(漢書)에 전한다. 제목은 철 지난 가을 부채란 뜻의 ‘추선’(秋扇)이다. ‘(전략) 합환선을 만드니 둥굴고 둥굴기가 명월인듯 하여라 / 님의 소매속을 나며들며 흔들려 미풍을 일구네 / 두려운 것은 가을이 와서 더위를 앗아갈까 함이러니 / 이미 버려져 님의 은정이 끊어지고 말았구나’ 자신의 처지를 가을 바람이 불어 쓰다버린 부채를 빗대어 시로 읊었던 것이다. 후세에 왕충이란 사람은 이 시를 보고 한술 더 떠서 가을 부채가 아닌 ‘겨울철 부채에 여름철 화로’라 하여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했다. 여름엔 싫은 것이 뜨거운 화롯가다. 또 겨울에는 보기만 해도 추운 것이 부채다. ‘하로동선’은 화로나 부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동로하선’(冬爐夏扇)의 시절도 있다. 현명한 사람은 그래서 겨울에 부채를 챙겨두고 여름에 화로를 손질해두는 생활의 지혜를 갖는다. 이 해가 저문다. 2007년이 역사속에 묻혀간다. 한 해가 또 저마다 인생의 궤적속에 묻힌다. 돌아보는 한 해는 보람도 있고 후회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래도 산다는 것은 행복하다. 현재가 있으므로 하여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음이 맑으면 열린 미래가 보인다. 세모에 갖는 설레임은 새해 새희망에 대한 설레임이기도 하다. ‘일엽천하추’(一葉天下秋)라, (떨어지는) 나무 이파리 하나가 세상에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지만, 새벽잠이 날밝는 줄 모른다는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의 봄철도 이어 온다. 반첩여의 시 ‘추선’은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만 세상사 이치는 가을 부채도 여름 부채로 또 쓰이고, 여름이 지나면 화로를 찾는 겨울이 또한 오기마련인 것이다. / 임양은 주필

인(仁)

‘논어(論語)’에는 ‘인(仁)’에 대한 언급이 100여차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중궁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인에 대하여 질문했을 때 “문밖에 나가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큰 손님 만나듯이 하라. 내가 백성을 부릴 때는 마치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러면 나라에서든 집안에서든 어느 누구도 그 지도자를 원망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논어’의 일관된 사상은 따뜻한 인간관계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느냐가 공자의 문제의식이었고 물음이었다. 그 따뜻한 인간관계의 핵심 윤리가 바로 ‘인’이며, 인의 완성은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좋은 친구로서 남에게 인정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가장 위대한 실천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인을 완성한 사람의 모습이다. 인간관계에 배려는 두 가지 방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수평적 인간관계다. 집 문밖을 나설 때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큰 손님 만나듯이 하라는 의미다. 큰 손님으로 상대방을 대접해준다면 기분 안 좋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큰 손님으로 대접 받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을 먼저 큰 손님처럼 대해야 한다. 인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따뜻하다. 따뜻함이 바로 배려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손님이다. 다른 하나는 수직적 인간관계다.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하거나 업무를 맡길 때 마치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려면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내 지시를 직원들이 따라 줄 것이란 생각에 배려 없이 명령을 내린다면 상대방의 가슴에 원망이 쌓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 곁을 떠날 수 있다. 공자는 이런 따뜻한 인간관계로서의 인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하며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메시지이지만 리더가 빠지기 쉬운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강력한 의미다.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다. 인은 사람들이 꿈꾸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갯벌

갯벌은 바닷가에 펼쳐진 벌판이다. 밀물과 썰물이 운반한 물질이 쌓여 이뤄진 해안 퇴적 지형이다. 이 물질은 미세하기 때문에 주로 해수면이 잔잔한 해안에 쌓인다. 따라서 갯벌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거나 만(灣)·섬으로 가로막힌 해안에 잘 조성된다.이 때문에 동해안엔 거의 갯벌이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갯벌은 갯벌을 구성하는 퇴적물의 입자 크기에 따라 ‘펄 갯벌(점토 70% 이상)’ ‘모래 갯벌(모래 70% 이상)’ ‘혼성 갯벌’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갯벌 총 면적은 전체 국토의 2.5%인 2천550.2㎢에 이른다. 이 중 서해아니 전체 갯벌의 8.3%(2천107.7㎢), 남해안이 17%(440.5㎢)를 차지한다. 갯벌은 지구상에서 단위 면적당 생물 개체수가 가장 많다. 우리나라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의 종수(種數)는 동물 687종, 식물 164종 등 851종에 달한다. 많은 생물이 갯벌에 사는 이유는 영양분이 충분해서다. 갯벌은 육지·하구(河口)·바다로부터 유기물을 공급받아 영양분이 풍부하다. 대다수 바다 생물이 갯벌에서 번식하고 먹이활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갯벌이 바다 생물의 ‘인큐베이터(보육장)’인 셈이다. 갯벌은 ‘자연 정화조’ 기능을 한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오·폐수를 정화하는 하수종말처리장의 실제 효율은 50% 수준이며 나머지 오·폐수는 바다로 흘러간 뒤 갯벌에서 걸러진다. 갯벌 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이 유기물질을 분해해 오·폐수를 깨끗하게 한다는 얘기다. 갯지렁이 500마리가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2㎏의 배설량을 정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둘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한다. 예컨대 갯벌은 홍수가 생기면 다량의 물을 머금고 조금씩 흘려 보내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 태풍의 충격을 흡수해 육지 생태계를 보호하기도 한다. 갯벌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철새들은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한다. 갯벌은 생태적 가치가 높아 갯벌 생물이나 철새를 관찰하는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된다. 관광·레저 공간으로 이용돼 문화적 가치가 높다. 갯벌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면 연 10조원이라고 한다. 갯벌은 ‘자연의 콩팥’이다. 콩팥(신장)이 신체의 노폐물을 걸러내듯이 갯벌은 육지의 오염 물질을 걸러내주기 때문이다. 최근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으로 갯벌이 위험에 처했다. 보다 강력한 갯벌 보호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上王시대, 끝?

17대 대선에서 범여권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비판이 민주당쇄신위원회에서 제기됐다. 발설자는 황태연 민주당 중도개혁국가전략연구소장(동국대 교수)이지만 DJ를 하늘처럼 알던 민주당에서 그런 얘기가 나와 정치무상을 실감케 한다. 황 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1997년 대선 때는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바 있는 DJ의 ‘정책 브레인’ 출신이다. 황 소장은 “6월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대철 고문, 정동영 후보, 김한길 의원과의 4자 회담에서 80여 석의 중도개혁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DJ가 정대철 고문과 다른 분을 불러들여 그 합의를 깼다. 이후 김한길 의원이 빠져나왔고 30여 석의 중도개혁정당이 됐는데 그것도 깨졌다”며 신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통합 협상이 결렬된 배경을 “4자 지도부가 (통합) 합의를 했는데 DJ가 ‘오마이뉴스’를 불러서 ‘통합 없는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보도가 나가도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DJ는 17대 대선에서 범여권의 대통합을 주문하며 대통합신당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되자 보수진영의 ‘잃어버린 10년론’, ‘좌파정부’ 공세를 강하게 비판했고 “범여권이 대선에 올인하면 또 이길 수 있다”며 범여 진영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3김 김대중·김영삼(YS)·김종필(JP)’ 가운데 DJ만 유독 힘이 빠졌다. YS와 JP는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지지의사를 직·간접으로 밝혀 영향력을 행사하고 생색을 냈지만, DJ는 힘을 못썼다. DJ의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포는 14대에서 16대까지 국민회의 -민주당 계열 후보가 95.8 ~ 96.8%를 득표해 득표율에서 모두 전국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얻은 95.9%보다 15.8% 포인트 떨어진 80.1%를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 일각에서 “DJ의 대(對) 호남 영향력도 사그라진 만큼 ‘탈DJ 선명야당’ 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필요성이 공공연히 제기되는 걸 보면 ‘상왕(DJ)시대’도 막을 내리려나 보다. /임병호 논설위원

박사논문

박사(博士)는 고구려 백제 때 학문이 높거나 전문 기술이 뛰어난 사람에게 준 벼슬 명칭이다. 태학(太學)박사는 고구려, 오경(五徑)박사, 역(易)박사, 의(醫)박사, 역(曆)박사는 백제의 박사다. 백제 왕인(王仁)박사는 285년 일본 왕실의 초청으로 천자문 논어 등을 가지고 건너가 오오진(應神)왕의 세자를 가르치는 사부가 되어 일본의 문자문화를 꽃피운 비조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다. 박사 벼슬은 고려시대엔 성균관(학문기관), 사천대(천문대), 태의감(왕실병원) 등에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승문원 등에 둔 정칠품의 품계다. 오늘날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전문 분야에서 새로운 일가견을 피력하는 논문으로 따게되는 박사 학위는 석학을 상징한다. 학자로서의 권위가 인정된다. 해마다 많은 박사가 배출되긴 해도 존엄성은 여전하다. 이래서인 지 가짜박사, 특히 해외에서 받았다는 학위 중에 가짜가 많아 더러 논란이 되곤 한다. 신정아 동국대 교수의 비리 역시 가짜박사가 탄로난 것이 단초가 됐었다. 가짜는 아니어도 박사 논문의 대필, 표절이 또 말썽이 되기도 한다. 이런 논란의 말썽은 학문의 권위를 도둑질하는 것으로 심히 파렴치하다. 일부의 논문 대필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논문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는 것이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연구의 흔적이 배어드는 것이 연구논문이다. 불가능한 논문 대필이 가능한 건 연구한 것은 없이 자료만 여기 저기서 베껴 짜깁기하는 것으로, 이를 통과시킨 심사진에도 문제가 많다. 용인대 박사논문의 대필 의혹이 검찰수사에 오른 가운데 이번엔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 이두식 홍익대 교수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은 일부 사소한 실수로 돌려 표절을 부인하지만, 남의 잘못된 외국 작가 이름 등을 그대로 자신의 논문에 옮긴 오류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화예술 시민단체인 ‘예술과 시민사회’측 지적이다. 이런 와중에 국내 최초의 여성 우주인 이소연씨(29·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신선하다. KAIST 재학 중 우주인으로 뽑힌 이소연 박사는 우주인 선발 전에 연구가 거의 마무리되어 러시아서 가진 훈련중에도 논문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위논문은 ‘DNA를 분리하는 칩에관한 연구’다./임양은 주필

크리스마스 캐럴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잊고 살 때가 많다. 과거는 과거니까 그런다손 쳐도 자신이 처한 현재도 잊을 때가 많다. 하물며 경험하지 못한 미래는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미래, 미래 중에도 특히 자신의 사후 세계가 무척 궁금한 것이 인간이다. 수전노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전날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동료의 망령을 만난다. 이에 앞서 그는 조카의 크리스마스 축복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오히려 비웃었다. 빈민구제를 위한 노신사의 기부금 모금 방문엔 단호한 거절로 내쫓아 보냈다. 그리고는 밤이 깊도록 돈 셈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홀연히 7년전에 죽은 동업자 머엘레가 나타난 것이다. 머엘레는 스크루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정령으로 보여준데 이어 그가 죽어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크루지는 죽은 자신의 시신이 마대같은 것으로 둘린 채 여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생전에 그토록 애써 모은 돈을 한 푼도 사후 세계로 가져가지 못했고 또 가져간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친구의 망령이 사라진뒤 정신을 차린 스크루지는 돈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아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참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이 소설은 1843년 디켄즈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의 내용이다. 인간의 사후세계 존재를 믿고 안 믿고 하는것은 신앙의 자유다. 분명한 것은 사후엔 필요없는 돈이 현세에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돈은 많을수록 좋지만 돈이 인간의 행복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돈이 적어도 돈많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구가한다. 크리스찬이든 아니든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 본다. 한 해를 보내는 막바지 대목이어서 더욱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설사, 자신이 불행에 처했다해도 허망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사람들은 즐거움으로만 인생을 추구하려고 들지만 슬픔은 더큰 인생의 중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올 한 해에 합당한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한다. ‘거짖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디모데전서 6장 20절) /임양은 주필

출마 중독증

이번 제17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등록한 12명 가운데 9명의 공탁금 45억원이 국고로 귀속된다. 법정 득표율 15%에 미달한 후보는 중앙선관위의 선거운동비 보전에서 제외될 뿐만이 아니라 5억원씩 낸 공탁금도 국고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 9명은 창조한국당 문국현(5.8% 137만5천498표) 민주노동당 권영길(3% 71만2천121표) 민주당 이인제(0.7% 16만708표) 경제공화당 허경영(0.4% 9만6천756표) 한국사회당 금민(0.1% 1만8천223표) 참주인연합 정근모(0.1% 1만5천380표)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0.0% 7천161표) 외에 중도에 사퇴한 심대평(국민중심당) 이수성(국민연합) 등이다. 무소속의 이회창(15.1% 355만9천963표)은 법정 득표율 15%를 간신히 넘겨 공탁금 5억원을 돌려받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오래 전에 대구서 언론계 선배 중 한 분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해서 극력 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선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 생각해봐라,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하며 거명됐던 사람들을 평하면서 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명된 인사 가운덴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도 포함됐다. 이윽고 후보등록 마감일 오후가 되어 하필이면 지지대子 더러 등록하러 가라고 하여 거절했더니 “니는 내가 국회의원 되는 게 그렇게 샘나느냐”며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등록하러는 가도 선거운동은 안 한다는 조건으로 지프를 타고 가는데, 선관위에 낼 기탁금 현찰이 수북한 게 날려버릴 것이 뻔해 영 아까운 것이다. 그는 현찰 관리에 내가 미덥다고 여겨 시켰지만, 단 몇시간만 어디 가서 넘겨 등록 마감이 지나면 이 돈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으나 등록을 마쳤다. 결과는 역시 형편없는 낙방으로 끝났다. 그 때 생각한 것이 입후보 중독증에 한 번 빠지면 구제난이란 것을 터득했다. 곁에서 출마를 충동질하는 선거꾼들의 꾀임이 또한 여간 아니다. 그 선배도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닌데 그만 바보가 되는 것을 보았다. 이번 대선에서 5억원을 날릴 생각으로 출마한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도 입후보 중독증이다. 국고에 희사하는 것은 좋지만 선거판을 희롱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참정권의 자유를 농락하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사랑

결혼은 남녀 간 사랑의 가장 이상적 모델로 지칭된다. 두 남녀의 주관적 사랑의 관념이 어느 순간 ‘객관화되어’ 결혼에 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순간의 사랑은 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순간이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수십년 동안 올곧이 이어지긴 어렵다. 사랑의 의미가 변할 수도 있고 의미는 변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방법이나 태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에 따르면 사랑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가 그것이다. 에로스는 흔히 성애적 사랑이라고 하는데,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성에 대해서 느끼는 육체적 욕망에 기초한 사랑이다. 자기에게 없는 것, 즉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에로스는 그 자체가 자연적이다. 필리아는 친구애, 우정, 동료애로 번역된다. 동등한 인격체들 간의 배려와 인정을 기초로 한 사랑이다. 상대의 존재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우리말의 배우자(결혼한 남녀)간의 사랑을 말한다고 하겠다. 즉 동반자로서 서로의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랑을 말한다. 아가페는 초월적인 사랑, 그 예로 신의 뜻, 모성애를 많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구분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누구는 에로스만 하고 누구는 필리아나 아가페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 가지 사랑은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가지는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두 남녀는 에로스로 맺어진 다음, 필리아로 사랑의 의미와 방법을 바꾸면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는 아가페를 실천한다. 우리 사회의 부부 관계는 에로스이후를 알지 못했거나 그에 대한 의의를 찾지 못했다고 하겠다. 에로스, 필리아는 알겠지만 아가페가 부부사이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컨대 알츠하이머에 걸린 배우자를 돌보는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최근 늘어나는 이혼 사례는 사랑의 의미와 의의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나이에 따른 사랑의 의미 변화를 너무 경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신이상 방화

‘분풀이 방화’ ‘이유 없는 방화’사건이 끊임 없이 늘고 있어 걱정스럽다. 지난 2002년 2천778건이던 방화사건이 2003년 3천219건, 2004년 3천291건, 2005년 3천326건, 2006년 3천413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올해도 6월 현재 2천896건이나 발생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방화로 인한 재산 피해도 매우 크다. 2002년 81억8천400만원에서 지난해 116억2천900만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6월 현재 피해액이 101억7천200만원으로 올해 2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화 이유가 실로 어처구니 없다. 공원 앞길에 주차돼 있던 화물차 적재함, 아파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 등 모두 24대의 차량에 불을 지른 사건의 경우, 교통사고로 형사처벌을 받고 손해배상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데다 이혼까지 겹치자 잘못된 세상 탓이라며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공중화장실에 불이 난 것도 취직이 안 되고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잘못된 사회 탓으로 돌린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다. 자동차 방화 미수로 복역하다 풀려난 어떤 사람은 교도소 동기가 운영하는 식당에 불을 질렀다. 숙식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자신을 홀대한다며 방화로 화풀이를 했다. ‘갑자기 불을 지르고 싶어서’ 술집 입구 등에 4차례나 불을 지른 우발적인 방화도 있었다. 사회에 대한 원망 뿐 아니다. 보복이나 화풀이로 불을 지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세대 주택에 침입, 400여만 원의 금품을 훔친 도둑이 생각보다 수입이 적다고 불을 지른 경우는 정말 황당하다. 이 도둑은 2005년 7월부터 모두 71차례나 남의 집에 들어가 절도를 하면서 금품이 적게 보관돼 있던 다섯 집에 보복성 방화를 저질렀다고 한다. 사회 분위기가 불안하면 각종 범죄가 늘어나긴 한다. 그렇다고 막가파식 방화가 용인될 순 없다. 과거엔 증거인멸이나 장난에서 비롯된 방화가 많았지만 최근엔 보복 심리나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방화가 많다. 문제는 대책이 막막한 점이다. 정신 이상자들이 저지르는 방화는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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