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 나 내일 평양 가요.” 밀린 일 때문에 우리 구성원들과 짜증스럽게 실랑이하고 있던 며칠 전 오후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침에 아내로부터 얼핏 귀띔을 받고 별로 탐탁해하지 않던 차였다. “그래요, 그러면 묘향산에도 가겠네. 가서 측백나무도 보고 오세요.” 무슨 한가한 관광이냐는 듯 다소 빈정대는 느낌을 전해 받았는지, “아뇨. 행사 차 가는 거예요.”하고 맞받는다. 또 다시 심통이 나서, “모 지방 공무원은 바로 그 코스로 벌써 2년 전에 다녀왔대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잘 다녀오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지만 기분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노사모 같이 하던 대학 동창이 연봉 1억5천만원 짜리 공공기관 감사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하던 생각이 떠올라서였고, 또 다시 얼마 전 닮은꼴 후보 보러 여의도 가자는 걸 ‘지식인의 정치 과잉’을 이유로 거절하자 몹시 껄쩍지근해 하던 기억이 되살아 나서였다. 무슨 무슨 ‘민’자를 앞세워 그렇게 그렇게 관광 겸 행사 갔다 와서는 경력 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재단 이사장, 모 공사 감사 완장 차고 나타나던 화상이 한 둘이 아니었잖은가! 생각은 이어져 한때 유행하던 길거리 청백기 게임이 문득 떠올랐다. ‘파랑기 내리고 빨강기 올려!’ 까마득한 기억의 저 편에서 칼 마르크스가 명령하고 있었다. “밥그릇 내리고 깃발 올려!” 엄혹한 군사 패권에 맞서던 그때 우리는 환호하며 그 구호에 빨려 들어갔다. 학회실에서 곤로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아껴 마련했던 행정고시용 상법과 민법 등을 아궁이 속에 처넣었다. 밤 새워 성명서를 쓰고 207 강의실에서 낭독한 뒤,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성명서 등사하러 교회 떡신자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으로, 지하 소그룹으로, 민중사 집필로, 노조 교육으로, 그렇게 우리는 깃발의 임무에 충실히 복무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시베리아가 풀리고 군인들이 물러가자 동지들은 하나 둘 계면쩍게 깃발을 내리고 밥그릇을 들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점점 뻔뻔스러워져갔고 나도 그 틈에서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한문 수학에 끼어들었으나, 나만은 계면쩍지도 뻔뻔스럽지도 않으리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랴! 그렇게 조롱당하던 공자가 꿈 속에 나타나서 단호히 선언했다. “깃발 내리고 밥그릇 올려!” 그는 춘추 열국 패자들의 문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자신을 세일즈하고 있었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없으면 물러난다”거나 “부와 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그 도로써 얻지 않으면 거처하지 아니한다”는 둥 딴전을 피우면서. 번번이 푸대접 당하자 이번에는 제자들을 대리 세일즈맨으로 길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는 연착륙한 제자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친절하게 애프터 서비스까지 아끼지 않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운운하며 조그만 고을에서 거문고나 타고 소 잡아 먹으며 흥청망청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며. “너 밥 맛있니? 그보다 꿈이 더 맛있어.” “밥그릇 올리되 깃발도 내리지 마!” 그 소리는 가장 낮고 넓고 깊은 심장의 바다에 이르러 눈부신 태양에 반사된 금빛 파문으로 부서지며 오랫 동안 일렁이고 있었다.
오피니언
윤한택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장
2007-11-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