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4 보고서

유엔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지구 환경과 인류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총체적으로 진단한 보고서 ‘지구환경전망’ 4차 보고서(GEO)는 참고용으로만 방치할 내용이 아니다. 대기오염으로 매년 2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면 우리나라도 환경 문제를 정책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 놔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지구의 오늘과 내일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는 43%, 평균소득은 40% 증가했지만 불균등 발전과 환경 파괴로 인류의 생태계가 받는 위협이 매우 커졌다. 가장 심각한 건 동·식물이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는 점이다. 자연 재해 등이 아니라 인간때문에 양서류의 30% 이상, 포유류 23%, 조류 12%가 역사상 여섯 번째로 멸종 위협에 처했다. 환경 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토지의 황폐화 및 사막화로 인류의 건강과 식량 안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북극의 빙하와 남극의 오존층 파괴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급증하는 인구에 비해 자원은 현격히 부족한 상태다. 특히 2025년이면 180만명이 절대적 물 부족 국가에서 살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7개 권역별 문제점도 섬뜩하다. 아프리카는 사막화로 인한 식량부족, 남미는 급속한 도시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에 직면했다. 아시아는 환경파괴 개선, 유럽과 북미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지속 가능한 삶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GEO 4차 보고서는 기후변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지구 온도는 1906년 이래 평균 0.74도 상승했고, 금세기 안에 1.8 ~ 4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구 표면 온도의 평균 2도 상승에 대비하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문제의 책임 소재가 인간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성이 결여돼 있다며, 라이프스스타일의 변화를 포함한 사회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혁신을 주창했다. 생물학적 다양성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의 급격한 축소를 우려하면서 “고유의 문화가 잘 보전된 지역일수록 생물 다양성도 우수한 경우가 많다”고 피력했다. GEO 보고서는 전문가 390명과 자문단 1천여명이 참여, 풍부한 관찰과 분석에 의거한 방대하고도 상세한 보고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즉각적으로 대응을 안 하면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깃발 내리고 밥그릇 올려!

“실장님, 나 내일 평양 가요.” 밀린 일 때문에 우리 구성원들과 짜증스럽게 실랑이하고 있던 며칠 전 오후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침에 아내로부터 얼핏 귀띔을 받고 별로 탐탁해하지 않던 차였다. “그래요, 그러면 묘향산에도 가겠네. 가서 측백나무도 보고 오세요.” 무슨 한가한 관광이냐는 듯 다소 빈정대는 느낌을 전해 받았는지, “아뇨. 행사 차 가는 거예요.”하고 맞받는다. 또 다시 심통이 나서, “모 지방 공무원은 바로 그 코스로 벌써 2년 전에 다녀왔대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잘 다녀오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지만 기분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노사모 같이 하던 대학 동창이 연봉 1억5천만원 짜리 공공기관 감사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하던 생각이 떠올라서였고, 또 다시 얼마 전 닮은꼴 후보 보러 여의도 가자는 걸 ‘지식인의 정치 과잉’을 이유로 거절하자 몹시 껄쩍지근해 하던 기억이 되살아 나서였다. 무슨 무슨 ‘민’자를 앞세워 그렇게 그렇게 관광 겸 행사 갔다 와서는 경력 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재단 이사장, 모 공사 감사 완장 차고 나타나던 화상이 한 둘이 아니었잖은가! 생각은 이어져 한때 유행하던 길거리 청백기 게임이 문득 떠올랐다. ‘파랑기 내리고 빨강기 올려!’ 까마득한 기억의 저 편에서 칼 마르크스가 명령하고 있었다. “밥그릇 내리고 깃발 올려!” 엄혹한 군사 패권에 맞서던 그때 우리는 환호하며 그 구호에 빨려 들어갔다. 학회실에서 곤로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아껴 마련했던 행정고시용 상법과 민법 등을 아궁이 속에 처넣었다. 밤 새워 성명서를 쓰고 207 강의실에서 낭독한 뒤,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성명서 등사하러 교회 떡신자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으로, 지하 소그룹으로, 민중사 집필로, 노조 교육으로, 그렇게 우리는 깃발의 임무에 충실히 복무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시베리아가 풀리고 군인들이 물러가자 동지들은 하나 둘 계면쩍게 깃발을 내리고 밥그릇을 들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점점 뻔뻔스러워져갔고 나도 그 틈에서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한문 수학에 끼어들었으나, 나만은 계면쩍지도 뻔뻔스럽지도 않으리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랴! 그렇게 조롱당하던 공자가 꿈 속에 나타나서 단호히 선언했다. “깃발 내리고 밥그릇 올려!” 그는 춘추 열국 패자들의 문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자신을 세일즈하고 있었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없으면 물러난다”거나 “부와 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그 도로써 얻지 않으면 거처하지 아니한다”는 둥 딴전을 피우면서. 번번이 푸대접 당하자 이번에는 제자들을 대리 세일즈맨으로 길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는 연착륙한 제자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친절하게 애프터 서비스까지 아끼지 않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운운하며 조그만 고을에서 거문고나 타고 소 잡아 먹으며 흥청망청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며. “너 밥 맛있니? 그보다 꿈이 더 맛있어.” “밥그릇 올리되 깃발도 내리지 마!” 그 소리는 가장 낮고 넓고 깊은 심장의 바다에 이르러 눈부신 태양에 반사된 금빛 파문으로 부서지며 오랫 동안 일렁이고 있었다.

원산지표시 위반 처벌

현행 원산지 관련 법률은 농산물품질관리법·식품위생법·대외무역법 등 세 가지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농산물품질관리법에 근거해 농축산물과 그 가공품을 단속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위생법에 의거 대중음식점 판매 쇠고기와 쌀을, 관세청(세관)이 대외무역법에 따라 수입물품의 원산지 단속권한을 갖고 있다. 이 세 종류의 법률이 모두 농축산물의 원산지표시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만 문제는 원산지표시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이 제각각이다. 혼란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원산지 허위표시의 경우 농산물품질관리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이를 병과할 수 있도록 규정해 현행 법률 중 가장 처벌규정이 강력하다. 하지만 대외무역법과 식품위생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원산지 미표시에 대해서도 농산물품질관리법과 대외무역법은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식품위생법은 100만 ~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렇게 법률에 따라 처벌 규정이 각각 달라 동일한 원산지 위반 행위라 할지라도 한 가지 법률을 적용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런 법률은 각종 단속권이 해당 기관의 세력 과시나 밥그릇 싸움 양상으로 변질됐거나, 법률 제정 또는 개정 과정에서 기관 간 협의나 공조체제가 미흡했다는 방증이다. 오랜 논란 끝에 시행된 음식점 육류 원산지표시도 당초 식약청이 전문기관인 농산물품질관리원을 배제하고 단속권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함으로써 단속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었다. 앞으로 여러나라와의 자유무역(FTA) 추진 등으로 농축산물 수입개방이 확대되고 그럴수록 원산지표시 위반 행위도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한 일이다. 농민단체들은 처벌규정이 무거운 법률 적용을 주장하고 대부분 의견도 찬성하는 추세이지만 그러나 처벌 잣대는 같아야 한다. 처벌 규정이 다르면 단속을 당한 사람들의 비난은 물론 민원이 야기될 소지가 다분하다. 동일한 범법행위를 놓고 단속기관·관련법에 따라 차이가 있으면 위반업소들에게 되레 책 잡히는 일이기도 하다. 단속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 부처간 업무조정은 물론 공조체제부터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四大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었다. 1395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한 뒤 이듬해부터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고 4대문과 4소문을 축조했다. 4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돈의문(서대문)·숭례문(남대문)·숙정문(북대문)이다. 4소문은 4대문 사이에 설치됐다. 동북에 혜화문(동소문), 서남에 소의문(서소문), 동남에 광희문(수구문), 서북에 창의문(자하문)이 들어섰다. 4소문은 4대문보다 노출이 덜 돼 외적의 침입 때 비상문 역할을 했다. 4대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성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유교를 중시한 태조는 인(仁)·의(義)·예(禮)·지(智)의 4대 덕목을 4대문 이름에 하나씩 담았다. 조선 22대 정조대왕은 수원에 화성(華城)을 축성(1794년 2월 28일 ~ 1796년 9월10일)하면서 4대문을 축조했다. 창룡문(蒼龍門)은 화성의 동쪽 대문으로 일반적으로 동문(東門)이라고 불린다. 창룡은 곧 청룡(靑龍)이며 동쪽 하늘을 맡은 태세신(太歲神)으로 중국 한나라 낙양성의 동쪽 문 이름으로 사용했던 바 있다. 화서문(華西門)은 화성의 서쪽 대문이다. 화서문의 편액은 화성 성역의 총책임자로서 총리대신이었던 채제공이 썼다.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남쪽 대문이다. 정조대왕과 역대 임금들은 능행시(陵行時) 화성행궁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팔달문을 통하여 현륭원(융릉)을 다녀왔다.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쪽 대문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쓰여졌으며 이를 정조대왕이 북문의 이름으로 정했다. 태평성대를 구가한 한(漢)·당(唐)의 수도였던 장안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 것이라 하겠다. 1795년 윤2월14일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서 방화수류정으로 가던 중 장안문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고 수원유수 조심태에게 장안문 밖에 개간할 만한 땅을 물어보았다. 그때 조심태가 가리킨 지역은 곧 개간돼 화성의 생산 기반 시설로 국영 농장이었던 대유둔(大有屯)이 됐다. 화성은 한양의 4소문처럼 비상문으로 남암문·동암문·북암문·서암문·서남암문 등 5암문(五暗門)을 만들었다. 정조대왕이 전 국력을 기울여 축성한 화성이 1997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화성의 4대문을 정조대왕처럼 통과하는 것도 화성 관광의 맛이요 멋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지방의원 탈세

세금 많이 떼는 게 보기싫어 월급 명세서를 안본다는 것이 많은 월급쟁이들의 불만이다. 세금 많이 떼어도 좋으니 월급 명세서란 것을 받아봤으면 한이 없겠다는 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세금을 떼어도 그토록 많이 뗀다. 예를 들면 250만원 월급쟁이일 것 같으면 이리저리 떼는 세금 등이 20만원을 넘는다. 대개 8%를 뗀다. 옴짝달싹 못하고 징수당한다. 100% 성실 납세자는 월급쟁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그런데 월급을 300만~400만원, 또는 그 이상 받으면서도 세금은 단돈 몇 만원만 내는 월급쟁이들이 있다. 지방의원들이다. 수령액의 절반 이상을 의정활동비란 명목으로 받기 때문이다. 의정활동비는 이를테면 실비보상의 성격이지 소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소득으로 치는 나머지 금액의 세금이 기껏 3만원인 경우가 많다. 300만~400만원 받는 월급쟁이가 세금은 단돈 3만원 내는 팔자좋은 대한민국 월급쟁이가 지방의원인 것이다. 지방의원들이 월급 올려야 한다고 떼거리로 야단이다. 지방의원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월급이 더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업의원들이 있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방의원 가운덴 본업이 따로 있는 부업의원들이 3분의 2 가량 된다. 한데, 이들은 월급 올려야 한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다. ‘의정활동비 현실화’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약 월급이 올라도 이들이 내는 세금은 여전히 몇 만원 대 인 것이다. 이러고 보니 월급 인상보다 더 급한 게 ‘의정활동비 현실화’가 아니고 ‘급여명칭 현실화’일 것 같다. 월급 전액을 소득 급여로 전환, 합당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 유급제가 실시된 당초부터 소급해 세금을 떼야하는 것이다. 지방의원 월급이 어떻게 의정활동비로 둔갑됐는진 모르겠으나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업의원들의 본업은 대부분 ‘사장님’이다. 돈많은 ‘사장족 부업의원’들의 탈세가 너무 얌체 같기만 하다. 월급을 올려달라고 야단이지만 월급을 안주어도 지방의원 하겠다는 사람은 그래도 많다. 유급제가 아닌 때도 일당 등으로 매월 적잖은 돈이 나갔다. 지방의원의 월급값을 평가해보는 전문기관 분석이 한번 있을만 하다./ 임양은 주필

손학규

요즘의 손학규를 보면 안타깝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지역 연고로 보아 그렇다. 또 대통령 후보감으로는 잘 정리된 사람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범여권 사람들 하고 같이 있는 화면을 보면 생뚱같은 생각이 든다는 사람이 많다. 기왕 대통령 후보가 되기위해 탈당의 비난을 감수했으면 뜻을 이루었으면 좋았을 걸 안됐다는 사람들도 많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이 됐다. 이해찬, 김근태 의원과 공동위원장인 것이다. 손학규가 정동영의 선거대책위원장이란 것도 좀 이상해 보인다. 결국은 신당의 불쏘시개 역할로 끝났다. 손학규로서는 지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경선에서 밀린 마당에 불복도, 탈당도 할 수 없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선거대책위원장 자리도 사양할 처지가 못된다. 당내 입지가 공고한 것도 아니다. 이해찬이 ‘친노’인데 비해 정동영은 ‘비노’였고 손학규는 유일한 ‘반노’였다. 졸지에 이상한 입장이 되어버린 그의 정치적 미래를 내다보기는 난해하다. 역시 어렵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기회가 아주 없진 않을 것 같다. 오는 12월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정계 개편은 불가피하다. 어느 정당, 누가 집권을 하든 정치권 판도에 지각변화가 올 것이다. 국회의원도 아닌 백두다. 정치적 재기를 위해서는 내년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가 이를 위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 진 아직 미지수다. 대선 행보에 보인 착오는 탈당이 원죄다.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경기도 출신의 정치인이 대권 도전에 나선 건 그가 유일하다. 비판은 하더라도 욕은 하지않는 것이 지역 인심일 것이다. 그런데 욕하는 이들이 없지않다. 그것도 할만한 이들이 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해선 안될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염량세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손학규가 도지사로 있을 적에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더러 해선 안될 소리를 하는 것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남편의 정치 인생에서 가정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행복했던 것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던 때가 아니고, 경기도지사를 지낸 지난 4년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부인이 어느 좌석에서 술회한 말이다. / 임양은 주필

대선공약

‘그들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놔주겠다고 한다’고 했다. 후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말이다. 서구의 선거 방법에 공약이 난무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빈정거렸다. 선거공약은 선거의 필수 요건이다. 선거의 필수요건인 선거공약이 이처럼 우습게 보이는 것은 선거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서구사회도 다르지 않아 또 이런 말이 있다. ‘선거공약을 가장 적게 한 사람에게 투표하라. 그가 가장 적게 속일 것이다’라고 했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운 ‘뉴 프론티어’는 국민의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국내개혁과 세계적 위상강화를 위한 미국 국민의 자존심을 고취시켰다. “국가에 국민이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은 케네디의 유명한 대통령 취임연설 구절이다. 다음달에 있을 대선 등록을 앞두고 후보들의 갖가지 공약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자칭 예비후보가 아닌 각 정당의 정식 후보들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듣기좋은 소리만 한다. 그대로라면 천국이 될 소리가 많다. 그렇지만 그같은 공약을 곧이 곧대로 들을 사람은 없다. 아무리 좋은 공약도 국민의 노력없이는 안된다. 가만히 있어도 잘 살게 해줄 것처럼 허풍 떠는 공약보단, 국민에게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피땀을 요구하는 공약이 나왔으면 한다. 국민사회가 바라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잘 살게 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일을 못한다. 피땀을 흘리는 게 두려운 게 아니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것이다. 앞으로 일자릴 많이 주고 일한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겠으니,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피땀을 흘리라는 공약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떳떳하다. 선거공약은 실현 가능성에 재원 등 여러가지 조건이 있다. 허풍공약을 걸러내는 것이 매니페스트 선거다. 후보의 공약을 검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선 후보 공약만도 ‘강이 없는데 다리를 놔주겠다’는 식의 공약이 없지 않다. 비굴한 사탕발림 공약보다, 국민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쓴 공약도 내놓을 줄 아는 당당한 후보가 있으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프랑스 섹스문화

지난해 출간돼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한동안 고수했던 ‘섹수스 플리타쿠스(Sexus Politicus)’는 “프랑스에서 성공한 정치인은 대부분 바람둥이”라고 묘사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내가 장관이었을 때는 몇몇 여성들이 나를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 시절 1천700만명의 프랑스 여성과 사랑을 나눴다”고 자신의 연애담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그는 79세 때 애인과 잠을 자다 침대에서 숨졌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프랑스와 미테랑 전 대통령처럼 일본인 애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설이 있었다. 시라크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 종종 밤늦게 엘리제궁을 빠져나가자 부인인 베르나데트 여사는 대통령의 운전사에게 “남편의 오늘 밤 위치는 어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군인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드골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여성편력이 없었다고 한다. 독일 ‘슈피겔’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는 수준을 넘어 정치인들 스스로가 사생활을 공개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당의 루아얄은 53세의 나이에도 주름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로 수영장에서 나오는 모습이 타블로이드 1면을 장식해 화제가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은 장관 시절 아예 할리우드 연예인 뺨치는 스캔들을 공공연하게 뿌리고 다녔다. 그는 부인 세실리아가 수개월 동안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TV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공개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이후 20세 연하의 여기자와 사귀는 것이 들통나기도 했으나 지난해 초 ‘세실리아가 사르코지 장관에게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랑의 승리’니 ‘화해의 여름’이니 하는 제목으로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그랬던 사르코지·세실리아 부부가 최근 이혼했다. 동양권이었다면 임기 중 이혼한 대통령에 대해 ‘수신제가도 못했다’고 탄핵이라도 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겠지만 프랑스에선 역시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대통령이 이혼했다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혼자 살 것 같진 않다. ‘프랑스에선 섹스도 정치’라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64Gb’의 위력

삼성전자가 3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공정으로 만든 64Gb(기가비트) 낸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력을 새삼 확인한 쾌거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매년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성장한다’는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의 반도체 신성장론인 ‘黃의 법칙’을 2000년 이후 8년째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64Gb 낸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는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머리카락 두께의 4000분의 1에 불과한 30㎚ 선폭으로 회로를 새기는 초미세 공정으로 개발됐다. 이 제품 8개를 넣어 만든 64Gb 메모리카드에는 음악 파일 1만6천개를 저장할 수 있으며, 16개로 만든 128Gb 메모리카드엔 일간신문 800년 분량과 DVD 영화 80편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주간지는 40만부를 담는다. 카드 하나가 일종의 도서관 기능을 갖게 되는 셈이다. 특히 64Gb 제품으로 40명의 유전자(DNA) 정보를 동시에 저장하는 바이오칩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이오 기술과 반도체 기술을 결합한 바이오칩 연구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64Gb 개발로 일본의 도시바, 한국의 하이닉스반도체 등 경쟁 기업과의 기술격차를 각각 0.5세대(6개월), 1세대(1년) 가량으로 벌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을 2009년경 부터 대량 생산하면 2011년까지 3년간 200억달러의 시장 창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이번 쾌거는 ‘위기’라는 과장된 표현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 일궈낸 개가(凱歌)여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인해 9월 이후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이 추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3-4분기에는 9천200억원으로 예년 수준까지 회복됐지만 2-4분기 삼성의 반도체 영업이익이 3천300억원에 그쳐 시장을 놀라게 했었다. 이번 기술 개발은 그러한 시장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내부적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 지금 세계 반도체시장에선 ‘타도 삼성’의 구호가 거세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삼성을 신뢰한다. 64Gb 개발에 성공한 삼성의 기술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자이툰 부대 철군

현재 이라크 전쟁에는 27개 나라 17만800여명이 파병돼 있지만, 100명 이상 병력이 남아 있는 나라는 13개국 뿐이다. 한국군은 파병규모 면에서 그루지야에 이어 네번째다. 몰도바 11명 등 100명 미만 국가가 14개국이다. 미군을 빼면 외국군은 1만3천여명이 남아, 2003년 이리크전 개전 직후 한때 5만명까지 이르던 것에 비하면 4명 가운데 3명이 떠난 셈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미군을 내년 여름까지 최대 3만명 감축하는 데이비드 페트로스 사령관의 건의를 승인했다.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5천700명을 철수하고. 내년 3월까진 4개 전투여단 최소 2만1천500명을 추가로 철수할 계획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2009년 1월까지 2만명 정도의 병력을 더 철수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미 하원은 지난 2일 미군의 철수안을 촉구하는 초당파 법안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라크 내전을 심판 볼 필요는 없다. 이라크인이 나라를 어떻게 안정시킬지는 그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며 취임 60일 안에 미군 철수를 개시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4만5천명의 병력을 파견한 영국도 현재 4천900여명이 남아 있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지난 8일 의회에서 내년 봄까지 병력을 2천500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내년 연말까지 전면 철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브라운 총리는 “이라크인들이 이제 스스로 보안 책임을 떠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이라크에선 철수하고 항공자위대 199명이 쿠웨이트에서 수송 등을 간접 지원하고 있지만 제1야당 민주당이 철구를 요구하고 있다. 그루지야도 1천900명의 병력을 내년 여름까지 300여명 수준으로 대폭 축소할 계획이다. 니카라과·스페인·온두라스·필리핀·타이·뉴질랜드 등은 2000년, 포르투갈·네덜란드·헝가리·노르웨이는 2005년, 이탈리아는 지난해 11월 철군했다. 우리나라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 파병을 1년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대선후보자 중 이명박·이인제는 찬성하고 정동영·문국현·권영길은 반대했다.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지만, 한국도 할 만큼 했다. 파병 연장은 철회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어재연 將帥旗

어재연(魚在淵) 장군(1823·순조 23~ 1871·고종)은 이천(利川) 출신이다. 1841년 무과에 급제,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됐다. 1866년 프랑스 로즈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했을 때(병인양요·丙寅洋擾) 광성진(廣城鎭)을 수비하였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비적을 토벌,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장시(場市)를 개설하는 등 변경무역을 활성화했다. 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 내침으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났다. 6월1일 손돌목 포격사건이 발생, 한미간에 최초의 군사충돌이 발발했다.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임명된 어재연 장군은 광성보(鑛城堡)로 급파돼 6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미군과 대치하였다. 6월10일 미군은 강화도상륙작전을 전개, 초지진(草芝鎭)을 점거한 데 이어 다음날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하고 광성보공략에 나섰다. 어재연 장군은 광성보에 ‘사(師)’자가 큼직하게 적힌 ‘수자기(師字旗·어재연 장수기)’를 게양하고 침공해 오는 미군과 격전을 벌였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양면작전을 개시, 함포와 야포사격으로 초토화작전을 펼쳤다. 광성보로 돌입한 미군을 맞아 어재연군은 치열한 육박전을 벌였다. 어 장군은 임전무퇴의 결의로 미군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개를 양손에 쥐고 미군에 던지며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화력을 앞세워 광성진을 함락시킨 미군은 장수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내걸었다. 당시 미군은 ‘어재연 장수기’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갔는데 그 ‘장수의 깃발’이 136년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돌아온 건 아니다. 문화재청이 역사적 비극이 서려 있는 장군기의 영구반환을 추진했으나 관련법 개정과 미국 의회 통과 없이 반환이 힘들다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와 협의한 끝에 2년 계약(최장 10년까지 계약 연장 가능)의 장기 대여 방식으로 지난 19일 들여왔다. 가로 415㎝, 세로 435㎝의 장수기는 삼베로 만들었는데 미군이 승전을 기념해 오른쪽 일부를 잘라냈다. 미국은 남의 나라에서 약탈해간 장수기 하나도 이렇게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개발이란 미명하에 문화재를 훼손하고 방치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으로 유출된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 지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 지도 의심이 든다. 어재연 장수기는 완전히 반환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억대 노점상

가게의 어원은 가가(假家)다. 가건물인 것이다. 유래는 서울 종로 시전에서 가건물을 지어 장사한 데서 나왔다. 번듯한 시전의 전방을 갖지 못한 대신 시전 옆에 가건물을 지어 시전을 대행한데서 가게란 말이 유래된 것이다. 시전은 특정 유통업에 상권을 공식으로 도맡아 행사하는 일종의 이권이다. 오늘날엔 그같은 시전은 없다. 시전의 전방은 없어진 반면에 점방은 많다. 현대 유통업의 주류는 점방이다. 점방은 소정의 건물에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한다. 그런데 점방 말고 노점이 있다. 점방을 낼 돈 없는 영세민이 먹고 살기 위해 길바닥에 좌판을 까는 것이 노점상이다. 점방은 건물주에 월세도 내고 나라에 세금도 낸다. 이러한 점방이 월세도 없고 세금도 안내는 노점에 다소간의 상권을 침해 당하면서도 묵과하는 것은 없는 사람의 생존권을 존중해서인 것이다. 한데, 노점도 노점나름인 것 같다. 점방보다 크고 점방보다 장사가 잘되는 노점일 것 같으면 기업형이다. 기업형 노점이 생존권 존중의 노점으로 보호받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가판대 영업 역시 노점이다. 서울시가 조례로 내년 1월부턴 가판대 노점을 제한키로 했다. 가판대 상인의 보유 부동산, 임차보증금, 금융자산 등 합계가 2억원을 넘으면 가판대 도로점용허가를 불허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내 3천500여 가판대 노점상 중 2억원 이상의 재산 소유자를 60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이 아니다. 돈 가치가 아무리 없다해도 2억원이면 엄청난 돈이다. 2억원을 지닌 재산가가 노점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는 이미 노점상이 아닌 것이다. 서울 노점상은 별난 것인가, 2억원이 아니라 1억원 아니 단돈 몇천원만 가져도 안할 노점상 한도를 2억원으로 정한 조례 또한 웃기는 조례다. 노점은 잘 사는 선진 외국에도 있다. 노점의 사회적 역할도 있다. 하지만 노점에는 분수가 있다. 기득권을 이권화하는 노점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서울시 노점상 자격을 2억원 재산 한도로 정한 조례에 반대하는 반발이 거세다는 게, 단돈 몇천원만의 재산도 없는 탓인지 이상하게 들린다./ 임양은 주필

세실리아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고 한다. 그것은 관직이 아니다. 대통령의 부인이기 때문에 대접받는 다만 예우일 뿐이다. 그런데도 퍼스트 레이디가 좋은 것은 나라 안팎으로 대접받는 예우가 대통령에 버금갈 만큼 극진하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인 세실리아 여사가 그 좋은 퍼스트 레이디 자릴 헌신짝 버리듯이 대통령과 이혼했다하여 화제다. 하긴, 그녀는 대통령 부인 노릇을 거부했다. 지난 6월엔 독일서 열린 주요 8개국정상회담 때 딸의 생일을 챙겨야 한다면서 혼자 귀국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여름 휴가에 초대한 것도 아프다는 꾀병을 핑계로 거부했다. 사르코지·세실리아 커플이 총각 처녀로 만난 것은 아니다. 11년전 둘이 결혼했을 적엔 이혼남·이혼녀의 처지였다. 사르코지도 세실리아도 전처 전부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또 둘 사이에 낳은 딸이 또 있다. 2005년 어쩌다가 별거로 들어가면서 사르코지가 바람을 피우자 세실리아도 맞바람을 피웠다. 별거에서 다시 동거로 들어간 것은 프랑스 대선을 앞둔 지난 1월이다. 그리고는 이번에 합의 이혼이 정식으로 대통령궁에서 발표됐다. 세실리아가 사르코지와의 별거에서 동거로 들어간 것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정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에 대한 마지막 선물일뿐, 그녀는 대통령 영부인 자릴 원하지 않았다. 대통령 관저인 엘레제궁 생활을 갇혀있는 생활로 비유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인턴 직원인 르윈스키와 염문을 뿌려 가정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적에 세인은 힐러리를 주목했다. 힐러리가 별거나 이혼을 요구할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힐러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남편을 용서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후광을 얻어 정계 진출의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 상원의원이 되어 차기 대통령으로 촉망받고 있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아무 야망없이 프랑스 대통령 부인 자릴 박찼다. 자유분방한 그녀가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하다. 프랑스는 참 묘한 나라다. / 임양은 주필

대선후보 부인 토론회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배우자들은 자신을 ‘러닝 메이트’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배우자들이 이전보다 직접적으로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이 하는 것 보다 두 사람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실용적인 이유도 포함돼 있다. 후보 자신이 감히 하지 못할 상대방 후보에 대한 공격을 부인이 담당하기도 한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의 부인 엘리자베스 에드워즈는 퍼스트레이드 후보 중 가장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다. 유권자들에게 남편의 공약을 설명할 수 있다는 데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엘리자베스는 상대 후보들에 대해 날선 공격을 가하는 ‘저격수’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이 “사사건건 불화를 일으키고 본선 경쟁력이 없다”고 폄하하고. 이라크전을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에겐 “성인군자인 척 한다”고 쏘아 부친다. 배럭 오바마의 부인 미셀은 자신만이 아는 남편의 소탈한 점을 언론에 노출시키며 지지자들에게 ‘신’처럼 보이는 남편의 이미지를 관리한다. 민주당의 퍼스트레이디 후보들과는 달리 공화당 대선주자 부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로라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나 낸시 레이건(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부인)같은 전통적 퍼스트레이디를 꿈꾼다. 미트 롬니 전 매사주세츠 주지사의 부인 앤은 고등학교 때 첫사랑과 결혼해 가정에서 뜨개질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완벽한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 대선주자뿐 아니라 두세 번씩 결혼한 전력이 있는 같은 공화당 내 대선주자와의 차별점을 부각하고 모르몬교도인 남편의 약점을 감싸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 앤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다섯 아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상원의원이 자신의 ‘후광’에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연설문 작성을 도와주고 일정을 관리하는 등 정치자문의 역할을 한다. 선거자금 모금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힐러리 만큼 배우자의 덕을 톡톡히 보는 대선 주자들도 드믈다. 이젠 우리나라의 대선후보들이 거의 확정됐다. 후보 본인들의 지도력, 정치력도 중요하지만 미국처럼 배우자의 인품이나 언행도 그에 못지 않다. 명실상부한 여성시대다. 대선 후보 부인들의 공식적인 합동토론회가 열렸으면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늙은 죄

자식들의 부모 학대가 계속 늘고 있어 정말 걱정스럽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자식들에게 구박까지 받으니 ‘무자식이 상팔자’인 모양이다. 방어능력이 거의 없는 초고령 노인의 피해가 전체 피해노인 가운데 7.5%가 85세 이상이라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85세 이상이 5.7%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초고령 피해 노인의 52%가 자식들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다간 불효 자식들에게 매맞아 죽게 생겼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06년 전국 노인학대 상담사업 현황보고서’를 보면 기가 막힌다. 전국 18개 노인학대 예방센터에 접수된 학대 신고사례가 2천274건으로 2005년(2천38건)보다 11.6% 증가했다. 가해자의 90% 가량이 친족이란다. 이 중에서도 아들(55.5%)과 며느리(11.8%)의 학대가 67%를 넘는다. 딸(10.4%)과 배우자(7.3%)의 학대도 심하다. 학대받는 노인들이 쉬쉬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과 학대인지 모르는 경우까지 합치면 신고건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조차 끔찍하다. 한국은 노인 자살과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O)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이다. 55세의 아들이 73세의 아버지를 재산을 빨리 상속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20년 가까이 언어폭력과 상습구타를 가했다. 슬하에 여러 남매를 둔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사글세방이나 컨테이너박스에서 굶주리며 혼자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세라는 자탄을 금할 수 없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부양체계가 붕괴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이를 떠맡을 시스템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노인문제는 날로 심각해져 간다.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노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사회 문제 중 하나다. 노인학대 문제의 해법이 경로효친임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 불효에 대비한 노인학대방지법이 필요하다. 현재 가정폭력방지법이나 노인복지법이 있지만 노인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인구학적 특성을 감안해 노인학대방지법이 빨리 제정돼야 한다. 노인들의 자립력을 증대시켜 가족 의존상태를 줄여가는 노력도 시급하다. 또 가족의 돌봄과 사회적 돌봄이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늙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이 서글프다. /임병호 논설위원

소말리아의 피랍선원들

한국 새우잡이 원양어선 마부노 1,2호의 선원(한국인 4명, 외국인 24명)들이 소말리아 연안 해역에서 무장 해적들에게 납치된 지 18일로 157일째를 맞았다. 피랍된 선원들은 현지에서 해적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악몽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부노호의 한석호 선장이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전화 통화에 따르면 해적들이 선원들을 육지로 끌고 가 ‘돈을 내놓으라’며 쇠파이로 때려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한다. 배에 남아 있던 음식이 오래 전 바닥 나 해적들이 건네준 돌과 모래가 섞인 쌀로 연명한다니 그 참상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더구나 해적들이 한국 선원들만 폭행하며 24시간 감시한다고 한다. 심지어 ‘손을 잘라 버리겠다’는 말을 일삼고 선원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총을 겨눈 채 금방이라도 쏠 것처럼 위협한다니 지옥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선장의 부인 김씨는 “아프가니스탄에는 대통령 특사와 국정원장까지 보내면서 생계를 위해 이역만리에 돈 벌러 간 사람들은 이렇게 소극적이니 선원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고 호소한다. 다른 피랍자 가족들의 절규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금 소말리아 해적들이 석방조건으로 요구하는 건 선원들의 몸값(미화 70만 달러)이다. 선원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다. 해적들과 직접 협상을 벌이는 선주 사정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금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소말리아 사태가 재발생할 우려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너무 미적지근하다. 하지만 탈레반엔 샘물교회 교인 몸값으로 정부가 1천만달러를 건네주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정부 당국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돈을 노리고 납치를 일삼는 해적들을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설 수는 없다. 사사건건 정부가 개입하면 세계 도처에서 한국인들은 납치범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소말리아 피랍 사태 해결도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물밑에서 전문가를 내세워 협상을 하되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피랍된 사람들에게 신분의 차등이 있어선 안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세계바둑대회

세계 68개국의 선수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말을 하려고 해도 언어가 달라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없었어도 실로 많은 말을 나눴다. 제2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의 모습이 이러했다.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두어가는 흑백 돌의 그림은 무언의 대화다. 이래서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수담은 이토록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다. 바둑을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 삼국에서만 하는 것으로 아는 것은 프로바둑에 국한한다. 아마추어 바둑은 세계적으로 크게 보급됐다. 오는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 국내에서도 올 8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바둑을 처음 경기종목으로 실시했다. 장차 올림픽 종목으로도 진입할 것이다. 바둑의 프로화가 세계적으로 곧 확대될 정도로 세계 아마바둑이 크게 발전할 날도 그리 머지 않은 것 같다. 세계바둑대회를 겸해 가진 경기도바둑협회회장배 도민바둑큰잔치도 대단했다. 소년부·일반부·여성부·학생부(초·중·고등부)로 나뉜 열띤 대전이 치열했다. 특히 여성 바둑인이 많은 것은 괄목할 만했다. 여성부에 참여한 여류 기사가 무려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을 뿐만이 아니라 기력 또한 범상치 않았다. 예리하면서 치밀한 기풍이 남성을 능가했다. 주로 주부층인 여류기사들이 바둑판 앞에 앉은 모습은 보기에도 참 좋아 보였다. 바둑은 중용(中庸)의 도(道)다. 공격과 수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강약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야망과 허욕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에 앞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하는 것이 바둑의 묘미다. 바둑에선 또 바둑판만 봐야지, 바둑을 두는 상대를 의식해서는 잡념이 생겨 지게 마련이다. 이래서 바둑판 앞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반전무인’(盤前無人)이란 말이 있다. 이번 대회는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수원종합운동장실내체육관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가 주최했는데 이런 큰 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기까지는 이를 수원에 유치한 경기도바둑협회와 수원시바둑협회의 노고가 컸다. /임양은 주필

탈레반 인질 몸값?

샘물교회 교인 인질 몸값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못한 바는 아니다. 대면협상을 촉구하면서 몸값 지불을 각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얼마를 주었든 이제와서 정부가 탈레반에 인질 몸값을 준 것을 탓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사실을 숨기고 있는 점이다. 몸값 지불설을 부인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부측 공식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를 언급하는 것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란 말도 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탈레반에 1천만 달러(약 92억원)를 주었다는 보도가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나왔다고 외신이 전해 주목된다. 이 신문은 탈레반측 사람들과의 아프간 현지 인터뷰를 통해 그같이 밝혔다. 탈레반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 인질 12명을 풀어줬을 때(8월29일) 700만달러를 받았으며, 나머지 돈은 나머지 인질(7명)을 풀어준 8월31일 전달됐다”는 등 몸값 수수의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1년 이상 전투에서 쓸 수 있는 무기와 폭약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정부가 테러집단에 준 돈으로 확보한 무기로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을 공격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공격 대상이 되기는 동의부대 다산부대 등 국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 해석이다. 한국인 인질 피랍 당시 23명 중 2명은 이미 피살되고 21명의 생명 또한 풍전등화였던 게 당시의 상황이다. 테러집단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보다는 어떻게든 목숨을 구하고 봐야하는 인도주의가 우선시 됐다. 다른 나라야 자국 국민이 아니니까 원칙론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같은 우리 국민끼리는 죽도록 그냥 놔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협상끝에 인질을 데려왔으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몸값을 줬든 안 줬든 테러집단과의 협상 선례를 남긴데 대한 국제사회의 눈총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그런 눈총을 각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몸값이 1천만달러인 지 얼마인 지 알 수 없으나 그 돈은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한 돈이다. 국민의 세금을 집행했으면 그 돈을 구상권 청구를 할 것도 아니고 이제라도 국민이 알도록 밝히는 것이 정부의 책임인 것이다./임양은 주필

붕어낚시 납회

낚시동호인들에게 10월은 납회(納會)의 달이다. 이른 봄이 시조(始釣)의 계절이면 늦은 가을은 납회의 계절인 것이다. 설레임 속에 시조로 시작된 낚시를 아쉬움속에 마감하는 것이 납회다. 낚시도 여러가지다. 저수지낚시가 있고 강낚시가 있고 바다낚시가 있다. 흔히 낚시를 사냥과 비유하여 저수지낚시는 참새잡이, 강낚시는 꿩잡이, 바다낚시는 짐승잡이로 비유한다. 바다낚시도 토끼잡이 같은 갯바위낚시가 있는가 하면 노루잡이 같은 어선낚시가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낚시의 정수는 저수지낚시다. 낚시는 입질에 이은 챔질의 타이밍이 요체다. 낚시의 묘미가 이에 있다. 이에 비하면 바다낚시는 이런 묘미가 없다. 고기가 미끼를 삼킨 것을 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 바다낚시다. 민물에서도 미끼가 아닌 모조미끼를 쓰는 루어 낚시는 사기다. 그런데 붕어는 모조 미끼에 속지 않는다. 베스 같은 외래어종이 루어낚시에 많이 걸리는데 외래어종은 없애야 한다. 베스 말고도 향어나 떡붕어 등은 추방돼야 할 외래어종이다. 전통적 전래낚시의 대상은 토종붕어다. 잉어는 붕어 다음 순이다. 토종붕어가 점점 귀해져 간다. 준척이나 월척급 붕어는 약재에 버금간다. 매운탕으로 끓이면 약재를 닳인 것처럼 보양효과도 있지만 뭣보다 맛이 일품이다. 물고기는 원래 바닷고기보다 민물고기 맛이 더 좋다. 민물고기의 깊은 맛이나 졸깃졸깃한 맛이 바닷고기는 비교가 안 된다. 민물고기 중에서도 토종붕어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월척이란 말을 토종붕어에만 쓰는 연유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토종붕어가 월척이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자라야 한다. 그런데 외래 어종인 떡붕어는 3년이면 월척이 된다. 떡붕어는 이래서 월척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잉어도 3~4년만 지나면 30㎝가 넘는다. 드라마 같은에서 더러 바닷고기를 두고 월척이란 말을 쓰는 걸 보는데 이건 정말 무식한 소리다. 납회 또한 월척의 자긍심을 지닌 토종붕어 낚시에만 해당된다. 겨울철 빙상낚시로 붕어를 잡기도 하지만 정도가 아니다. 내년 봄 시조의 계절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낚시의 도락을 아는 자세다./임양은 주필

신조어

국립국어원이 561돌 한글날을 맞아 2002 ~ 2006년 5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새로 만들어 쓰여진 새말(신조어)’ 3천500여개를 정리해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를 발간한 일을 놓고 시시비비가 끊이질 않는다. 신조어는 사회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흔히 ‘사회의 거울’이라고 부른다. 지난 5년을 반영하는 신조어들은 실망스러웠던 정치 상황과 심각한 취업난, 불안한 고용상황을 빗댄 말들이어서 모두 그럴듯하다. 그 중 실감나는 신조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투거나 날치기 등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면이 있다’는 뜻의 ‘국회스럽다’와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의 ‘놈현스럽다’, 그리고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는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는 ‘검사스럽다’가 눈에 띈다. 이 신조어들은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에서 만들어진 ‘검사스럽다’에서 파생됐다.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부’란 뜻의 ‘건달정부’도 나왔다. 관치금융에서 더 나아가 ‘정부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문서 아닌 구두로 은행 경영에 관여하는 일’이란 ‘구치금융’도 있다. 청년 실업이 장기화되고 고용불안이 커지면서 관련 신조어들도 많아졌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등이 대표적으로 직장인들의 퇴출 연령대가 50대 오륙도에서 40대 사오정을 거쳐 30대 삼팔선까지 낮아졌다는 뜻이다. ‘이십대 청년 태반이 놀고 먹는 백수’라는 이태백 등은 잘 알려진 것들이고 최근엔 더 발전돼 ‘취집(취직 대신 시집)’, ‘대학오학년(일년 더 대학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등이 등장했다. 사이버 세상답게 인터넷 통신 신조어가 가장 많다. ‘떡밥글’ ‘낚시글’ ‘ 악플러’ ‘된장녀’ ‘펌’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국어원은 인터넷 통신언어 가운데 극히 일부를 내년 새로 발간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릴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그 중 순 우리말로 합성된 ‘누리꾼(네티즌)’이 실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 ‘놈현스럽다’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말이 청와대 등 일부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말씨와 자세에서 대통령할 준비가 안돼 있었다”고 자성한 바 있다. 앞으로 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신조어가 나올 지 누가 아는가.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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