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3인방

박지원(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화갑(전 민주당 대표) 권노갑(전 민주당 고문) 등 3명은 김대중(전 대통령)을 보스로 둔 3인방이다. 세상이 다 아는 동교동계 가신으로 권노갑·한화갑·박지원 순으로 김대중의 측근이 됐다. 이를테면 권노갑은 좌장이고 박지원은 그중 막내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협력관계이기 보다는 세 개의 솟발처럼 서로 각을 이룬 정립관계에 있다. 김대중의 집권시절 역시 그랬다. 서로 견제하면서도 서로 무시 못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런 정립관계는 김대중의 용인술이기도 하다. 용인술이긴 하지만 때로는 김대중 자신도 불편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다. “국회에 나갈 생각입니다” 권노갑의 말에 김대중은 “암,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가야지…”했지만 내심은 달랐다. 고민이 됐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박지원이 한 번은 “무슨 고민된 일이 있습니까?”하는 말에 “글쎄 노갑이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구먼, 그만 이젠 당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김대중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걱정마십시오, 제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박지원은 이윽고 권노갑을 만나 “윗 분의 뜻을 왜 그렇게 헤아리지 못하느냐”고 힐난조로 타일러 마음을 바꾸도록 했다. 김대중에게 동교동 3인방은 다 수족같은 사람이다. 권노갑은 자금관리, 한화갑은 조직관리, 박지원은 주변관리에 수완을 발휘했다. 그런 가운데 특히 박지원을 언제나 가장 가깝게 곁에 둔 것은 자신의 의중을 꿰뚫어 무슨 일이든 입안의 혀처럼 깔끔하게 처리해주곤 하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김대중의 표정만 보고도 마음을 읽는다는 사람이다. 동교동 3인방이 오는 4·9 총선에서 저마다 전남 목포 출마를 다지고 있어 물밑 격돌이 한창이다. 권노갑은 목포 선거구를 15대 때 김대중의 장남 김홍일(전 의원)에게 물려준 바가 있다. 총선 전에 복권이 될 것을 기대하고 지역구 되찾기를 위한 현지 여론조사도 한 모양이다. 한화갑·박지원은 지난 연말 사면 복권되어 움직임이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전한다. 목포는 김대중의 정치 고향이다. ‘김심’은 박지원에게 쏠려있다고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다. 동교동 3인방의 목포 격돌은 새삼 권력관계의 무상을 느끼게 한다. 4·9총선에서 또 하나의 주목된 선거구가 될 것 같다. /임양은 주필

설에 만나는 사람들

춘궁기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난의 절정이다.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도 시퍼런 봄철에 먹을 것이라고는 나물죽 아니면 밀기울 개떡, 이도 아니면 칡을 캐거나 소나무 새순가지를 벗겨 먹곤 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 수년동안 무상지원 한 것이 480잉여농산물로 밀가루다. 춘궁기는 1960년대 중반 박정희시대에 비로소 단군 이래의 먹거리 가난을 추방했다. 음식물쓰레기가 남아돌아 골치아픈 지금 사람들 생각으로는 전설같은 얘기지만 70대 이상의 체험 세대는 생생히 기억한다. 역시 춘궁기가 있었던 시절엔 교통 통신 수단 또한 열악했다. 버스는 도시 중심으로 드물게 운행하여, 어쩌다가 빈 트럭이 가면 길 걷던 행인이 손을 들어 타곤하여 조수에게 몇 푼씩 건넸다. 도로라고는 신작로가 고작이었다. 고속도로가 사지사방으로 뚫리고 승용차가 보편화된 지금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 그 무렵 매매가 불가한 청색전화로 전화 보급이 본격화 된 게 1970년대다. 집에 전화가 있어도 별로 쓰지않고, 공중전화는 아예 필요없게 된 지금 사람들은 믿기지 않은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토록 살기가 어렵고 교통 통신이 불편해도 사람 사는 인정은 잘먹고 편리한 세상에 사는 지금보다 더 했다. 겨울철이면 일가 대소가를 몇 십리씩 걸어 서로 찾아 왕래한 것은 농한기에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인정을 사람 사는 법도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전화나 핸드폰 한 통화, 컴퓨터 한 번 두들겨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친인척에게 일년 열두달 내내 서로 소식 끊고 살기가 예사다. 교통수단도 편리하고 승용차 한 번 굴리면 찾을 수 있는 친인척을 서로 안 찾아 얼굴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바쁘다고 한다. 바쁜건 맞다. 그렇지만 더 큰 원인은 마음이 가난한데다, 그나마 마음씨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 한 몸, 가족만 생각하여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이즈음의 우리들 생활은 모두가 이 모양이다. 설이 다가온다. 설에 친인척이며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뿌리를 만나는 것이다. 귀성전쟁을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명절 귀성은 마지막 남은 우리의 뿌리찾기 미덕인 것이다. 설날 모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덕담으로 좋은 만남, 좋은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 임양은 주필

베이징 올림픽

중국은 운동선수를 유치원에서 발굴한다. 발굴된 재목은 초·중·고·대학 과정의 체육학교에서 육성한다. 스포츠 각 종목별 선수를 총 망라한다. 각 지역에서 육성된 각 종목별 선수 중에서 국가 대표 선수를 최종 선발한다. 국가 대표선수의 훈련 방법이 달라졌다. 종전엔 선수가 지칠 때까지 강행한 양적 훈련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질적 훈련으로 기술 강화에 중점을 둔다. 질적 훈련은 스포츠 과학화가 토대다. 컴퓨터, 의료기기 등 첨단 장비가 총동원된다. 예컨대 체조 선수는 근육 이용도를 판독한다. 아울러 취약 부분의 발달을 돕는 별도의 훈련을 함께한다. 삼단뛰기는 고속촬영으로 자세등을 분석, 가장 능률적인 방법이 뭣인가를 알아 보완한다. 수영은 선수의 발가락 손가락 등에 이르기까지 선수 개체의 특성을 찾아 이에 맞는 훈련을 강화한다. 대표선수의 식단 관리 또한 철저하다. 식단은 종목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종목의 특성상 더 필요로 하는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다. 식단은 중국 재래음식과 서구음식을 병행한다. 선수의 건강관리 역시 재래식과 서구식을 병행한다. 기(氣)를 돕는 침질과 뜸질, 물리치료 등에 현대 의술을 가미하는 것이다. 오는 8월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과의 경쟁’을 선언해놓고 있다. 이를위해 체격상 동양인으로는 취약종목이면서 메달 박스인 육상을 집중관리,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수영도 종전의 다이빙 위주에서 불모지대이던 경영에 도전, 금메달을 노린다. ‘백 개의 은메달 보단, 한 개의 금메달을…’ 대표선수촌의 구호다. 철저한 챔피언십, 즉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21세기 도약의 큰 지렛대로 삼고 있다. 대외적으로 초강대국 반열의 국력을 과시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13억 다민족 인민의 중화사상 결속을 다지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경제 및 문화 발달에 급격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 입장권이 암시장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올림픽에 갖는 중국인들 자긍심의 반영이다. 최고 액면가 5천위안(元·64만5천원)짜리가 무려 60배나 뛰었다. 경기장 입장권도 대단하다. 농구경기 결승전 입장권은 액면가 천위안 짜리가 15배인 1만5천위안이다. 이나마 암표 사기도 ‘하늘의 별따기 같다’는 소식이다. 베이징은 올림픽 열기로 뜨겁다. /임양은 주필

‘과거를 묻지 마세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12·12 쿠데타 주역인 신군부 세력이 권력 장악을 위해 활용한 과도적 기구였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사회 혼란을 빌미로 선포한 전국비상계엄하에서 설치됐다. 대통령 자문 기구 성격이었지만, 사실상 행정·입법을 장악한 초헌법적 기구였다. 국보위는 비대위·입법회의 두 시기로 나뉜다. 비대위의 경우 최규하 대통령을 의장으로 행정 각료 10명, 군 장성 14명 등 24명으로 구성됐지만, 실질적 권한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위원장인 상임위원회가 행사했다. 상임위는 산하에 사회정화 등 13개 분과를 뒀다. 비대위는 10월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개편됐다. 정계·경제계·학계·종교계·법조계·여성계·노동계·언론계·향군 인사 등 각계 인사 81명으로 구성됐다. 전원 전두환 위원장이 임명했다. 국보위는 신군부 집권의 기반을 닦는 역할을 담당했다. 크게 정치규제를 통한 ‘반대정치 세력의 제거’, 공직자 숙정을 통한 ‘관료사회 장악’, 삼청교육대 등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한 ‘사회분위기 쇄신’의 세 가지였다. 언론 통·폐합과 출판 및 인쇄물 제한 등 언론 탄압도 이뤄졌다. 1981년 4월 1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해산될 때까지 156일 동안 입법회의는 법률안과 동의안 등 215건의 안건을 모두 ‘가결’ 처리했다. 신군부의 어용기관, 국보위의 ‘거수기’ 노릇을 했다. 국보위 시절 한승수 국무총리 지명자는 비대위 재무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한 지명자는 재무분과 외환 담당 위원으로 4개월가량 세계은행과 중동 등에서 국외 차관을 들여오는 일을 담당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입법위원이었다. 당시 37세의 소장 정치학자였던 이 위원장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숙명여대와 이화여대에서 한 명씩 정치학 박사를 데려간 것이고, 처음엔 거절했었다”고 말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입법회의에서 외교·국방위를 맡아 활동했다. 후일 입법회의 활동을 인정받아 민정당 비례대표로 11대 국회에 입성했다. 신군부 권력 도구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보위에서 활약했는데도 한승수·이경숙 두 사람은 이명박 정권의 실세가 됐다. 상상컨대 두 사람은 나애심의 노래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부르고 싶을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부부 골키퍼

한국 남녀 핸드볼대표팀이 베이징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데는 남자팀의 골키퍼(goal Keeper) 강일구 선수, 여자팀의 오영란 선수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들 두 골키퍼는 1월 29일과 30일 일본 도쿄 요요기 국립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최종전에서 골문을 철벽같이 지켰다. 여자대표팀 주장인 오 선수는 10차례나 선방을 해내 여자팀의 승리를 이끌어냈고, 강 선수의 활약도 대단했다. 강 선수는 남자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절묘한 방어로 한국의 골문을 수비했다. 일본 공격수의 슈팅을 13차례나 막아 냈으며 1대1 상황에서도 9차례나 방어에 성공했다. 특히 한국의 공격이 침묵을 지키던 후반 13분쯤부터 10여분 동안 7개의 완벽한 슈팅을 막아냈다. 승리의 주역이 됐다. 강 선수는 그동안 선배 한경태(스이스 오트마) 선수에 밀린 후보였다. 하지만 컨디션이 최고에 올라 있는 것을 지켜본 김태훈 감독이 주전으로 내보냈다. 강 선수는 신들린 듯 슈팅 17개를 막아내며 후반 막판 2점 차로 쫓기기도 한 한국대표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강 선수는 경기 직후 “작년 9월 기존 예선 일본전 비디오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주요 선수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감독님이 주전으로 뛰라고 하셔서 각오도 새롭게 다져 잘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일구 골키퍼와 오영란 골키퍼는 부부지간이다. 2002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게 인연이 돼 결혼했다. 경기 중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남편을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오 선수와 마찬가지로 강 선수 역시 한국응원단에 있는 오 선수에게 손을 흔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강 선수는 “‘잘 해라’며 힘을 불어 넣어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면서도 “결혼한지 오래돼서 예전처럼 다정하지만은 않다”라며 웃었다. “부부가 함께 베이징에서도 열심히 막아서 나란히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국 남녀 핸드볼대표팀에서 골키퍼로 맹활약하는 부부 선수의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강일구 선수는 32세, 오영란 선수는 36세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수

국수의 유래는 먼 고대로 올라간다. 중앙 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쪽인 한국· 중국· 일본에선 국수로, 서쪽인 유럽은 빵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밀로 만든 음식이 한·중·일 등 동북아시아 3국에 퍼진 것은 기원 전 200년께 중국 대륙에서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에서 얻은 가루를 면(?)으로 불렀다. 우리나라에선 일반적으로 면보다는 국수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뽑아낸 면을 물에 담갔다가 손으로 건진다’하여 국수라고 하기도 하고 ‘밀가루인 면을 국물에 담가서 먹는다’고 국수라 부른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국수를 먹었는진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국수가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이 쓴 여행기 일종인 ‘고려도경’을 통해서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은)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국수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생일, 혼례, 또는 손님 접대용 별미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지역별로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는 메밀 국수를 주로 먹는 반면, 경기도는 녹두전분 국수, 영남·충청은 밀로 만든 국수를 먹었다. 북쪽지역에선 남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국수를 즐겼는데 바로 냉면이다. 추운 북쪽 지역에서 오금까지 저리도록 시원한 냉면을 좋아했다. 특히 함흥지역은 예로부터 국수가 맛있기로 유명했다.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메밀가루를 주재료로 생선회를 넣어 비빔국수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승돼 함흥냉면이란 고유명사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꿩 삶은 국물에 굵은 면발이 특징인 평양냉면은 함흥냉면과는 또 다른 맛으로 사랑을 받는다. 우리나라 대표 면요리인 칼국수만큼 지방색이 물씬 풍기는 음식도 없다. 농촌지역에선 닭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어 만들고 산간지방에선 멸치장국, 해안 지방에선 바지락장국으로 끓인다. 면요리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요즘 시중에 칼국수집이 많지만 예전에 앞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먹던 칼국수맛에 비하면 아무래도 맛이 좀 덜하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구수한 칼국수를 먹고 싶을 때가 많다. /임병호 논설위원

古典, 경기 여류 문인들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는 지금은 비록 북녘 땅이지만 경기도 개성의 송도삼절(松都三絶) 중 한 사람으로 서화담, 박연폭포와 함께한다. 한시와 시조에 능해 재색을 겸비했다. 자는 명월(明月), 별명은 진랑(眞娘)이다. 당대의 풍류객 임백호는 후일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청초 우거진 곳에 자는다 누었는다 /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누었는다 /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어 하노라’라는 시조를 남겼다. 황진이는 송악산 동굴에서 십년 째 면벽참선을 하고 있는 지족선사를 소나기 맞은 옷매무새 그대로 찾아가 파계시킴으로써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 속담을 낳게 하기도 했다.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거유 서화담이다. 둘이 풍월과 담론을 나누는 등 교제도 있었다. 그러나 황진이는 서화담을 굴복시키진 못했다. 한 번은 지족선사와 같은 방법으로 유혹했으나, 서화담은 얼굴의 물기를 닦아주며 끝내 오누이처럼 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시조는 서화담을 그리워한 내용이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러내어 / 춘풍 이불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룬님 오시는 날 밤 구비구비 펴리라’ 둘러내어, 춘풍이불, 서리서리, 어룬님, 구비구비 등은 절묘한 시어(詩語)다. 여기서 ‘어룬님’은 ‘얼다’의 어미(語尾) 변화로 달라붙는단 뜻의 정사(情事)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여류문학으로는 이밖에도 사대부집안 부녀층에 유행한 규방문학으로 ‘규방가사’가 또 있다. 계녀가(誡女歌), 춘유가(春遊歌) 등이다. 갓 시집온 새색시의 행신, 예절 등을 가사체로 시작한 것이 설화 등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허난설, 황진이, 강정일당, 혜경궁 홍씨, 홍랑 등 이외에도 많은 경기도 여류들이 우리의 고전문학을 장식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경기도지회가 이들의 작품을 모아 374쪽에 이르는 ‘경기도 여성문인-고전편’을 펴낸 것은 집대성한 점에서 매우 뜻깊다. 뿌리가 없으면 생명력이 없다. 경기도 기전사회 여류문인의 문학세계 뿌리는 고전에서 시작된다. “문제적 여성들의 삶을 밝혀냄으로써 현대적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다”는 박혜숙 건국대 교수(집필진)의 말은 이유가 있다./임양은 주필

‘파파라치’ 기자

연예기자의 연예인 ‘파파라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지대子가 오래전 서울신문에서 여의도 방송가에 출입할 때다. 한 번은 여성 탤런트가 간통을 했다하여 경찰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취재기자며 카메라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북새통을 피우는 한심한 장면을 목격했다. “임 형은 왜 보고만 있어요?” 친면이 있었던 드라마 PD의 질문이었다. “눈으로 취재하잖아!” “가서 질문도 해야죠…” 그는 손놓고 있는 내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탤런트가 뭣을 했던 그건 사생활이다. 사생활은 그의 개인 문제다. 흔히 연예인 더러 공인이라며, 그래서 사생활을 알 권리가 있다지만 궤변이다.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닌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란 말인가, 개인 돈벌이로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직업인일 뿐인 것이다. 또 한 번은 부장이 어디서 들은 그 무렵 인기 절정이던 여성 탤런트의 스캔들을 나에게 말하며 취재해보라는 것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을 그냥 지내다가 마침 조용한 시간에 여의도서 우연히 만나 들어두었던 얘기를 했는데 들려준 정보는 너무도 정확했다. 그녀는 그만 목덜미까지 빨개지면서 한동안 아무말 않더니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하는 것이다. “?!” 순간 한다는 소리가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다. “건강한 사람이 연애 안하겠나, 해도 다른데 안 새도록 관리를 잘해!”하고는 내가 민망해서 먼저 일어나 음료수 값을 내고 커피숍을 나섰다. 부장에게는 엉터리 정보라고 보고하고는 얼마 뒤 술자리에서 실은 이랬다며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성인군자 아닌, 성인군자”라며 놀려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 뒤엔 방송사에서 만나도 서로 내색않고 지냈던 그녀는 지금 현모양처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지난 2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수 나훈아씨(61·본명 최홍기)가 밝힌 이니셜 보도의 횡포는 시정돼야 할 문제점인 것이 맞다. K양 L양 해가며 휘둘러대는 ‘아니면 말고식’ 보도는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니다. 연예인에게도 사생활은 있다. 명색이 대학나온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시시콜콜한 ‘파파라치’ 노릇을 한대서야 언론이랄 수 없다. /임양은 주필

그의 아내 사랑

“총리할 사람은 많이 있지만 우리집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고 한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67)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총리는 앞으로 세계시장을 다니면서 자원외교를 펼치며 해야할 일이 많다”고 언급한 이튿날 지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총리 후보군에 오르는 것을 스스로 고사한 이명박 맨의 손 총장 부인 박경자씨(65)는 암과의 투병중이다. 1년전에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인이 회복되어 전처럼 집근처 양재천을 나란히 산책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한다. “총리하다가 우리집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내 천추의 한으로 남을텐데…”라며 목맺히어 하더라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나, 일국의 재상에 오를 수 있는 검증기회를 오직 아내를 위한 마음에서 고사한 노부부애가 참으로 지고 지순하다. 주권재왕(主權在王)의 왕조정치 영상이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정치 총리나 막중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고위직임엔 틀림이 없다. 옛 정일품의 영의정 벼슬자리에 해당하는 국무총리직은 아무리 민주사회라지만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손 총장인들 그런 명예욕이 없을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기회를 더 지키기 위해 명예의 기회를 버렸다. 하긴,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1937년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렸지만 상대가 되는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합은 재혼이고, 또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왕실의 얘기다. 그러나 손 총장의 지극한 아내 사랑은 곧 우리 일상의 얘기면서도 각별하다. 이명박 차기 정부의 조각을 위해서는 총리가 먼저 나와 각부 장관인 국무위원의 제청이 있어야 한다. 첫 총리 후보가 압축되는 가운데 조만간 국회 동의를 위한 지명이 임박하다 보니 어느 신문에 보도됐던 손 총장 부부애가 새삼 생각킨다. 근래 보기드문 아름다운 정담이다. 뭣보다 가슴에 와닿는 것은 ‘총리할 사람은 많이 있지만 우리집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한 말이다. / 임양은 주필

쥐 전성시대

쥐는 수백만년 동안 인간과 함께 하며 갖은 핍박과 억압을 받아 오면서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동거한 양면성을 가진 동물이다. 쥐의 앞 발가락은 네 개인데, 뒷 발가락은 다섯 개인 것도 쥐를 양면적 존재로 보는 근거 중 하나다. 우리 조상들은 쥐를 혐오하면서도 쥐가 집에 없으면 불이 난다거나 집이 무너진다며 불안해 하였다. 서구 영화에서도 지진 발생이나 화산 폭발 등의 재앙을 예고할 때, 쥐가 떼지어 이동하는 장면을 내보낸다. 또 서양 선원들 사이에서는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거나 ‘쥐가 없는 배에는 타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왔다. 쥐의 임신 기간은 21일, 한쌍의 쥐가 10마리씩 1년에 5번 새끼를 낳을 경우 3년 후엔 3억 마리가 넘는 천문학적인 무리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엄청난 번식력으로 쥐는 다산의 으뜸 상징이 되면서 아들 자(子)로 표시됐다. 子는 또 자(玆), 자(滋)와 음이 같아 무성하다거나 싹이 트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쥐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면서도 부지런해 먹을 것을 철저히 준비해 놓는 짐승이다. 근면, 저축성으로 당연히 생산력과 재물의 증대가 따를 수밖에 없다. 쥐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고 있는 이유다. 성인 세계에서 ‘더럽다’ ‘약삭빠르다’는 식의 쥐에 대한 고정관념이 동심세계에선 완전히 달라졌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34%, 심지어 ‘쥐’류를 키워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58%에 달한다. 쥐띠 어린이들은 더욱 환호한단다. 행사도 많다. ‘쥐’캐릭터의 대명사로 꼽히는 디즈니 캐릭터 ‘미키마우스’는 2008년 쥐띠 해에 탄생 80주년을 맞는다. 한국 월트디즈니의 트레이드 마케팅팀은 올해를 ‘2008년 미키마우스의 해’로 이름 짓고 각종 라이선스 행사를 1년 내내 펼친다. 미키마우스 캐릭터 상품도 인기다. 에버랜드 동물원은 쥐의 해를 맞아 연초부터 하늘다람쥐, 기니피그, 청서 등 쥣과의 이색 설치류 등을 전시하는 ‘마우스빌리지’를 운영한다. 애완용 쥐도 좋아한다. 영화 ‘라따뚜이’가 인기를 끈 뒤 영국에선 개봉 열흘 만에 애완용 동물 숍에서 쥐 판매가 12%나 늘었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햄스터’와 ‘팬더 마우스’ 등 애완용 쥐류가 인기다. 인간들이 열어주는 그야말로 ‘쥐의 전성시대’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쥐가 귀엽게 느껴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기형도의 노랫말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기형도(1962~1989) 시인이 1989년이 쓴 詩 ‘빈집’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몸이고 빈 마음이다.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절규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이고 그 빈집은 관(棺)을 연상시킨다. 혹 미발표 유작이 발굴될진 모르지만 기형도 시인은 이 시를 문예지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후 세상을 떠났다. 죽기 일주일 전 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 지 몰라”라고 말했다는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됐다. 사망한 지 근 20년이 됐지만 유고시집 ‘잎 속의 검은 잎’ 등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기형도 시인이 1987년에 쓴 노랫말 ‘시월’이 가수 심수봉씨의 최근 음반 11집의 13번째 곡으로 수록됐다. ‘시월’은 동료 기자이자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곡가 박광주 씨의 곡에 가사를 붙이며 완성됐으나 그동안 노래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박광주씨가 곡이 완성된 직후 친분이 있는 심수봉씨에게 노래를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후 잊혀졌던 이 노래는 2년 전 한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심수봉씨를 만난 작곡자가 다시 제안하며 빛을 보게 됐다. 문학 애호가인 심수봉씨는 “가사가 너무 와닿는다”고 ‘시월’을 불렀다. “저기 어두운 나무 어둔 길 스치는 바람 속에서 / 말없이 서있는 추억 있어 나 여기 떠날 수 없네 / 이제 다시는 갈 수 없고 다시 이제는 오지 못할 꿈이여 시간들이여 / 나는 왜 잊지 못하나 길은 또 끊어지는데 / 흐르리 밤이여 숲이여 멈추리” - ‘시월’. 기형도 시인은 ‘내 마음 낙엽’이란 노랫말도 썼는데 역시 박광주씨가 작곡했다. 트로트풍의 노래라고 한다. 기형도 시인은 ‘오래된 서적’에서 “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왜 영혼을 검게 보았는가. 기형도 시인이 노랫말을 붙인 ‘시월’이 널리 애창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실용’ 영화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한 서부영화 ‘하이 눈(High Noon)’이 50여년간 백악관에서 가장 많이 상영된 ‘최고 인기 영화’였다고 한다. ‘하이 눈’의 주인공은 보안관으로 홀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재임기간 중 3번, 빌 클린턴은 무려 20번이나 ‘하이 눈’을 관람했다. 대통령에게 인기 있었던 다른 영화로는 험프리 보거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카사블랑카’와 알렉 기네스 주연의 ‘콰이강의 다리’, 오드리 헵번 주연의 ‘사브리나’와 ‘로마의 휴일’ 등이다. 백악관 영화 상영은 1915년 우드로 윌슨이 기념비적 초기 영화인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을 보면서 시작됐으며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이 영화를 즐겨 봤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서부영화를 좋아해 재임시절 서부영화만 200편 이상을 보았다. 그는 2차대전의 영웅으로 불린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전쟁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은 영화를 150편 이상 봤으며, 1970년 캄보디아 비밀 폭격을 시작할 당시엔 독선적인 장군 패튼의 이야기를 담은 ‘패튼 대전차 군단’을 1주일 동안 두 차례 연달아 감상했다. 재임시절 가장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아나라 지미 카터였다. 총 580편의 영화를 본 카터는 백악관에서 ‘X(제한상영) 등급’을 받은 성인영화인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튼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며 그가 백악관 입성 이후 가장 먼저 본 영화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D-13’이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고독한 영웅을 닮고 싶어하는지 ‘하이 눈’을 가장 많이 관람했다. 한국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은 연산군 시절 왕권과 신권(臣權)의 갈등을 그린 ‘왕의 남자’를 봐 ‘盧의 남자’란 조어가 나오게 했는데,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영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 팀이 결승전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실화극이다. 이 당선인은 영화 취향도 ‘실용’인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허본좌’

“박정희 대통령에게 새마을운동을 권유했습니다. … 비밀 보좌관이었으니까요. 비밀 보좌관이기 때문에 임명장은 물론 없고, 박 대통령과 저 외에는 비서실 사람도 아무도 모르죠” 12·19 대선 후보로 나왔던 허경영씨의 얼마전 방송 멘트다. 케이블방송 21 ‘스토리온’ 토크쇼에서다. 그러고는 사회자의 다그친 질문에 한다는 소리가 “5년후 내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모든 증거를 제시하죠. 지금은 곤란합니다”라는 것이다. 방송사측이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확인해도 ‘허 총재님’(경제공화당)에 관한 기록은 없더라고 하니까 그같이 황당한 말을 하는 것이다. 허씨는 58세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게 1970년이므로 38년 전이다. 그때 허씨 나이는 기껏 20세다. 대선에서 60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70만원 지급 등 돈키호테 같은 공약을 내걸어 세인의 눈길을 끌었던 그는 역시 돈키호테 같은 미완성 1인 정당의 경제공화당 총재를 자칭, “총재님…” 소릴 들어가며 선거후 여러 방송을 섭렵했다.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 시청을 유도한 그같은 방송에 그의 너스레가 시사성은 고사하고 오락프로로도 얼마나 유익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영등포경찰서에서는 취조중인 여성 경찰관에게 대뜸 “당신의 간이 좋지않다”고 하여 어제 신체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건강하다는 면박에 “신으로부터 병을 보고 고치는 능력을 받았다”고 되레 큰소리 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은 허씨가 선거때 배포한 공보에 실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합성사진임을 밝혀내고 과장 등 선거법위반 혐의, 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혼담설을 퍼뜨려 명예훼손으로 피소된데 대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그를 ‘허본좌’라고 하는 ‘본좌’는 본인 스스로 최고의 왕좌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정의에 불탄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에 빠졌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던 점에서, ‘허본좌’의 과대망상은 사회를 농락한다고 보아 문제가 적잖다. 이런 그가 대선에서 0.4%(9만6천756표)로 군소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허본좌’ 같은 이가 출현, 행세하게 된 것도 정치권의 병리현상이 그만큼 깊은 탓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임양은 주필

불가사리

쇠붙이라면 마구 뜯어가는 불가사리판 도둑이 설친다. 안양시 범계동에서는 며칠전 가로수 보호용 철제덮개 9개가 사라진 것을 비롯해 근래 모두 91개의 철제 덮개를 수차에 걸쳐 도둑 맞았다. 울산에서는 스테인리스 교문을 통째로 도난당했다. 높이 1m, 길이 10여m로 무게가 자그마치 100여㎏에 이르는 교문을 밤에 트럭을 대고 뜯어간 것이다. 이런 교문 도난이 한 번도 아니고 며칠새 4건에 이른다는 것이다. 남의 가정집 대문도 훔쳐간다. 철제 대문이 낡은 것으로 빈집일 것 같으면 백주 대낮에 뜯어간다는 것이다. 이웃에서 뭐라고 하면 ‘새것으로 가는 주문을 맡았기 때문’이라면서 철공소 사람을 가장해 뜯는다는 것이다. 공공기물 철제로는 가로수 덮개 뿐만이 아니고 맨홀 뚜껑을 들어가기도 한다. 철광재 원자재 값이 오른 바람에 고철값 또한 근래 ㎏당 250원으로 10%가량 올랐다. 인천에서도 고철값이 올라 갖가지 고철 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소식이다. 훔친 철제 대문이며, 가로수 덮개, 맨홀 뚜껑 등이 가는 곳은 이를 고철로 사들이는 고물상이다. 고물상 역시 장물인 줄을 모르지 않으면서 마구잡이로 사들인다는 것이다. 경찰의 단속에도 고물상 장물아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모양이다. 불가사리엔 두 가지가 있다. 상상속의 짐승으로 쇠를 닥치는대로 먹어 치운다. 곰 같은 모양에 코끼리 코, 무소의 눈과 소의 꼬리에다 호랑이 다리를 가진 불가사리가 고려말 개경에 나타나 쇠붙이라면 농기구까지 먹어치웠다는 설화가 있다. 또 하나의 불가사리는 불가사리강(綱)에 속하는 바닷속의 극피동물을 말한다. 마치 별 모양 같은 노란 색의 이 극피동물은 해저의 생태계를 교란시켜 어장을 망치곤하여 어민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요즘 극성을 부리는 쇠붙이 도둑은 쇠를 닥치는 대로 훔쳐 상상속의 동물 같은 불가사리이면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불가사리강의 극피동물과도 비슷하다. 오죽했으면 그같은 것을 훔쳤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생계형 도둑 치고는 참 고약하다. 이도 세태의 반영인가 싶어 입맛이 영 개운찮다. /임양은 주필

판사의 양심

판사는 자유심증주의에 의해 재판을 한다. 재판에 필요한 사실의 인정, 증거의 가치판단, 법리해석을 판사의 심증에 일임하는 것이 자유심증주의다. 그러니까 검사가 아무리 증거를 주장해도 판사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피고인이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특정사실에 판사가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면 유죄가 되는 것이다. 이의 심증형성은 곧 어떻게 맘먹느냐에 달렸다. 이같은 심증형성엔 판사의 식견이 중요하다. 판사의 성장환경, 즉 개인적 성품, 인생관 등도 작용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이다. 사실 여부의 인정, 증거능력 유무의 최종적 판단은 양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판사의 자유심증주의는 판사의 양심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판사가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사실 여부의 인정, 증거능력의 유무를 왜곡하면 얼마든지 무죄를 유죄로 할 수 있고, 유죄를 무죄로도 할 수가 있다. 판결이유는 하기로 작심하면 찍어다 붙이기에 달렸다. 그래서 재판을 두고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가령 성품이 거칠거나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진 판사와 성품이 부드럽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닌 두 판사의 경우, 재판에 미치는 양형 또는 유·무죄의 법리해석에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더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양심을 팔지않는 판사다. 자유심증주의의 신념, 즉 양심을 팔지 않는 재판을 위해서는 심성이 깨끗한 양심있는 판사여야하고,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에 자신의 양심을 돈 5천만원에 팔아먹은 인천지법 관내 모 부장판사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이 사람의 진술이 가관이다. 뇌물을 받은 게 아니고 거래했던 돈이 있어 받은 돈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궤변인데, 평소 재판도 그같은 궤변식으로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상한 것은 그 부장판사는 옷만 벗고 사법처리가 안되고 있는 점이다. 참으로 공정치 못하다. 죄를 지어도 옷만 벗으면 죄를 묻지않는 관행은 못된 구습으로 타파돼야 한다. 유식한 사람의 반사회성은 무식한 사람의 반사회성보다 훨씬 크고, 권력있는 자의 범죄는 권력없는 자의 범죄보다 죄질이 비할 수 없이 더 나쁘다. 재판은 판사의 양심으로 한다. 판사를 지고하게 보는 이유가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쥐 예찬

쥐의 해 무자년(戊子年)을 맞아 쥐를 예찬(?)하는 글들이 많이 나와 재밌다. 14세기 중세 유럽에 창궐했던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 당시 페스트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던 게 쥐들이었다. 그러나 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쥐들 역시 페스트의 희생자였다고 쥐를 옹호한다. 전염력을 갖고 쥐에 빌붙어 살던 쥐벼룩이 죽은 자기 숙주(宿主·寄生 생물이 기생하는 생물)를 서둘러 떠나면서 숙주를 가리지 않고 옮겨 붙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란다. 이 현상은 유럽의 비대화한 도시와 불결한 환경, 인구과잉으로 기인한 것이었지 결코 쥐의 탓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구상에는 약 4천 종의 포유동물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50% 이상이 쥐(Rodentia)다. 게다가 쥐라는 이름을 가진 땃쥐, 박쥐 등까지 포함하면 땅 위에 사는 포유동물은 거의 대부분이 쥐와 관련있다고 하겠다. 이상돈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쥐를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쥐의 꼬리가 길다거나 눈이 작다거나 병을 옮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이 작아서 싫다면 사슴이나 다람쥐를 보길 바란다. 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은 아주 매력적이다. 꼬리가 길어서 싫다면 햄스터나 다람쥐를 사랑하면 된다. 병을 옮기는 쥐는 시궁쥐 등 일부에 불과하다”고 쥐를 예쁘게 귀여운 쪽으로 설명한다. 요즘 쥐는 모든 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기초적인 생물학적 안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주 재료로 쓰인다. 심지어 이들 쥐는 실험에서 살아나도 최종적으로 온몸을 해부 당해 내장까지 확인시켜 주고 생명을 끝낸다. 쥐의 희생이 없이는 어떤 약물도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는 셈이다. 쥐들은 인간을 위해서 희생양이 되면서도 날로 번성하고 새로워진다. 쥐는 최초의 포유류로서 인간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지진을 예측해 맨 먼저 집을 빠져나가는 지혜로운 동물, 쥐들은 가족 질서가 매우 뛰어난 동물이란다. 야외에서 들쥐들을 연구해보면 수컷은 여러 암컷을 거느리고 있는 일부다처이며 암컷은 가족을 보호하는 능력이 매우 강하다. 암컷 쥐는 새끼가 성장하면 새끼에게 둥지를 물려주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날만큼 자식 사랑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쥐띠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인기 있고, 쥐띠 여자들은 모성 본능이 강하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쥐띠냐’는 쥐띠생들이 못마땅해 할 일도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유방 성형수술

“흰 비단 같은 유방이여 / (중략) 당신 때문에 장미는 수치를 느끼네” 16세기 프랑스 시인 클레망 마로가 쓴 ‘유방 찬가’의 일부다. 이렇듯 여성의 유방은 고대로부터 숭배와 예술의 대상이었다.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고대의 조각상은 풍요를 기원하는 ‘신화’를 담고 있다. 인체의 과학적 구조가 밝혀진 현대 사회에서도 유방을 둘러싼 신화는 여전하다. 과거의 신화는 신비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는 ‘여성에게 유방은 얼굴과 마찬가지다’, ‘남자는 여자의 유방이 클수록 좋아한다’, ‘유방이 커야 모유가 많이 나온다’는 등 성적 의미를 주로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유기의 유방은 팽창하고 수유기가 지나면 납작하게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여성의 유방은 수유기와 관계 없이 항상 둥글고 풍만하며 우뚝 솟아있다. 한 인류학자는 여성의 유방을 종족 보존 본능을 자극하는 ‘속임수’라고 정의했다. 남성들이 여성의 유방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기 때문이란다. 유방은 모유를 분비하는 유선(乳腺)조직과 그 사이에 있는 지방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방이 작은 사람도 유선이 발달해 있으면 아이에게 충분한 양의 젖을 줄 수 있다. 한국 여성은 서양 여성과 달리 유선 조직이 많은 ‘치밀 유방’을 갖고 있다. 날씬한 연예인이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며 ‘자연산이에요’라고 말할 경우 색안경을 쓰고 볼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성의 유방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진화돼 왔다. 유방 정도의 무게라면 아래로 처져야 마땅하지만 처짐 방지 브래지어나 화장품 덕분에 늘 위로 솟아 있게 됐다.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의 저자인 샤오 춘레이는 이런 이유로 여성의 유방을 ‘문화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4천300여 종의 포유동물 가운데 희귀한 예에 속한다. 풍만하고 위로 솟은 유방이 아름답다는 사회적 관념 때문에 대부분 여성들이 자신의 유방에 결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문에 예쁜 유방을 만들려고 속옷을 사거나 가슴운동을 하고 심지어 유방확대 수술을 받는다. 유방은 새 생명을 키우는 젖줄이지만 자칫 잘못 관리하면 암세포의 둥지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움이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아름다운 유방뿐만 아니라 건강한 유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이유다./임병호 논설위원

쓰레기

3천500여년 전 중국 상나라의 법률엔 ‘재를 길거리에 버리는 사람은 손을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고 한다. 재 이외의 쓰레기가 없었던 고대 농촌 사회에서 재는 일종의 거름이었다. 재와 분뇨는 논밭에 뿌리면 비료가 되지만, 길거리에 버리면 옷과 음식을 더럽혀 피해를 준다. 일찍이 쓰레기의 재활용을 염두에 둔 지혜로운 처리법이라고 하겠다. ‘쓰레기’는 성분에 따라 처리가 다르다. 재와 분뇨로 이루어진 전통 쓰레기는 농촌에선 보배다. ‘백만 섬의 분뇨를 버리는 것은 백만 섬의 곡식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은 요순 시대 이래 지금까지 중국에서 내려오는 전통이다. 일본은 90여년 전까지도 분뇨를 사고 팔았으며, 선금을 주고 예약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중국의 분뇨처리 방식에 감탄하며 상세히 소개하였다. 반면 농사를 짓지 않는 대처에선 쓰레기 처리가 곤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도로와 하천에 오물들을 쏟아내 악취와 파리가 들끓었다. 옛 도시들은 그 규모가 클수록 잦은 병에 시달렸다. 통일신라 전성기 때 경주는 10년이 멀다 하고 천연두가 유행했으며, 19세기 파리에서도 수차례 콜레라가 휩쓸고 지나갔다. 더럽고 불결했던 유서 깊은 도시들이 깨끗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명은 청소와 함께 발전했고 근대화는 하수시설이나 위생 대책과 같은 ‘도시 대청소’가 있기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엔 쓰레기만 치우는 관직이 있었다. 내시부에 정8품의 비교적 높은 관직을 두어 궁궐 내 청소를 담당케 하였다. 하지만 궁궐에만 국한된 일이었다. 일본강점기엔 서울을 청소하는 인부들을 고용해 대대적인 시설 정비에 나섰다. 근대 사회가 청소 작업과 함께 성장해 온 이면을 보게 된다. 장자가 “만물은 하나다. 냄새나고 썩은 것은 신기한 것으로 변하고, 신기한 것은 다시 냄새나고 썩은 것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오늘날 쓰레기의 ‘재생과 순환’을 강조한 셈이다. 몽골의 유목민족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남은 것을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방식도 관심이 간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貝塚), 조개껍질을 한 곳에 버렸다는 것은 공동생활의 규범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요즘 농촌지역에 마구 버려지는 도시의 쓰레기들 때문에 썩어가는 산야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인류의 기원

다윈이 1859년 발표한 ‘종(種)의 기원’은 대표적인 진화론이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저급에서 고급으로 진화하며 생존경쟁의 법칙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인류도 원숭이와 마찬가지인 같은 기원설을 주장한다. 이에 인류란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딴 동물과 구별하는 말로 진화사상 원인(猿人) 원인(原人) 구인(舊人) 신인(新人) 현생인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인류 기원의 복잡성과 이질성을 주장하는 인류다원설은 진화론을 이렇게 부정한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됐으면 현존하는 원숭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급 생물이 고급 생물로 진화하면 저급생물 또한 멸종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원숭이나 저급생물이 존재하는 것은 진화론의 허구라고 반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인류의 발원지를 아프리카로 보는 점이다. 인류의 발원지가 ‘검은 대륙’으로 지구상의 미개척지인 것은 장차 문명의 재앙으로부터 안전한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일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대부분이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의 식민지였던 것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하여 52개국이 됐으나 현대문명의 오지이긴 여전하다. 악명높은 아프리카 노예선은 18세기 아프리카 흑인들을 아메리카에 강제로 데려다가 인신매매한 저주의 항로다. 그 후손들이 미국과 쿠바 등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여전히 미개해도 미국의 흑인들은 문명을 누린다. 흑인 빈민굴이 많지만 돈많은 흑인, 출세한 흑인들도 많다. 대통령선거를 위한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위협하고 있는 오바마 또한 흑인이다. 그런데 힐러리의 흑인 비하 발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흑인이나 여성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고 했다. 여성인 힐러리 자신이 오바마와 함께 경선에 나선 것을 이례적인 것처럼 말했지만, 흑인이 대통령하겠다고 나선 것을 비꼬는 말로 듣는 것이 흑인들 입장이다. 미국의 민주당 경선이 자칫 인종 분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인류의 인종감정은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부질없다. 인류다원설이든 진화론이든 인류의 기원은 잘해야 1억5천만년 가량으로 꼽는다. 지구가 생긴 것은 약 35억년이다. 인류의 기원은 예컨대 악어의 기원 2억1천만년 보다도 훨씬 늦다. /임양은 주필

중국인의 신용

중국인의 장삿속은 신용제일주의다. 화교들이 세계 도처에서 부동의 상권을 쥐고 있는 저력이 바로 신용인 것이다. 예를 든다. 돈을 빌리고 갚는 날짜에 한 치의 빈틈없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국 상인들의 신용이다. 국내에 중국인 직영의 자장면 집이 많았을 때, 이들의 식재료와 조리법은 철저한 신용주의로 일관해 돈을 벌어들였다. 미국과 버금가는 교역국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안 들어 오는 제품이 없다. 농수산물은 물론이고 각종 제조업상품이 기계공업에서 수공업상품에 이르도록 쏟아져 들어온다. 심지어 된장 고추장이 다 들어온다. 이들 중국 상품은 무척 싼 게 특징이다. 더러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되어 문제가 되긴 하지만, 값싼 중국 제품을 선호하는 서민층 소비자들이 적잖다. 요즘 같이 물가가 오를 땐 서민층 소비자들은 싼 중국 상품이 있는 게 고마울 정도다. 그런데 이런 중국 상품 가운데 엉터리가 많다. 중금속 등 환경오염이 됐거나 아니면 유명 업체의 상표를 도용하는 가짜제품 등이 허다하다. 신용제일주의의 신화적 중국 상혼(商魂)이 무너진 것이다. 중국 신용에 불신시대가 번져가고 있다. 중국측에서도 하는 말은 있다. 중국서 기업을 경영하는 한국인들이 불량 제품을 만들어 한국에 수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몹쓸 한국인들이 물론 없진 않으나 전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중국이 기업하기 좋다는 것은 옛말이 돼간다. 당국의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뭣보다 중국 기업의 부당경쟁이 심화하고 사기가 성행한다. 관리들의 부패 또한 날로 극심하다. 중국 정부는 부패관리의 숙정에 힘쓰고 있지만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예금횡령, 사기계약, 뇌물공여, 사기대출, 세금포탈 등은 자본주의형 범죄다. 고도성장의 돈맛에 이골이 난 중국인 사회는 지금 돈 되는 일이라면 수단방법 등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한국인 사회 역시 자본주의 범죄가 많다. 그러나 중국이 이에 심각한 것은 그같은 범죄가 보편화한다는 사실이다. 국경없는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국경은 신용이다. 신용은 세계시장의 무형자산이다. 한국 제품도 신용을 더 축적해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우리도 우리지만, 이웃 중국 시장의 신용이 점점 더 타락해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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