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패배

정치개혁을 한다면서 코드 인사를 일삼았다. 개혁을 내걸며 부패 의혹에 휩싸였다. 코드 인사로 기용된 사다 행정개혁상이 불투명한 정치자금 문제로 사임했다. 마스오카 농림수산상은 독직 사건으로 자살했다. 야나기사 후생노동상은 “여성은 애낳는 기계”라는 등 각료들의 망언이 잇따랐다. 아베 일본 총리는 부패 의혹, 망언 등을 감싸느라고 바빴다. 일본 국민은 입만 살아 입으로만 다 하는 아베에게 철퇴를 가했다. 지난달 29일 치른 참의원 선거 결과, 집권 자민당은 64석이던 것이 27석이나 줄어 37석을 얻는데 그쳤다. 과반수가 무너져 제1당 자릴 약진한 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지난해 9월 전후 세대 지도자라며 화려하게 출발했던 아베 정권이 10개월만에 참담한 위기에 처했다. 일본 국민은 말로만 큰 소리 치는 자민당을 버리고 실사구시의 민생현안을 들고나온 민주당에 승리를 안겼다. 아베는 국민의 소린 외면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다가 참패를 맛 보았다. 그래도 총리직 사퇴를 거부한다. 1998년 참의원 선거 패배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총리직을 떠난 하시모토 전 총리의 전례를 거부한 채 내각 개편과 당직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패거리 내각의 코드 인사가 크게 쇄신될 것으로는 믿지 않는 것이 일본 정계의 관측통이다. 현지 보도는 이반된 민심 또한 좀처럼 수습될 기미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국은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홍역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둔 오자와 민주당 대표는 여세를 몰아 중의원 해산·총선거·정권 교체로 이어가는 전략 추진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의 이번 선거공약 중 주목되는 것은 선린관계의 신뢰구축이다. ‘한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신뢰관계 구축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공약은 아베 정권의 외교정책과 차별화가 가능하다. 아베는 미국 하원외교위원회가 추진하는 위안부 문제 결의안 채택 움직임에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 장본인이다. 역사 인식의 결함을 드러내는 소리다.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립으로 정권을 꾸려가고 있다. 가뜩이나 이런 형편에서 참의원 선거 패배는 오자와와 손 잡는 반 아베 이탈 세력이 있어 동향이 주목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양은 주필

베어벡

코치(coach)는 15세기 때 헝가리 소도시의 이름이다. 마차를 잘 만드는 고장으로 이름났다. 안락하고 화려한 이 지방의 마차는 전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인기를 끌어 아예 코치란 말이 마차의 대명사가 됐다. 마차 만드는 기술이 늘면서 말 두 마리까지 끌었던 것이 네 마리, 나중에는 여섯 마리까지 끄는 마차가 나왔다. 여섯 마리의 말이 당시로는 초 스피드로 질주하는 마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 다루는 마부의 전문적 기술이 있어야 했다. 이래서 또 마차를 모는 사람을 코치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은 코치를 스포츠 지도자의 대명사로 부르는데 국내에서는 으레 감독이라고 한다. 이도 일제 잔재다. ‘간도꾸’(監督·감독)는 원래 일본의 스포츠문화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경기에 소개되는 스포츠팀 명단에 ‘디렉터’(director·감독)란 말은 없다. ‘헤드 코치’(head coach)라고 한다. 헤드 코치(감독)밑에 코치가 있다. director(감독)는 영화 연출가의 지칭이다. 스포츠팀을 이끄는 코치 및 헤드 코치의 어원이 여러 말이 이끄는 마차의 마부에서 유래된 점은 흥미롭다. 스포츠 게임 역시 달리는 마차와 같다. 말도 좋아야 하지만 말을 다루는 마부의 기량이 또한 뛰어나야 한다. 팀은 좋아도 지도자가 시원찮은 게임은 졸전이 된다. 유능한 조리사는 재료가 좀 안 좋아도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무능한 조리사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음식을 맛없게 만드는 것과 비유된다. 스포츠 지도자의 역량을 연금술이라고 하는 연유가 이에 있다. 축구국가대표팀 베어벡 감독(헤드 코치)이 사퇴를 표명했다. 지난 28일 밤에 일본팀과 가진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6-5로 가까스로 이기긴 했지만 경기 내용은 열세로 몰렸다. 일본팀이 골을 넣지 못한 것은 운이 없었다 할 만큼 숱한 위기를 겪었다. 우리 대표팀은 전술도, 세트 플레이도, 투지도 빈곤하여 무작정 차는 동네축구 같았다. 개인기가 모자란 것은 당장 해결할 수 없지만, 대표팀 구성이나 전술개발, 정신무장 등은 다시 가다듬을 수가 있다. 문제는 베이징 올림픽이다. 지구촌의 축구 수준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날로 발전한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헤드 코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대한축구협회가 책임지고 판단할 일이다./ 임양은 주필

原電 사고

올 7월16일은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 안전신화(安全神話)가 무너진 날이었다. 니가타현에 강진(규모 6.8)이 일어나 가시와자키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을 포함한 냉각수가 바다로 누출됐다. 다른 원자로의 변압기에선 화재까지 발생했다. 수 많은 사상자도 생겼다. 지진의 영향으로 원전의 방사능이 누출된 것은 처음이다. 내진(耐震) 설계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는 일본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사실은 결코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1.2t의 냉각수가 누출됐다는 것은 원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는 의미다. 다른 시설과 기계장치에 이상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이번에는 설계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한 안전 기준을 갖춘다 해도 실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원전은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무공해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고에서 보듯 원전이 값싸고 질 좋은 클린 에너지가 되기 위한 지상의 과제는 역시 안전성 확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만큼 심하진 않다고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모여 있는 경주 월성 부근은 역사적으로 지진이 많이 일어난 곳이고 지금도 활성단층이 존재하고 있다.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은 고리·울진·영광·월성 등에서 모두 20기(설비용량 1천771만6천㎾)의 원전을 가동 중이며 전력 소비량 40%를 담당하는 세계 6위 원전 강국인 만큼 일본의 재난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지진과 원전의 함수관계를 미리 짚어 봐야 한다. 2005년부터 신고리 1, 2호기를 건설 중이며, 신월성 1, 2호기는 5월31일 건설허가를 받았다. 국내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 최대 지반 가속도 0.2g(1g=980gal)까지 견디도록 내진 설계되고 있지만 최대 잠재지진 규모 등을 더 높이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잦은 만큼 원자력 당국은 국내 안전 상황을 재점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 수준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달 수명을 다하고 가동을 중단한 고리 1호기의 경우 그동안 특별한 사고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계속 사용을 주장하는 건 안심할 수 없다. 재가동엔 신중을 기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매운탕

“앞내에 물이주니 / 천렵(川獵)을 하여보세 / 해길고 잔풍(殘風)하니 / 오늘놀이 잘되겠다 / 벽계수 백사장을 / 굽이굽이 찾아가니 /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 봄빛이 남았구나 / 촉고를 둘러치고 /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 반석(磐石)에 노구 걸고 / 솟구쳐 끓여내니 /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四月令)’에 나오는 천렵 송가(頌歌)다. 냇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놀이, 천렵은 봄부터 가을까지 하지만 주로 여름철에 더 많이 한다. 주로 남자들이 즐겨 한다. 냇물이나 강가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헤엄도 치고, 또 잡은 고기는 솥을 걸고 천렵국(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데 때로 농악이 따르기도 한다. 천렵을 할 때는 바람이 조금씩 불어야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한다. 원래 천렵은 고대 수렵사회(水獵社會)와 어렵(魚獵)사회의 습속이 오늘에 남아 풍습화된 것으로 오늘날 천렵은 더위를 피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놀이문화가 됐다. 천렵의 진가는 잡은 고기로 냇가의 나무그늘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을 때 나온다. 매운탕은 물고기를 주재료로 하여 고춧가루 또는 고추장으로 아주 맵게 조미해야 제 맛이 난다. 매운 맛은 고춧가루·후춧가루 등이 주도하고 고추장은 조미료의 역할을 하는데 그 비율은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롭게 배합한다. 물고기를 토막쳐서 넣고 내장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머리를 넣고 푹 끓인다. 부재료로는 무·두부·파 등을 넣고 양념으론 다진 파·마늘·생강·고춧가루를 알맞게 넣고 고추장으로 맛을 조절하여 끓인다. 민물고기 매운탕 맛은 메기·쏘가리·황쏘가리를 제일로 친다. 민물고기 매운탕은 푹 끓일수록 맛이 좋다. 처음 끓일 땐 국물이 담백하지만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이 진해지면서 걸죽하게 돼 제맛이 난다. 후춧가루와 생강을 다져 넣어야만 비린내가 가시고 간도 간장 대신 소금으로 맞추어야 맛이 한결 돋우어 진다. 중복(中伏)인 그제 저녁 경기일보 본사 옥상에서 매운탕 파티가 열렸다. 경기일보 낚시동우회가 전국의 청정수역에서 근 한달동안 잡은 고기로 옥상에서 직접 끓인 매운탕을 먹으며 임·직원 모두가 화목한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수제비와 국수를 넣어 냇가에서 먹는 천렵국처럼 아주 맛이 좋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伏中 좋은 철음식

“단고기를 푹 삶아 풀어지게 한 데다가 단고기 기름과 부추, 파, 방아풀, 마늘,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매운 재료로 만든 양념장을 두고 펄펄 끓인 국물에 조밥을 말아 먹으면 순간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줄줄이 흘러내리는데, 그렇게 먹는 단고기장이라야 사람의 몸에 인차(바로) 흡수되어 허약해진 몸을 보신할 수 있다.” 7월 1일자 북한 노동신문이 “삼복 기간의 가장 좋은 철음식은 단고기장(보신탕)이다”라며 소개한 내용이다. 북한은 개고기를 ‘단고기’, 개장국을 ‘단고기국’이라 한다. 단고기라는 말은 ‘고기맛이 달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삼복철과 민족음식’이란 기사에서 “우리 인민은 무더운 삼복철에 단고기장이나 소고기 매운탕, 삼계탕, 팥죽, 파국과 같은 뜨거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건강에 좋은 하나의 풍습으로 전해왔다”면서 더위에 지쳐 입맛이 떨어지고 몸이 허약해질 수 있는 삼복의 보신책으로 그 중에서도 단고기장을 최고로 꼽았다.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북한의 속담이 있다. 삼복 더위를 이겨 내기가 매우 힘겨움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북한은 “삼복철에는 단고기 국물이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단고기의 영양가를 최고로 친다. 북한엔 단고기장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1992년 개장한 ‘평양단고기집’의 경우, 630석의 식사홀과 80석의 연회장, 7개의 방을 갖춘 무척 큰 규모다. 평양단고기집에선 다양한 단고기 요리를 코스요리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등뼈찜·갈비찜·가죽볶음·뒷다리토막찜·황구신이 차례로 나오고, 마지막으로 밥과 단고기국이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양배추말이김치와 우엉김치가 나온다. 최근 중국에 평양단고기집 지점까지 생겼을 정도다. 노동신문은 소고기 매운탕도 삼복기간의 좋은 철음식이라고 소개했는데 “원래 소고기탕에는 고추를 넣지 않지만 삼복철에는 소고기를 잘게 썰어서 푹 삶아낸 데다가 고춧가루와 파로 얼벌벌한 양념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였다. 삼계탕도 삼복철의 인기 음식으로 꼽는다. 영양가가 높아 더위에 쇠약해진 몸을 추세우는 데 특효가 있으며 특히 단고기를 잘 먹지 않는 여성들이 즐겨 먹는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가서 마음 놓고 보신탕을 먹고 싶어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슬람교

이슬람교의 개조(開祖) 마호메트(AD 571?~632)는 아라비아의 수도 메카서 유복자로 태어나 여섯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고는 조부, 숙부에게 전전하며 성장했다. 거상의 미망인 하디쟈를 도와 무역일을 하다가 그녀의 구혼으로 결혼한 것이 스물다섯살 때다. 대상(隊商)으로 시리아며 팔레스타인 등지를 내왕하며 종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마흔살이 넘어 메카 근교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중 홀연 알라신의 계시를 받아 예언자가 됐으나 코레이슈족의 박해로 메카를 탈출한 것이 622년으로 이 해가 이슬람교의 기원 원년이다. 메디나로 피신한 마호메트는 8년간의 교세 확장으로 무장한 교단을 이끌고 메카를 무혈입성, 다신교의 본산이던 카아바 사원을 알라를 유일신으로 한 최고 신전으로 삼았다. 메카 순례와 카아바 신전 참배는 이슬람교도 최고의 영예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호메트가 생전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후, 그의 사후에도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이집트에 이어 서남유럽인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다. 732년에는 중부 프랑스의 투울지방까지 진출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중세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적잖게 이슬람교로 개종해 두 종교는 숙적의 사이가 됐다. 18세기 유럽 학자들은 이슬람교도의 정복을 가리켜 ‘오른 손에는 코란, 왼손에는 검’이라는 말로 혹평했다. 코란은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아라비아문학의 원천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슬람교도의 정복이 개종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정복지역의 기독교 교인들은 일정한 세금을 내면서 신앙과 재산을 보장받았다. 개종은 10세기 이후 이슬람교의 활발한 선교 활동에 영향이 컸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과거는 20세기 들어 객관적인 연구로 적대관계의 조명이 많이 해소되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중동 분쟁은 꺼지지 않는 불씨다. 아프간 반정부군에 피랍된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의 지칭에서 선교는 빼달라는 현지 한인들의 요청이 있었다. 아프간의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거부감을 사 좋지않은 영향이 미칠것을 우려해서인 것이다. 이슬람교 역시 권선징악의 종교다. 탈레반은 자기 나라에 봉사하러 간 한국인을 건강한 모습으로 전원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질 몸값으로 돈을 요구하고 나섰다./ 임양은 주필

골 키퍼

축구에서 골 키퍼는 고독하다. 일반적으로 골 키퍼의 선방보다는 골이 작렬하는 공격적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관중의 심리다. 물론 어느 한 쪽 팀의 입장에서 관전할 땐 다르지만, 보편적으로는 골이 터지지 않는 게임은 지루하게 여긴다. 반대로 골이 많이 터지는 게임은 스탠드에선 열광하지만 골을 먹는 골 키퍼는 말이 아니다. 마치 자신이 잘못해서 골을 먹는 것 같은 처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 골 키퍼인 것이다. 골 키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헤딩이다. 헤딩은 순발력이 높기도 하지만 골 문으로 들어오는 각도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슛 볼이 수비수 몸에 맞고 들어오는 것도 역시 각도가 갑자기 달라져 골 키퍼를 애먹이곤 한다. 문전 혼전으로 상대의 슛 동작이 수비수 몸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도 골 키퍼를 당황케 한다. 슛 동작으로 볼이 뜨는 것을 골 키퍼가 보면 각도를 잡아 볼을 낚아채는 확률이 높다. 그러나 볼이 땅에서 뜨는 것을 못본 채 갑자기 날아들 땐 거의 속수무책이다. 상대팀의 공격수가 단독 드리볼 해올 땐 눈 싸움이다. 골 키퍼가 전진 수비로 각을 좁히면서 상대를 뚫어져라고 응시하는 것이다. 이 때 상대 공격수가 골 키퍼와 시선을 스치면서 때린 슛은 대개는 골 키퍼 앞으로 볼을 안겨준다. 그러니까 공격수의 입장에서는 골 키퍼를 안 보고 숙련된 감각으로 슛하는 것이 득점의 요령이다. 승부차기는 완전히 골 키퍼 판이다. 차는 선수의 심리적 부담도 크지만 막는 선수의 심리적 부담 또한 크다. 차는 사람은 돌아가며 차지만 막는 것은 골 키퍼 혼자 도맡는다. 페널티킥은 기세, 즉 눈 싸움이다. 스포츠과학은 페널티킥의 성공률을 86%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골 키퍼는 눈 싸움에서 상대에게 14%의 실패율을 유발해 낸다. 유명 선수도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예가 적잖다. 2007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턱걸이로 간신히 오른 8강전서 승부차기로 이란을 제치고 4강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5일 저녁에 가진 난적 이란과의 경기를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동안 0-0으로 득점없이 비겨 승부차기로 들어가 4-2로 눌렀다. 골 키퍼 이운재 선수가 이란의 두 선수 볼을 막아낸 것이다. 승부차기에 강한 그의 눈 싸움 기세는 노련함과 침착성이 축적된 풍부한 경험적 기량이다./ 임양은 주필

군인복무기본법안

군대는 위계질서가 조직의 생명이다. 위계질서가 문란한 군대는 한마디로 X판이다. 군 본연의 지휘 통솔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기합은 지휘 통솔 확립을 촉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국어대사전은 기합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정신을 신체에 나타내어 어떤 일을 하는 기세. 군대 등에서 잘못한 사람을 단련시키는 뜻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어 응징하는 일’이라고 했다. 군대에서 구타·가혹행위·욕설 등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한다. 이를 어기면 군 형법 등에 따라 처벌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군인복무기본법(안)’에 이렇게 돼있다. 법안은 얼마전 국무회의를 거쳤다. 올 정기국회에 상정시킬 것이라고 한다. ‘신사군대’ 만드는 취지인 것 같으나 다중의 여러 인격체가 모여 있는 곳이 군대다. 다중의 인격체를 일사불란하게 통솔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신체에 나타내어 어떤 일을 하는 기세’ 즉 기합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기합이 빠지면 ‘잘못한 사람을 단련시키는 뜻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어 응징하는 일’ 즉 기합을 가해야 된다. 기합에는 발로 차기도하는 구타, 얼차려 같은 가혹행위, ‘야! 임마!!’하는 욕설 등이 있다. 그런데 못하게 한다고 한다. 물론 린치나 인성을 모독하는 행위는 기합과 구별되는 것으로 이런 것은 ‘군인복무기본법(안)’이 없어도 못하게하고 지금도 처벌하고 있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어느 수위를 구타·가혹행위·욕설로 보아 금지시키느냐는 것이다. 이를 일일이 예시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가볍게 몇대 때리는 것도 구타로 보고, 연병장 토끼뜀질 시키는 것도 가혹행위로 보고, X새끼 하는 것도 욕설로 보고 처벌한다면 하극상의 나사빠진 군대가 되어도 속수무책이다. 6·25 한국전쟁 땐 분대장까지 즉결처분권을 주어 명령에 불복종하면 그 자리서 총살하도록 했다. 지금은 전시가 아닌 평시이긴 해도 군 복무는 자신의 목숨을 나라에 내놓고하는 국방의 의무 이행이다. 특수 조직의 군 특수성을 무시하는 ‘군복무기본법(안)’이 ‘신사군대’가 아닌 ‘약체군대’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 입법 과정에서 철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엔 장관들을 비롯하여 군대에 안간 사람들이 많다더니, 이도 뭘 모르는 책상머리 궁리 끝에 나온 게 아닌지 모르겠다./임양은 주필

숫자 3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 ‘3’의 기원은 단군신화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환웅이 태백산 정상으로 내려올 때 천부인(天符印) 3개, 신하 3천명, 비·구름·바람 등 3신을 데려오는 대목에 나온다. 고구려의 상징적 문양 삼족오(三足烏)는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로 태양의 새를 상징했고,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3가지 재난, 즉 삼재(三災)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머리가 셋인 매 ‘삼두매’ 그림을 문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고 한다. 아기도 삼신할머니에게 점지 받고, 해산 후 세 차례에 걸쳐 밥·미역국·물 세 그릇씩 삼신상에 차려놓고 기도한다.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경’에서도 3은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다. 1도 아니고 2도 아니고, 3에 이르러서야 만물이 생겨 나온다고 보았다. 민속음식도 간장·고추장·된장의 3장이 기본이며, 속담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3자가 빠지면 얘기가 안 될 정도다. 혼인도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갔으며, 부모가 별세하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3이 두 번이나 들어 있는 삼짇날(음력 3월3일)은 머리카락을 땅에 묻으면 쑥쑥 자랄 만큼 세상의 모든 것이 살아난다고 믿었을 정도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 “심봤다!”를 3번 외친다. 서양도 숫자 3을 좋아한다. 기독교 신앙에는 성부·성자·성령의 3위일체가 있고, 예수 탄생에는 3명의 동방박사가 가져온 멜키오르(황금)·가스파르(유황)·발타사르(방부제 몰약)라는 3가지 선물이 등장한다.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3총사’엔 아토스·포르토스·아리마스 3인이 있고, 뉴턴·헤겔·프로이트 등 위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는 늘 ‘3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3 ’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벽함을 뜻하는 숫자로 인식됐다. 시행착오와 오류를 거쳐 완전해지는 것을 상징한다. 흔히 말하는 ‘삼 세판’이다. 중앙대 김종대 민속학과 교수는 “옛날 사람들은 숫자 1과 2를 더한 3은 남자(1)와 여자(2)가 결혼해 아기(3)을 낳는 것처럼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완전한 숫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숫자 3에 관한 많은 설화나 주장들이 한 세상 살아가는 데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나무

한자(漢字)에는 나무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다. 나무와 풀 부수가 으뜸으로 많고 단어도 제일 많다. 근본 본(本)은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모습이다. 저녁 묘(杳)는 나무 밑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며 아침 단(旦)은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삼(森)은 나무가 한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인데, 우주 간의 모든 현상을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한 것을 보면 나무는 근본이자 전부인가 보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시간과 관련된 한자 중에 나무와 관련된 말이 많다. 음력 2월은 매화를 보는 매견월(梅見月)이고, 음력 3월은 앵두꽃이 피는 앵월(櫻月)이다. 5월은 꽃이 만발하며 향기가 구름처럼 자욱하기 때문에 향운(香雲)이라 했으며 벽오동잎이 지는 음력 7월은 오월(梧月)이다. 이지음에 내리는 비를 오동우(梧桐雨)라고 했다. 나무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의 재료였다. 밤나무론 신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주를 율주(栗主)라 했고, 밤나무로 만든 다갈색 붓은 율미필(栗尾筆), 오동으로 만든 거문고를 동군(桐君)이라 불렀다. 계수나무로 만든 수레는 계거(桂車)였으며 도끼자루를 부가(斧柯)라고 했다. 나무는 출판의 판목(版木)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지식을 전파한 수단이었다. 특히 재질이 단단한 배나무(梨)와 대추나무(棗)가 판목으로 많이 사용돼 이조(梨棗)는 출판을 의미한다. 가래나무(梓)는 워낙 고급목재인지라 국가에서 중요한 책을 만들 때만 사용했다. ‘책을 상재(上梓)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나무는 오래 살기 때문에 수명과 관련된 한자에 나무가 많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참죽나무(椿)는 특히 오래 산다. 그래서 장수를 의미하는 춘년(椿年), 춘수(椿壽), 춘령(椿齡), 대춘(大椿)에는 모두 참죽나무가 쓰였다. ‘나무에 미친 나무선비’로 널리 알려진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과·중국사 전공)가 낸 네번째 나무책 ‘나무열전’을 읽으면 마치 나무가 인간의 일생을 얘기해주는 것 같아 재미를 더해 준다. 나무의 비밀과 역사가 한자로 풀이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무들의 마을에서 나무처럼 살고 싶은 날, 넓은 오동잎에 떨어지는 오동우(梧桐雨) 빗소리를 벗 삼아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선인들의 풍류가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큐레이터’

‘큐레이터’는 미술관 소장품을 조사·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이론 전문가다. 원칙적으로 갤러리가 아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학예사를 일컫는다. 큐레이터는 겉보기엔 우아해도 실상은 잡일도 마다 하지 않으면서 박봉을 견뎌야 하는 직업이다. 우리나라 미술관들의 열악한 현실에선 더 그렇다. ‘백조’ 또는 ‘빛 좋은 개살구’로 표현되는 이유다. 실정은 이렇지만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큐레이터를 꿈꾼다. 2001년부터 실시된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의해 학예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2007년 현재 1천700명에 이른다. 프랑스의 경우 큐레이터가 되려면 일정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등 통과기준이 까다로운데, 우리나라에선 큐레이터가 되는 과정이 모호하다.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전국 320여 개의 경력인정 대상 박물관·미술관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正)학예사를, 석사 학위가 없는 경우엔 시험을 통과하고 경력인정대상 기관에서 1~5년 동안 근무하면 준(準)학예사를 딸 수 있다. 정식 등록된 유명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엔 학예직(큐레이터)이 18명이고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채용을 한다. 유명 사립미술관의 경우 인턴이 아닌 정식 큐레이터는 대부분 1~3명이다. 그러나 연봉은 적다. 신참의 경우 낮게는 1천200만원 선에서 시작하고 고참도 5천만원을 넘기 어렵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석사학위 취득 후 5년 정도 근무했을 때 연(年) 3천만~3천500만원 정도를 받는다. 큐레이터를 뽑는 곳이 워낙 적어서 박봉이라도 참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는 이래서 미술이론 전공자들이 꿈꾸는 ‘신데렐라’의 모델이었다. 만 25세이던 1997년 금호미술관 인턴 큐레이터로 시작해 이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가 됐고, 성곡미술관의 큐레이터, 수석 큐레이터, 학예실장을 하며 해외 1급 작가들의 굵직한 기획전시를 도맡았다. 2005년엔 동국대 전임교수가 되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미술행사인 광주비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에 오르기까지 했다. 가짜 예일대 박사로 드러나 예술감독의 선임이 취소되긴 했지만 지금 신정아 교수는 미국에 머물면서 의혹과 혐의를 부인하고 진실을 증명하겠단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최선이 없다

자유당 독재정권 당시 신익희, 조병옥은 민주화 투쟁의 두 거목이었다. 두 분이 모두 일제 강점에 저항,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이들의 대중 연설엔 민초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곤 했다. 신익희는 1956년, 조병옥은 1960년에 고인이 됐다. 두 분이 모두 구 민주당으로 신익희는 3대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4대 대통령 후보가 되어 국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 선거도중에 갑자기 작고했다. 신익희는 지방유세에 나선 호남선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조병옥은 낙관하고 시작한 심장수술이 돌연히 악화되어 세상을 떴다. 두 분 모두 국민장을 치렀다. 정권 교체를 열망했던 국민들은 잇따라 일어난 두 거목의 변고에 하늘을 원망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오는 12월19일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날을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가 피투성이 경선을 벌이고, 범여권은 20명이 넘는 출마족이 ‘좌고우면’하는 가운데 정파별 이합집산 놀음이 한창이다. 그런데 나온 사람은 많아도 ‘딱’ 이 사람이다 하고 마음이 쏠리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얘기다. 철면피들 뿐이라는 것이다. 철면피는 ‘북몽쇄언’에 나오는 말로 어느 선비가 문전축객을 당하면서도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요즘 말로 눈도장 찍기에 바쁜 걸 빗댄 것이다. 철면피들이 설치다 보니 대선정국이 한마디로 전전긍긍이다. 전전긍긍은 ‘시경’에 있는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전전긍긍하기가 깊은 못가에 있는 것 같고 살엄을 밟기와 같다)에서 유래됐다.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이당 저당을 합쳐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30명 정도나 나왔지만 전에 신익희나 조병옥 같은 국민적 지지를 받던 사람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흠 저런 흠 등 흠집투성인 사람들 뿐이다. 여기에다가 제일 야당이나 범여권이나 형편이 마치 깊은 못가에 있고 살얼음판 밟는 것처럼 전전긍긍인 사정인 건 다 마찬가지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는 예측은 고사하고 과연 누가 정식 후보가 될 것인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생각되는 것은 아무래도 철면피들 가운데서 뽑을 것은 분명하다 보니 최선을 기대하지 못할 것 같다. 투표는 선택이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 이도 아니면 차차선으로라도 전전긍긍속 고비를 넘겨야 한다. 지금의 정치는 어찌된 건지 반세기 전의 정치보다 멋이 없다. / 임양은 주필

한나라당 집안꼴

부부 싸움에도 불문율 같은 규칙이 있다. 어느 한 쪽이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넘어선 안 되는 싸움의 한도가 있다. 아예 같이 안 살 작심이면 몰라도, 같이 살 요량이면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은 집안 싸움이다. 부부 싸움과도 비유된다. 그런데 집안 싸움에 외부 세력을 불러들이고, 부부 싸움에 해선 안 되는 막말이 마구 오간다. 이 며칠동안은 이명박의 부동산 의혹, 박근혜의 이명박 주민등록초본 부정발급 관련으로 벌어지는 싸움판이 대단하다. 경선은 아무리 격렬하다 해도 다 같은 당내의 동지적 관계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지 않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치닫는 경선이 당과 당 간에 맞부딪히는 대통령 선거의 상대 후보와 갖는 싸움판 못지않게 심한 정적으로 대한다. 경선은 치열할수록 흥행이라지만 이건 흥행이 아니다. 누군 경선이 끝나면 두 사람간에 멋진 화해의 모습이 연출될 것이라지만 의문이다. 서로가 안 할 말, 못할 말을 퍼부어 상대의 인격체를 갈기 갈기 찢어놓고, 경선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위해 축하를 보내면서 선거운동에 나설 것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설령, 이·박 두 당사자는 마지못해 화해를 하고싶어 한다 해도 두 캠프 진영에서 상대를 거부할 공산이 높다. 결국 경선에서 패배한 쪽은 이긴쪽으로부터 기름에 물처럼 따돌려져 찬밥 신세가 될 게 뻔하다. 이래서 이기려고 더욱 기를 쓰는 바람에 싸움판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진 모르겠으나 한나라당의 미래가 영 불안해 보인다. 애시당초 캠프다 뭐다 하여 지나친 줄서기로 당이 갈라지다시피 한 것 부터가 잘못이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강재섭 당 대표는 안 보이고 완전히 ‘이명박당’ ‘박근혜당’으로 두 동강 났다. 두 동강 난 가운데서도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양다리 걸치는 족속도 있다. ‘간교한 친구보다 정당한 적이 더 낫다’는 영국의 속담을 새김질 해볼만 한 것이 작금의 한나라당 당내 사정이다. 경선의 품질이 이토록 저질화 된데는 이유가 있다. 당내 경선에서만 이기면 대통령 당선은 따놓은 당상으로 본 자만심 때문이다. 떡 줄 사람한텐 물어도 안 보고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다. 당 지도부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부터라도 가닥을 잡아 수습에 나서 챙겨야 된다. / 임양은 주필

삼성의 비상경영

사무실 전등은 절반만 켜졌다. 복도는 터널을 연상할만큼 어두컴컴하다. 지난 12일자 본지에 보도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사진이다. 기사 내용은 더 자린고비다. 손님 접대용 음료수는 페트병으로 구입해 그것도 반 잔만 따른다. 가끔씩 있던 팀별 회식도 없어졌다. 사옥 증축도 유보됐다. 무서운 것은 구조조정에 의한 대규모 감원 선풍이다. 삼성전자는 지금 불요 불급한 지출은 최대한 줄이는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경제의 샌드위치론을 말했다. 일본의 선진자본, 중국의 후발자본 틈새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것이다. 일본 자본과의 경쟁 거리는 더 멀게 처지면서, 중국 자본의 추월은 바짝 따라붙어 더러는 추월당하고 있다. 삼성의 비상경영은 반도체 해외시장의 불안에도 있지만 앞으로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망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5년 후가 큰 걱정”이라고 했다. 삼성은 5년후의 위기 대비에 돌입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 회장은 과테말라에서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서섰다. 아깝게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그는 속내를 이렇게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국내 경제의 위기대비에 호재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그만 안됐다’며 아쉬워 했다. 삼성의 전등 끄기 같은 에너지 절약은 정신 무장을 위한 일종의 경각심 촉구다. 하지만 지출 절감 같은 소극적 대책으로만 위기를 대비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 ‘뭘 팔아서 경영 소득을 올릴 것인가’하는 것은 모든 삼성맨들에게 부하된 과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는 것은 적극적 대처 방안의 하나다. 삼성은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위기 대비의 비상경영 체제로 들어간 것을 엄살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삼성에서 전등을 아껴 불을 끄다니…’ 쇼라는 것이다. 위기 예측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기의 요인은 적잖다. 그중의 하나로 기름을 꼽을 수 있다. 5년 후엔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안 온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 경제의 무서운 성장 또한 위협의 대상이다. 이밖에 모종의 돌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삼성의 위기 예측, 위기 대처는 시사하는 의미가 큰데도 국가사회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고로 위기는 평시에 대처하는 것이 요체다./ 임양은 주필

죽림칠현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전설같은 이야기 속의 인물이 아니다. 서기 3세기 중국에서 파란 많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다. 중원이 위·촉·오 삼국으로 나눠져 있던 난세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지식인들이다. 칠현은 혜강(223~262) 완적(209~263) 산도(205~283) 상수(227~272) 왕융(234~305)과 생몰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유령, 완함 등 7명을 일컫는다. 이들은 한때 죽림, 지금의 중국 허난(河南)성 지오쭤(焦作)시 북부지역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친밀하게 교류하며 청담(淸談·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철학적 담론)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종국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갈길을 갔다. 칠현 중 혜강은 죽림에서 처음 기거하며 다른 이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은 죽림의 주인 격이었다. 선비의 지조와 의연함을 지닌 채 위나라 사마씨들에게 맞섰던 그는 결국 39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혜강은 자신을 고위 관리의 자리에 천거한 산도에게 절교서를 보냄으로써 사마씨의 미움을 샀다. 잘 나갈 수 있을 때 지조를 굽히지 않아 화를 당했다. 완적은 넘치는 해학과 속 깊은 재주를 지니고 영웅의 기상으로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싶었으나 결국 사마씨 정권의 ‘꽃병’ 노릇에 머물고 만 인물이다. 그는 혜강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당시의 권력자 사마소에게 일언반구의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붓을 들어 군주도 신하도 존재하지 않는 ‘무군무신론’을 써내려가며 슬픔을 달랬다. 하지만 혜강이 처형당한 지 1년 후 술독에 빠져 살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죽림의 장자(長者)’로 불리던 산도는 원만함의 대명사였다. 일찍이 노장사상에 침잠하여 세상사를 다투려 하지 않았고, 누가 물으면 그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깨끗한 관료로서 고위 관직에까지 오른 그는 죽림의 배움을 현실에 옮겨다 놓았다. 하지만 부귀를 뿌리칠 수 없었던 인물로 후세들에게 비난받았다. 술로 세상을 퍼마신 유령, 스스로 미치고자 했던 완함, 죽림의 파수꾼 상수, 현학(玄學·도가의 학문)을 출세와 바꿨던 왕융 등 7명은 난세에 지식인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요즘 지식인처럼 (왕융을 제외하고) 줄서기, 곧 출세에만 급급하지는 않았다. ‘빼어난 속물’들이었다. / 임병호 논설위원

‘마이크로 크레디트’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1976년 방글라데시 그라만은행이 창안한 제도로 담보가 없는 빈곤층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해줘 경제적 자립을 돕자는 취지다. 그라만은행은 1천500개가 넘는 지점을 세우며 30년 간 52억달러의 대출을 해줬고 600만 명 가량의 대출자 중 절반 이상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라만은행을 효시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하나은행의 용단으로 한국에서도 시작된 것은 서민들은 물론 사회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크게 기대된다. 특히 연 3~4%의 금리로 5천만원부터 3억원까지 대출해주는 건 파격적이다.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자금은 하나은행에서 지원한다. 하나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하나은행 산하에 비영리법인 ‘하나희망재단’을 만들고 300억원 규모의 ‘하나희망펀드’를 조성해 대출자금으로 출연한다. 하나은행은 기금 운용 및 금융지원만 맡고, 대출심사와 컨설팅은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 부설 ‘소기업 발전소’가 전담할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늦어도 9월부터 대출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정부도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추진하고 있어 전망을 더욱 밝게 해준다. 지난 4일 임시국회에서 2년여간 방치돼 온 휴면예금 관련 법안(휴면예금관리재단법 및 휴면예금이체법)이 통과된 것이다. 정부는 8천억여원의 휴면예금 중 1천800억원을 내년 2월 설립될 휴면예금관리재단에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초기 출연금 외에 신규로 발생하는 휴면예금 중 매년 500억원가량이 재단에 추가 출연될 예정이어서 금융소외계층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기획예산처도 8월 중 휴면예금과 민간 기부금 등을 활용, 저소득계층과 신용도가 낮은 계층에게 무담보로 창업자금을 대출해주고 경영 컨설팅을 제고하는 사회투자재단을 발족, ‘서민 창업’을 돕는다고 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10% 가량의 부실대출을 예상하고 체계적인 지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주목된다. 3~4%의 이자만을 받을 경우 300억원의 기금은 점차 소진될 염려가 있지만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추가 출연도 가능하다는 방침을 세웠다. 희망제작소도 기부금을 모집하거나 성공한 소기업에서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방법 등을 통해 기금을 추가 확충할 계획이다. 서민경제가 일어서야 국가경제도 부흥한다.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시행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제도가 성공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동계스포츠의 허점

한국은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에서 너무 ‘쇼트트랙’에 의존했다. 지난해 토리노 동계올림픽만 해도 이강석의 스피트스케이팅 500m 동메달을 빼면 모두 쇼트트랙(금6·은3·동1) 덕분에 종합 7위를 했다. 세계무대에선 아시아 1등인 한국이 올 초 창춘에서 열렸던 동계아시안게임에선 개최국 중국, 일본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종목 편식’ 탓이다. 해법은 집중적인 투자와 틈새 종목 육성에서 찾을 수 있다.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은 20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오스트리아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유럽 ‘서머 그랑프리’에 출전,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면서 훈련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국내 시설은 열악하다. 무주에 있는 스키점프대는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겨울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점프대에 눈을 붙이고 유지하는 데만 1억원 쯤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동계유니버시아드와 아시안게임에서 꾸준히 메달을 땄다. 협회가 일찍 선수를 발굴해 길게는 10년 가까이 키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알파인 스키는 여전히 세계 수준과 거리가 멀다. 인프라는 FIS(국제스키연맹) 월드컵을 유치했을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스키시즌이 1년에 3개월 남짓으로 짧아 훈련시간부터 부족하다. 일본은 유럽에 캠프를 차리고 대표선수들을 거의 연중 훈련시킨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전지훈련이 매년 20~30일에 불과하다. 바이애슬론과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은 ‘볍씨와 모판’이 모두 절실하다. 워낙 비인기종목이라 어린 선수들이 좀 하다가 그만 둔다. 올해 10월 알펜시아에(여름용) 아스팔트 훈련장을 갖춘 국제규격 경기장이 완공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썰매 종목은 선수 육성 체계가 아예 없다. 동계올림픽을 두 차례 치른 일본은 동계 스포츠의 오랜 역사와 넓은 저변, 높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 국가 전체 예산 중 체육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의 5배 정도다. 그런데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선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 하나를 따는 데 그쳤다. 그만큼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얼마 전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가 동계스포츠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전 종목의 선수 육성에 각 20억원씩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지만 그것도 넉넉한 건 아니다. 동계 스포츠 경기력을 높이려면 국가 차원의 집중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열정 만으론 안 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독자 생각은/ 위험천만한 도로변 예초작업

최근 도로를 지나다 보면 도로 갓길에서 예초기를 이용, 풀 베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작업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자칫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 작업 관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 도로에서 대부분 풀을 벨 때는 예초기 엔진소리 때문에 차량이 오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운전자가 경적을 울려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안전을 위해 조금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작업안내 표지판 등을 도로 갓길에 설치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운전자는 갓길 등에 작업안내 표시 등 경고표시가 없으면 과속하거나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 자칫 대형사고가 발생우려가 높은만큼 반드시 작업 전 작업안내 표지판를 설치했으면 한다. 특히 급커브나 오르막, 또는 경사지역,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인 날 등은 사고발생 위험이 더욱 높으므로 작업지역 1~2㎞ 전·후방에서 수신호 등 감속안내 표지를 설치해 사고예방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작은 관심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운전자 또한 안내표지판이 설치된 곳에서는 감속 운행, 사고 예방에 주력했으면 한다. /김영철 인터넷 독자

발언대/ 경인지역 유권자의 힘?

선거는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만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도 문제다. 현재 대선 주자 간에 펼쳐지는 경쟁 특히 경선을 앞둔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간의 진흙탕 싸움양상은 그 정도가 이미 최소한의 금도도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정치판 싸움은 한편에서는 “얼마나 유권자를 우습게 보았으면 이러냐”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치에서 수요자인 유권자와 공급자인 정당이나 정치인의 역학적 관계에서 형성된 결과다. 다시 말해 공급자 우위의 발상에서 나온 악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경제는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간 지 오랜데, 유독 정치만 공급자의 구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미 정치도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오고 있다. 단지 정치인들만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 유권자 중 경인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을 보면서 경인지역 유권자들을 주목한다. 현재 우리정치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친 지역주의가 이념적 정체성과 맞물리면서, 극단적 대결로 가는 양상이다. 그러나 경인지역은 탈지역주의적 성격에다 이념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2007년 한길리서치 6월 정례조사를 보면 영남의 대구·경북(진보 29.4% 중도 31.7% 보수 36.5%)이나 부산·경남(진보 27.6% 중도31.1% 보수 33.7%)은 보수에 치우치고 호남(진보 40.1% 중도 23.6% 보수 28.1%)은 진보에 치우친다. 반면 경인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진보 35.6% 중도 25.8% 보수 36.7%)은 전국의 이념적 성향(진보 33.4% 중도 27.5% 보수 34.4%)과 가장 근접해 있다. 여기다가 경인지역 인구는 전체 인구의 27%나 차지한다. 이같은 경인지역 유권자들의 특성은 현재와 같은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유권자들 중심의 새로운 역학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인 지역은 서울과 합하면, 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한다. 이러한 경인지역의 탈 지역성과 이념적 균형이 여론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유권자들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즉 정치 공급자들이 아닌 수요자들에 의한 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인지역과 같은 지역주의는 오히려 더 부각되고 정치권에 영향을 미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인지역은 실제 정치의식의 성숙도나 유권자들 비중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경인지역 유권자들이 지역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경인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해서가 아닌가 싶다. 지역주의 발로에 지역성으로 맞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현재와 같은 경인지역의 정치성향을 감안할 때, 경인지역 유권자들의 힘이 더 커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특정 지역이나 극단적 이념에 의존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이나 정당들에게 서울을 포함한 경인지역 만큼은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소, 고발의 ‘부메랑’

고자질이나 밀고는 원래 좋은 게 못된다. 고자질이나 밀고를 잘하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다. 거짓 고자질도 있다. 또 고자질, 밀고로 득을 본 사람도 종내엔 고자질이나 밀고를 한 사람의 피해를 당하기 십상이다. 시민정신이란 게 있다. 사회생활이나 사회공익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응징을 발현하는 마음가짐이다. 아울러 시민정신을 발현하는 것 중의 하나로 관계 당국에 대한 신고가 있다. 그런데 신고도 따지고 보면 고자질이나 밀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자질, 밀고는 개인의 이익생활을 탐닉하는데 반해 시민정신은 공익생활을 추구하는데 있어 차이가 구별된다. 고자질, 밀고는 공익은 외면되는데 비해 시민정신은 개인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고소, 고발은 드러내는 점에서, 뒤에 숨어서 하는 고자질이나 밀고와는 다르지만 이 역시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주로 하는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고소, 고발을 잘하는 사람치고 또한 성격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 드물다. 고소, 고발은 잘 하면서도 시민정신은 결핍된 사람이 많다. 언제부턴지 정치권이 고소, 고발을 잘 하는 풍조가 생겨 걸핏하면 고소, 고발을 일삼는다. 정치적인 언행을 정치적으로 해결 못해 사정기관을 끌어들이고 사법기관까지 가는 것은 정치권의 정치력 빈곤이다. 법률적 대응보단 정치적 대응이 본질적 역량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이 고소, 고발을 즐긴 자충수에 걸려 재앙을 자초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 예비후보의 경선이 탈선, 부동산 의혹 등 갖가지 고소, 고발을 서로 벌인 것이 검찰수사를 불러들여 당내 일에 검찰의 검증을 받게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에 당 지도부는 고소, 고발 취하를 요청하고 이·박 캠프에선 취하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래서 후회하고 있지만 이젠 늦었다. 이·박 캠프에서 고소, 고발을 취하하면 물론 명예훼손 같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것은 기소를 못해도 다른 혐의 부분은 인지사건으로 다루어 기소가 가능하다. 실제로 검찰은 취하 여부에 상관없이 수사를 강행할 태세인 것이다. 명색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 그리고 제일 야당이란 사람들의 분별력이 이토록 저급한 게 실로 한심하다. 고소, 고발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고소, 고발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고소, 고발로 망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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