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의 명판결

‘(전략)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후략)’ 전국지 C일보가 어제 단독 보도한 대전고법 제3민사부(재판장 박철 부장판사)의 판결문 내용이다.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임대아파트 해약 통보와 함께 퇴거 요청을 받은 일흔여섯살 노인은 6·25 참전 용사다. 정부지원비 7만원과 막노동으로 살다가 아내가 병사하고 나서는 혼자 산다. 그런데 딸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니 딸 이름으로 계약된 임대아파트는 무효이므로 나가라는 것이다. 아내 병 수발 하느라고 시간이 없어 딸이 대신 계약을 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호소했으나 1심에선 패소했다. 그런데 이번엔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전략) 계약은 딸 명의로 맺었지만 이는 병든 아내의 수발을 위해 자릴 뜨지못한 피고를 대신해 딸이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법 지식 부족으로 벌어진 실수로 판단된다. 피고는 이 주택 임차를 위해 본인의 돈으로 보증금을 내고 실제로 이 주택에 살았다. 따라서 피고는 사회적 통념상 실질적인 임차인으로 충분히 생각될 수 있으니, 법적으로도 임차인으로 보는 것이 공익적 목적과 계획에 맞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승소 판결문의 일부 내용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아무리 나쁜 법도 법을 집행하는 것은 인간이다. 재판도 인간이 한다. 재판은 사안의 실체적 접근에 대한 판결이다. 실체적 진실을 직권으로 가려낼 의무가 있는 형사재판은 물론이지만, 소송당사주의가 원칙인 민사재판도 사안의 실체적 접근이 뭣보다 중요하다. 사안의 겉만 보고 재판하거나 죄만 보고 죄명을 적용하는 기계적 판결은 법과대학만 나오면 누구든 할 수가 있다. 아니, 법과대학을 안나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이런 게 아닌 것은 소송절차에 따른 판사의 고뇌에 대한 판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뇌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래서 재판은 법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에 앞서는 것이 있다. 양식이다. 재판은 즉 판사의 양심의 반영인 것이다. 대전고법의 그 항소심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명판결이다./ 임양은 주필

FTA 문건 유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미국측 대표단 중엔 동양인이 있다. 직급으로 치면 과장급이다. 핵심 멤버의 실무 진영이다. 우리 대표단은 처음엔 중국계 미국인 줄 알았다. 그래서 회담 테이블에서 우리 대표끼리 의논할 일은 한국말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양인 미국측 과장이 바로 한국계 2세더라는 것이다. 한국인 핏줄이 FTA협상 같은 자리에 나올만큼 중요 요직에 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나 나라와 나라의 입장에서는 또 다르다. 게다가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우리 말을 잘 모르는 것과는 달리 그는 한국말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담 테이블에서 우리 대표단이 우리 말로 의논한 내용을 그 한국계 미국 대표단 과장은 거의 알아들은 것이다. 그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사석에서는 우리 대표단과 우리 말로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회담장에 들어서면 판이한 것으로 전한다. 어디까지나 미국 국익의 입장에서 펴는 주장이 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대표단은 이래서 처음과는 달리 우리끼리의 회담장 대화도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번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 제출한 정부의 FTA 협상전략 비공개 보고서 문건이 통째로 유출된 것이다. 일부 신문과 방송에 보도까지 됐다. 컨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관련 보도 내용을)꼼꼼하게 잘 봤다”고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말했을 정도다. 김 수석대표는 이를 전하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비공개 문건 유출을 개탄했다. 미국측 대표단 관계자도 “미국에선 비공개 문건 유출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우리측의 문건 유출과 일부의 언론보도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알 권리를 내세우며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는 미국 언론도 국익을 해치는 비밀 문건은 보도를 절제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문건 진본은 정부에서 이내 회수한 것으로 알려져 유출된 건 복사판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공개 문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지만, 이를 고의로 유출하고 또 보도한 언론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마 FTA 반대 세력이 고의로 유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협상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수치일 뿐이다. 다만 협상전략이 노출된 판이니 협상에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럭키 세븐’

사람들에게 1부터 10까지 중에서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면 대부분 7이라고 답한다. 지역과 문화가 달라도 제 각각의 이유로 7을 행운의 숫자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태어난 후 바로 스스로 일어나 일곱 발짝을 걸었다고 하며, 신약 요한계시록에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7개의 촛대, 7개의 별, 7개의 나팔 등 7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기독교권에서 7은 ‘완벽함’을 뜻하며 이슬람을 비롯한 많은 종교는 지구와 태양, 육안으로 볼 수 있는 5개 행성을 ‘7개의 하늘’로 상정한다. 흰두교의 ‘차크라’는 인체의 에너지가 모이는 7군데의 혈(穴)을 가리킨다. 미국 과학계는 인간의 최적 수면 시간을 7시간이라고 한다.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간은 7번째 7년이 지나면 결코 이르다고 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술가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써서 500만부 넘게 팔았다. 7곱가지 습관은 “주도적이 되라,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상호이익을 모색하라, 경청한 다음 이해시키라, 시너지를 활용하라, 끊임없이 쇄신하라”다.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1849년에 펴낸 저서 ‘건축의 칠등’에서 7가지 원칙으로 희생·진실·힘·아름다움·생명·기억·복종을 제시했다. 널리 통용되는 인간의 7가지 미덕은 겸손·관대·순결·친절·절제·인내·근면이다. 교황 그레고리 1세는 7가지의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로 자만·탐욕·폭식·시기·나태·분노·색정을 꼽았다.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는 7개의 언덕에 세워졌다. 중세 기독교의 7가지 대죄는 자만·시기·탐식·정욕·탐욕·나태·분노 등이며 이는 할리우드 영화 ‘세븐’의 모티브로 사용됐다. 올해 7월7일 오전 7시 7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선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투표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여기엔 모스크바 크렘린궁과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 등이 후보로 올라 있다. 올해 2007년의 끝숫자 7은 전 세계 문화권이 거의 다 ‘행운’(럭키 세븐)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정말 행운이 넘치는 한해였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 오작교에서 1년에 한번 해후하는 ‘칠석날’도 음력 7월7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교육 보은상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거행된 제1회 ‘유네스코 - 바레인국앙 교육정보화상’을 수상했다. 유네스코가 2005년 제정한 이 상은 각국의 교육현장에서 세계 수준의 교육정보화 능력을 토대로 개발도상국들의 정보화 사업을 지원한 기관, 개인의 공적을 기리는 특별상으로 전세계 30개국 35개 기관이 응모해 한국과 핀란드 캐미 토리노 공과대학이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수상은 세계 최우수 교육국으로 꼽히는 핀란드와 교육정보화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공인 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유네스코는 그동안 한국의 사이버가정학습 등 서비스 프로젝트가 정부와 입법부, 출연기관,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의 공동협력을 통해 구축된 혁신적인 국가교육모델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전세계 주요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지원사업 및 교육 관계자 연수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국가간 정보격차 해소에 크게 기여한 성과도 이번 수상자 선정에 크게 반영됐다. 한국은 지난해 e-러닝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과테말라와 인도네시아, 이라크 등 17개국에 중고 컴퓨터 4천227대를 지원하고 21개국 교사 및 교육관료 582명을 국내로 초빙, 각종 연수와 정보화 훈련을 시켰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교육분야의 다양한 지원을 받았던 한국이 세계수준의 교육정보화 능력을 토대로 개발도상국가들의 정보화 사업을 지원한 노력이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 기구)로 부터 공인 받은 쾌거다. 한국이 수락 수상 연설에서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교육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일에 유네스코가 결정적인 기여를 해주었음을 잘 기억하고 있다”며 이젠 우리도 정보통신이라는 인류문명의 혜택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도국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한국 전쟁으로 온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을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개도국 지원을 통해 되갚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951년 초등학교 교과서를 인쇄할 공장설립 목적과 10만 달러 원조를 승인하고 한국교육재건을 위한 교육조사단을 파견한 유네스코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 문화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도움을 받았다. 한국의 아이들이 누리는 사이버교육의 혜택을 더 많은 국가와 나누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북한 한글날

남한은 훈민정음 반포일인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上澣)’을 기준으로 상순의 끝날인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 10월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일(세종 25년 음력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월15일을 ‘한글날’로 기념한다. 창제일은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를 근거로 했다. 이는 훈민정음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전통문자를 계승했다는 북한 학계의 인식에서 비롯됐다. 북한은 5천년 전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는 이른바 ‘대동강문화’에서 ‘신지(神誌)글자’를 만들어 썼으며 이 문자가 고조선, 삼국, 고려를 거쳐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가 글자생활 발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훈민정음 자체의 우수성과 민족 언어생활에서 ‘전환점’으로의 역할은 높이 평가한다. 2001년에 출간된 ’조선대백과사전’은 훈민정음에 대해 “세종의 직접적인 주관 밑에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현로들이 집체적인 지혜를 모아 만들었다”며 “가장 발전된 글자로 여러 가지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의 백은혁 학사(석사)는 작년 1월 평양방송에 출연, “훈민정음은 우리 인민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민족적 재부”라며 “훈민정음 창제는 인민의 언어 생활과 민족의 역사와 문화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열어 놓은 거대한 문화사적 사변”이라고 극찬했다. 한글이 한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이자 문화발전의 바탕이라는 인식은 남북한 공통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정권 수립(1948년 9월9일) 이전부터 한자어와 ‘왜색풍’의 말을 손질하기 시작해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외래어를 ‘문화어’로 고쳐 1970년대 초까지 5만여 개의 새 어휘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고유어를 쓰고 한자어나 외래어는 되도록 쓰지 말자’는 주의다. 특히 한자어와 외래어는 “민족어의 어휘구성에 들어온 이질적인 요소, 민족어의 고유성과 순결성을 파괴하고 좀 먹는 독소”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민족어가 외래어와 범벅이 돼 잡탕말로 변하면 민족어의 민족적 특성이 희미해지고 민족의 넋도 깨끗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는 북한의 정책은 본받을 만 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도의회 외유병

국내 공직자들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가 외유병이다. 자기 돈으로 가라면 돈이 아까워 안 갈 사람들이다. 공직자의 외유병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내돈 안 들고 좋은 구경 한 번 하자는 심사다. 지방의원의 외유병이 지방의원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유에 자제를 당부한 것은 지역주민과 가장 가까운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주문인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의회가 새로운 출범을 하자마자 외유 소동을 빚어 지역사회의 세찬 지탄에 자숙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병이 다시 도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외유의 분별을 가리기 위해 의회안에 만든 ‘공무국외심사위원회’(공심위)란 게 허깨비라는 사실이다. 자치행정위의 유럽 외유를 ‘계획안의 미흡’을 들어 부결시킨 지 이틀만에 승인으로 번복한 것은 ‘계획안의 미흡’을 제대로 보완해서도 아니다. ‘공심위’가 이토록 윽박지르는 외부의 반발에 굴복할 요량이면 있으나 마나하여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자치행정위와 함께 부결시킨 예결특위도 재심의를 요청하면 번복 안 할 수 없을 것이고, 이렇다 보면 앞으로는 번복하기 보단 아예 처음부터 승인하는 것이 마음 편할터이니 외유병을 합리화시키는 ‘통과위’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그동안 공적이든 사적이든 외국 나들이를 한 두번 했을것도 아닌데 뭘 그토록 나가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말이 해외연수지 관광하러 나가는 것 아닙니까…” 어느 전직 도의원의 체험담이다. 연수계획서란 것에 적힌 관련 기관을 지나가듯 들르는 마당에 연수는 무슨 얼어죽을 연수냐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말 몇 마디 듣고 사진 찍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어느 외유에는 경기도가 7천200만원의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모양이어서 그 배경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도가 외유병을 부채질하는 연유가 듣기 거북할 만큼 나쁘게 흘러나오고 있다. 연수를 꼭 하고 싶으면 해외연수만이 능사가 아니다. 국내연수를 해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국내연수도 안 하는 판에 해외연수라면 사족을 못쓰는 치기가 영 걱정된다. 도민의 혈세를 펑펑 써가며 다녀와서는 출장복명서를 뭐라고 얼마나 성의있게 쓸 것인지 의아스럽다. 전에는 출장복명서도 없었던 걸로 안다. 이제 기왕 쓰는 것이라면 개개인마다 다 공개하여 평가받는 방안이 강구되면 좋을 것 같다./임양은 주필

6·25 전사자 유해발굴

국방부는 얼마전 ‘6·25전사자유해발굴감식단’을 발족했다. 육군은 지난 2000년부터 각급 부대에서 파견된 10여 명으로 유해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이다. 강원도 홍천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국군의 한 유골이 발굴됐다.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밀검색 끝에 수통에 대검으로 이름을 새긴 흔적을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은 ‘張福童’(장복동)이었다. 육군본부는 9사단 30연대 소속의 장복동 일병임을 확인했다. 고인의 유해 수습은 유족들에게 통고됐다. 실로 55년만에 혼백이나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갓 시집 와서 새신랑을 전쟁터에 보냈던 신부는 여든이 다 된 할머니가 되어 남편의 유품을 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육군유해발굴파견단은 그동안 1천484구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그러나 13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사자 유해를 찾아내기엔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래서 85명 규모의 전문가들로 구성, 국방부 직할부대로 창설한 것이 유해발굴을 본격화 할 ‘육군유해발굴감식단’이다. 유해발굴에서 신원식별에 이어 유가족 확인까지 도맡은 감식단은 유전자감식장비 등 각종 기자재를 도입했다. 고고학, 체질인류학 등을 전공한 민간인 9명도 특별 채용했다. 앞으로 13만명의 유해를 발굴하는 덴 수 십년이 걸리겠지만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한 유해를 무한정으로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이에 대해 “과거도 과거지만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어느 군 관계자의 말은 아주 적절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법통을 부정하는 사람들 같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사자 유해발굴에 국민적 관심이 요구된다. 세상엔 자칭 애국자가 많다. 하지만 침략자와 맞서 목숨 걸고 싸운 참전용사, 목숨 걸고 싸우다가 끝내 산화한 전사자보다 더한 애국자는 없다. 목숨을 내걸지 않은 말로만 하는 애국은 누구나 할 수가 있다. 젊은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었으므로 오늘날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으므로 하여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런데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 중 이들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위인이 있어 분노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 가를 생각해 본다. /임양은 주필

붓글씨 교육을

현대인들은 글씨를 잘 안쓴다. 컴퓨터의 일상화가 글씨 쓰는 것을 잠식했다. 그만큼 편리해졌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옛 사람들은 글씨 잘 쓰는 것을 사람을 보는데 세번 째 기준으로 삼았다. 달필, 명필은 인격을 평가하는 데 그만큼 높은 가치를 발휘했다. 지금은 공무원들도 컴퓨터로 다 처리하다 보니 달필이고 졸필이고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될려면 글씨를 잘 써야 했다. 학교 교육에서도 이젠 글씨를 잘쓰고 못쓰고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학생들도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에서부터 글씨 쓰는 건 도외시되다 보니 요즘 학생들의 글씨는 더욱 엉망이다. 그러나 글씨는 표현의 2차적 수법이다. 말에 이어 두번째 표현 수법이 글씨인 것이다. 노트북을 포함한 컴퓨터는 3차 수법일 것이다. 기왕이면 글씨는 잘 쓰는 게 좋은데도 철저히 무시되는 게 과연 좋은건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주 오래 전이다. 초등학교 교육에 습자(習字) 시간이 있었다. 붓글씨 쓰는 것을 습자라고 한다. 잘 쓴 붓글씨는 교실 뒷벽 게시판에 본보기로 붙여놔 학생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붓글씨는 한문문화권의 산물이다. 한·중·일 동양 삼국에서만 쓰는 것이 붓글씨다. 이들 동양삼국은 식탁에서 젖가락을 쓰는 공통된 문화를 갖고 있다. 즉 젖가락문화와 붓글씨문화는 손재주를 이용하는 점에서 같다할 수가 있다. 요즘 노년층이나 주부들 가운데서 여가 취미로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예는 서도(書道)를 일컬어 예술이라는 뜻의 표현이며 서도는 붓글씨를 말한다. 서예는 곧 붓글씨인 것이다. 붓글씨를 배우는 성인들의 말은 한결같다. 붓글씨를 쓰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서의 순화를 가져오는 것이 붓글씨 쓰기인 것이다. 흰 종이 위에 검은 먹물로 한 획, 한자씩 정성들여 쓰는 마음 가짐은 바로 도(道)를 닦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습자든 서예든 붓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면 좋은 것 같다. 정규 교과가 어려우면 특활 과제로도 괜찮을 것이다. 붓글씨로 심성을 다듬는 서도는 학생들의 더 할 수 없는 인성교육이라 할 것이다. 편리한 건 좋지만 또 편리한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임양은 주필

돼지띠들의 삶

1947년에 태어난 정해년생 돼지띠들은 올해 환갑을 맞는다. 이들은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던 때에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고 초등학교에서 우리 맛이 담긴 교과서를 처음 써본 사람들이다. 이 해 2월에 주민등록증의 전신이 되는 공민증(公民證)제도가 시행돼 1947년생은 태어날 때부터 문서에 대한민국 사람으로 기록된 첫 세대다. 그러나 4살이 되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이는 같아도 초등학교 입학이 거의 달랐다. 대체로 1955년에 입학해야 하지만 10살이나 12살에 학교를 들어간 이들이 적지 않다. 1947년생 가운데 대학 65학번이 아닌 경우가 많은 이유다. 유년기·소년기·청년기에 6·25 전쟁, 보릿고개 등으로 죽거나 굶주리며 성장했다.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주역으로 저항의식이 몸에 뱄다. 1959년은 태풍 ‘사라’가 우리나라에 몰아쳐 900여명이 죽은 해다. 국가보안법이 이 해 2월 만들어졌다. 1978년 대학을 다닌 이들은 유신 정권과 신군부 정권 사이에 끼어 2학년 2학기 내내 대학은 휴교했고 그도 모자라 다음해 1학기까지도 교문은 늘 닫혀 있었다. 1980년에 들어서 1959년생은 정치가 휩쓰는 대학에서 일부 내지 상당부분 역할을 담당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한편 이런 상황에 무심하게 공부했던 사람들도 있어서 1959년생들끼리는 각자의 활동과 영역에 따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보인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이 많이 늘어나는 시기에 대학원을 다닌 1959년생 돼지띠들은 학문분야 곳곳에 넓게 포진돼 있는 편이다. 1971년은 3선개헌 이후 처음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으며 고질적인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시작된 해다. 이 해 태어난 돼지띠는 초등학교 무렵 10·26 사건, 1980년 광주 민주항쟁, 아웅산 사건에 놀란 세대다. ‘똘이장군’을 보면서 “무찌르자 공산당!”을 외쳤던 이들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학교를 다녀 고교 때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은 세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화가 갖춰 가던 때에 고등학교를 다녔고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화의 문이 열린 후 대학에 들어온 90학번이다. 정변(政變)이 소용돌이 칠 2007년 출생 돼지띠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바라건대 길운과 행복의 상징이었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管子

중국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인 관자(管子·기원전 725~645년경)는 관중(管仲)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깊은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역경을 극복하고 환공(桓公)을 도와 제(齊)나라를 중원의 패자로 올려놓은 명재상, 제갈량(諸葛亮)이 자신을 관중에 비교했던 인물이었다. 관중이 실용주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그의 정치사상이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관중과 그의 제자, 그를 흠모했던 사람들이 쓴 글을 집대성한 ‘관자’의 맨 첫머리에 나오는 ‘목민(牧民)’이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관중의 ‘목민(정치의 근본원리)’의 핵심은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이다. 경제와 실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우리 속담과도 흡사하다. 경제와 실용을 실천할 인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분배할 인물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은 2천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을 찌른다. 이러한 경제와 실용이 관중 정치사상의 요체다. 관중이 경제와 실용을 중시했다고 해서 인간 삶의 근원이 되는 도(道)와 덕(德)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관자’의 ‘심술(心術· 마음의 기능과 수양방법)’편을 보면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윗사람이 그 도를 떠나면 아랫사람이 직분을 잃는다”, “능력 있는 사람의 능력을 빼앗지 말며 아랫사람의 실질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라. 흔들리는 사람은 안정되지 않고 조급한 사람은 고요하지 않으니 … 고요함은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요하면 저절로 얻는다”고 하였다. 철학적·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실용적인 대목이다. 통치자의 도덕과 철학에 대해 은근하지만 예리한 메시지를 준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중시했던 관중의 정치 경험이 담긴 ‘관자’를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이 정독했으면 좋겠다. 이미 읽었다면 재독하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위기의 대통령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들도 정치 갈등과 여론의 반발 속에서 늘 압박감에 시달렸다. 워싱턴과 링컨, 루즈벨트와 케네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22대 대통령 클리블랜드는 남북 전쟁 이후 최초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늘 노동자 편에 섰다. 1886년 연두교서에서 그는 노동착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노동조합을 합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1894년 철로를 차단한 철도노동자 파업이 파국으로 치닫자 그는 이대로 가다간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선택은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연방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한 것은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클리블랜드는 이 사건으로 노동자의 지지를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민은 그의 과감한 행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닉슨 대통령은 열렬한 반공주의자였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명칭을 공식 인정하고 중국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중국을 국제사회 밖에 영원히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 “차라리 쿠바의 카스트로를 방문하라”는 야당의 빈정거림을 극복하고 닉슨은 중국과의 관계에 물꼬를 텄다.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닉슨의 중국 방문은 탁월한 정치외교술을 보여준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개헌 제의를 하면서 정치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대통령 중임제(重任制) 대신 연임제(連任制)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연임’은 ‘잇따라 직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연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치러지는 다음 대선에 출마해서 당선될 경우 연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는 위기에 처했던 미국 대통령들의 사례를 본 뜬 것 같지만 너무 황당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용훈 변호사의 전별금 시비

전별금(餞別金)은 동양적 집단문화의 정표였다. 개인문화가 발달된 서구사회에선 전별금이란 게 없다. 전별은 잔치를 베풀어 작별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전별금은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면서 얹혀주는 돈이 되겠지만 꼭 잔치를 베풀고 나서 주는 것만은 아니다. 잔치는 없이 전별금만 주기도 한다. ‘석별’(惜別)이나 ‘미의’(微意)라고 쓴 봉투에 돈을 넣는다. 원래는 민간사회에서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으로 있었던 전별금이 크게 성행한 것은 공무원사회다. 전근 등으로 근무처가 옮겨지게 되면 으레 전별금이 건네지곤 했다. 이 역시 서로간의 정리상으로 주고 받았던 것이 공식부패로 변질된 것은 뇌물화하면서였다. 언제 또 어디서 만날지 모를 직장 상사에 대한 차후 기약의 보험으로 둔갑된 것이다. 공무원만이 아니고 이해관계가 얽힌 민간업체도 전별금보험이 동원되곤 했다. 이러다보니 한 땐 웬만한 기관장이나 고위 공무원이 전근하게 되면 전별금으로 크게 한몫 챙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공무원문화의 변화로 자제된 전별금이 사법부에서 금기가 된 것은 ‘법관윤리강령’에 의해서다. 특히 변호사가 판사에게 건네는 전별금은 직무 관련상 있을 수 없는 일로 인식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처신이 이번에는 세금 탈루에 이어 변호사 시절의 전별금 공여 시비로 또 말썽이 한창이다. 법조비리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조 아무개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100만원의 전별금을 주었다는 것이다. 더욱 듣기에 고약한 것은 대법원은 이같은 일을 조 부장판사의 검찰수사에서 드러날 것을 우려해 무마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무마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시사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이용훈 대법원장이나 대법원측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는 있다. 그러나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이듬해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서도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뒷돈으로 준 일이 있어 영 개운찮다. 공무원사회에서 이젠 아주 사라진 것으로 아는 전별금 관행의 공식부패 망령이 사법부에서 어른거려 아직도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실이 무척 유감스럽다. /임양은 주필

‘007’ 학술대회

영국 해군 중령인 제임스 본드는 007 살인면허를 지닌 첩보원이다. 고도의 무술, 기묘한 첨단장비, 늘씬한 본드걸, 박진감 넘친 스토리, 인기 가수들의 주제가 등으로 연작된 첩보영화로 최고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2년 ‘007 위기일발’에서 1999년 ‘007 언리미티드’까지 19편이 제작됐다. 감독 테렌스 영, 루이스 길버트, 존 글렌 등 그리고 본드역의 숀 코넬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난 등의 출세작이다. 살인면허 번호 007은 로마의 권력자 시저가 비밀 정보부대를 지칭하는 숫자였다고 작가 이언 플레밍은 비화를 밝힌적이 있다. 유럽의 저명한 대학 교수들이 제임스 본드를 주제로 삼는 학술대회가 곧 열린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주관으로 파리에서 이달 중 열릴 학술대회에는 베르사유 소재 대학 등 쟁쟁한 지식인들이 참석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황당한 공상 첩보영화다. 그런데 이 속에서 펼쳐지는 의식구조의 배경, 사건의 쟁점, 심지어 등장되는 요리에 이르기까지 분석하는 갖가지 토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첩보활동은 곧 스파이 활동이다. 스파이가 이처럼 지성인들의 연구과제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연작소설의 작가 이언 플레밍을 19세기 프랑스 대작가 발자크에 비유하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전쟁포로는 전쟁범죄자가 아니면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스파이는 다르다.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면 포로 대우를 받는 게 아니다. 범죄자로 취급된다. 제임스 본드 학술대회는 스파이문화의 조명이다. 스파이는 비록 범죄로 취급되지만 스파이의 중요성은 높게 평가된다. 세계의 냉전 체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세계 각국의 스파이 활동이 쇠퇴한 것은 아니다. 전략전술, 무기개발, 실전배치 등 군사분야만이 아니다. 정계 요인의 이면동향, 내재적 향배 등 정치분야, 이밖에 경제 및 산업스파이 등 더욱 다양하다. 첩보는 탐지도 중요하지만 기밀 누설을 막는 방첩 역시 중요하다. 탐지 능력이 떨어지면서 방첩마저 허술해서는 재앙을 면키 어렵다. 첩보는 곧 국력이다. 우리의 첩보 능력은 과연 어느 수준인지 궁금하다. / 임양은 주필

이용훈 대법원장

이용훈 대법원장의 세금탈루 관련 문제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석연치 않다. 첫째, 진로의 소송 수임에서 받은 2억5천만원의 성공보수를 포함한 수임료를 세무당국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5천만원이 누락된 것이 과연 단순한 실수냐는 것이다. 더우기 소송의 주요 쟁점에 대해 몰랐다고 하는 것은 진실에 의문을 남기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당초의 의문 제기에도 세금 탈루를 부인하다가 언론에 의해 확인된 지난 3일 비소소 관할 세무서에 2천771만원의 종합소득세 등을 납부한 경위가 과연 합리적이냐는 것이다. 셋째, 2000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변호사를 하면서 397건의 사건을 맡아 올린 60억원이 넘는 소득 중 약 70%가 상고심인 것은 전관예우에 기인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넷째, 변호사 사무실 통장에서 매월 500만원을 인출, 450만원은 부인에게 주고 50만원은 교회에 십일조로 냈다는데, 그럼 변호사 사무실 통장에 든 돈은 이용훈 변호사 돈이 아니고 남의 돈이냐는 것으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계산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예컨대 외환은행 관련의 소송에서 의견서 한 장 쓰고 5천만원을 받았을 정도로 수입이 좋았으면서 수입의 10분의 1이 겨우 50만원이었느냐는 것이다. 여섯째, (남의 과오는 고의고)자신의 과오는 실수냐는 것이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수입명세서를 신고할 때 두 세 번씩 검증했을 것인데, 설령 실수였을지라도 자신의 실수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실수에 의한 탈세였으니까, 아무 것도 아니라는 투의 변명은 평소 남의 눈에 든 가시는 핏발을 세웠던 것에 비해 판단의 눈저울이 너무 기우는 처신이라는 것이다. 일곱째, 변명에만 급급하고 사과 한 마디 없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장에 취임하면서 변호사 시절의 수임계약서를 모두 파기했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모든 수임 내역을 공개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은 객관적으로 신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임양은 주필

청빈

직장에서 은퇴 후 중산층 생활을 하려면 7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세상이다. 소박하게 잡아도 한달에 200만원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현대건설 상무를 지낸 김영진씨가 충주 근교 산자락에 살면서 쓰는 월 생활비는 51만원이라고 한다. 쌀값을 포함한 식비가 5만원, 찬거리는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와 이웃들이 주는 것으로 족하다. 제일 많은 지출이 경조사비 20여만원이고, 잡비는 7만원 정도인데 월 한 두차례 보는 영화비를 빼곤 대부분 책값이란다. 대기업의 간부를 지낸 인사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여 화제가 됐었다. 지난해 10월 22일 별세한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유품들이 ‘월간조선’에 공개됐다. 대통령 특보 시절인 1973년부터 33년간 살았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자택이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면 믿어지지 않는다. 최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 시절 1979년 제 2차 오일 파동 때 탄광 시찰을 가서 만난 강원도 장성탄광의 광부들을 보고는 “나만이라도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후 집 내부는 난로와 석유곤로를 써야 할 정도로 냉골이었지만 최 전 대통령은 끝까지 연탄보일러를 고집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의 안방에 있는 에어컨은 너무 구식이고 소리가 커서 평소에 손님이 오기 전에 켜 놓았다가 오면 아예 꺼버렸다. 선풍기는 장녀 종혜씨가 태어난 1953년에 만들어진 ‘나쇼날’ 제품이다. 닳고 닳아 있는 ‘태화고무’ 상표의 흰 고무신과 슬리퍼도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썼던 물품이다. 서거하기 전 까지 매일 뉴스를 듣던 라디오 역시 1970년대 초에 생산된 ‘금성 RF-745’ 제품이었다. 플라스틱 이쑤시개는 최 전 대통령이 식후에 정성스럽게 닦아서 재활용했다고 한다. 2004년 7월 타계한 최 전 대통령 부인 홍기(洪基) 여사도 자택 마당에 있던 샘물에 펌프를 설치하고 직접 손빨래를 했다. 장관 시절이나 국무총리 시절이나 가정부를 두지 않았다. ‘일기장’이라고 표지에 적힌 수첩을 마련해놓고 콩나물과 반찬거리를 사고는 액수를 적어 가계부처럼 사용했다. 기업인 김영진씨의 은퇴 후 전원 생활과 최규하 전 대통령 부부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가난하게 사는 법’을 일깨워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사형 집행

반사회적,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은 법질서 확립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범 J씨가 지난달 항소심에서 사형을 구형 받으면서 “부자를 더 해치지 못한 게 안타깝다”며 검사 자리로 돌진한 건 전반적으로 법질서 해이 및 공권력에 대한 조롱심리가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2003년과 2004년 부녀자들과 노인, 장애인 등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씨 역시 재판 중 사형을 집행해 달라며 난동을 부리고 구치소에서 자살까지 기도했었다. 그런데 법무부가 유씨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이상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형집행 명령권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으며 법무부 장관의 사형명령이 떨어지면 5일 이내에 형집행이 이뤄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검거된 살인사건 피의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유씨는 2004년 12월 사형을 선고 받았고, 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해 사형이 확정됐다. 유씨를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들은 63명이며 모두 미결수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와 대구·부산구치소, 대전광주교도소 등 5곳에 분산 수용돼 있다. 건국 이래 사형 당한 사람은 998명으로 김대중 정부와 현 정부에선 사형 집행이 없었다. 1997년 12월 흉악범 23명에 대한 대규모 사형 집행이 단행됐을 당시 인권단체들은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틈타 이뤄진 무모한 인명 살상행위”라며 크게 반발했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등 사형반대 시민단체들은 “미국에서만 122명의 사형수가 무죄로 입증돼 풀려났다”며 “세계 129개국이 법률상 또는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상황”이라고 사형제도 폐지를 추구하고 있지만 만인이 목격한 살인범과는 그 죄질이 다르다. 사형수 출신인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75명이 발의한 사형제 폐지 특별법 상정 목적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이 전격 단행된 것을 두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키 위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면 반인류 범죄자를 살려둬서 어쩌자는 말인가. 듣기에 좋고 인간적이고 너그럽게 보이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인명을 해친 자가 받아야 할 벌은 그와 상응돼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치인의 내조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에 처했을 때 부인 힐러리 여사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조용히 참고 지낸 건 유명한 얘기다. 남편이 퇴임한 뒤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내로서 나는 클린턴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털어놨지만 “그는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였고, 나의 내조가 필요했다”고 클린턴을 치켜 세웠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힐러리가 상원의원으로 차기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클린턴이 가급적 힐러리 주변에 나타나지 않는 게 외조 활동이란다. 실제로 이들 부부가 함께 지내는 날이 한달에 절반도 안 되는 평균 14일 정도라고 하니 어지간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남성 정치인들도 아내의 내조는 필수적이다. 유권자들과 늘 가까이 접촉해야 하며,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의 불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면 남편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왕년의 정권 실세였던 남편의 부도덕적인 생활을 아내가 자전적 소설로 써 개(?)망신을 준 적이 있었지만 정치인을 남편으로 둔 여성은 싫어도 내색을 못하고 꾹 참고 지낼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요즘 여야 대선주자 부인들의 ‘내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 부인은 고 전 총리의 옷을 고르고 건강을 챙기는 데 신경을 쓴다. 민심을 전하는 것도 부인의 몫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부인은 내조자라기 보다 ‘동지’다. 한반도재단 이웃사랑나누기 자원봉사단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부인은 약대를 나와 ‘남편의 건강 챙기기’가 예전부터 남달랐다. ‘100일 민심대장정’ 기간 중엔 밤샘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열흘에 한번씩 찾아와 빨래를 하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집에서 야당’이란 말을 듣는다. 비판적 여론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언론에 나온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부인은 가정 분위기를 밝고 화목하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술자리가 잦은 요즘엔 쌀뜨물을 받아 끓인 물을 준비해 남편의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대선주자 부인들의 내조는 당연한 일이고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일 클린턴처럼 백악관안에서 르윈스키와 같은 ‘사고’를 치면 어떻게 대응할 지 문득 궁금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포드 미국 대통령

“나는 국민 여러분의 손으로 선출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제럴드 포드 미국 38대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람이다. 1973년 10월 애그뉴 부통령이 뇌물 스캔들로 사임하자 닉슨 대통령은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 포드는 의회의 승인을 거쳐 취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통령이 된지 10개월만인 1974년 8월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게 되어 대통령직을 이어받게 됐다.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대통령 자리를 두고 이처럼 쉽게 대통령이 된 행운이야말로 진기록 중에도 진기록이라 할 것이다. 포드는 대통령 취임후 닉슨을 사면한 것이 화근이 되어 1976년 대선에서 카터에게 패배했으나 나중에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닉슨 사면은 용기있는 결단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드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불과 895일이다. 그러나 나라 안팎으로 괄목할 업적을 남겼다. 1975년 8월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34개국 지도자들과 맺은 헬싱키협정은 동구권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바람을 확산시켰다. 이에 앞서 같은해 4월 사이공이 월맹군에게 함락된 베트남전쟁 패배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을 미국민의 자존심에 호소해 상처를 치유하는데 힘썼다. 포드는 93세를 일기로 타계, 구랍 30일 미국의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포드는 ‘사후 보도, 사전 회견’이란 또 하나의 희한한 일화를 남겼다. 자신이 죽은 뒤에 보도키로 한 워싱턴 포스터와의 생전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은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추모는 애절했다. “혼란의 시기에 나라를 이끌었던 포드 전 대통령은 정직성과 상식, 친절함으로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포드의 대통령 취임사는 그때 이렇게 이어졌다. “(국민의 직선이 아닌) 그래서 여러분의 기도로 인준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그 이상으로 훌륭한 대통령의 면모를 보인 사람이다./ 임양은 주필

정해년

조선시대에 한 해의 농사 등을 신에게 고하는 제사로 납향 또는 납평제가 있었다. (동국세시기) 동지 후 세 번째 염소날(未日)로 정해 이에 제물로 올리는 게 멧돼지다. 경기도 산간지방 수령들은 이 멧돼지를 잡는 것이 일이었다. 정조는 백성들이 멧돼지 몰이에 동원되는 폐단이 심한 것을 알고는 그같은 관습을 금지시켰다. 서울의 포수들로 하여금 사냥해오도록 했다. 돼지는 자고로 땅을 맡고 있는 신령, 즉 지신(地神)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식성이 땅에서 나는 건 뭣이든 다 잘 먹는 잡식성인 데서 유래한다. 예부터 잘 먹는 것은 곧 복(福)으로 쳤다. 돼지꿈이 재운(財運)으로 풀이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다. 조정에서 올리는 제사 뿐만이 아니고 동제(洞祭)나 고사를 지내는데도 돼지를 제물로 쓴다. 다만 집돼지 머리를 올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멧돼지 머리는 구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돼지는 꽤 오래 전부터 가축화된 동물이다. 부여에서는 돼지를 일컫는 ‘저가’(猪加)란 벼슬이름이 있었다. 적어도 2천년 전부터 돼지를 집에서 사육한 것으로 전한다. 돼지는 세계적으로 1천여 품종이 있다. 전래의 토종 돼지는 검정 색깔로 주둥이가 길고 몸집이 작으면서도 체질이 강건하여 질병에 잘 안 걸렸다. 산업화시대에 영국이 원산지인 버크셔종, 요크셔종 같은 몸집 큰 개량종이 수입되면서 재래종은 자취를 감췄다.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든 맛이 있다. 특히 삼겹살은 대중적 육식이 됐다. 약효로는 허파는 해소병에 좋고 안질에는 돼지간 그리고 돼지발을 고아 먹으면 임신부의 젖이 잘 나온다. 이밖에도 좋은 효능이 많지만 함께 먹어선 안 되는 음식궁합의 금기식품도 있다. 동의보감은 매실 도라지 연뿌리 등을 같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고 했다. 도꼬마리·화채·붕어·계란·노란콩·자라고기·생강 같은 것도 함께 안 먹는 것이 좋다. 올해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스물넷 째인 정해(丁亥)년 돼지띠다. 재운을 부르는 돼지의 돼지해에 아무쪼록 경제가 잘 돌아 사람살기가 나아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 임양은 주필

군 복무기간

노무현 대통령이 평통자문위원회에서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니냐”고 말하기가 무섭게 정부와 청와대가 ‘군 현역병의 복무기간 단축방안’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이 “(청와대의) 군 복무기간 단축 발언은 대선을 겨냥한 핵폭탄 투하이고,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병역 자원의 수급과 안보 환경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장기적인 국가과제로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안위상 군 복무기간 단축은 시기상조인데도 300만 ~ 400만명에 이르는 군 입대 연령층과 그 부모들의 표심이 무서워 소위 대선주자 중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고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난색을 나타냈다. 당연한 반응이다.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병역법 제19조에 의해 6개월 범위 내에서 조정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국방개혁 2020’에 따라 현재 69만명인 군이 2020년 50만명으로 대폭 감축되는 데다 복무기간까지 단축할 경우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건 능히 예견된다. 더구나 2003년부터 군별로 복무기간이 2개월씩 줄어 단계적으로 이를 적용해 지난해 하반기에야 단축 기간 적용이 완료됐는데 또 다시 단축하면 1980년대 이후 저출산으로 인해 인력 수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복무기간 단축은 또 업무숙련도를 떨어뜨려 결국 전투력 저하로 이어진다. 병무청의 병역자원 수급동향을 보면 내년엔 20세 남자 32만1천명 가운데 현역 가용자원은 28만4천명인데 비해 현역 및 대체복무 소요 인력은 30만3천명으로 1만9천명이 부족하다. 2008년에도 1만6천명이 모자란다. 군별로 다른 복무기간을 24개월인 육군·해병대 기준으로 일치시킬 경우 해군은 2개월, 공군은 3개월씩 단축되는 셈이다. 이 방안은 검토해볼 만 하지만 좀 더 획기적으로 단축하자는 의견은 정말 가관이다. 육군과 해병대 기준으로 6개월을 줄여 군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하잔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1년으로 단축할 수도 있단다. 군 복무 기간 단축안은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선심성 단골메뉴이지만 해도 너무 한다. 군을 아주 없애자는 말이 안 나오는 게 신기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