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리

‘금당리(錦堂里)’는 화성시 마도면의 한 마을이다. 1949년 8월 14일까진 수원군 마도면 금당리였다. 금당리에선 조선 초기 무렵 사금(砂金)이 대량으로 채굴됐다. 연못을 만들어 금을 모았다 하여 금당곡(金塘谷)이라고 불렀었다. 조선 고종 재위 때인 1880년쯤 인근 남양(南陽) 고을 원이 금당곡을 지날 때, 마을 풍경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하여 지금의 부락명 금당곡(錦堂谷)으로 바뀌었다. 8·15 광복 직전까지 사금을 채취하는 것을 봤다고 원주민들은 얘기한다. 금당리에 사람들이 거주한 건 조선 초기 1천400여년 쯤으로 추측된다. 조선이 건국돼 도읍지 한양(漢陽)이 조성되던 초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상경하던 중 농업·어업을 하기 좋은 곳이어서 정착한 것으로 상고된다. 또는 혼란한 시대를 피하여 바다가 가깝고 산수가 수려한 이 곳을 은둔지로 선택한 것으로도 유추된다. 풍수지리상 금당리 동쪽은 망월제(望月薺)로 산 끝이 마무리돼 바다의 조수가 치 받아 안으로 휘어 도는 형국이다. 남쪽은 살포제(殺捕薺)가 감아 돌아 빗기섬이 가로 놓여 바다의 밀물은 보이지만 썰물이 보이지 않아 재물이 고이는 형세다. 서쪽은 둥굴봉이 노적형이어서 의식(衣食)이 넉넉하다. 서산(西山)은 꿩의 혈로 돼 있어 알을 부화하는 모형이어서 자손이 번성한다. 북쪽 돌파제(乭破薺)는 좌우로 포청수 역할을 한다. 명당수(名堂水)가 흐르고 해항(海港)선로가 양호해 가히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길지(吉地)다. 화성시 마도면 금당2리 주민들이 4년 전 이맘 때 펴낸 ‘錦堂二里 由來史(金塘谷 유래사)’는 40쪽의 소책자이지만 보면 볼수록 순박한 정성, 훈훈한 인심, 마을 풍경처럼 아름다운 애향심이 지면에 배어 있다. 더욱이 책 뒷부분엔 5편의 詩가 실려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긴다. “천리 타향에 머물더라도 / 힘겨울 때 늘 힘이 되는 / 그리운 이름, / 세상이 변하여 잊고 살아도 / 고향을 향하는 마음 / 죽어서도 잊을 수 없다네” ‘고향을 생각하는 노래’란 제목이 붙은 이 詩는 금당리 주민 성충용(70세) 선생의 작품이다. 120여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금당 1리, 2리 주민들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을 듯 싶어 소개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연평도

바다는 자원의 보고다. 바닷속 지하자원도 그렇고 수중자원도 그렇다. 지구 표면의 4분의 3이 바다다. 4분의 1에 불과한 지표면의 지하자원에서 바닷속 지하자원의 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륙붕 개발, 심해저 탐사 등이 그러한 작업이다. 국내에서도 독도가 소중한 것은 동해의 먼 주요 거점인 영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근 해저 지하에 묻힌 풍부한 지하자원에도 이유가 있다. 바다의 어류는 수중자원이다. 특히 서해는 다양한 어류가 풍부한 수중자원의 보고였다. 그런데 금석지감을 점점 더 해간다. 흑산도는 홍어의 명산지다. 노령산맥의 꼬리가 바다에 침강하면서 미처 가라앉지 않은 섬이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이다. ‘만만한 것이 홍어 뭐냐’는 말이 나왔을 만큼 흔했던 홍어가 잘 잡히지 않은 건 이미 오래다. 천했던 홍어가 귀물이 됐다. 이번 달부터 6월말까지의 금어기에 접어들어 홍어 출하는 더 어렵게 됐다. 파시(波市)는 해상에서 배로 열리는 어시장이다. 연평도 조기, 거문도 고등어, 추자도의 멸치 파시 등은 유명했다. 특히 연평도는 국내 3大어장의 하나로 조기잡이의 중심지였다. 어선마다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무리로 선단을 이룬 파시는 가히 장관이었다.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 떼가 사라지면서 조기 파시도 볼 수가 없게 됐다. 연평도는 꽃게 잡이로 새로운 명맥을 이었다. 꽃게는 연평도의 새 명산물이었던 것이 이마저 씨가 말라간다는 소식이다. 봄철 어로는 꽃게 철이다. 꽃게철인데도 좀처럼 꽃게 구경이 어렵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연평도 꽃게 잡이는 2000년에 3천63t이던 것이 점점 줄어 지난 2006년에는 141t에 불과해 무려 95%나 감소됐다는 것이다. 거의 멸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꽃게잡이 어선 59척 가운데 대부분이 조업을 포기, 21척만이 조업에 나섰지만 어획량이 신통치 않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수중자원의 보고로 각광받던 연평도, 3大어장의 하나로 손꼽히던 연평도가 바다의 황무지로 척박해진 것은 무척 불행한 현실이다. 넋놓고 관망만 할 일이 아니다. 생태계 변화의 원인 규명과 함께 정부 차원의 대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임양은 주필

황사

황사는 옛날에도 있긴 있었다. 삼국사기에서는 황사를 흑비라고 했다. ‘흑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흑비이긴 했어도 그땐 순수한 자연이었다. 계절적으로 이맘 때면 부는 편서풍을 타고 고비사막에서 7천500리 하늘길로 날아드는 황사 그 자체도 자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엊그제 뿌려진 황사는 지독한 흑비다. 중국이 고도성장으로 치닫으면서 배출된 갖가지 오염으로 찌들대로 찌든 중금속 황사가 온통 산하를 덥쳤다. 창문을 열어 놓기가 겁날 지경의 흑비를 맞이했다. 봄 비가 한바탕 쏟아져 씻겨 내려가면 좋으련만 흑비가 아닌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고비란 몽골말로 황무지라는 뜻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6배인 1백30만㎢에 이른다. 중국과의 국경선을 이루기도 한다. 고비사막에 녹색숲 조성사업이 시작됐다. 몽골 정부가 1억5천만 달러를 들여 30년을 예정하는 장기사업으로 착수했다. 포풀러 올리브 산사시나무 숲을 3천여㎞나 잇는 방어벽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몽골 정부가 이런 대역사를 벌이는 덴 이유가 있다. 몽골의 사막화는 심각하다.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지난 몇년동안만 해도 700개 가까운 강이 말랐다. 이만이 아니고 남한 땅만한 14만㎢의 국토가 사막화의 위기에 처했다. 몽골 정부가 이같은 공사를 벌이는 것은 우리에게 위해를 주는 황사를 줄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데 중국은 고비사막에 팔짱만 낀채 아무 대책없이 무대책으로 일관한다. 정작 중금속 흑비를 보내는 것은 중국인데도 ‘나 몰라라…’하고 있다. 우리쪽에서 나무숲 조성같은 것을 제의하면서 함께 하자고 해도 시큰둥한다. 당장 배출시키는 오염 물질이나 신경쓰면 좋겠는데 이도 별로인 것 같다. 외신은 황사의 발원지에 지난 겨울 눈이 많이 내려 올핸 덜할 것이라고 전하는가 하면, 반대로 그렇지 않다는 소식도 있다. 눈이 안내려 황사가 더할 것이라는 것이다. 고비사막이 워낙 넓다보니 눈이 많이 내린 곳도 있고 안내린 곳도 있는 모양이다. 결국 황사는 올해도 봄이 가기까진 여전히 면치못할 연례 불청객인 것이다. 황사가 와도 엊그제 같은 지독한 황사는 정말 자증스럽다. 집집마다 개인위생 관리에 각자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황사경보는 몇차례 또 있을 것이라고 하니. / 임양은 주필

수원상의 ‘어린이 경제교육’

사람이 살아가는 덴 끊임없는 소비가 필요하다. 소비엔 자유재와 경제재가 있다. 자유재는 소비자가 대가없이 이용하는 것으로 태양 공기 바닷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경제재는 대가를 치러야 쓸 수 있는 것으로 쌀 집 교통 등이 예로 꼽힌다. 무한한 경제재를 필요에 따라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이 돈이다. 돈은 뭣이든 쓸 수 있는 대가의 지불수단인 것이다. 돈을 벌고 쓰는 이러한 과정이 경제이고 경제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이 생활을 위해 물자나 재화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모든 과정이 경제이며, 이를 행하는 것을 경제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은 곧 경제생활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경제를 떠나 살 수가 없다. 경제를 떠나 살 수 없으면서도 경제를 굳이 의식하지않고 살기도 하는데, 이는 이론과학의 경제가 아닌 경험과학에 의한 경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과학의 경제와 경험과학의 경제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그래서 경제를 좀더 알기위해 신문의 경제면을 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상당한 식자층의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한다. 경제에는 천차만별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이러므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은 있을 수가 없다. 대야 물위에 올린 수건을 여기 누르면 저기가 부풀고, 저길 누르면 여기가 부푸는 것과 이치가 같다. 상황과 시기에 따라 적기적재의 정책이 탄력성 있게 운용돼야 한다. 그러나 경제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원칙이 있다. 경제의 근본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즉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경세제민’으로 ‘경제’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신문의 경제기사가 어려운 이유는 복잡다단한 경제정책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경제용어 때문이기도 하다. 복잡한 경제구조의 많은 낱말을 간추려 표현하는 전문 용어가 난해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용어 하나 하나를 풀어 이해해가면 또 생각보다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경제기사다. 수원상공회의소(회장 우봉제)가 초등학생들에게 눈 높이에 맞춘 알기쉬운 경제교육을 했다는 보도는 이 점에서 흥미롭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경제 주역들이다. 이론과학의 생활경제에 어려서부터 접근할 기회를 갖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적절하다. 수원상의의 ‘어린이경제골든벨교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蕙園 춘의풍속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과 더불어 ‘삼원(三園)’으로 지칭되는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원화가 중 한 명이다. 혜원이 이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녀간의 애정과 낭만을 소재로 한 이른바 ‘춘의풍속화(春意風俗畵)’에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주로 기녀·무속(巫俗)·술집의 색정적인 장면 등을 그려 인간주의적 욕망을 표현했는데 벼슬은 첨정(僉正·종4품)에 이르렀다. 혜원의 춘의도는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기방의 여인들이 춘화첩을 감상하고 있는 장면, 서로 애무하느라 정신이 없는 남녀를 방문 밖에서 엿보는 어린 하녀의 모습, 여인의 옷 속을 더듬고 있는 사내의 몸짓과 표정 등을 그렸다. 혜원의 춘의도 가운데 ‘이부탐춘’이 있다.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란 뜻이겠다. 유교이념에 철저했던 조선사회는 배우자가 죽게 되면 여인은 평생토록 수절해야 했다. 그래서 청상과부를 둔 사대부 가문에선 집안의 가장 내밀한 곳에 별당을 마련하여 거처로 삼게 했다. 그러나 겹겹의 높은 담장으로 어찌 무르익은 봄기운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이부탐춘’을 보면, 담장 밖에서 넘어 들어 온 복사꽃과 살구꽃이 농염함을 다툰다. 춘기를 못이긴 한 쌍의 개는 담장 아래로 난 구멍으로 찾아들어 운우지락(雲雨之樂)에 빠져 있고, 이에 뒤질세라 참새 한 쌍도 부산한 날갯짓으로 서로를 희롱한다. 잠시 봄볕을 쬐러 후원 마당에 나온 청상과부와 시비(侍婢)는 봄날의 정경에 넋을 놓고 눈을 떼지 못한다. 소복을 입은 과부의 품새와 야릇한 표정에서 농익은 춘심이 묻어나고, 옆에 앉은 과년한 댕기머리 처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짐짓 못마땅한체 하지만,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앙증 맞은 손이 그녀의 심경을 말해 준다. 누가 보아도 고개를 돌릴만한 민망한 광경이지만, 혜원은 별당 후원의 은밀함을 역으로 이용하여 여과 없이 화면에 펼쳐 놓았다. 이런 정황이라 수절 과부의 절개는 그녀가 앉아 있는 앙상한 가지의 늙은 소나무만큼이나 애처롭고 위태하게 느껴진다. 담장 밖의 화려한 복사꽃·살구꽃 가지와 대비시켜 굳이 소나무 둥치에 수절 과부를 앉혀 놓은 혜원의 의도를 알 만하다. 바야흐로 꽃피고 새 우는 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명예교수의 ‘명예’

매년 500명 이상의 교수들이 정년퇴임으로 연구실을 비운다. 대학에선 이들을 위해 대부분 명예교수로 위촉한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정년퇴임자는 4천900여명이다. 지난해에도 4월 기준으로 800여명이 정년퇴임했다. 정년퇴임한 이들 대부분은 “쉬고 싶지만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연구소를 차리거나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한다. 대학에선 원로교수 예우차원에서 명예교수 제도 도입을 늘리는 추세다. 강원대의 경우 지난해 8월 학교 규정을 고쳐 5년 임기였던 기존의 명예교수직을 종신으로 바꿨다. 하지만 70세 이상이 되면 순수 명예직이 돼 강의를 맡지 못해 67명의 명예교수 가운데 강의를 담당하는 이들은 10% 정도다. 전남대는 전임교원 중 20년 이상 재직한 이들이 명예교수 대상이 된다. 교수회의를 거쳐 인사위원회를 통과할 경우 명예교수로 위촉되는데 특별수당은 없고 강의를 맡을 경우에만 강의료가 지급된다. 충남대는 15년 이상 근무한 전임교원 가운데 추천을 받아 명예교수를 임명한다. 현재 100여명의 명예교수가 있지만 10% 내외가 한 두개 교양강의를 맡았다. 강의료는 시간 강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간당 3만5천원 정도다. 사립대도 정년퇴임자 대부분을 명예교수로 추대한다. 석좌교수 초빙사례가 늘고 있지만 정년퇴임자 뿐 아니라 외부 인사도 포함해 그 대상이 다양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를 주로 석좌교수로 임명하는 게 공통적인 현상이다. 고려대는 25년 이상 근무한 전임교원 가운데 인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명예교수직을 부여한다. 명예교수와 별개로 고려대는 최근 내부인사 6명, 외부인사 7명을 석좌교수로 임명했다. 연세대도 전임교원으로 25년 이상 근무한 이들을 명예교수로 위촉한다. 자격심사 과정은 없고, 70세까지 강의를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엔 공식 강의를 맡기지 않는다. 명예교수 제도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명예교수 임명에 뚜렷한 기준이 없어 ‘이름 뿐인’ 명예교수가 대부분이다. 대학측도 “명예교수가 워낙 많아 이들에 대한 연구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본인이 사양하는 경우를 빼고 전부 명예교수가 된다”는 분위기다. 명예를 생명으로 여기는 정년 퇴임 교수들의 급여가 시간강사 수준이라니 처량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三樂

‘삼락’은 군자(君子)의 세 가지 樂을 일컫는 말이다. 첫째, 부모가 구존(俱存)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서 교육하는 일이다. ‘군자 삼락’ ‘인생 삼락’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교육’을 동서고금의 명인들은 이렇게 정의했다. “교육은 노년기를 위한 가장 훌륭한 대책이다”(아리스토텔레스), “교육은 번영할 때는 더욱 빛을 더해 주는 장식품이요, 역경에선 몸을 위탁할 수 있는 보호처가 된다”(아리스토텔레스), “조각과 대리석 덩어리(석재)와의 관계는, 바른 교육과 정신과의 관계다”(J 에디슨), “교육은 인격의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H 스펜서), “교육의 참다운 목적은 우리 내부에 뿌려진 불멸의 씨를 고이 간직하고 싹 트게 하며, 나아가서는 우리를 만들어 준 神이 우리에게 준 모든 종류의 능력을 십분 신장시켜주는 것이다”(A. B. 제임슨), “교육의 목표는 지식의 증진과 진리의 씨뿌리기이다”(J. F. 케네디), “교육의 철학적 목적은, 각자가 자기의 고립된 層에서 나와 하나의 인간이 되도록 되어야 한다”(P. 굿먼), “황금이 상자에 가득 차 있다 해도 자손에게 경전(經典)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한 가지 재주를 가르침만 못하다”( 명심보감, 훈자편·訓子篇)고 하였다. 또 교육의 효능을 “교육은 인간을 만든다”(J. 코던), “마치 산 자가 죽은 자보다 우월하듯, 교육 받은 자는 교육받지 않은 자보다 훨씬 우수하다”(아리스토텔레스), “정직과 덕의, 샘과 뿌리는 훌륭한 교육에 있다”(플루타르쿠스), “스스로 현명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T. M. 플라우투스), “가장 난폭한 망아지가 길들이면 명마가 된다”(테미스토클레스), “사자가 여우의 충고를 듣는다면, 사자는 교활해질 것이다”(W 브레이크), “교육은 천부(天賦)의 가치를 높이고, 올바른 수련은 마음을 굳세게 한다”(호라티우스),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창고는 비고,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은 어리석다”(백거이·白居易)고 설파했다. 삼락의 셋째를 잇는 또 다른 삼락이 있다. “배우는 즐거움, 가르치는 즐거움, 봉사하는 즐거움”이다. 퇴직 교원들의 단체인 ‘교육삼락회’의 설립 목표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대중의 말년

예수는 설흔 살때까지 갈릴리지방 나자렛에서 양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했다. 그의 공생애 3년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팔레스티나 각지를 돌며 하나님(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시작됐다. 마침내 로마 군사에 의한 핍박이 극에 달할 것을 안 제자들은 피신할 것을 권하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하며 거절했다. 마침내 체포되어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으로부터 사형이 선고됐다. 예루살렘 교외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감람산에서 승천한 것이 예수의 말년이다. 공자(孔子)가 빛난 것은 그의 생애 말년이다. 춘추시대 여러 나라를 돌면서 제후들에게 덕치의 이상주의를 강론했다. 그러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렇게 천하를 주유한 그는 행색이 말이 아니어서 거지꼴이 되기도 했다. ‘상가집 개같은 몰골’이라는 일화가 있었다. 공자가 진가를 보인 것은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기르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전하는 유가(儒家)의 사서삼경(四書三徑)이 이 무렵에 비롯되어 집대성 됐다. 그의 고향엔 서수라는 강이 있다. 하루는 제자들과 더불어 강물이 흐르는 서수를 바라 보면서 “세월도 강물처럼 덧없이 흐르는구나”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했다. 일흔세살에 세상을 떴으니까 고향에서 제자들을 기른지 셋 해만이다. 나폴레옹은 조국을 빛낸 위대한 프랑스인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더럽힌 추잡한 프랑스인이기도 하다. 1814년 유배된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파리에 입성했으나 그의 백일천하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다시 유배되는 종말을 고했다. 프랑스를 유럽에 떨친 전공(前功)이 제위(帝位)에 향한 집념으로 말년을 망쳤다. 공인(公人)의 말년은 이래서 전 생애의 평가를 좌우한다. 예수, 그리고 공자같은 이는 말년을 위대하게 장식했다. 반면에 나폴레옹은 말년을 추잡하게 마무리 하였다. 이밖에도 또 있다. 예컨대 대원군 이하응은 권력에 대한 집념 끝에 청나라에 끌려가는 말년의 수모를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끊임없는 정치 개입의 말년을 보고 있다. 그의 마무리 생애가 볼썽 사나운 것은 그를 위해서다. 감히 예수나 공자는 물론이고 나폴레옹과도 비할바가 못한 탓인지 모른다. 마치 대원군 이하응이 보인 말년의 노욕을 보는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박태환 선수

스포츠는 흑인 왕국이다. 거의 전 종목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흑인이다. 뭣보다 순발력이 강점이다. 그러나 다만 한 종목에서만 유별나게 흑인 스타가 없다. 수영 종목이다. 수중 경기에서는 흑인이 맥을 추지 못한다. 백인보다 피로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스포츠 생리학의 설명에 의하면 물속에서는 흑인의 염색체가 쉽게 이완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영 종목에서는 백인이 가장 유리하다. 아닌게 아니라 수영 스타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다 백인들이다. 황인종은 백인과 흑인의 중간쯤 되겠지만 세계적인 황인종 수영 스타는 없다. 백인보다 불리한 수중 염색체의 피로도 있지만 우선 체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올림픽 같은 세계 규모 대회의 수영은 이래서 동양인은 육상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취약종목을 면치 못해 왔다. 중국이 수영에서 다이빙을 집중으로 육성한 것은 경영의 핸디캡을 만회키 위한 전략이다. 그런데 한국 수영의 기린아 박태환 선수(18·경기고)가 기적같은 이변을 낳았다. 지난 25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서 금메달을 거머쥔 그의 우승은 단연 외신들을 흥분시켰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이를테면 단일 종목의 올림픽이다. 어느 종목이든 당해 종목의 세계연맹이 주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다음 가는 권위를 지닌다. 이러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일찍이 동양인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역사가 없었다. 한국 수영사에 영원히 기록될 장거인 것이다. 동양인에게 수영의 가능성을 제시한 아시아의 호프이기도 하다. 박태환 선수는 양손의 손바닥이 유별나게 크다. 물갈퀴가 크기도 하지만 피로도를 줄이는 경제적 팔 스윙의 영법을 익혔다. 결승점 50m를 남기고 3위에서 두 명을 제친 대역전의 무서운 막판 스퍼트는 뛰어난 체력의 소산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경기 자세가 무척 돋보인다. 3분44초30으로 결승점을 골인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 종전 기록을 단축하려고 했는데 우승을 하고 보니 나도 놀라워요…”라고 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자세가 우승의 영광을 안게된 것이다. 스포츠에선 우연이 없다. 기적같은 이변도 알고 보면 필연적 결과다. 그만한 대가를 치른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박태환 선수! 정말 장하다!!/ 임양은 주필

아베의 ‘기생’ 망언

기생은 천민이다. 천민이지만 기생이 되긴 쉽지 않았다. 창(唱)을 잘해야 하고 장구와 북도 칠줄 알아야 했다. 시화나 서예도 능해야 했다. 권번(券番)은 기생학교다. 한성권번, 평양권번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없어진 마지막 기생학교였다. 기생은 아무 남자나 근접할 수 있는 ‘노류장화’의 신세였지만, 예인(藝人)의 자긍심과 지조를 지닌 기생이 많았다. 명기 황진이는 시조시인으로 고대 국문학의 별이다. 송이 등을 비롯한 시기(詩妓)는 이밖에도 많다. 이매창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 등과의 교분이 두터웠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생조합만세운동이 있었다. 수원·진주·통영·해주 등지의 기생들이 독자적인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해 3월29일 수원기생조합 기생들은 수원경찰서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임을 가졌다. 이에 앞장선 김향화는 일경에 붙잡혀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그 옛날 논개의 후예들은 이만이 아니다. 서울 명월관 기생 산홍은 거물 친일파 아무개가 거금을 건네며 첩으로 앉히려하자 “기생에게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흘리는 젊은이들에게 주라”며 거절한 것이 화근이 되어 종로경찰서 고등계에 끌려가 뒷배를 대라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제2차대전 때 일본이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한 아베 일본 총리가 과거에 기생을 빗대어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또 드러났다. ‘한국은 기생집이 많아서 위안부 활동같은 것이 생활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게이샤는 일본의 기생이다. 일본은 아직도 게이샤가 있어서 한국에 기생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진 몰라도 기생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아베의 인식은 전통적인 기생문화를 모독하는 망언이다. 일본은 패전 직후 일본 주둔 미군사령부에 다각적인 로비를 집요하게 벌였다. 일왕의 전범재판소 회부를 막기 위해서다. 결국 일왕은 전범을 면했지만, 미군들에 대한 일본 여성들의 성 제공은 그같은 로비의 하나였다. “나는 나라를 위해 미군들에게 일하고 있으니 너도 빨리 귀국해서 함께 일하자”는 편지는 일본의 언니가 한국에서 교사로 있었던 동생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아베는 전후 세대다. 그렇다고 위안부 강제 동원이나 전후 일본 여성의 섹스 로비를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전후세대여서 정말로 몰라 망언을 일삼는다면 정치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임양은 주필

한·중 드라마전쟁

KBS1 TV 사극드라마 ‘대조영’에 등장하는 설인귀(薛仁貴)는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안동도호부 총독에 오른 인물이다. 평민 출신인 설인귀는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한테 패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구한 공로로 대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 텔레비전에서 그 설인귀를 주인공으로 한 대형 사극 ‘설인귀 전기(傳奇)’를 방영하고 있는데, 여기서 고구려는 ‘발료(渤遼)’라는 정체불명의 나라로 등장한다. ‘발해’와 ‘요동’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발료는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에서 존재한 바 없다. 당시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 ~ 682)은 ‘발건왕(渤建王)으로, 연개소문은 ‘철세문(鐵世文)’으로 나오는데, 이 역시 실존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세민을 비롯, 당나라의 주요인물들이 실명으로 출연하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허구적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 설인귀와 이세민의 인연이 악몽에서 시작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세민은 어느 날 꿈 속에서 발료군의 추격을 받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이때 어디선가 흰옷을 입은 장수가 바람처럼 나타나 그를 구하는데, 이 장수가 훗날 설인귀로 확인된다는 식이다. 설인귀가 발건왕의 딸 ‘소양공주(昭陽公主)’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연애담까지 끼어든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설인귀와 철세문의 대결은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 이런 내용에 대해 중국인들은 한국의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의 이른바 ‘고구려 드라마’에 맞서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문과는 달리 “(중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고구려를 일부러 비켜 나갔다”, “중국이 소심증에 걸렸다”,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느라 고구려 정복의 역사를 피해갔다”고 분통을 터뜨린단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중국은 이 드라마에서 발건왕이 당나라의 책봉을 받았다거나, 소양공주에게 공물을 들려 보냈다고 하여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의 역사 인식을 반영했다. 소양공주가 설인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세민을 패배시킨 천세민은 권력을 찬탈한 뒤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는 역적으로 그려진다. 바야흐로 한·중간 드라마의 전쟁이 시작됐다. / 임병호 논설위원

탈세 전문가

연평균 10억원이 넘는 소득 가운데 절반정도만 세무당국에 신고하고, 나머지는 누락해 세금을 탈루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와 자영업자 312명이 또 국세청의 4차 세무조사에서 적발됐다. 이들은 2003년부터 3년간 벌어 들인 1조911억원의 소득 중 5천777억원만 신고하고, 5천134억원은 누락해 평균 소득탈루율이 47.1%에 이르렀다.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1억7천만원이었으나 세무서에 소득신고를 할 땐 6억2천만원으로 신고했다. 국세청은 이들 중 차명계좌나 타인 명의를 이용해 소득을 탈루한 ‘얼굴없는 탈세자’를 포함해 고의성이 짙은 고소득자를 선별, 검찰에 고발하고 세금탈루액에 상당하는 벌금을 부과했는데 결국 적발은 됐지만 그 수법들이 보통 지능적인 게 아니다. 온라임게임 아이템 판매업체 대표는 ‘리니지’에서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아데나’를 판 대금을 자신과 친인척, 종업원 명의의 계좌로 입금시킨 뒤 95억원의 소득을 누락했다. 어느 성형외과 의사는 진료비 현금결제시 할인혜택을 주겠다며 현금으로 받은 소득 6억원을 탈루하고, 광고선전비 등 실제로 쓰지 않은 경비를 지출한 것처럼 꾸며 5억원을 탈루했다. 한 입시학원 대표는 현금으로 받은 수강료 15억원을 매출에서 누락한 뒤 관련 장부를 폐기 처분했다가 나중에 18억원짜리 부동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탈루 사실이 드러났다. 국세청이 또 탈루율이 높은 업종의 불성실 신고 혐의자를 중심으로 5차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는데 변호사, 법무사, 건축사 등과 성형외과, 치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과, 한의원 등 의료계 종사자, 현금수입 업자, 유통업자, 부동산업자 등이 대상이다. 국세청은 200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탈루혐의가 큰 고소득 자영업자 1천415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 모두 6천709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한다. 고소득자의 탈세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성실한 고소득 납세자들까지 ‘탈세 전문가’란 오명을 뒤집어 쓰는 일이다. 연봉 1, 2, 3천만원의 봉급자들은 각종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데 연평균 수입이 10억원 넘는 부자들이 탈세를 일삼는 건 지탄받아 마땅하다. “세금 많이 내게 돈 좀 잘 벌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서민들의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하여 일원설(一元說)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지(地)·수(水)·공기(空氣)·화(火)라고 하는 사원설(四元說)을 주장했다.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물질 중에서도 물은 생물체 중량의 70~80%를 차지하며 많은 경우엔 95% 정도를 차지한다. 사람의 신체도 체중의 약 3분의 2가 물이다. 인체내에서의 물은 물질대사로부터 생긴 노폐물을 용해시켜서 체외로 배출시키는 역할 뿐 아니라 체내의 갑작스런 온도를 막아주는 등 여러가지 기능을 해 준다. 인류가 원시적인 농업기술과 산업기술을 바탕으로 생활의 정착을 하게됐을 때 그 중요한 장소는 큰 하천유역이었다. 인류문명이 큰 하천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까닭은 인체가 생리적으로 물을 요구한다는 기본적인 필요성 외에도 농경과 산업활동에 있어서 물이 필수불가결한 물질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구상의 물은 지표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해수(海水)와 3분의 1을 차지하는 육수(陸水)로 구분된다. 지구상의 물은 증발, 증산(蒸散)되어 대기권으로 올라가 응결하여 다시 지구상으로 낙하한다. 지표에 낙하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하천이 되며 일부는 땅속으로 삼투(渗透)하여 지하수가 된다. 하천수는 지표의 와지(窪地·웅덩이)에 고여 호수를 이루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지하수는 지하에 있는 대수층(帶水層)내를 흐르고 대수층이 지표로 노출된 샘으로 지표에 나와 하천수와 합쳐진다. 또 하천수나 호수, 해수들의 표면에선 증발이 일어나고 증발된 수증기는 대기권으로 되돌아간다. 이렇듯 물은 증발· 강수(降水)·유수(流水)·삼투로서 한없는 순환을 되풀이한다. 그래서인지 노자(老子)는 ‘지고(至高)의 선(善)’을 물에 비유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꺼리는 곳에 머물려 한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지구촌의 물 부족 현상이 매우 심각해졌다. 지구촌의 3분의 1 이상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깨끗한 식수를 제대로 마시지 못한 인구가 지난해 11억명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물 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는 상태다. 22일, 오늘은 15번째 ‘세계 물의 날’이다. 내남 없이 생명이나 다름 없는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류장’ 이 곳에 대책을

수원시장안구송죽동 한국병원앞 1번국도 버스 정류장은 세 몫을 한다. 27·27-1·36·55·62·62-1번 등 대여섯 노선의 일반시내버스외에 서울 사당·강남·구로 등을 연결하는 직행버스가 멈춘다. 7770·3000·900번 등 노선이다. 수원역~범계간의 300, 수원역~사당간의 777번 완행버스도 선다. 노선버스는 이밖에도 2007번 등 많다. 이런가 하면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을 수시로 오가는 두 공항버스 노선도 이 정류장을 이용한다. 공항버스는 기사가 내려 승객의 하물칸 짐을 챙겨주는 정체시간이 또 걸린다. 일반시내버스, 서울왕복버스, 공항버스 등이 이렇게 한 정류장에 서다보니 붐빌땐 이런 저런 노선버스가 밀려 장사진을 이룬다. 버스가 세 대쯤 밀리면 인근의 횡단보도를 가로 막기가 일쑤다. 세 대 이상 밀리면 만석공원 진입로 사거리 길목이 막힐 지경이 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이 이리저리 뛰어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은 길을 막은 버스를 돌아서 건넌다. 승객이나 행인의 불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통신호를 받고 사거리에서 만석공원쪽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더러는 진입로 입구에 줄지어선 차에 막혀 낭패를 보기도 한다. 버스가 줄지어 서 있으면 뒤따라 가던 택시나 다른 차도 길이 풀릴때까지 덩달아 멈춰야하기 때문이다. 정류장 앞이 한일지하도에서 서울쪽 상행선의 U턴 지역이지만 U턴하기가 어려울때가 또 많다. 정류장 근처까지 안 오고 중앙선을 넘어 중간에서 U턴하는 교통질서 위반이 이 때문에 빈발한다. 버스나 차량만 많이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한일타운을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다닌다. 날씨가 풀리면서 행인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류장을 분리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의 정류장 외에 인근 농협송죽동지점 앞에 정류장을 증설, 일반시내버스·서울왕복버스·공항버스의 정류를 두 군데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분리시킬 것인가는 수원시가 판단해서 할 일이다. 단 1번국도 건너편의 서울왕복버스 정류장은 노선별로 정류장이 있지만 지금 말하는 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있지않을 것 같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수원시 당국의 실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다만 괜찮을땐 좀 괜찮다가도 붐빌때는 엉망인 점을 유의해주기 바란다. 현장 확인이 있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과대포장

큰 것을 선호하는 것은 과거에 지지리도 못살았던 시절에 생겼던 관습이다. 질보다는 양을 위주로 하는 관념이다. 배 고프다 보니 영양가 보다는 만복감을 채울 수 있는 분량에 더 치중했던 것이다. 물건도 오래쓰기 위해서 작은 것보단 큰 것을 좋아했다. 유통 상품의 과대포장 폐해가 여전하다. 작은 알맹이를 턱없이 크게 포장하는 것이다. 포장속의 상품을 이리 또 싸고 저리 또또 싸면서 공간을 넓혀 겉포장을 크게 만든 것을 보면 제품 업체의 속이 들여다 보일 지경이다. 소비자들은 아직도 무작정 큰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 아무튼 과대포장의 연유는 정상가격보다 더한 비싼 가격을 매기기 위한 상술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시판되는 제과류 선물세트 6개를 수거해 포장공간 비율을 조사한 결과 4개가, 또 화장품류 선물세트는 9개 중 8개가 허용된 규정공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대포장인 것이다. 과대포장은 속빈 강정이다. 초과 비율이 최대 60.5% 포인트에 이른 것도 있었다니 어쩌면 ‘사기’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선물일수록 이젠 작은 포장에 든 선물을 더 값지게 여기는 인식이 생겼다. 선물세트가 크면 클수록 별 볼일 없는 알맹이고, 작은 선물센트엔 알토란 같은 선물이 든 경우가 많다. 실속없는 과대포장은 시장에서 소비자가 추방코자 하는 소비자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도 이를테면 과대포장이 있다. 유별나게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 하는 위인들이다. 사람이야 그래도 그럴 수 없지만 상품의 과대추방은 소비자들이 암묵적 불매운동으로 시장에 발을 못 붙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단 제과류 화장품류만이 아니다. 과대포장은 다른 상품에도 허다하다. 과대포장으로 인한 피해가 쓰레기 배출이다. 포장속 겹겹이 만든 속포장을 다 헤쳐놓고 보면 수북이 쌓이는 게 쓰레기 투성이다. 재활용품도 있지만 과대포장 상술로 당한 쓰레기 뭉치를 버리려면 여간 짜증스런 게 아니다. 이런 상술은 전근대적 상술로 시대에 뒤떨어진다. 지금은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시대다. 속 알맹이와 걸맞는 규모로 상품이 잘 보호되도록 여물게 포장하면서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겉포장보단 상품의 품질이다. 소비자는 두 번은 속지 않는다./ 임양은 주필

‘漢盲’ 대학생들

한번 더 이 얘길 해야겠다. 도내 어느 고등학교 축구팀이 수년 전 일본에서 한 고등학교 축구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경기는 3-0 스코어로 완승했다. 두 나라 선수들은 서로 유니폼을 벗어 바꿔입으면서 우의를 다졌다. 여기까진 좋았다. 낭패가 된 사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 학생들은 서로 편지를 교환하자면서 저마다 자신의 주소를 한문으로 쓴 쪽지를 건네며 우리 선수들더러 주소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당황해 했다. 집 주소를 한문으로 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코치에게 우르르 몰려가 써달라고 했으나 한문을 모르긴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이긴 좋은 기분은 간곳없고 그만 창피스럽게 되고 말았다. 뭐랄까, 우린 우리의 글이 있어 한문을 안배우기 때문에 한문 주소를 못쓴다고 해서 창피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의 글, 순수한 우리의 말을 되도록이면 많이 써야 하는 건 틀림이 없지만 엄연한 한자문화권인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우리 학생들은 축구 경기에서는 완승했으나 교육 효과에서는 완패한 것이다. ‘한자로 자기 이름도 못쓰는 대학생 많다’는 일전의 보도가 한동안 잊었던 한·일고교 축구의 그같은 숨은 일화를 생각케 했다. 어느 대학교에서 새내기 대학생 384명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20%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쓰고, 아버지 이름은 77%, 어머니 이름은 83%가 쓸줄 모르는 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다른 일상용어의 한자 수준은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할 것이다. 도대체가 멀쩡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토록 ‘한맹’(漢盲)으로 만드는 정부의 교육방침이 뭣인지를 알고 싶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한문교육은 팽개치고 영어교육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자발음은 또 남발한다. 정부 발표문부터 외래어 아닌 영어 투성이다 보니, 자치단체도 그렇고, 사회풍조 또한 이를 무슨 멋으로 아는지 하다못해 미장원 간판도 영자발음 투성이다. 뭔가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됐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성인’이란 말도 한문으로 ‘成人, 成仁, 成因, 聖人’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한자를 모르고는 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학문을 하려면 더 한다. 적어도 기본 한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책무다. / 임양은 주필

고용불안 부추기는 비정규직법

오는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이나 청소원 등에 대한 계약해지나 재계약, 임금삭감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과학실험보조원, 교무보조원 등 11만여명이 비정규직으로 있는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신학기인 요즘 초단기 계약, 임금삭감 등 처우를 악화하는 내용의 재계약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비정규직법이 되레 비정규직들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란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공공서비스노조 학교비정규직지부’에 따르면 2월 10일부터 3월 10일까지 한달간 학교 비정규직 종사자들로부터 계약해지와 관련해 47건, 처우악화와 관련해 150여건의 재계약 상담을 접했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청소용역업체들의 노사분규도 비정규직법과 무관치 않다. 서울도시철도 5~8호선 청소용역 조합원 1천366명은 7차례의 임단협 교섭과 조정신청 결렬 후 현재 파업을 앞두고 있다. 노조의 12만원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사측은 8만원 인상안을 내놓아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울산과학대의 청소용역 노조 분쟁과 마찬가지로 전남 광주시청에서도 청소용역 노조원 수십여명이 시청측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지난 8일 기존업체의 용역기간 만료 후 광주시가 신규업체를 선정하면서 청소용역 52명이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공포돼 7월 시행 예정인 비정규직법은 비정규 노동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차별을 금지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법대로라면 사용주는 기간제(계약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파견 근로자도 2년을 초과해 사용할 경우 직접고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학교의 경우 보통 계약기간이 1년씩이었으나 방학기간을 빼고 4개월로 계약하거나, 단기계약이 싫으면 학교를 그만두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이 되레 비정규직을 거리로 내치는 건 비사회적이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 등 힘없는 사람들 위주로 편법이 횡행한다. 경기·인천지방에도 이런 편법이 예외일 리는 없다. 점점 커지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해소 방법은 강력한 법규 적용 뿐이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설 것을 촉구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젖은 낙엽’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 일본은 베이비붐을 맞았다. 격렬한 학생운동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일본 사회의 중추로 자리 잡은 이들은 ‘단카이 세대’라고 불린다. 급속한 경제개발의 필요성과 가부장적 관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아내 중 상당수가 정년퇴직하는 남편을 멀리하는 풍조가 생긴 것이다. 아직까지 대다수 단카이 세대에게 이혼은 금기 중 하나라서 ‘황혼 이혼’을 실제로 감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올 4월 개정될 이혼법이 실행에 들어가면 사정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젠 아내도 결혼기간 중 남편이 납입한 연금의 50%까지를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사는 데라카와 여인은 남편과 같은 집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통과 피부발진에 시달리고, 남편과 자신의 옷을 한꺼번에 세탁하지도 못하며 수백 개의 봉제인형을 수집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남편이 집에 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오고 심한 위통이 찾아왔다. 어떤 때는 먹은 걸 다 토해내기도 했다. 남편하고 같은 방에 있기만 해도 몸이 아팠다”고 말할 정도다. 도쿄 외곽에 사는 아오야마 여인은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너무 막막해 퇴직을 미루도록 남편을 설득했으며, 엔카 가수에 빠져 스트레스를 푼다. 아오야마 여인은 “남편이 정년퇴직을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생활을 하게 될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BS TV가 그제 오후 10시 50분 방영한 시사다큐멘터리 ‘젖은 낙엽 - 은퇴 남편 증후군’ 내용이다. ‘젖은 낙엽’은 퇴직 후 천덕꾸러기가 된 늙은 남편을 일컫는 신조어로 ‘황혼 이혼’과 함께 최근 몇년 사이 유행했다. ‘젖은 낙엽 - 은퇴 남편 증후군’은 영국 BBC가 제작해 올 1월 방송한 것으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경험하고 ‘단카이 세대’의 대거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전했다. ‘남자가 밥을 먹을 때 맞은 쪽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는 등 일본 여성을 남자에게 가장 순종을 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남자들에겐 뜻밖이다. 정년이 되도록 직장생활에 충실한 남편을 ‘생각만 해도 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으로 싫어한다니 일본 남자들도 참 불쌍하게 됐다. /임병호 논설위원

역사 드라마의 虛實

지난 주 끝난 TV드라마 ‘주몽’(MBC)이 역사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됐다. “고구려 시조의 이름은 주몽(朱蒙) 아니라 추모(추모(鄒牟)다”,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국기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게 대표적인 주장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주몽은 추모의 중국식 표기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글자를 빌려 써 추모를 비하했다”고 지적했다. 414년에 세워진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5세기 중엽의 고구려 모두루무덤에는 고구려의 시조를 추모로 표기했지만 6세기 중엽 이후 편찬된 위서(魏書)·주서(周書)·북사(北史)·수서(隋書)엔 주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주(朱)’자는 ‘난쟁이(侏)라는 뜻이 있고 ‘몽(蒙)’자는 ‘속이다’, ‘어리석다’는 뜻으로 고구려의 시조를 ‘어리석은 난쟁이’로 폄하한 작명(作名)”이라며 “일본의 창씨개명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드라마에서 삼족오가 고구려의 상징이나 국기처럼 사용됐지만 후기 고구려 벽화를 보면 고구려의 최고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해(까마귀)나 달(두꺼비·토끼)이 아닌 청룡·백호·현무·주작 등 4신”이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빌려 북부여 왕이었던 해모수와 동시대 인물은, 금와가 아니라 그의 부친이자 동부여왕인 해부루다. 금와를 해모수의 손자라고 서술한 ‘삼국유사’를 참고하더라도 두 사람은 드라마에서처럼 친구사이있을 리가 없다. 드라마에서 계루국 지배층인 소서노-우태의 아들로 묘사된 비류와 온조도 주몽의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다. 이 설을 받아 들인다면 주몽은 부여를 탈출한 뒤 졸본에 와서야 소서노를 처음 만났을 것이며, 따라서 드라마 전반부의 큰 축을 이뤘던 부여의 왕자 대소와의 삼각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또 주몽의 모친인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 후에도 14년을 더 살다가 사망하는 게 맞고, 극중에서 한나라와 결탁해 주몽에 대항하는 비류국 왕 송양은 고구려 개국 공신으로 주몽과 사돈까지 맺었다고 말한다. TV드라마 ‘주몽’이 인기리에 방영된 건 사실이지만 이런 오류가 있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픽션이 작가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픽션을 구사하는 ‘룰’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TV 드라마의 대가 신봉승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윤리강령’

‘검사는 사건 관계인과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거나 식사 여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대검이 새로 마련한 ‘검사윤리강령’의 한 대목이다. ‘검사는 변호인을 사적으로 접촉하지 못한다’고 한 기존의 윤리강령을 피의자 및 피고인 등과 가족에까지 확대했다는 것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검찰청법) 사회공익을 대표하는 국가 기관인 것이다. 기소독점주의의 막중한 권한을 행사한다. 검사도 사람이고 보면 사람이 그같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물론 탁월한 전문 식견도 있어야겠지만 사람다운 품성이 직무행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법도 사람이 집행한다’는 법언은 그같은 깊은 뜻이 담겼다. 검사가 주로 다루는 것은 범죄자 또는 혐의자들이다. ‘검사는 사건 관계인과 접촉해선 안된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검사는 범죄자나 혐의자 그리고 변호사나 가족 등을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검사는 예컨대 ‘도둑놈과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안된다’는 말과 같다.이같은 윤리강령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당연히 지켜야할 검사의 인간적 품성을 굳이 강령으로 정한 건 어쩐지 강령 같지가 않다.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용인의 어느 골프장 경영권 다툼으로 벌어진 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에 전직 부장검사가 가담됐다는 소식은 슬픈 뉴스다. 물론 전직이 부장검사일 뿐 현직은 어디까지나 변호사다. 그러나 이런 품성의 인간이 부장검사를 했을 때를 생각하면 좀 이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지켜야할 검사의 인간적 품성을 이래서 굳이 강령으로 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윤리강령을 더 말해야겠다. 어제 경기도의회가 개회한 제220회 임시회 회기동안에 민간단체 등에서 후원하는 해외연수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의원윤리강령’ 개정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도의원이 소속된 상임위 관련의 민간업체가 경비를 대주는 해외여행은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포괄적 뇌물로는 여행을 안간다는 말이 된다. 역시 당연한 데도 강령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이 상식대로 통하지 않으므로 상식을 규정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의 명문화가 없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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