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나눠먹는 국회

대한민국 국회처럼 이상한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평소엔 서로 삿대질과 몸싸움을 일삼다가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여·야가 한 통속이 돼 거래를 한다. 그 모습이 보기에 심히 역겹다. 지난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에산안이 통과된 것에 비하면 겉으론 나아진 것 같지만 새해 예산안을 다룬 지난 27일 새벽 본회의 내용은 더 고약했다 .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지만 법정 시한(12월 2일)을 한참이나 넘겼다. 명백한 헌법 위반인 데도 여·야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미안해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는다. 되레 당연한 듯 여기는 같아 할말을 잊게 한다. 사학법에 발목 잡혀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해 안에 처리된 게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더욱 큰 문제는 형식 보다 내용이다. 심의는 강도 높게 했지만 결국은 여·야 흥정으로 끝났다. 예산 삭감액이 미리 정해지고 세부예산이 짜맞춰지는 모습이 재연됐다. 통과된 새해 예산안(일반회계+특별회계)은 163조3천500억원 규모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해 1조3천400억원을 삭감했지만, 대선을 맞아 선심성, 정치성 예산에 대한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1조500억원을 증액했다. 자신들을 위한 의정활동 지원비 등 ‘제몫 챙기기’도 증액했다. 특히 사회복지와 일자리 창출 예산 등 양극화를 완화하고 소외계층을 돌볼 예산이 대폭 깎인 반면 도로건설 지역개발 등 선심성, 민원성 예산은 크게 증액돼 또 한번 실망을 줬다. 당리와 정치적 계산 속에서 나온 선심을 소외 계층의 삶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정치인들의 의식구조가 정말 안타깝다.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예산안과 한묶음인 예산 부수법안(조세특례법 개정안)은 부결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여·야 다툼과 의원들의 무지가 낳은 결과다. 새 임시국회를 여는 방편으로 잘못을 바로 잡기는 했지만 도대체 의원들이 제정신을 갖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서 어떻게 국회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죽하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지키던 경위들이 “한심하다, 한심해!”하고 장탄식을 하였겠는가. 2007년엔 국회의원들이 제발 정신 좀 똑바로 차렸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성범죄 처벌

미국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석방되면 경찰이 이웃에게 이를 알려주는 이른바 ‘성범죄자 석방공고법(메건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폭행범 뿐 아니라, 돈을 주거나 유혹해 성관계를 맺은 사람도 메건법의 적용 대상이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1996년 연방법률로 제정돼 시행중이다. 미국은 또 2000년 7월엔 아동 대상 성범죄로 두 차례 유죄판결을 받으면 무기징역에 처해 무조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내용의 이른바 ‘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했다. 중국은 14세 이하의 어린이와 성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선 모두 성폭행범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대만도 1999년 아동복지법을 강화해 16세 이하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로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고 징역 7년에 처하고, 이름과 사진을 주요 지방신문을 통해 공표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해 13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면 무기징역에 처하는 법안 초안을 마련했으며, 이 법안은 유사성행위도 성폭행으로 간주하고 성관계 장면을 16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강제로 보이기만 해도 10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도 엄격하다. 미국은 1974년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등이 제정되면서 가해자 처벌은 물론 정상적인 양육에 필요한 가해자 정신치료도 의무화하고 있다. 친권행사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모 의지와 상관없이 법원이 즉각 피해 어린이를 부모에게서 격리시킨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 방임을 막기 위해 3~ 5세 유아를 대상으로 건강·복지·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드 스타트’ 제도를 운영중이다. 영국은 1차적으로 부모와 협의를 통해 아동학대를 해결하지만,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엔 아동법상 긴급보호명령을 통해 경찰에 의한 보호 등 강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정기적으로 경찰에 출두해야 하고, 거주지를 옮길 때는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호주는 1998년 아동청소년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를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주정부가 직접 가해자 교정교육을 실시토록 했다. 그러나 일찍이 ‘어린이 날’까지 제정한 우리나라는 아동 대상 성폭력범과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미약하다. 어린이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범죄자에게 인권을 부여하는 건 야수를 옹호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임병호 논설위원

10만원권 지폐

논란이 됐던 10만원 짜리 돈이 나오는 모양이다. 2009년 부터 통용될 것 같다. 현행 최고 화폐인 1만원권 돈이 나온지 33년 만에 최고의 자리를 10만원권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1만원권이 나온 1973년에 비해 경제규모는 148배, 물가는 12배가 올랐다고 한다.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없어지게 되어 이에 소요된 연간 4천4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10위 규모로 커진 경제위상에도 걸맞다고 한다. 달러화는 1000달러 짜리까지 있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직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장을 보러 광주리에 돈을 담아 가다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돈은 꺼내놓고 광주리만 훔쳐갔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아무튼 인플레가 걱정된다. 돈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씀씀이가 헤퍼진다. 물가상승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뇌물단가도 높아질 것 같다. 사과상자에 가득히 넣은 돈이 10만원 짜리가 아닌 1만원짜리일 것 같으면 되레 괘씸죄에 걸릴 것이다. 도대체 10만원 짜리로 사과상자를 채우면 얼마만한 금액일까? 서민층이 걱정이다. 솔잎(천원짜리), 단풍잎(오천원짜리), 배추잎(만원짜리)이던 것이 십만원짜린 무슨 잎이 될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10만원짜리 화폐는 서민층 일상과는 거리가 먼 ‘귀족화폐’라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한 품삯이 같은 5만원일 지라도 만원짜리 다섯장 받는 것과 두 명이 10만원짜릴 나눠갖는 것과는 정서가 다르다. 기다리던 월급 돈이 만원짜리 묶음 다발인 것과 10만원짜리 10~20장인 것과는 기분이 다르다. 큰 돈은 아니어도 솔잎이나 단풍잎을 세고, 배추잎을 세곤 했던 서민의 재미도 이제 한물가게 되는 것 같다. 고액권에 눌려 돈 가치가 전같지 않을 터이니 재미가 전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민중은 이래서 이러나 저러나 살기가 고단하기만 한 모양이다./ 임양은 주필

이긍회 경기문화재단 대표에게

그러니까 22년쯤 전인가요. 기억하실 줄 모르겠지만 취재 관계로 몇번 뵌 적이 있지요. 당시 MBC 교양제작국 부국장으로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맡고 계실 때 일이지요. 저는 서울신문에서 스포츠 기자로 있다가 주간물 ‘TV가이드’ 기자를 할 때이고요. 그후 서울시청으로 출입부서를 옮겨 더 뵐 기회가 끊겼지요.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간시대’는 사람 냄새가 살아 꿈틀거리는 휴머니티의 백미였습니다. 매주 방영되는 분을 한 주간 앞서 장르와 내용 그리고 비화 등을 미리 소개하곤 했지요. 그 무렵 안국정 SBS 사장은 KBS 교양제작국 부국장으로 교양물 제작의 두 왕PD가 쌍벽을 이루면서 오늘의 방송문화가 있도록 선도하셨잖습니까. 일찍이 MBC 사장이 되셨을 땐 내심 기뻤습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오셨을 땐 반가웠고요. 그런데 돌연 사표를 냈다니 섭섭합니다. 오죽했으면 부임 3개월만에 그만 둘 작심을 했겠나 하는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사에 능소능대(能小能大) 한 분이 아닙니까. 왕PD 시절 그 많은 제작진의 사기를 북돋아 일사불란하게 통솔한 통큰 맏형이면서도 제작비가 남으면 반납했던 당당한 분이었잖습니까. 만약 지방에서 일하는 게 생리에 맞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그것은 오만일 뿐, 이긍희 대표이사 본연의 면모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소임과 조직을 보고 일하노라면 행여 언짢은 엉뚱한 상흔의 유탄이 있을지라도, 까짓 것 대수롭지 않게 털어버릴 수가 있지 않을까요. 부임할 때의 웅지는 어디다 버리고 그만 두신다는 겁니까. 기전문화(畿甸文化) 개발의 부가가치는 지고하고 방대합니다. 일속에서 일을 만들어가며 하려면 얼마든지 신명나게 할 수 있고, 당신은 능히 그럴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표를 냈다니 철회하긴 어렵겠지만, 만약 기회가 닿으면 더는 고집하지 마십시오. 잘은 모르겠으나 지나친 겸양 또한 비례(非禮)라 했으니까요. 갑자기 이런 글을 드리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연히 만날 자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또 우정 찾아가는 것도 겸연쩍한 일이어서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군요. 아무튼 결과를 지켜보겠습니다. / 임양은 주필

유다의 키스

예수의 부활을 최초로 알린 게 마리아다. 그러나 제자들은 처음엔 잘 믿지 않았다. 베드로도 그랬다. 마리아의 말을 믿은 건 요한이었다. 예수는 또 열셋 제자 중 유다의 배신을 알고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도 예언했다. 유다는 회계를 맡았던 제자다. 그가 바리새인들로부터 받은 은전 30시클로는 당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다. 이 돈에 매수되어 예수를 밀고, 로마병을 안내했다. 예수가 병사들에게 체포되자 배신자가 아닌 것처럼 키스까지 했다. 이것이 ‘유다의 키스’다. 그러나 유다는 이내 후회했다. 속죄키 위해 받은 돈을 되돌려 주려고 했으나 받지않자 바리새인들의 신전에 냅다 던졌다. 마침내 예수가 예루살렘 교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날, 유다는 고민 끝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진했다.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 예수는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40일동안 살다가 해발 800여m 감람산에서 승천하였다. 감람산엔 올리브과수원이 있는데, 예수가 여기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유다가 앞세운 로마 병사들이 들이닥쳤던 곳이다. 예수가 못박힐 때 입었던 옷감은 아마포(亞麻布)다. 이 성의(聖衣)는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소중히 보관돼 있다. 오늘은 2005년 전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속에 태어난 성탄절이다. 예수(Jesus)는 히브리어로 ‘신께서 구원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Christ)는 그리스어의 그리스토스(Khristos)에서 나온 말로 구세주의 칭호다.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로마 총독이 “왕이라면서 왕관이 없어서 되겠느냐”고 이죽거리며 가시나무로 만들어 씌웠던 것이다. 예수는 이 가시면류관을 쓴채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 설흔살부터 시작된 공생애 3년을 마쳤다. 유다란 이름이 천하에 악명 높은 배신자의 대명사처럼 됐지만, 이 세상은 유다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고 많다. 회개(悔改)할 줄 모르는 배신의 세태를 오늘 하루쯤은 돌이켜봄직 하다.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평화가 충만하기를…./ 임양은 주필

택시기사의 이야기

62세의 J씨는 서울에서만 택시운전을 37년 한 사람이다. 1970년 처음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 말고는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J씨의 기억으론 지금까지 택시기사로 가장 좋았던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 때였다. 생활 물가가 워낙 쌌기때문에 승객이 좀 적어도 택시 운전하면서 그럭저럭 살았다. 1970년 초엔 아무나 택시를 못탔다. 일반 시민이 설렁탕 값보다 비싼 택시(기본요금 60원)를 타긴 힘들었다. 하루 사납금이 600원이었는데, 사납금 내고 남은 돈을 악착같이 모으면 한달 수입이 3000~4000원 정도됐다. 전두환 정부 시절 들어 서울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외곽이 커지면서 택시 운행 거리가 많이 늘었다. 그때 기본요금이 600원까지 오르고 택시가 대중화됐다. 택시기사한테는 전두환 정부 시절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하루 12시간 근무 중 잘 될 때는 서너시간 만에 사납금을 다 채웠다. 노태우 정부 들어 기본요금이 800원으로 올랐으나 5·6공 땐 전반적인 경기가 좋아서 손님도 많이 늘었다. 지금은 어렵다. 몇년 전만 해도 금방 손님이 탔는데 20분이 넘어가도 아무도 없다. 택시란 게 원래 중산층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잘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가 있으니까 택시 탈 일 없고, 자가용 몰던 중산층은 기름값까지 많이 올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 승객들이 하는 얘기 가운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많다. 원래 택시를 타면 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욕을 많이 했는데 요샌 확 줄었다. 그냥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짜증을 낸다. 내년 대통령 선거 얘긴 가끔 나온다. 누가 돼야 한다, 누군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냥 빨리 선거를 치렀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누가 되든 지금보단 상황이 좋아 질 거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외환위기(IMF) 때 충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손님들의 말수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더 적어졌다. 그땐 그래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기라도 했으니 다행이었지만 요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말해 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에 입을 닫는 것 같다.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된 것 같다. 정말 큰일 났다./ 임병호 논설위원

‘불사조’의 비행

우리나라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이 11월 30일 강제 전역 조치됐다. 4년 전 유방암에 걸려 양쪽 유방을 절제했다는 사유에서다.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는 김에 멀쩡한 나머지 유방까지 잘라낸 일이 문제가 됐다. 그것도 군 생활을 더 잘 하고 싶어서였다. “평소 항공비행 중 불편하다고 느낀 유방을 양쪽 다 절제해달라”고 간청해서 성사됐다. 이후 3년동안 그는 육군 항공단에서 군생활을 계속했다. 후유증도 없었다. 그는 이미 암 완치 판정을 받았고, 유방 없이 활동하는 데도 문제가 없어 군에 남길 바랐다. 전역 휴가 중이던 지난 10월 말, 해남에서 고성까지 800㎞를 23일 동안 걸어서 완주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국토종단을 하면서도 내내 빨간 마후라를 벗지 않았다. 다른 군인들에게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끝내 전역 당했다.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암 병력 또는 유방절제술을 받으면 전역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인사법 시행규칙은 교조적이고 불합리하다. 암이 이미 완치됐고, 이후 아무 지장 없이 군 생활을 했다. 체력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오로지 암 병력과 양쪽 유방이 없다는 이유로 퇴역 처분을 내린 것은 군의 특수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성 군인과 똑같이 가슴이 없다는 게 문제될 줄은 몰랐다”는 그의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완치된 암 병력, 군 복무에 전혀 지장이 없는 신체 부분을 이유로 강제 전역을 시키는 규칙은 속히 개정돼야 한다. 1979년 여군 27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한 그는 여군 최초로 1000시간 비행기록을 수립했다. 육군 헬기 조종사 시절 항공호출명은 ‘피닉스(불사조)’였다. 가장 남성적인 조직인 군대에서 온갖 불리와 차별을 딛고 27여년 동안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복무해 왔다. 최초의 항공병과 여성 교관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자신의 군생활 역정을 담은 에세이집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피우진 중령은 전역하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이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되기를 바란다(今日我行跡 隊作後人程)’는 말을 남겼다. 국방부에 낼 행정소송이 승소해 그가 헬기 조종간을 다시 잡고 ’불사조처럼’ 하늘을 비행하였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일본이 부러운 이유

한국이 늙어가고 있는 속도는 가공할 만하다. 지난 2000년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7.2%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2018년엔 65세 이상이 14.3%인 ‘고령사회’로 들어선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0.8%로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이 장수하는 건 축복이다. 그러나 준비 없는 고령사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노동력 감소로 말미암은 생산성 악화, 연금 파탄, 의료·간병 비용 급상승으로 인한 재정지출 확대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경제활동인구(25 ~ 49세) 4.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다. 2020년엔 경제활동인구 2.3명이, 2050년에는 0.6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노인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이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버세대’의 일자리 유지가 중요한 이유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 고령(55세 이상) 실업률은 2001년 1.6%, 2002년 1.2%, 2003년 1.4%, 2004년 1.6%, 2005년 1.7%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게 분명하다. 취업기회 부족, 근로능력 저하 등으로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구직 단념자가 많기 때문이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 (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 등 조기퇴직도 심각한 문제다. 근무연수가 높아지면서 임금을 많이 받는 구조인 연공급적 임금체계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년, 명예퇴직 등으로 ‘나이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이들의 재취업은 녹록지 않다. 40대, 50대가 이런 형편이니 60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정년시기를 늦추고 직업훈련과 적극적 고용 안내 등으로 취업을 늘리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정책은 아직 희망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일본의 고령자 정책은 ‘정년 연장’과 ‘계속 고용’이 기본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법정 정년을 62세로 늘렸다. 2013년에는 65세까지로 늘어난다. 기업은 한발 더 나아가 정년 이후에도 고용을 계속하는 추세다. 2004년 말 현재 일본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이 정년(당시 60세)과 상관없이 고령자를 계속 고용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고용지원금’을 주어 기업을 돕는다. 그런 면에선 일본이 부럽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상한 지방세 체납자

행정자치부가 18일 공개한 지방세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은 우리나라 납세 실태를 한눈에 보여준다. 행자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일제히 공개한 체납자들은 1억원이 넘는 지방세를 2년 이상 내지 않고 있는 1천149명(개인 620명, 법인 529명)으로 이들의 체납액이 무려 3천602억원에 이른다. 체납자들의 면면과 행태도 놀랍다. 수억원대의 지방세를 체납하면서 버젓이 5선을 기록한 도의회 의장이 있는가하면, 국민의 4대 의무인 ‘납세의무’를 가르쳐야 하는 교장도 포함돼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13·14대 회장을 지낸 L씨, 대학총장을 지낸 L씨도 재산세를 체납했다. 물론 사정이야 없을 리 없겠지만 개인 체납자들이 이른바 부자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건 이상하다. 서울의 경우 327명의 개인 고액 체납자 중 18%인 59명이 강남구와 서초구에 살고 있어 의혹을 자아낸다. 이들의 체납액은 199억5천600만원으로 전체(826억원)의 24.2%를 차지한다. 현 주소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긴 106명을 제외하면 강남권 고액체납자 비율은 더 커진다. 서울 고액·상습 체납자 중 221명(체납액 548억9천600만원)이 서울에 주소를 두고 있는데 이들 중 강남권 거주자는 26.7%, 체납액 비율은 36.4%에 달한다. 고액 체납자들은 주로 자녀나 친척집에 얹혀 산다고 말하는데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더니 부자 개인은 망해도 가족은 망하지 않는 모양이다. 2천110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법인들은 주로 건설·건축업종(40.3%, 체납액 46.8%)에 몰려 있다. 업종자체가 부침이 심한 데다 IMF 이전 부동산경기가 붐을 이룰 때 앞다퉈 뛰어 들었다가 부도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대부분 회사가 부도났다고 하지만 막상 집을 찾아가면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체납자들 상당수가 제일 비싸다는 강남구에 살고 있는 것도 혼란스럽다. 법적 틈새를 악용하는 수법이 날로 지능화돼 체납자가 아내에게 재산을 명의이전한 뒤 위장이혼을 하는데 이들이 평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게 한 두번이 아니란다. “세금 폭탄을 맞더라도 재산세 좀 내며 살고 싶다”는 서민들에겐 소설 같은 얘기다. / 임병호 논설위원

세계 피겨여왕 김연아

가녀린 한 소녀가 나라의 명성을 온 세계에 떨쳤다. 장거의 무대는 지난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이다. 이 대회에서 역전 우승의 완벽경기로 기라성 같은 정상급 선수들을 제치고 세계를 제패한 김연아는 키 161㎝에 43㎏의 몸무게를 지닌 열여섯살 난 소녀다. 세계 언론은 지난 연초 주니어 챔피언에 오르긴 했으나 시니어 무대에선 무명이었던 새 피겨여왕의 탄생을 한결같이 주요 뉴스로 장식했다. 점프의 3회전 동작을 두 번 연속하는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등 고난도의 몇가지 주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세계 언론은 극찬했다. 탁월한 유연성과 균형감각으로 고난도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는 해설이 뒤따랐다. 뛰어난 기술도 기술이지만 강인한 정신력의 소산이다. 부상으로 인한 허리 통증을 압박테이프로 인내했다. 부츠가 닳아 짝짝이 된 피겨화의 악조건을 티없이 극복했다. 예쁘장한 얼굴 어디에 그같은 참을성과 담대한 도전 의식을 지녔을까 하고 놀랄만큼 강한 의지가 몸에 뱄다. 상대가 강한 라이벌일수록 더 강해지는 불굴의 투혼을 스스로 불태운다. 한국 빙상역사 100년만의 첫 쾌거다. 특히 피겨스케이팅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다. 이런 국내 피겨스케이팅을 일약 세계 정상에 올려놨다. 여섯살 때 피겨화를 신기 시작했다. 지난 10년동안 하루 평균 5시간의 강훈을 묵묵히 해낸 피땀어린 각고의 열매다. 여기엔 소싯적에 피겨 선수를 꿈꾸었던 어머니의 눈물어린 헌신이 농축된 것으로 전한다. 아버지 김현석씨(49) 어머니 박미희씨(47)의 두 딸 중 둘째로 1990년 9월5일생이다. 군포 신흥초, 도장중을 거친 수리고 1학년생이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토토’가 가족 중 가장 많이 따르는 주인이다. 세계 무대에서 이젠 도전받는 입장이 됐지만 가능성은 앞으로가 더 많다. 지금부턴 누구보다 두려워할 강적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일 것이다. 은반의 여왕 김연아가 향토의 딸인 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 임양은 주필

언론 탓?

언론 탓으로 돌린다. 이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곤 한다. 정부의 정보를 제대로 안 쓰기 때문에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씨 못쓰는 선비가 붓타박 한다’는 꼴이다. 예를 든다. 부동산정책을 새로 낼 때마다 덩달아 뛰는 것이 아파트 가격이다. 그럼 또 이렇게 말한다. 눈앞만 보지말고 멀리 보라는 것이다. 이 정권 들어서서 아파트 가격이 평균 55%나 올랐다. 멀리 뭘 보라는 건가, 아뭏든 남의 탓 하는덴 선수다. 걸핏하면 편지쓰기 좋아한 분이 이번엔 ‘공무원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란 것을 또 썼다. 특정 TV를 지목하면서 많이 보라는 것이다. KTV는 정부가 운영하는 국정홍보 케이블 채널이다. 정부시책을 여과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방송이다 보니 대통령은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러고 보면 대통령이 언론에 요구하는 보도 수준이 KTV 같은 걸 원하는 모양이지만 아니다. 정부가 국정홍보 방송을 한다는 것 부터가 할 일이 아니다. 홍보가 잘 안 되어 일이 잘못되는 것 처럼 말하는 이가 노 대통령 말고도 또 한 사람 여기도 있긴 있는데 이들은 생각 자체가 틀렸다. 좋은 것은 감춰도 빛을 뿜고 나쁜 것은 감춰도 본색이 드러나는 것이 세상사 이치다. 잘하는 일을 잘못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독자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은 잘못하는 일을 잘 한다고 하면 독자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는 것 뿐이다. 더러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두고 과대평가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종종 보지만, 또 잘못을 지적하면 침소봉대한다고 우긴다. 언론은 일꾼을 외면하지 않는다. 좋은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과묵한 일꾼에게 좋은 기사가 많이 나오고 떠벌이 일꾼에겐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게 돼 있다. 언론 탓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건 없다. 대통령 편지 따라 KTV를 볼 공무원이 과연 있을까, 부질없다./ 임양은 주필

창성사 복원

수원 광교산(光敎山)에 자리 잡고 있었던 창성사는 고려시대의 진각국사가 입적한 사찰이다. 현재 절터(寺址)만 남아 있지만 고려 초까지만 해도 89개 암자가 세워져 고승들을 배출했다고 전한다. 창성사가 광교산에 있었던 건 확실한데 언제 창건되고 폐사(廢寺)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불우조’에 “광교산에 창성사가 있었다. 이색이 지은 고려 승 천희(千熙)의 비명(碑銘) 있다”고 기록돼 있고, 1799년에 제작된 ‘범우고’에 “예전에 폐사된 것을 이제야 수리한다”는 내용이 전하는 것으로 미뤄 회복기에 들었다가 다시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수원시 매향동 전 충혼탑 경내에 보전돼 있는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彰聖寺眞覺國師大覺圓照塔碑)는 높이 151㎝, 너비 21㎝로 1386년(우왕 12)에 세워졌다. 보물 제14호로 비문은 이색(李穡)이 짓고 각자는 승려 혜잠(惠岑)이 하였으나 글씨를 쓴 사람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안 된다. 비문엔 진각국사의 생애가 적혀 있다. 진각국사의 휘(諱)는 천희(千熙), 호(號)는 운산( 雲山)으로 고려 충렬왕 33년 흥해(興海)에서 출생했다. 13세에 화엄반룡사(華嚴盤龍寺) 주지 일비대사(一非大師)의 가르침을 받았고 김생·덕천·부인·개태(開泰) 등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였다.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치악산에 은거하던 중 공민왕이 사신을 보내 국사대화엄종사선교도총섭(國師大華嚴宗師禪敎都總攝)에 봉했다. 부석사(浮石寺) 등을 중수하는 등 전국 사찰 창·중건을 위해 진력했으며 76세에 창성사에서 입적하였다. 창성사 유적으로 건물의 기단석·주초석·옥개석·와편 등이 산재해 있는데 석축으로 된 우물터도 남아 있다. 이 우물터에선 지금도 약수가 샘솟는다. 그제 사단법인 광교산사랑시민운동본부가 개최한 ‘광교산 생태환경 보존 및 도립공원화에 따른 제3차 학술세미나’에서 “창성사를 복원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영주 부석사를 중건한 진각국사가 주지였던 수원 창성사는 부석사의 규모였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선견지명인지 몇해 전 수원시가 창성사지 1만여평을 매입했다고 한다. 창성사 복원 제의의 귀추가 주목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선견지명

조선 중종 때 장무공 황형(壯武公 黃衡)은 삼포왜란 같은 왜구의 침입을 막아낸 무신이다. 장무공이 나이가 들어 벼슬을 물리치고 강화도로 낙향했을 때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나이가 지긋한 서울 양반이 날마다 콩을 볶아 아이들한테 군것질감으로 나눠주면서 하는 말이 “산기슭에 난 어린 소나무 싹을 캐다가 바닷가에 옮겨 심으라”는 것이었다. 볶은 콩을 얻어 먹는 맛에 아이들은 열심히 어린 소나무를 옮겨다 심고, 장무공은 옮겨 심은 소나무에 물을 주고 가꾸어 어느새 소나무밭이 바다를 끼고 수십리에 달했다. 그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나이가 드셨는데 뭣하러 소나무를 그렇게 많이 심으십니까?”하고 물었다. 장무공은 다른 말 없이 “장차 이 소나무들이 반드시 큰 힘이 될 것입니다.”하였다. 70여년이 지나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강화도 바닷가에 심은 소나무는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고, 그 뒤 다시 일어난 정유재란에 왜군이 침입했을 땐 임금이 피신할 거처를 마련하는 데 재목으로 사용됐다. 백년, 이백년씩 묵혀야 제맛이 난다는 서양의 고급 포도주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생산되는 것은, 내가 담근 술을 비록 내가 맛보지는 못하지만 먼 훗날 후손이 즐길 것이라는 마음으로 술을 담그기 때문이다. 먼 옛날 조상이 나를 위해서 마련한 술을 내가 마시니 나도 먼 훗날 내 후손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포도주창고는 단 한 번도 비어 있는 일 없이 몇 백년 동안 대를 이어 물려진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서 내일을 모른다고 한다. 서둘러 올라갔다가 급히 떨어져 토룡(土龍)의 신세가 됐다고 한다. 길게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얘기들이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언제나 뒤를 먼저 본다. 역사라는 오랜 과거 속에서 나아갈 바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장무공 황형이 어린 소나무 싹을 바닷가에 심어놓은 것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서양에서 오래 묵은 포도주가 계속 남아 있는 것도 선견지명이다. 2006년 세모를 맞이해 돌아보니 세월이 참으로 빠름을 실감케 된다. 그동안의 삶에 선견지명이 없었던 것 같아 뉘우쳐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화가의 아내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은 원래 이름이 야마모토 마사코였던 일본인이었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이중섭을 만나 역(逆)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일본인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찬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공교롭게도 6·25 전쟁까지 터져 피란수용소를 전전해야 했다. 결국 이남덕은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이후 이중섭의 삶은 피폐해졌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결합하지 못했다. 이남덕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건너온 그녀의 7년 세월은 기구한 세월이었다. 북녘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혼자 월남했던 박수근은 부두 노동자 시절 아내와 비슷하게 생긴 여인을 보고 5리길을 정신없이 따라간 적이 있었다. 박수근의 그림에 유난히 여인이나 가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가족을 상봉했지만 가족은 언제나 박수근 그림의 중심이었다. 김기창과 박래현은 한국 최초로 부부전(夫婦展)을 개최했던 화가였다. 두 사람은 박래현이 타계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전시회를 부부전 형식으로 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도쿄유학까지 마친 박래현은 남부러울 것 없는 도도한 여성이었고, 김기창은 어릴적 청력을 상실한 정규 미술교육도 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 두 사람은 필담을 나누며 사랑을 키웠고 화가의 길을 동행하였다.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부부가 대단한 건 서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았으면서도 독립된 미술세계를 가진 점이다. 김환기의 아내인 수필가 김향안은 시인 이상(李箱)의 부인이었다. 이상과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난 김향안은 평생 김환기의 반려자이자 매니저로 살았다. 미술경영인이라고 불릴 만큼 남편의 미술세계를 세상과 접목시키는 데 큰 능력을 발휘했다. 빨치산 화가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다 최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양수아의 유명한 그림 ‘재봉틀질하는 여인’의 모델은 바로 아내 곽옥남이다. 그림 속에서처럼 그녀의 생계수단은 재봉틀질이었다. 양수아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난 후 곽옥남은 화가로 한 번도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채 삶을 마감한 남편이 안타까워 많이 울었다. 예술혼을 지킨 화가들과 그 화가를 지킨 아내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감동을 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강신성일 씨

본명은 강병규 인 걸로 안다. 대구 출신이다. 예명 신성일(申星一)은 고인이 된 신상옥 감독이 지어주었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은막에 데뷔했다. 부인 엄앵란씨와 함께 처녀 총각 시절에 국내 청춘영화의 명콤비를 이루었다. 무려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8년 제10회, 1990년 제2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에 이어 2004년 제41회 대종상 영화발전상 등 대종상을 세 번 수상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을 지냈다. 강신성일이란 이름은 1981년 서울 마포에서 본명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한 뒤에 성씨에 예명을 합성한 이름이다. 제16대 국회 총선 때 대구에서 강신성일로 나와 당선됐다. 그러나 이것이 비운의 단초가 됐다.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로부터 편의제공 조건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징역 5년 선고가 확정됐다. 지금 의정부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전 국회의원이기 보다는 영화배우 강신성일씨에 대한 가석방 탄원서가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왔다.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이 돌린 탄원서에 여야 의원 187명이 서명했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김형오 한나라당, 김효석 민주당,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등도 서명에 참여했다. 탄원서는 며칠전 김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됐다.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한 점과 올해 일흔살인 노령을 참작해 관용을 호소한다’는 것이 가석방 탄원서 내용이다. 탄원서와 관련, 시선을 끈 인터넷의 한 댓글은 이렇게 밝혔다. ‘신성일이 이회창 후보의 경호원처럼 설치고 다닐 때는 아닌게 아니라 꼴불견이었다. 그러나 나이 70에 아직도 갇혀있는 그를 생각하면 안 됐다는 생각이(중략) 정치판에서 큰 돈을 주무른 자들은 복권되고 장관 자리에 오른 경우가 여러 건 아니던가’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가석방 탄원에 나선 것은 강신성일씨가 전직 의원인 연유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인 강신성일씨에 대한 선처 탄원은 객관적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수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있다. 법무부의 신병처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 임양은 주필

6자회담 엘레지

북측이 핵 실험후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선심쓰듯이 해가며 밝힌지가 꽤 됐다. 그런데도 날짜 잡기로 마냥 소일한다. 가까스로 날을 잡아 오는 16일 열릴 것이라더니 18일로 또 늦춰졌다. 회담이 재개된다 하여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미측의 선 핵폐기 증거 제시 후, 금융제재 논의와 북측의 선 금융제재 해제 후, 핵 논의의 샅바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때로는 회담 중단 사태도 겪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 6자회담이지 북·미·중 3자 놀음이다. 이른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하는 북·미간의 신경전인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의 영향력을 받긴 하면서도 북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 6자회담을 둘러싼 작금의 분위기다. 정작 남북간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하는 일이 거의 있는 것 같지 않다. 일본이나 러시아보다 더 배제당하고 있다. 회담 재개 추진 과정에서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 정부의 의사를 물은 적도, 정부가 의사를 개진한 것도 별로 없다. 북측과도 통로가 막혀 있다. 평양정권은 6자 회담에 복귀하겠으니 빨리 대북지원이나 하라는 투다. 지원사업이나 할 때만 남쪽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 북의 대남 고자세다.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을 두고 역할이 없는 것은 평양정권에겐 무시당하고, 미국측엔 불신당하고, 중국으로부터는 멸시당하는 소치다. 또 평양정권이 핵 실험을 하기 전부터 이미 구상해 놓은 포석의 수순인 것이다. 즉 6자회담을 미끼로 국제사회의 압력을 최대한 완화, 식량지원도 모색하면서 핵 보유국으로 가고자하는 시간 벌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뾰족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의 공조는 말뿐, 되레 정보공유를 기피당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중국 등에 의해 겨우 정보를 입수하는데 그친다. 자주국방, 자주외교를 입버릇 삼던 이 정부가 결국은 ‘왕따’를 자초하고 말았다. 동맹없는 자주는 이불속에서 활개치는 꼴이다. 햇볕정책이며 포용정책은 햇볕만 쪼여주고, 포용은 오히려 북의 역 포용정책에 포용당한 형상이 되어간다. / 임양은 주필

‘청소를 못한다’니

요즘 학교 화장실은 수세식이다. 재래식 청소는 고역이 많았다. 그래도 학생들이 다 했다. 교실은 난로에 조개탄을 태웠다. 처음 불을 지피는 게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온갖 불쏘시개를 동원해가며 조개탄에 불을 댕기고나면 교실안이 온통 연기 투성이가 되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이렇게 해서 난로를 피웠다. 교실 청소는 당번을 정해 날마다 돌아가면서 했다. 겨울에도 물걸레질을 했다. 국회예결위가 심의중인 내년도 정부 예산안 가운데 색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교육부가 책정한 초·중고등학교 청소인력 지원비가 논란이 됐다. 전국 5천876개교에 238억원이 책정된 것이다. 이를테면 학교가 지원받은 돈으로 사람을 사서 청소를 시키는 것이다. “청소도 교육의 일종인데 꼭 이래야 되느냐”는 국회의원들 질문에 “요즘 초·중·고등 학생들은 집에서도 청소를 안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교육부측 답변이다. “간단한 교실이나 복도 청소는 학생들에게 시키지만 화장실 청소는 학부모 등의 반발이 있어 아주머니들을 고용해서 시킨다”는 건 서울시교육청측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청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학교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논란의 초점이다. 재래식도 아닌 수세식 화장실 청소가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 집이고 할 것 없이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과보호해 나약하게 키운다는 점이다. 이러니 아이들 체격은 좋아져도 체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체력만이 아니고 의지력도 없어져 충동적으로 되어만 간다. 이즈음은 청소 장비가 좋아져 집안청소 하는데도 큰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데도 ‘집에서 청소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식의 교육부측 말은 충격이다. 귀여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구별된다. 청소는 자기 주변의 정리다. 아무리 귀여워도 때로는 가르쳐 시켜야 한다. 공주처럼, 왕자처럼 키우는 것이 참된 모성애나 부성애는 아니다. 벌레먹은 과일은 엄마가 먹고 성한 과일만 골라주어 받아먹던 아이가 하루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벌레먹은 과일을 더 좋아해요!”라고. 아이를 잘못키운 엄마의 잘못이 큰 것이다. / 임양은 주필

‘간첩’에 관대한 나라

미국 해군에 근무하던 재미교포 로버트 김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국가기밀을 건네 간첩 혐의로 1996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자신이 전달한 정보가 언론이나 외국에 공개된 것을 정리해놓은 수준이라고 항변했지만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의 처벌을 받았다. 만일 로버트 김이 우리나라의 정보를 미국에 전달했다면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토록 규정,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동맹국인 미국에 우리 정보를 넘길 경우, 간첩죄로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북한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해석되기도 했다. 우방국이 잠재적 적국이 될 수도 있지만, 외국을 위해 매국, 반역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셈이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 ‘적국’으로 한정된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2년 넘게 국회에 계류중이다. 우리나라만 ‘간첩’에 관대한 셈이다. 그러나 영원한 우방만 믿는다는 건 냉혹한 국제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다. 미국을 비롯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에 해가 되거나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한다. 동맹국인 한국의 로버트 김을 간첩죄로 적용한 경우다. 검찰이 “정보 유출 등에 대해 ‘적국’으로 넘어갔을 경우에만 간첩죄로 처벌하는 것은 우리나라뿐” 이라며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건 그래서 타당하다. 최근 모 기업인이 민감한 국내 정보를 수집, 미국에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전망이지만, 이 기업인의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현행법상 ‘간첩’은 아니다. 설혹 다른 나라 간첩들이 국가기밀을 빼내가더라도 북한으로만 넘어가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간첩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국내정보 유출 의혹을 전면 부인한 이 기업인에 대한 조사를 검찰이 위증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국가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서 법·제도 정비는 매우 시급하다. ‘북한간첩’만 간첩으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春海 方仁根

1924년 창간된 종합월간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은 한국 신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4호까지는 이광수(李光洙)가, 5~18호까지는 방인근(方仁根)이 주재했다. 1927년 이후 휴간·속간을 거듭하면서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됐다. ‘조선문단’은 자연주의 문학을 성장시켰으며, 당시 한국문단을 휩쓸던 계급주의적 경향문학(傾向文學)을 배격하였다. ‘조선문단’에 작품을 많이 발표한 사람은 이광수·방인근·염상섭·김억·주요한·김동인·전영택·현진건·박종화·나도향·이상화·김소월·김동환·양주동·노자영·진우촌·양백화·조운·이일·김여수 등으로 모두 한국문학의 거성들이다. ‘조선문단’은 춘해 (春海) 방인근(1899~1975)의 사재로 시작됐다. 춘해는 충남 예산 출생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독문과를 수학했다. 1924년 ‘조선문단’을 창간했는데 이는 당시 문단을 풍미했던 계급주의적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대항, 민족주의문학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춘해는 초기엔 詩를 썼으나 소설로 전향했다. ‘분투’(1923), ‘어머니’, ‘죽지 못하는 사람들’ ‘순간의 낙원’ ‘금비녀’ ‘행진곡’ ‘눈물 지팡이’ ‘모빠이모껄’ ‘새길’ ‘은행나무’(1941)등 수 많은 단편과 ‘슬픈 해결’(1939) 등의 중편, ‘마도의 향불’(1934) ‘춘몽’ ‘쌍홍무’ ‘방랑의 가인’ ‘젊은 아내’ ‘동방의 새봄’ ‘여인풍경’ ‘명일’ ‘인생극장’ ‘청춘야화’ ‘동방춘’(1956) 등의 장편, ‘금십자가’(1932) 등 희곡, ‘농민문학과 종교문학’(1927) 등 평론을 썼다. 광복 후 한때 탐정(추리)소설도 썼다. 춘해는 소설의 심미적 가치나 사회성보다는 낭만주의적 대중소설을 주로 발표했는데, 그런 연유로 춘해를 통속작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무명작가들이 춘해의 이름을 도용해 저질 해적판을 발간,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충청도 토호의 아들로 논밭을 팔아 ‘조선문단’을 창간하고, ‘조선문단’에 발표되는 시 한 편에 쌀 한가마니값을 지불한 얘기는 유명한 문단비사(文壇秘史)다. 타계하던 해 여름날 송추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주정처럼 한 “지금 계룡산에 백설이 내린다”는 말이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매 맞는 엄마

아이들이 엄마를 때린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5,6학년생, 중학생까지 대부분 남자 아이들이지만 여자 아이들도 있다. 컴퓨터 게임을 그만 하라고 해서, 밥 먹으라고 너무 귀찮게 해서, 도대체 말 귀를 못 알아들어서, 공부공부하는 게 지겨워서, 대놓고 ’씨xx’ ‘x나’ 같은 욕설을 퍼붓는다. 요구를 거절 당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덤비고, 침을 뱉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쳐서 멍이 들기도 한다. 책이나 CD를 집어 던지는 건 약과다.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 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환자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청소년과 환자 50% 정도가 엄마를 폭행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때리는 건 아주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외국에선 청소년 폭력 비행 장애가 대부분 집 밖에서 이뤄지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집 안에서 특히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엄마를 상대로 일어나는 게 특이한 현상이다. 엄마들의 헌신에 대해 아이들은 ‘내가 꼭두각시냐’ ‘네가 좋아서 한 거지 내가 언제 해달라고 했느냐’는 식으로 대든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경우 “뭐야!” “시끄러!” 혼잣말을 해대며 헝겊 인형을 스테이플러로 퍽퍽 찍어댄다. 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날 때 엄마가 옆에 와서 시중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피곤해서 숙제를 못하겠다고 엄마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고 때리고 발로 차고 물어 뜯는다. 급기야는 학교에서도 그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엄마를 때리는 원인은 기질적 문제, 중독, 과도한 간섭과 압박, 불안과 애착 장애, 가정 불화로 분류할 수 있는데, 엄마들에게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엄마들이 “창피하다”는 이유로 바깥에 알리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멀쩡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의 폭력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집안 체면이나 학업을 계속해야 한다며 쉬쉬하고 넘어간다. 자식을 과잉적으로 보호하는 탓이다. 아이가 때리면 ‘절대로 맞지 말라’ ‘힘으로 맞서지 말라’ ‘빌지 말라’ ‘평소에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이른바 ‘대응책’도 있고, 단순히 버릇없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반항장애’로 적절히 치료를 해야한다는 정신과 의사의 의견도 있지만,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엄마가 매를 맞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은 엄하게 키워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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