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사형제도

중국의 부패는 겉으로 많이 알려졌다. 1980년 이후 부패 공직자의 해외 도피가 줄을 이어 4천명을 넘는다. 1988년 이후 15년 간 약 1천914억 달러(약 178조원)가 해외로 빼돌려졌다. 최근 중국 베이징시 제1 중급인민법원이 뇌물을 받고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의 시판을 승인해 준 장관급 관료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신화사통신이 보도했다. 재판부는 전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정샤오위 국장에게 뇌물수수와 직무태만 혐의로 사형을 선고하면서 “그는 공직자의 청렴 의무를 위반한 것은 물론 인민의 생명과 건강안전을 위협하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여파를 초래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정 전 국장은 가슴 성형 주사제 등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승인해주는 대가로 본인이나 가족이 649만 위안(약 7억9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1998년 국가식품약품감독국 출범 당시 초대 국장을 맡았던 그는 2005년 수뢰 혐의가 드러나 면직됐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정부가 모든 약품에 대해 국가식품약품감독국의 승인을 받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정 전 국장이 검사도 하지 않고 승인해 준 항생제를 먹고 환자 10명이 숨지는 등 불량 식품과 의약품을 먹거나 복용한 환자들의 사망 사고가 잇따랐었다. 중국에선 지난해 허베이(河北)성 대외무역경제협력청 부청장이었던 리유찬이 4천744만 위안(약 58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형당했다. 2000년에는 광시(廣西) 좡주(壯族)자치구 주석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을 지낸 청커제가 4천109만 위안(약 48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에선 마쓰오카 도시카스 농림수산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선 의원인 마쓰오카는 임대료가 없는 의원회관을 사용하면서 사무실 광열비와 수도료 명목으로 거액을 청구한 사실이 밝혀져 올 초 부터 비리 추문에 시달려 왔다. “내 부덕의 소치다. 내 목숨으로 책임과 사과를 대신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중국과 일본의 부패 공직자가 걷는 말로(末路)를 보면 일단 ‘부인’부터 하고 보는 한국의 부패 공직자는 너무 뻔뻔하다. 중국처럼 한국에도 부패 공직자에 대한 사형제도가 있었으면 어떨까 싶다. /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 ‘구이문화’

모든 인류가 그랬지만 우리 민족은 특히 불과 인연이 깊다. 불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으며 집안 대대로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다. 불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 갖가지 철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여기에 힘 입어 농경문화도 발달했다. 오늘날 세계 제일의 철강소나 조선소를 보유한 것도 이 같은 기술이 축적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조상의 불을 다루는 솜씨는 음식문화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바로 ‘구이문화’다. 한국인은 구워 먹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물론 마늘·김치·감자·두부까지도 이들과 함께 구워 먹는다. 오징어·주꾸미·(곰)장어·조개 등 해산물도 예외는 아니다. 구이문화를 대표하는 ‘불고기’는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외국인 설문조사에서 김치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문화상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숯불구이는 우리나라만의 독보적인 음식문화다. 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양념에 저민 고기를 ‘직화(직접 불 기운이 닿음)’로 연기를 내며 구워 먹는 음식문화는 서양에도 없고 음식문화의 강국인 중국에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야키니쿠’라고 하는 양념 갈비구이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것은 불고기와는 달리 단맛을 내는 일본식 요리다. 불고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이문화의 상징이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특히 양념의 주재료가 되는 마늘과 된장까지 홍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는다. 불고기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시대의 고기구이인 ‘맥적’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맥’이란 중국의 동북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고구려를 지칭한다. ‘맥적’이란 꼬챙이에 끼워 미리 조미해둔 고기를 직화에 구운 것으로 석쇠가 나온 이래 지금의 불고기가 됐다고 한다. 중국의 고기요리는 전통적으로 미리 조미하지 않고 굽거나 삶아서 조미료에 무쳐 먹는 데 반해 ‘적’은 미리 조미하여 굽기 때문에 ‘장이 없다’는 뜻에서 ‘무장’이라고도 하였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구이문화를 선호하는 것은 고기 이외에 갖가지 맛있는 반찬이 딸려 나오고 특히 고기에 양념이 배어 있어 맛을 더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이음식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외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한국식소스(양념장)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어사전에 없는 말들

언어학(philology)은 언어의 음운, 문자, 문법, 어휘 등에 관하여 역사 및 지리적 형태를 밝혀 계통을 세우는 학문이다. 언어학은 이래서 말은 지역마다 갖는 시대적 생활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세계 여러 나라, 인종마다 말이 다른 이유는 지역적 생활 특성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지역, 같은 인종일 지라도 시대에 따라 말이 또 다르다. 고어와 현대어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 말을 예로 들면 고시조 초장에 나오는 것으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란 글귀가 있다. 문제는 ‘우지진다’는 대목이다. 현대적 해석을 하자면 ‘우지지는구나!’하는 감탄조로 보겠지만 그게 아니다. ‘우지지 않느냐?’는 반문조가 정답이다. 고어는 ‘ㄴ다’로 매듭짓는 말은 반문의 뜻을 나타낸다. 고어만도 아니다. 요즘은 시체말로 한 해가 다르게 세대 차이를 느낄만큼 변화가 빠르다. 문명의 발달은 생활의 변혁을 가져오고, 생활의 변혁은 생활수단인 언어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령 ‘댓글’이니 ‘악플’이니 하는 말은 컴퓨터가 없었던 예전엔 있을 수 없었던 단어다. 컴퓨터문화의 다양화는 이외에도 새로운 말을 많이 쏟아내고 있다. 시대생활의 변화는 또 신조어를 수반한다. ‘얼짱’ ‘몸짱’ 같은 게 이에 속한다. 미인(美人)의 관점도 달라져 미안(美顔)의 단순 개념보다는 복합 개념의 표현인 것이 ‘얼짱’이다. ‘몸짱’은 팔등신(八等身)의 인식이 아닌 에스(S)라인이 포인트다. 그런데 이런 새 단어나 신조어는 언어학자가 아닌 대중이 만들어 낸다. 현대사회의 대중에선 특히 젊은층이 많이 만들어내는 건, 시대상에 적응하는 감각적 순발력이 빠른 탓이다. 새 단어나 신조어가 유행을 타는 당초에는 기성사회의 저항을 받는다. 기성사회의 저항속에서도 유행어가 토착화되는 것은 시대생활의 흐름을 타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도태되는 새 단어나 신조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행 과정에서 걸러져 현대어가 돼버린 말들이 적지 않다. 일상용어인 단어가 국어대사전에 없는 것은 용어가 잘못됐기 보다는 사전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최근 ‘아내와 여자친구’를 의미하는 ‘wag’(와그)등 수백개의 신조어를 증보한 영어대사전 개정판을 출판했다. 국어대사전의 새로운 수록을 검토하는 학계의 노력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임양은 주필

대통령 후보가 50명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제도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예비후보 등록이다. 중앙선관위에 의하면 지난 4월23일 등록을 시작한 지 50여일만에 벌써 50명이 등록했다. 대통령 후보가 날마다 1명 꼴로 나온 셈이다. 예비후보 등록이 이토록 많은 것은 재야 무명인들의 등록이 사태가 난데 있다. 정치권 인사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후보자들이 10여명에 이른다. 가히 대통령 후보 풍년인 것이다. 한데, 정치권 뿐만이 아니고 비정치권의 일반 사회에서도 대통령 후보가 마구 쏟아지고 있다. 지금으로써는 50명의 예비후보 가운 덴, 정작 정치권 인사는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다 정치와 무관한 일반인들이다. 회사원도 있고, 농부도 있고, 청소원도 있다. 직업은 이밖에도 문인, 종교인 등 다채롭다. 물론 남성들만이 아니고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막상 5억원의 기탁금을 내고 오는 12월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 본선에 나올 사람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나름대로의 생각은 있겠지만 예비후보로 대부분 끝낼 것으로 보는 것이 선관위의 관측이다. 예비후보가 많은 건 등록이 쉬운 탓이다. 따로 드는 돈도 없고 일정 인원의 추천인 같은 것도 필요없다. 누구든 만 40세 이상의 국민으로 피선거권에 흠만 없으면 등록신청서 종이 한 장에 써내면 된다. 대선 후보자들로 하여금 본선 선거기간에 앞서 제한적으로나마 선거활동을 하도록 해 공명선거의 활성화를 기하려고 한 것이 예비후보 등록제의 취지다. 그런데 좀 빗나갔다. 예비후보는 진짜 대통령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11월25일 전날까지 접수된다. 남은 6개월동안에 또 얼마나 많은 등록신청이 있게될 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예비후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등록 군상의 심리는 동키호테와 같다. 그렇긴 해도 흥미로운 점이 없지 않은 가운데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일반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다. 비록 무명일지라도 대통령 선거의 예비후보 지위만으로 세상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풀 수 있는 위안이 된다면 굳이 나쁘다 할 게 없을지 모른다. 또 하나는 나라의 법제, 즉 대통령 선거제도가 희화화되고 있는 점이다. 이래서 예비후보 등록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올 수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임양은 주필

장안문 성곽복원 준공식

수원시장안구영화동 329 일명 북문 광장에서 볼거리가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5시에 있었던 장안문 성곽복원준공식이다.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한지 211년을 맞아 1920년 일제가 신작로(新作路)를 내느라고 허문 57m 부분을 복원한 것이다. 30m는 옛 모습대로 성곽을 쌓고 27m는 보도육교를 만들어 연결시켰다. 지난 2005년 12월 26일 착공, 1년5개월여만에 준공을 본 복원공사에 33억5천700만원이 들어갔다. 국비 20억, 시비 9억2천900만원, 도비 4억2천800만원 순이다. 문루가 2층으로 된 장안문은 성곽 대문으로 처마의 웅자가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한국전쟁 때 불행히도 문루가 소실됐으나 1975년 ‘화성성역의궤’의 고증에 의거 복원됐다. 준공식은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용서 수원시장, 홍기헌 수원시의회의장 등과 다수의 시민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됐다. 무예24기 시범공연에 이어 고유제가 거행됐다. 준공식을 계기로 성문을 새로 여는 장안문 개폐 수위의식에서는 궁중복으로 분장한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거둥이 있었다. 성문이 열리면서 행차가 성안으로 들어서자 오색 농무가 풍기며 안산 경영정보고등학교 취타대의 청아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테이프 커팅이 끝나고 나서다. “혹시, 왕비이신지오?” 혜경궁 홍씨역에 안산에서 왔다는 어느 할머니가 그렇게 묻자, 정조역이 미소 지으며 “제 어머님이십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사도세자의 부인! 어머 불쌍해라!”하면서 잡았던 혜경궁 홍씨역의 손을 놓고는 꾸벅 큰절을 하는 정경이 있었다. 테이프 커팅을 하면서 김 지사가 어린이를 데리고 나간 모습은 보기 좋았다. 관중석의 아이를 가리키며 자꾸 나오라고 해서 처음엔 자기 집안 아이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무작위로 지명했던 것이다. 김 시장도 아이와 함께 커팅을 했는데 무척 자상했던 것 같다. 그 어린이가 커팅을 마치고 제 어머니에게 돌아와서는 “시장님이 잘못하면 손가락 벤다며(요령을) 가르쳐 주셨어요”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준공식은 약 한시간 동안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승객들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을 둔 수원은 사실상의 제2 수부(首府)였다. 장안문의 ‘장안’(長安)엔 나라의 안녕과 민생의 안정을 기하려고 했던 대왕의 웅지가 담겼다./ 임양은 주필

茶山 詩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일표이서(一表二書)’를 비롯, 800여권에 달하는 저술을 통해 철학·사상·과학·지리·법률·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눈부신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 2천500여편에 달하는 詩는 그의 실학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의 경향을 띤다. 덮어 두거나 왜곡하지 않고 축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다산의 눈에 비친 현실은 젖을 빨고 있는 아이와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물리는 가슴 아픈 시대이다. 다산의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은 성리학에 젖은 당대 지배층의 가치관으론 절대로 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그 아픔과 절망까지 그대로 그려내어 개혁하고 정화하고자 하였다. 다산의 시는 부패한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을 노래하였다. “새로 걸러낸 막걸리 빛처럼 뿌옇고(新芻濁酒如潼白) / 큰 사발에 보리밥의 높이가 한 자로다(大碗麥飯高一尺) / 밥을 먹자 도리깨를 잡고 마당에 나서니(飯罷取枷登場立) / 검게 그을린 두 어깨가 햇볕을 받아 번쩍이는구나(雙肩漆澤飜日赤) / 소리를 내어 발 맞추어 두드리니(呼邪作聲擧趾齊) / 순식간에 보리 낱알들이 마당 안에 가득하네(須臾麥穗都狼藉) / 주고 받는 노래가락이 점점 높아지고(雜歌互答聲轉高) / 단지 보이는 것이 지붕 위에 보리 티끌 뿐이로다(但見屋角粉飛麥 ) / 그 기색을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觀其氣色樂莫樂) /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았네(了不以心爲刑役) /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데(樂園樂郊不遠有) / 무엇 하려고 벼슬길에서 헤매고 있으리오(何苦去作風塵客)” ‘타맥행(打麥行)’이란 이 시는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는 낙원을 노래하였다. 그 낙원은 질박하고 담백하지만 강인한 민중의 삶으로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데에서 이상 세계를 구하지 않고 농민의 삶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정석을 찾으려는 이 시는 경학과 실학의 정신이 관통한다.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은 끊임 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 개혁의 희망과 의지를 뒷받침해 준다. 문학으로도 시대를 개혁하려했던 다산 정약용이 더욱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파트 동대표

직장에서 물러난 60대와 70대가 주로 맡았던 아파트 동대표 자리가 30대와 40대에게 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정보통신(IT)에 밝은 이들 동대표들은 ‘아파트 문화혁명’을 주도한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 신도시와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새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수원시 영통지구 청명마을 주공4단지의 경우, 아파트 관리비 내역이나 동대표 모임에서 맺은 각종 계약 내용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 이 아파트는 단지 안에서 알뜰 장터를 여는 업체 등을 선정하는 설명회를 열 때마다 전 과정을 TV로 생중계한다. 또 설명회를 못 본 입주민들을 위해 설명회를 모두 녹화해 둔다. 동대표들은 아파트 관리내역을 점검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이런 노력으로 이 아파트 단지는 관리비를 절약하는 효과를 톡톡히 본다. 모두 946가구인 주공4단지는 현재 관리비가 연간 16억원 정도다. 이는 영통지구에 있는 비슷한 가구수·평형대의 단지보다 1억원 정도 적다. 관리가 투명해 중간에 낭비되는 돈을 줄여 관리비를 절약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아파트 관리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공4단지 공동체가 특별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의 시세는 비슷한 평형대의 다른 아파트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경기도청이 2004 ~ 2006년에 정보 공개와 회계 관리가 투명한 아파트로 선정한 이천 현대사원, 수원 강남, 의정부 신도4차 아파트 등 일곱 곳의 동대표는 대부분 40대라고 한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부터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활동을 주도하고 회원(주민)들에게 ‘검증’을 받은 30 ~ 40대 중 상당수는 입주 이후 자연스럽게 동대표를 맡는다. 올 2월부터 입주 중인 화성 동탄 신도시의 경우, 입주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직후부터 단지별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했다. 현재 분양이 된 단지엔 모두 인터넷 카페가 개설돼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파트 마감자재는 무엇이고, 조경은 어떻게 되는가’를 꼼꼼히 따져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했다. 당연히 뒷돈 거래가 사라졌다. 그래서 주민들은 인터넷 카페를 이끈 30 ~ 40대가 동대표를 맡기를 원한다. 아파트 단지가 경제적으로 운영되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경로 차원의 동대표 자리에서도 노인들이 퇴출 당하는 듯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인간이 호랑이보다 잔포하다’

‘호정문(虎穽文)’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글이다. 호랑이보다 잔인포악한 사람의 본성을 풍자적으로 담은 내용이다. ‘어우집(於于集)’ 권5에 수록돼 있으며, 이가원(李家源)이 ‘한국한문학사’에서 전문을 수록하고 ‘호정’이라 약칭을 썼는데, 그 뒤 ‘호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고 인간이 태어난 뒤로 호랑이보다 잔포(殘暴)한 것은 없었다. 요왕·우왕·주공과 같은 성인이 나와서 이들을 내쫓아 백성이 편안히 살도록 하였으나, 호환은 그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리산·대둔산·계룡산·속리산 등의 명산 거악이 많아 호랑이의 피해가 그치지 않았다. 행상을 다니다가, 농사를 짓다가 해를 당하고, 낚시를 하다가 혹은 물을 긷다가도 호랑이에 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때 무인 홍공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덫을 설치하였다. 덫을 설치한 뒤 피곤하여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꿈속에 창귀(?鬼)가 큰 호랑이를 타고 나타나 “왜 호랑이를 잡으려 하느냐?”면서, 인간은 호랑이보다 더 잔포한 존재임을 말한다. 인간은 죄 없는 돌을 쪼개고, 죄 없는 나무를 자르고, 죄 없는 물고기를 그물로 잡고, 죄 없는 동물을 덫으로 잡는다. 뿐만 아니다. 같은 인간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니 인간은 호랑이보다 훨씬 잔혹하다고 일갈한다. ‘예기(禮記)’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라는 데서 인간이 호랑이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출발하고 있다. ‘호정문’에서도 인간의 잔심폭성(殘心暴性)은 호랑이의 사나움보다 훨씬 더 하다는 사실을 홍공의 꿈에서 창귀의 입을 빌려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쟁을 일삼는 당쟁의 고질적 병폐를 목도한 유몽인의 현실인식이 반영된 게 자명하다. 문학사측면에서도 호랑이의 효심과 우애를 인간의 윤리의식과 비교했다. 이 글은 인간의 악랄한 심성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올바른 인간상을 만회하려는 노력이 완연히 나타난다. ‘호정문’은 조선 후기 이광정(李光庭)의 ‘호예(虎倪)’를 거쳐, 박지원(朴趾源)의 ‘호질(虎叱)’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오늘날 인간사회를 꾸짖는 것 같아 면구스러울 때가 많다. / 임병호 논설위원

6·25와 현충일

인민군의 소련제 탱크는 괴물이었다. 중무기라고는 고작 박격포 뿐이었던 국군이 박격포로 아무리 공격해도 탱크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벽두, 국군 7사단 9연대 2대대는 포천시 신북면 연제기골 야산을 넘어오는 인민군 105전차여단 예하 부대와 맞서 싸웠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났다. 참 긴 세월이다. 그 현장에서 군화, 수통, 야전삽 등이 발굴됐다. 전사자 유해 18구도 수습됐다. 그러나 야산에는 100개가 넘는 참호터가 발견됐다. 적어도 100명이 넘는 국군이 전차를 앞세운 인민군과 싸우다가 거의 전사한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유해를 8사단으로 봉송, 8사단은 어제 국립묘지 안장에 앞서 합동위령제를 올렸다.(5일자 본지 보도) 이들 전몰 장병은 비록 인민군의 남침을 저지하지 못하고 장렬히 옥쇄했지만 큰 공을 세웠다. 전선 후방의 전렬 정비에 시간적 여유를 갖게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육탄공격으로 탱크에 맞섰던 것이다. 수습되지 못한 유해가 아직도 많을 것이다. 6·25 참전용사 가운 덴 무공을 세우고도 훈장을 수여받지 못한 분이 많다. 자신이 훈장을 받게 된 줄 모른 가운데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YTN에서는 한동안 ‘훈장을 찾아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훈장의 주인공을 찾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어제 광명 육군 52사단에서 뜻깊은 훈장 수여식이 있었다. 전국의 요소 부대에서 6·25 무공 수훈용사 300여명에게 수여하는 훈장 수여식이 52사단에서도 거행된 것이다. 뒤늦게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짚차에 분승, 부대를 사열하는 70대~80대의 노병들 모습은 경외스럽게 보였다.(5일자 본지 보도) 노병들 가슴은 아마 벅차게 뛰었을 것이다. 전사한 전우들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웠을 것이다.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여 잘 가거라’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여!’는 ‘전우가’ 가사의 한 대목이다. 전사자나 생존자나 이들 참전 용사들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지킨 덕으로 우린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로 반세기 넘어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수훈 노병들에게 위로를 보내면서, 젊음을 순국의 산화로 꽃피운 전몰 장병들 명복을 빌어 삼가 합장한다./ 임양은 주필

신·구기득권층

프랑스 부르봉 왕조는 왕권신수설을 신앙화했다. 루이 16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까지 극언했다. 정치사상가 보댕 역시 저서 ‘국가론’에서 강력한 국가를 위한 강력한 왕권을 주장, 왕권신수설을 주창했다. 그의 강력한 국가론은 중상주의 발달에 선구적 기여를 했으나, 왕권론은 중상주의 발달이 부메랑이 되어 시민사회의 저항에 부딪혔다. 1789년 7월 부르봉 왕조의 거듭된 실정과 절대주의적 봉건제도에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지배계급의 부패, 사회계급의 심한 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혁명문학 등이 도화선이 되어 불똥이 번졌다. 혁명의 성공으로 국민의회는 인권선언을 공포했다. 헌법을 새로 정해 공화정제(共和政制)가 출범했다. 루이 16세는 1792년 결국 처형되고 영화를 누리던 귀족들은 해외로 도피했다. 도피 생활은 비참했다. 나폴레옹 제정의 왕정복고로 공화정이 무너졌다가 나폴레옹 몰락에 의한 루이 18세의 집권으로 도망간 귀족들이 20여년만에 귀국했다. 귀족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옛 영광을 추구했다. 이른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 풍미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 절대 군주의 봉건제도 회귀를 꿈꾸는 귀족들을 본 탈레랑은 “그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 것도 잊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프랑스는 당시 루이 18세의 집권에도 시민사회, 시민의식의 발달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시절이다. 이런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귀족들을 향해 탈레랑은 혁명과 도피로 겪은 고초에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옛 꿈에 젖어빠진 것에 질책을 가했던 것이다. 그 무렵의 프랑스 귀족사회는 무위 무능한 기득권층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귀족은 물론 없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기득권층은 있다. 기득권층도 구기득권층, 신기득권층 등 이중 구조다. 한국 지배계급 양상은 신·구 기득권층 구조의 대립이다. 그러나 분명한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둘 다 무위 무능하다는 점이다. 권력과 무관한 시민의식의 발현이 오는 12월 대선을 심판하여야 한다. 대선을 둘러싼 말 유희는 갈수록 더 성찬을 이룰 것이다. 그들은 역시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 것도 잊지 않았다. 시민의식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인 것이 자연법적 사상이다./ 임양은 주필

수원 ‘프랑스군참전기념비’

6·25 한국전쟁의 비극은 전투병력의 전사자만도 막심하다. 남쪽은 국군 15만여 명, 유엔군 3만여 명 등 18만여 명이 죽었다. 북쪽은 인민군 52만여 명, 중국공산군 90만여 명 등 142만여 명이 죽었다. 부상자 등은 이보다 몇 배나 더 많다. 중국공산군의 전사자가 많은 것은 인해전술 탓이다. 6·25전쟁 전적비 및 기념비가 많다. 수원 지지대고개에도 있다. 수원에서 의왕쪽으로 고개 막바지에 이르면 ‘프랑스군참전기념비’라고 세로로 되어 말뚝처럼 세워진 표지판이 오른편 쪽에 보인다. 누가 이를 보고 타고가던 승용차를 우회전 했다. 기념비를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효행공원 구내여서 차를 세울 수가 있다. 그 사람은 기념비 진입로 노면이 쪼각쪼각 나도록 깨진 것을 보고 먼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철문이 자물쇠로 채워진 채 굳게 닫혀 있는 게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면서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봤다. “?” 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념비를 세우면서 원형처럼 쌓은 토성 위 잔디를 기어 올라가 보았으나 역시 기념비는 커녕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길가엔 분명히 ‘프랑스군참전기념비’라는 표지판이 나붙고, 태극기와 청·백·적색(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 깃발이 게양대에서 나란히 지금도 나부끼고 있다. 철문앞 토성벽 양면에는 프랑스군을 찬미하고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의 동판도 붙어있다. 그런데 기념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은 ‘프랑스군참전기념비’의 실정을 이렇게 전하면서 지지대子에게 묻는 게 많았다. 수원에 기념비가 세워진 유래가 뭣이며, 언제 세웠던 것인 데 왜 지금은 없고, 그럼 그 기념비는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기념비를 철거했으면 표지판이나 동판도 없애고 깃발도 내려야지 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대로 둘 사정이 있으면 안내문이라도 써붙여야지 이 무슨 꼴이냐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으나, 지지대子는 불행히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의문은 어찌 그 사람 뿐이겠는가, 수원시의 관리에 문제가 없다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랑스는 6·25 한국전쟁 때 16개국의 유엔군 일원으로 보병부대 1천180여 명과 구축함 1척이 참전,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288명의 전사자를 냈다./ 임양은 주필

스포츠계의 치부

운동선수와 감독과의 관계는 사제나 선후배, 형제에 비견된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각종 스포츠계는 지장·덕장·용장으로 존칭되는 감독들의 지도를 받아 불세출의 선수로 우뚝 선 사례가 많다. 반면 일부 감독들의 비리가 드러나 스포츠계의 명예를 더럽힌 일도 적지 않다. 최근 밝혀진 일부 감독들의 ‘일탈 행위’도 잊을만 하면 도지는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치부다. “감독의 말은 지상명령이다. 선수생활을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불문율, 아니 족쇄나 다를 바 없다.” 여자프로농구 P모 전 감독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한 선수의 말은 국민에게 또 실망을 던져 줬다. 스포츠 현장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의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팀워크를 중시하는 선수단에서의 기강 확립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같은 관계를 악용하는 데 ‘사건’과 ‘사고’가 있어 왔다.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팀 감독은 선수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특히 프로선수는 감독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연봉 삭감과 방출로도 이어진다. 감독의 권한은 그만큼 막강하다. 그렇다고 외국 전지훈련 도중 감독이 자신의 호텔 방에서 선수 옷을 강제로 벗긴 뒤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P모 감독이 한팀에서만 19년 있었고, 피해 선수가 신인급인 점을 고려하면 성추행을 당한 선수는 더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훈련 중 여자 선수들을 야단칠 때 가슴을 꼬집는 감독도 있다니 저간의 추행 실상이 능히 짐작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부 스포츠 감독의 선수 추행, 금품 갈취, 폭행 등 일탈 행위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 기업 유도부 선수들은 전 감독 L모씨에게 5년간 2억2천만원을 빼앗겼는가 하면, 일부 학교의 경우 운동부 감독들이 회식비, 전지훈련비 등 명목으로 학부모한테서 금품을 뜯어낸다는 사실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포츠계의 음성적 비리는 “감독과 선수는 주종관계나 다름 없어 반항은 엄두도 못낸다”는 내부 사정 탓도 작용하지만, 근본원인은 감독의 인격적인 자질 부족이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이 ‘선수고충 상담전화’를 개설했지만, 전체 감독들이 자정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비리는 근절되지 않는다. 물론 선수들의 적극 대응도 필요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철쭉꽃

옛 사람들은 철쭉을 ‘척촉(??)’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이 시적(詩的)이다. ‘척’과 ‘촉’은 모두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는 나그네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꽃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철쭉은 다른 말로 ‘산객(山客)’이라고도 불렀다. 이 역시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나그네를 연상케 한다. 철쭉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나온다. 신라 성덕왕(聖德王·702 ~ 737) 때 순정공(純貞公)이 부인인 수로(水路)와 함께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바닷가 절벽 아래서 점심을 들고 있을 때였다. 수로부인이 벼랑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몹시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천길 낭떠러지에 피어 있는 꽃을 따다 바치는 이가 없었다. 그때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견우 노인(牽牛 老人)이 기꺼이 나서 꽃을 따다 바치며 “자줏빛 바위 가에 /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꽃을 바치오리다.”하고 노래를 불렀다. 4구체(四句體)의 서정시가로 전해내려 오는 바로 그 ‘헌화가(獻花歌)’다. 수로부인이 갖고 싶어했던 그 꽃이 철쭉이었다. 철쭉은 아름답지만 또 독성을 지닌 꽃이기도 하다. 그 독성 덕분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남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한라산, 지리산, 소백산, 태백산, 덕유산 등은 철쭉으로 유명한 명산인데 지리산 바래봉의 경우 5월말 쯤이면 넓고 푸른 초원에 철쭉이 바다를 이룬다. 이곳이 처음부터 철쭉 군락지는 아니었다. 1971년 여기 한국·호주 시범 면양목장이 설치됐는데 방목된 양들은 자연스럽게 잡목 나뭇잎과 풀들을 먹어 치웠다. 그런데 양들이 입을 대지 않는 나무가 있었다. 바로 철쭉이었다. 철쭉에 독성이 있는 걸 알고 면양들이 먹지 않는 생존력이 신기하지만 이런 연유로 철쭉은 무리 지어 피는 게 특징이다. 남해 바다 건너 한라산의 철쭉이 절정을 맞는 것은 이맘 때다. 한라산 철쭉은 새색시 저고리처럼 화사한 육지의 철쭉과 달리 짙은 보라색을 띤다. 바람이 많은 고원에 피어서 키가 작다. 한라산엔 이러한 철쭉이 오름을 중심으로 피어 난다. 며칠 전 제주도에 갔을 때 여기저기 솟은 완만한 봉우리에 피어 있는 철쭉들이 마치 어린 소녀들이 모여 웃는 모습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치와 종교

2005년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종교별 신자 수는 불교가 1천72만명(전 국민의 22.8%)으로 가장 많고 개신교 861만명, 가톨릭 514만명 순이다. 이 중 불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신자가 많은 데다 종정 등 지도자 발언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이 유달리 커 대선이건 총선이건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에게서 러브콜을 받는다. 불기 2551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여야 대선주자들이 서울 조계사에서 불심끌기에 경쟁을 벌인 것을 보면 불교의 위력이 대단함이 입증됐다. 알려지기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비(非) 불교 신도다. 하지만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회에 참석했다. 범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김혁규· 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대선주자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 등도 참석했다. 손학규 전 지사는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계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봉은사 명진 스님과는 오래 전부터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무렵 낙산사를 찾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학창 시절 가톨릭 세례까지 받았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집안은 불교 색채가 짙다.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헌납하겠다”고 발언한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계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다. 정동영 전 의장은 가톨릭 신자지만 정치적 고비 때마다 풍경소리가 들리는 산사를 찾는다. 기독교 신자가 사찰을, 불교 신자가 성당을 찾는 일은 마다할 일이 아니다. 특히 4월 초파일 조계사를 찾은 대선주자들이 6천여명의 신자들을 향해 합장을 하거나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내빈석에 나란히 앉은 대선주자들은 한 시간 가량의 봉축 법요식이 끝날 때까지 서로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얼마 전 경선규칙을 놓고 맞붙었던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인사 외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위인들이 한나라당 평생 동지라니 정치라는 게 참으로 비정하다. 만일 이·박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하고 덕담을 건넸다면 아마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셨을텐데, 안타깝다. 정치는 역시 소인배들이 하는 ‘놀음’인가 보다. / 임병호 논설위원

현금지급기에서!

건망증은 의학적으로는 병증이다. 기억력이 장애를 받아 어떤 순간에 경험을 되살리지 못하는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말하려는 사물의 용도나 형태는 알고 있으면서, 그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그런데 행위 직전의 기억을 깜박 까먹는 건망증도 있다. 이런 경우가 있다. 친지의 체험담을 들은 실화다. 은행 현금지급기를 통해 돈을 입금시키려고 하는데, 입을 벌린 입출구에서 돈뭉치가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짐작컨대 족히 50만원은 돼보였다는 것이다. 순간 ‘?!’ 갑자기 가슴이 콩닥 콩닥하며 뛰었다고 한다. 누구의 돈인지 몰라 찾아 줄 수도 없고, 섣불리 누구 돈이냐고 주위에 물으면 주인도 아니면서 내 것이라고 나설 수 있어 이도저도 못해 어쩔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에라, 차라리 내가 차지해 버릴까?’ ‘꺼내어 은행에 맡겨도 주인을 찾을지 못찾을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잖아! 이건 내돈이야!!’하고 작심을 하는데도 정작 손은 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데 뒷손님이 있어 현금지급기를 조작하는 것처럼 시늉만 내고 있던차에 한 손님이 숨을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아휴! 돈이 그대로 있네!!” 그 손님은 슬쩍 꺼내가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당자는 막상 자신에게도 부끄러웠고 뒷손님에게도 괜히 부끄러웠다면서 “내 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 했다”며 홍소를 터뜨리는 것이다. 한데, 돈을 처음 발견한 순간부터 주인이 헐레벌떡거리며 뛰어오기까지는 몇초 상관인데도 무척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지지대子의 즉석 논평은 이러했다. “그야말로 당신은 인간적인 양심을 지녔다” “만약 순간이나마 돈에 현혹된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면 인간이랄 수가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같은 인간적 갈등이 주인을 찾게 해줬다”고 말했다. 돈을 놔둔 채 간 손님은 현금지급기에서 카드만 챙기고 돈을 꺼낸 좀 전의 일은 깜박 잊었던 것이다. 즉 행위 직전의 일을 잊는 건망증이 있었던 것이다. 지지대子는 돈은 챙기면서 카드를 놔둔 경험이 있는데, 누군가가 창구에 맡겨두길 바랐던 카드를 찾진 못했다. 참고로 말하면 앞서 밝힌 사례의 경우, 돈을 창구에 맡기면 은행에서 컴퓨터 추적으로 주인을 찾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욕심을 행동에 옮기면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돼지 천도재

천도재는 불가에서 죽은 혼령을 극락 세계로 가게 하는 의식이다. 돼지 천도재가 있었다. 엊그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사지가 찢겨죽은 아기돼지의 넋을 위로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 50여명이 이같은 행사를 가졌다. 며칠전 이천시 군부대 이전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같은 장소에서 벌인 반대 시위 도중에 돌출한 돼지새끼 능지처참으로 죽은 혼령을 위로한 것이다. 식물에는 생혼(生魂)만이 있고, 동물엔 생혼에 각혼(覺魂)이 더 있고, 인간은 생혼과 각혼에다가 영혼(靈魂)이 더 있다고 한다. 천도재, 즉 위령재는 영혼을 위한 것이다. 동물에는 영혼이 없다. 비록 영혼은 없지만 윤회설에 의해 천도재를 지낸 것 같다. 하긴, 도축장에서 해마다 한 차례씩 죽은 소, 돼지의 위령제를 지내는 곳이 있다. 중생이 업(業)에 따라 영혼과 육체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 번갈아 가며 생사를 반복한다는 것이 윤회설이다. 돼지야 삼겹살을 수시로 구워먹는 것이 죽은 돼지고기다. 쇠고기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것이 가축이다. 가축은 도살되는 게 숙명이다. 그 돼지새끼도 역시 같다. 다만 장합(場合)이 달랐던 것이다. 인간이 먹기위해 죽인 것도 아니고, 다 크지도 않은 돼지새끼를 죽이는 방법이 정상이 아닌 것이다. 재를 올린 동물애호가들도 삼겹살을 먹겠지만 그들이 다르게 본 연유가 이에 있다. 돼지새낄 그렇게 죽인 사람들도 이유는 아주 없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결연한 의지 표현의 심정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렇긴 하나, 안타까운 것은 돼지새끼가 무슨 죄냐는 것이다. 공개리에 행한 과격성이 또 보기에 영 안 좋았던 것이다. 강력한 호소력을 보이기 위한 것이 그만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됐다. 이천시 인터넷 홈페이지는 컴퓨터가 다운될 정도로 비난이 빗발쳤다. ‘비상대책위’측에서도 이미 정중한 사과를 했다. 동물애호가들의 천도재도 있었다. 이제 이만하면 됐지않나 싶다. 인간이 실수를 인정하면 용서할 줄도 아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동물사랑은 좋지만 인간을 증오해가며, 인간애를 거부할 만큼 우선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윤회설대로라면 그 아기돼지는 좋은 다음의 환생이 있을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배심원제도

서구사회의 발달은 제도보다 참여가 앞섰다. 동양사회의 발달은 참여보다 제도가 앞섰다. 이것이 동서양사회발달의 형태가 다른 차이점이다. 형사재판을 예로 든다. 서구사회 재판의 배심원제도는 현존 형태의 민중재판이다. 특히 미국은 더 한다. 미국의 개척시대에는 제도가 미비했다. 제도가 미비한 무법시대에 사회적 범죄를 응징하는 수단이 민중재판이었고, 이것이 배심원제도로 변화한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사회에서는 재판의 속결이 필요했다. 이래서 돌연변이로 나온 것이 민중재판 성격의 인민재판이다. 증거와 유·무죄의 사실심리(審理)가 생략된 채 사형의 잠재결론이 대중심리(心理)로 노출된다. 중국, 쿠바, 베트남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이젠 인민재판이 없어졌다. 북녘에서만이 아직도 경고성 공개 처형수단으로 간간이 실시된다. 내년부터 국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는 형사재판의 배심원제는 인민재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있었던 민중재판의 원류와는 맥을 같이한다. 배심원은 법원장이 주민등록 자료를 이용해 무작위로 뽑는다. 법률지식의 유무를 가리지 않는다. 시범적으로 해보는 것이어서 재판장에게 유·무죄의 기속력을 갖는 서구의 배심원 권고와는 달리 참고로만 유·무죄 의견을 개진한다. 배심원제는 서구에서도 배심원을 둘러싼 불미스런 사례가 적잖아 가끔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배심원제를 뒤늦게 도입하면서 국민참여 재판으로 현대적 사법제도 시행 이래 112년만의 사법혁명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영미법계의 배심원제가 대륙법계의 국내 재판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목할 수 있을는 진 두고 보아야 한다. 시범실시를 넘어 완전실시가 될 경우엔 유·무죄의 판단이 ‘중우재판’으로 결정날 수가 있다. 형사재판은 종국적으로 사회정의의 구현이다. 이를 위해선 피고인에게 관대해서도 안 되고, 가혹해서도 안 되는 균형이 요구된다. 어떻게 보면 국민참여란 이름의 배심원제가 시범적으로나마 실시되는 것은 법원측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국민의 불신을 사는 재판이 더러 없지 않은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의 남용인 것이다. 그렇긴 하나, 배심원제가 능사는 아니다. 배심원제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임양은 주필

진짜 백두산

대한지적공사 조병현 지적재조사팀장이 지난 22일 행정자치부 주최로 열린 지적혁신엑스포에서 ‘우리나라 북방영토의 경계획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내용이 특이하다. 진짜 백두산(白頭山)은 중국 하얼빈 동북쪽 만주평야에 있는 핑딩산(平頂山·1429m)이며 현 백두산은 평안도 묘향산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는데 신빙성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문에 “백두산은 큰 거친 들 가운데 산이 있고 정상에 위치한 큰 못의 둘레가 80리, 높이는 200리, 가로 길이가 1000리로 앞쪽이 무너졌다”고 기록됐고, 청나라 한림원에서 발간한 만주원류고 지리지 장백산편엔 “거친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라는 설명이 있다고 한다. 또 성종실록에는 “우리나라는 요수의 동쪽 장백산의 남쪽에 있어서 … 지역의 넓이가 만리나 된다”고 서술됐다.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분석한 결과 핑딩산은 만주벌판 한 가운데 있고 산 앞쪽 부분에 무너진 흔적이 있는데다 정상에는 둘레 80리 정도의 커다란 못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백두산은 들녘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지역을 찾을 수 없다. 천지 둘레가 20리에 못미쳐 고서의 백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 맞는 것 같다. 백두산이 바뀐 건 일제가 우리 고대사를 조작했고 ‘대륙의 조선’을 한반도로 옮겨 놨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고문서와 고지도 등 50여종 20만여권이 서울 남산에서 소각됐고 대동여지도 역시 1930년 조선총독부의 검열도장을 찍어 공개된 점을 미뤄볼 때 각색된 것이라고 한다. 북방영토(北方領土)의 넓이가 69만6천829㎢라는 주장도 새롭다. 이 면적은 한반도의 3배, 남한의 7배 넓이다. 북방영토란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며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였으나 과거 청나라와 일제에 의해 빼앗긴 연해주(30만6천346㎢)와 간도(39만483㎢)지역으로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북방영토의 경계는 랴오허강(요하)~쑹화강~핑딩산~아무르강~동해라고 한다. 지금까진 현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북으로는 노령산맥과 노아령산맥을 거쳐 훈춘을 포함하는 4만1천㎢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북방영토의 경계획정에 관한 연구’를 사실(史實)로 입증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학계가 공동탐사해야 할 중대사안이다. 조병현씨의 노고가 실로 지대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꿀벌

꿀벌은 꿀을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생태계에 큰 이로움을 주는 곤충이다. 1983년 미국 곤충학자 레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꿀벌의 화분 매개에 의한 효과는 과실 생산 33억 달러, 종자와 건초 생산 84억 달러, 육류와 우유 등 낙농제품의 간접생산 71억 달러로 미국에서 얻어지는 전체 양봉산물 1억3천만 달러의 143배에 이르렀다. 사과 딸기 호박 오이 등 우리가 먹는 작물의 90%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꿀벌 개체수가 지구 온난화로 급감할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다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카시나무의 ‘황화현상’이 심해져 더욱 타격이 크다. 기온 상승 등으로 아카시나무가 환경 스트레스를 받아 나뭇잎이 여름에도 누렇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현상으로 꽃 하나당 꿀 생산량이 현격히 감소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아카시나무 황화피해 원인 규명’ 보고서를 보면 1996~2005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3.76도로 1960년대(1961~1970) 12.74도에 비해 1도 가량 상승했다. 온난화 현상으로 봄·가을이 실종되고 강우량이 부족해지는 등 이상 기온 현상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꿀 생산량은 1만9천654t으로 2003년 3만353t에 비해 35% 이상 감소했다. 현재 국내 벌통 수는 200만여개로 포화상태다. IMF 사태 이후 너도 나도 양봉업에 뛰어든 결과다. 하지만 올해 20~30%의 양봉농가들이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5년 내 70% 정도가 양봉에서 손을 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도 꿀벌 감소의 주범이다. 과수농가들이 개화기에 과일을 솎아내는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많이 사용하고 이로 인해 벌들이 떼죽음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매년 전체 벌통의 15% 정도가 농약 피해를 보고 있으며 수년 내 꿀벌이 50% 정도 감소하는 환경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꿀벌이 일정 수 아래로 내려가면 목초 생산이 줄고 육류와 우유 생산도 큰폭으로 감소한다. 최선책은 적정한 꿀벌 수를 유지해나가는 것이지만 정부는 아직 우리나라 생태계에 필요한 최소 꿀벌 수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꿀벌들이 살 곳이 없어진다? 환경재앙, 서둘러 막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무소유의 길

동춘(東春)스님은 1932년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출생했으나 일본에서 자랐다. 8·15 후 귀국, 고등학교는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교회도 열심히 나갔다. 6·25 전쟁 때 군에 입대, 전장을 누비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휴전 직후 천성산 일대의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다. 사찰을 지날 때마다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다가 우연히 양산 통도사에서 법문을 듣게 됐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자신이 부처가 되는 종교라는 말을 듣고 나서 절에 다니게 됐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얻어 생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출가를 결심하고 혼자 토굴에서 지내며 마음을 정리했다. 첫 토굴살이였다. 1955년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스님을 은사로 늦깎이로 출가했다. 선암사는 경허스님의 제자인 혜월스님이 선 채로 열반에 든 곳이다. 석암스님은 경허 - 혜월 - 석호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동춘스님에겐 뚜렷한 주식처가 없다. 부산 선암사와 문경 봉암사, 봉화 각화사의 주지 등 몇번의 대중소임을 맡은 것을 빼고는 평생의 대부분을 토굴에 은둔하며 수행에만 매달렸다. 말 그대로 구름처럼 떠돌고, 물처럼 흘러가는 운수납자의 삶이다. 스님은 토굴을 자주 옮겨 다닌다. 토굴이 알려지면 바로 짐을 꾸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버린다. 주지를 내놓고 나면 그곳에서 인연 맺었던 신도와의 반연(攀緣)까지 딱 끊어버리고 훌훌 떠난다. 전국 곳곳에 스님이 수행한 토굴만도 수십군데다.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지요. 한곳에 오래 머물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면 업을 짓게 됩니다. 소유하지 않으면 자유롭습니다. 부처님도 깨달은 후 평생을 옮겨 다녔습니다. 수행자에게 누더기 옷과 발우 하나만 있으면 다 가진 것 입니다.” 조계종단 원로회의 의원인 노스님이 토굴에서 사는 이유다. “나는 깨쳤다고 내세워 말할 것이 없어요. 확철대오 하기 전에는 내놓을 것이 없지요. 지견(知見, 알음알이)이 났다고 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몇 안 되는 신도들이 찾아와 물어보면 그때 그때 생각을 말해줄 뿐이지요.” 법문을 하지 않는 원로스님의 법문이다. ‘법화경’에 “고요한 곳에서 마음을 닦고,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수미산처럼 하라”고 했다. 동춘스님이 바로 그렇다. 스님은 지금 기림사가 있는 경주 함월산 ‘토굴’에서 수행 중이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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