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 방해꾼들

전자결재는 행정간소화다. 이렇긴 하지만 중요 사안은 그래도 대면결재를 많이 한다. 결재권자가 묻고 들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면결재는 최고 결재권자까지 거쳐야 할 중간 단계가 무척 많다. 그래서 각 과마다 결재를 받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결재할 사람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노상 살펴야 한다. 회의나 대외행사에 나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마침 자리에 있어 찾아가도 결재가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여러 과에서 이미 결재판을 들고 찾은 대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줄지어 결재를 기다리는 대기자만 많은 게 아니다. 외부 손님이 안에 있으면 나올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20~3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외부 손님들은 사적인 용무로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대부분이다. 마주앉은 사람(결재권자)도 귀찮긴 하지만, 행세깨나 한다는 인사여서 면전박대를 못하고 자릴 뜨기만 기다리는 데 좀처럼 일어설 줄 모르는 얌체 손님이 적잖다. 지지대子가 일선 기자 시절에 경험한 일이다. 출입부서의 부서장이 이에 꾀를 내어 기자실과 내통하게 됐다. 귀찮은 손님이 자릴 뜨지 않으면 비서실에 암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 비서실은 기자실에 구원을 요청한다. 이윽고 출입기자들이 부서장 문을 열고 뭘 묻는듯이 들어서면 제 아무리 강심장인 얌체 손님도 일어서지 않고는 못배기게 마련인 것이다. 부서장은 “어? 손님이 계시는데…”하고 혼자 얼버무리는 투로 손님에게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는 것으로 추방은 끝나곤 했다. 추방극은 쇼이지만 진짜 취재관계로 출입 부서장을 잠깐 만나고 나와도 결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면 미안할 때가 있다. 한데, 이권따위나 부탁하러 와서 결재를 방해하는 것을 보면 곁에서 보기에도 정말 역겨운 경우가 많았다. 결재는 행정행위나 행정처분의 완성 단계다.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행정에 지장을 가져온다. 민원처리 같으면 결재를 지장받은 만큼 처리가 지연된다. 이런데도 결재판 들고 기다리는 것을 예사로 보는 외부 인사들이 적잖다.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위인들이 있다. 결재문화의 대면결재에도 개선돼야 할 점이 물론 있다. 하지만 외부인사의 방문으로 방해되는 폐습부터 먼저 시정돼야 한다./ 임양은 주필

행사와 시·도의원

관공서에서 연중 갖는 일상행사나 특별행사가 많다. 행사에는 으레 초청장이 발부된다. 그런데 행사 성격에 따른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보다는 행사장에서 득실거리며 행세하는 것은 시·도의원들이다. 물론 시·도의원의 행사 참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 성격의 행사 같으면 참가하는 게 직무다. 그러나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사람 많이 모이는 관공서 행사마다 기웃거리며 눈도장 찍는 것을 일삼는 시·도의원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시나 도에서 무슨 행사를 하면 으레 시의원이나 도의원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하는 모양이다. 안 보내면 또 ‘안 보냈다’는 원성을 듣기 때문인 것이다. 문제는 정작 보내야 할 해당 분야의 인사들에 대한 초청장은 빠뜨리기가 일쑤라는 사실이다. 사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초청장을 받지 못했어도 자신이 일하는 관심있는 분야의 행사여서 막상 찾아가면 푸대접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같다. 예컨대 내빈 소개를 해도 떼거리로 참석한 시·도의원들 소개하는데만 지루하도록 시간을 끌고, 관련 분야의 일반인 인사는 소개는 커녕 제대로 된 좌석마련도 되지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시대에 시·도의원이 우대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다. 지방자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시·도의원을 벼슬로 보고 그러는 경향이 많다. 분화된 현대사회에선 분야마다의 전문가들이 구분돼 있다. 그리고 이같은 전문가들은 대부분 벼슬을 갖지 않은 백두(白頭)다. 비록 백두이지만 벼슬하는 이들보다 더 많이 아는 분야의 행사에서 백안시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다. 다원화사회의 기능이 존중되지 못하고, 획일적인 벼슬 지상의 인식이 팽대해가는 것은 지역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행사 주최측 눈에 시·도의원만 보이고 백두의 유관 인사는 보이지 않는 색맹이 되어서는 행사의 성격을 제대로 살린다고 할 수 없다. 결국 푸대접 받고 돌아선 인사들이 원망하는 것은 시장·군수나 도지사다. 시장·군수나 도지사가 초청장 발부를 챙기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장 책임으로 돌아가 욕을 얻어먹게 된다. 단체장은 이런 낭패가 없도록 행사 관리를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 임양은 주필

경기도의 직급 ‘타령’

조선 왕조의 춘추관 사관(史官)은 정오품이다. 그러나 사관이 다룬 사초(史草)는 정이품인 육조판서는 말할 것 없고 정일품인 삼정승도 열람할 수 없었다. 임금도 재위시 자신의 사초를 보는 건 금기로 삼았다. 암행어사는 정육품이다. 외직으로 치면 큰 고을의 원님인 부사(府使)쯤 된다. 그런데도 종삼품인 관찰사도 비리가 적발되면 봉고파직 했다. 관직은 높을수록 좋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도 승진을 영예로 알기는 지금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관직은 직급만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관직이 낮은 사관을 관직높은 육조판서나 삼정승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암행어사가 관찰사를 봉고파직하는 것은 관직이 높아서가 아니다. 직능 때문이다. 관직의 직급과 직능이 이처럼 구분되기는 지금의 관직에서도 별로 다름이 없다. 높은 관직이 반드시 모든 직능을 다 갖는 것은 아니다. 관직사회의 분화는 낮은 직급에도 높은 직능을 부여하는 직책이 있다. 직급도 직급이지만 직능을 중시하는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관직사회인 것이다. 경기도가 4급(서기관)인 공보관과 감사관을 3급(부이사관)으로 올려 달라고 행자부 장관에게 건의한 적이 있다. 직급이 낮아 업무를 장악하는 데 지장이 있다는 것으로 들었다. 그러니까 과장급 직급으로는 공보관이나 감사관 직능 수행이 어려우니 국장급으로 올려 달라는 것 같다. 글쎄, 잘은 모르겠으나 ‘못난 아재비가 항렬만 높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항렬만 높다고 어른노릇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직급만 높다고 직능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서기관만 해도 말단에서 공무원을 시작한 사람은 평생을 해도 오를까 말까한 자리다. 이도 안되어 부이사관으로 해달라니 직급을 너무 헤푸게 보는듯 싶다. 왕조 시대에도 낮은 직급으로 직능을 다 했다. 하물며 공복사회에서 직능보다 직급 타령을 우선시 하는 것은 도착된 가치관이다. 예산면에서도 주민 부담을 가중한다.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이 되면 월급만 오르는 게 아니다. 여러가지로 달라지는 처우에 역시 예산이 수반된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경기도가 주민의 가중부담을 예사로 아는 것은 자치단체의 도리가 아니다. 직급이 덜 높아 맡은 직능 수행이 어렵다는 건 역량의 문제다. 공보관이나 감사관의 직급 상향 조정 건의는 행자부에서 들어줄리도 없지만 들어주어서도 안된다. / 임양은 주필

입방정

요즘 공직자들의 품위 없는 언행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지난해 7월 호남인 비하 발언이 문제돼 한나라당을 자진 탈당했던 이효선 광명시장이 이번엔 흑인을 비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명시협의회와 워싱턴협의회 소속 회원 24명이 참석한 공식 오찬에서 “워싱턴에 갔었는데 깜둥이들이 우글우글하더라. 무서워서 저녁에는 호텔에서 나오지도 못했는데 그 무서운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시장이 “흑인들이 무섭다고 말한 적은 있으나 검둥이라고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동석한 박준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명시협의회장이 허언을 했을 린 없겠다. 미국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워싱턴협의회 일부 회원들이 “개인도 아닌 시장의 발언으로는 지나치다”며 오찬 도중 자리를 뜨는 등 반발이 컸다고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석호익 원장의 발언도 대단하다. 16일 오전 서울 롯데 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회’에서 ‘우리나라 IT 현황 및 2007년 전망과 당면 과제’란 주제로 강연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화했다”며 “여성은 ‘○○’이 하나 더 있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 석 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한 것으로 전달됐다는데 해명이 없을 리 없다. “여성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며 비하나 폄훼할 의도는 절대 없었다”고 한다. IT에 대한 강연 중 여성 얘긴 왜 나왔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발언도 수준급이다. 15일 여주 효종대왕릉(사적 195호)에서 숭모제를 지낸 뒤 왕릉 재실 앞마당에서 지역 국회의원, 여주군수, 여주군의회의장 등 30여명과 가스통과 전자레인지 등 취사도구를 이용해 음식을 먹은 게 문제가 되자 “음식을 재실에서 해먹지, 어디서 먹겠느냐”고 반문했단다. 문화유적 500m 이내에선 취사행위를 금하고 있는 문화재보호법을 어긴 걸 모르는지, 왕릉 ‘관람규칙’ 첫번째가 ‘음식물 및 애완견의 반입금지’임을 잊었는지 “개인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단다. 물의를 빚었으면 어쨌든 “죄송합니다”하고 사과 한 두번 하면 끝날 것을 대다수가 끝까지 잘했다고 우긴다. 특출난 존재들도 아니면서 입조심, 말조심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위 공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 사회가 잘 될리 없다. / 임병호 논설위원

새알 수난

충남 태안군 근흥면 난도와 인근 바위섬(일명 여화사리)엔 괭이갈매기가 수천마리 서식한다. 몸길이 45㎝가량의 괭이갈매기는 곡우(穀雨)인 4월 20일을 전후해 보통 4~5개의 알을 낳는다. 태안군은 1982년 괭이갈매기 서식지인 난도와 바위섬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켜 왔다. 또 괭이갈매기 알을 무단으로 갖고 나오지 말도록 했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했는데 요즘 난도와 바위섬에 ‘밤손님’ 침입이 잦다고 한다. 괭이갈매기 알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괭이갈매기 알은 달걀 등 일반 조류의 알과 성분이 비슷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콜레스테롤 수치만 높아질 뿐이란다. 괭이갈매기 알은 시중에서 한 개당 2천원 이상의 가격으로 매매된다. 태안경찰서가 알을 훔쳐오는 사람들을 붙잡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지만 밀반출 행위가 여전히 극성을 부린단다. 정력에 좋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괭이갈매기가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만일 하루살이나 모기, 파리를 정력에 좋다고 하면 모두 잡아 먹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김포와 북한 개풍군 사이에 있는 작은 섬 유도(留島)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해마다 4~7월까지 이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던 저어새 무리가 대거 관찰됐었는데, 작년 봄부터 2년째 새끼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 어미들의 산란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유도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강 하구에 위치해 있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탓이다. 유도는 1996년 폭우로 북한에서 떠내려온 소가 3개월 동안 갇혀 있던 바로 그 섬이다. 당시 우리 군은 북한에 ‘유도 상륙’을 통보한 뒤 소를 구출했었다. 당국은 저어새의 이상징후를 천적의 침입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너구리나 들고양이 같은 동물이 홍수에 떠내려와 저어새의 알들을 마구 잡아 먹었다는 얘기다. 아니면 수 년 전 부터 잦아진 큰 물로 인해 저어새 알들이 한강으로 떠내려가면서 번식에 실패했을 것 같다. 저어새는 천연기념물 205호다. 세계적으로 1천800마리 가량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국제적 희귀종으로 유도가 최대 번식지다. 저어새가 갑작스레 번식 못하는 이유가 괭이갈매기 알을 훔쳐 내는 인간들의 탓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여자의 운명

조선 중기(명종 18~선조 22)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7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짓는 등 신동이란 말을 들었다.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다. 본명이 초희(楚姬)인 허난설헌은 강릉 태생으로 아버지는 학자·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동지중추부사 허엽(許曄·1517~1580)이며 역시 문명을 날린 허봉(許蓬)이 오빠, 허균(許筠)은 동생이다.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하였으나 남편은 급제한 뒤 가정보다는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더구나 남매를 잃은 뒤 태중 아이까지 잃는 등 온갖 아픔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허봉· 허균마저 귀양가는 등 연속적인 비극 속에서 살았다. “이 몸이 지녀 온 황금 비녀는 / 시집올 때 머리에 꽂았던 비녀, / 오늘 떠나시는 임께 드리니 / 천리 길 오래도록 기억하소서”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여. / 함경도 고원 길에 행색이 바쁘겠네. / 쫓겨가는 신하야 가태부 같다지만 / 임금이야 어찌 초희왕일까. / 가을 하늘 아래 강물은 잔잔하고 / 변방의 구름은 석양에 물들겠지./ 서릿바람에 기러기 울고 갈 제 / 걸음을 멈추고 차마 가지 못하리라.” “지난해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 올해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 애통하고 애통한 광릉(廣陵) 땅이여, / 두 무덤이 서로 마주 보고 있구나. / 사시나무 스치며 불고 가는 바람 / 묘지에 명멸하는 도깨비불들. / 지전을 던지며 너의 혼을 부르고 / 너의 무덤 위에다 현주를 붓노라. / 너희들 남매의 외로운 혼령 / 밤마다 서로 만나 놀고 있겠지. / 나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지만 / 어찌 자라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 / 슬픈 노래를 하염없이 부르면서 / 울음과 함께 피눈물을 삼키노라.” ‘아내의 정(閨情)’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라버니께(送荷谷謫甲山)’ ‘죽은 아들을 곡함(哭子)’의 시제가 붙은 이들 한시(漢詩)는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데 난봉질을 일삼던 남편을 생각하며 쓴 시가 눈물겹다. 비록 남편은 잘못 만났으나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 여성 특유의 감상을 읊은 그의 작품집 ‘난헌설집’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돼 애송되었다. 허난설헌은 27세에 이승을 홀연히 떠났다. / 임병호 논설위원

부천시장의 실언

홍건표 부천시장의 계씨(季氏) 발언 파문은 신문보도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시정 전반에 대해 조언해주고 브레인으로 역할을 했다. 공무원이 해결할 능력이 없어 동생이 발전적으로 역할을 해 자랑스럽다”고 한 말이 틀림이 없다면 한 마디로 실언이다. 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 회견 석상에서 부천세계무형문화제 엑스포 개최 과정을 설명하다가 그같은 말이 나온 모양이다. 계씨되는 사람이 공직을 지낸 적이 있고해서 홍 시장 말대로 조언할 자격이 있다 치고, 또 엑스포 뿐만이 아닌 시정 전반에 브레인 역할을 했으면서도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없는 게 다행일 지라도 명색이 시장이 공식 석상에서 할 말이 아니다. 아는게 많고 비리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비선에 있다. 공조직이 사조직화하면 공신력이 흔들린다. 시정 전반에 개입해 왔다면 더욱 의심되는 바가 많다. 홍 시장의 사람됨이 우직해서 그런지, 사람을 무시해서 그런진 몰라도 ‘실세시장’이 따로 숨어 있었던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얘기가 된다. 미국의 케네디가 동생을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했다는 그의 말도 안된 논리적 비약의 비유는 행여 계씨를 비서실장쯤 앉혀 공식화할 요량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없잖은 것 같다. 어떻든 시장의 이미지와 자치행정의 신뢰를 위해 홍 시장의 계씨 발언 파문은 불행한 현상이다. 아주 고약한 것은 공무원 폄훼 발언이다. “공무원이 해결할 능력이 없어 (동생이 개입했다는)” 말은 공조직을 업신 여기지 않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소리다. 계씨되는 사람이 얼마나 탁월한 의견을 내놔 시정에 반영했는 진 몰라도 부천시 공무원이 무능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시장 혼자 생각으로는 설령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라도 자기 부하 공무원들을 그렇게 공개리에 깎아내리는 처신은 심히 적절치 않다. 공조직의 수장이 비선을 통한 공조직의 무력화로 잘된 예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세상사 이치다. 부천시의 자치행정을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려되는 바가 크다. 자치단체장 직선 이후 두드러진 ‘민선독재’의 폐습에서 예외가 될 것인지 여부가 앞으로 주목된다. 가치관의 전도에도 이를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두렵기까지 한다. 조속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 임양은 주필

연등

부처님이 중인도(中印度)의 아시세왕 초대를 받고 야반에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다. 왕은 정사까지 가는 길에 만등의 촛불을 밝혔다. 가난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그도 등 하나를 봉양코자 했지만 돈이 없어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등을 밝혔다. 이윽고 부처님이 길을 나서는 데 갑자기 일진 광풍이 불었다. 이상하게도 왕이 켠 만등의 촛불은 모두 꺼졌으나 유일하게 여인이 바친 등은 꺼지지 않았다. 여인의 등은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발길을 끝까지 밝혔다. 권세에 의한 만 등보다 신심에 의한 한 등이 더 밝았던 것이다. 아시세왕은 부처를 보았으나 마음속에 부처를 갖지 못하고, 여인은 비록 부처를 못보았지만 마음속에 부처를 가졌던 것이다. 깨달음이 곧 부처인 것이다. 부처의 눈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부처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초인적 외경심의 대상이 종교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종교를 가진 건, 그같은 천재적 과학자도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미지의 인간세계 영역에 대한 외경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속은 다르다. 원시적 샤머니즘의 형태로 주술이 본질이다. 이 때문에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무속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또 종교는 조건이 없는 데 비해 무속은 조건이 있다. 그러나 현대 종교인의 신앙이 어떤 종교든 다 종교적 신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적 신앙이 아닌 기복신앙은 무속과 같기 때문이다. 기복신앙은 눈에 드러나는 그 뭣을 조건으로 내세워 돈을 소비하거나 소비케하는 행위다. 오는 24일은 음력 사월 초파일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연등 달기가 한창이다. 절에 다는 연등이 촛불로는 화재의 위험도 있고 또 오래도록 켤 수 있는 전등으로 밝히는 것은 생활상의 변화다. 그런데 연등을 다는데도 적잖은 돈이 드는 모양이다. 돈의 액수에 따라 절에 다는 위치 또한 다른 것 같다.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밝게 비추는 것이 연등이다. 아시세왕 같은 기복신앙이 아닌, 부처 같은 그 여인의 종교적 신앙의 연등이 누리를 밝게 비출 것이다. / 임양은 주필

‘내 남자의 여자’

밤 중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난다. 아이 어머니는 친구 집에 전화를 건다. “아이가 아프니까 빨리 오라는 것이다.” 친구에게 한 전화가 아니다. 남편에게 건 전화다. 남편이 친구집에 가서 자는 것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용인해도 아이는 책임져야 한다는 다짐을 남편에게 다짐 받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남편의 정부인 것이다. 이윽고 남편이 집에 온 뒤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아이 어머니의 친구인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여자는 친구인 아이 어머니에게 “내 남자를 빨리 돌려 보내라”고 남편을 당장 떠나보낼 것을 독촉한다. SBS 연속극 ‘내 남자의 여자’ 가운데 있었던 내용이다. 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연속극이 될 수 있는 허구임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이건 완전히 변태다. 한 남자를 친구 사이인 두 여자가 터놓고 공유한다는 건 변태 행위다. 여성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김수현이란 작가 자신 역시 여성이다. 여성 작가가 여성을 희화화하는 작품이다. 흥미를 끌기 위해서다. 튀는 대사는 이 작가의 특기이긴 하다. 흥미위주의 줄거리 설정에 톡톡튀는 대사는 흥미를 감칠맛 나게 하는 양념인 것이다. 이른바 인기작가의 마술인 셈이다. 말도 안 되는 줄거리로 어떻게 끝날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어 시청자를 사로 잡으려는 작가의 농간이 무섭다. 그렇게 해서 돈은 특별히 우대 받아가며 벌겠지만 시청자는 결국 우롱당한다. 만들어 보여주는대로 보게끔 시청자는 길들여져 있다고 보는 오만에 차있다. 텔레비전 연속극은 대중문화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새삼 작품성을 따질 이유는 없다. 그럴 대상도 아니다. 그저 심심풀이로 틈나면 보기도 하고 안 보아도 그만인 것이 연속극이다. 물론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재미는 긍정적 소재로도 얼마든지 추구할 수가 있다. 삼각관계의 불륜을 내용으로 하는 저질 연속극이 넘친다는 사회적 비판이 그러찮아도 많다. 부정적 소재의 안일한 남용인 것이다. 그런데 불륜에다가 변태까지 겹치는 연속극이 한창 전파를 타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허구일지라도 발상의 근거가 있다. ‘내 남자의 여자’를 구상한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방극장용으로는 심히 부적절하다./ 임양은 주필

충신·역신

연개소문(淵蓋蘇文· ? ~ 666) 가문은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세도가였다.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인 자유(子游)와 아버지 태조(太祚)는 둘 다 막리지를 지냈다. 태조는 당시 귀족들의 최고 수장 격인 대대로를 역임했다. 고구려 귀족들은 연태조가 죽자 연개소문 가문을 누르려고 했다. 연개소문이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연개소문은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 받았다. 연개소문이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자 반대파 귀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고 여기에 영류왕까지 가세했다. 영류왕은 연개소문을 천리장성 축조의 감독으로 발령하고 그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를 눈치 채고 평양성 남쪽 성 밖에서 군사들을 사열한다는 명목으로 귀족들을 불러 모은 뒤 정변을 일으켰다. 연개소문은 그 자리에 참석한 귀족 100여명을 살해하고 다시 왕궁으로 들어가 영류왕을 죽인 후 영류왕의 아우인 태양왕의 아들 보장왕(고구려 28대 마지막 왕)을 세웠다. 정변 직후 연개소문은 최고위직인 대대로엔 취임하지 못하고 막리지에 머물렀지만 그의 아래에서 대대로는 물론 국왕도 무력한 존재였다. 연개소문은 대대로를 무력화하고 막리지 중심의 정치 체제를 구축, 점차 정치·군사적 권한은 물론 국정 전반을 장악해 나갔다. 연개소문은 대당(對唐) 정책은 집권 초기부터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진 않았다. 그러나 고구려를 침략할 구실만 찾고 있던 당나라는 신하로서 임금을 죽였다는 이유를 들어 연개소문을 비난했다. 연개소문은 당의 침략이 이미 결정되고, 그 침략의 명분이 자신에게 정면으로 맞춰져 있는 이상 당과 전쟁을 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장왕 4년(645) 요동으로 쳐들어온 당태종의 17만 대군을 격파했지만 결국 고구려가 멸망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귀족 세력의 분열이었다. 귀족 연립체제를 부정하고 모든 정치권력을 자신의 일가에만 집중시킨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의 귀족들은 연개소문의 아들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당과의 전쟁 과정에서 급속히 분열됐다. 오늘날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대당 항쟁의 충신으로 보는가 하면 고구려를 멸망케 한 역신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독재 정권 유지에 대한 집착과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우리 민족사상 고구려라는 대제국을 사라지게한 장본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굿

무당(巫堂)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吉凶禍福) 등의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달라고 기원하는 제의(祭儀), 굿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어 그 역사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제천의식이 있으나, 오늘날의 무당굿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남해왕조(南海王條)의 것으로, 여기에서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차차왕으로 불렸는데 이는 방언으로 무당의 뜻이었다고 한다. 남해왕이 시조묘를 세워 친누이 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도 무당이 유리왕의 득병원인을 알아내고 낫게 한 기록이 보인다. 굿에 관한 가장 직접적인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돼 있는 장시 ‘노무편(老巫篇)’에 나타난다. 무당이 신이 들려 공수를 내리고 도무(蹈舞)하는 등의 굿의 묘사는 오늘날 중부지역 무속과 상통한다. 고고학 자료에서 오늘날 무당의 방울과 비교되는 제의용 방울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굿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굿의 종류는 그 목적에 따라 무신제(巫神祭), 가제(家祭), 동제(洞祭)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굿에 관한 속담도 많다. 겸두겸두 이득을 봄을 이르는 ‘굿도 볼 겸 떡도 먹을 겸’, 일이 끝나거나 결정된 뒤에 쓸데 없는 문제를 놓고 나와서 중언 부언한다는 ‘굿뒤에 날장구 친다’, 자기가 희망하던 일을 하게 되어 신이 난다고 ‘굿 들은 무당, 재(齋)들은 중’이라고 한다. 떡을 얻어 가지고 올까 하고 굿에 간 어미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어떤 일에 희망이 있을 때 몹시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말의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한다’, 남의 일에 쓸데 없는 간섭을 하지 말고 이익이나 얻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미운 사람이 따라 나서 기뻐하는 것이 보기 싫어 하기를 꺼려한다는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 등 상당히 많다. 예전에 무당과 굿을 미신으로 몰아 추방하려고 했었지만 ‘민속’으로 보자는 의견들이 또 나왔다. 시사하는 바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논콩의 새싹

콩은 ‘시경(詩經)’에 숙(菽)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숙의 꼬투리가 나무로 만든 제기인 두(豆)와 비슷하여 숙은 두가 되었다. 그러다가 팥처럼 알맹이가 작은 콩무리가 들어오게 돼 이것은 소두, 본디의 콩은 대두라 구분하여 부르게 됐다. 서기 전후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식물의 야생종·중간종· 재배종이 가장 많은 곳을 그 식물의 발상지로 삼는데, 이 조건에 맞는 콩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북부, 곧 만주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일부에선 중국 남부를 콩의 원산지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중국의 앙소· 용산 문화유적엔 콩이 나타나지 않는다. ‘관자(管子)’에 제나라 환공(桓公)이 만주지방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시켰다는 기록이 있고,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콩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콩의 원산지는 만주, 곧 옛 고구려 땅이라 할 수 있다. 김제규 작물과학원 영남농업연구소장도 “콩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기원전 3000~2000년부터 이 땅에서 재배해 온 농작물이다. 다른 나라보다 콩의 생태형이 월등하게 다양하고 유전자원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콩으로 만든 음식은 참 다양하다. 어린 풋대콩은 삶아서 먹고, 완숙한 콩은 콩밥·콩자반·콩설기떡·콩엿 등을 만들어 먹는다. 또 두부·비지·된장·간장·콩나물·콩기름 등으로 가공하여 먹기도 한다. 콩기름은 각종 공업원료로 이용되며 두유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 콩의 생초·건초와 콩깻묵은 사료나 비료로, 줄기는 인공섬유의 원료 등으로 이용된다. 비누·인쇄용잉크·방수제·유화제·살충제·화약·의약품 등 공업상의 용도 또한 다채롭다. 콩을 이용해 만든 음식 중 콩을 갈아 만든 국에 국수를 삶아 띄운 콩국수의 맛은 일품이다. 콩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 특히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애용돼 왔다. 콩국수는 콩의 단백질과 지방질을 그대로 살릴 수 있으므로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먹어야 하는 보양식이다. 멥쌀에 콩을 섞어 끓인 콩죽의 맛은 유별나다. 양질의 단백질급원 음식이며 여름철 절식의 하나이다. 경상도 지역에선 요즘 같은 철의 시식으로 즐겨 먹는다. 예전엔 주로 밭에 심었지만 지금은 논콩, 즉 논두렁에도 많이 심는다. 뜸북새 소리 들리는 논두렁에서 싱그럽게 자라는 연두색 논콩들이 참 어여쁜 계절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음주문화

주도(酒道), 주례(酒禮)는 우리의 전통적 음주문화다. 조선시대엔 동네 노소가 한자리에 앉아 술을 즐기는 ‘향음주례’가 있었다.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주도·주례의 요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酬酌)이다. 잔에 술을 부어 좌중 주객마다 돌리는 행배(行杯)도 있다. ‘술은 권하는 맛으로 마신다’는 술 속담은 술자리의 짙은 정표다. 권주잔은 잔을 비우고 반배(返杯)를 하는 것이 예의다. ‘주불쌍배’라고 했다. 자기 술상 앞에 술잔을 두 잔 이상 두지 않는 것이다. 서울고법이 지나친 권주에 쐐기를 박는 판결을 내렸다. 술을 억지로 권하는 것은 인격권, 행복권 침해라는 것이다. 자율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고, 귀가를 저해하는 것은 행복권 침해라는 것이다. 전에도 예컨대 대학생 동아리에서 신입생에게 억지로 술을 많이 먹여 죽게 만든 불상사가 있긴 있었다. 술을 권해 잔을 받지 않으면 술잔을 머리에 붓는 폐습도 있었다. 더 마실 수 없는 술을 강요받는 것은 분명히 고통이긴 하다. 그러나 술은 역시 권하는 맛으로 마시는 것이 우리네 술자리 맛이다. 술 값을 내기엔 내심 좀 부담스러워도 서로 내겠노라며 우기는 것 또한 우리네 술자리 인심이다. 이에비해 요즘은 술잔 안돌리고, 술값도 각기 분담하는 풍조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럴 바엔 뭣땜에 술자릴 같이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술잔을 낀채 자기 알아서 마시고, 술값도 나눠서 내는 것이 깨끗하다면 깨끗하지만 너무 기계적이다. 인간이 지나치게 기계화하면 ‘숨쉬는 로봇’이 된다. 서울고법의 판결은 살벌하다. 취지는 물론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어느 몹쓸 상사가 신입 여직원에게 행한 못된 극단적 경우의 판결을 확대 해석하여 일반적 인간정서를 해쳐서는 곤란하다. 인간정서는 인간다움이다. 인격권이나 행복권 역시 인간다움의 인간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전통적 주도, 주례와 현대적 인간정서의 음주문화에서 가장 금기는 주사(酒邪)다. 술 마시고 술좌석 친구나 집에 가서 주정 부리는 못된 습성을 가진 사람은 아예 술 마실 자격이 있다 할 수가 없다. / 임양은 주필

나비와 벌

만화방창(萬化方暢),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이다. 들과 산, 어딜 가도 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우거진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나들이 하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 볼 수 없는 게 있다. 나비가 안보인다. 벌도 잘 안보인다. 꽃들은 여전한데 꽃을 찾아 날아다녀야 할 나비도 안보이고 벌도 안보인다. ‘나비야 나비야 / 어서 날아 오너라 / 호랑나비 흰나비 너도 어서 오너라’ 동심의 친구였던 나비를 이젠 곤충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어쩌다가 들녘을 날으는 나비를 발견하면 대견한 생각이 들 정도로 귀해졌다. 귀하기는 벌도 마찬가지다. 벌이 꿀을 먹으려고 꽃속에 들어가면 구조적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도록 돼있다. 이윽고 나오려면 잘 빠지지 않아 온 몸을 뒤틀어야 한다. 빠져나오기 위해 몸살을 부리는 과정에서 벌의 몸에 꽃가루가 범벅이 되기 마련이다. 나비 역시 비슷하다. 타화수분을 하는 현화식물의 꽃은 다 이렇게 돼있다. 종족 번식의 본능적 행태인 것이다. 수분은 수꽃술의 꽃가루가 암꽃술의 주두에 붙어 열매를 맺는 현상이다. 수꽃술의 꽃가루를 암꽃술에 옮겨주는 매개로는 바람도 있지만 나비와 벌이 많이 차지했다. 그런데 꽃가루 중매를 하는 벌과 나비가 귀해 수분에 어려움이 많아졌다. 과수농가가 특히 이러하다. 자연수분이 잘 안되다보니 인공수분을 하는 과수농가가 많다. 사람 품을 사서 인력으로 타화수분을 하는 것이다. 자연수분의 수분은 ‘受粉’이고 인공수분의 수분은 ‘授粉’이다. 사람이 일일이 꽃과 나무를 인공수분하자니 자연수분을 해준 벌과 나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던 가를 실감하게 된다. 나비와 벌이 사는 생태계를 사람들이 파괴하기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도심지나 근교의 덤불이 이들의 집이다. 택지 조성이다, 개발이다 하여 덤불이란 덤불은 죄다 불도저 등으로 밀어내니 나비와 벌이 살래야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로 금세기 말에 가면 상당 수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걱정들을 한다. 지구의 온난화도 걱정이지만, 당장에 벌과 나비가 멸종돼가는 것도 큰 걱정이다. 만화방창, 녹음방초의 계절에 나비와 벌을 볼 수 없어 허전하다. / 임양은 주필

국회의원의 표결

마이니치신문 보도를 전한 한 도쿄 특파원의 기사가 흥미롭다. 요약해 본다. “다이어트 덕분에 체중이 처음 100㎏ 미만으로 줄었다” “나는 처음으로 60㎏을 넘었다. 그쪽 살이 나에게 옮겨온 모양이다” 살이 빠졌다는 건 모리, 살이 불었다는 것은 고이즈미로 둘 다 전직 총리다. 두 전직 총리의 잡담 장소는 중의원이다. 그런데 야당인 민주당이 제안한 고용대책법 개정안의 찬성 기립 표결에서 여당인 두 의원이 벌떡 일어났다는 것이다. 의사진행 중에 잡담을 하다가 의장이 일어나라고 하니까, 뭘 모른 채 한 쪽이 일어서니까 덩달아 두 전직 총리가 얼떨결에 일어났다고 마이니치가 보도했다는 것이다. 자유당 정권 시절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서 한 표 미달로 부결이 선포된 이튿날 의결정족수 산정에 이른바 사사오입을 적용, 통과로 번복한 ‘사사오입 개헌’이 있었을 때다. 당시 한 자유당 의원은 “나는 야당의 반대에 반대하여 반대표를 찍었다”고 비서에게 말한 적이 있다. 비서는 실색을 하면서 황급히 그 자유당 의원의 입을 막으며 “행여라도 어디가서 그런 말씀 마시라”고 단단히 타일렀다. 만약 그때 그 국회의원이 자유당 거수기 노릇을 하는데 표결에 착오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개헌안은 사사오입 파동없이 과됐을 것이다. 나중에 뒤늦게 알려진 숨은 일화의 이 주인공은 이미 타계했다. 얼마전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법안이 역시 한 표 미달로 부결된 것도 알고보면 웃지못할 일이 있다. 어느 국회의원은 안건에 오른 법안 내용도 잘 이해를 못한 채 반대하는 의원이 많은 것 같아 덩달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며 그같은 얘기가 전해졌다. 본회의장에서 잡담을 하는 국회의원들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조는 국회의원들도 있다. 무단 이석을 일삼는 국회의원들도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열심히 일하겠다며 목이 터지도록 표를 구걸하던 모습과는 아주 딴 판인 것이다. 총리를 지낸 일본의 두 의원은 야당 안이 부결되고 나서 표결에 부쳐진 정부 안에 찬성하여 실수를 만회했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의원들 실수는 만회할 기회가 거의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국회의원 노릇 해야 하는 것이다. / 임양은 주필

어린이헌장

우리나라 ‘어린이헌장’은 1957년 2월 당시 한국동화작가협회의 마해송·방기환·강소천·이종항·김요백·임인수·홍인순 등 7인이 성문화해 처음 발표했다. 이후 보건사회부가 아동 및 모자관계단체, 관련전문가들과 함께 심의, 보완·수정한 뒤 같은해 5월5일 제35회 어린이날 내무부·법무부·문교부· 보건사회부 등 4부 장관명의로 재발표했다. 전문 및 본문 9개항으로 제정됐는데 전문은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로 돼 있었다. 1988년 보건사회부는 어린이헌장이 제정된 지 30여년이 넘어 시대에 맞지 않는다 하여 헌장을 개정, 제66회 어린이날을 맞아 전문과 11개항으로 된 본문을 다시 공포하였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날의 참뜻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 1.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 2.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3. 어린이는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4. 어린이는 빛나는 우리 문화를 이어받아, 새롭게 창조하고 널리 펴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5.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 6. 어린이는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한겨레로서 서로 돕고, 스스로를 이기며 책임을 다하는 민주 시민으로 자라야 한다. 7.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는 마음과 태도를 길러야 한다. 8.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9.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 10. 몸이나 마음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한다. 11.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 오늘 제85회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헌장 전문을 소개하는 까닭은 우리 어린이들이 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에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어린이

예로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늙은이’라는 말은 있었으나 ‘어린이’란 말은 없었다. ‘어리다’는 말은 모두 ‘어리석다’는 의미로만 쓰였는데 ‘어리석음’은 ‘어둠’을 의미했고, 그것은 몽매(蒙昧)라는 한어(漢語)로 표기됐다. 이 한어는 본시 ‘주역’의 몽괘(蒙卦)에서 유래됐는데 그 괘사에 동몽(童蒙)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린이는 동몽일 뿐이었으며 그것은 정몽(正蒙)· 격몽(擊蒙)· 훈몽(訓蒙)·계몽(啓蒙)이란 표현이 말해주듯, 때림과 열음의 대상인 암흑이었다. 그러나 20세기의 인류의 역사는 어린이가 어둠에서 밝음으로 걸어나간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구속에서 자유로, 억압에서 해방으로, 타율에서 자율로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초창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1899 ~ 1931) 선생이 ‘늙은이’와 ‘젊은이’의 대등한 개념으로 1920년 ‘어린이’라는 어휘를 창안했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한 말의 늙은이·높은이·착한이라고 하는 낱말들에서 볼수 있듯 ‘이’라는 글자는 높이 일컫는 ‘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린이를 일컫는 말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다. 함경도지방에선 ‘어린아’ ‘얼라’ 등으로,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어린놈’ ‘어린애’ ‘어린애기’ ‘어린앳들’ 등으로 불린다. 이와 동의어로 쓰이는 한자로는 소아(小兒)·유아(幼兒)·해아(孩兒)·동치(童稚)·영해(?孩)·유몽(幼蒙)·황구(黃口)·해제(孩提)·해제지동(孩提之童) 등이 있다. 어린이와 관련된 전래 속담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어린이 관(觀)이 상징적으로 담겼다. ‘어린아이와 술 취한 사람은 바른 말만 한다(순진성과 단순성)’ , ‘어린아이 우물가에 둔 것 같다(미숙함과 위태로움)’, ‘어린아이는 괴는 데로 간다(순응성)’ , ‘애들 보는 데는 찬물도 못 먹는다(호기심과 모방성)’ , ‘어린아이는 기를 탓이다(가소성)’ , ‘어린아이 예뻐말고 겨드랑 밑이나 잡아주랬다(조력지도의 필요성)’ ,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초기 형성의 중요성)’ 는 등 한결같이 어린이를 순진, 단순, 미숙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단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극한 사랑이 담겼다. 이 중 어른들이 깊이 새겨야 할 건 ‘아이들 보는 앞에선 냉수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어린이들이 잘 못 되는 건 기성세대의 언행과 품행을 따라하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불인지심

맹자(孟子)의 철학은 크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인 인간본성론과 정치사상으로 나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네 가지 착한 마음(4덕:사랑하는 마음, 올바른 마음, 예의 바른 마음, 지혜로운 마음)과 그것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실마리(4단: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맹자’ 가운데 있는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중략)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어쩌지 못하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그것을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처럼 쉽다.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중략)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중략) 이 네 가지 실마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행위나 정치를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중략) 사람이다. 네 가지 실마리를 (중략) 넓힐 수 있으면 온 세상을 보존할 수 있고, 넓힐 수 없으면 부모를 섬기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을 가지고 어떻게 왕도정치사상을 근거 지우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은, 착한 행동을 하지 않고서는 또는 나쁜 행동을 하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맹자는 이상사회 구현의 실마리를 바로 그 불인지심에서 찾았다. 다스리는 이가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것을 본받아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어 이상사회가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백성들을 이롭게 하려는 착한 동기는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모름지기 정치가는 어떤 정책이 백성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위인들이 너무 많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양면성을 묘사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스티븐슨이 쓴 작품이다. 의사인 지킬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악을 분리 확대하는 약을 먹고 극악스런 하이드가 되어 악행을 일삼는다. 이런 실험을 거듭하다가 면역성이 생겨 착한 본래의 지킬로 되돌아 가는 약을 아무리 먹어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줄거리다. 맹자(孟子)의 성선설, 순자(荀子)의 성악설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루소의 자연주의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다. 소크라테스의 지행일치(知行一致)는 성악설에 뿌리를 둔 자기계발이다. 중용(中庸)은 중립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중용이다. 중용의 도덕론은 이래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덕론’(德論)의 중심 개념이 또 이와 같다. 이성에 의하여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의 양극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선악의 양면을 갖는다. 평생동안 항상 선한 사람도 없고 평생동안 항상 악한 사람도 없다. 악인도 동정심을 가질 때가 있고, 선인도 이기심을 가질 때가 있다. 문제는 그같은 경우의 장합(場合)이다. 그리고 선악의 행위 중 어느 것이 많고, 행위의 품질이 어떠냐에 따라 인간의 평가가 달라진다. 인격자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버려야 할 단점이 발견될 때가 많다. 반대로 비인격자 같아도 새겨 둬야 할 장점을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은 이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반성이 요구된다. 반성을 모르는 사람에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죽을 때까지 배워가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선악의 모순과 갈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일어나는 성격 분열로 파멸돼가는 것을 형상화 했다. 즉 중용의 이행이 미흡한 흠결인 것이다. 칸트의 실천철학 또한 도덕적 실천을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다. 현대인 사회의 가장 큰 결함이 양극화로 치닫는 극단주의인 것 같다. 중용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균형 파괴가 개인이나 가정 파괴, 국가사회의 파괴 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공공의 안녕질서, 사회방어를 위협하는 갖가지 범죄도 이에 기인한다.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공동선에서 공동악으로 내모는진 모르겠으나, 이래선 인간사회의 미래가 척박하다. / 임양은 주필

‘하이 서울 페스티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모습은 장관이었다. 지난달 29일 재연된 정조대왕 반차행렬이다. 서울 창덕궁을 출발, 한강대교 북단을 거쳐 노들섬까지 가진 대왕의 능 행차인 반차행렬은 한강을 배다리로 건넜다. 배를 연결하여 널빤지를 깔아만든 배다리는 한강이촌지구~노들섬 사이를 연결했다. 그러나 반차행렬은 1795년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에 이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가진 것이 반차(班次)의 몸통이다. 그러니까 서울시가 주최한 반차는 출발에 불과하다. 정조대왕 능 행차의 몸통 행사는 수원시가 해마다 10월에 화성문화제 행사로 철저한 고증에 의해 사실적(寫實的)으로 재현하고 있다. 수원시 행사와 서울시 행사를 하나로 하여 개최하자는 말이 있었다. 말은 그럴싸 하지만 현실적으로 난점이 많아 성사가 어렵다. 그런데 고약한 것은 서울시의 반차행사 명칭이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이란 명칭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조대왕의 능 행차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개혁적 실학사상을 꽃피운 분이 정조대왕이다. 만조백관에 뿌리내린 탕평책은 정치적 실학사상이다. 허례허식을 타파한 것은 사회적 실학사상이다. 토지개혁을 단행, 중농정책을 편 것은 경제적 실학사상이다. 실학파문학이 만발한 것은 학문적 실학사상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등 이밖에도 많은 개혁적 노작이 대왕 재위시에 나왔다. 궁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혜경궁 홍씨의 한글 내간체 저서 ‘한중록’도 나왔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 명칭이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을 치세로 삼은 정조대왕 의중에 과연 들 것인지 궁금하다. ‘2007 서울 대축제’라고 해도 될 명칭을 굳이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이라고 한 것은 영어 사대주의 발상이다. 사대주의는 실학사상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서울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그랬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다. 외국인 관광 안내서엔 영문 번역을 쓰더라도 고유명칭은 우리말로 쓰는 것이 대왕에 대한 예의범절이다. 이를 어긴 것은 또한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범절이 아니다. 서울 시민들 가운데도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상당할 것이다. 서울시는 공공단체다. 공공단체의 영어 남용이 마치 천민지식(賤民知識)의 극치같아 영 씁쓸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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