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가 올 정기국회에서 입법화하여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으로 추진하는 주민투표법 입안을 환영한다. “지방분권에 따른 각종 권한이 민주적이고 책임성 있게 행사될 수 있도록 행정의 최종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김두관 행자부 장관의 말에 의견을 같이한다. 자치행정은 곧 생활행정이다. 지방자치가 주민생활에 접근할 때 비로소 지역주민은 자치행정에 흥미를 갖게되어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방의회의 기능을 위축시키고 주민투표의 남용으로 자치단체 시책을 형해화할 우려가 없지않다. 그렇다고 반대로 주민투표의 발의 요건을 지나치게 강화하면 유명무실하게 되는 폐단이 있다. 행자부 안은 주민 총수의 5분의1내, 지방의원은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 단체장은 지방의회의 동의로 주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게 했다. 어떻든 행정구역 변경, 쓰레기 매립장 같은 주요 시설물 설치 등에 대해 주민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부정적 면을 감안하더라도 긍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 자치단체장의 독선, 지방의회의 견제 미흡을 주민들이 직접 심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주민투표의 대상 안건을 포괄적 예시가 아닌 구체적 열거사항으로 명시해야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행정부 안은 발의요건 외에도 주민투표 절차 및 찬반운동, 의결정족수, 주민투표 대상과 금기사항, 국가 정책사항의 자문투표 특례조항, 자치단체 조례로 자율적 추가 대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등 비교적 폭넓게 망라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토의는 앞으로 각계 대상의 공청회에서 있게 될 것이나, 지역주민 위주의 주민투표법이 되어야 주민투표의 실효를 살릴 수 있는 기본적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행자부 안에는 포함되지 않은 자치단체장 소환제 역시 주민투표법으로 규정하는 방안도 아울러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주민투표제는 지방자치 선진국에서는 벌써 시행한지 오래며 자치단체장 리콜 역시 이미 보편화돼 있다. 기왕 주민투표제 도입을 하면서 단체장 소환제도 공론에 부쳐보는 게 옳다는 판단을 갖는다. 좋은 주민투표제법안을 입법화하여 계획대로 내년 하반기부턴 시행될 수 있기를 행자부에 당부한다.
정부가 발표한 기업연금 도입, 경차 활성화, 우체국 금융개편 등 중요 경제 정책들이 후속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신뢰도가 크게 실추됐다. 부처간 손발이 전혀 안맞아 정부가 과연 이래도 되는가 싶어 실로 우려가 크다. 시책 입안, 발표를 ‘한 건 주의 ’로 여기는 것 같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정경제부의 경우, 지난 3월 ‘민생경제대책’을 내놓으면서 기업연금제(퇴직연금)를 도입키로 하고 올 상반기 중 국회에 관련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은 상반기 중 정부안조차 확정짓지 못했다. 주무 부처인 노동부에서 “재경부가 퇴직금을 갖고 증시를 살리겠다는 발상을 한다”며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탓이다. 명칭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재경부는 ‘기업연금법’, 노동부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으로 주장하고 있어 언제 입법이 이뤄질 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올 하반기부터 취득·등록세를 감면토록 하겠다는 경차 활성화도 ‘부도수표’가 됐다. 이 역시 줄어든 지방세수 보전방안 등을 놓고 정부 부처간 손발이 맞지 않아서다. 중·대형차들은 특소세율 인하로 가격인하 혜택이 주어졌으나 정부가 수차례 지원을 약속했던 경차는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해 경차구입 희망자들의 불만이 커져 가고 있다. 우체국 금융에 대한 개선은 재경부가 현정부 출범초부터 약속한 시책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정통부와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금융계는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으면서 전액 예금보호가 되는 우체국에 대한 특혜가 축소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통부는 읍·면 지역 주민들의 편의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놨다는 경제정책들이 이런 수준으로 용두사미가 된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믿겠는가. 정책 추진의 지연 사유와 대책을 마땅히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수원 광교산 입구 대규모 건축물 분양 계약자들이 며칠 전 시청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가운데, 시는 오늘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문제의 5천844㎡ 부지에 대한 공원 조성안 심의를 강행한다.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제 와서 용도지역을 공원으로 변경한다 하여 해결되는 게 아니다. 수원시는 앞으로 공원부지가 도시계획으로 확정되면 그 때 가서 건축허가를 취소할 요량이지만 그렇다고 뒤늦은 도시계획 입안으로 이미 지난 2월에 내준 건축허가가 소급해서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수원시가 정 건축허가 취소를 강행하면 필연적으로 일은 법정으로 번져 수원시장을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이 제기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간의 판결례에 비추어 시의 패소율은 지극히 높다. 만약 수원시가 건축주에 대한 소(訴) 제기를 막기 위하여 보상을 조건으로 건축주가 건축허가를 스스로 반납케 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 시의 피해보상은 건축주 뿐이 아니고 분양 계약자들에게까지 파급이 예상된다. 잘은 몰라도 수억원대로도 타협이 어려운 실로 막대한 금액이 될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여 공원조성을 하게되는 건 좋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시장의 현저한 과실로 시민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시 예산이 막대한 보상금으로 낭비된 데 대해 수원시장은 변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변상 책임을 회피한다면 애당초 건축허가를 내준 시장 이하 관련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고, 수원시민단체나 수원시민이면 누구든 구상권 행사의 소송이 가능하다. 문제는 또 있다. 보상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시가 뒤늦게 공원으로 묶어 건축을 만류한 실책으로 부지를 즉각 매입해야 하는 입장이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수십억원대의 부지 매입비는 구상권 청구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만 사업집행 순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시내엔 공원부지로 묶인지가 오래 됐으나 시가 사들이지 않아 재산권 행사를 제한받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다. 사리와 법리가 이러 함에도 불구하고 수원시가 그저 문제의 땅을 공원으로 뒤집으면 사태가 다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안일하다. 대규모 건축보다 공원이 조성돼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진즉 용도지역 변경을 서둘고 허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젠 시장이 보상금을 변상해 가며 못짓게 하든지, 아니면 짓게 놔두든지 해야할 지경이 됐다. 시장이 도장 한번 잘못 누른 과실의 책임이 이토록 크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대권 행보는 새삼스런 게 아니다. 그는 한번도 그런 의사를 밝힌 적은 없으나 이미 그같은 모습을 보여왔고 그렇게 보는 관측 또한 객관화 되어 있다. YTN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후보의 기회가 온다면 거절하지 않고 해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은 다만 그 자신이 처음으로 시인한 점에서 주목된다. 이로써 손 지사의 대권 의향은 수면으로 떠올라 향후 보폭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됐다. 경기도지사의 대권 도전은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다. 한반도 중핵인 1천만 웅도의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능히 가질만한 포부다. 문제는 도정을 유종의 미로 장식해야 하는데 있다. 지사의 임기 만료와 대통령의 임기 만료는 약 20개월 시차가 있어 손 지사가 재임 중 중도하차 할 이유는 없다. 그 자신이 YTN 인터뷰에서 “대선 얘기는 너무 빠르다”고 한 건 도정의 착실한 추진을 우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진다. “현재는 경기도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언급은 적절하다. 역시나 그랬다. 손 지사의 도정을 통한 대권 지향성 행보는 군데군데서 감지됐던 게 사실이다. 전직 국무총리를 비롯, 정·관·학계 등 인사를 망라한 ‘경기발전위원회’ 출범 그리고 지난 달 방미 길의 부시 행정부 고위층 연쇄회동에 이은 미2사단 재배치 문제의 거듭된 재고 요청, 경기도·EU 바르셀로나 학술회의 등이 그같은 사례다. 수도권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동북아 경제중심 실현 방안도 이에 속한다. 최근의 대북교류 장기계획도 문제점이 있긴 하나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 접경지역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서 역량 창출의 주요 소임이면서 국가차원의 전략사업인 것이다. 하지만 대권의 길은 평탄치 않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는 중도 진보성향의 정치인으로 아는 손 지사가 한나라당의 보수 체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건 순전히 그의 몫이다. 시일은 있다. 그리고 도전은 수많은 태산준령과 망망대해와 늪지대를 헤쳐가는 실로 고독한 작업이다. 지역사회의 광역단체장 예우 차원에서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대권 후보를 향한 정진과 병행하여 일관된 도정 추진 의지에 변함이 없길 바란다. ‘경기 비전 2006’의 10대 정책분야에 걸친 51개 역점사업에 대한 소기의 성과를 당부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삭제를 요구했는데도 민주노총이 홈페이지 게시판 ‘열린 마당’에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동영상물을 다시 게재하는 것은 해이해진 우리 사회의 대북 인식을 여실히 증명한다. 북한이 올해 초 ‘인터넷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특별공간’이라며 인터넷 게시판을 ‘항일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로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강화하라는 지침을 공공연히 내린 사실을 생각하면 북한 찬양 게시물 재개는 부적절하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는 인터넷 공안탄압을 중단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현재의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다. 더구나 북한정권에 대한 지지와 찬양 내용이 들어 있는 7개 사이트 2천600여건의 삭제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이 아직도 실질적인 전쟁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인터넷을 해방구로 생각하고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이용,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정부의 개혁 성향을 시험하는 수준으로 보아지기도 한다. 비록 금강산 관광에 경의선, 경원선 복원 공사를 하고 있어도 지금 남북한은 엄연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이 인터넷을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중단했던 김일성 부자 찬양 일색 게시물을 다시 게재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다. 자칫하면 민노총이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쉽게 북한 관련 자료를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위해 그대로 두는 것이 게시판 운영의 원칙이라는 민노총 등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재고돼야 한다. 사이버상의 ‘사상혼란’과 국기(國基)를 흔드는 글이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소수의 의견이 대다수보다 절대적일 수는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삭제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의 올해 예산 중 전시분야와 관련된 예산이 전무상태이고 미술분야 전문인력(큐레이터)이 없다는 것은 종합예술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 “시설관리 등 한정된 예산으로 전시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는 관계자의 답변 또한 미술계의 불만을 자초한 것으로 적당치 못하다. 현재 도문예회관의 전시장은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대·소 전시장이 지하에 위치한 것은 당초 설계상 문제로 차치하더라도 지상과 지하 전시장을 유일하게 연결하는 리프트를 기아 마모 등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을 못한다면 있으나마나한 시설이다. 더구나 지하 구석에 방치해 먼지로 얼룩진 간이벽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시작품의 품격저하는 물론 전시장의 미관을 크게 해쳐 관람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1991년 개관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은 지방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에게 다양한 문화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국내 굴지의 문화공간이다. 그동안 대·소 공연장과 전시장, 국제회의장 등에서 괄목할 만한 많은 행사가 열려 크게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최근에는 국악단, 연극단, 무용단, 팝스오케스트라 등 도립예술단이 경기도내 농어촌 지역 곳곳을 찾아 다니며 무료공연을 펼치고 있어 대단한 호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도문예회관의 전시분야 소홀은 천려일실이다. 미술계의 불만이 없을 수 없다. 미술계의 건의 등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올해 ‘헤르만 헤세 특별기획전’을 비롯 ‘운보 김기창 특별전’ ‘천상병 시인 추모 10주년 기념전’ 등 굵직한 행사를 기획한 경우에 비하면 전시장 활용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본보가 보도(24일자 10면)한대로 도문예회관의 전시장 활성화 방안은 다양하게 있다. 정원 규정상 여의치 못했다 하더라도 필수요원인 큐레이터는 반드시 상근해야 한다. 특히 지역미술인들과 공동으로 전시장 운영문제를 유기적으로 토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과거처럼 100% 대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여러 미술단체나 지역의 사립 미술관, 박물관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획전을 여는 것도 도문예회관 전시장 활성화의 한 방법일 것이다. 전문경영인이 새로 책임을 맡은 도문예회관다운 역량있는 개선책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제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에 이어 한나라당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한데도 한나라당은 공개를 거부한 채 민주당 발표만을 힐난한다. 물론 민주당의 대선자금 발표를 우리도 액면 그대로는 믿지 않는다. 우리 역시 한나라당이 문제삼는 대목을 한나라당에서 지적하기 앞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대선자금 발표 내용은 조작된 것이라면서, 정작 자당의 대선자금 발표엔 꼬릴 내리는 건 공당답지 않다. 자기 당의 대선자금에 구린데다 있어 국민에게 밝히지 못한다면, 그 주제에 상대 당의 자금이 구리다는 비난은 뭐 묻은 무엇이 뭘 나무라는 거나 같다. 국민은 대선자금을 은폐하는 한나라당 보단 그렇게라도 대선자금을 발표한 민주당에 무게를 더 두는 쪽이 많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대선자금 발표를 물타기로만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정녕, 한나라당이 200억원 모금설이나 굿모닝 시티 자금 유입설 등 민주당의 대선자금 의문을 규명하고자 할 용의가 있으면 이래선 안된다. 한나라당 역시 대선자금을 공개하여 양당의 발표 내용을 토대로 검찰이나 특검수사를 통한 검증 과정에서 그같은 의문을 풀도록 해야한다. 사리가 이러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당의 시비거리는 ‘음모론’을 방패삼아 숨긴채, 상대 당에 대한 ‘카더라 설’(說)만을 가지고 정치공세를 일삼는 것은 대선자금 규명 진의가 의심된다. 한나라당이 끝내 대선자금 공개를 할 입장이 못되면 민주당의 발표를 두고 시비 삼을 자격이 있다할 수 없고, 굿모닝 시티 자금의 의문 또한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한나라당의 처신이 어느 여우가 높이 달린 포도를 따먹으려다 안되자 ‘저 포도는 시다’고 했다는 이솝 우화를 연상케 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우리는 민주당을 두둔키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이 커서 하는 말이다. 최병렬 대표 취임 이후 걸었던 기대가 무산되고 있다. 당내 개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당의 진로는 여전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치공세는 그 방법이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대선자금을 공개하여 민주당과 함께 검증을 받고자 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책임 공당의 자세다.
추악하고 비정한 사건들이 난무하는 이 사회가 그래도 존재하는 것은 악(惡)보다는 선(善)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무리보다 땀 흘려 봉사하고 선행을 일 삼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40여년간 문구백화점 홍문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홍종 사장이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재단 설립에 100억원대의 재산을 쾌척했다는 소식은 훌륭한 독지가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 짐을 또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한평생 사회에서 도움을 받은 만큼 그 무엇인가를 도로 환원하기 위해 재산을 기증했다”는 이 사장의 뜻은 바로 메마른 사회를 푸르게 하는 신선한 활력소와 다름 없다. 최근 우리는 도내 각처에서 의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안양에서 삼덕제지를 경영해온 전재준 회장이 현재의 공장을 경남 함안으로 이전하면서 시가 300억원 상당의 공장부지 4천364평을 안양시에 흔쾌히 기증했다. 43년전부터 공장을 가동하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끼쳤던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상해주는 차원에서 이익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평택 중앙로타리 김홍금 여사의 선행 역시 각박한 우리 사회를 온정의 샘으로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6·25 직후 4남매를 홀로 키우면서도 삯바느질, 포목상 등으로 번 돈으로 40여년 세월을 ‘사랑의 전도사’로 일해 왔다. 가난한 이웃에게 쌀과 연탄 옷가지를 나눠주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그동안 수천만원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었다. 이들 외에도 의정부에서 노동일 하며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백충일 목사, 투병장애인들을 찾아 희망을 심어주는 동두천 천사운동본부, 바쁜 시간을 틈타 장애인공동체에서 노력 봉사하는 부천시 사회복지과 직원 등 우리 주위에는 이웃에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이홍종씨의 재산 기증으로 백암복지재단이 설립되고, 전재준 회장이 기증한 삼덕제지 공장 부지는 ‘삼덕공원’이 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사랑을 나눠주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점점 밝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기탁, 아름다운 봉사를 아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재삼 존경스럽다.
민주당이 대선자금을 공개하였다. 지난 해 9월30일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발족한 이래 사용된 수입과 지출내역이다. 총 수입규모는 국고보조금 257억원을 포함하여 일반기업 후원금 등 약40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지출은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274억원과 선거전 지출한 정당활동비 80억원 등을 합친 약 361억원에 달하는 지출내역을 발표하였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라 후원금 기부자의 실명을 밝힐 수 없어 후원금을 낸 기업 등 후원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공개하였다. 민주당의 이번 대선자금 공개는 최근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굿모닝시티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이 문제가 되어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자금 공개를 천명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정치자금의 공개가 미치는 파장이나 정치자금법 등 제도상의 문제로 인하여 공개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우선 민주당이 약속대로 대선자금을 먼저 공개한 것은 환영할 만 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미흡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자금의 진실성은 단순한 발표로 끝나지 않고 중립적인 기관이나 중앙선관위의 실사를 통한 검증을 통하여 확인돼야 하겠지만 지금 나타난 사실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더구나 선대본부 발족 이전에 사용된 후보자 활동비나 경선자금 등이 공개되지 않아 대선자금의 전체 규모로 보는덴 상당한 한계가 있다. 앞으로 계속하여 경선자금 등을 소상하게 밝혀 한점의 의혹도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도 민주당과 같이 대선자금을 공개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가 윤창열 게이트로 야기된 부정부패를 호도하기 위한 물타기작전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우선 공당으로서 국민에게 떳떳하게 지난 해 사용된 대선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규모가 민주당보다도 더욱 많을 것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것이 야당다운 자세이다.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공개를 계속 거부한다면 이는 투명한 정치를 강조하는 야당이라고 할 수 없다.
안양시 비산동 주공2단지 재건축사업 비리는 ‘공무원엔 뇌물 바치고 하도급 업체엔 뒷돈을 뜯는 민·관 합작’이라는 데서 공분이 크다. 주먹구구식 조합 운영과 인·허가 공무원 금품로비, 하도급업체 선정 비리 등이 얽힌 고질적인 ‘백화점식 비리’ 인데다 한국의 각종 부패형은 모두 집합돼 있는 가히 ‘부패 먹이사슬’의 표본이다. 비산동 주공2단지 재건축사업은 기존 소형(15 ~ 19평형)의 주공아파트를 헐고 재건축하는 대규모 건축사업이다. 원세대(2천356가구)의 주민들 외에 나머지 1천450가구는 국민은행 사원·노조원 등이 주택조합을 결성, 2000년 7월에 착공하여 이르면 오는 12월초 입주가 시작된다. 이주비만 1천200억원에 이르렀던 막대한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조합장과 임원, 공무원, 은행 노조위원장, 하도급업체 등이 대형비리를 저지른 이번 비리는 수법도 교활하다. 조합장 홍씨는 도로 확·포장 공사 하도급 업체와 감리회사 대표, 조합 임원 등으로부터 거액의 뇌물과 상납금을 받았으며, 총무이사 전씨는 아파트 및 상가 분양 희망자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다. 특히 은행 김모 노조위원장은 재건축조합 간부들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 4억원의 돈을 뜯어냈으며, 공무원 강모씨는 안양시 도시교통국장 재직 당시 전기공사 감리업체로부터 거금을 받았다. 여기에다 하도급업자까지 공사를 수주받지 못하자 비리사실 폭로 위협을 앞세워 뇌물원금은 물론 이자비용까지 얹어 3억원 이상을 뜯어냈다니 비산동 주공 재건축사업장은 비리가 비리를 등친 먹이사슬의 현장인 셈이다. 더구나 시공사측이 관계 공무원이나 조합 간부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인 혐의도 수사중이라니 더욱 큰 파장이 예상된다. 고양이에 생선 가게를 맡긴 격인 비산동 아파트 재건축 비리의 보다 큰 문제는 후유증과 손실이 고스란히 조합원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데 있다. 아파트 분양값이 대폭 상승돼 서민들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아파트를 재건축해야 할 대상지는 많다. 재건축 비리 근절을 위해선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단속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유감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