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송금과 관련해 발표한 대국민 성명, 해명 및 직접 사과는 시의 적절하다. 다만 해명 내용은 미흡하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공무원 중에도 재임시엔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역시 지켜야 할 공무상 비밀이 있다. 공익을 위해서다. 하물며 대통령은 더 말할 게 없다. 내용은 더구나 남북관계다. 어차피 당장의 해명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국익을 위해서다. 북측에 돈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또 송금액의 용도가 현대의 단순 사업용이었는지 등 이런저런 남은 의혹은 앞으로 밝혀지고 밝힐 시기가 또 있다. 지금 모든 것을 일시에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남북관계의 이중성과 북의 폐쇄성 때문에 비공개로 법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김대통령의 불가피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해명의 미흡성보다는 어느정도 드러난 진실성에 더 무게를 두고자 한다. 현대가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으로부터 얻은 철도 관광 개성공단 등 이밖의 여러 사업권은 애시당초 실정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나, 남북평화와 민족이익엔 유익하다. 대통령이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한 결단은 남북관계에 지금도 역시 유효하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권, 국회차원의 처리다. 대북송금을 둘러싼 논란이 남북간 긴장완화 그리고 국익발전의 기회를 훼손하고, 북 핵문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기 바란다. 이 정부 들어 어떻든 남북관계는 괄목할 만한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비무장지대(DMZ)의 지뢰밭이 제거되면서 뚫린 육로만 하여도 평화통일의 씨앗이다. 정치권은 모처럼 싹튼 평화통일의 씨앗을 깔아 뭉개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를 전같은 냉전 체제로 다시 돌이킬 의도가 아니라면 오늘의 남북관계의 틀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북·미가 서로 선제공격설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이 북을 먼저 공격하는 걸 지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이 미국을 먼저 공격하는 것 역시 옳치않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민족의 더 할수 없는 불행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대북송금의 논란을 확산시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국회는 당파의 국회가 아닌 국민의 국회다. 정치권은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책임이 있다. 그 무엇도, 어떤 이유도 이에 우선할 수 없다. 국회의 대승적 결말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공무원이 한 국가의 국민이로되 일반 국민과 다른 것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남다른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시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정 수행에 앞장서야 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윤리적·법적의무도 지고 있다. 때문에 공무원은 일반 국민보다 모범적이어야 한다. 만일 공무원이 국가 시책에 반(反)하는 행동을 한다면 직무유기일 뿐만 아니라 자격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정부가 에너지절약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했는데도 가장 앞장서야 할 공무원, 관공서가 이행치 않는다면 지탄 받는 것은 물론 그 책임을 면키 어렵다. 지난 11일부터 공공기관의 차량운행 10부제에 들어갔으나 경기도내 일선 관공서 대부분이 참여하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다.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차량 10부제 시행조차 모를 뿐 아니라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이 정부시책과는 상관없이 버젓이 차량을 운행했다고 하니 그 자질이 심히 의심스럽다. 경기도청으로 출근하는 차량 상당수가 10부제를 지키지 않았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자 차량들이 10부제를 위반한 채 주차돼 있다는 보도는 시민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경기도 교육청, 수원교육청, 수원시청 차량도 10부제를 위반했기는 마찬가지다. 관공서마다 10부제를 위반한 차량들이 즐비한 것은 지자체가 정부의 에너지절약 정책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비단 차량 10부제 위반만이 아니다. 관공서의 본관·신관·별관 등의 건물이 문이 잠겨진 채 내부 복도 등이 불이 켜져 있는 게 태반이라고 한다. 소등을 하지 않고 퇴근한 것이다. 지금 공무원들이 총체적 난기류에 휘말리고 있는 한국경제를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보다 심각한 사태가 야기된다. 미국·이라크전 가능성 고조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과 소비 등 내수 급락을 해결하기에도 역부족인데다 북핵 문제를 우려한 무디스의 급작스런 국가신용등급전망 강등조치까지 가세하여 경제가 위기를 맞은 상태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때 공무원들이 에너지 절약에 대한 시민 계도는커녕 가장 쉬운 차량 10부제 운행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국민적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물론 공무원들의 각성과 복무자세 쇄신을 당부해마지 않는다.
인기 개그우먼 이모씨 남편인 손모씨가 부인을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린 폭행사건 이후 가정 폭력이 다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회자되고 있다. 최근만 해도 중상을 입은 이씨 외에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파트 3층서 뛰어내린 주부가 숨지고 심지어는 아내를 죽인 남편도 있었다. 1998년부터 가정폭력범죄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가정폭력은 1999년 4만1천497건, 2000년 7만5천723건, 2001년 11만4천612건으로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여성부의 상담창구에 비친 집계여서 실제로 일어난 가정폭력은 몇배 더 할것으로 보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란 말도 있고 ‘부부도 돌아서면 남남’이란 말도 있다. 가정폭력에 제3자 개입, 심지어 경찰도 개입을 꺼리는 연유가 두 속담처럼 상반된 괴리에 기인한다. 가만 놔두면 한 때의 가정불화로 좋게 수습될 일을 두고 자칫 잘못 개입하다가는 파경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처리로 이어진 사건은 상담건수의 고작 2%도 안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폭력의 어려움은 이처럼 고소 및 고발을 할 수도 없고 안할수도 없는 갈등에 있다.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살아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한번 고소하고 나면 파경으로 이어지는 처벌을 함부로 행사할 수도 없는 것이 가정폭력이다. 문제는 남편 쪽에 있다. 흔히 가부장제도의 붕괴현상으로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부장제도가 살아있던 봉건사회에서도 폭력을 금기로 삼았다. 아내에 대한 주먹다짐은 불한당 같은 천민이나 하는 막된 짓으로 인식됐다. 남존여비 시절에도 그랬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참여 폭이 확대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또한 높이 확산되고 있다. 하물며 가정의 부부간에 아내는 남편의 지배 대상일 수 없다. 어디까지나 협력관계의 동반자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완력의 우월을 앞세워 아내를 때린다는 것은 남자로써 차마 해선 안되는 비겁한 행위다. 또 상습범화 한다. 아내를 힘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자녀들에게도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행위다. 가정폭력 역시 사회적 폭력이다. 부부싸움에도 한계와 룰이 있다. 법에 앞서 남성들의 자각으로 가정폭력이 추방되는 사회가 이룩되기를 기대한다.
경인운하 건설 사업이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달 24일 건교부가 대통령직인수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경인운하 사업의 백지화를 결정했다가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고하는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이유로 백지화 방침이 다시 번복되었다. 최근에는 한국개발원(KDI)을 비롯한 경제계가 공사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가 하면, 지난 10일 김포에서 개최된 건설교통부 주최 설명회에서는 경인운하 사업이 중단될 경우, 4조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경인운하 사업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공사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환경단체들은 최근 KDI가 다시 경인운하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한 것은 정부가 KDI에 압력을 넣어 재평가된 것이기 때문에 감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인운하 사업은 교역량 증가로 인하여 만성적 체선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인천항 기능을 분산, 물류로 원활히 한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공사에 이미 상당한 돈이 투입돼 백지화되면 투입된 돈의 효과가 의문시 된다. 건교부는 홍수예방을 위한 사업 등으로 진행된 공사도 있기 때문에 실제운하에 들어간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과잉중복투자와 충분하지 못한 환경성 평가도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책사업이 부처이기주의나 국책연구기관의 왜곡된 연구결과에 의하여 결정됨으로써 정부의 신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새만금건설사업, 한탄강댐 건설사업 등도 환경단체나 학계에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며, 하남경전철 사업도 재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국책사업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 계획에 따라 충분한 의견수렴과 연구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며, 한번 결정된 사업은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경인운하 건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노인 1인당 연간 생활비가 54만원이라면 하루 생활비가 1천500원 꼴이다. 1천500원으로 하루를 살려면 한 끼니값만 500원이 든다. 경기일보가 엊그제 심층 보도한 양로원의 실태다. 갈곳 없는 노인 94명을 돌보고 있는 경기북부지역의 한 양로원이 지난해 노인 1인당 연간 54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양이 골고루 필요한 노인들을 위해 하루 식단 짜기도 어렵다. 더욱 딱한 것은 주·부식비 외에도 직원 인건비, 공공·제세 등을 쓰고 나면 양로원 운영 자체가 어려운 사실이다. 난방·연료비가 많이 드는 겨울철엔 특히 더 심하다.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된 노인시설은 그래도 정부보조금, 법인전입금, 후원금 등으로 간신히 운영되고 있지만 미등록·미신고 시설은 더욱 열악하다. 화성시에 있는 한 노인시설의 경우, 이따금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과 간병인 1명이 10여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으나 운영을 포기해야할 형편에 처했다. 10만∼30만원의 생활비를 내도록 돼 있지만 그 돈을 낼만한 노인이 단 1명도 없기 때문이다. 양로원의 노인들 대부분이 관절염, 신경통 등의 질병을 갖고 있어 향후 치매 등으로 악화될 우려가 농후한 것도 심각한 문제점이다. 의사 1인,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를 노인 50인당 1인을 배치토록 노인복지법이 규정하고 있으나 이들이 없는 노인시설이 허다하다. 그러나 당국의 감사시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없다. 그만큼 복지시설의 직원 배치 기준이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인시설에 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지원은 너무 열악하다. 일본의 5년전 일반회계 노인복지 관계 예산이 올해 우리나라 일년 전체 예산에 상당하는 11조원임을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구호와 계획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인복지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정책을 반영해야 할 때가 됐다. 무료양로원, 실비양로원 시설 확충과 지원을 실질적으로 증액함은 물론 미등록 시설도 일정액을 지원하고 당장 필요한 요양시설 708개소, 전문요양시설 354개소, 요양병원 118개소 등 노인복지시설 건립에 투자할 시점이다. 노인복지 수요는 나날이 늘어 나는데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이 제자리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서민을 위하는 나라가 진정한 복지사회다.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에너지 절약 대책은 진즉 마련했어야 옳았다. 정부도 국무회의에 석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과 에너지 절약 대책안을 올려 확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영화관 심야상영 제한과 대중목욕탕, 찜질방 등의 영업시간 단축 등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절약 종합대책을 마련,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16일까지는 권장 시행되지만 산업자원부가 마련중인 에너지 사용제한 및 금지조치가 확정 발표되는 17일부터는 강제 시행된다. 경기도도 우선 1단계로 에너지 절약대책을 자율적으로 시행하되 정부가 2단계 대책 시행을 결정하면 10인승 이하 비사업용 자동차의 10부제 운행, 승강기 운행 제한, 골프장·스키장 등의 심야전기 사용 제한 등을 강제로 시행키로 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에너지 절약은 생활의 지혜이자 국민적 의무이다. 미국의 대이라크전쟁 가능성과 북핵사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허비하였음을 자성해야 한다. 따라서 자정이후 네온사인과 옥외광고물 억제, 백화점 등 대형매장의 외부조명 사용억제, 자동차 판매대리점 실내 등과 상품진열장의 전시용 조명 자정 이후 사용제한 등은 스스로 실천해야할 절약생활이다. 도시의 상가 밀집 지역에서 네온사인 및 광고 간판 등이 불필요하게 밤새도록 켜져 있는 것도 시정돼야할 대상이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에서 계획하고 있는 가로등 일정거리 소등과 공원의 보안등 소등은 교통사고와 각종 범죄예방 차원에서 재고돼야 한다. 에너지 절약의 문제는 대책도 필요하지만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이제까지의 에너지 대책이 유가가 오르면 그때 뿐이었던 것 처럼 향후 대책이 임시방편이나 전시성이어서는 안된다. 에너지 다소비형 시설 등에 대한 중장기적인 개선책 마련이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기업·자영업소·상점·가정 등이 모두 에너지 절약에 적극 동참할 때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국가는 물론 가정의 경제를 위하는 길이다.
정치 개혁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정치의 본산인 국회 운영은 이 점에서 마땅히 변화 요구의 대상이었다. 엊그제부터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은 이의 시금석이다. 국회법 개정에 따라 포괄적 질의, 포괄적 답변을 탈피해 의정사상 처음 일문일답 형식으로 진행된 대정부 질문과 답변은 그래서 주목됐다. 미숙한 점도 있고 미흡한 점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국회 파행이 예방된 것은 비교적 강점이다. 전같으면 몇차례 정회 소동이 있었을 법한 대북송금 질의 답변이 차분히 진행됐다. 부질없는 정치공세, 장황한 한풀이 연설의 폐단도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시간 제한 없이 무작정 끄는 거친 질의에 야유와 고성이 난무하기 일쑤이던 꼴불견 추방이 기대된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의사일정의 질의 주제를 일탈한 엉뚱한 질문을 하고, 국무위원이 서면답변이나 알아보겠고 하는 회피성 답변이 있었던 것은 일문일답식 진행의 본의에 반한다. 요컨대 문제는 질의하는 국회의원이나 답변하는 국무위원이나 다같이 초점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에 대한 의무다. 이러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이 소관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평소는 물론이고 대정부 질의 및 답변에 임하여 공부를 더욱 충실히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일문일답 진행 방식에도 물론 단점은 있다. 보충질의를 못하고, 또 질의 답변 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원활한 의사일정의 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이같은 조치는 앞으로 연구해가며 시정하면 되는 일이다. 보다 더 절실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의식이다. 더는 공부하지 않고 멱살잡이 등만 잘하면 국회의원 노릇하는 잘못된 풍토가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선진 외국의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소속 상임위의 소관 국정엔 부단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이래야 국무위원들의 회피성 답변을 날카롭게 추궁하고 정부를 압도하는 정책 대안 제시의 실력을 쌓을 수가 있다. 사흘째 마지막 대정부 질의를 벌이는 오늘의 국회에서도 이상 밝힌 주문이 충족할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문제는 앞으로에 있다. 이번 국회의 첫 경험을 토대로 국회의원들이 심기일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배양을 기대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정쟁을 방지하고 국정 논의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야 한다”고 일문일답식 변화의 배경을 설명한 박관용 국회의장의 다짐은 의미가 있다. 이제부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수 있는 대정부 질의 응답이 되는 노력이 있기를 거듭 당부한다.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강성 기류 확산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시 미국 행정부는 온건파마저 후퇴, 강경파 일색으로 치닫고 있다. “어떠한 선택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부시의 군사력 시사, 그리고 “무력 사용을 포함한 어떤 정책도 선택할 수 있다”는 파월 미 국무부장관 등의 발언은 사태해결에 유익하지 않다. 그동안 북 핵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평화적으로 또는 외교적 해결을 단서로 붙여온 것과는 달리 군사력을 들먹이는 게 북을 압박하는 수단이라 할지라도 이래서는 대화의 길이 더욱 막힌다. ‘북은 사다리를 높이 올라가서 한칸씩 내려올 때마다 보상을 요구하지만 나쁜 행위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시의 입장을 대변한 울포위츠 미 국무부 부장관의 설명이다. 일리있는 말이긴 하나 북으로 하여금 사다리를 높이 올라가게 만들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케 하는 등 사태를 악화시킨 것 역시 부시의 강경책이다. 부시는 좀 더 자신과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라크 문제만 해도 최근 미 행정부가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 독일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까지 싸잡아 험구로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 의회나 전직 중요관리 등 전문가들 사이에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이들이 적잖다. 상원의원 일부는 시기를 더 놓치지 않는 대화 촉구를 권고하고,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행정부에 조언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북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더 절박하다. 해법 역시 우리가 미국보다 더 잘 안다. 이럼에도 부시의 자의적 잣대만 고집하는 것은 심히 당치않다. 우리는 비록 경고의 의미라 해도 미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지지할 수 없다. 북의 선제 공격설 역시 민족 자조에 적절치 않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이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 북 핵문제의 발단이 어떻든 간에 이제와서 중요한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핵 재처리시설 가동을 통해 핵 개발로 나가는 빌미를 주어서도 안된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일 열리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특별이사회에서 핵 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끌고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의 유연성 전환이 평화적 해결의 첩경이며, 한·미공조의 절대적 강화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난 주 전국은 로또복권의 광풍에 시달렸다. 어린 초등학생에서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인생역전을 꿈꾸는 로또복권 1등 당첨금 835억원의 대박을 기대하면서 무려 1억3천만장이 팔렸다. 그러나 1등 당선자 13명을 비롯, 4등까지의 1만1천490여명을 제외한 구매자 1천3백만명은 허탈한 상태로 로또광풍은 막을 내렸다. 이번 로또광풍은 그 동안 1등 당첨자가 없어 이월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번 불기 시작한 복권 열풍이 쉽게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이번 로또복권 광풍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제기시켰다. 한탕주의, 대박심리가 확산되어 열심히 일하는 풍조보다는 일시에 거금을 움켜쥐려는 황금만능주의가 더욱 팽배해 지고 있다. 지난 주 직장인들은 일상 업무보다는 허황된 대박의 꿈에 정신에 팔렸으니 이런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카드 빚을 내서 복권 사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공금으로 1천만원을 빼돌려 복권을 샀다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전국을 이런 광풍 속에 빠지게 한 1차적인 책임은 우선 정부에 있다. 지금도 주택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등등 여러 종류의 복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정부 주도로 대박을 꿈꾸는 로또복권을 발행한 정부의 정책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복권 판매액이 무려 2천6백억원이나 되며, 이중 당첨금과 운영비, 판매경비 등을 제외한 30%인 약 7백억원 이상이 10개 정부부처에 배정된다고 하는데, 과연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부가 얼마나 궁하여 서민의 주머니 돈이나 끌어내 목돈을 마련, 무슨 훌륭한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발행된 수십종류의 복권판매로 인한 수익금에 대한 투명한 자료 제공이 없다. 무조건 복권을 많이 팔아 돈이나 모아 정부 각부처에 나눠주자는 발상은 잘못이다. 더 이상 선량한 시민들이 대박의 허황된 꿈에 빠지기 전에 복권발행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여야 한다. 건전한 레저 정도로 즐길 수 있는 규모만의 복권을 발행하고 복권 수익금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상식에 기초한 정부 정책이 아쉽다.
정부가 인간 복제 전단계인 체세포 복제 연구를 사실상 허용키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심히 실망스럽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일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제정안 내용에 대해 과학기술부와 합의, 최종안을 확정했으며 이른 시일내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본란만이 아니라 반대 여론이 크게 확산될 게 분명하다. 최종안을 보면 포장은 그럴 듯 하지만 내용물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과학·의학계의 요구와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체세포 복제연구를 허용하되 허용범위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심의,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복지부 장관이 개발 연구 사안에 대해 연구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은 결국 체세포 복지를 허용키로 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우려해온 생명존엄성 파괴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 둔 것으로 문제점이 심각하다. 우선 인간복제를 막기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 없이 체세포 복제가 제한적이나마 가능해져 정부의 감시·감독을 벗어난 전국 각지의 연구소에서의 ‘인간 복제’시도를 막기가 어렵게 됐다. 또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의 두 정부 부처는 인간생명의 존엄성 파괴 문제를 우선 생각하기보다는 부처 이기주의에 집착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인간복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데 강조점을 둔 복지부와 생명공학산업의 발전을 주장하는 과학·연구계를 대신한 과기부가 서로 한발씩 양보해 합작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달초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 소동과 함께 조속히 인간복제 금지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자 두 부처가 결국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희귀·난치병 치료 목적일 경우 예외로 인정한다’는 선에서 전격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윤리법은 인간배아는 생명체와 다름없는 독립적 객체로 탄생 순간부터 인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복제의 직전 단계인 체세포 복지 연구를 허용한 것은 사실상 정부가 인간복제를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만 뽑아내고 나머지는 폐기처분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치료를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무서운 행위다. 정부안의 수정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