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목욕탕

우리 나라 대중목욕의 전통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집 밖에서 한 목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국내기록으로 동천과 북천에서 각각 목욕했다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의 이야기를 꼽는다. 신라시대 땐 대형 공중목욕탕이 절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구려에서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사천왕 17년(286년)에 왕의 동생들이 온탕에 가서 무리들과 어울려 유락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인들은 목욕을 더 자주해 중국 송나라 문신 서긍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차례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시대에에 계곡과 냇가에서 노출을 꺼리는 생활관습 때문에 남녀 모두 옷을 입은 채 신체의 일부분을 씻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등에 나타나 있다. 1910년 이후 선교사들이 드나들면서 욕실을 부대시설로 갖춘 호텔과 여관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대중목욕탕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근대적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첫선을 보였고 행정관청인 부(府)에서 직접 관리를 맡았다. 서울에서는 1925년에 첫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고 1945년 이후 사설 대중목욕탕이 급속히 보급됐다. 2001년엔 1만98개로 최고에 달했지만 대형 사우나 찜질방이 급증하면서 대중목욕탕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목욕탕이 욕탕 중심에서 한증실 중심으로 바뀐 데다 아파트가 늘어나 굳이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유가와 업소간 가격경쟁이 치열한 데다 비수기까지 겹쳐 동네 목욕탕이 고사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설이나 추석 전날이면 연례행사처럼 대중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기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책임장관?

법치(法治)와 인치(人治)가 있다. 법 위주의 다스림과 사람 위주의 다스림이다. 법치는 원칙논리인데 비해 인치는 상황논리다. 이 때문에 법치는 객관적이고 인치는 주관적이어서 전자는 잣대가 하나지만 후자는 상대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 조직, 즉 시스템은 법치에 의해 가동되어야 건강하다. 인치에 의해 가동되는 조직은 신뢰성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각을 6개 분야로 나눠 이른바 ‘책임장관’으로 이름하는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내놨다. 총리나 두 부총리가 맡은 일은 정부조직법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다만 행정각부를 총리가 통할하는 터에 ‘책임장관’을 두는 것은 옥상옥일 수는 있다. 이 점에서 ‘책임장관’이란 일종의 인치다. 통일부 장관이 정동영 국무위원, 복지부 장관이 김근태 국무위원이 아니어도 통일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책임장관’으로 둘 지는 심히 의문이다. 청와대는 ‘책임장관’이 상하의 수직관계가 아닌 상호협력의 수평관계라지만 당치 않다. 책임을 지는 수평관계란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있다면 책임은 실종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조직법상의 내각 순서 4위인 통일부 장관이 하위인 유관부처를 팀으로 거느리는 것은 그래도 부당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순서 14위인 복지부 장관이 10위인 문광부 장관 등을 팀으로 둔 ‘책임장관’인 것은 부당하다. 헌법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국무총리 다음엔 ‘법률(정부조직법)이 정한 국무위원(장관)의 순서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든 국정 시스템을 헌법 등 법대로 하면 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 위상을 강화한다지만 이도 법대로 하면 절로 강화된다. 국무회의 또한 협의와 토론의 장으로 활성화하면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나 유관부처의 팀 워크를 새삼 말할 것 없이 절로 이루어진다. 분명한 것은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공과는 대통령에게 돌아 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통령 책임제이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의 법치정신을 촉구한다./임양은 주필

잘못된 법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지난 1994년 정기국회에서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 42조 3항이 개정됐다.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는 본문대목은 그대로 놔두고 그 뒷부분의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국가가 그 일부를 부담한다’는 단서 대목 중 ‘국가’가를 ‘지자체’로 개정했다. 그러니까 국가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지만 다만 지자체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받았으면 주로 지자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개정 법률이 실린 관보 내용을 출판사가 잘못 해석하여 본문의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대목의 ‘국가’를 엉뚱하게 ‘지자체’로 고쳐 법전에 실음으로써 무조건 지자체 부담인 것처럼 된데 있다. 토씨 하나 가지고도 어감이 다른 법률 조문을 출판사가 멋대로 고쳐 실었다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 그러나 이 법전의 오류를 발견치 못하고 그대로 적용한 판사도 좀 그렇다. 잘못된 법전내용을 옮겨본다.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가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지자체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고 된 것은 본문과 단서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한 소리인데도 묵과됐다. 희귀병을 얻어 제대한뒤 숨져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아들의 치료비를 아버지가 국가에 청구한 소송에서 판사가 잘못된 법전을 보고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그 아버지가 서울시를 상대로 재차 소를 제기했으나 서울시는 법제처에서 낸 법령집에 적힌 관련 법률을 보이며 ‘서울시 의료시설에서 가료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국가 부담이지 왜 지자체 부담이냐’며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밝혀졌다. 잘못 실린 법전이 10년이나 그대로 방치되면서 국민에게 억울한 피해를 끼친 건 법치사회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출판사 법전은 믿을 수가 없으니 법제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법령집’을 보내 달라는 말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을는지 모르겠다./임양은 주필

지지대/더위나기

올 여름은 참 더웠다. 예년보다 기온이 더 올라간 탓도 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혹서가 정말 짜증스럴 정도였다. 마음이 피곤하였기 때문이다. 신명나는 일이 있으면 체감 더위가 좀 심해도 마음은 덜 할 터인데 뭐 하나 보는 것, 들리는 게 거의가 짜증나는 것 뿐이니 심신이 피곤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더위도 한 풀 꺾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자연의 조화다. 예컨대 동해의 해수욕장도 8월15일까지는 한창이다. 그러나 단 하루 상관이지만 16일부터는 아니다. 조류의 변화로 그만 물이 차가운 게 오래 버티기가 버거운 것이 해마다 똑 같다. 오는 23일 처서(處暑)를 고비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 비도 알맞게 내리고 삼복 더위가 찌는 듯 했으며 몇번에 걸친 태풍도 간접 영향권으로 비껴가곤 하였다. 농사란 곡식을 가마니에 담아야 마음을 놓는다고 하나 가을 들녘이 풍요로울 것 같다. 쌀이 남아도니 어쩌니 해도 농사는 풍년이 들고 봐야 한다. 비록 더위의 기세가 꺾였다 하여도 잔서(殘暑)란 게 있다. 오곡백과를 마지막으로 영글게 하는 것이 늦더위다. 늦더위 역시 땀을 흘리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게 여름철 더위같진 않다. 휴가를 아껴 한 여름 혹서를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비지땀으로 치른 사람들은 이제부터 휴가를 제대로 즐기기가 딱 알맞은 계절이 된다. 더위는 가지만 짜증난 일들이 있기는 여전할 것 같다.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경제는 거의 빈사상태에 빠지고 정치권은 헛소리만이 무성하다. 사회는 패거리 작당의 풍조속에서 살인마가 설쳐 댈 정도로 사회병리현상이 위기 수준이다. 세상은 험해도 민초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겨 민초들 가슴을 짓누를진 모르지만 그래도 살기위해선 발버둥 쳐야 한다. 더위는 가도 민중의 마음은 여전이 무겁기만 하다./임양은 주필

올림픽메달값

2004 아테네 올림픽의 메달 포상금은 국가별로 다르다. 개최국 그리스올림픽위원회는 금메달리스트에게 19만유로(2억6천70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은메달은 13만2천유로(1억8천550만원), 동메달은 7만3천유로(1억250만원)를 준다. 여기에 경기단체별 포상과 기업 후원금까지 보태지면 그리스 메달리스트들은 한 순간에 돈방석에 앉게 된다. 또 그리스의 메달리스트들은 안정적인 직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해안경비대와 군, 소방대 등에 입대할 수 있는 특전이 부여된다. 그리스 다음으로는 스페인이 금메달 7만5천유로(1억500만원), 은메달 4만유로(5천600만원), 동메달 2만4천유로(3천370만원)로 비교적 높은 포상금을 지급한다. 러시아는 금메달에 4만유로를 포상하기로 했지만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광고 등 부가 수입이 있는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내고,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마케팅이 이뤄지는 미국은 올림픽 메달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미국의 금메달 공식 보너스는 2만5천달러(3천500만원)이다. 그러나 미국 메달리스트들 대부분이 거액의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거나 광고 메달로 활약하고 있어 공식 포상금은 말 그대로 보너스다. 북한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인민 체육인’을 넘어 ‘공화국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다. 아파트 및 자가용 지급, 배급량 상승 등 차관급 이상 대우를 받는 공화국 영웅은 체육인이 북한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한국은 대한체육회가 체육진흥기금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금메달 포상금을 1만5천달러(1천748만원), 은메달 8천달러, 동메달 5천달러로 책정했다. 지도자에게도 금메달 1만달러, 은 7천달러, 동 5천달러가 제공되고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출전 보너스로 1천달러가 지급된다. 하지만 공식 포상금보다는 경기 단체와 소속 팀 포상금이 더 많다. 마라톤 이봉주 선수의 경우 금메달을 따면 소속팀 삼성전자가 내건 2억원, 육상연맹 포상금 등을 합해 모두 4억원에 이른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과 북한 선수들이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약장사

‘녹 혹은 의학의 승리’라는 연극은 1923년 파리에서 초연됐다. 20세기 초 한 유럽 산골마을의 의사가 순진한 산골 사람들에게 각종 질병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어 병원장사에 성공하는 내용이다. 의사 ‘녹’은 병실을 북적거리게 하기 위해 마을의 학교 선생을 구슬러 마을 주민들에게 미생물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하여 강의토록 한다. 그런데 연극 속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전개된다. 외신을 보면 요즘 독일 베를린에 있는 카데/베진스키사는 최고 전성기에 있는 남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드는 남성 ‘노화신드롬’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이 신드롬은 남성 폐경기를 의미한다. 이 회사는 여론조사기관과 홍보회사, 광고대행사, 그리고 의학 교수들을 동원하여 남성 폐경기를 공개적으로 홍보하여 기자회견을 열어 ‘남성호르몬 생산기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들이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는 지난해 4월 독일시장에서 두 가지 호르몬의약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산업국가에서 인간에 관한 질병과 증후군, 장애, 전염병의 수는 무려 3만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각 질병마다 새로운 알약이 하나씩 나오며 새로운 약이 나올 때 마다 이에 맞춰 새로운 질병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고 한다. 질병 고안자들이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이다. ‘없는 병도 만든다’, 즉 약 팔려고 병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없는 병도 만드는’ 제약회사들은 연구보다 마케팅에 돈을 더 많이 쏟아 붓는다. 자사 제품을 시장에 대량으로 팔기 위해 수익의 3분의1과 전 직원의 3분의1을 투입한다. 제약회사들이 없는 병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의사, 학자, 기자들도 동원된다. 2002년 6월 하버드 의과대학의 조사 결과 미국의 주요신문 33개와 4대 텔레비전 방송에 실린 3가지 의약품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대상기사 207편 중 40%가 의약품의 효과를 증명하는 데이터와 수치가 빠져 있었고, 수치정보를 제공한 124편 중 83%도 단지 해당약품의 상대적 효용성만 보도했다. 한국의 제약회사들은 설마 이렇게 하지 않겠지 싶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남사당

“나는 얼굴에 분을 칠하고 / 삼단같이 머리를 따아 내린 사나이 /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 날나리를 부는 저녁이면 /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 람프 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 /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 은반지를 사 주고 싶은 /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 처녀야 / 나는 집시의 피였다. / 내일은 또 어느 동리를 들어간다냐. /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 노새의 뒤를 따라 /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 길에 오르는 새벽은 /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사슴’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긴 노천명(盧天命·1913~1957)의 詩 ‘남사당(男寺黨)’이다. ‘사당(寺黨)’은 패를 지어 이곳 저곳 다니면서 노래와 춤을 파는 여자이고, 남사당은 사당 복색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노래와 춤을 팔고 사는 남자다. 남사당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로써 안성(安城)남사당패가 예로부터 유명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에는 수 많은 농악과 풍물단이 있다. 그러나 전통있는 풍물을 시립화(市立化)해 계승·발전시키고 문화관광상품으로 육성시켜 나가는 지자체는 안성시가 유일하다. 그런데 오는 13일부터 그리스에서 개최되는 제28회 올림픽 문화행사에서 ‘안성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이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공연을 펼친다는 소식이다. 문화관광부가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예술 공연팀으로 안성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을 추천한 것이다. 안성 남사당풍물단은 지난 해도 터키 수도 앙카라를 비롯 이스탄불과 부르사에서 13회나 해외 공연을 펼쳐 이미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바우덕이풍물단은 아테네 최대 인구 밀집지역인 오므니와 광장과 거리에서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줄타기 등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을 15차례 펼친다. 전통 연희의 해학과 서민적인 작품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노천명의 시 ‘남사당’이 그 나라 말로 낭송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중.일 축구전쟁

중·일전쟁이 붙었다. 베이징 아시안컵결승전이 그 무대다. 지난 7일밤 노동자경기장서 열린 축구 결승전서 중국이 일본에 1-3으로 패하자 관중들은 전쟁과 같은 난동을 일으켰다. 일본 선수단이 탄 버스를 에워싸고 일장기를 불태우며 돌멩이 등을 던지는 등 한동안 길을 막는 과정에서 일본대사관 공사가 탄 승용차 유리창이 깨졌다. 이어 일본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과 일본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중국 국가를 부르면서 철야시위를 벌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네티즌들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심판과 일본 선수들을 절대로 살아서 나가게 해선 안된다”는 협박성 글로 인터넷을 도배질 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은 관중의 이런 소란엔 눈을 감았다. CCTV는 일본의 두번째 득점장면 방영을 되풀이하면서 “오심이 일본을 도왔다”며 오히려 거친 관중을 두둔했다. 이에 대한 일본측의 반응은 경멸에 가깝다. 한 정치인은 “중국의 민도가 낮다”면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나라의 국민적 자질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했다. 축구전쟁은 남미에선 흔히 있었던 일이다. 유럽에서도 더러 보아왔다. 그러나 이들의 축구전쟁은 경기 자체에 국한한 것이었다. 이번 중·일 축구전쟁은 경기 너머에 있는 중국의 반일감정 표출인 점에서 문제가 다르다. 중국 관중들은 ‘일본 상품배격’ ‘국가충성보답’의 구호를 내걸었다. 단순한 축구 자존심의 감정 노출이 아닌, 국가 자존심의 감정싸움인 게 베이징 축구전쟁인 것이다. 중·일 축구경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도 있었다. 전례없이 중국측 감정이 폭발한 것은 족구(足球·중국은 축구를 이렇게 말한다)진흥을 위해 그동안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온 데 대한 기대감도 물론 연유한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배경은 중국 국민의 자신감이다. 이젠 살만큼 살게 됐으므로 일본에 꿀릴 게 없다는 사회적 정서가 짙게 깔려 보인다. 두 나라의 패권주의 다툼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임양은 주필

이종격투기

재일교포 최영의는 제2의 역도산이다. 같은 재일교포인 역도산이 일본 패전후 1950년대 일본 사회를 풍미한 프로레슬링의 영웅이었던 데 비해 최영의는 1960년대 카라데의 영웅이었다. 최영의 카라데는 진성 카라데로 발전했다. 규칙을 배제한 채 진성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맨몸이면 상대가 복싱·유도·레슬링 등 무엇을 하는 선수든 항복할 때까지 싸웠다. 격투기의 진짜 챔피언을 가린다는 것이 최영의가 가진 무술인의 신념이었다. 세계 도처의 유명 선수와 진성격투를 벌여 연파한 그는 나중엔 맹수류 동물과도 싸움을 가져 투우를 카라데로 때려 죽이기도 했다. 이종(異種)격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1990년대 미국 등지서 시작된 이종격투기 또한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싸우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마침내 국내에까지 들어와 얼마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110만원짜리 VIP석이 매진된 가운데 1만3천여 관중이 운집하는 성황을 이룬 것 같다. 진정한 강자를 가리는 규제 철폐의 오픈이 대중을 열광케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날 가진 이종격투기는 복싱·카라데 등 선채로 주먹과 발을 사용하는 입식 타격의 K-I형이다. 유도·레슬링까지 포함하는 MC형 이종격투기가 또 있다. 최영의의 진성격투기가 K-I형+MC형+기타이었던 것에 비하면 잠실체육관에서 있었던 이종격투기는 덜 격렬하다 할수 있으나 역시 잔인하다. 고대 올림픽경기에서 복싱은 주먹에 천을 감은채 상대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싸웠다. 로마 광장에서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검투사의 결투를 연상케 한다. 진성격투기가 각광받던 1960년대의 일본 사회는 혼란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다. 국내 사회에서 이종격투기 흥행이 외국에서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대박이 되는 대중 취향이 놀랍다. 스포츠이기 보다는 피투성이 결투에 속하는 것을 즐기는 건 사회병리 현상을 드러내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임양은 주필

제기 차기

‘제기’는 엽전이나 구멍이 난 주화(鑄貨)를 얇고 질긴 한지나 비단으로 접어서 싼 다음 양끝을 구멍에 꿰고 그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한 것인데 주로 정초에 즐기는 어린이 놀이기구다. 제기는 한 사람씩 차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마주 차기도 한다. 지역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에서는 한번 차고 땅을 딛고, 또 차고 땅을 딛고 하는 제기 차기를 ‘땅강아지’, 두 발을 번갈아가며 차는 것을 ‘어지자지’, 땅을 딛지 않고 계속 차는 것을 ‘헐렝이’라고 한다. 제기를 잘 차는 사람은 한 가지만으로 몇 백까지 차기도 하는데 차 올린 제기를 머리 위나 어깨로 받아서 한참씩 다리를 쉬거나 발 안쪽과 바깥 쪽은 물론이고 발등과 발뒤축 또는 무릎으로 차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이 놀이는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행하던 ‘축국(蹴鞠)’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축국은 넓은 마당에 높은 장대를 여러 개 세워 그 위에 망을 치고 털로 싼 가죽공을 여러 사람이 다투어 차서 공을 망 위에 얹는 결과로 승패를 짓던 것이었다. 뒷날 공에 바람을 넣어 사용하게 돼 이름도 축구(蹴毬) 또는 타구(打毬)로 바뀌었다. ‘구당서(舊唐書)’에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을 잘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의 김유신이 축국을 빙자하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어 누이인 문희(文姬)에게 이를 달게 하여 두 사람의 인연을 맺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조선 말엽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에 “장년과 소년들이 축국놀이를 하는데 공이 탄환만 하여 위에는 꿩털을 꽂았다. 두 사람이 상대하여 서로 마주 차는데 계속하여 차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훌륭한 기술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놀이가 삼국시대부터 널리 행해져 왔음을 알게 한다. 최근 경기도의사회가 ‘범국민 건강 제기 차기 운동’에 나선 것은 제기 차기가 전신운동으로 비만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고 집중력 향상은 물론 심폐기능과 체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도 안들어가니까 전통놀이 계승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회의원 후원금

연간 1억5천만원인 현행 국회의원 후원금 상한액을 높이려는 정치권의 정치자금법 개정 움직임은 가당치 않다. 후원금 상한액을 올리자는 건 결국 돈 쓰는 정치를 하자는 얘기다. 특히 깨끗한 정치를 표방해 4·15 총선에서 재미를 봐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돈을 더 많이 받아 쓸수 있게 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어 실망스럽다. 시쳇말로 ‘여당본색’이 나타났다. 다수 여당이 되고 보니 기업에서 돈 받기가 수월해져 그런다는 수근거림이 사실인 모양이다. ‘돈이 없어 정책 개발을 못한다는 말보다 용돈이 부족해 성적이 안오른다는 말이 더 정직한 것’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쓴소리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여야가 합의해 후원금 상한액을 연간 3억원에서 절반으로 낮춘 지 불과 몇 달만에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겠다는 건 후안무치와 다름 없다. 선거 때만 얄팍한 술수로 국민을 속이면 된다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보좌관과 국회사무처, 행정부처 등의 지원을 받고 세비를 포함해 연간 4억원 가량을 쓴다. 당리당략과 정쟁만을 일삼는 국회의원이 소요비용 대비 업무충실도나 생산성 등을 감안할 때 과연 그만큼의 엄청난 국가돈을 쓸 자격이 있나, 생각하면 ‘아니올시다’이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 국회의원은 연간 한도액을 정하지 않고 모금할 수 있도록 하되 입출금 내역과 후원자 실명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토록 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얄팍한 계산이다. 여당이나 실세쪽으로 몰릴 것은 불문가지다. 선관위에 정치자금 사용 내용 특별감사기구를 만들어 상시 감시하자는 것 역시 공연히 선관위 업무만 가중시키는 일이다. 후원금 한도 증액이 불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현행 정치자금법상 선거가 실시되는 해엔 3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게 돼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심히 어렵고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마당에 후원금 증액 정치자금법 개정같은 몰염치한 입법 계획은 백지화해야 한다. 국익과 민생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먼저 충실해야 할 지금은 난국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올림픽축구팀 파이팅!

한국축구의 올림픽 도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48년, 1964년의 참패에 이어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1984년 LA올림픽에 이르기까지 5회 연속으로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것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경기였다. 멕시코 올림픽 예선전에서는 맞수 일본과 3대3으로 비겼지만 상대가 무려 15대0으로 대승한 필리핀을 5대0으로 밖에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골 득실차점으로 티켓을 넘겨주고 말았다. 홈에서 열린 1972년 헨 올림픽 예선에서는 복병 말레이시아에 0대1로 패하여 꿈을 접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예선에서는 이스라엘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에서도 말레이시아에 무릎을 꿇었고, 1984년 LA올림픽 예선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 연패하여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자동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5회 연속 본선에 오른 한국축구는 이제 본선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할 위치에 섰다. 8월 아테네의 살인적 더위는 한국축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섭씨 40도를 오르 내리는 더위 속에 치러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좋은 성적을 상기해 볼 때 그러하다. 직접 뛰는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체력을 내세우는 한국팀으로서는 더운 일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일 수 있다. 출범한 지 1년 6개월 동안 올림픽한국축구대표팀은 28 경기를 치러 18승 5무5패의 성적을 냈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선 파죽의 6연승(무실점)으로 올림픽 5회 연속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아시아예선부턴 11경기 무패행진(8승3무)으로 상승세를 이어 나갔다. 8월 1일 인천공항을 통해 대망의 출정 길에 오른 올림픽축구대표팀의 가장 큰 장점은 조직력이다. 18개월 동안 호흡을 이룬 젊은 선수들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돋보인다. 감독 김호곤, 주장 유상철, ‘공격의 핵’ 이천수, ‘붙박이 수문장’ 김영광은 “메달을 따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신화의 도시 아테네에서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재현하고 오라! 한국축구 파이팅! /임병호 논설위원

노건평씨

“대통령 주변 비리가 터질 때마다 대통령의 리더십과 권위가 손상돼 왔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대통령이 권위를 손상당하는 일 없이 국가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대통령 친인척이 폼내고 대접받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므로 겸손 인내 은둔의 생활을 해달라…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았으므로 자중자애하고 처신에 조심해 달라.” 창원지법 형사합의3부 재판장 최인석 부장판사로부터 변호사법위반죄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받고 약 3분동안 이같은 훈계를 받은 노건평 피고인(62)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고 신문보도는 전했다. 지난달 21일에 있었던 일이다. 건평씨는 지난해 9월5일 지금은 한강에 투신해 고인이 된 당시 대우건설 사장 N씨의 요청을 받은 P씨로부터 사장 연임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자택에서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 됐었다. 재판장은 “대통령의 형이라는 신분 때문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면서 그같은 쓴소릴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건평씨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판결받은 이튿날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다는 속보가 또 나왔다. 최 부장판사는 전화가 걸려온 사실만 기자에게 확인해주었을 뿐 대화 내용은 밝히길 거부한 모양이다. 아마 재판에 대해 억울하다거나 판결만 하면 되지 훈계까지 한 것은 심하지 않았느냐는 섭섭함을 토로했을 것으로 보는 추측이 가능하다. (집행유예로 관대히 처분해 주고 또 훈계를 들려 주어 고맙다는 인사전화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건평씨에 대한 재판장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보는 이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여기서 뭐라고 말할 성격이 못된다. 다만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말한다’고 하지만 덧붙여 말로 훈계하는 것은 더러 보아온 법정 관행이긴 하다. 건평씨는 첫 재판 땐 피고인이 판사의 법정 전용출입문을 이용하여 세간의 입에 오르 내린적이 있었다. 좀 딱한 분이라는 객관적 생각이 들긴 한다. /임양은 주필

발해 武將이 우리들 앞에

발해(渤海)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大祚榮)이 699년에 건국했다. 만주 송화강 이남과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확보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이루어 해동성국(海東聖國)으로 불렸다.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연해주까지 영토를 넓혔다. 도읍은 대조영이 돈화(敦化)에서 세를 얻어 나라를 세운후 3대 문왕이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옮겼다. 건국 227년만인 926년 거란족 요(遼)나라에게 망하면서 한국사는 중국 대륙에서 밀려났다. 발해는 고구려에 이어 중국 대륙의 역사를 장식한 한국사의 마지막 자긍심인 것이다. 국내 학계의 발해사 연구가 미흡한 것은 유감이다. 중국과 러시아 땅이 돼버려 현지 답사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게 연구가 미흡한 원인이긴 하다. 이 바람에 중국은 고구려와 더불어 발해도 자기네 역사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긴다. 심지어는 러시아도 심포지엄을 갖는 등 발해사 연구에 관심이 대단하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부근의 ‘체르나치노 5’ 발해 고분 유적 발굴조사에서 30대 남자의 발해 무장(武將) 전신 유골이 나왔다는 보도는 참으로 소중한 낭보다. 한·러공동발굴조사단의 우리측 단장은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다.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결과 830~840년의 사람으로 밝혀진 이 발해 무장은 엉덩이와 정강이에 화살촉과 창끝 부분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전사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갑옷 조각과 창검 등도 함께 발굴된 전신유골의 발해 무장은 1천200여년만에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국사의 국토를 청천강 이남으로 좁혀 민족사관으로는 불행이다. 지금의 압록강과 두만강이 중국과의 국경이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 육진(六鎭) 개척 등을 한 이후다. 소설이든 텔레비전 드라마든 영화든 작가들이 중국 대륙을 무대로 했던 고구려나 발해의 웅대한 역사를 작품화하는 것을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근래에는 여류소설가 이기담씨의 노작으로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어머니 역할을 한 실존여걸 소재의 ‘소서노’(召西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임양은 주필

아주대병원의 심폐소생술 보급

호흡이 정지됐거나 정지 직전의 호흡 곤란자에게 인공으로 폐에 공기를 보내어 호흡을 회복시키는 구급법이 인공호흡이다. 손으로 하는 방법, 입으로 불어넣는 방법, 산소통을 쓰는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의 인공호흡은 손과 입으로 하게 마련이다. 인공호흡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냈으나 의식을 잃고 숨을 못쉴 때 많이 사용하는 구급법으로만 흔히 알고 있다. 그러나 심장마비에도 응급치료 효과가 높다.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경우엔 5분의 시간대가 생사의 고비다. 5분안에 심폐소생술을 쓰면 다시 깨어나는 수가 적잖다. 심폐소생술은 인공호흡과 가슴압박, 기도유지 등으로 심장과 폐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는 구급법이다. 심폐소생술로 회생할 수 있는 심장마비 환자를 무작정 병원가기만 서둘다가는 5분을 넘겨 영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죽음이 알고보면 꽤나 많다고 한다. 병원을 가면서라도 차내에서 심폐소생술의 응급 처치를 해야할 환자를 그냥 병원길 재촉만 하다가 시간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 구급법이 대중화되면 많은 위급 환자를 살릴 수 있을터인 데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아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가 이의 대중화를 위해 수원시내 30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심폐소생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활인(活人) 교육이다. 아주대병원은 앞으로 심폐소생술로 위급 환자를 살린 사람에게는 ‘소생 기념배지’를 줄 계획이다. 대한심폐소생학회 관계자는 “선진국에선 심폐소생술을 학교 교육에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이의 보급에 힘써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주대병원의 심폐소생술 교육은 인명 구조의 시범 사례로 평가 받기에 충분하다.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로 더욱 확대하는 방안이 강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임양은 주필

체면

‘삼국지’의 조조(曹操·154~220)는 자타가 공인하는 용인(用人)의 천재였다. 위나라의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 등이 중국을 삼분하고 싸우던 삼국시대의 일이다. 조조의 오랜 벗으로 위충이란 인물이 있었다. 조조가 연주전투에서 계속 패하자 배반하고 적에게 투항하는 자가 많았는데, 조조는 “오로지 위충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요”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위충마저 달아나고 말자 조조는 대로하여 그를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조조의 군대가 위충을 사로잡아 오자 ‘재능 있는 사람’이라며 그를 묶었던 오랏줄을 풀어주고 다시 임용했다. 위충을 이렇게 대접하자 조조를 배반하고 달아났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돌아왔다. 관도전투에서도 빼앗은 원소의 문서 가운데 조조 진영의 일부 사람들이 원소에게 보낸 항복문서들이 발견됐지만 조조는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운 뒤 말했다. “원소가 강력했을 때는 나도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조는 필요에 따라 얼굴표정을 자유자재로 지을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체면(體面)’이라는 말과 비슷한 중국어로 ‘미옌쯔(面子)’란 것이 있다. 우리에겐 체면이 실속없이 형식적인 겉모습을 의미하는 것에 비해, 중국인들이 말하는 체면에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 나아가 ‘존재가치’의 뜻이 담겨 있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조조는 고대 중국에서 체면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으로 꼽힌다. 세련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의 원소나, 키가 8척(188㎝)을 넘고 용모가 위풍당당했던 형주자사 유표, 각각 키가 7척5촌, 8척이었던 유비와 제갈량 등에 비해 외모가 출중하지 못했던 조조가 천하를 차지한 힘은 면자(面子)에서 나왔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체면을 세우고 호방한 기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던 처세술 덕분이었다. 조조의 처세술은 체면이 구겨졌을 때 특히 떠오른다./임병호 논설위원

십자가의 수난

‘십자가(十字架)’는 고대 서양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十’자 모양의 형틀이지만, 그보다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신성시(神聖視) 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난을 떠맡는다’는 말이다. 또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이다. 십자가는 거룩한 사랑, 거룩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6월12일 열린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한이 ‘군사분계선상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와 함께 우리측 종교시설물에 대한 이전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 위치한 십자가 및 점등탑 등의 이전 및 철거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동안 종교시설이 민간시설이기 때문에 군이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며 맞서 왔다. 그러나 저번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종교시설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해와 우리측이 우선 가림판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성탄절을 기해 지역교회의 기도와 물질 후원으로 실시되던 전방부대 크리스마스 점등 행사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또 임진강변의 십자가를 비롯해 전방지역 군인교회나 기타 십자가 탑, 교회 시설물 등도 철거되고 서부전선 최전방의 애기봉에 설치된 30m 높이의 철탑이 북측의 눈에 띄지 않는 제3의 장소로 옮겨지거나 아예 철거할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십자가와 크리스마스 트리 등은 남북한 군인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과 종교적 심성을 키워주는 시설물인데 북측이 정치선전물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무리다. 북한은 남북선전중지 합의 후에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반미자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미제와 반파쑈민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남조선괴뢰도당을 타격목표로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이 보여주는 제반 유화적인 제안이나 행태는 모두 전술적인 것이지 전략적 변화는 아닌 듯 싶은데 국방부는 선전수단 제거 시한인 8월15일까지 십자가에 가림판을 설치할 모양이다. 남한이 너무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다. /임병호 논설위원

정직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에서 2003년 발표한 부패인식지수가 한국은 10.0만점 기준으로 4.3점에 그쳐 133개국 가운데 50위에 머물렀다. 2002년에 비해 10위나 떨어졌다. 반부패국민연대에서 2001년과 2002년 2차례 청소년들의 부패 관련 의식을 조사한 결과 ‘뇌물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응답한 학생이 각각 29%와 27.3%와 차지했다.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실시한 ‘2003년 부패관련 국민인식도 1차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공직사회가 거의 또는 별로 부패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21.3%에 불과했다. 통계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부패공화국’으로 정직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흡사하다. 정직은 인간생활의 기초다. 기초가 바르지 못하면 쉽게 무너진다. 사상누각은 이와 같다. 끼여들기가 습관화되고 정지선의 양심을 던져 버린 교통문화, 세금을 원칙보다 적게 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납세문화, 새치기가 다반사이며 줄을 서는 미덕을 촌스럽다고 인식하는 질서문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아무 곳에서나 취사하는 행락문화, 노력으로 결과를 얻지 않고 부정한 행위를 통하여 올리려는 시험문화, 좋은 재료를 쓰지 않고 이윤을 위해서 질이 나쁜 재료를 사용하는 음식문화, 국민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당리당략·개인명예 만을 도모하는 정치문화 등 등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다. 댐은 조그마한 구멍에서 물이 새면서 무너진다. ‘나야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에서 잘못된 일은 파생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직과 성실을 그대의 빛으로 삼으라. 100권의 책보다 하나의 성실한 마음이 더 큰 힘으로 사랑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바로 서야 우리 가정이 올바로 서고 학교와 직장이 제 자리에 서게 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거대한 파도가 바윗덩이를 반쪽으로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떨어지는 조그마한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성경(잠 14:11)에서도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하였다. 문제는 정직하게 사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점이다./임병호 논설위원

NLL 수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북의 노림수 실험장이 됐다. 지난달 4일 군사회담이 있었다. 군사회담 합의 이후에도 NLL을 6차례나 침범했다. 이 중 전투함에 속하는 경비정 침범이 3차례나 된다. 우리측의 43회 호출에 북은 20회만 응답했다. 이른바 NLL 보고 누락으로 청와대가 문제를 삼은 사건 당시의 교신도 다분히 형식적이었다. 남쪽 해군의 긴급호출에 줄곧 응신하지 않다가 막판에 가서 일방적 통신형식으로 답신의 시늉만 냈다. 중국어선을 빗대기도 했다. 북측은 잇달아 26일에도 NLL을 침범했다. 해군 함정은 오전 8시20분·8시25분·8시28분 3차에 걸쳐 통신을 시도했으나 북측 선박은 응답하지 않았다. ‘서해상 우발적 무력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 선전수단 제거’의 합의가 있었다. 이에따라 호출부호를 남은 ‘한라산’ 북은 ‘백두산’으로 하는 교신까지 하기로 했다.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사항이다. 이같은 합의가 한달도 못가 깨졌다. 지키지 않을 합의는 백날 해봐야 그턱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믿고 또 약속을 할 것인지 앞으로가 걱정이다. 남쪽에서는 자중지란만 일어났다. 관련 장성의 전역설과 함께 국방부장관 경질설까지 나돈다. 군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문책하는 건 마땅하다. 문제는 NLL 침범에 대한 방어 과정이 그토록 잘못됐다고 보는 청와대 관점에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사실이다. 더욱 알수 없는 것은 청와대나 여당에서 북의 의도적 NLL 침범을 계속 묵과하고 있는 점이다. 북의 월선은 NLL무력화 시도다. “도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사회가 온통 비정상이다. 이도 진보적 개혁이라면 도대체 그 개혁이란 것의 종착지는 어디인지 이정표가 궁금하다./임양은 주필

호킹 박사의 용기

영국의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62)가 1975년 발표한 ‘블랙홀’ 이론을 우리가 해득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얼마전 국제회의에서 자신의 이론에 오류를 밝히면서 ‘블랙홀’이론을 철회한 천문학 연구의 심오한 내용 역시 알기가 어렵다. 다만 연상되는 것은 질량불변의 법칙이다. 화학변화 전후의 물질은 형태만 달라질 뿐 전질량(全質量)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1774년 프랑스의 라브와지에가 정립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원자핵 반응에서만은 예외로 질량불변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은 사실이다. 호킹 박사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우주 정보는 나오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은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원자핵 반응처럼 예외로 소멸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블랙홀’에서 파괴되지 않고 다시 방출된다고 자신의 주장을 뒤엎은 것은 우주에서도 역시 질량불변의 법칙이 작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그같은 우주물리학 학설보다 호킹 박사의 자세다. 존 프레스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를테면 자신의 ‘블랙홀’설을 처음부터 정면으로 반대한 학문의 라이벌이다. 그런 그에게 야구백과사전 ‘토털 베이스’를 사서 주면서 패배를 인정한 것은 연이나 대학자다운 금도다. ‘토털 베이스’는 누구든 자신의 이론이 틀리면 지는 사람이 사주기로 한 29년 전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호킹박사는 손가락만 겨우 움직이는 장애인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세계인이다. 자신의 주장은 어떤 잘못을 지적해도, 또 잘못의 징후를 발견하면서도 결코 굽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호킹 박사의 용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위인이 있지만 정치 지도자는 더욱 이래서는 안된다. 민중의 해악이 되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탄받는 사람이나 잘못을 지탄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자신의 생각이 정말로 맞는지 항상 되돌아보는 것도 용기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수보다 더 나쁜 것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잘못된 오기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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