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적발된 산업스파이 사건은 모두 22건으로 총 31조원 가량의 국부가 해외로 새나갈 뻔 했다. 산업스파이에 의해 흘러나가는 기술들의 종류는 반도체, 휴대전화, LCD, 의료장비, 제약기술 등 첨단 핵심산업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관련 종사자 중 일부는 ‘기술용역’으로 전락해 국가의 ‘10년 먹을거리’를 경쟁국가로 앞다퉈 빼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1998년 이후 국정원이 적발한 산업스파이 적발건수(62건) 중 전·현직 직원에 의한 기술유출이 90%(전직 38건, 현직 18건)에 달했다. 산업스파이는 관련 기술을 완전히 넘기기 전 해외 경쟁업체와 매출액의 최고 1%를 넘겨 받기로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첨단기술이 필요한 해외 경쟁업체는 산업스파이 고용계약 당시 관련 기술의 2~3%만을 보고 대개 6개월마다 성과에 따라 몸값을 올려주는 게 관행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일부 경쟁국 업체들은 한국지사를 통해 첨단기술을 훔쳐가기도 한다. 국내 의료벤처의 대표기업인 메디슨의 전직 임직원 3명은 이 회사가 420여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만든 ‘3차원 동영상 초음파진단기’핵심기술을 경쟁업체인 해외 S사의 한국지사에 유출하다가 검거됐는데 이들은 연봉의 10~30%를 더 받는 조건으로 산업스파이가 됐다. 산업스파이 때문에 곤경을 겪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2000년 1월 제정된 인터넷 관련 기밀보호법 등을 통해 산업기밀 유출을 국가안전의 위해로 판단, 중형에 처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상의 검열을 통해 첨단기술과 국가기밀 누설시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게 규정했다. 미국은 산업·경제정보에 대해 경제 스파이법으로 형사처벌을, 통일영업비밀보호법으로는 민사적 규제를 각각 하고 있다. 종합무역법은 미국기업의 해외매각이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매각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일본은 지난 10년 간의 경기침체가 기술유출의 안이한 대응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2002년 지적재산 전략강령, 2003년 기술유출 방지지침을 잇따라 제정했다. 기밀누설로 최근 사형까지 규정한 중국의 예를 보아 우리나라 처벌법은 너무 약하다./임병호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하고 밥먹는 데 1억1천여만원이나 2억6천여만원을 내고 먹으라면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 같으면 말이다. 미국 사람들은 다른 모양이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 취임식을 내년 1월19일 앞두고 취임식준비위는 이런 만찬 참석 티켓을 대량 우송판매에 나섰다. 티켓도 25만달러 짜리 10만달러 짜리 등 여러가지다. 부시대통령 부부, 체니 부통령 내외, 바버리와 제너 등 부시의 두 딸, 이런 사람들과 다 같이하고 또는 일부만 같이하는 자리 등에 따라 가격 등급이 매겨졌다. 대통령 취임식이 완전히 돈잔치인 데도 준비위측은 “고액 기부자들 덕분에 서민들이 참여하는 취임 축하 무도회 입장료는 싸게 먹힌다”며 되레 선심 생색을 내세운다. 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같으면 그런 입장료 역시 싼 건 고사하고 당연히 무료로 해야 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토록 비싸도 대기업이나 부호들은 더 비싼 티켓을 못구해 안달인 것으로 보아 4천만달러 모금 목표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또 이러한 모금은 대통령 취임식서 으레 한몫 잡는 관례로 인식됐다. 돈 내고 대통령과 밥먹는 사실을 우리 같으면 창피스럽게 알 것인데도 미국 사람들은 또 달라 영광으로 아는 모양이다. 궁금한 것은 또 있다. 밥먹는 데 내는 그러한 거액이 과연 순수한 기부금이냐, 아니면 뇌물성 보험이냐다. 그래도 그렇지 거액의 밥상을 사준 사람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무리 미국문화가 그런다 하여도 뒷배를 보아주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다음에 우리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미국식 흉내를 낸다면 어떨까 한번 가상해 본다. 잘은 몰라도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취임도 하기 전에 인기가 폭락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한국 대통령이나 도덕성을 따지기는 마찬가지지만 이처럼 엄청난 가치 판단의 차이가 있다. 이것이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격차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상품화는 미국문화 중 오만의 극치다. 공개리에 정치모금을 하는 것은 후원회 활동으로 족하다. 행여라도 미국 대통령 취임식 흉내를 내자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여 두렵다. /임양은 주필

도지사, 시장·군수들 보시오

경기도와 시·군은 경로당 수가 늘어나는 게 걱정인 모양이다. 2002년말 6천563개였던 도내 경로당이 2003년 말엔 6천903개, 올핸 9월말 현재만 해도 7천129개로 늘었다. 걱정은 겨울철 난방비에 있는 것 같다. 난방비는 매년 30만원씩을 국비 70% 지방비 30% 비율로 지원하도록 됐다. 이런데도 국비지원이 50%에 그쳐 지방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래서 올 겨울 지자체 부담이 198억3천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경로당측 입장에서 보면 그 돈을 주어도 크게 모자란다. 이래서 경로당은 겨울이 무섭다. 하지만 경기도 생각은 또 다르다. 경로당 수를 줄이는 광역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들린다. 말이 안 된다. 동네에 경로당이 없으면 먼데까지 갈수가 없다. 겨울 바람도 차갑고 빙판길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이란 구실로 경로당 통폐합을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이 1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으려면 경로당 설치를 의무화 한 게 경로당이 느는 요인으로 탓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건 잘 한 규정이다. 경로당은 동네마다 아파트 마다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경로당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그 잘난 쥐꼬리 난방비를 주면서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기는 생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노령화사회다. 곧 노령사회에 이어 십수년 후에는 초노령사회로 들어선다. 노인문제가 사회문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지금의 공무원들이 노인이 될 땐 그같은 초노령사회가 된다. 올 난방지원비 198억3천만원도 그렇다. 도예산, 시·군예산 전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곱절을 더 주려면 못 줄 것도 없다. 당초 예산에 더 편성해도 되고 추경을 편성해도 된다. 예산을 짤 재원이 없다는 것은 핑계다. 재원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재원이 없다. 관련 공무원들의 마음이 인색하여 이 겨울철에도 경로당 노인들은 몸과 맘이 더 춥기만 하다. 각급 자치단체장들이 더 괘씸하다. 도지사나 시장·군수들은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임양은 주필

자이툰 부대

트로이성은 지금의 터키 영토다. 다다넬즈해협 동쪽 연안에 있다. 1868년 성터가 발굴된 바가 있다. BC 12세기 무렵이다. 그러니까 약 2천200년 전이다. 그리스는 트로이성 공략을 위해 원정을 10년동안 나섰으나 난공불락이었다. 그리스 장군 오디세스는 마침내 꾀를 냈다. 아주 덩치 큰 목마(木馬)를 하나 만들었다. 목마 안에 9명의 용사를 숨겼다. 야음을 틈타 목마를 성 앞에 갖다 놓고 그리스군은 바다 멀리 나가 숨었다. 아침이 되어 그리스군이 보이지 않자 트로이성 군대와 시민들은 그리스군이 지쳐 퇴각한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 들였다. 사제로 있는 라오콘이 말렸으나 시민들은 듣지 않았다. 이윽고 밤이 되어 목마에서 나온 용사들이 성문을 열어 성밖에 대기했던 그리스군이 노도처럼 대거 진입하여 성을 함락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딧세이’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이야기다. 트로이의 목마는 이를테면 고전적 작전용 로봇이다. 현대식 지능형 전투로봇이 있다. 그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신의 방패 이름을 따 ‘이지스’란 이름이 붙었다. ‘이지스’는 감시카메라에 K-2소총이 장착됐다. 연일 24시간 근무해도 지치지 않는다. 탐색능력에 전투능력까지 있다. 2㎞ 이내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정확히 포착하여 상황실에 전한다.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사격은 지형지물을 자동 계산해가며 발사되기 때문에 명중률이 근 100%다. 100발까지 연속사격이 가능하다. 국내 방위산업체가 만들었다. 대당 1억원이다. 트로이의 목마는 공격용 로봇이라면 ‘이지스’는 방어용 로봇이다. 이 로봇 2대가 이라크 아르빌에 나가 있는 자이툰 부대에 처음으로 실전배치 됐다. 경계 능력을 강화하고 공격을 받아 전투가 벌어져도 아군 보호에 크게 기여할 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일 프랑스 순방 귀국길에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이 계획의 암호명은 ‘동방계획’이었다. 순방길 간담회 때마다 부시의 속을 뒤집어 놓고 아르빌에서 그런대로 한·미동맹의 사인을 보냈다. 무엇보다 국군 장병들의 위문은 참 좋았다. 장병들과 어울린 화면이나 사진은 노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가장 보기좋은 장면이었다./임양은 주필

수덕여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 일주문 옆에 있는 수덕여관이 지어진 때는 정확하지 않다. 1939년 무렵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이 이혼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수덕사에서 수행 중이던 친구 일엽(1896~1971) 스님을 찾아 왔다가 수덕여관에서 눌러 앉아 1944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미뤄 적어도 70년 가까이 된 건물로 추정된다. 수덕여관은 일엽스님이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자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태신(82)씨가 열 네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못잊어 수덕사로 처음 찾아왔을 때 모자가 상봉한 눈물겨운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일엽은 아들에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고 했다. 김태신씨는 이후에도 어머니를 찾을 때마다 수덕여관에서 묵었는데 나혜석은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팔베개를 해주고 자신의 젖을 만지게 하는 등 모성에 굶주린 일엽의 아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세계적인 한국화가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선배화가 나혜석을 만나러 자주 수덕여관에 들르면서부터다. 고암은 1944년 무렵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여관을 사들였다. 고암은 수덕사 부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렸고 여관운영은 부인인 박귀희씨가 맡았다. 그러나 고암은 21세 연하인 이화여대 졸업생 박민경(이응로미술관장)씨와 1958년 프랑스로 떠나 버렸다. 본부인 박씨는 이혼 후 홀로 여관을 운영했다. 이후 고암은 ‘동백림사건’(1967년)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몸을 추스리기 위해 1969년 약 두달동안 다시 수덕여관에 머물렀다. 그 사이에 뒤뜰의 너럭바위에 한국미술사에 남을 추상문자 암각화를 두점 새겼다. 국내 여관 중 유일하게 초가집으로 된 수덕여관의 현판은 이응로 화백이 직접 쓴 것이다. 수덕여관의 현재 소유주는 고암의 장조카인 이종진씨인데 이씨는 2001년 박귀희씨가 작고한 뒤 더 이상 여관을 돌볼 여력이 없어 경매에 내놓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건물터가 수덕사 소유로 돼있고 너럭바위 자체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수덕사측과 이견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충남 도기념물 103호인 수덕여관의 건물주와 토지주가 각각 달라 한국근대미술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 폐허가 돼가고 있어 실로 안타깝다./임병호 논설위원

흔 적

‘사슴’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노천명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25일 시집 ‘창변’을 출판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시집 말미에는 4편의 친일 시가 실려 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한 지 얼마 안돼 해방이 되자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친일 시 부분을 뜯어내고 그대로 시판하였다. 전쟁 말기의 상황에서 미처 배포하지 못하고 쌓아놓고 있던 시집을 땅 속에 묻거나 태워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기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특히 친일 시들은 시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어 그러한 유혹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친일 시 부분을 뜯어내고 흔적을 지웠지만 목차 부분에는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다. 목차 중 친일 시 제목만 나열돼 있는 마지막 쪽은 뜯어내고 다른 시와 친일 시 제목이 함께 인쇄된 쪽에는 친일 시의 제목 부분만 창호지로 붙여 보이지 않게 한 ‘재단장판’이 주로 유통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천명의 친일 시는 제목만 확인할 수 있었던 ‘흰비둘기를 날려라’ ‘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승전의 날’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원본 ‘창변’에는 목차의 마지막 쪽이 뜯겨 나가 제목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친일 시 ‘병정’ ‘창공에 빛나는’ ‘학병’ ‘천인침’ ‘아들의 편지’가 추가로 실렸다. ‘창변’은 1944년 10월 이전에 발표된 시들을 모았기에 그 이후 발표된 친일 시들은 물론 이 시집에 없는데 ‘군신송’ ‘신익’ 은 ‘창변’ 이후에 ‘매일신보’에 발표한 시들이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는 1944년 10월 이후부터 시작되었고 조선의 일부 시인들도 이 시기에 조선인 출신 특공대를 기리면서 전쟁을 독려하는 시를 발표했다. 노천명의 ‘신익’은 서정주 보다도 앞서 조선인 출신으로 특공대에 나가 최초로 죽은 마쓰이 오장을 노래한 것이다. 그동안 친일 문학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것은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이 아니다. 관심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친일 진상 규명 여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이다. 친일시 부분을 뜯어내고 ‘창변’을 시판한 노천명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임병호 논설위원

鐘소리

범종(梵鐘)은 오늘날 남아 있는 불교 미술품 중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는 금속 예술품이다. 한국의 범종은 별도로 ‘한국종’으로 분류될 만큼 독자성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종은 무엇보다 은은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종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우아한 미소를 띤다. 종의 윗부분 고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겉에는 ‘당초문’이라는 덩굴무늬나 불교의 보살과 같은 무늬가 주로 등장한다. 종을 치는 곳에는 ‘비천상’이라고 불리는 하늘을 나는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한국종은 무엇보다도 은은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비법은 대나무 모양의 원통에서 나온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범종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보다 약 50년 전인 725년에 만들어졌다. 신라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이다. 종을 완성하기 위해 아이를 넣었으며 이 때문에 종을 칠 때마다 아이의 구슬픈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하고 들린다고 하여 ‘에밀레종’이라고 불린다. 성덕대왕신종은 예불이나 의식, 식사시간 등 불교에서 각종 행사나 일상적인 업무를 알리는 데 사용하는 4가지 물건 중 하나다. 사물의 소리는 온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데 각각 그 대상을 달리 한다. 법고(法鼓)라고 불리는 북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가축이나 짐승이 구원의 대상이다. 청동이나 쇠로 만드는 구름 모양의 운판은 공중을 떠돌아 다니는 영혼, 특히 새를 극락으로 인도한다.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목어는 물에 사는 동물의 영혼을 구원하며 범종에게는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불교에서는 범종의 소리를 들으면 온갖 고민과 갈등에서 벗어나서 수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불자가 아니어도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들리는 인근 청련암의 범종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맑아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좋은 땅, 나쁜 땅

경지정리사업이란 게 있었다. 1970년대다. 영농의 기계화를 위해 논 두렁이 많고 높낮음이 심한 논을 한꺼번에 고르게 정리하는 사업이다. 지주가 여러 사람인 논을 묶어 조합단위 사업으로 실시했다. 이윽고 경지정리사업을 마치면 논이 바둑판처럼 반듯 반듯한 게 보기에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그런데 분할이 문제다. 네 논, 내 논의 경계가 없어졌으므로 논을 새로 갈라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말썽이 잦았던 것은 힘깨나 쓰는 유지급 조합원은 위치가 좋은 곳을 배정받곤 하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논이 대지로 잠식되면서 상황은 바뀐다. 이른바 문전옥답으로 배정받은 유지급 논은 값이 별로인 데 비해 힘없는 조합원이 변두리에 받은 논은 금값이 된 예가 많았다. 아파트나 상가 같은 대규모 건물 신축이 동네와 좀 떨어진 곳이 으례 적지로 꼽혔기 때문이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란 게 또 있었다. 밭을 대지화하는 데 이 또한 조합을 만들어 실시했다. 역시 바둑판 같은 대지로 다 만들고 나면 지주들이 땅을 나눈다. 도로, 하수도, 어린이 놀이터 등 공공용지로 편입된 감보율을 제하고 원래의 소유면적 비율로 땅을 나누는 데 여기서도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에 따라 차별이 은근히 가해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또 달라진다. 처음부터 좋은 곳을 배정받은 땅이 먼저 개발된 것은 좋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에 비해 선 개발에 따라 후 개발이 착수된 변두리 땅은 선 개발로 인해 땅 값이 덩달아 치솟아 더 큰 재산 가치가 형성되곤 했다. 화성시 동탄지구 상업용지 낙찰을 좋은 곳에 받게 해 준다며 자그마치 3억원을 A4용지 상자에 받아 챙긴 토공 간부가 구속됐다는 보도를 보면서 예전의 비슷한 그런 일이 생각나 경지정리사업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장황하게 사례로 들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데 거액을 뇌물로 준 사람들도 딱하다. 지금은 상가로 좋을 지 몰라도 나중엔 지금 덜 좋은 곳이 더 좋은 곳으로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인간사는 이래서 길게 보면 공평한 것인 지 모른다./임양은 주필

취업난 세태

박사 노동자가 있다. 고매한 직업의 화이트 칼라가 아니다. 날품 파는 진짜 노동자다. 박사는 전공 분야가 뭣이든 학문의 달인이다. 마땅히 학계에 종사해야할 박사 근무처가 공사판인 것은 지적 낭비다. 사회구조가 잘못 됐거나 학위과다가 잘못 됐거나 아무튼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환경미화원 공모에 대졸 학력이 몰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됐다. 환경미화원의 직업이 어떻다는 게 아니다. 생활환경의 첨병 역할을 한다. 다만 단순 근로 직업에 대졸 학력이 취업을 못해 안달인 것은 지적 손실이다. 서울고등검찰청의 기능직 10급 방호원 공모에 10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예비역 소령 등 장교 출신과 유명 대학 출신들이 청사 경비업무를 맡겠다며 대거 취업을 희망했다. 지식산업체라고 해서 지식인의 취업이 용이한 것도 아니다. 한국석유공사 신규공채에 응시한 사법시험 합격자 4명은 모두 영어 성적 미달로 탈락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와도 취업이 안되는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수두룩하다. 또 영어를 잘 한다고 다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LG칼텍스정유의 경우, 외국 대학에서 석사 등 학위를 딴 유학파 지원자가 365명이나 몰렸지만 1차 면접에서 364명이 탈락했다. 인성과 협동심 등 테스트에서 미달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취업이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대학 교수들이 졸업한 제자들 이력서 뭉치를 들고 취업 세일즈에 나서는 것 쯤은 예사가 됐다. 청년 실업자의 모임으로 ‘전백련’(전국백수연대)이 다 있다. 대기업조차 신규 채용을 아예 안하거나 인원을 크게 줄이다보니 취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도 신규 채용보단 있는 사람도 감당못해 줄이는 구조조정에 신경을 더 쓴다. 경제가 안좋아 인건비를 줄이려다 보니 이런 취업난이 점점 더 심화해 간다. 정치권은 성장이 우선이다, 분배가 우선이다 하며 야단이지만 입씨름 뿐이다. 인원이 많건 적건 고용 인력을 두어 월급을 주며 더불어 사는 기업주와 자영업자가 성장과 분배에 기여하는 진짜 애국자라는 생각을 갖는다. 노동자를 착취 대상으로 본 마르크스의 노동잉여가치설이 얼마나 낡은 이념인가를 보여준다. /임양은 주필

‘선물 주고받기 운동’

연말연시에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벌이자’고 한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제안한 말이다. 물론 단서는 있다. 과도한 선물이 아닌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 차원의 운동이다. 쌀 개방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우리 농산물을 선물로 활용하자고도 했다. 선물을 주는 대상에 이웃돕기를 꼽은 건 그렇다 해도 ‘직원 격려’를 말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부정부패 추방을 외쳐대며 암행 감사반으로 하여금 공무원들의 승용차 트렁크까지 불시 검색을 벌인 게 불과 몇달 전의 추석 대목이다. 이런 살얼음판에서도 아닌게 아니라 뇌물성 선물을 받은 공무원이 적발되기도 하여 뇌물 중독의 강심장에 혀를 차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량한 공무원들은 특히 고위직일수록 몸을 사리는 선물 기피증으로 애를 먹었다. 넥타이나 사과 광주리 같은 사소한 선물도 안받고 준 사람을 찾아 굳이 돌려주는 촌극을 벌이곤 했다. 선물을 허용하면 선물이 아닌 뇌물로 확대될 우려가 짙어 아예 못하게 한 것이 선물 금지의 취지다. 공직사회 혁신을 개혁의 이름으로 강조해 온 이 정권의 실세 총리가 선물 주고 받기 운동을 들고 나온 것은 아이로니컬 한 일이지만 이유는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다소나마 내수부진을 타개해 보자는 고육지책인 것 같다. 그렇지만 장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이미 크게 떨어진 마당에 소비위축의 내수 촉진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 총리가 시중의 경제사정이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그 자신이 제안할 만큼 어려운 것을 인식한 것은 비록 뒤늦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 지, 이도 아닌 지 잘 모르겠다. 그럼 궁금한 게 있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트렁크 뒤지기 같은 건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고위직 공무원 집 앞에 잠복 감시하는 일도 사라질 것인 지 알 수 없다. 집무실에서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골프 비용으로 100만원을 받은 현직 장관이 불시 검색에 걸려 옷을 벗은 것이 얼마전의 일이다. ‘선물 주고받기 운동’이 뇌물이 아닌 진짜 선물인 전래 미풍양속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임양은 주필

‘다 빈치 코드’

“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의 아이를 잉태한 막달라 마리아는 예루살렘을 떠나 프랑스 남부 지방에 정착해 아이를 낳는다. 이후 예수의 자손은 중세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를 이뤘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첫 출간된 이래 42개 언어로 번역돼 2천만부 이상 판매된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 베텔스만 코리아가 번역·출간한 이래 100만 부가 팔렸다고 엊그제 알려졌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역사적 사실로 전제하여 신학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작가 댄 브라운은 이 책의 서두에 ‘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신부(新婦)’라는 주장은 1986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 ‘성스러운 피, 성배’에서 본격화됐다. 이어 1993년에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는 “예수가 결혼을 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런 전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됐고 그 흔적을 수 많은 예술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유대인의 전통으로 볼 때 30대의 예수라면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1945년 이집트 나그하마디 마을에서 1세기 경의 성경사본들이 발견되면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작됐다. 장신대 소기천 교수는 “신약성경이 형성되기 전 기록인 ‘나그하마디 문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사도 중의 사도’로 표현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 ‘다 빈치 코드’를 읽은 독자들이 파리와 런던 등 곳곳을 찾아 다니며 소설의 무대를 확인해 보려는 유행이 일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다 빈치 코드’는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를 (한 사람으로)지극히 사랑했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연애시

시인들이 쓰는 연애시는 다양하다. 안도현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라고 말했던 것처럼 연애는 생의 영원한 주제이고, 삶은 연애로 지탱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남녀 사이라고 못박을 필요도 없고 막연한 ‘연애감정’이라도 좋다. 장석주는 ‘소금’에서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라고 했다. 김용택의 ‘섬진강’에 실린 연작들은 섬진강과 그 마을살이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애정표현이다. 김용택은 “연애란 말에서 봄바람에 실려오는 햇풀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기형도는 ‘빈집’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하고 연애가 끝난 뒤 말했지만, 원재훈은 시작을 얘기했다.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 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 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고 가을 초입에 서 있는 남녀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강윤후는 “고인돌처럼 생각에 잠겨 먼 데를 본다”고 하였고, 임병호는 연애를 “알콜도 없는 병실에서 수술 받는 환자”라고 말했다. “열사흘 달처럼 부끄러이 익어가는 아픈 성장“이라고도 하였다. 연애는 나이 먹은 사람을 젊게 한다. 아니다. 기본적으로 젊다. “이화에 월백”하다가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든다”는 고전적 구절은 환장할 만한 연애이지만 노회하지 않으면서 능숙한 연애를 한다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는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다”는 부분이 그렇다. “골짜기에 퍼붓는 눈처럼,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그칠 것을 믿는다”며 굵은 심줄 같은 연애의 운명을 보여준다. 연애시처럼 산에 들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참새죽’

조선의 임금들은 음식을 적게 여러 번 규칙적으로 먹었다. 하루 다섯 끼였으니 준비도 만만치 않았을 법하다. 게다가 항상 제철 음식이 대령됐다. 봄에는 산나물 모둠인 오신반(五辛盤), 여름 단옷날에는 열을 푸는 천연청량제인 제호탕, 가을에는 풍성한 햇곡식과 과일, 겨울에는 우족을 고아 굳힌 전약 등을 먹었다. 술도 양생술(養生術)의 일부였다. 세종대왕이 한발(旱魃)을 걱정해 술을 들지 않을 때마다 신하와 어의들이 한 목소리로 건강을 걱정하며 음주를 권했다. 궁중 양조법의 일부는 대궐 밖으로 전해져 오늘날 경주 교동법주 등 명주로 재탄생했다. 운동 역시 많은 임금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뿐 원칙적으로 강조됐다. 임금들도 요즘 골프 같은 운동을 즐겼다. 서양의 ‘폴로’와 닮은 경기로 알고 있는 격구(擊毬)가 그것이다. 말을 타지 않고 구멍에 공을 넣는 격구도 있었다. 공은 달걀만한 크기로 마노를 깎아 만들었고 채는 두꺼운 대나무와 물소 가죽으로 만들었다. 여러개의 클럽을 사용한 것도 오늘날의 골프와 같다. 빠르게 쳐야 할 때는 가죽을 얇게 댄 채를 사용했다. 매 사냥과 활쏘기도 임금들이 즐긴 운동이었다. 활쏘기는 정신집중력과 절제력을 배양하는 데다 단전호흡까지 있어 임금의 운동으로는 일품이었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실제 조선의 임금 27명 중 연산군, 광해군을 뺀 25명의 평균 수명은 46세 남짓이었다. 일찍 죽는 임금들은 대부분 주치의의 권고를 무시하거나 비전문가를 끌어들였다가 명을 재촉했다. 충분한 영양 섭취에 비해 너무 적은 운동량, 격무와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조선 역대 임금들은 비만과 당뇨, 고혈압 등 온갖 성인병에 시달렸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눈병과 종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다. 특히 ‘성생활’은 당연히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인이었다. 궁중 내시들은 ‘20세까지 하루 2회, 30세까지 하루 1회, 40세까지 3일 1회…’로 제한하는 ‘옥방비결’을 외우고 다녔다. 양기를 돋우는 대표적 음식으로는 참새를 넣어 쑨 찹쌀죽이 있었다. 임금이 ‘참새죽’을 먹은 날 임금을 모시는 궁녀는 무척 고생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참새가 이렇게 남성에게 좋다는데 멸종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임병호 논설위원

동물적 감각

동물이 어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대체로 사람보다 높다. 야생에 길들여진 유전적 보호 본능이다. 마지막 협객이라고 했던 고 이성순씨(시라소니)가 불패의 쌈꾼이던 것을 가리켜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가 이래서 나왔었다. 예컨대 총을 생전 처음 보는 야생 동물이 위해물이란 것을 알고 대처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지는 것을 안 보고도 순간 순간 미리 감지하며 정확히 대처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쌈이 아닌 스포츠의 격투기에도 이러한 동물적 감각을 지녀야 유능한 선수가 될 수 있다. 동물적 감각은 호랑이나 사자처럼 큰 맹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야생동물에게도 있다. 출항하여 파선될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배 안에 있던 쥐들이 먼저 뭍으로 나온다. 영화 ‘데이리잇’에서 폭파되어 막힌 수중터널속의 출구를 먼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아닌 쥐떼다. 지진이 일어나려면 물고기떼나 개미같은 곤충이 미리 이상 징후를 보인다. 미국 국방부가 바퀴벌레 같은 곤충을 이용해 테러를 조기에 감지하는 연구에 나섰다는 외신이 있었다. 곤충이 생물·화학물에 지닌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활용하여 이 분야의 테러를 방지하는 일종의 경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연구중인 한 생물학 교수는 “사람이 만든 감지기보다 벌레들이 탄저균이나 독성물질 등을 더 철저하게 포착하는 생물 센서의 기능이 높다”고 밝혔다. 생물 센서들이 생물·화학적 위험을 포착했을 때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반응적 변화를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예부터 전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거나 여름철 잠자리떼가 높이 날면 날씨가 어떻다거나 하는 것 등 많은 속언 역시 동물적 감각을 감지한 얘기다. 철새가 망망대해를 날며 방향을 잡는 것도 동물적 감각이다. 학계는 철새의 비행에 자기설 등을 말하지만 정설은 확실치가 않다. 이처럼 현대 과학이 아직 규명하지 못한 동물적 감각을 인간은 다만 경험적으로만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연구 작업이 하필이면 바퀴벌레인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다./임양은 주필

배지(badge)

배지는 우리말로 휘장이다. 신분이나 직무 또는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 모자나 옷에 다는 표장인 것이다. 이 점에서 양복 등 앞가슴에 단순히 장신구로 다는 브로치(brooch)와는 구별된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는 브로치외교로 정평이 났었다. 주제가 있는 브로치를 달고 협상 테이블에 임하곤 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중동 평화 협상 때는 교착 국면을 꼬집는 의미로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나갔다. 배지의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계급이나 직무표시를 부착물로 많이 표시해온 서양문화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군대 계급장도 서양문화의 전래인 것이다. 개화기 이전의 군대는 복장과 복색으로 계급을 구분했다. 조정 신료의 당상관과 당하관도 홍색과 청색 그리고 문관은 관복의 가슴에 학 두마리가 수놓인 쌍학과 한마리인 단학으로, 무관은 호랑이 두마리가 수놓인 쌍호와 한마리인 단호로 구분했을 뿐이다. 현행 국내 공인 배지로는 국회의원·지방의원 배지, 국무위원(총리·장관) 배지, 정무위원(차관) 배지, 공무원 배지 등이 있다. 배지하면 또 유명한 배지로 김일성 배지를 들 수 있다. 1970년 11월 로동당 5차대회 때 지역 대표들에게 배부되면서 전 인민에게 확산됐다. 북측은 이를 ‘초상휘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 김정일 배지가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1994년에 또 나왔고 김일성·김정일 부자 배지도 등장했다. 이러한 배지는 모두 평양의 만수대창작사에서 만들어 왔다. 그런데 김정일 배지나 부자 배지는 왼쪽 가슴에 다는 패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전한다. 해외 공판이나 대외무역 종사자, 외국인 안내자들은 김일성 배지만을 달게 했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나 배지는 최대의 경외심이 담긴 성물로 다룬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 김대중·김정일 사진이 찍힌 현수막을 북측 여자선수들이 “위대한 장군님 사진을 비맞게 놔두었다”고 울먹이며 철거하는 것을 보았다. 대외적으로 배지다는 걸 제한하는 것을 보면 인물 배지가 많은 게 심한 우상화임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임양은 주필

‘욘사마’

지난 25일 오후 1시34분 일본 나리타공항, 5천~6천여 인파가 모여들었다. 공항 개항이래 초유의 인파다. 전날 미리 노숙한 사람도 많았다. 단 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다. 이윽고 그 사람이 나와 로비에서 손을 들며 미소지었다. 대부분이 여성들인 환영객들의 카메라폰이 일제히 치솟으며 ‘찰칵’소리를 냈다. ‘환영합니다’ ‘사랑해요’라고 한글로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여기 저기서 춤 추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도 많았다. 나리타 공항은 환호성과 열광의 열기로 뒤덮였다. 경찰관 100여명이 경비를 하느라고 진땀을 쏟았다. 그 사람은 일본 텔리비전 방송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겨울연가’의 남자 주인공 ‘욘사마’다. 배우 배용준(32)의 일본인 애칭이다. 용준의 용에 경칭인 ‘사마(樣)’를 합성하여 ‘욘사마’(ヨン樣)라고 한다. 사진전 홍보차 7개월만에 다시 일본에 들렀다. 공항을 나와 도쿄 도심 뉴오타니 호텔로 떠나자 도착 광경을 생중계하던 민영방송들은 헬리콥터를 띄워 계속 중계했다. 외신들도 긴급 타전했다. AP는 ‘한국의 드라마 스타가 도쿄 공항에 수천명을 운집시켰다’, 로이터는 ‘용사마 도착 팬들 광란하다’라는 제목을 부쳤다. 일본인 팬들은 호텔까지 쫓아가 로비가 마비되기도 했다. ‘욘사마’가 들른 음식점은 고객이 밀려 대박이 터지고 ‘욘사마’가 앉았던 좌석은 행운의 자리일 만큼 같은 손님끼리도 차지하기가 어렵다. 일본 열도에 일대 선풍을 일으킨 ‘욘사마’붐으로 일본인 한국관광객이 늘어 ‘겨울연가’ 촬영 현장인 용평리조트는 30배가 몰리는 등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여했다. 배용준이 일본에서 전무후무한 한류(韓流)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은 분명히 한국이 낳은 히어로다. 그러나 일본인 팬들의 열광은 어디까지나 ‘욘사마’ 개인이지 한국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대한 공연한 자만심은 이래서 금물이다. 배용준은 오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임양은 주필

발권력 동원

1864년 집권한 흥선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경복궁 중건과 군비확충을 꾀했다. 그러나 국고가 텅 비어 있었다. 이에 우의정 김병학의 제안으로 1866년 11월6일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다. 돈을 찍어 재정을 확보하는 원시적인 정책이었다. 5개월여 동안 찍어낸 당백전은 1천600만냥에 달했다. 당시 쌀 한 섬이 7냥 정도였으니 지금 시세로 1천억원을 넘는 금액이 시장에 풀린 셈이다. 1천100여년동안 속리산 법주사를 지키던 ‘금동미륵대불’도 당백전 재료로 쓰기 위해 녹여 없앴다. 상평통보(常平通寶) 한 푼의 100배 가치를 지녔다는 당백전이지만 그것은 명칭과 정반대로 ‘시장의 천덕꾸러기’였고 휘청거리던 조선 말 경제에 치명타를 날린 주범이었다. 대원군은 관청에서 지출하는 돈은 당백전을 쓰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당백전을 믿지 못했다. 우선 동전의 실질가치에 비해 액면가가 턱없이 높았다. 가짜를 만들어 많은 이득을 남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고액 화폐는 소장할 가치가 없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에 따라 서민들은 상평통보를 숨기고 당백전만 써댔다. 결국 당백전은 엽전의 100배가 아닌 5~6배의 구매력밖에 갖지 못했다. 통화량의 급격한 증가는 인플레를 불렀다. 당백전 발행 1년 만에 쌀값은 6배로 치솟았고 그 쌀값을 대기 위해 가짜 당백전이 또 만들어졌다. 정부는 화폐 위조범을 사형에 처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화폐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최익현의 상소 등의 영향으로 당백전은 1868년 5월 사용이 중지됐다. 그러나 조선의 화폐는 권위를 회복하지 못했고 청나라 동전 사용이 합법화되기에 이르렀다. 현시대는 통화량이 일정 기준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한국은행이 통제하고 있어 현대판 ‘당백전 파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 발행한도 18조원이 거의 소진돼 시장 개입 여력이 바닥나자 한국은행에 발권력 동원을 요청한 것은 석연치 않다. 한국은행이 찍어 내는 돈이 만에 하나라도 당백전 같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면 큰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통일축구’

남북 축구대표팀이 가장 최근 국제무대에서 격돌한 것은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다. 당시 김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은 풀리그에서 1승2무1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을 3대0으로 눌러 극적으로 미국행 티켓을 따낸 경험이 있다. 그후 남북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맞붙은 적은 없다. 그런데 내년 2월9일부터 시작하는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을 앞두고 남북이 같은 조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생겼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22일 대한축구협회에 보내온 최종예선 시드배정 결과를 보면 한국은 일본과 함께 1번 시드에 편성됐다. 북한은 쿠웨이트와 함께 4번 시드에 들어갔다. 2번 시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3번 시드는 바레인과 우즈베키스탄이다. 같은 시드에 든 팀들은 2개조로 나뉘어 벌어지는 최종예선에서 맞붙지 않는다. 이에 따라 12월9일 아시아축구연맹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조 추첨식에서 남과 북이 같은 조에 속할 가능성은 50%로 예상된다. 남북이 아시아 최종예선 같은 조에 편성되면 북한이 특별한 사정을 내세우지 않는 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경기를 치른다. 남북 축구대표팀이 남북을 왕래하며 경기를 한 것은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직후인 10월 열린 ‘통일축구’가 마지막이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남과 북을 다른 조에 편성할는지 모르지만 같은 조에 편성된다면 남북을 왕래하며 축구경기를 벌여 남북긴장 완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중잡지 ‘천리마’ 10월호에서 남북 친선축구의 명칭을 ‘경평축구’가 아니라 ‘통일축구’로 부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수 북한 축구팀 감독도 지난 18일 새벽(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와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최종 6차전을 마친 뒤 “남북이 단일팀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남한 응원단이 북한에 가고, 북한 응원단이 남한에 와서 응원한다면 남북축구경기는 정말 볼만할 것이다. 여기에다 남북단일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임병호 논설위원

저어새

천연기념물 제205호인 저어새는 전세계에서 5종이 알려져 있다. 유럽의 중부와 남부, 러시아 남부, 중동, 중국의 북부·인도·스리랑카 및 아프리카(모리타니·홍해·소말리아)등지에 분포한 ‘노랑부리저어새’, 중국의 북부·동부·남부 및 우리나라 등지에 분포한 ‘저어새’, 아프리카(사하라 남부·케이프타운)에 분포한 ‘아프리카저어새’, ‘오스트레일리아노랑머리저어새’, 그리고 북미주 남부· 남미주 및 중동과 인도 서부 등지에 분포한 ‘장미빛저어새’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 2종이 기록돼 있다. 저어새는 북한지역 서해안의 무인도, 평안북도 정주 앞바다의 대감도(大甘鳥)와 소감도(小甘鳥), 평안남도 온천 앞바다의 덕도(德鳥)등지에서 모두 30여 마리가 해마다 번식하고 있을 뿐 지구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멸종 위기의 일종이다. 이에 비해 노랑부리저어새는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는 매우 드물게 봄과 가을에 한 두마리가 기착하는 종이지만 여타지역에서는 무리 지어 번식하며 옮겨 다녀 흔히 보인다. 그렇지만 희귀종으로 보호가 요청돼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중이다. 이렇게 국제적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가 우리나라 인천·경기지역의 강화도·교동도·한강하구·영종도·송도·화옹호 등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된 것은 이채로운 현상이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지난 10월 16~17일과 23~24일 두 차례에 걸쳐 전국 24개 지점을 동시에 저어새를 관찰한 결과 최대 210마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관찰된 전국 210개체는 ‘국제저어새동시센서스’를 통해 전 세계 저어새 생존 개체수로 추정되고 있는 1천206개 개체 중 17%에 해당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이번 ‘전국저어새동시센서스’에는 전문가·교사·대학생·주부 등 100여명이 참여해 국제적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였는데 북한과 맞닿아 있는 교동도 근처에서 약 93마리의 저어새가 관찰된 것은 저어새 보전에 남북이 협력해야 할 사업임을 시사한 것이다. 전장 73.5㎝ 정도의 저어새들의 목소리와 눈빛이 보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염치없는 사람들

6·25 납북자들은 대부분 북에서 죽었다. 이밖에도 어선 납북, 제3국에서의 납북자 등이 있다. 정전되고 나서도 송환되지 않은 국군 포로들이 또 있다. 확인된 납북자는 486명이다. 억류된 국군 포로는 538명이다. 북은 대남공작을 위해 일본인들도 납치했다. 이를 줄곧 부인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할 수 없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납북자 문제를 국교 수교의 선결 조건으로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 여름에 납북자 5명과 그 가족들을 평양서 고이즈미 총리가 타고 간 비행기에 태워 직접 데려왔다. 그리고 10여일 전에는 납북되어 북에서 죽은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일본에 도착했다. 1977년 당시 열세살의 여중생이었던 요코다가 27년만에 한 줌의 재로 귀국하자 일본 열도는 분노로 들끓었다. 요코다는 북에서 결혼까지 했으나 우울증 끝에 자살했다. 유골 송환은 또 있다. 미국은 정전된지 51년이 된 지금도 북에서 전사한 유해를 미국 본국으로 데려가고 있다. 1996년부터 북에서 죽은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게 200여 구나 된다. 올해만도 발굴작업을 통해 40여 구를 수습해 갔다. 미국은 발굴비로 달러를 준다. 북의 미군 유해 발굴작업은 일종의 외화벌이인 셈이다. 미국의 전사자 유해 수습이나 일본의 납북자 데려가기는 침해된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주권국가의 자존심이다. 이래서 비록 죽은 사람이지만 자국민 유해 보호에 그토록 힘을 쓴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유해는 고사하고 산 사람도 못데려 온다. 데려오는 것은 고사하고 쉬쉬해가며 말도 못 끄집어 낸 채 눈치만 살핀다. 해마다 쌀 40만t과 비료 30만t을 인도적 차원에서 북에 준다. 이게 다 국민의 세금이다. 납북자 송환도 인도적 문제다. 우리는 인도주의를 아까지 않는 데도 저들은 인도주의를 외면한다. 단순히 외면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악용하기도 한다. 2000년 9월 여기서 62명이나 보낸 비전향 장기수를 북에선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이렇게 저렇게 줄 것 다 주어가며 눈치놀음을 벌이면서도 남북관계에 쥐뿔이나 뭐 하나 잘 되는 건 없다. 이런게 남북공조고 민족자조라면 참 희한한 일이다. 주는 사람이나 받아먹는 사람이나 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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