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대중문화 예술은 상업적이고 통속적이다.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다. 일반인의 기호나 욕구에 맞게 대량적으로 생산된다. 이에 비해 순수문화는 공리적이고 계몽적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딱딱하다. 특정인의 주장과 이론에 맞춰 제한적으로 생산된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순수문화의 구분은 사실상 부질없다. 그 개념은 비록 달라도 인식면에선 결국 상통한다. 대중문화든 순수문화든 수요가 없는 문화는 설 땅이 없어 사라지기 마련인 것은 다 같다. 어떤 유명 성악가가 ‘KBS 열린음악회’에 나왔다가 대중가요 가수와 한 무대에 설수없다면서 되돌아간 적이 있지만 알고보면 웃기는 잘못된 자존심이다. 외국에 세차게 불고있는 한류(韓流)문화의 원류는 대중문화다. 중국에선 가수 이효리, 탤런트 최상우 등에 이어 어느 여배우가 TV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국내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외교채널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열도를 휩쓴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그곳 팬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더니, 최지우는 역시 그의 팬인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초청을 받아 20여분동안 환담을 나누었다. 얼마전 제주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간 당일로 가진 고이즈미의 최지우 면담은 파격적인 것이다. 한편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가수 김연자의 열열한 팬이다. 나라 밖으로 부는 대중문화의 한류가 뜨거운데 비해 국내 인사들의 대중문화 감각은 젊잔을 빼서인지 무덤덤하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외국의 대중문화를 받아 들이는 데도 인색해서는 안된다. 문화는 교류다. 우리의 것이 나가는 건 당연하고 외국의 것이 들어오는 건 안된다는 생각은 문화국수주의다. 이래서는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외국인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중문화의 한류를 탐닉하는 것처럼 우리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된다. 금세기는 대중문화사회의 시대다. 이는 곧 열린 마음에서 시작돼야 하고, 이래야 또 좋은 결과가 되돌아와 새로운 문화창출이 가능하다./임양은 주필

‘가정主夫’

극심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이 급증하면서 ‘가정 주부(主夫)’가 늘어났다. 하루에 만원 벌고 2만원을 쓰더라도 남자는 아침에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 밖을 나서야 한다는 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 지 참 서글픈 사회 현상이다.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자료를 보면 지난 6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가사활동을 하는 남자가 12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해 같은 달(6만9천명)에 비해 85.5%나 증가한 수치다. 올 상반기(1~6월) 중 가사활동을 하는 남자는 월 평균 13만4천300명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10만8천500명)보다 23.7% 늘어났다. 가사활동하는 남자는 지난 1월까지만해도 지난 해 같은 달 대비 40.2%의 감소율을 보였지만 2월 4.1%, 3월 116.4%, 4월 112.5%, 5월 95.2% 등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가정 主夫가 늘어나는 원인은 구직을 포기한 채 가사에만 전념하는 남자들이 급증한 탓이다. 명예·조기퇴직이나 직장 휴·폐업 등으로 실업자들이 증가, ‘집안 일 하는 남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 상반기에 직장을 잃은 지 1년 미만된 실업자 중 일거리가 없거나 사업경영 악화로 실직한 사람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16.0% 증가했다. 명예·조기퇴직·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이 평균 27.2%, 직장 휴·폐업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평균 13.4% 증가했다. 반면 가사활동을 하는 여자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6월 500만1천명으로 작년 6월(488만명)보다 2.5%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상반기 가사활동 여성은 509만6천8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512만8천100명보다 0.6% 감소했다. 대부분 남편들이 직장을 잃거나 정년퇴직를 하면 등산이라도 가라고 강제로 내쫓기는 구박(?)을 받는다고 한다. 맞벌이하는 부부라면 몰라도 실업자가 된 남성이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습은 아무리 넓게 생각해도 보기에 딱하다. 남성들이 보무도 당당히 일터로 나가는 날이 빨리 와야 할텐데 이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답답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장수 묘약

술이 심혈관 건강에 좋을지도 모른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는 197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비음주자에 비해 적당히 마신 음주자에게서 우리 몸에 이로운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술이 건강에 대해 갖는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다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1년 미국 CBS에서 ‘프렌치 패러독스’가 발표되면서 포도주와 건강에 관한 관심이 고조됐다. 즉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서구인에 비해 동물성 지방섭취도 많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은 반면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은 50% 이하로 낮은데 그 원인이 꾸준히 마시는 적포도주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포도주가 몸의 어느 부분, 어느 질병에 유익한가는 여러 의학잡지에 발표됐는데 대략 생명 연장(노화 방지),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각종 암 억제, 항균 효과, 뇌졸중 감소, 치매·당뇨병·감기 발생 감소, 골다공증 예방 등이다. 가히 ‘건강의 술’이다. 그러나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에는 항상 전제조건이 따라 붙는다. 적당한 음주는 유익하지만, 과음자는 어김없이 이러한 질환의 위험성이 현저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또 술의 해악에 관한 논문이 유익성에 관한 논문보다 몇 배나 많다. 그런데 사람이 알코올로 목숨을 잃는 것보다 생명을 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런던 의과대의 연구결과를 인용, 보도했다. 연구진은 알코올 과음으로 한해 1만3천명이 목숨을 잃는 반면 적당량의 알코올 섭취로 생명을 건진 사람은 1만5천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술이 건강과 생명에 이로움을 주는 효험은 연령별로 큰 차이가 난다. 혈기왕성한 20대 때는 남성들에게 술이 독약인 반면 35세부터는 하루 한 두잔씩 적당량을 마시면 보약과 같은 효험을 볼 수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술로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많다니 애주가들이 좋아하겠지만 보고서는 술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남성의 경우 1주일에 최대 21잔, 여성은 1주일에 최대 14잔까지로 술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모름지기 애주가들이 명심할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유서

이 세상에 죽음 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무엇이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특히 아무도 그 세계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신병 들어 누우면 과거지사라도 생각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그야말로 마지막이다. 가족에게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교통사고 등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쓰러져 최후를 맞을 수도 있고, 중풍이나 치매가 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채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자녀에게 부모 마음을 전할 수 없다면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자식들 또한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래서인지 요즘 삶의 마지막 단계인 ‘유서 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67세의 K여사는 유서를 미리 썼다. 병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면 간병인을 쓰도록 하고, 치매에 걸렸을 때는 요양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또 죽었을 때는 머리엔 조바위를 씌우고 수 놓은 가죽꽃신을 신겨달라고 당부했다.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에게는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부탁도 남겼다. 세상을 떠나는 날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온 친지들에게 들려줄 CD에는 “와 줘서 고맙다. 그동안 혹시 서운한 게 있으면 용서하고 잊어달라”고 부탁하고 ‘사의 찬미’를 라이브로 담았다. 유서가 법적으로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필로 쓴 뒤 주소와 이름을 적고 인장을 찍어야 한다. 컴퓨터·타자기 등으로 작성했거나 대필한 유서는 법률사무소 등에서 공증을 거쳐야 한다. 또 녹음을 했을 때는 2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수원문인협회(회장 김현탁)가 2004년版 ‘수원문학’지에 회원들의 ‘미리 쓰는 유서’를 특집으로 꾸민다고 한다. 미리 유서를 써 두면 이제껏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깊이 있게 할 것으로 짐작된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 말아 달라”는 어느 시인의 유시(遺詩)가 생각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영장단계 보석?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서 풀려나는 영장 신청단계 보석제를 합의한 것으로 전한다. 이렇게 되면 구속영장 발부 전의 신청단계 보석과 영장 발부 후의 구속적부심이 있게 된다. 이 과정이 불과 며칠 사이다. 영장 신청 단계에서 보석 신청이 기각되어 영장이 발부되고도 며칠 뒤엔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날 수도 있다. 단 며칠 사이에 법원에 의해 이렇게 구속되고 풀려나는 것이 꼭 사안에 큰 변화가 있어서 만은 아니다. 법관의 판단이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으면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 형사소송의 원칙이다. 그러나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라는 것도 역시 법관의 심증적 판단이다. 법관이 그렇다고 보면 그렇고 그렇지 않다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 유무만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안되고 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 혐의의 응보적 사회정서상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하고 신속한 재판을 고려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대법원이 불구속 재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한 두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피고인의 인권옹호를 위한 이같은 방침은 무척 좋지만 불구속 피고인이 재판 기일에 출정하지 않아 지연되는 심리로 재판부가 애를 먹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불구속 재판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는 이런 사회적 책임도 없지 않다. 앞서 말한 구속영장 신청단계의 보석제도 역시 불구속 재판의 확대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구속영장 신청단계일 것 같으면 실질심사가 있을 시기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의 피의자 방어 변론과 영장 신청단계의 보석 신청과는 중복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실질심사에서의 영장신청 기각과 이 기간의 보석허가는 성격이 다른 점이 없지 않으나 결국 불구속인 점은 동일하다. 이토록 중복되고 번잡성을 갖기 보다는 차라리 영장 실질심사를 더욱 엄격히 하여 구속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양은 주필

신용카드 亡兆

신용카드는 신용이 담보다. 신용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발급되어야 하는 것이 신용카드다. 이러한 신용카드 발급을 길거리에서 미친 이가 떡돌리듯이 해댔다. 오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신용카드 가입을 통사정하다시피한 카드 노점상이 즐비했던 적이 있다. 이 바람에 무직자도 미성년자도 신용카드 몇개쯤은 지니게 된 신용없는 신용사회가 되고 말았다. 선거선심이, 내수진작의 땜질 처방이 결국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카드빚에 쫓겨 저지르는 범죄 얘기는 이제 새삼스런 세태가 아니다. 카드빚으로 인해 자살자가 속출하고 가정이 깨지는 사례 또한 허다한 세상이 됐다. 신용불량자가 약 400만명에 잠재적 신불자가 300만명에 이른다. 네 집 건너 한 집이 신불자고 세 집 건너 한 집이 잠재적 신불자인 것이다. 카드 남발은 이렇게 해서 내수침체, 성장률 저하, 빈곤층 양산의 악순환을 가져와 전보다 몇배나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투자가 위축되어 고용이 부진하고, 이러다 보니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되는 등 국내 경제의 병리현상이 심각하다. 일자리 창출을 말하지만 투자가 활성화 안 되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이런데도 갖가지 규제로 투자를 저해하는 것이 이 정부의 정책이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금융불안이다. 경기침체가 이대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가계부채의 둑이 무너지고 만다. 자그마치 260조원에 이른다. 신용카드가 주류인 이 가계부채의 둑이 무너지면 신용카드사만이 망하는 게 아니다. 금융권도 치명타를 입어 금융위기가 닥친다. 국제사회의 신용도는 나락으로 떨어져 수출마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잠재적 위기 요인의 신용카드 남발 정책을 쓴 전직 고위직 중엔 지금도 현직에 있는 이가 있다. 실패한 정책에 국민 피해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 기가 막히는 세상이다. /임양은 주필

친일파

북이 해방후 친일파를 일제히 청산할 수 있었던 것은 단원화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당(로동당)의 명령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프랑스가 2차대전 후 다원화사회이면서 나치협력자, 이를테면 친독파를 숙청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이 없었으므로 깨끗이 청산할 수가 있었다. 남에서는 그러하지 못했다. 북처럼 단원화사회가 아닌 다원화사회인데다가, 또 프랑스처럼 종전후 평화를 구가하지 못하고 건국과정이 반탁운동 등 공산주의와의 싸움으로 일관하였기 때문이다. 해방후 처음엔 배척됐던 친일파가 첫 기용된 것은 일제시 고등계(정보계) 형사간부를 지낸 노덕술이었다. 남로당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극렬테러에 경찰 경험이 없는 당시의 치안 능력으로는 감당키가 어려워 노를 서울경찰청 사찰과장(정보과장)으로 기용한 것이 친일경찰의 출세길이 되었다. 경찰의 친일파 기용이 또 계기가 되어 군대에 이어 행정·사법분야에 까지 확대된 것이 이른바 오늘날 문제가 된 친일파 미청산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친일파를 기용하긴 했으나 그의 재임시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란 말도 끄집어 내지 못하게 했을만큼 일본쪽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러한 그가 친일파를 특히 경찰과 군대에서 중용한 것은 당장 발등의 불이 된 대공 투쟁이 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다 보니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가 유야무야하게 끝나고 말았다. 해방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잘못엔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 다만 전후 세대는 해방후 공산주의자들의 관공서 습격, 살인 방화 약탈 등이 얼마나 극렬했는가를 잘 몰라 이해가 안갈지 모르겠으나 건국을 끈질기게 방해했던 기록은 많고 아직도 당시 세대의 인물들이 상당수 생존해 있다. 국회에서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나쁘다 할 수 없으나 해방된지 이미 60년이 다 되다보니 일제시 직명이나 행위만을 가지고는 참으로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게 됐다. 지지대子도 초등학생이었던 일제치하에서 창씨개명을 했고 ‘덴노헤이카 반사이’(천황폐하 만세)를 불렀으므로./임양은 주필

'보석같은 나라'

외국의 저명한 작가가 우리 나라를 소재로 글을 쓴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 벅은 ‘살아있는 갈대’ ‘한국서 온 두 처녀’ ‘정오’ 등 한국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는데 특히 ‘살아 있는 갈대’를 일컬어 뉴욕타임스에서는 “펄 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묘사했다. 펄 벅도 책 앞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이다”라는 헌정문을 썼다. 또 ‘기탄잘리’라는 시집으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타고르 라빈드라나트가 우리 나라에 대해 시를 썼다. 1929년 그가 일본에 들렀을 때 어느 일간지에서 한국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대신 그 일간지에 기고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앞부분만 알려져 있지만 전문은 이렇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친 송가’라는 뜻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 지식은 자유스럽고 /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 지성의 맑은 흐름이 /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주요한 옮김) 자신도 영국의 식민지 국민으로서 일제의 식민 치하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보낸 일종의 송시(頌詩)다. 펄 벅과 타고르는 문학을 통해 한국의 밝은 미래를 예언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아직도 국토가 분단된 상태로 살고 있다. 남북 통일의 그 날은 언제 올 것인가. 타고르가 기도한 말씀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는 지금의 우리 현실을 염두에 둔 듯 하여 숙연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프로 근성

일본 최초의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1924~1963·조선이름 김신락·일본이름 리키도잔)은 패전 직후 일본인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면서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생전에 그는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 一人之下), 천황 아래 역도산’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주소 없이 ‘일본 역도산’이라고만 써도 편지가 배달됐을 정도의 스타였다. 조선에서 태어나 39세에 일본 신주쿠에서 야쿠자의 칼을 맞고 사망한 후에도 지금까지 400여권의 관련서적이 나올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다. 역도산의 2남2녀도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사후에야 알았고 일본인의 절반은 지금도 역도산을 일본인으로 알고 있다. 1960년대 한국에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킨 역도산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한일합작 영화 ‘역도산’이 지금 일본에서 촬영중인데 설경구가 역도산역을 맡았다. 설경구는 ‘역도산’의 타이틀롤을 맡은 후 살인적인 몸불리기와 고난도 레슬링 훈련, 완벽한 일본어 구사에 혼신을 다했다. 73㎏이던 몸무게를 94㎏으로 불렸다. WWE 최상위 랭킹의 프로레슬링과 직접 맞붙는 시합장면에서 설경구는 196㎝ 146㎏의 거구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대사도 영화전체를 통틀어 두 장면을 빼놓고는 전부 일본어다. 촬영 초기 일본 성우의 더빙이라는 특단의 대안도 제시됐지만 설경구는 일본어 대사를 외우는 대신 일본어를 배웠다. 지난 8개월동안 하루 4시간의 강훈을 거친 그의 일본어 실력은 현지 배우, 스태프와 자유자재로 대화하는 수준이다. 영화 ‘역도산’은 민족주의적 관점이나 도덕적인 잣대가 아니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재조명된다. 몸뚱이 하나로 고달픈 시대를 관통한 한 거인의 치열한 삶이 스크린에서 역동한다. 설경구는 영화 ‘박하사탕’ ‘오아시스’ ‘실미도’에서 이미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체중을 21㎏이나 불린 배우 설경구의 프로 근성이 놀랍다. ‘역도산’은 역도산 사망 41주기인 오는 12월15일 개봉될 예정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소년 '타잔'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은 남동부에 청화산(963m)·조항산(951m)·백악산·낙영산 등의 소백산이 달리고, 북서부에 대산(大山·648m)·주왕산(420m) 등의 산지(山地) 사이에 달천 지류인 박대천과 화양천이 면 중앙부를 흐르는 시골이다. 하늘이 동그랗게 보이는 이곳 선평리(先坪里)에 전학년이 75명인 청천중학교가 있다. 1960년 괴산중학교 청천분교로 개교한 후 1963년 청천중학교가 된 이 학교에서 지난 10일 교내백일장과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시인·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문예진흥원이 후원한 ‘2004 시사랑 도서 벽지 순회 시 낭송회’가 열렸다. 이날 시 낭송회에는 청천중학교 학생 전원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장·교감·교사들이 참석하여 육성으로 들려주는 시인들의 자작시를 감상했다. 참석자들은 충청지역과 서울지역에 살고 있는 곽효환 길상호 김순영 김완화 노춘기 박등 박순원 박종국 박주택 여태천 오세영 이근화 이선주 이성렬 임병호 장석원 조정권 최경미 최동호 홍해리 시인과 교내 백일장 입상 학생들의 낭송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는 강당 창문 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오세영(서울대 교수) 시인은 ‘타잔’을 낭송했다. “한 밤의 고층 빌딩 / 인터넷을 두드리다 문득 창 밖을 / 내려다 본다 / 꽃들인가, 계곡에 난만히 핀 네온의 불빛, / 강물인가, 까마득히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 헤드라잇 물결, / 일순, 도시는 원시의 정글인데 / 홀로 홈페이지를 검색하는 나는 / 야행성 동물, / 말에 굶주린 숲 속의 타잔같이 / 늘어진 한가닥 코드에 매달려 / 절벽과 절벽을 건너뛴다. / 생명이란 구릿 줄에 흐르는 한줄기 전류, / 그 전원이 켜 있는 동안 / 홀로 콤퓨터를 두드린다. / 계곡의 꽃덤불 속에 숨어 있을까, / 강가의 자갈밭에 숨어 있을까.” 행사가 끝난 후 나눈 좌담에서 임성수 교장은 “우리 학교에서 시인·소설가가 배출될 것으로 믿는다”고 제자들의 글솜씨를 자랑했다. 매년 봄·가을에 교내백일장을 열겠다는 말도 했다. 휴대전화도 잘 걸리지 않는 청천면의 중학생들이 푸른 언어를 찾아 밀림을 누비는 건강한 ‘소년 타잔’들 같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잘못된 정부 운영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헌법은 국무회의의 권한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하여 17개 사항을 열거했다.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행정 각 부간의 권한의 획정, 행정 각 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 등은 그 중 3개 항목이다. 이 정부가 헌법이 정한 국무회의 기능대로 하면 예컨대 건교부가 발표한 김포 신도시계획이 국방부에서 반대하여 축소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무회의가 정부의 중요정책을 심의하거나 행정 각 부의 정책수립 또는 조정을 하는 자리가 못되고 대통령 말씀 경청 위주의 자리가 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헌법 조항 어디에도 규정이 없는 비헌법 기구다. 대통령 직속의 무슨 위원회란 것 역시 헌법에 없는 임의 기구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러한 대통령 비서실이나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란 것이 내각위에 군림하는 데 있다. 정부의 ‘숨은 실세는 비서실이고 장관은 얼굴마담’이란 세평이 나 있을 정도다. 이로도 모자라 정책은 막상 위원회란 데서 수립하고 장관은 그저 집행하는 심부름 꾼으로 전락했다. 어느 장관은 “나 역시 위원회의 일개 위원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시스템 작동의 이상 파열음이다. 정부의 정책이 내각에서 수립되기 보다는 이런 위원회란 데서 수립되는 위원회가 무려 12개에 이른다. 대통령이 헌법기구인 내각보다 비헌법기구인 직속 비서실이나 직속 위원회에 국정의 무게를 더 두는 정부 운영은 분명히 위헌이다. 정부의 시스템 운영에서 변칙이 원칙을 압도하여서는 국정의 효율을 기하기가 어렵다. 국정의 질서 또한 문란하다. 국무회의에서 토의가 활성화하고, 내각에 힘이 실리고, 각부 장관이 정책수립을 주도, 책임을 지는 정부가 돼야 제대로 된 정부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국선변호인

국선변호인 선임 요건으로 형사소송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 70세 이상 고령자, 농아자,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자 등이 변호사를 선임치 못했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게 된다. 또 극빈 등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한다. 열악한 피고인에게 국비로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형사정책이다. 가히 인권보호의 백미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의 현실은 법정심리의 절차적 요식행위로 충당될 뿐 변론 덕을 보았다는 피고인은 별로 있지 않다. 선임된 국선변호인이 미처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선사건으로 법정에 나온 변호사가 즉석에서 선임되기도 한다. 조서는 고사하고 공소장마저 살펴 볼 틈이 없다. 그저 죄명만 보고 ‘관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틀에 박힌 말만하고 끝낸다. 설령 지정된 국선변호인이 나온다 해도 잘 해야 공소장만 보고 몇마디 반대신문하는 것이 고작이다. 심지어는 피고인이 자신을 위한 국선변호인인 지 뭔지 모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제2분과위원회가 기소돼 재판중인 피고인 뿐만이 아니고 수사기관에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들까지 국선변호인 선임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한다. 참 좋은 말이지만 실질적 효과가 문제다. 피고인 단계에서도 실질 효과가 의문인 마당에 피의자까지 확대한다 해서 더 잘될 것으로 보기는 지극히 어렵다. 국선변호인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일부 변호사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턱없이 낮은 선임료가 더 큰 이유다. 점심값 정도밖에 안되는 선임료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란 사실상 기대난이다. 개혁은 탁상이론보다는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해야 개혁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임양은 주필

국가 지도자

전쟁이 국가 지도자의 치매적 정신상태와 연관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국 헤이우드병원 정신과 전문의 님 박사가 영국왕립정신과의사협회에 낸 연례총회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총리, 스탈린 소련 수상, 윌슨 미국 대통령이 다 치매 증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인 점에서 주목된다. 님 박사는 얄타회담 때 이미 루스벨트가 상당히 진행된 치매상태로 항상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처칠도 나중에 사망원인인 치매가 벌써 이 무렵에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또 스탈린 역시 수차에 걸린 뇌중풍 발작으로 치매 증상이 짙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한편 윌슨도 미국 대통령 재임 중 치매 징후가 없었다면 베르사유 조약을 비준하는 등 유화정책으로 제2차대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1,2차 대전과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독재의 대학살 등이 국가 지도자의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 의해 진행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믿기는 심히 어렵다. 하지만 제3차 세계대전이 핵 가방의 오류나 핵 무기의 오발로 기인할 것이라는 미래학적 전망을 감안하면 귀담아 들어둘만은 하다. 상고 해보면 예컨대 폭군으로 불리는 로마의 네로나 조선의 연산군 같은 사람들은 정신의학 및 심리학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님 박사가 치매 증상이 있는 지도자를 가리켜 “높은 지도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치매에 걸려 직무수행(기억력 의사결정 방향감각 등) 능력이 손상돼도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행동한다”고 밝힌 건 특히 유의할만한 대목이다. 국가 지도자는 이래서 심신이 건강해야 나라가 제대로 경영된다. 치매만이 아니다. 인격이나 정서의 형성이 장애받지 않은 지도자여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광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광인이 아닌 광인같은 사람이다. /임양은 주필

착각

‘전향(轉向)’이란 말은 원래 일본의 사상검사들이 후쿠모토 가즈오의 ‘방향전환론’에서 따온 말로 대표적인 일제 잔재다.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의 패전 이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승만 시대를 거쳐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간에 절정에 달했다. 박 정권의 전향공작이 본격화한 것은 1973년 6월 전국의 교도소에 사상전향공작반이 투입되면서부터였다.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께 부터였다. 그때까지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고, 알고 있어도 절대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비밀이었다. 장기수들은 6·25전쟁 때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사람들, 남파 간첩들, 통혁당·인혁당·남민전·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 자생적 변혁운동이나 시국사건 관련자들, 납북 어부들이나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에 얽힌 사람들 등 크게 네 부류로 나누었다. 이들 가운데 빨치산 출신들은 1989년 사회안전법 폐지로 모두 출소했기 때문에 30년 이상의 초장기수들은 대개 남파 간첩 출신이다. 분단 이후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출소 이후 사망자를 포함한 총 94명이 산 징역 햇수를 합하면 모두 2천854년, 한 사람 평균 31년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언론들은 비전향 장기수를 미전향 장기수로 불렀다. 미전향은 아직 전향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전향을 시켜야 할 공작대상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전향공작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공작에 저항하다 숨진 남파 간첩·빨치산 출신 3명을 ‘민주화운동 의문사’로 인정한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들이 신봉했던 기치는 공산주의이고 타도대상은 민주주의(남한)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전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공산주의자다. 공산주의 혁명투쟁의 일환으로 전향을 거부한 것이다. 그들이 민주화 인사라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민주화 운동의 대부라는 논리다. 의문사위원 7명 중 그들을 민주화 인사로 인정한 4명의 생각이 실로 난해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서울'

‘서울’이란 말의 뿌리를 캐 보면 이렇다. 시초에는 ‘서울’과 ‘나라’가 하나였다. ‘사벌, 사불, 사비, 새벌, 소부리’ 등에서 ‘사, 새, 서, 소, 쇠’의 ‘ㅅ’갈래 말과, ‘벌, 불, 부리, 비’의 ‘ㅂ’ 갈래 말을 뽑아 낼 수 있다. ‘ㅂ’ 갈래 말은 “땅, 마을”의 뜻이다. 이래서 ‘서울’이란 말의 뿌리 말이 ‘서블’로 요약되는데, 그 원말은 ‘??’이다. 우리 나라 ‘서울’이란 말은 “큰 마을, 새 땅”이란 뜻의 아주 좋은 말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중국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라고 ‘서울’이란 말을 한자로 적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한글이 없을 때 우리도 한자로 적을 수밖에 없어서, 소리로 ‘沙伐(사벌), 沙弗(사불), 泗?(사비), 徐伐(서벌), 所夫里(소부리)’로 적었다. 뜻으로는 ‘鐵原·철원(쇠벌→새벌), 松嶽·송악(솔부리→소부리) 등으로 적었다. 다 우리 말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서울’을 한자로 쓰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했는데 그 위원회가 ‘首耳·수이(서우얼), 首沃·수옥(서우워), 首兀·수올(서우우), 首屋·수옥(서우우), 世友耳·세우이(스유얼), 首屋?·수옥이(서우우얼), 首午?·수오이(서우우얼), 首塢?·수오이(서우우얼)’ 등의 안을 내 놓았다. 그 위원회는 자기네들의 안(案)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지난 3월부터 공개모집을 했는데 시민들이 안을 보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首兀·수올(서우우), 首屋·수옥(서우우), 索?·색이(쒀얼) 등이다. 서울시는 5월 21일 “ ‘서울’을 ‘首?(서우얼)’, ‘首五?(서우우얼)’ 중 하나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과연 ‘서울’이 그런 한자로 적혀도 되는가. 한 마디로 안된다. 중국 말의 소리에 맞춰 ‘서울’ 적기를 바꾸는 것은 주권 나라로서 주체성을 잃는 짓이다. 중국인들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때 한자로 적지 못하고 로마자로 적어 보내듯이 우리에게도 ‘서울’을 한글로 적어 보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수의사

한 10년 전만 해도 수의사(獸醫師)는 소·말·돼지 등의 질병을 진찰·치료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의사들이 큰 동물 진찰을 기피하는 현상이 짙어졌다. 올해 1월 현재 수의사 9천31명 중 3천18명이 동물병원 등 임상에 종사하고 있는데 소·돼지 등 큰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는 447명, 애완견 등 작은 동물을 보살피는 수의사는 1천686명으로 거의 4배에 이른다. 전국의 동물병원도 큰 동물은 2002년 443 곳에서 2003년 424 곳으로 줄었지만, 작은 동물은 1천380 곳에서 1천460 곳으로 크게 증가했다. 원인은 젊은 수의사들이 소, 돼지 등을 다루는 힘든 일을 싫어하는데다 애완동물의 진료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 수의학과가 6년제로 바뀌면서 최근 2~3년간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고 수의과에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또 다른 원인은 농촌사회가 수의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점이다. 농촌의 일부 지역 외에는 동물병원을 개원해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없고 특히 자녀교육환경 등 생활여건이 뒤떨어지는 현실이 수의사들로 하여금 농촌을 멀리 하게 한다. 전국의 지역축협에서 가축의 질병 치료 및 예방을 위해 동물병원 운영을 계획하고 있지만 수의사를 못 구해 개원을 못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다. 질병 등 몸에 이상이 생긴 가축을 제 때 치료하지 못하면 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더욱 커지지만 수의사들이 농촌을 외면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익수의관 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가 병들어 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애완견을 안고 들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애완동물을 병들었다고 내다 버리는 사람과 그 애완견을 치료해 주려고 자신의 동물병원으로 안고 들어가는 수의사와는 인격면에서 천양지차다. 그런 동물 사랑 정신으로 농촌지역에도 수의사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완동물의 버려진 목숨을 살리려는 수의사의 뒷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임병호 논설위원

수원천

해발 582m의 광교산 자락에서 발원되는 수원천은 광교저수지에서 모아져 유서깊은 화홍문을 통해 화성을 낀채 도심을 가로질러 황구지천으로 흘러든다. 유역 면적은 25.37㎢에 길이가 14.45㎞이다. 한동안 교통난 해소책으로 지동교 부근을 중심으로 복개공사가 이루어졌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중단됐다. 광교저수지는 약 12만평으로 비상 식수원이다. 1937년 10월에 시작하여 1940년 12월 완공하였다. 연인원 20만여명이 동원됐다. 지금의 243만t에 이른 저수용량을 갖게 된 것은 1967년 제방을 높인 제방승상공사 이후다. 수원천이 되살아난 것은 1996년이다. 오염물질을 걷어내는 등 하천정비사업 이후 수초가 자라고 둔치에 개꽃아제비 등 갖가지 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졌다. 물속에서는 붕어, 피라미, 미꾸라지, 우렁, 다슬기 등이 서식하기 시작했다. 한 여름엔 멱을 즐기는 하동들의 모습을 보게됐고 천변공원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수원천에서 물고기들이 의문의 떼죽음을 당한 것은 뜻밖의 낭패다. 며칠전 매교동 부근서 붕어등 300여 마리가 폐사한 채 허옇게 떠올랐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채취한 물을 경기도보건환경연구소에 감정 의뢰한 모양이지만 폐수 유입으로 인해 집단폐사한 게 거의 분명하다. 수원천은 다른 하천물의 유입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수원시내 광교산에서 시작하여 그대로 시가지를 관통하며 흐른다. 다른 하천과 접속이 없으므로 수원 지역사회가 관리만 잘 하면 잘한 그대로 맑은 물을 유지할 수가 있다. 수원천은 이래서 시민의 양심이 반영되는 하천이라 할 수가 있다. 오폐수 유입이 왜 있게 되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시 당국의 보다 더 강력한 대책과 함께 시민의 공동체의식 강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수원천은 곧 시민의 ‘양심천’이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北과의 약속

국제사회의 선린 외교는 신용이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 개인사회의 사생활에서도 신용을 잃으면 두번 다시 상종하기를 꺼리는 것이 인간 사회다. 하물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더 말할 게 없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두동강 난 것이 불행히도 나라 대 나라 사이라면 이 역시 서로가 신용을 지켜야 한다. 신용이 없으면 경제협력도 민족공영도 평화공존도 다 헛 말이 된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남북 해군 함정간의 핫라인이 가동된 지 보름만에 교신이 먹통이더니, 먹통이 되고난 지 일주일이 되도록 교신이 중단된 연유조차 회시하지 않은 채 계속 묵묵부답이다. 북측이 약속을 어긴 사례는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언제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는 그 책임을 남쪽에 떠넘긴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이번만은 지키겠지 하고 기대했던 것이 연이나 또 이상하게 돌아 간다. 핫라인 가동은 군사적 충돌을 막자는 것이다. 평화공존과 직결된다. 이러한 중대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북측의 진의를 의심케 한다. 이래가지고는 북측을 믿기가 심히 어렵다. 앞으로도 남북간에 약속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약속 사항이 많을 수록 좋다. 한데, 어떻게 믿고 또 약속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상대하지 않을 수도 없고, 또 상대하다 보면 약속해야 할 일이 생긴다. 지금까지 남쪽은 북측에 이렇게 끌려왔다. 평화를 위해서다. 이러다 보니까 이젠 북측이 남쪽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따질 것은 좀 따져야 상호간에 신뢰를 쌓을 수가 있다. 해군 함정간의 핫라인 두절에 무턱대고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는 건 정부가 취할 자세가 못된다. 북측과의 교류에서 상대를 신용있게 만드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다./ 임양은 주필

주 5일 근무제

지난 토요일(3일)은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의 5일근무제가 법적으로 적용된 첫 날이다. 종업원 1천명 이상의 대기업, 공기업, 보험 및 금융업 분야가 적용 대상이다. 인원수는 약 180만명이다. 주 5일근무제 적용은 오는 2011년까지 점차 확대하게 돼 있으므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언제 실시할 수 있을 것인지 까마득하다. 하긴, 지금 같으면 놀라고 해도 돈이 없어 집에서만 죽치는 ‘방콕’신세노릇하기가 딱 십상이다. 실시 첫날인 지난 토요일 휴무에도 별다른 휴일 징후가 있어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대기업·공기업·금융업 종사자 같으면 형편이 그래도 나은 사람들인데도 그러하였다. 삶의 질을 높이는게 주 5일근무제라고 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다 돈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삶의 질은 소득과 비례한다. 국가 채무는 직접 채무만도 80조원으로 산더미인 가운데 서민소득은 쥐뿔같아 평균 가계부채가 3천만원이 넘으면서 삶의 질을 찾는다는 게 과연 걸맞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된 세상인지 열심히 일을 해도 이 난국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판에 노는 날을 찾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됐다. 흔히 선진국의 노동시장을 말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주 5일근무제 여건은 중진국도 못되는 후진국의 형편에서 노는 것은 선진국 노릇을 하려고 든다. 마치 뱁새가 황새걸음을 따라가는 형상을 연상케 한다. 국내 노동문제가 언제나 대기업 등 위주인 것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겐 이질감과 위화감을 안겨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양극화는 그 격차가 더욱 심해져 노동문제의 본말이 뒤집혀 있을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주 5일근무제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법적 차별 대우까지 받게 됐다. 주 5일근무제는 중소기업부터 먼저 시행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어야 명실공히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한글 금배지'

17대 국회 개원 직후 경제정의실천연합과 한글학회가 건의문을 냈다. 국회의 틀을 고쳐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국회의 보람(배지)을 한글로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국민의 대표임을 상징하는 배지 안에 있는 본디 글자가 ‘나라國(국)’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 의미와 형태가 크게 잘못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곧 ‘○’을 ‘입구(口)’로 보아 ‘口+或=國’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를 단순한 테두리로만 볼 경우에는 ‘혹(或)’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의 일부는 우리 국회를 지난 50여 년 동안 나라의 민의 기관이 아닌 의혹, 유혹과 미혹으로 얼룩진 정치사로 인식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안에 한글로 국민의 대의 기관임을 뜻하는 글자를 넣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한글학회 등은 건의서에서 “첫째, 국회의원 보람에는 한글로 ‘국회’를 상징하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둘째, 국회의원의 이름패도 원칙적으로 한글로 제작하여 보급하되, 필요한 의원은 한글과 한자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현재 국회 배지에 있는 ‘或’자를 떼어내고 한글로 ‘국회’라고 표기할 것을 주문했다. 배지의 “國자가 의혹을 뜻하는 ‘혹(或)’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등원 이후 배지를 한번도 달지 않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한글 금배지’를 달았다. 6월30일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가 직접 제작한 한글 배지 100개를 전달한 것이다. 이 한글배지는 경제정의실천연합과 한글학회가 건의한 대로 ‘○’안에 한글로 ‘국회’를 넣었다. 국회사무처가 “배지 도안 규정은 있으나 착용 의무는 없어 뭘 달든지 의원 마음”이라고 하니 국회의원들이 한글 금배지를 달았으면 좋겠다. 마침 6월15일 노회찬 의원 등 여야 의원 35명이 의원배지와 국회깃발의 한자 ‘國’자를 한글 ‘국’으로 바꾸는 내용의 국회법 규칙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회 깃발에도 ‘국’보다는 ‘국회’ 또는 ‘나라’로 쓰자고 했을 걸 그랬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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