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급식

<5일 아침:불고기버거·치즈버거. 11일 중식:돼지갈비> 육군 모부대의 5월 식단에 나온 차림표다. 물론 다른 날의 메뉴도 다양하고 특이한 것이 많지만 5일과 11일은 입대 전 자주 먹었던 음식을 군에서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장병들의 식탁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이뿐 만이 아니다. 생선양념볶음 등 다양한 메뉴와 ‘신세대’의 입맛에 최대한 맞춘 조리방법 개선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군은 5월부터 ‘돼지보쌈’을 새로운 요리로 추가했다. 입대 전 외식이나 회식 때 먹던 음식이 이제 군 장병들의 식탁에 등장하였다. 돼지고기 보급의 효율성을 더 하기 위해 그동안 부위 구분 없이 공급하던 돼지고기를 삼겹살·목살·일반 정육으로 구분, 1인당 월 1.8㎏씩 급식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군은 2000년 쇠고기 통조림을 새롭게 보급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신세대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떡볶이를 보급했다. 또 2002년에는 꼬리곰탕을 연 12회 배식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오는 7월부터는 영양식인 삼계탕을 비롯해 비엔나소시지·게맛살 등 신세대 취향에 맞는 음식을 새로 보급하고 장병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늘리되 상대적으로 기호도가 떨어지는 메뉴는 줄이는 방식으로 병사들의 입맛에 맞춰나갈 계획이다. 예전에는 식사 후에 우유를 준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아이스크림·요플레 등이 후식으로 나온다. 장병들이 “부대에서 하는 식사는 고향집의 음식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메뉴가 다양해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 궁금하고 식사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과연 병영급식과 군 문화가 민주적으로 달라졌다. 배식량이 부족해 고된 훈련보다 배고픈 게 더 힘들고 괴로웠던 오늘의 50대·60대들이 군대생활 할 때와 비교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군 복무 기간도 훨씬 단축됐으니 얼마나 환경이 좋게 바뀌었는가. 군대에 갈 아들들을 둔 부모, 특히 어머니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 게 무엇보다 다행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단순조선의 피라미드?

내몽골, 만주, 북중국 지역에 가면 평균 25~100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 100개 이상 서 있다고 전한다. 이 피라미드를 최초 발견한 사람은 1945년 이곳 인근을 비행하던 중 사진을 촬영한 미국 수송기 조종사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까지는 산으로 알고 있었다. 1963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들 거대한 피라미드를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 실시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진시황의 무덤보다 수천년 앞서 축조한 것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 돌프’가 ‘피터 크랴샤’라는 친구와 함께 여행객으로 가장하고 외국인 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던 북중국 일대의 피라미드들을 몰래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하였다. 그후 중국 공안당국이 촬영사실을 알아내고 하우스 돌프와 친구를 검거하여 카메라 및 필름 등을 압수하였으나 다행히 촬영 직후 곧 바로 모든 사진들을 독일로 보내 서방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하였다.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21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견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북중국 및 만주땅에는 옛날부터 야만민족과 기마민족들이 살았던 곳이라 진보된 문명이 없다고 말하고 독일학자의 사진과 보고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발뺌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10년 전부터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 자국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전 세계에 고구려 역사가 중국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북중국의 피라미드들은 위로 갈수록 낮아지고 계단식 형태의 고구려의 무덤과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건축공법을 ‘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며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고유의 건축공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5천년 전에 이 지역에서 이런 문명을 가진 집단은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다. 중국인은 황하 유역에서 농사 짓고 청동기를 만들고 있었다. 몽골인인가? 아니다. 몽골인들은 당시 존재도 없었다. 거란족? 오환족? 이들은 완전 유목민으로서 정주 문명과 관계없다. 여진족? 이들도 유목민이다. 5천년 전 이 지역에 관계된 국가나 민족은 누구인가? 이 지역에 단군 조선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굴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가짜 공인중개사

가짜 공인중개사 자격증 대량 밀거래는 예고된 사건이다. 그동안 자격증 관리가 너무 허술했다. 현행법상 공인중개사는 노동부 산하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공단에서 관할 시·도로 통보해 자격증을 부여한다. 시·도에서 자격증을 받은 합격자들은 공인중개사협회 등 유관기관에서 실시하는 총 32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후 이수증을 자격증과 함께 관할 시·군·구청에 제출하면 사무소 개설등록을 할 수 있다. 중개사 자격증을 위조할 수 있는 소지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업자 등록증 교부시 해당 시·군·구청이 자격증 사본의 진위를 공단측에 제대로 조회하지 않는 것이다. 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산업인력공단으로 부터 받은 합격자 명단을 공인중개사협회, 시·군·구 등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위조자격증 구매자들은 엉터리 자격증 사본만으로도 이수증을 받을 수 있다. 또 이수증과 함께 제출하는 자격증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개설등록증도 쉽게 받는다. 검찰에 적발된 공인중개사 자격증 위조단 및 판매범들은 자격증 구입 희망자들의 사진과 주민등록증 사본 등을 넘겨 받은 뒤 컴퓨터를 이용해 경기도지사·인천시장 등 명의의 자격증 50장을 위조, 장당 평균 1천만원, 최고 2천만원까지 거래했다고 한다. 위조 자격증 구입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영업을 했지만 가족의 재테크용으로 산 경우도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1985년 제도 시행 이후 총 17만명이 합격했고, 지난해 치러진 14회 시험에만 26만 여명이 응시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부동산 투기 바람과 조기 퇴직자, 주부 등이 생계용으로 취득을 희망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자격증 위조단의 대담한 수법에 비해 감독 관청의 업무처리와 관리가 너무 소홀한 점이다. 더욱 심각한 일은 위조자격증으로 개설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거래했다가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대한공인중개사협회의 보상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부동산 거래시장에서 가짜 자격증과 가짜 공인중개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은 당국의 관리 소홀탓이 크다. 합격자 명단을 정확히 파악하여 전국 시·도별로 일제히 점검, 재발 방지책을 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성실한 공인중개사가 매도돼서는 안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노인 게이트볼 대회

수원시 장안구 구운동 국민생활체육전국게이트볼 연합회 전용 실내구장, ‘딱’치는 볼에 시선을 집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팀들의 시선은 희비가 엇갈렸다. 제11회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장기 노인 게이트 볼 대회 경기장은 이렇게 하여 뜨거웠다. 지난 11일 오전 이곳에서 김용서 수원시장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이 대회에서 이존하 대회장이며 연합회장인 그는 개회사를 통해 회원들에게 ‘노익장의 감투정신’을 간곡히 당부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선수들은 물론 치열한 승부욕을 다투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이었다. 상대가 비록 적수일지라도 히트를 치면 그 감투정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우군이 여느 때와 다른 실수를 하면 위로의 박수를 치는 그러한 스포츠정신은 곧 우리의 삶의 정신인 것이다. 이날 게임에 나선 350여명의 각 시·군 임원 및 선수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어눌한 손놀림, 어눌한 몸가짐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볼에 임해서는 어김없이 라켓을 곤두세우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노인들, 그들은 비록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도 젊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웃고 서로 즐기는 순간에는 아이와 같이 순진하여 티가 없으면서도 역시 연륜이 쌓인 인생의 달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선수들의 가족들이 열심히 응원하기도 하였다. 아들이나 며느리의 응원, 손주들의 ‘파이팅’ 외침속에 할아버지 할머니선수들은 더욱 분발할 수가 있었다. 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체력은 쇠진하였어도 의욕만은 넘쳐나는 그곳이 바로 게이트볼 경기장소인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것인가, 이리하여 성황을 이룬 이날 대회는 아직도 식지않은 노인들의 사회참여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임양은 주필

풍미식품

‘2004 여성용품 및 발명품박람회’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열린 서울 삼성동 COEX 김치특별관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 옷차림이 형형색색인 외국인들, 신세대 주부들, 어린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김치특강에 유별나게 쏠렸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법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실습해 보이는 강사의 손은 양념으로 범벅이 되고 얼굴에까지 고춧가루 등이 튀곤 했으나 이를 개의치 않는 열강은 관중을 매료시켰다. 현장에서 직접 시식해본 관중들에게 맛깔스런 가지가지 김치를 정성껏 비닐봉지에 담아 보기 좋은 포장으로 싸주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들은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원더풀!”을 연발, 싱글벙글해가며 포장해준 김치를 소중하게 챙겼다. 국내 업계를 대표해 한국 김치문화의 대사(大使) 역할을 한 이 업체가 바로 수원 지역사회 업체다.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있는 ㈜풍미식품이 이 김치특별관을 주관했다. 전래의 김치류 50여종과 기능성 고영양 김치로 연구 개발한 15종의 신제품이 전시되었다. 쇠고기포기김치, 사골김치, 양송이무침김치 등 열다섯가지 신제품은 한국농업전문학교의 위탁으로 연구 개발한 것이다. 김치는 이제 단순한 김치가 아니다. 식품학 분야의 주요 학문으로 정립됐다. 발효식품의 백미인 전통적 김치에 시대적 감각을 첨가하는 김치는 꾸준한 연구 대상인 것이다. 특히 수출하는 나라마다의 기호를 살리는 다양성은 아주 중요하다. 풍미식품은 경기도 으뜸이 인증패 수상, 세계음식박람회 금상 수상, 신지식인 인정 및 우수 경제인 수상(중소기업청) MBC 김치명인, 경기도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다. COEX 전시관에서 그토록 열심히 일했으면서도 거기서는 김치 한포기 팔지 않았다. 한국의 김치문화 선양을 위한 완전 봉사인 것이다. 지역사회가 알든 모르든 묵묵히 그같은 일을 해냈다. 입만 산 정치 건달들 보다는 바로 이러한 중소기업인들이 정말로 나라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대통령의 오기?

‘盧 대통령은 지난 5일 저녁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삼청동 공관에서 열린우리당 핵심 중진들과 만나 “한나라당의 반대와 관계없이 金(혁규) 전 (경남)지사를 총리로 내세우겠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는 어느 신문 보도가 틀림이 없다면 유감이다. 첫째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행한 대통령의 직무관련 발언은 시기가 적절치 않다. 헌법재판소는 지금 판결문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소추 당사자인 대통령이 기각을 예단하는 속셈을 비친 것은 장소가 아무리 대내 행사였다 할 지라도 신중치 못하다. 헌법재판소가 그의 예단대로 소추를 기각하게 되면 판결에 대한 권위를 대통령 스스로가 훼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은 아직은 열린우리당 당원이 아니다. 법률적으로는 남의 당 행사에서 직무관련의 발언을 한 셈이 된다. 둘째는 도의성이다. 김 전지사는 한나라당이 세 번이나 경남지사로 공천한 사람이다. 자기 발로 나와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거나 아니면 빼내었건 간에 정치적 훼절임은 부인될 수 없다. 정당 선택의 자유를 원용할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기가 심히 어렵다. 정치개혁을 말하는 대통령 입장에서 훼절에 그토록 애정을 갖는 것은 도의성과 무관하지 않다. 셋째는 대통령의 오기다. 한나라당이 자극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제17대 국회 개회벽두부터 야당과 격돌을 불사해가며 굳이 김 전지사를 내세우겠다는 것은 마치 오기를 보는 것 같아 민중이 보기에 개운치 않다. 그동안 변화를 기대하였던 국민의 여망에도 합치되지 않는다. 국무총리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신문 보도가 대통령의 진의를 제대로 전한 게 못된다고 믿고 싶다. / 임양은 주필

성(性), 즉 섹스(sex)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실존상 주요 동인(動因)이자 존재의 중심이다. 보이지 않는 삶의 안내자이며 죽음에 대한 삶의 승리이기도 하다. 육체는 죽지만 섹스를 통해 유전자의 불멸성을 약속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섹스를 단지 성적 욕망의 분출로만 이해하지만 사실은 존재의 근본이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그 명칭을 고대 결혼식에서 불렀던 노래에서 따왔다. 찬송가를 뜻하는 ‘Hymn’과 처녀막을 뜻하는 ‘Hymen’은 그 어원이 동일하다. 그만큼 섹스는 성(聖)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려라 하시니라” 성경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간은 이 창세기의 구절처럼 만물의 영장으로 지구에서 살아왔다.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테크놀로지(기술)를 가공할 만큼 발전시키면서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그러나 하늘이 두 쪽 나도 인간이 동물과 똑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섹스다.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섹스라는 숙명이다. 섹스는 인간유전자의 불멸성을 확보해주는 수단인 동시에 남녀의 관계를 아주 친밀하게 이어주는 유대의 끈 역할을 한다. 지적인 교류와 성적인 교류(성교)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먹은 사과는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열매’이다. 이 열매를 먹음으로써 이브는 선과 악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지식을 의미하는 ‘Da at’는 동시에 섹스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섹스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성의 상품화가 극도로 번창하고 있으며 파괴·오염되는 환경문제는 정상적인 유전자 전승을 가로 막고 있다. 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인류의 눈앞에서 섹스를 위협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성의 상품화는 결국 섹스마저 병들게 한다.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자살론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애타적 자살, 자아적 자살, 아노미(anomie)적 자살, 그리고 숙명적 자살이다. 사회통합이 너무 강할 때는 애타적 자살이, 사회통합이 너무 약해서 개인간 결합이 너무 느슨해질 때에는 이기적 자살이 많이 나타난다. 사회규범이 아예 상실돼 있는 경우에는 아노미적 자살이 많고, 과도한 억압이나 희망의 상실로 좌절이 클 때 숙명적 자살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사회통합력이나 사회규범 및 좌절의 강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믿는 종교, 연령, 남녀, 주거지(도시와 시골), 그리고 계절에 따라 자살의 빈도는 달라진다는 것이 자살론의 골자다. 뒤르켐의 이론으로 보면 지금 현재 우리나라 자살의 문제는 주로 이기적, 아노미적, 숙명적 자살의 유형이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 사상 가장 유명한 자살자는 예수라는 얘기가 있다. 인류에 숭고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갔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는 자살을 애도하고 동정하면서도, 조물주나 조상에게 죄를 짓는 사악한 행위로 여기는 종교적 인식을 함께 갖고 있다.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이 겉보기에 자기파괴지만, 자기 정체성 또는 자아를 지키려는 궁극적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 자기 인격이 말살된 것이란 두려움으로 심리적 공황에 직면한 사람의 절박한 방어행동이라는 설명이다. 달리 정신적 말살을 피할 길이 없다는 좌절감에서 스스로 정신보다 육체의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2003년 한 해에 자살자수가 1만3천명을 넘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45분에 1명씩 자살을 하고 있단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 4년간(2000~2003)의 자살 기도 혹은 자살미수 경험자 수가 30만~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동반자살이라는 특이한 자살유형을 가진 나라다. 부모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 죽은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힌다./ 임병호 논설위원

허재 선수

지난 일요일, 농구귀재 허재 선수는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가진 은퇴 경기를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났다. 지금쯤 무슨 상념에 젖어 있을까. 경기마다 피마르도록 집착해야 했던 승부욕에서 해방된 것을 시원하게 여길 것인지, 아니면 땀 배인 코트에 아직도 못다한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인지. 무려 4천여명의 팬들, 그것도 10대에서 40~50대까지 폭넓은 팬들의 열광적 환호성 속에 은퇴경기를 치르고 선수생활을 마감했지만 만감이 교차되는 상념이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한국 남자농구에서 이충희 선수에 이어 대들보 역할을 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허재 선수, 그도 이젠 어느덧 설흔아홉이 됐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농구볼을 쥐어 용산고등학교 주니어 시절에 벌써 시니어 선수들을 앞지르며 두각을 드러낸 한국농구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허재 선수의 선수생활은 언제나 자만심을 가질 줄 몰랐던 겸손함이 특징이다. 스타덤에 오를 수록이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 했다. 이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맞은 종아리 매를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도 맞은 적이 있다. 선수생활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것 같으면 아버지는 영락없이 회초리를 들곤 했다. 허재 선수는 이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오는 팬레터도 제대로 받아볼 수가 없었다. 코트장 밖의 인기보다는 코트장 안의 실력이 자신의 생명임을 그의 아버지는 늘 일깨워주곤 하였다. 운동선수들에게 몸은 곧 자산이다.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게임의 질을 높이고 선수생활의 수명을 늘려 준다. 그가 마흔이 다 되도록 코트를 화려하게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 관리를 스스로가 그만큼 엄격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허재 선수는 선천적 감각과 순발력 등을 타고나 스타플레이어의 자질을 지녔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자질을 갈고 닦아 기량을 드높인 것은 부단한 후천적 노력임을 모든 운동선수들은 본받아 명심해야 한다./ 임양은 주필

정학.퇴학제도

그 여선생님은 불량학생 서클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느 학생이 ‘×××’이라고 제의하는 것을 “무슨 서클 이름이 유치하냐? 차라리 ‘불새’라고 하라”고 했던 것이다. 여선생님은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당구 같은 것도 같이 치곤 했다. 어쩌다가 며칠 학교에 안나오는 학생 집에 가보면 동생들과 라면 끓여 먹는 것을 보고는 개밥 그릇처럼 지저분한 그릇에 같이 퍼담아 함께 먹기도 했다. 여선생님은 교무회의 때마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도 퇴학은 안됩니다. 제가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불량학생들을 감싸는 바람에 멸시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같은 근질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 서클은 해체되고 학생들은 어려웠지만 학교에 다시 정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교도소에나 가 있을 제가 지금은 군대에서 곧 제대할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성공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 여선생님이 이런 제자의 편지를 받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라고 여선생님은 말했다. 그것은 제자의 편지가 준 감동도 감동이지만, 불량학생들을 감싼다고 동료 교사들로부터 받았던 모진 서러움이 새삼 가슴을 치밀며 복받쳤기 때문이었다고 돌이켰다. 도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십수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에 일선 기자로 나갈 때 직접 들어 확인했고 또 기사화하기도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오는 2학기부터 정학 및 퇴학제도를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신중을 기한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학이나 퇴학처분은 교육의 포기다. 물론 선량한 학생들을 위한 불량학생의 격리라는 취지를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얼마나 학교가 과연 최선을 다 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까맣게 잊었던 그 여선생님 얘기가 가슴에 다가온다./ 임양은 주필

화성행궁의 御井(어정)

수원 시가지 복판에 우뚝 솟은 팔달산은 원래 탑산이라고 하였다. 여느 산처럼 산맥과 통하지 않은 산으로 평지에 탑처럼 세워져 있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고려 유신으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이고가 탑산 기슭에서 자연을 벗삼아 만년을 보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수차 이고에게 벼슬을 제수코자 했으나 이고는 끝내 사양하였다. 이성계는 할 수 없어 이고가 벗삼아 지내는 탑산을 그려오도록 화공을 보내어 그려온 그림을 보고 “과연 사망팔달(四望八達)한 명산이로다”라고 감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팔달산으로 부르게 됐다.(水原市史) 팔달산의 약수가 유명한 것은 좋은 토양의 암반 지층 때문이다. 사시사철 맑은 물을 지금은 복개된 남창동 지천을 통해 수원천으로 흘려 보냈다. 조선조 정조대왕의 지방별궁인 화성행궁에 임금의 전용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었을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 화성행궁의 화령전(華寧殿)과 불과 10m 거리의 팔달산록에서 화강암으로 된 가로 세로 90㎝의 어정을 발견한 수원시가 이 우물 물을 일반인들에게 관광상품화 한다고 한다. 이미 수질검사와 함께 어정 복원을 다 마친 것으로 안다. 화성행궁은 군왕이 집무하는 지방별궁으로는 전국에서 유일무이하여 단 하나뿐인 곳이다. 수원시가 1단계 복원사업을 마쳐 웅대한 옛 모습을 드러내어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사극(史劇)의 야외 촬영장으로도 뜨고 있다. 발견된 어정 또한 팔달산의 약수임에 틀림이 없지만 임금님이 마시던 전용 우물인 점에서 관광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수원시는 어정의 고증을 더욱 객관화하는 노력으로 정조대왕이 잡수시던 우물 물을 완전히 브랜드화하길 기대한다. 그 분의 체취를 느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임양은 주필

정치

한자 ‘줄 여(與)’는 4개의 손, 즉 두 사람이 어떤 물건을 주기 위해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갑골문을 보면 이해가 간다. 따라서 ‘여’의 본뜻은 ‘주다’이다. 여신(與信), 대여(貸與), 수여(授與)가 있다. 비슷한 글자로 4개의 손이 수레(車)를 잡고 있는 것이 輿(가마 여), 한마음 한 뜻(同)으로 물건을 들고 일어서는 것이 興, (일어날 흥)자(字)다. 또 擧(들 거)는 興에 손(手)하나가 더 있는 글자이므로 두 사람 이상이 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주고 받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사이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대상은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된다. 주는 사물도 재화 같은 구체적인 물건이 있고 또 격려, 위안과 같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는 ‘함께’ ‘친구’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들 야(野)’는 마을(里)에서 좀 떨어진 (予)곳으로서 본디 ‘들’을 뜻한다. 그 곳은 논밭과 숲이 있어 사람이 사는 마을 보다는 거칠다. 그래서 ‘거칠다’ ‘덜 성숙된 곳’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성숙과 미숙의 구별은 대상에 따라 다르다. 사람의 경우, 어른이 아이보다는 성숙하겠지만 문무백관 보다는 미숙하지 않나 싶은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여기에서 야는 일반 백성들이 사는 민간(民間)을 뜻하게도 되었다. 그래서 민간에 있는 것을 재야, 그런 사람을 야인, 정계를 떠나 민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야다. 여야는 여당과 야당의 준말이다. 여당이란 곧 집권계층과 ‘친구’, ‘우호적인’당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당을 뜻한다. 야당은 국정에 참여하지 않아 집권 계층에 대하여 비판과 함께 다소 ‘거친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여당이라고 정부에 대해 무조건 ‘지지’나 하고, 반대로 야당이라고 무조건 ‘공격’만 한다면 올바른 정당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이 아직 풀리지 않는 것은 정치를 잘 모르는 탓이다. 여소야대나 여대야소나 본분을 망각하면 공멸한다. 17대 총선 이후 ‘여대’가 된 열린우리당이 들 떠 있는 인상이다. 자제를 당부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마니아(mania)

17세기 조선 선비 김득신은 무식(?)한 책읽기로 인구에 회자됐다. 그의 ‘독수기(讀數記)’를 보면 ‘백이전’을 11만3천번, ‘노자전’을 2만번, ‘제책’을 1만8천번, ‘장군묘갈명’을 1만3천번 하는 식으로 무려 36편의 고전을 1만번 이상 읽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장자’ ‘사기’ 등은 1만번을 채우지 못해 기록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박제가의 ‘백화보서(白花普序)’에는 꽃에 미쳐 1년 내내 꽃만 그렸다는 ‘화훼 마니아(mania)’ 김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표구에 미쳐 하루 종일 옛 그림 수선에 매달린 방효랑, 좋은 돌만 나오면 벼루를 깎은 정철조, 수석에 미쳐 돌을 주우러 돌아다닌 이유신,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담배에 관한 기록을 주제별로 모은 ‘연경(煙經)’의 저자 이옥, 비둘기 사육에 열중해 ‘발합경’을 남긴 유득공, 앵무새 이야기를 집대성한 이서구도 있었다.이렇게 무언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열정을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한다. 즉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세상은 재주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주류에 편입하지 못했던 경계인의 생애는 불행했다. 산수와 기하학에 재능을 보여 과거 시험없이 관상감에 발탁된 김영은 해시계 지평일구를 만드는 등 천재를 과시했지만 시기와 모략에 생을 마쳤다. 과거 시험 때마다 급제했던 노긍은 과거 시험장에서 글이나 팔아 먹으며 식객으로 전전하다 세상을 떴다. 허균은 새 세상을 꿈꾸다 능지처참을 당했고, “논어덕에 미치지 않았을 수 있었다”며 고전읽기를 생의 목표로 삼은 이덕무는 영양실조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었다. (돈을 꿔 달라는 말 대신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이. 여기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떠하실까?”라며 술병까지 딸려 보낸 박지원의 편지에 (이것 저것 다 좋은 것은 없다는 뜻의)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라며 돈을 보내되 술병은 채우지 않은 친구 박제가의 답신도 있었다. 18세기 지식인들의 삶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21세기라는 오늘날이 인적·물적·심적으로 너무 삭막한 탓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결혼비용

한국소비자 보호원이 전국의 신혼부부들과 혼주 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결혼비용이 9천만원이었다고 했다. 서울·부산 등 5대 도시에 국한한 조사여서 전국의 평균치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웬만한 가정이라도 비명이 나올 금액이다. 응답자의 60% 이상이 결혼비용을 몽땅 부모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통계도 착잡하다. 부모 도움 없이 검소하게 결혼준비를 하는 젊은이들에겐 허탈감을, 자녀의 혼사를 앞둔 부모들에겐 좌절감을 안겨주는 조사결과다. 작년의 조사이니까 지금은 더 많아졌을 것이다. 결혼비용 내역을 보면 사회·경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택자금 부담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예식·피로연·신혼여행비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도 고비용의 원인이다. 혼수도 문제다. 김수현씨가 쓴 TV드라마 ‘혼수’는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집 여자가 만나 사랑하지만 결국은 혼수문제로 이별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연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다. 현실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다. 혼수 제대로 못해와 매일 구박 받는 며느리, 혼수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 못한 연인, 또 자녀의 혼수비용을 장만하느라 아파트에서 전세로 이사간 부모의 이야기는 허다하다. 혼수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강도짓을 하다 붙잡힌 예비신부도 있었다. 부잣집으로 시집갈 경우 기본적인 혼수에다 시어머니 밍크코트나 명품 핸드백은 기본이라고 한다. 작년 9월 신은경 영화배우와 연예기획사 김정수 대표는 5천평에 달하는 식장에서 하룻 밤 1천500만원 짜리 호텔 속의 호텔방에서 지냈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팬들로부터 부러움보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호화결혼식에 비하면 9천만원 정도의 결혼비용은 검소(?)한 편이다. 결혼비용과 혼수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렇게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수비용 받아 창업해서 돈 벌며 혼자 살겠다는 여대생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시집 안간다는 딸을 칭찬할 수는 없다. 미혼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슴만 타고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용천 피해 주민들

“미국(놈)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줄 알았다”고 한다. 어느 외국 구호단체의 현지 방문자는 한 용천 주민이 말한 열차폭파 사건의 발발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병상이 모자라 복도에까지 중상자들이 널려있다고 한다. 화상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2차 감염이 우려될 지경이라고 한다. 이보다 심한 비극적 참상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폐허의 도시에 유령의 그늘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밀물처럼 일고 있다. 의약품, 의료지원, 생필품 등 뭣 하나 다급하지 않은 게 없을 것이다. 부상자와 이재민들에게는 구호의 손길이 한시가 급할만큼 절박할 것이다. 북측은 엊그제 이쪽에서 제시한 병원선 등 의료지원을 사양했다. 5t 트럭으로 30대 분량인 구호품 전달도 육로 대신에 선편으로 보내라고 했다. 판문점과 개성, 평양을 거치는 육로로 가면 한나절이면 현지에 닿을 구호품이 해상으로 가면 며칠이 걸릴 지 모른다. 이 무렵의 서해는 바다 기상마저 악화되어 배가 당장은 뜰 수 없는 상태였다. 인천항에서 남포로 가 남포에서 용천으로 물자가 수송되려면 잘 해야 오는 30일이나 피해 현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데도 굳이 북측은 육로 수송을 거부하고 의료진료팀 지원을 마다 하였다. 그 이유가 육로 수송은 연도의 민간인들에게 노출되고 의료팀 지원은 피해 현지인과의 접촉을 꺼린 데서 연유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하긴, 북측은 국제적십자연맹 관계자들이 용천역 열차폭파 사고 현장을 조사한 지난 24일 당일 밤에도 조선인민군 창건 72주년을 기념하는 4·25경축야회에서 댄스파티를 즐겼다. 조선중앙통신은 ‘인민무력부 일꾼들도 춤판에 뛰어들어 병사들과 함께 춤을 추며 야회 분위기를 돋우었다’고 보도했다. 자유민주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일들이 많지만 피해 주민은 동포다. 동포의 불행을 돕는 동족애 하나만으로 체제를 탓할 것 없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임양은 주필

또 말썽이 된 새 번호판

자동차 번호판은 책임 소재를 명시하는 공식 기호다. 건설교통부는 이같은 자동차 번호판의 지역 명기가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역명을 없앤 새 번호판을 만들었다. 한데, 이게 단 며칠이 못가 사단이 벌어졌다. 디자인이 잘못됐다는 네티즌들의 항의로 디자인 공모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기왕이면 디자인이 보기에 좋아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번호판은 모양새보다는 번호 식별이 쉬워야 하는 것이 제 기능이다. 이래 저래 말썽이던 자동차 새 번호판이 또 말썽이 되었다. 전국에는 주요 도로에 2천190여대의 무인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이 무인카메라가 새 번호판의 번호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역 번호판이 아니고 전국 번호판인 새 자동차 번호판을 단 차량은 81만여대로 전해졌다. 이들 차량의 새 번호판엔 무인카메라가 눈 뜬 까막눈이 된 이유는 새 번호판을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 안됐기 때문이다. 즉 무인카메라가 위반 차량의 영상을 각 지방경찰청 영상 시스템으로 전송해도 종전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새 번호판의 숫자 등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새 번호판을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전문 업체에 의뢰해 일부 지역은 설치하였으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어 애로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당초 건설교통부의 잘못에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 어떤 시책이든 실행 전 입안단계의 검토와 실행 후 효과단계의 확인을 거치는 것이 행정의 기본 요건인 것은 다 아는 상식이다. 건설교통부는 입안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도 하지 않은 데다가 효과단계에서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경찰 등 관련기관과 협조체제를 좀 더 가졌더라면 이같은 착오는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자동차 번호판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건설교통부의 변변치 않은 책상머리 행정으로 국민만 골탕 먹는가 보다. /임양은 주필

태양절

태양절, 김일성 북 주석의 생일을 기념하는 최대명절이다. 올해 92회 생일은 1994년 사거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성대하였다. 평양 만수대엔 김 주석이 군마를 타고 한 손에 쌍안경을 든 동상이 새로 건립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주석의 생가에서 이름을 딴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 김일성화 전시회, 평양시 청년학생경축대회,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제 등 이밖에도 다채로운 축하행사가 있었다. 태양절을 앞두고 또 인민군 장성급 73명을 대거 승진시켰다. 추모를 겸한 축제 성격의 이날 행사에는 김 주석 생전에 교분이 두터웠던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부부 등 40여국의 대표를 초청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아직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식 주석이다. 그리고 김 주석의 아들인 김정일 장군이 국방위원장으로 혈통승계에 의해 실권을 잡고 있는 가운데 군 우위의 선군정치 사상을 체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평양 정권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중국의 사회주의와 판이하다. 공산주의 선언과도 거리가 멀다. 종파적 수정주의인 김일성주의가 ‘우리식 사회주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 보호를 위한 폐쇄성의 옹호 수단이다. 김일성 주석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남반부 해방전쟁을 위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총 공격명령을 내린 그 당시의 내각 수상이다. 피비린내 나는 3년여의 동족상잔을 벌였지만 그래도 동포의 미래를 위해 아픈 상처를 접어둔 채 대화를 가져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문제는 남쪽 내부에 있다. ‘만경대 정신을 이어 받자’는 사람이 활개치는 사회가 된 것은 뭐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태양절 행사를 마치고 극비속에 평양역을 출발, 중국을 다녀왔다. 태양절은 제17대 국회 총선을 치른 바로 지난 15일이다. 룡천역 열차 대폭파 참사가 김 위원장이 귀국하던 날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임양은 주필

無錢有恨

소설가 춘원 이광수(李光洙·1892~?)는 평북 정주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뽕나무 잎을 도둑질해서 키웠다. 그나마 열한 살 때 콜레라로 부모를 잃었다.그는 나 이 어린 여동생 둘을 거느린 소년가장이었다. 소설가 채만식(蔡萬植·1902~1950)은 자수성가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엔 어려움 을 모르고 살았으나 말년에는 수시로 전당포에 물건을 맡겨야 할 만큼 생활고를 겪었다. 친구의 아들에게 원고지 스무권만 보내달라고 부탁했는가 하면 아이들에게는 자기 양복 을 팔아 생활에 보태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채만식은 말년에 자신이 죽으면 상여를 들꽃으로 덮고 화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소 하얀 마름꽃을 좋아해 그의 호는 백릉(白菱)이었다.그는 유언대로 들꽃에 묻혀 저세상으로 갔다. 가난한 작가 이효석(李孝石·1907~1942)은 경성 토호 집안이었던 처가에 떳떳한 모습 을 보여주고싶어 백방으로 직업을 구했다. 중학시절 은사가 주선해준 취직 자리는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였다.문인들의 작품을 사전 검열하는 곳이다.동료들의 지탄이 빗발쳤다. 이효석은 열흘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필승아,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먹어보겠다.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돈,돈,슬픈 일이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 김유정(金裕貞·1908~1937)의 편지다. 1930년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삶은 거개가 가난했다. 얼마 전 ‘돈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는 내용의 詩를 읽었다.‘돈,돈은 슬픈 일이다 ’라는 김유정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렸다.예나 지금이나 돈이 사람을 울린다.김유정은 돈이 없어 일찍 죽었다.무전유한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화성행궁 御井’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 앞 공원 경내에 있는 조선 초기의 어수우물(御水井)은 깊이 8m, 지름 1.5m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다. 이 우물은 둥근 모양새로 우물 속은 온통 돌벽으로 쌓아 올렸는데 화강석은 정방(正方) 또는 장방형으로 마름한 돌이 쓰여졌다. 석축은 각 단마다에 반월형의 마름돌을 원형(圓形)으로 맞추어 다른 석축이 튼튼히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우물꼭대기 땅바닥 부분에는 네모진 장대석(長臺石)이 정(井)자형으로 놓여 있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이 종묘에 전배할 때면 이 우물물을 마시고 손을 적시었으므로 어수우물로 봉해져 내려왔는데, 그 석축 방법이라든지 석재가 닳고 닳은 상태로 미루어 그 연륜이 매우 긴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수도시설이 완비된 오늘날에 모든 우물들이 메워져서 그 자취를 감춘 중에 유독 이 우물만은 심한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수원에서도 조선조 제22 정조대왕(1752~1800)이 마시던 어정이 발굴돼 올 상반기 중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MBC-TV의 인기드라마였던 ‘대장금’ 촬영지인 화성행궁(華城行宮)과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사이에서 발굴한 이 어정은 가로 세로 각 90㎝이며 깊이는 5.4m이다. 우물안은 40여㎝ 두께의 화강암이 14층으로 쌓여있다. 이 어정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사도세자) 능 참배차 수원에 와서 화성행궁에 머물 때는 어수로, 정조대왕이 승하한 이후에는 제수(祭水)로 사용됐다고 한다. 우물안의 물을 최근 수원시 상수도사업소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일반세균 암모니아성질소, 대장균, 맛, 색도, 냄새 등 전체 46개 항목에서 모두 합격통보를 받았다. 3년여 전 발굴했다는 이 어정을 지금에서야 공개하는 것이 아쉽지만 관광객들이 화성행궁, 화령전 등을 둘러보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관광상품화 하기로 했다는 수원시의 계획은 그럴 듯 하다. 200여년 전 우물의 수심이 4.4m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수원명소가 될 이 어정을 ‘화성행궁 어정’으로 명명했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자장가

“자장자장 자는고나 / 우리애기 잘도 잔다 / 은자동이 금자동이 / 수명장수 부귀동이 / 은을 주면 너를 살까 / 금을 주면 너를 살까 / 나라에는 충신동이 / 부모에게 효자동이 / 형제간에 우애동이 / 일가친척 화목동이 / 동네방네 유신동이 / 태산같이 굳세거라 / 하해같이 깊고 깊어 / 유명천하 하여보자 / 잘도 잔다 잘도 잔다 / 두등두등 두등두등 / 우리애기 잘도 잔다” 파주 지방에 전승되는 ‘자장가’다. 자장가는 아기에게 사설내용을 들려주기 위해서 어른들이 부른다는 점에서 어린이들만이 부르는 전승 동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심청가’나 ‘옹고집타령’에도 삽입가요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장가’ 속의 사설 속에는 자식이 금은보다도 소중하다는 어머니의 애정과 더불어 아기가 훌륭히 자라서 나라에는 충신 되고 부모에게 효자 되며 형제간에 우애있고 일가친척과 화목하고 동네사람과 신망이 있는 사람이 돼라는 간절한 기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애정과 기대는 상투구절(常套句節)처럼 전국의 ‘자장가’에 고루 스며 있다. 울기만 하는 앞집의 아기와 대비하면서 잘 자는 아기를 칭찬하기도 하고, 아기가 잘 수 있게 앞집 강아지도 짖지 말고 뒷집 닭도 울지 말도록 당부하기도 한다. ‘자장가’에는 아기가 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도 그윽한데 지방마다 비유가 색다르다. “둥실둥실 모개야 아무락구 긁아다오 / 둥굴둥굴 모개야 개똥밭에 궁글어도 / 아무락구 긁아다고”(경상북도 봉화) “우리애기 하룻밤자믄 / 물웨크듯 커감져 / 우리애기 이틀밤 자믄 / 벙에 가찌 커감져”(제주도). 부귀나 명예보다 모과(모개)·오이(물웨)·흙덩이(벙에)처럼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바라는 서민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 중 대부분이 자장가를 육성으로 부를줄 모른다고 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성장한다고 하는데 자장가를 듣지 못하는 요즘 아기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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