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애타적 자살, 자아적 자살, 아노미(anomie)적 자살, 그리고 숙명적 자살이다. 사회통합이 너무 강할 때는 애타적 자살이, 사회통합이 너무 약해서 개인간 결합이 너무 느슨해질 때에는 이기적 자살이 많이 나타난다. 사회규범이 아예 상실돼 있는 경우에는 아노미적 자살이 많고, 과도한 억압이나 희망의 상실로 좌절이 클 때 숙명적 자살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사회통합력이나 사회규범 및 좌절의 강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믿는 종교, 연령, 남녀, 주거지(도시와 시골), 그리고 계절에 따라 자살의 빈도는 달라진다는 것이 자살론의 골자다. 뒤르켐의 이론으로 보면 지금 현재 우리나라 자살의 문제는 주로 이기적, 아노미적, 숙명적 자살의 유형이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 사상 가장 유명한 자살자는 예수라는 얘기가 있다. 인류에 숭고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갔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는 자살을 애도하고 동정하면서도, 조물주나 조상에게 죄를 짓는 사악한 행위로 여기는 종교적 인식을 함께 갖고 있다.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이 겉보기에 자기파괴지만, 자기 정체성 또는 자아를 지키려는 궁극적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 자기 인격이 말살된 것이란 두려움으로 심리적 공황에 직면한 사람의 절박한 방어행동이라는 설명이다. 달리 정신적 말살을 피할 길이 없다는 좌절감에서 스스로 정신보다 육체의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2003년 한 해에 자살자수가 1만3천명을 넘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45분에 1명씩 자살을 하고 있단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 4년간(2000~2003)의 자살 기도 혹은 자살미수 경험자 수가 30만~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동반자살이라는 특이한 자살유형을 가진 나라다. 부모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 죽은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힌다./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4-05-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