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

시신기증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어떤 보상없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하여 죽은 후 몸을 내놓는 일이다. 시신기증은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훌륭한 의사를 만들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기증인의 훌륭한 뜻은 사회를 맑게 하고 그 뜻을 이해한 유가족들은 별세한 이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또 사회적으로는 묘지를 없애 우리 산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기여한다. 시신기증은 단지 교육에 필요한 시신부족을 해결하는 데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의대생들에게 의사로서 필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신기증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의사양성에 밑거름이 되어 사람의 건강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는 고귀한 일이다. 시신기증 절차는 우선 생전에 유언을 하면 의과대학에 시신기증 유언인으로 등록된다. 장래에 유언인이 세상을 떠날 때 유가족이 관계기관으로 연락하면 필요한 서류가 발송된다. 그리고 관계기관은 시신을 의과대학으로 이송함으로써 시신기증 절차가 완성된다. 시신기증 서약은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연령에 많은 것에 대한 제한은 없다. 시신기증 의사가 있을 경우 필요한 서류는 본인이 서명 날인한 유언서, 가족동의서, 유언인과 가족 관계를 증명하는 주민등록등본 또는 호적등본, 증명사진 2장이다. 하지만 시신기증을 취소할 경우 언제든지 연락하면 기증서약은 무효가 된다. 한때 ‘휴거’ 소동으로 기독교계에서는 시신기증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기독교신자들이 믿는 ‘부활’은 소위 썩어 없어질 육신의 부활이 아님을 잘 모르는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현상이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육신을 의학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총체적 사랑의 실천이다. 비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의학교육 중 해부학 실습의 중요성을 간과한 사람이라면 시신기증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사랑의 실천운동인지를 깨달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죽어 없어질 한 육신이 질병으로 숨져 가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의학교육의 자료가 될 때 성경이 말하는 ‘한알의 밀알이 죽어야’의 진리가 이뤄질 수가 있는 것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여성예술가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은 처절한 드라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음울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겨내야만 했던 한 많은 삶이 만나서 만들어진 음색이었다. 1915년 12월 19일 파리에서 출생한 에디트는 떠돌이 곡예사인 아버지와 유랑극단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어린 에디트는 모자를 들고 군중들에게 돈을 걷었다. 소녀시절 집을 나온 에디트는 18세 때 한 남자를 만나 딸을 낳았으나 두살 때 뇌막염으로 죽었다. 에디트의 재능은 카바레 가수 시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디트가 돈과 명예를 얻자 그녀의 주변에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남자들의 이기심을 순수한 사랑으로 착각한 에디트는 심각한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그녀의 노래만은 유럽대륙을 넘어 전세계를 울렸다.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1926년 6월25일 오스트리아의 클라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소녀시절 전쟁으로 인한 수 많은 죽음과 자신의 조국이 독일에 합병되는 것을 목격했다. 예민한 감수성의 그녀에게 글쓰기는 이런 부조리를 극복하는 구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월주의에 빠져있던 남성중심의 평단은 그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주변의 남자들은 그녀를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만 대했다. 그녀는 세상과 전쟁을 선포하 듯 이런 시를 남겼다. “나는 항상 나다/어떤 것이든 나를 휘게 하려 한다면/차라리 나는 부러지겠다/냉혹한 운명이 닥쳐오거나/또는 인간의 힘이 밀려오면/여기에, 이렇게 나는 있고 이렇게 나는 머무른다/그래서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머무른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직 하나다/나는 항상 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은 어느 집단에서나 소수자였다.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예술가들은 자기자신은 물론 세상과 싸워야 했다. 특히 남성사회에 맞선 여성예술가들은 한국의 라혜석처럼 불꽃처럼 살았다. 그래서 더욱 위대해 보인다. /임병호 논설위원

성매매 특별법

성매매 강요 포주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성을 산 남성은 실형과 함께 사회봉사명령을 받게된 ‘성매매특별법’은 이외에도 성을 판 여성, 심지어는 성매매 장소를 알선한 사람에게도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 아마 이슬람교 나라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엄벌주의를 채택한 성매매 관련 법률일 것이다. 여기에 단속나선 경찰청은 성파파라치까지 장려해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까지 주기로 했다. 특별법에 겹친 성파파라치 권장으로 예상됐던 역작용이 나타난 게 어제 본지 사회면에 보도된 ‘주택가로 숨어든 성매매’ ‘단속피해 인터넷·원룸이용 개인영업 급속확산’ ‘미성년자 낀 조직까지 등장 성매수 남성협박 금품갈취’ 제하의 기사 내용이다. 집창촌에서 개인영업 형태로 바뀐 성매매 행위가 언제 동네 골목이나 자기가 사는 옆집에서 있을지 모를 지경이 됐다. 집창촌이 문을 닫아 성매매를 찾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성범죄도 우려된다. 서울에서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자살을 기도한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성매매를 생존권 보장으로 내걸고 자살을 기도할만큼 가치있게 볼 수는 없다. 없어져야 하는 것이 백번 옳다. 그러나 이도 수요와 공급이 있는한 없어지지 않는 것이 성매매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가 태고쩍부터 있어온 창녀일 지 모른다. 집창촌 윤락가들이 좀처럼 전업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다가 좀 지나면 단속이 제풀에 꺾일 것으로 보는 기대감인 것 같다. 하긴, 경찰력이 무한정 성매매 특별단속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같은 성매매 단속의 경찰력 투입을 강력범 검거에 투입하는 게 더 민생치안을 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과 단속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집창촌은 이제 사양업종이다. 가만 놔두어도 차츰 쇠퇴할 것을 너무 법과 단속에 매달려 순기능을 잃는 것 같다./임양은 주필

자원 강등입대

군대는 계급과 서열이 조직의 근간이다. 지휘명령 계통의 생명이다. 동기생일 지라도 계급차이가 있으면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같은 계급 간엔 군번 빠른 군인이 선임자가 된다. 이러므로 진급은 군에선 더 할 수 없는 영예다. 병장이 되면 만기제대하는 의무 복무의 병사들도 한 계급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하물며 직업군인인 부사관 이상은 계급이 생명 다음으로 소중하다. 이처럼 소중한 계급을 낮춰가며 직업군인으로 재입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희한하다. 이토록 희한한 사람들이 올들어만도 지난 7월 말까지 120명인 데 연말까지 250명쯤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육군부사관학교에 재입교를 지원하는 이들은 중사·상사 출신들이며 그 중에는 장교 출신도 있다는 것이다. 장교나 상사·중사로 있다가 전역한 뒤에 부사관학교에 들어가 전 계급보다 낮은 하사로 임관받아 직업군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사의 초임 연봉은 1천730여만원에서 1천900여만원이다. 또 부사관에겐 주택이 제공된다. 일반 공무원에 비하면 8·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처우라 할 수 있다. 평생에 군대는 한 번만 가는 줄 알았던 입대를 이처럼 두 번이나 하는 것은 경제난이 이유다. 중사로 제대한 어떤 사람은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개업해 사업의 꿈을 펼쳤으나 장사가 안되어 실패했다. 빚만 걸머진 채 직장도 구할 수 없어 부사관학교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는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엔 노숙자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이 정권의 실정은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도 도시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그 무서운 IMF도 지금에 비하면 약과라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군의 최고 영예인 계급을 자진해 강등해서라도 직업군인이 다시 되기 위해 부사관학교를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임양은 주필

공장보다 골프장

민원사무의 간소화는 오랜 현안이다. 현안인 데도 잘 안 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 기업 창업이나 공장 신축을 들 수 있다. 민원인이 찾아가도 반겨주지 않는 유관기관이 많고 중복된 첨부서류도 많고 도장 받는 곳도 많다. 시일을 마냥 빼앗기며 여기 저기를 헤매다 보면 그만 지쳐버릴 정도다. 말로는 기업하기 좋은 행정환경을 만든다고 한다. 늘 말 뿐, 기업하기 어려운 행정환경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창업 민원인을 칙사대접 하는 나라도 있다는 데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푸대접이다. 골프장 건설이 쉬워진다고 한다. 내년부턴 골프장 면적 제한이 폐지되고 교통영향평가도 축소되고 구비서류도 대폭 간소화한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세운 ‘골프장 건설규제개선방안’이란 것이 이런 골자로 돼 있다. 절차 간편의 예를 들면 도시관리계획수립 단계에서의 시·군의회 의견청취제를 없앤다는 것이다. 만약 이 방안이 확정되면 웬만한 야산은 깎이고 헐려 온통 골프장으로 뒤덮일 것 같다. 환경영향평가를 줄이고 지방의회 권한을 무시해가며 만든 이른바 ‘골프장 건설규제개선방안’의 명분이 또한 가관이다. 주5일 근무제에 따른 레저수요 흡수 등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정신나간 소리다. 지금이 과연 그처럼 한가한 소릴 할 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주인이 배 부르니까 머슴 배 곯는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배 부른 자기네들이 골프에 홀리다 보니 배 곯는 민중도 골프에 미친줄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정부는 해외골프관광을 또 말하지만 해외골프관광의 외화 유출 방지엔 다른 대책강구가 가능하다. 하필이면 모처럼 만든 규제개선이란 게 기업 규제 완화가 아닌 골프장 규제 완화인 것은 본말이 뒤바뀌었다고 보아 유감이다. 레저도 좋고 노는 것도 좋지만 성장이 우선이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씀씀이가 더 헤퍼서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간곡히 당부한다. ‘골프장 건설규제개선방안’은 철회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유보하는 게 마땅하다./임양은 주필

매장문화재 발굴

‘발굴전문법인’은 전문 연구원들이 직업적으로 개발대상 터의 문화유산 발굴·연구만을 전담하는 재단법인을 지칭한다. 1990년대 매장문화재 발굴수요가 급증하자 대학 발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고고학계 여론에 따라 생겼다. 1994년 영남고고학회에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문화재청이 1995년 문화재보호재단 발굴조사사업단과 2000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을 만들어 이 대열에 끼어들었고 2003년 이후엔 무려 7곳의 법인이 신설됐다. 올해만 고려문화재연구원, 우리문화재연구원 등 3곳이 신설 인가를 받아 현재 법인수는 26곳이나 된다. 올 상반기 발굴건수를 봐도 전문법인이 전체 504건중 가장 많은 390건을 차지하고, 발굴비(582억여원)도 대학박물관(51억여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구제발굴(매장문화재)은 만년 흑자를 보장하는 사업이다. 발굴 법인이 개발업자로부터 수주하는 사업총액은 100억에서 50억, 적어도 20~30억에 이른다. 보통 1천평당 발굴단가는 1억원 선으로 평당 만원꼴인데 총액 가운데 10~20%가 학술료, 재경비 등의 이윤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지가 맞는 조사용역 자체가 몰려들어와 일감이 많고 저임금 비정규직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문적 윤리의식과 활동기준이 명확지 않으면 언제라도 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택지개발과 각종 건설공사로 인해 전국의 땅이 곳곳에서 파헤쳐져 발굴민원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기관 통·폐합 등을 시도할 수도 없다는데 발굴전문법인의 문제가 있다. 법인신청 인가때 조사원 경력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것도 보완책이겠으나 기관의 공익성 확보에 무관심한 채 법인난립을 방관하거나 덩달아 뛰어 들었던 일부 학자들이 사후약방문식으로 비난하는 행태는 옳지 못하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매장문화재센터 교육위원회에서 구제발급을 행하는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국가에서 발굴에 관여하는게 타당하다. 매장문화재 발굴이 문화유적 연구·보전이 목적이어야 하지 돈벌이 하는 업체의 일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장애인 스포츠’

9월29일(한국시각) 폐막한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 11, 은메달 11, 동메달 6개를 획득, 종합 16위를 차지했다. 취약한 장애인 생활스포츠 기반과 후진적인 장애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감안하면 16위는 대단한 성적이다.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살펴보니까 한국은 ‘장애인 스포츠’를 스포츠가 아닌 복지로 이해하는 시각이 가장 큰 문제다. 제도적으로 장애인 스포츠의 주무 부서는 보건복지부다. 그러나 복지부는 장애인 스포츠를 독립적인 스포츠로 인식하지 않고 재활과 사회통합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한다. 장애인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장애인 노동은 노동부가 맡는데 장애인 스포츠는 문화관광부가 아니라 복지부가 담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비유를 하자면 장애인 교육을 노동부에서 하는 꼴이다. 장애인 스포츠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심각한 현실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 장애인 올림픽에 나온 선수나 코치는 대표팀 선수, 대표팀 코치가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는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 단체에서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이들 단체의 추천 대상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이다. 예산 지원이나 메달획득에 따른 연금 체계에서도 스포츠 시스템 밖(외)에 있기 때문에 극심한 불이익을 당한다. 한국 장애인 스포츠는 워낙 전반적으로 황폐하다. 전국에 장애인 체육시설이 고작 14군데다. 운영비로 정부가 40%를 지원하지만 나머지 60%는 돈을 벌어서 채워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비장애인한테 사용료를 받고 대여한다. 장애인 선수 육성의 첫 단계는 아무래도 실업팀이다. 투자가치를 따지는 사기업에 실업팀을 만들라고 권유하기는 어렵지만 공기업에서는 가능하다. 공기업 경영평가 점수제도가 있듯이 장애인 실업팀 육성팀에 인센티브를 많이 주면 잘 나가는 공기업에서 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무엇보다 장애인 스포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변해야 한다. 장애인 스포츠를 기량의 경쟁 등 경기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스포츠는 살 수 있다.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들! 정말 잘 싸웠다!/임병호 논설위원

추곡수매제 폐지?

추곡수매제는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시작됐다. 1950년대에는 재정 부족으로 현물수매 방식을 취해 농민들은 농지세를 양곡으로 내거나, 정부한테서 비료를 양곡으로 샀다. 이렇게 조달된 양곡은 공무원 급여나 도시 영세민 배급용으로 쓰였다. 수맷값은 생산비 이하로 책정돼 정부는 반강제적으로 양곡을 수매한 셈이다. 1950년 수매제도는 전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제도였다. 1962년 수맷값이 인상되고 정부 수매에 대한 국회동의제도가 시행됐다. 농민을 위한 제도로 전환된 것이다. 1970년대에는 통일계벼만 수매하는 등 농가 소득지지를 통한 쌀 증산에 목적이 있었고, 1980년대에는 소비자를 위한 물가 안정수단으로 다시 바뀌었다. 1988년에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1972년 폐지됐던 국회동의제도가 부활돼 수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수맷값은 농가소득 논리에 따라 인상되고, 방출가격은 물가 논리에 따라 인상이 억제돼 시장왜곡이 심화됐다. 농민들은 점점 정부에 수매량 증대와 수맷값 인상을 요구했고, 정부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었다. 1993년 ‘양정개혁’ 단행과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등을 배경으로 1997년부터는 약정수매제가 시행됐다. 이에 따라 수매량과 수맷값도 해마다 감소했다. 올 2월 정부가 ‘농업· 농민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결정되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 위해 추곡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즉각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정부가 한발 물러서 추곡수매 국회동의제를 폐지하되 추곡수매제와 공공비축제를 병행하는 쪽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시간 벌기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수맷값이 쌀 시장의 기준가격 구실을 하고 있어 수매제 폐지는 시장에 미치는 심리효과가 예상보다 크다. 최근 몇 해 동안 쌀이 좀 많이 생산된다고 하여 마치 무용지물인 것처럼 경시하는 정부 인식은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 쌀 수입을 개방하려는 것 이상으로 못난 짓이다. 과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추곡수매제는 다소 이익의 변동은 있으나 농민이나 소비자에게 공히 필요한 제도다. /임병호 논설위원

실학

‘실학(實學)’은 조선 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개혁적 사상체계다. 실학사상은 당시 질곡(桎梏)에 처해 있던 조선왕조의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지향하였다. 실학사상이 목적으로 삼았던 현실개혁의 방향은 한마디로 근대사회로의 이행이었다. 실학사상의 연구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백과전서적 경향을 갖는다. 수 많은 실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를 정리하면, 민족의 전통과 현실 개혁, 사회경제, 자연과학, 기술과학, 그리고 새로운 철학체계를 세우기 위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실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을 주목한다. 그는 유형원· 이익의 학통을 이어서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또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등 북학파(北學派) 계열의 실학사상도 주목 받고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이 북학파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조선성리학과는 결별된 독자적 사상체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본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민족주의적 성격과 근대지향적 성격이다. 또 실학은 민중사회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실학사상은 1890년대의 개화사상가들에 의해 주목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이르러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조선학운동’ 내지 ‘조선문화부흥운동’ 과정에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학연구는 태동기(1890년대~1934)·착수기(1934~1945)·성장기(1945~1967)·발전기(1967~1985)· 심화기(1985 이후) 등의 단계를 거쳤으며 현재도 끊임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추석날인 28일 저녁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10월 3일까지 수원 화성행궁· 효원공원· 경기도 문화의 전당과 남양주 다산유적지에서 ‘실학축전 2004 경기’가 펼쳐진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실학축전집행위원회가 공동 주최·주관하는 ‘실학축전’ 중 학술세미나 ‘실학의 현재성을 묻는다’는 실학사상 연구와 이해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정부 합동단속반

농림부 차관이 현금 100만원과 골프 공 2박스를 받은 게 적발된 후 추석을 앞둔 공직자들이 더욱 옥죄이는 감시의 대상이 됐다. 사표 낸 걸로 처리됐지만 안타까운 노릇이다. 차관은 관료가 꿈 꿀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아무나 되는 ‘정치적 장·차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직업공무원이 차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한다. 원래 차관이 장관으로 승차해야 하는 데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논공행상이라는 낙하산을 타고 오는 통치자의 측근들 탓이다. 지난 10일 농림부 차관 뇌물수수 현장을 덮친 것은 정부 합동단속반원들이다. 단속반원들의 활동은 주로 관공서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루 종일 잠복하면서 의심스러운 외부 차량을 골라 낸다. 차적 조회도 필수다. 차량 소유주만 확인해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관공서의 휴게실도 단속반원의 주요 활동공간이다. 쇼핑 백 등 큰 봉투를 들고 오는 민원인이 1차 타깃이다. 출입증 교부대장을 뒤져 신원을 확인하거나 민원인의 곁으로 몰래 다가가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방문목적을 탐지한다. 농림부 차관 뇌물수수 적발 때 출입증 교부대장 확인 방법을 썼다. 단속을 무작위로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입수한 비위공직자 정보를 토대로 만든 ‘블랙 리스트’를 갖고 있다. 단속이 시작되면 블랙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주변에서 1주일, 길게는 한달까지 잠복하며 동태를 감시한다. 강력계 형사가 따로 없다. 출장을 갈 때나 퇴근할 때는 미행을 하고, 집으로 찾아 오는 민원인을 잡기 위해 주변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다반사다. 단속과정에서 저항하는 이들도 많아 몸싸움하다 크게 다치기도 한다. 문제는 청렴하고 성실한 대다수 공직자들의 자존심이다. 예전에는 추석이나 설날을 전후하여 며칠 동안 관공서 후문을 폐쇄하는 무식한 시장·군수도 있었다. 20여년 전 한 신참 공무원이 “공무원들이 무슨 도둑놈이냐!”고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다. 그 공무원이 지금은 합동단속반으로 일하며 괴로워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답답한 복지행정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돈 많은 데가 아마 보건복지부인 모양이다. 춥고, 배고프고, 늙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주는 돈도 안 쓰니까 하는 소리다.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복지부동부’라는 말이 나온다. 복지부는 대한노인회관 건립비용으로 2002년 15억원, 2003년 20억원의 예산을 받아 놓고서도 전액을 불용처리했다. 2003년에는 ‘장애인 생활안정사업’ 예산이 600억원이나 있는 데도 항목당 53 ~ 83%만 썼다. 장애인 종합수련원 건축 지원비로 2002년과 2003년 각각 50억원씩 100억원을 지출했지만 올해 6월 현재 땅을 사는 데 그쳤다. ‘치매요양병원’과 ‘노인복지회관’을 지으라고 지난 해에만 300여억원을 전국 각 시·도에 나눠 주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6분의 1도 쓰지 않고 올해로 이월 시켰다. 중소 도시 보건소 신축비용도 50억원이 있는 데 47억원을 쓰지 않았다. 또 보험료 지원 등 병원선(病院船) 운영사업 국고 보조금으로 1억500만원을 배정했지만 이 중 1천900만원 밖에 쓰지 않았다. 경기도 역시 복지기금을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엊그제 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 안명옥(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기초생활보장기금 운용 현황’을 보면 올 6월까지 226억8천200만원의 기금이 조성됐으나 정작 집행은 1억4천600만원(0.6%)에 불과했다. 지난 해에도 162억8천500만원의 기초생활보장기금을 조성했으나 1억6천800만원(1.0%)만 집행했다. 최근 4년간 평균 기금집행률이 고작 1.4%에 불과했다. 매년 기금 조성액은 늘어나는데 집행은 반대로 감소하니 별 희한한 일이 다 있다. 저소득층의 자활지원을 위해 마련된 기초생활보장기금이 쌓여 있는 데도 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추석이 다가왔어도 사회복지시설에는 방문객도, 후원금도 뚝 끊겼다고 한다. 전국 1천300여개로 추정되는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은 더 외롭다. 돈이 있는 데도 안 쓰는 복지행정이 참으로 한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京平축구전

축구의 고전적 발원을 BC 7세기경의 고대 그리스로 꼽는다. 이를 무사(武士) 훈련용으로 삼은 로마가 영국을 침범하여 퍼뜨린 게 번창하여 오늘날 영국이 축구의 종구국으로 꼽히게 됐다. 영국은 축구경기를 꽤나 좋아했지만 게임 중 싸움이 잦았던 것 같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동안 축구싸움 때문에 경기를 금지시켰으나 축구 열풍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영국축구협회가 생겨 근대식 규칙이 제정된 게 1863년이다. 발로 차는 놀이로 축국(蹴鞠)이라는 것이 삼국시대에 있었다. 가죽 주머니 안에 겨를 넣어 공을 만들었다. 19세기말 기독교 선교사와 외국 군인들의 왕래가 시작되면서 서양의 축구가 국내에 들어왔다. 공식 기록으로는 1904년 구한말 한성외국어학교가 축구를 체조 과목으로 채택한 것을 친다. 2년뒤엔 궁내부가 주도하여 ‘대한체육구락부’를 만든 것이 최초의 국내 축구단체다. 일제 치하에서는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렸다. 1933년에 생긴 ‘경평축구대항전’은 전조선축구대회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축구할아버지’로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것으로 아는 고 김용식옹이 제1회 경평축구대항전의 서울축구단 선수로 참가했던 분이다. 서울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의 민간 협의로 이루어진 경평축구대항전은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가며 한차례에 세번의 경기를 가졌다. 서울 장안과 고도(古都) 평양에 숱한 화제를 뿌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 유서깊은 경평축구대항전 부활설이 전에도 있긴 있었다. 남북간 민간 왕래의 스포츠 교류로 더할 수 없이 좋은 전통적 경기다. 서울시가 경평축구의 부활을 북측 당국에 협의했던 것 같다. 북측 역시 긍정적이면서도 조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평양시내 아파트 및 건물 도색 그리고 도로 보수비 등의 지원을 요청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1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일마다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스포츠 교류라고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핵 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로 얽힌 남북간의 경색 국면이 풀리면 옛 경평축구의 재현을 비싼 값으로나마 보게 될 것 같다./임양은 주필

매매춘

헤타이라(Hetaira)는 고대 그리스시대 노예 출신의 접대부다. 상층계급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 때 노예 여성을 술시중 들도록 했다. 비록 노예이긴 하나 ‘얼짱’ ‘몸짱’에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멋짱’도 겸해야 헤타이라가 될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권력자와의 베갯머리 송사로 부를 축적하기도 하고 이면 권력을 거머쥔 헤타이라가 있었다. 해어화(解語花)는 당나라 현종이 애첩 양귀비를 가리켜 ‘말을 하는 꽃’이라고 한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뒷날엔 접대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헤타이라나 해어화는 곧 창녀다. 고급 창녀든 싸구려 창녀든 몸을 상품화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 파리에서 화대가 시간당 200만원 꼴인 거액 매춘에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저명 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든 비밀 매춘가가 있어 파문이 인적이 있다. 아랍 국가의 왕족들도 주고객이었다. 쿠바는 유명한 바라데로 해변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대상의 매춘을 두고 고민하다가 외화 획득을 위해선 ‘유감스럽지만 어쩔수 없는 부산물’로 보고 묵인했다. 네덜란드는 199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매춘을 완전히 합법화한 나라다. 등록된 매춘부가 3만여명으로 물론 세금을 낸다. 매춘의 일자리를 잃으면 당국에 실업자 등록을 한다. 독일은 2001년에 매춘을 직업으로 인정, 노동권까지 보장하는 합법화 법률을 만들었다. 독일 전역에서 매일 40만여명의 매춘 종사자가 100만 여명의 고객으로부터 벌어 들이는 연간 금액이 약 8조원인 60억달러에 이른다.(세율환산에 이렇게 나타났다) 오는 23일부터 시행되는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과 ‘성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매매춘 단속이 엄해진다. 성매매를 강요한 포주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성을 산 남성도 실형선고와 함께 사회봉사 명령을 받게 된다. 개방 풍조로 성매매 집장촌도 사양길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길이 잦을 뿐 내국인들 출입은 뜸하다. 성매매가 부도덕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궁금하다. 남성 매춘도 있는 판이다. 강화된 엄벌주의로 창세기부터 전해온 (여성) 매춘이 근절될 지는 두고 봐야할 일이다./임양은 주필

민주당의 ‘설상가상’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을 탄생 시켰다. 그러나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으로 야당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는 설상가상의 곤욕을 겪고 있다. 이번 3분기 국고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중앙선관위는 61억1천900여만원을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민주당·자민련 순으로 원내 의석수와 총선 득표율에 따라 나눠 지급했다. 물론 민주당도 1억7천400여만원을 배정받긴 했으나 빚쟁이에게 넘어 갔다. 빚은 2002년 대선 때 S 인쇄업체에게 진 2억원이다. S사는 당시 민주당과 계약했으므로 중앙선과위의 국고보조금을 미리 가압류해 두었던 것이다. 민주당측은 “그 돈은 당시 노무현 후보의 광고 인쇄비이므로 열린우리당이 갚아야 할 돈”이라며 억울해 하고 있으나 열린우리당에선 ‘난 모른다’는 식으로 외면하고 있다. 조동만 한솔 부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리스트에 오른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은 자신이 받은 1억원을 민주당에 썼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2003년 3월 당시 제16대 민주당 기획단장으로 있으며 돈을 받긴 했으나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당측 얘기는 다르다. ‘당시 두 군데의 여론조사 업체와 사전 일괄 계약을 하여 한꺼번에 돈을 주었기 때문에 1억원을 따로 줄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장전형 민주당 대변인은 “당에 입금 기록이 없다”고 밝히고 “금시초문”이라는 것은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던 김옥두 전 의원의 말이다. 김의원의 1억원 행방은 당국에서 조사하면 알 일이지만 딱한 게 민주당의 처지다. 탈당한 대통령의 선거운동 인쇄비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떼이고 탈당한 국회의원의 불법 정치자금에 아직도 민주당 연루설이 나도니 이래저래 고심이 자심해 보인다. 이도 세계 정치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당선된 대통령의 소속 당 탈당이 가져온 그야말로 희한한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학의 연구 사례가 될만 하다. /임양은 주필

사회복지의 날

“돌아보면 그래도 / 보람이 있을 거 같아 / 이 길로 왔습니다. // 밥을 먹이다가 혹은 / 옷을 입히다가 아무 때나 올라오는 역겨움도 / 그래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 어느 날인가 출근한 아침 / 마음보다 몸이 먼저 와 있는 걸 알게 된 그날부터 / 앞으로도 매일 그 만큼씩 참아야 한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 (중략) // 아이들 말도 알아 듣고 / 소변 본 아이 팬티 올려주는 것도 할 만한데 지금 / 그만 두면 누가 와서 그걸 처음부터 하란 말입니까. // 이 아이 두 손 꼭 잡아 / 뒤처진 마음 끌어 당기는 출근 길은 / 네 발로 기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 / 나를 키우던 엄마의 마음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우광혁 교수가 쓴 재활원의 선생님들께 바치는 詩 ‘내가 아니면 누가 이 길을…’의 일부다. 지난 9월 10일 경기도와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 주최·주관으로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있은 제5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및 경기사회복지가요제는 ‘요셉의 집’ 휠체어댄스 공연이 서막을 열었다. 지체장애·정신지체 1급 장애우들의 요양시설인 ‘요셉의 집’ 사람들은 비록 몸은 휠체어에 앉았지만 도우미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경쾌한 음률에 맞춰 댄스를 선보여 초장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두번째는 60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청운무용단이 출연, 흥겨운 민요가락과 율동으로 참석자들을 매료시켰다. ‘참된 복지 세상!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사회복지 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사회복지시설 대표자들에 대한 시상식을 끝내고 이어진 경기사회복지가요제는 가수 박마루·현숙·여행스케치· 통기타그룹 스카이블루가 출연한 가운데 15팀의 장애우와 가족들이 어우러진 축제였다. 이날 손학규 도지사는 “아직도 열악한 사회복지시설이 아쉽다”며 사회복지사들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 사회복지사들의 정성은 바로 나를 키우던 ‘엄마의 마음’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과제

조선시대 과거시험 최종 합격자는 대개 3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합격자 발표로 끝난 게 아니었다. 탈락은 없었지만 ‘책문(策問)’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특히 최고 시험인 전시(殿試)는 왕이 직접 주관했다. 따라서 책문은 관리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라기 보다 관리로 조정에 들어서는 패기만만한 젊은 선비(청년 지식인)들에게 임금이 국가문제, 정치현안 등을 묻는 자리였다. 예컨대 “그대가 왕이나 혹 재상이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풀겠는가?”등 이었다. 질문내용은 정치 뿐 아니라 외교·군사·경제·사회·문화·교육·풍속 등 나라살림 전반이었다. 1611년(광해군 3년) 광해군이 물었다.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선비 임숙영은 왕의 생모인 공빈 김씨에게 왕후의 존호를 올리려는 이이첨을 고발하기로 작심하고 질문의 요지에서 벗어나 “척족의 횡포와 후궁의 아첨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한 뒤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대략 말씀드린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중종 2년 문과시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하는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책문에 권벌은 “군주는… 마음이 싹트기 전에 간직하고 기르며, 싹텄을 때 반성하고 살펴, 사물과 몸에 예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쉬울 때 어려움을 생각하며 작은 일에서 시작해 큰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시작할 때는 마칠 때를 생각하고 시작을 했으면 끝마무리도 잘해야 합니다”며 흐지부지한 개혁정치의 폐부를 찔렀다. 1447년 세종 29년 문과중시에는 후일 사육신이 된 성삼문, 반대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가담해 영의정까지 된 신숙주가 한자리에서 책문을 받았다.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을 묻자 성삼문은 “마음이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라고 전제, “군주가 먼저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했고, 신숙주는 “적합한 인재를 얻어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답을 냈다. 조선시대의 국사와 시정에 대한 고민과 해결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과제다./임병호 논설위원

해안사구(海岸砂丘)

내륙의 강변은 호안공사를 하지 않으면 홍수 등으로 땅이 잠식된다. 그러나 바다의 해안은 호안공사를 하지 않아도 해일 등으로 땅이 잠식되는 일이 없다. 바닷가가 바닷물에 잠식되기로 하면 정말 큰 일인데도 다행히 자연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오고 있지만 한편 이상하게 생각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더러 지질학자들에게 의문의 해답을 구했으나 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름대로 해안은 어떤 활성화작용이라 할 수 있는 ‘해안생명설’같은 걸 상상해 보았다. 사구란 게 있다. 해안사구는 풍랑과 바람으로 모래를 몰아쳐 올려 풍향(風向)에 직각으로 이루어진 모래언덕, 즉 구릉이다. 형상에 따라 횡사구· 종사구·마제형사구 등으로 구별된다. 태풍과 해일 등으로부터 육지를 보호하는 게 사구의 역할이다. 해안지대 보호에 일조의 역할을 하는 사구가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전북 부안 장신사구·경북 울진 후정사구·포항 곡강사구·강원 양양 동호사구·충남 태안 원청사구·보령 소황사구 등 여섯 군데를 조사한 결과 충남의 두 사구를 제외하고는 네 군데가 크게 훼손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간척사업으로 침식되고 주변 공장의 오물 배수구로 이용되거나 경작지 또는 관광지로 둔갑되어 원형을 잃을만큼 보존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이에 환경부는 오는 2007년까지 모든 해안사구에 대한 조사를 마쳐 보전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한다. 자연환경은 존재에 의미가 없는 게 단 한가지도 없다. 돌멩이 하나, 풀뿌리 한 포기 일 지라도 생성된 그 존재가치가 다 있다. 하물며 높이가 수 미터에 길이가 수 십미터나 되는 해안사구는 더 말할 게 없다. 해안이 수 억년에도 한치의 변함이 없는 건 물론 해안사구의 힘만은 아니다. 하지만 해안사구가 무너지면 인근 바닷가 내륙도 결국은 무너진다. 전국의 해안사구는 133개가 있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해안사구가 22개다. 경기·인천지역의 해안사구는 보존상태가 어떤지 무척 궁금하다./임양은 주필

북의 행정구역

1945년 광복이후 남쪽의 행정구역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북녘 역시 마찬가지다. 시·도 단위로만 하여도 이북 5도에 국한하던게 1특별시(평양) 3개 직할시(개성·남포·청진)에 9개 도로 모두 13개 시·도가 됐다. 특이한 현상은 함경남도이든 원산시를 강원도 도청 소재지로 하는 강원도를 두고 혜산시를 도청 소재지로 하는 양강도, 강계시를 도청 소재지로 하는 자강도가 증설된 점이다. 황해도 또한 해주를 도청 소재지로 하는 황해남도와 사리원을 도청 소재지로 하는 황해북도로 분할 하였다. 주목할 대목은 남쪽에서 광주·대전·울산 광역시가 생기기 전까지는 북쪽의 시·도가 남쪽 시·도 수와 같다는 점이다. 장차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표자 선거를 하면 인구 비례가 아닌 지역대표로 동등한 수의 자격을 갖기 위한 것으로 풀이 된다. 북쪽이 또 다른 직할시·도를 증설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북의 행정구역 개편에서 특이한 것은 1952년 행정의 4단계 구조에서 읍·면 단위를 폐지해 3단계로 개편한 점이다. 또 1982년 문화혁명 땐 봉건잔재 일소책으로 많은 동명을 개칭했다. 예를 들면 함흥시 용성구역 구룡1동을 ‘금빛동’으로, 구룡2동은 ‘은빛동’으로 개칭하였다. 평양 시내의 주요 거리를 ‘주체사상탑 거리’ ‘개선문 거리’로 고쳐 부른 것도 이 무렵이다. 이번에 대폭발 사고가 난 양강도 김형직군은 원래 평안북도 후창군이다. 북에 의하면 ‘김일성 수령의 아버지 되는 김형직 동지가 후창군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하여 1954년 김형직군으로 개명하였다. 김형직군의 도 명칭이 양강도인 것은 압록강과 두만강 양쪽을 다 끼어 두 강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녘은 모두 13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광복 이후 오랜 분단의 탓일까, 50년 전의 주소로는 제대로 찾아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도 분단 증후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양은 주필

아! 간도(間島)

간도는 섬이 아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중국의 동남부 길림성 일대의 대륙이다. 청나라가 이 지역의 입주를 불허하는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육지 섬 같다하여 간도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옛 발해 수도인 영안 북쪽의 북간도와 두만강 건너 영안 남쪽 동간도, 압록강 너머 옛 고구려 수도 집안 등이 있는 서간도로 나뉘는 데 보통 간도라고 하면 두만강 너머 동간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옥저~고구려~발해의 영토다. 고려와 조선 전기엔 여진족이 살면서 조공을 바쳤으며 특히 조선에서는 교역을 열어 생활물자를 대주었다. 노야령산맥과 흑산령산맥의 혼돈강과 목단령산맥의 분지로 천혜의 옥토를 이루는 간도에 우리의 선조들이 대거 이동한 것은 19세기 중반 조선조 철종 때 벼슬아치들의 수탈과 학정에 견디다 못해 이주한 것이 효시다. 이어 1869년 함경도 지방의 대흉년으로 이주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대거 간도에 들어갔고 일제시대엔 굶주린 농민들이 잇따라 이주했다. 간도는 대한독립단·광복단·광복군총영·백산무사단 등의 독립운동 단체가 있었으며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대첩을 이룬 곳도 바로 간도 땅이다. 간도의 영유권 분쟁이 조선과 청국간에 정계비(定界碑)를 두고 고종 20년(1883년)에 제기된 것이 ‘간도문제’다. 이러했던 게 을사조약(1909년)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이 해에 남만주 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청나라로부터 얻은 대신에 간도 땅의 청나라 귀속을 인정하는 이른바 ‘간도협약’으로 완전히 중국 땅이 되었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국제법상 무효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간도문제’가 다시 재연될 공산이 짙어 이를 막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 고구려사를 동북공정(工程·프로젝트)으로 왜곡하는 중국의 패권주의다. 중국은 이토록 먼 장래를 내다보며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근래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 왔다. 이에 ‘간도협약’ 무효는 비정부 차원에서 거론되는 일이라며 중국측 요구를 일축한 것은 잘한 일이다./임양은 주필

북녘 山河도

북녘 산야엔 다락밭이 많다. 농경지 확장을 위해 웬만한 산 등성이는 손 바닥만한 밭을 층층으로 일궜다. 이리하여 산 사태가 잦은 것으로는 알았으나 대기 오염이 심각한 줄은 미처 몰랐다. 평양시 평천구역의 먼지 오염도가 ㎥당 265㎍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의 84㎍에 비해 무려 3배다. 대동강 물의 대장균 무리는 ℓ당 9만6천800여마리로 북 자체 기준치 ℓ당 1만마리의 약 10배다. 지류인 휴암천은 319만5천여마리, 보통강은 27만여마리다. 보도에 따르면 유엔환경계획(UNEP)이 북의 환경조정위원회와 공동으로 작성한 1999년의 환경오염 실태가 이러하다는 것이다. 북쪽 당국이 실태를 공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5년전 실정이 이렇다면 지금쯤은 아마 더 할 것이다. 시가지에 자동차도 많지 않은 평양의 대기오염이 이처럼 심한 것은 에너지 부족을 석탄 위주로 대량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석탄에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이산화질소 등이 대기오염의 주범인 것이다. 대동강 수질이 나쁜 것은 생활오수를 수용하는 하수처리장 부족 때문이다. 여기에 대동강 인근 공장에서 쏟아내는 폐수가 하루에 또 3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만이 아니다. 압록강의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6.32ppm으로 북쪽 기준치로도 2배 이상이다. 압록강이 이러면 두만강인들 성할 리가 없다. 옛 노래에 나오는 ‘두만강 푸른 물에…’라는 것도 옛날 얘기가 돼버린 것 같다. 하긴, 금강산도 곳곳의 기암절경이 상처를 입는 등 자연환경이 적잖게 훼손된 것으로 안다. 남쪽이라고 사정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비교적 청정의 대지로 알았던 북녘 땅이 더욱 심히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남북을 망라한 산하가 온통 병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파괴되면 회생이 어려운 자연환경을 당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후대에 무슨 소릴 들을 건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자연환경은 부존자원이다. 남북간의 생태계를 포함한 자연환경 교류 같은 것을 검토할 만도 하다. 한데, 이런 건 잘 될성싶지 않다./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