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우리나라 동전(銅錢)은 6종(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이 있다. 이 중 1원과 5원 짜리는 일반적으로 상거래에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1992년 이후 사실상 발행이 중단된 상태다. 10원짜리는 매년 많은 양이 발행되고 있으나 국민이 10원짜리를 별로 쓰고 있지 않아 실질적 유통 수명이 매우 짧다.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 최근 동전 종류별 환수율(발행 잔량 대비 한국은행으로 환수된 양)이 500원짜리가 3.3%로 10원짜리보다 8배 이상 높다. 현재 한국은행이 발행한 1원짜리 5억6천만개와 5원짜리 2억2천만개는 유통이 거의 안되기 때문에 모두 ‘사라진 돈’으로 보고 있다. 등산 갔다가 잃어 버렸거나 화폐수집상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동전, 외국인이 기념으로 가져간 동전들도 실생활에서 돈의 역할을 못하는 ‘사라진 돈’이다. 액면이 작고 돈의 크기가 작을 수록 사라지는 비율이 높다. 우리 나라 동전 중 약 5억~6억개 정도가 해마다 사라진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동전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제 가치를 유지하지 못해 쓸모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1원짜리나 5원짜리를 분실하면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10원짜리를 길에서 발견해도 주우려고 하지 않는다. 또 10원짜리를 모아서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살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거래 과정에서 사라지는 실정이다. 한 해 동안 동전을 새로 찍는 데 수백억원의 자원이 낭비된다. 동전을 집안에 모아 두지 말고 가급적 물건을 사는 데 바로 이용해야 한다. 장롱 밑이나 돼지저금통, 서랍속에서 잠자고 있는 동전도 써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돼지저금통을 들고 저금하러 은행에 왔다가 은행원이 동전을 푸대접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번 봤다. 만일 화폐단위가 변경돼 1천원이 1원으로 낮춰지면 500원 이하 100원, 50원, 10원, 5원, 1원짜리 동전들은 어떤 취급을 받을 것인가. 돈을 푸대접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는 지 궁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리디노미네이션’?

우리나라의 화폐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문제가 정·관계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볼 때 변경의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렵고 물가불안까지 중첩된 상황에서 공연히 화폐단위변경 같은 충격요법을 쓸 필요는 없다. 10만원짜리, 5만원짜리 고액권 발행도 마찬가지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을 ‘디노미네이션’, 우리말로는 ‘화폐액면절하’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영어표현이 부정확하다며 9일부터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으로, 우리말은 ‘화폐단위변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화폐단위변경은 화폐단위를 1,000대 1, 100대 1식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1,000 대 1로 바꿀 경우 3천원 하던 자장면은 3원이 되고, 1천500원 하는 택시 기본요금은 1원50전이 된다. 이렇게 화폐단위를 변경하면 우선 물가가 뛸 우려가 매우 크다. 900원짜리 제품이 0.9원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1원으로 파는 경우가 많아질 건 뻔하다. 단위만 바뀌기 때문에 착시현상때문에 인플레심리가 커질 수 있다. 예컨대 2천만원짜리 승용차 값을 2천200만원으로 올리면 크게 오른 것 같지만, 2만원짜리 승용차를 2만2천원으로 인상하면 별로 오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경우다. 10만원짜리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검은 돈 등 뇌물수수가 더 번성할 것은 그야말로 불을 보듯 자명하다. 4·15총선을 치르면서 음성자금을 주고 받는 행위가 사라졌다는 주장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사과상자에, 차 떼기로 수십억, 수백억원의 현금이 왔다 갔다 하고도 모자라서 굴비상자에 2억원의 현금이 전해지는 판국이다. 서민들은 당장 먹고 살기도 버거워 죽기 일보 직전인데 팔자 편하게 화폐개혁이나 논하고 있으니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느 때보다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또 다른 불안 요소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화폐개혁은 전국민이 동의할 때 논의해도 늦지 않는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연호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지방 정권이라는 중국의 주장은 고구려가 독자적으로 사용한 연호(年號)만 봐도 ‘역사 왜곡’이 드러난다. 연호는 군주 국가에서 어떤 왕의 통치시기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보통 왕이 즉위한 해를 원년이나 1년으로 하여 ‘○○ 몇 년’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한 명의 왕이 하나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연호를 바꾸거나 여러 개를 사용키도 했다. 광개토왕비에 따르면 고구려 19대 왕 광개토왕의 연호는 ‘영락(永樂)’이었다. ‘영원히 즐긴다’는 의미이므로 고구려가 영원히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도 칠지도라는 칼에 새겨진 글을 보면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이 또한 나라의 커다란 화평을 비는 마음에서 붙인 연호였을 것이다. 신라에서 연호를 사용하였음은 ‘삼국사기’ 등을 통해 확인된다. 6세기 전반 법흥왕 때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7세기 중반 진덕여왕 때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연호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세력들도 자신의 주체성과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우기도 했다. 신라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다툼에서 밀려난 다음 822년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이 독자적인 나라이름과 함께 연호를 썼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2개의 연호를 썼으며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고 고친 다음에는 연호도 고쳐서 다시 2개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임을 자처하면서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않았다.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에게 시달리던 고종은 ‘건양’이라는 연호를 일시적으로 사용하다가 1897년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라고 고치고 황제자리에 오르는 한편 ‘광무’라는 연호를 내세웠다. 대한제국이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임을 나라 안팎에 선언한 것이었다. 비록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지만 고종은 나라를 지키려고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조정에 친일파만 적었어도 대한제국은 오늘까지 이어졌을 지 모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과 비

그건 분명히 볼썽 사나운 모습이었다. 장관일 것 같으면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은 물론 더할 수 없는 지존이긴 하다. 하지만 나라의 체모엔 격식이란 게 있다. 송나라 재상으로 구준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구준의 수염에 음식이 묻어있는 것을 본 장관급 자리의 정위라는 사람이 황급히 다가가 손수건으로 수염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공손히 닦아냈다. “여보게! 명색이 당상관의 참정(參政)이 고작 윗사람의 수염을 닦는 일인가. 체통을 좀 지키게!” 구준은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질책했다. (十八史略 宋史 冠準傳) 아마 오는 10월1일 국군의 날엔 비가 와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 들어주는 어색한 장면은 없을 것 같다. 지난해 국군의 날 사열차량에 대통령과 동승했던 조영길 국방부 장관(당시)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주어 빚어진 과잉 의전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 사열 전용차에 자동식 비가림막을 설치하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역시 전국시대의 고사다. 어느 제후가 전쟁터에서 독려를 하는 데 군사들이 좀처럼 나아가질 않았다. 그 제후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짐승가죽의 방패막이에 숨어 독려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 충직한 신하의 직언을 옳게 들은 제후는 방패막이에서 나와 몸소 진두에 서서 독전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대통령의 건강은 곧 국정과 직결된다. 행여 감기라도 들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을 인색하게 여길 생각은 없다. 그렇긴 하나 대통령이 비가 좀 내린다 하여 국방부 장관이 받쳐주는 우산속에서 국군 장병의 사열을 받는 것은 군의 사기와 직결된다. 이런 논란이 있다하여 자동 비가림막을 설치하는 것도 좀 그렇다. 비가 오면 장병들도 비를 맞는다. 대통령이 장병들과 함께 비를 맞으면서 사열을 받는 모습이 얼마나 장한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에 나선 전쟁터에서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발견, 유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탄우(彈雨)를 무릅쓴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추우(秋雨)쯤이야. /임양은 주필

태권도 경기

“저건(뒷걸음질) 무슨 기술이냐?”고 어느 외국인이 국내 태권도인에게 묻더라는 것이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 때 일이다. 태권도를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경기에 흥미가 없는 스포츠는 관중이 없고 관중이 없는 종목은 쇠퇴한다. 태권도 경기가 흥미가 없다는 말은 전부터 있어 왔다. 이번 올림픽 막판 남자 태권도 80㎏급 결승전서 문대성 선수의 왼발 돌려차기로 그리스 선수를 KO시킨 일이 없었으면 세상에 가장 멋대가리 없는 스포츠가 될 뻔 했다. 태권도는 발 만이 아니고 손도 쓴다. 격파는 곧 수도(手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발치기로만 경기를 한다. 족도(足刀)만 쓰는 태권도 경기는 반쪽 경기다. 손도 써야 한다. 가슴에 붙이는 보호 장구를 상체에 확대시켜 리모콘 장치로 수도가 가해지면 강도에 따라 점수가 나오는 전자감응 시스템의 개발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 이렇게 해서 손발 다 쓰는 태권도 모습 본연의 경기를 치러야 흥미를 가질 수가 있다.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에서 우리 선수들이 딴 금메달은 겨우 2개다. 태권도 수준이 급속히 평준화돼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이 종주국이다. 태권도 경기의 개선을 종주국이 앞장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우슈, 일본은 카라데를 올림픽 종목에 넣기 위해 맹렬한 이면활약을 하고 있다. 물론 우슈나 카라데가 아직은 올림픽 경기로 채택될 가능성은 적다. 올림픽 종목이 되려면 일정한 수의 나라에 널리 보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권도 경기가 지금처럼 흥미가 없어서는 위태롭다. 일본이나 중국의 시샘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태권도 경기가 흥미없는 것으로 평판난 것을 기회삼아 올림픽에서 제외시키는 공작을 펼 수가 있다. 공작설이 나돌기도 한다. 태권도 경기를 흥미있게 만드는 일은 이같은 방해도 방해지만 태권도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절실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새로운 태권도 경기를 보이도록 해야 한다./임양은 주필

‘宋襄之仁’

북방한계선(NLL)은 최전방이다. 이런 NLL에 북의 군 함정이 침범하면 왜 내려왔는 가를 파악해 대처하라는 합동참모본부의 예규 변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북 함정이 NLL 무력화 의도가 없는 경우엔 시간을 갖고 신중히 대처하라는 것이다. 전방 일선의 아군 해역에 적이 나타났으면 경고사격 등 작전으로 퇴치할 일이지 함대 장병이 무슨 수로 어느 경황에 의도를 탐지하란 건지 알 수가 없다. 예규는 무력화 의도가 없는 경우를 북의 민간선박 구조 등으로 밝히긴 했으나 이런 것은 육안으로 확인되면 말 안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징후가 확인되지 않는 가운데 상호교신에도 응답이 없는 NLL 침범을 합참 말대로 신중히 대처하기로 하면 도대체 아군은 어떻게 하란 건지 알쏭달쏭한 데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고사(故事)로 이런 게 있다. 지금의 하남성에 있는 홍수(泓水)를 가운데 두고 송나라와 초나라 군사가 대치했다. 이윽고 야음을 틈타 초나라 군사가 물속을 건너오는 걸 보고 송나라 진영은 양공(襄公)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려달라고 했으나 양공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은 군자로서 해선 안되는 비겁한 행위”라는 것이다. 가까스로 송나라 육지에 오른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챙기느라고 어수선한 사이에 다시 총공격 명령을 재촉했으나 양공은 “싸움이란 무릇 똑같은 조건에서 해야 떳떳하다”며 역시 거부했다. 마침내 전열을 갖춘 초나라 군사에게 송나라 군사는 대패하고 말았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쓸모없는 값싼 인정으로 화를 자초한 이같은 어리석음을 빗대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전한다. 합참의 새 예규가 ‘송양지인’인 지 뭔진 잘 모르겠으나 북의 함정이 NLL을 침범해도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는 것 같아 답답하다. 조준사격은 고사하고 경고사격도 억제하니 잘못 쐈다가는 또 혼쭐 날까봐 교신에 응답이 없어도 전방의 장병들은 자칫하면 팔짱만 껴야 할 판이다. NLL을 저쪽보다 이쪽이 앞서 무력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한다./임양은 주필

금메달리스트 양태영

엊그제의 한 외신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 사상 초유의 관중 ‘테러’사태로 인해 동메달에 그친 브라질의 마라토너 ‘반더를레이 리마’가 고국에서 금메달리스트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는 뉴스다. 리마가 귀국한 2일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는 수천명의 환영객이 “금메달!” “금메달!”을 외치며 그를 맞이했다.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입국장을 통과한 리마는 그의 스폰서인 유통업체 사장으로부터 동메달 포상금(2만3천달러)이 아니라 ‘금메달 포상금’ 6만6천달러(약 7천600만원)를 받았다. 고국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리마는 기자회견장에서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씩씩하게 말했지만 선두를 달리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레이스를 떠올렸는 지 눈물을 떨구었다. 그리고 리마는 마라톤 우승자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가 “관중 난입이 없었어도 금메달은 내 차지였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 그리스인들의 마음 속에는 내가 승리자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 체조 남자 개인종합에서 심판의 판정 오류로 금메달을 뺏기고 동메달에 그친 한국의 양태영 선수는 ‘금메달리스트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주는 연금을 집행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규정에 따라 당연히 동메달(월 30만원)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체조협회도 CAS(스포츠중재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며 양태영을 동메달리스트로 대우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에서 금메달리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양태영을 CAS에서 과연 공인해줄 지 걱정스럽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열릴 예정인 CAS의 청문회에서 결정이 어떻게 나든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먼저 금메달리스트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기선을 잡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만일 양태영 선수가 도둑맞은 금메달을 찾지 못한다면 국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북한 ‘39호실’

북한산 마약은 일본, 한국, 중국 등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다. 특히 일본에서 소비되는 마약류 중 ‘최음제(메탐폐타민)’의 40% 가량이 북한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지난 3년간 총 3천300㎏의 최음제가 입수됐는데 이 중 34% 정도가 북한산이었다. 2001년 일본 해상보안청의 추격을 받고 침몰한 선박은 필로폰 150㎏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던 북한의 마약 운반선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북한은 또 1970년대 중반부터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국가정책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된 미국 의회조사국(CRS)보고서는 북한이 지난 1~2년간 마약수출로 연간 5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총수출액인 7억달러(2000년기준)의 70%에 이르는 수준으로 북한이 거대한 마약거래범죄집단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셈이다. 1976년 이후 북한이 관여하다 드러난 마약밀매사건은 최소 50여건에 이르며 여기에는 북한 외교관들이 관련돼 있었다. 사건은 세계 20여개 국가에 걸쳐 발생했다. 최근 드러난 사건으로는 작년 4월 북한소속 봉수호가 1억1천600만 달러 상당의 헤로인 125㎏을 호주에 선적하려다 호주당국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직속 기관인 ‘39호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마약거래를 통한 외화벌이를 책임진다. 39호실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해외 외교적 업무를 위한 경비, 정보관리, 군사장비 구입,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위한 경비 등으로 사용된다. 주목할 것은 미국정부가 북한의 마약밀매문제를 거론할 때 북한의 ‘국가적차원(State Sponsor)의 정책’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삼가고 있는 점이다. 마약문제가 북한의 정권차원의 문제가 될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데다 핵문제 등 더욱 심각한 문제에 대처할 여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익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김정일의 배짱이 대단(?)하기는 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북한의 ‘10대 원칙’

북한은 우리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정작 최고규범인 노동당규약에서 한반도공산화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국보법에 해당하는 북한형법을 통해 소위 사회주의 건설에 반대하는 ‘반국가범죄’를 포괄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 우상화를 내용으로 한 북한의 실질적 최고 행위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확립의 10대 원칙(10대 원칙)’에 어긋날 경우 주민들을 재판 없이 처단한다. ‘10대 원칙’은 이렇다. <1·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여야 한다. 2·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3·김일성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4·김일성동지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5·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6·김일성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7·김일성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을 소유하여야 한다. 8·김일성동지의 크나 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9·김일성동지의 유일적 령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율을 세워야 한다. 10·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북한에도 물론 헌법과 법률 및 그 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이 존재하지만 1974년 4월 김정일에 의해 행동강령으로 발전된 10대 원칙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규율하는 실질적인 최고행위규범으로 기능한다. 10대 원칙의 제3조 6항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배지)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어야 한다”고 규정, 노동신문에 실린 김일성의 사진 한 장도 잘못 다루면 정치범 취급을 받는다. 이는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에 의해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체제가 이런 데도 국보법 무조건 철폐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있다면 심히 곤란하다.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인 것 같다./임병호 논설위원

중국이 웬 된장?

된장 고추장은 김치와 함께 발효식품으로 전래 고유의 한국 음식문화다. 중국에 일찍이 된장 고추장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서양 음식문화는 굽는 것, 일본 음식문화는 볶는 것, 중국 음식문화는 튀기는 것이 아류를 이룰 뿐 다른 특징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한국 음식문화는 국거리, 즉 다른 나라 음식문화엔 없는 탕문화가 주류인 가운데 발효식품이 발달된 또 다른 특징을 함께 지닌다. 일본 역시 된장 간장은 있지만 한국 고유의 조선된장 조선간장과는 판이한 당류(糖類)의 일본된장 일본간장으로 품격이 다르다. 서양 음식문화에 버터 치즈도 발효식품이긴 하나 한국 음식문화의 발효식품처럼 숙성도가 높지 않다. 유기물질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을 발효라고 하며 이같은 미생물의 분해로 만들어진 식품을 발효식품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숙성도가 가장 높은 한국의 발효식품은 이래서 아이들에게는 질병, 어른들에게는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우리의 조상은 일찍이 이론과학이 무엇인 지는 잘 몰랐어도 발효식품을 식생활화 한 생활과학의 지혜를 오랜 경험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중국이 또 말썽이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고추장 된장의 국제식품표준규격에 대해 반대의견을 CAC(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내놨다. 자기 나라에서도 된장 고추장을 만든다면서 자국 제품과 다른 한국 된장 고추장이 국제식품규격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국제표준규격으로 인증받은 식품을 수출하려면 표준안을 따라야 하므로 표준안은 식품수출 주도권 의 핵심이 된다. 일본이 김치를 모방한 ‘기무치’란 것으로 우리의 김치가 국제식품표준규격이 되는 것을 6년동안이나 방해한 끝에 표준규격으로 확정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이번에는 중국이 딴 죽을 걸고 나왔으나 중국의 된장 고추장 역시 종주국인 우리의 된장 고추장을 자기네식으로 모방한 것이다. 수출전선에서 달러돈 만드는 일이라면 염치 불고하는 국제사회의 냉혹성을 바로 일·중 이웃 나라들로부터 겪고 있다. /임양은 주필

시민단체 꾼들

정부 보조나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많다. 지원의 명분 또한 가지가지다. 하지만 지원사업이 얼마나 내실을 기하고 있는진 의문이다. 간판 뿐인 거의 유령단체나 다름이 없는 데서 돈을 타 흥청망청 써대는 시민단체가 없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시민단체에 적잖은 돈을 용역이란 이름으로 주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만도 23개 시민단체에 19억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 국회에서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다. 지원이 정실에 흐른 면이 있고 사업 내용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명분이 적절치 않는 것도 있다. 예컨대 병역거부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1천300만원이 지원된 것은 신중치 못한 처사로 지적됐다. 놀라운 것은 과거사 문제를 시민단체 주도로 조사기구를 두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전략이라는 점이다. 당의 ‘주간 현안 및 대응’이란 내부 문건에서 이같이 밝혀졌다는 신문보도가 사실일 것 같으면 전문가도 아닌 시민단체 줄 세우기는 정권의 홍위병 배치다. 신문은 이런 내부 전략으로 인해 당초 국회 안에 두기로 했던 과거사조사위원회를 국회밖으로 돌리는 데 동의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려는 전술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민단체의 기본 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외부의 압력이 없는 자발적 설립 ▲공식조직으로 정규활동을 하는 단체 ▲비영리의 공익성 활동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 지지배제 ▲특정 종파단체 제외 등을 꼽는 것이 선진국 시민단체사회의 관례다. 또 권력에 대한 감시·부당한 공권 제한·정책제안·행정서비스 보완 등을 위해 전문성을 배양하며, 재정은 시민단체마다 특정 시민단체를 선호하는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충당한다. 따라서 시민의 선호를 받지못한 시민단체는 도태된다. 권력의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시민단체가 권력에 빌붙는 기생단체로 전락해가고 있다. 시민단체가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시민단체 같지 않은 시민단체가 많은 건 사실이다. 옥석이 뒤섞인 가운데 사이비 꾼들에 의해 시민운동이 훼손되고 있다. 이래서 시민단체는 많아도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간다./임양은 주필

아테네올림픽 촌평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이 우리 시간으로 어젯밤 새벽 3시 화려하게 폐막됐다. 남자 마라톤을 끝으로 올림픽 시청 때문에 잠못 이루곤 하던 밤도 이젠 끝났다. 한국선수단은 그런대로 선전했다. 아쉬움도 많고 억울함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지난 일보다 앞으로가 더 중하다. 같은 체격 조건의 동양인으로서 일본과 중국이 수영과 육상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올림픽무대의 수영과 육상은 한국선수들에겐 거의 불모지대다. 이런데도 일본이나 중국은 수영과 육상에서 결선에 오르는 선수가 적잖았다. 수영은 다이빙이 아닌 경영에서도 그랬고 다이빙은 북측 선수들도 출전했다. 육상에서 중국의 류시앙은 남자 110m 허들결선서 경이적인 12초91의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트랙에서 동양인이 챔피언에 오르기는 올림픽사상 처음이다. 필드가 아닌 트랙 종목에서는 단거리말고도 5천m 등 중거리는 능히 도전해볼만 하다. 문제는 재목 발굴과 과학적인 지도에 달렸다. 메달 사냥이 가능한 종목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메달권이 난망한 종목개발도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한국스포츠가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동양권에서 조차 일본과 중국에 따라 붙지 못할만큼 뒤처질 공산이 높다. 이 점에서 여자수영 400m 개인혼영 결선에 올라 7위를 한 남유선은 우리에게 금메달 못지않은 평가가 가능하다. 폐막식의 한국선수단 기수로 선정된 여자양궁 2관왕 박성현의 담력은 실로 값지다.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대가 70m 떨어진 자기 주먹보다 작은 10점만점 과녁을 맞혀야 중국에 1점차로 이기는 부담스런 단체전경기 막판에서 10점과녁을 보기좋게 꿰뚫은 것은 흔들림이 없는 놀라운 그의 담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다./임양은 주필

이봉구

세칭 ‘명동 백작’으로 일컬어진 소설가 이봉구(李鳳九·1916 ~1983)는 경기도 안성 태생이다. 1934년 중앙일보에 단편 ‘출발’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으나 1938년 김광균·오장환·서정주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시를 썼다. 그러나 다시 소설로 바꾼 이봉구는 광복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하였는데, 6·25 전쟁 뒤에는 거의 날마다 서울 명동의 ‘은성’이란 술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동 백작’ ‘명동시장’이라는 애칭은 그의 깨끗하고 단아한 태도 때문에 붙게 됐다. 6·25 전후의 허무와 절망감에 젖은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이봉구는 첫째,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지 말 것. 둘째, 술자리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셋째, 술자리에서 돈 꿔 달라는 말을 하지 말 것 등 세 가지 철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생전에 다섯 권의 창작집을 냈는데 그 가운데 세 권이 ‘명동 20년’ ‘명동’ ‘명동, 비 내리다’이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명동 백작’은 수유리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1983년 1월 29일 이른 11시 예순 일곱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그날 명동에는 비가 내렸다. 교육방송국 EBS가 9월부터 24부 작 드라마 ‘명동 백작’을 통해 이봉구·김수영·박인환·김광주·이진섭· 김광균·이중섭·오상순·전혜린 등이 등장하는 1950년대 우리 사회를 그리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안성 출신 문인들은 꽤 많다. 작고한 박두진·조병화·최태호·임홍재, 그리고 현재 활동 중인 공석하·유병규·윤현조·김경제·정진규·한광구·김유신 안성예총 회장 등이 안성 토박이 문인들이다. ‘명동 백작’ 방영을 계기로 안성에서 이봉구 선생의 삶과 문학이 재조명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북한 미사일기지

북한의 군 개혁 가운데 전술적인 의미가 가장 큰 것은 최근 이루어진 스커드(SCUD) 미사일 전력의 위치변동이다. 인민군 66, 73, 85, 74 포병여단이 보유하고 있던 스커드 미사일 전력 중 상당수가 후방으로 이동 배치된 것이다. 여기에는 지상에 노출돼 있어 미군이 보유한 군사위성으로 판독이 가능한 수십기는 물론 지하갱도에 보관돼 있는 수백 기의 스커드 미사일 또한 이전 배치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미사일 후방 배치는 한반도 긴장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길어졌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지속적인 미사일 개량으로 노동1호 미사일의 사거리를 2천500㎞로 늘렸다. 또 대포동2호의 사거리를 4천~6천㎞로, 대포동2호 3단 추진로켓은 1만~1만2천㎞에서 1만5천㎞로 늘렸다. 정상 탄두 사용시 알래스카까지, 소형탄두 장착시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미사일 여단의 위치 변경은 후방에서도 서울 공격을 자신할 수 있을 만큼의 유효 타격거리가 확보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스커드 미사일이 지하 갱도에 보관돼 있음을 감안하면 미사일 재배치는 북한의 군사시설 건설이 전방 뿐 아니라 후방에도 상당 부분 진척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유사시 즉각 스커드 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는 관련 시설 및 장비도 이미 후방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김정일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공식 활동의 60%를 군 관련 행사에 할애하여 왔다. 김정일 체제가 북한 내부에서 그 위치를 굳건히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남한에선 주한미군 완전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 아직은 시기상조인 주장들이 자꾸 나온다. 북한을 얕잡아 보거나 아니면 너무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둘 다 그렇지 않다./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 수준

주돈식 세종대 석좌교수는 문민 정부에서 정무·공보 수석비서관과 문화체육부·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우리도 좋은 대통령을 갖고 싶다’에서 우리 현대사 역대 최고 지도자 9명을 얘기했다. 故 이승만 대통령은 “ 독재자로 낙인 찍혀 망명지에서 타계함으로써 훗날 국민이 대통령을 얕잡아보는 선례를 남겼다”고 했고, 故 박정희 대통령은 “3선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부인(육영수 여사)을 잃으면서 도덕적으로 더욱 타락해 갔다”고 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환란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국제 신인도를 높였지만, 국가정보원·검찰 등 사정기관이 직·간접적으로 부정·은폐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권과 다른 부정부패 양상을 보였다고 평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은 ‘007수법 대북 상납으로 가능했다’고 썼다. “국제역학에는 정통했으나 등잔 밑은 못 본 정치 야맹증 노인(이승만)”, “‘타협은 없다’며 고군분투하다 지는 별이 된 강경 영국투사(윤보선)”, “좋은 옷 입고 먼 이상을 향해 걷다가 시궁창에 빠진 신사(장면)”, “소떼를 빨리 몰고 가려고 쌍권총에 채찍까지 든 카우보이(박정희)”, “취임과 동시에 사임을 생각해야 했던 주막거리 무의탁 노인(최규하)”, “‘집 없는 이가 빈집 차지할 권리가 있다’며 정권을 빼앗은 돌진형(전두환)”, “행운으로 홀인원을 했으나 허리를 삐고 만사 무위가 된 골퍼(노태우)”, “세상 변화에 어둡고 균형감각을 갖추지 못했던 잠수함 선장(김영삼)”, “아들과 이웃 건달에게 뒷문으로 재산 털린 후회 많은 노인(김대중)”이라는 촌평이 그럴 듯 하다. “대통령과 정치 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주돈식 교수의 말은 옳다. 권력자와의 비굴한 타협이 상식으로 통하는 한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촌평은 임기말에 나올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중국의 역사 날조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의 상고시대 신화다. 삼황은 천신(天神)이고 오제는 인신(人神)이다. 하늘의 천황, 땅의 지황, 인간의 인황을 의인화한 삼황은 목축과 어업을 일으킨 복희(伏羲)씨, 농업과 의술을 창시한 신농(神農)씨, 역법과 잠업을 만든 황제(黃帝)를 말한다.(十八史略·십팔사략) 그러나 복희씨 신농씨에 여신인 여와 등을 포함하는 설도 있다. 어떻든 신농씨는 사람 몸에 소머리 형상의 인신우수(人身牛首), 여와는 사람 얼굴에 뱀몸의 인면사신(人面蛇身)으로 전해져 신화의 흥미를 더해준다. 오제는 상고시대의 성군으로 사기(史記)에선 황제(黃帝)·전욱·제곡·제요·제순을 꼽고 있으나 십팔사략은 황제 대신에 소민을 꼽는다. 이 가운데 요(堯·제요) 임금과 순(舜·제순) 임금은 백성이 근심 걱정이 없도록 특히 나라를 잘 다스려 후대에 태평성대를 가리켜 ‘요순시대’ 같다는 말을 하게 됐다.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순 임금은 우(禹)에게 선위하여 혈통계승이 아닌 어진 사람의 현자승계인 것으로 신화는 전한다. BC 211년 중국 여섯 나라를 무력통일한 진(秦)나라 왕이 사상 처음으로 ‘황제’(皇帝)란 칭호를 사용한 시황제(始皇帝)는 삼황의 ‘황’과 오제의 ‘제’를 따 삼황오제의 덕을 다 갖췄다는 뜻으로 쓴 것이 ‘황제’(皇帝)의 어원이다. 그러나 삼황오제는 선사시대의 신화로 말하자면 원시인 시기에 해당한다. 이런 신화를 실존의 정사(正史)로 둔갑시켜 중국 역사를 1만년으로 분장하는 탐원공정(探源工程)이 역시 사회과학원이란 데서 주도되고 있다. 티베트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서남공정에 이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에 겹쳐 자국의 상고사마저 왜곡하는 탐원공정이 한창인 것이다. 패권주의를 겨냥한 역사 배경의 뻥 튀기가 심상치 않다. 몽골족이 13세기 중엽에 침입해 베이징을 도읍으로 나라를 세워 98년동안 중국 대륙을 다스린 원(元)나라,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淸)나라는 만주족 후금의 누르하치가 세운 것을 한(漢)족 중심의 중국 역사가들은 또 어떻게 왜곡할 것인지 중금하다. 중국은 역사 왜곡을 넘어 역사 날조로 가고 있다./임양은 주필

부부 관계와 법

‘부부 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은 말인즉슨 옳다. 몸이 불편하거나 피곤한 데도 치근덕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남편이나 아내 어느 쪽이든 입장은 다 같다.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이다. ‘내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남성들의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말인즉슨 맞다. 또한 ‘내 남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여성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다. 말인즉슨 이도 옳다. 얼마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관계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완력으로 대들어 상처를 입힌 남편에게 강제추행치상죄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판결을 내린 게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들 부부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아내되는 사람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들 방에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남편되는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항하는 아내를 안방으로 끌고가 힘으로 밀어 붙이다가 상처까지 입혀 형법상의 강제추행치상죄로 아내로부터 고소당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비정상적 관계이기 때문에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 탈이 없는 부부간엔 아무리 남편이 야속하고 또 비록 아내가 섭섭하여도 고소로 법정까지 끌고갈 만큼 사건화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데선 법으로 부부 강간을 인정하는 게 말인즉슨 여권보호를 위해 바람직하긴 하나 이 역시 정상적 부부 사이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부부 관계를 고소로 해결하려는 부부는 이미 사실상 부부가 아닌 것이다. 또 부부 관계를 법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려고 들면 나빠졌던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수가 있다. 혼인생활을 깰 요량이 아니면 법을 너무 좋아하는 게 좋지 않다. 남편이 유죄판결을 받은 문제의 그 부부는 고소가 있은 뒤 이혼하고 말았다. 법은 부부를 확인해 주는 천사이면서도 파경을 확인해 주기도 하는 악마의 두 얼굴을 지녔다./임양은 주필

아테네 올림픽

올림픽(Olympic)은 그리스어의 올림포스(Olympos)에서 유래됐다. 올림포스는 해발 2천918m의 영산으로 산정엔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인 제우스의 궁궐이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믿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남쪽 엘리스주 피사에 있는 제우스 올림포스 신전에선 4년마다 운동경기가 열렸다. 여러 종목마다 우승자는 고향에 돌아가 영웅대접을 받았다. 이것이 고대 올림픽이다. BC 776년부터 시작하여 4일동안 경기를 치르고 5일째는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각 종목별 우승자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고대 올림픽은 관중 수가 스타디움 터 규모로 보아 4~5만명으로 추정될 만큼 웅대했다. 고대 올림픽이 폐지된 것은 AD 394년이다. 동로마제국 데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천년이상 전해온 제우스 신전의 운동경기를 미신행위로 규정해 금지시켰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Athens)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이름 아테나이(Athenai)에서 따온 명칭이다. 프랑스 교육가 쿠베르탱이 고대 올림픽 경기의 부활을 제창,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창설에 이어 근대 올림픽인 제1회 올림픽대회가 유서깊은 아테네에서 시작된 게 1896년이다. 지금 제28회 올림픽대회가 올림픽 본산인 아테네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개막된 아테네 올림픽은 오는 29일 폐막을 앞두고 28개 종목의 메달레이스를 향한 열전이 중반전을 숨가쁘게 넘어가고 있다. 참가국, 참가선수의 환희와 실의 등 명암이 주마등처럼 엇갈리기도 한다. 올림픽은 명실공히 최고의 수준과 최고의 권위를 갖는 종합 운동경기다. 올림픽 챔피언, 즉 금메달리스트는 일생 일대의 최대 영광이다. 시간차가 많은 아테네 올림픽 바람에 올빼미족이 늘어간다. 우리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를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기위해 새벽 1~2시쯤 깨어 보다 보면 그만 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특히 남자 축구에서 56년만에 숙원의 8강 진출에 이어 4강 신화의 고비에서 비록 2-3으로 패했지만, 그젯밤 대 파라과이 전에서는 잠을 설친 시청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레스링 등 남은 종목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경인지역 지진안전지대 아니다

아직 큰 피해는 없지만 ‘서해안이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지질 전문가들의 진단을 간과하거나 묵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지난 13일 밤 10시42분쯤 인천시 북서쪽 20㎞ 지점에서 2.7의 지진이 발생, 인천시내와 강화, 김포에서 진도가 감지됐었다. 당시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과 남구 도화동 주민들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미세한 흔들림을 느꼈다고 한다. 강화와 김포에서도 건물이 약간 흔들리는 미동이 잡혔다. 그동안 경인지역에선 지진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래 총 44건의 지진이 발생했다. 37건이 발생한 인천의 경우 2건이 내륙지진, 나머지는 백령도·대청도 덕적도·영흥도 해역에서 일어 났다. 경기도는 아산만·평택·시흥 등에서 7건이 발생했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지진 발생이 잦은 점이다. 인천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13건이 발생했다. 경기도는 인천과 사정이 달라 1980년대 2건, 1990년대 3건, 2000년대는 지금까지 2건이 발생했다. 한반도는 지질학상 유라시아판의 일부인 ‘남중국판’과 ‘북중국판’의 이동 및 충돌의 결과 지진이 생성됐으며, 역사적으로는 큰 지진의 발생주기가 45년 정도의 단주기, 400~500년의 중간주기, 1천년 단위의 장주기 등이 있다. 한반도에서 지진활동이 컸던 시기는 16~17세기로 여기에 중간주기를 고려해 볼 때 2000년 후부터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995년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에 지진 활성단층이 발견돼 핵폐기처리장 설치를 포기한 것도 황해를 건너 해주에서 인천, 경기 서부~홍성~청양~공주 등으로 이어진다는 ‘남·북 중국판’과 무관치 않다. 지진이 매우 잦은 일본이 지진에 큰 피해가 적은 것은 완벽한 지진발생 대책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 전역에 해당되지만 특히 인천과 경기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진단을 경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을 탄천

탄천(炭川)은 용인시 구성읍에서 발원해 성남시와 서울 송파구·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옥황상제가 삼천갑자동방삭을 잡기 위해 저승사자를 시켜 숯을 씻도록 했다고 해 ‘숯내’라고도 불리는 탄천은 성남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운동장이다. 그동안은 오염·악취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게 했으나 최근 상당부문 문제가 해소되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탄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1시간30분 남짓이면 잠실 선착장까지 갈 수 있으며 둔치 양편에 마련된 농구장, 배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족구장, 야구장, 축구장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다. 이런 탄천이 올 여름엔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다. 야탑동 코리아디자인센터 앞과 태평동 대우자동차 정비사업소 앞 둔치에 프랑스 세느강변에 있는 것과 똑같은 인공백사장이 만들어졌다. 탄천~한강을 잇는 자전거도로 24.2㎞ 중 콘크리트로 돼 있는 구미동~야탑동 간 9.6㎞가 컬러 아스콘으로 새롭게 포장되고, 수진동~백현교 6㎞구간 조깅도로도 고무탄성소재로 교체 중이다. 상류에서 유입되는 오염하수로 인한 악취문제는 하루 1만2천t의 팔당물을 뿌리는 방법으로 이미 어느 정도 해결됐다. 여기에 갈대, 억새, 버들, 창포 등과 같은 수생식물을 심고 여울, 미니 인공섬 등을 하천 곳곳에 만들어 자정능력을 키워주는 계획이 마련됐다. 2006년에는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지하수와 남한산성 계곡물이 하루 1만8천600t씩 탄천에 방류돼 더욱 맑게 된다. 탄천 본류 뿐만 아니다. 실개천도 바뀐다. 여수·분당·운중·동막천은 콘크리트 둑이 없어지고 돌과 나무, 흙 등 자연재료로 새롭게 단장한다. 요즘에는 가을이 찾아와 탄천 물이 더욱 맑아졌다고 한다.물고기들이 헤엄치는 탄천은 성남의 최대 자산이다. 시민들이 정성껏 보호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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