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균형개발의 허구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의무화 돼 있다. 이런 조사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31개 사업에 14조7천475억원을 투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만이 아니다. 경제성 뿐 아니라 정책적 타당성조차 없다는 조사결과에도 강행한 사업이 금액은 미상이나 23개 사업에 이른다. 예를 들면 무안~광양간 고속도로 건설사업(2조2천871억원)이 전자에 속하고 서천~보령 간 국도건설사업(5천746억원)은 후자에 속한다. 예비조사에서 불합격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한 이유가 가관이다. 국토균형개발 때문이라는 것이다. 궤변이다. 세상에 경제성·정책성 가치가 없는 사업이 국토균형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는 들어도 처음 듣는 소리다. 이런가 하면 서울~연천간 고속도로 등 16개 사업은 경제성과 정책성이 충분한 것으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결론이 났는데도 정부는 묵살하고 백지화 해 버렸다. 100 수십조원이 드는 신행정수도 이전사업은 이젠 위헌결정이 나긴 했지만 아예 타당성 조사도 않고 사업을 강행하였다. 정부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기는 조사결과가 부당한 것으로 판정나도 강행했을 것으로 보면 아예 조사비용을 안 들인 것이 더 나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정부 스스로가 타당성 조사를 어기길 밥먹듯이 하니 민간사업의 각종 조사내용이 부실해도 할 말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사업의 타당성 조사 무시는 정치적 고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균형개발이라는 것이 경제성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하는 진짜 국토균형개발이 아니고 지역선심의 정치적 안배인 가짜임이 역력하다. 안 된다는 덴 해주고, 돼야 한다는 덴 안 해준 이유를 정부는 달리 설명할 구실이 있을 수 없다. 정부 예산을 쌈짓돈 쓰듯이 내키는대로 쓰는 것도 개혁인가 보다. 국민의 혈세가 운다. /임양은 주필

의료환경 좋아진 보건소

도내 각 지역의 보건소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소식은 매우 반갑다. 의료환경시설이 쾌적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건강주치의’로서 손색이 없고 각종 상담에 충실해 심적 고민을 덜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건소는 우선 치료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비용도 저렴하다. 영·유아 예방접종 이외에도 다양한 건강검진과 임신부를 위한 산모교실 등을 운영한다. 보건소의 주요 사업은 예방접종과 질병 예방, 그리고 건강관리다. 요즘같은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사전 예방주사를 실시한다. 지난 해에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무료로 예방접종을 실시하였으나 올해부터는 만 60세 이상 노인과 저소득층·허약자로 수혜범위를 확대한 것도 지역주민을 위해 의료활동에 전력하는 사례 중 하나다. 특히 20주 미만 임신부는 무료로 산전검사(초음파 포함)를 실시하고 유방암·자궁암·골밀도 등을 검사해 우편으로 통보해 주는 편의도 제공해 준다. 남성들을 위한 각종 진료, 검사도 해주고 있어 보건소를 잘 이용하면 가계의 소비지출을 줄이면서 건강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점이 있다면 보건소가 도시지역에 치중돼 있는 점이다. 따라서 의료시설이 부족하여 위급 환자가 아니어도 도시 병원을 찾아야 하는 농·어촌 지역에도 보건소를 많이 설립해야 한다. 특히 보건소 당국은 지역주민의 이용도가 높은 것에 대비하여 언제나 고도의 의료시설과 양질의 약품을 갖춘 가운데 대민 의료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일선 보건소의 개별적인 독감백신 구입을 폐지하고 조달청을 통해 일괄 계약토록 변경해 공급이 2~3개월 가량 지연되면서 독감 백신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보건소 접종비 보다 2~3배 가량 더 주고 일반 병·의원에서 예방접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마땅히 종전대로 독감백신 등은 보건소가 직접 구입, 주민들에게 신속히 투약토록 해야 한다. 지역주민이 보건소를 믿고 이용하는 것은 주민화합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보건소의 친절하고 신속한 의료활동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3 Good 사과’

그리스 신화에 “사과는 꿀맛이 나고 모든 병을 낫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사과를 많이 먹으면 여성들은 예쁘고 아름다워지며 남성들은 씩씩하고 건강해진다는 말도 있다. 서양 속담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과를 먹어라. 그러면 의사는 파리를 날리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과를 ‘과일의 왕’이라고 지칭하였다. 사과에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식이섬유 등이 고루 들어 있다. 또 칼슘, 철, 나트륨 같은 무기질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칼륨도 많이 들어 있어 체내의 염분을 체외에 배출시키는 작용도 한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 과학자들은 사과를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치가 떨어진다고 하여 실험용 쥐에 사과를 먹여 20~50% 정도 콜레스테롤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것은 건강한 남녀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평소대로 식사를 하고 하루 사과 2개씩을 추가해서 먹었더니 피도 대단히 맑아졌다. 사과가 당뇨병에 좋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선 대구사과가 알려졌지만 지금은 재배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될 정도로 우리와 친숙한 과일이 되었다. 최근엔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3 Good 사과’가 유명과일로 떠올랐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지난 2001년부터 창안한 ‘고품질 과일 생산하기 운동’의 일환으로 생산한 ‘3 Good 사과’는 ‘보기 좋고(Good look), 맛 좋고(Good taste), 몸에 좋은(Good for health) 사과’란 뜻이다. ‘3 Good 사과’는 경기도에서 생산된 사과에만 붙일 수 있는 상표로 지금은 1997년에 결성된 경기도사과연구회 회원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경기지역 농가라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니 더 호감이 간다. 지난 추석 때 최고의 값을 받았다면 그야말로 보기에 좋고, 맛 좋고, 몸에 좋은 사과임이 분명하다. 저농약, 친환경 농산물로 명성이 높은 ‘3Good 사과’가 경기도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사과 중 으뜸 사과’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어교과서의 오류

국립 국어연구원 최용기 학예연구관이 발표한 ‘국어 교과서의 문장 실태’를 보면 국정 국어교과서가 너무 엉터리다. 잘못 사용한 단어, 문장 성분간이 깨진 문장, 외국어 번역투 문장 등 50여 권의 초·중·고 교과서에 잘못된 표현이 300여 개에 이른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해명도 한심하다. “여러 사람이 집필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고 부족한 인력으로 수십 종류의 교과서를 검수하다 보니 문장의 오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부족한 걸 알면 당연히 보충해서 일을 해야 지 이 무슨 무책임한 교육행정인가. 문장 오류 사례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중학 국어 1-2, 26쪽의 “나쁜 식생활 습관은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버려야)’ 한다”, 고등 국어 상, 84쪽의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처자가 있는)’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중학 국어 1-2, 36쪽의 “‘닫혀진(닫힌)’약국” 등이다. 또 중학 생활국어 2-2, 127쪽의 “어린이들이 ‘작동시켜도(작동해도)’안전합니다”, 중학 국어 2-1, 10쪽의 “그날은 프랑스어의 마지막 ‘수업이었다(수업이 있었다)’” 등이다. 외래어 표기에도 오류가 많다. ‘맥베드’와 ‘세익스피어’는 국제음성기호(IPA)와 한글대조표에 따르면 각각 ’맥베스’와 ’셰익스피어’가 옳은 표기이다. “호랑이가 장구 소리에 춤추는 것을 보고”(중학 국어 1-1, 19쪽)에서는 ‘맞추어’라는 서술어가 누락됐고, “청소까지 다 해 놓고 출근하느라고 엄마께서 더 힘드셨잖아요?” (초등 읽기 5-1, 89쪽)라는 문장에서는 경어법이 잘 못 쓰였다. ‘출근하느라고’ 가 아니라 ‘출근하시느라고’고 적절하다. “소년의 마음은 실망에서 단숨에 기쁨으로 뛰어 올랐다” (초등 읽기 5-1, 104쪽)는 문장에서 주어(主語)는 ‘마음’이기 때문에 서술어는 ‘뛰어 올랐다’가 아니라 ‘바뀌었다’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국어교육을 바로 해야 나랏말과 나라글이 지켜지고 계승되는 것 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최용기 학예연구관의 지적을 곧 바로 반영해 오류를 최소화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여당 사람들

“신행정수도특별법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한다. 헌법 72조(중요정책의 국민투표)에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의장 등 몇몇 여당 국회의원들 주장이다. 헌재의 위헌결정이 나기 전엔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언론의 촉구에 눈길도 돌아보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선 그런 말을 한다. 입장에 따라 바꾸는 말은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이제 국민투표의 대상도 못 된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죽은 법률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더러 공개토론을 벌이자고 한다. 유시민 김원웅의원 등이 소속된 참여정치연구회 국회의원들이 하는 소리다. 세상에 재판을 두고 재판관 보고 토론을 벌이자는 주장은 살다가 처음 듣는 희한한 소리다. 세계 법조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말도 아닌 말을 명색이 여당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해대는 것은 일종의 협박이다. 노사모 등 친노세력 200여명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재판관 규탄대회란 것을 열었다.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결정땐 극찬을 아끼지 않더니 위헌결정엔 규탄한다고 나섰다. 재판이 마음에 들면 옳고 마음에 안들면 그르다는 주장은 독재다.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되며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국회의원이나 친노세력들 말대로라면 권력분담 구조는 형식일 뿐 대통령 뜻에 구색맞추는 로봇이 돼야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니 해야할 것은 따로 있다. 위헌결정으로 신행정수도 대신에 이에 버금가는 ‘제2특별시’다 ‘행정도시’다 하는 것을 추진할 꿍꿍이 속 같은데 이도 법을 만들어야하고 법을 만들면 마땅히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적 의사를 물어야 한다. 청와대 등만 옮기지 않으면 위헌결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속셈으로 사실상의 신행정수도를 추진할 요량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또한 법리상 위헌결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보기가 심히 어렵다. 민주주의가 수반하는 다원화사회는 패거리 작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가 잔꾀정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권력형 소용돌이가 심해 사회가 너무 어지럽다. 살기도 어려운데 걱정이다./임양은 주필

파주시장 보선

파주시장 6·30 보선이 과열 기미를 보인다. 유세장에서 서로 입장이 다른 지지자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는 것도 추태이지만, 여야 수뇌부가 대거 동원되는 대리전 양상으로 가는 건 유권자들이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지난 주말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계속 중량급 소속 정치인을 투입한다는 것이 여야의 전략이다. 기초자치행정은 사실상 정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 상관이 없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를 두고 여야가 이처럼 열을 올리는 것은 일종의 기세 싸움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시장·군수 자질이 의심스런 사람이 소속 정당바람에 당선되는가 하면, 시장·군수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 소속 정당 간판 때문에 낙선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물론 정당 선호도와 인물평가가 일치한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엇갈리는 수가 잦았다. 이래서 기초단체장 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의 정당 공천 배제는 더 두고 논의해야 할 일이지만, 당장 거부감을 주는 것은 정치권이 도대체 뭘 했다고 유권자들 앞에 나서 감히 표를 구걸하느냐는 것이다. 백성들은 먹고 살기에 지쳐있는 판에 한 일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정치권이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모양새가 참으로 보기 거북하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표를 주고싶다가도 주고싶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는 유권자들도 있다. 어느 정당 소속이 당선되든 선거가 끝나면 이긴 정당은 일과성 정치적 잔치만 치를 뿐, 그 정당이 기초자치단체 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정당이 지역주민을 특별히 보살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누가 과연 살림꾼이냐가 선택의 기준이 돼야하는 게 유권자들 입장이다. 후보자들을 검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래서 선거는 막중하고 유권자의 책임은 무겁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건달은 배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파주시는 미래 가치의 잠재력은 풍부하면서도 현실은 살림살이가 무척 어려움이 많은 기초자치단체다. /임양은 주필

방송의 언어오염

우리의 말은 한글로는 같아도 발음에 따라 뜻이 다른 말이 무척 많다. 예를 들면 간부(幹部)는 짧은 단음인 반면에 간부(姦夫)는 발음이 긴 장음이다. ‘감사’도 단음으로 발음하면 감독하고 검사한다는 뜻의 감사(監査)이지만 장음으로 발음하면 고답다는 감사(感謝)의 뜻이 된다. 방송에서 이를 혼동하여 시청하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 예컨대 “간부(幹部)회의를…” “가(안)부(姦夫)회의…”로 발음하는가 하면 “감사원 감사(監査院 監査)”를 “가(암)사원 가(암)사”(感謝院 感謝)로 턱없이 방송하기가 예사다. 주목되는 대학 교수의 논문이 나왔다. 뉴스 등 방송에서 장·단음의 발음이 잘못되어 엉망인 내용을 분석한 논문이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의 이 논문은 이색적이면서 상당히 구체적이다. 장·단음의 비교 사례로 눈(雪)은 장음이고 눈(目)은 단음인 주요 단어의 예를 수록한 한편 방송인 실명(實名)으로 실태를 집중 분석했다. 방송 앵커 기자 등 36명을 대상으로 A·B·C·D·E 등 5등급으로 나눠 E등급은 당장 방송을 떠나야할 정도로 언어의 오염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E등급이 36명중 무려 23명이나 된다. D등급은 잠시 방송을 중단하고 전문가에게 재교육을 받고 복귀해야 한다는 것으로 11명이다. 결국 대부분의 앵커나 기자들이 엉터리 국어 발음의 엉터리 방송을 한다는 결론이 된다. 방송의 언어 오염은 그렇잖아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심각한 실정이다. 이로도 모자라 보도 프로그램까지 설상가상이고 보면 예사일이 아니다. 방송은 말이 생명이다. 정확하게 사용해야할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언어공해다. 문제는 시정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김 교수는 “방송위원회에 10여차례 건의하는 등 잘못을 지적했지만 반응이 없어 실명비판의 극약 처방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명비판을 했다하여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보기는 좀처럼 어렵다. 외래어엔 사족을 못쓰면서 국어 발음을 홀대하는 것은 국적 상실이다./임양은 주필

國 旗

역사적으로 볼 때 국기는 주로 외교적 목적이나 왕실을 대표하는 상징적 성격이 짙었다. 태극기의 경우도 조선 왕실의 어기(御旗)나 대한제국 국기로만 있을 때는 백성(국민)들의 애정이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러나 외세로부터의 독립정신을 고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태극기는 약화된 왕실을 보호하고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민기(民旗)로 인식됐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당한 이후 태극기에 민족애가 녹아 들었고 3·1운동 이후에는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나 함께 태극기를 국권회복의 상징으로 삼았다. 8·15 광복 이후 1949년 1월 국기제정위원회를 구성한 대한민국이 항일애국 선열들의 민족혼이 담겨 있던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함으로써(문교부 고시 제2호, 1949·10·15)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은 고스란히 유엔의 유일합법 정부인 대한민국으로 계승됐다. 그러나 북한은 1948년 4월 남북협상 전까지 소련 깃발과 함께 태극기를 공식 사용하다가 붉은 군대식(별, 낫)의 소위 ‘인공기’(홍람오각별기)를 자신들의 깃발로 확정(1948·4·29)함으로써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민족정기의 근원인 태극기 정신으로부터 이탈했다. 얼마 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대만이 올림픽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땄을 때 여자선수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승에 대한 감격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국부(國父) 손문(孫文)이 고안한 자유중국기(靑天白日滿地紅旗) 대신 대만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이 게양되고 국가(國歌)대신 IOC의 국기가(國旗歌)가 울린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식민지 백성이나 패전 국민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하여야 한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서 우승자의 당당한 모습 대신 고개 숙인 모습으로 있었던 이유는 가슴에 태극기가 아니라 일장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손기정 선수의 모습은 무언의 독립운동 그 자체였다. 이렇듯 귀중한 국기(태극기)가 요즘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관공서도 있었다. 민족정통성의 국기(國基)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식물의 스트레스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산업용 소재를 생산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효율적인 공장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화석에너지의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지구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식물의 종류와 숲의 면적도 좁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21세기가 가기 전에 인류의 생존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식물의 스트레스는 크게 병충해와 같은 생물학적 스트레스와 대기오염 물질, 온도변화 등 비생물학적 스트레스로 나뉜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물안의 산소가 전자와 반응하면서 과산화수소, 수퍼옥사이드 라디컬(SAR) 등의 ‘활성산소종(ROS·reactive oxygen species)’으로 변한다. 강한 독성을 가진 ROS는 생체의 정상적인 대사과정에서도 소량 만들어지지만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다하게 생성돼 세포막과 단백질을 분해하고 엽록소 파괴, 광합성 억제 같은 치명적 피해를 식물에 남긴다. 사람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ROS가 몸안에서 생성된다. ROS는 암을 유발하는 가장 유력한 물질 중 하나다. 2002년 말 개봉한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에서 악한 마법사 사루만의 기지를 무력화시킨 것은 나무의 요정 ‘엔트’다. 오래된 숲의 나무를 잘라내 황폐화시키는 오크(Orc·괴물)들의 만행을 보다 못한 나무들이 악한의 소굴을 몸소 때려 부수는 장면은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한다. 식물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많은 방어제를 갖고 있다. 덥다고 에어컨을 틀 수도 없고 보기 싫다고 돌아앉을 수도 없는 식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온 몸으로 이겨낸다. 뜨거운 태양, 가뭄과 홍수, 한파에다 특히 인간이 날마다 만들어내는 온갖 오염물질 등 식물이 극복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실로 많다. 그러므로 식물은 몸안에서 ROS를 없애는 항산화 물질을 고농도로 만들어 낸다. SAR을 없애주는 수퍼옥사이드 디스뮤타제(SOD) 역시 식물이 만들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물질이다. 식물의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항산화 물질의 농도는 높아진다. 그러니까 식물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인류가 편안한 것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참새 잔털

참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텃새다. 지구상에는 19종의 참새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에는 참새와 섬참새의 2종이 살고 있을 뿐이다. ‘물명고·物名考’에 따르면 참새는 한자어로 작(雀)이 표준어였고 와작(瓦雀)·빈작(賓雀)·가빈(嘉賓)이라고도 하였다. 늙어서 무늬가 있는 것은 마작(麻雀), 어려서 입이 황색인 것은 황작(黃雀)이라 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진쵸’를 참새라 하였는데 진쵸는 진추(眞?), 참새라는 뜻이다. 참새는 겨울철 특히 납일(臘日)에 많이 잡아 구워 먹어 납향절식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특히 함경남도 갑산에서는 겨울이 되면 말총으로 만든 올가미나 덫으로 참새를 잡아 독안에 모아 두었다가 납일에 구워 먹었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금부 중품에는 참새의 알·뇌·머리피의 약효가 기록돼 있고, ‘동의보감’에는 참새의 고기·뇌·머리피·알과 수컷의 똥의 기(氣)와 미(味), 그리고 약효를 소개하였는데 고기와 알은 정력제, 뇌는 귀머거리를 주치하고, 머리피는 작맹증(雀盲症·야맹증)을 다스린다고 한다. 수컷의 똥은 목통(目痛)·웅절·현벽(?癖·응어리)·산가·기괴(氣塊)·복량(伏梁)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새끼 체중은 23g, 어미는 22~26g 정도의 참새에 약효가 이토록 다양한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최근 알려진 사실로 북한의 김일성이 생전에 덮고 자던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 만을 써서 특별히 만들었다고 한다. 김일성 장수연구소 기초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98년 탈북한 한의사 석영환씨가 낸 책 ‘김일성 장수건강법’을 보면, 김일성 이불 한 채를 만드는 데만 70만 마리의 참새가 필요했다. 17세부터 20대 초반의 미모가 빼어난 여성들로 이뤄진 ‘기쁨조’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참새의 턱 밑 잔털 만을 써서 만든 이불 얘기는 초문이다. 김일성은 겨울에 누런 강아지를 사과나무 뿌리 부근에 묻어 놓고, 봄에는 그 자리에 개구리를 묻어 양분으로 사용해 재배한 일명 ‘단백질 사과’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권력자의 욕심이 실로 불가사의하다./임병호 논설위원

‘통일대화의 광장’ 수원 행사

수원시내 호텔 캐슬 영빈관에서 전국 규모의 ‘2004년도 통일대화의 광장’ 행사가 있었다. 통일교육전문위원 경기도협의회(회장 최원형)가 주최하고 통일부통일교육원이 후원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을 비롯한 전국의 통일교육전문위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개회식에 이어 최광식 고려대 교수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대응방안’이라는 전문가 초청 강연으로 시작됐다. 통일교육원 원장 주재의 오찬이 있고 나서는 북한이탈주민(3명)과의 대화가 1시간동안 진행됐다. 다음엔 대북 식량차관 인도요원으로 참가했던 전문위원들의 방북경험 발표가 ‘식량차관 인도 현장에서 본 북한’이란 제목으로 있었다. 탈북예술인 초청공연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평양민족예술단 등 단원이었던 남녀예술인 15명이 약 60분간 공연했다. ‘반갑습니다’ ‘아리랑’(합창) 재강춤(무용) 금강산타령(독창) 강강수월래(무용) ‘휘파람’(2중창) ‘서울에서 평양까지’(독창) ‘밀양아리랑’(3중창) ‘뻐꾸기’(독창) 인형춤(4인무) 악고독주, ‘광한루로 어서가자’(2중창) ‘장고춤’(독무) ‘통일무지개’(병창) ‘우리의 소원은 통일’(합창) 순으로 레퍼터리는 이어졌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의 ‘최근 남북관계 현황과 전망’ 주제의 특강이 있었다. 특강은 최근 남북관계 평가, 북핵문제 동향, 인적·물적 교류, 경제협력사업(개성공단·철도 및 도로연결·금강산 관광), 대북인도적 지원, 북한 이탈주민 대책, 향후 중점 추진 방향 등 폭넓은 언급이 있었다. 이 차관의 특강은 참여정부 들어 강조한 대목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정권색을 탈피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이 차관 주재 만찬이 끝난 오후 7시까지 장장 9시간에 걸친 전국 규모의 큰 행사였다. ‘통일대화의 광장’ 중간에 더러 견해가 다른 의견이 교환되면서 큰 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잘 마무리되곤 했다. 이 행사는 통일교육전문위원경기도협의회가 유치했다. 벌써 일주일 전인 지난 14일 있었던 일이지만 알려지 지 않아 소개하는 것이다./임양은 주필

국민고통지수

국민이 겪는 고통은 정신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있다. 경제적인 것은 경제생활의 어려움이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소비의 연속이다. 일상의 의·식·주 생활 자체가 돈이다. 이밖의 자기생활 역시 돈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돈을 벌어야 산다. 인간은 소득을 필요로 한다. 소득을 위해서는 생업을 가져야 한다. 생업을 가져도 물가가 안정돼야 한다. 물가 상승률이 소득을 앞지르면 실질 소득은 그 만큼 줄어 마이너스 소득으로 역전된다. 국민고통지수란 것이 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한계로 치수를 계산한다. 찬바람은 불어오는 데 노숙자는 늘어만 간다. 장년실업은 물론이고 청년실업 또한 멈출 줄을 모른다. 이런 가운데 물가는 거의 연일 치솟기만 한다. 도대체가 뭐 하나 나아지는 기미가 없다. 신용불량자만 해도 매월 3만9천여 명씩 늘어나 신용불량자 구제가 말처럼 효과를 못 보고 있다. 경제는 국가경쟁력이 생명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형편없이 낮게 매겼다. 이에 의하면 국가경쟁력이 18위에서 29위로 11단계나 곤두박질 쳤다. 불과 1년 사이에 이런 급전직하의 변이 생겼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경제를 걱정한다. 외국인들만이 아니다. 민중사회는 더 많은 걱정을 한다. 이런 데도 태평스런 사람들이 있다. 권력을 쥔 위정자들이다. 청와대측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코방귀를 뀌고 있다. 조사가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WEF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하긴, “큰 틀로 보면 한국경제는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큰 틀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경제를 걱정하는 것이 되레 걱정이다”라고도 했다. 국민고통지수가 심각하다. 지난 8월의 고통지수가 8.3으로 2001년 6월의 8.4이후 3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 기관이 아닌 재경부 통계가 이러하다. 이도 잘못된 것이라 할지 모르겠다. 뭘 모르는 소리만 거듭 되풀이하는 청와대 사람들이 정말 답답하다. 외계인들 같다. /임양은 주필

‘쟁이골’

농익은 가을 정취속에 문·무·예(文·武·藝)의 대서사시(大敍事詩)가 펼쳐졌다. 멀리서 전해오는 서해바다 갯내음이 싱싱하다.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함산초등학교 마당이 질펀한 가을추렴으로 무르익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동아리 동아리마다 세파일랑 날려버린 듯 정담으로 가득했다. 쟁이골이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여는 단봉예술제가 올해 여덟번 째 지난 16일 오후 5시에 열려 저녁 늦게까지 있었다. 조선검 무예24기는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 머물 때 장용영 군사들이 숙위하기 위해 익혔던 조선조 대표의 전통무예,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그대로 수련해온 ‘무예 24기 보존회’회원들의 다채로운 시연이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의 보급을 위해 쟁이골은 2004 겨울 무예학교를 오는 12월 문 연다. 이밖에 또 열다섯가지 프로그램에 의한 다양한 문화현장학습이 펼쳐졌고, 풍물 및 노래패 공연, 서예 퍼포먼스에 이어 시낭송이 있었으며 수원 차인연합회의 차(茶) 모임이 있었다. 기전(畿甸)땅, 들 골짜기 할 것 없이 문화유적지며 빼어난 산하를 구석구석 누벼 후대에 남길 영상을 지난 20여년동안 카메라에 담아온 ‘마당발’ 조형기씨(경인일보 편집위원)의 경기산하전 또한 돋보였다. 외부의 화환 증정 같은 건 고맙지만 절대 사양하곤 한 조촐하면서 실속있는 행사를 올해도 고집했다. 쟁이골 촌장 김명훈씨는 넉넉한 가슴에 항상 여유를 가지면서도 그런 옹고집쟁이기도 하다. 중부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사단법인 경기언론인클럽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스스로 몸을 낮추는 그다. 나이에 비해 희끗희끗함이 무성한 턱수염의 홍안백발이 일품인 미염공(美髥公)의 사나이다. ‘예술가는 무의식의 환상에다 즐거움을 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자리는 펼쳐져 있습니다.’ 가을추렴잔치 초대장에 적힌 쟁이골 촌장 말이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청명한 가을밤이었다. /임양은 주필

단풍

단풍 현상은 낙엽수가 겨울을 나기 위한 자구책의 결과다. 나무는 잎에서 광합성(光合成·녹색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일)을 해 양분을 만들어야 살 수 있다. 광합성엔 햇빛과 수분·이산화탄소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겨울에는 온도가 낮고 물이 부족해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무는 그래서 여름 한 철 잎을 무성히 피우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해 양분을 축적한 뒤 겨울잠을 잔다. 나무가 잎을 단 채 겨울을 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수분이 잎의 기공을 통해 빠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결국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려야만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것이다. 낙엽을 만들기 위해 나무는 기공을 모두 닫고 떨켜층을 만들어 잎에 공급되는 수분을 차단한다. 떨켜는 잎꼭지가 가지에 붙은 부위에 형성된다. 기공이 막혀 이산화탄소의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고 떨켜 때문에 물을 공급받지도 못하지만 나뭇잎은 일정시점까지 계속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이때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은 반대로 떨켜에 막혀 줄기로 가지 못한 채 잎에 남게 된다. 양분이 쌓이면서 잎 안의 산성도가 높아지게 되면 엽록소가 파괴된다. 대신 엽록소(신록)에 가려 여름내 보이지 않던 노란 색소(카로틴과 크산토필)가 나타난다. 이 현상이 바로 단풍이다. 이 과정에서 잎에 없던 붉은 색소(안토시아닌)도 생성된다. 식물(나무)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붉은 색소와 공존하는 엽록소나 황색·갈색 색소 성분의 함유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노랑 단풍이 드는 이유는 노란 색소의 경우 햇빛을 받아도 변질되지 않으므로 엽록소가 파괴된 뒤까지 잎속에 남아 노랗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식물은 낮의 길이와 온도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가을에 낮의 길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월동준비에 들어간다. 단풍은 사실 나무의 생존의 표현이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즐긴다. 그러나 지금 지구의 온난화로 봄과 가을을 잃는 중이다. 계절을 잃는다는 것은 재앙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게이트 볼

‘게이트 볼’은 프랑스의 ‘크로케’에서 힌트를 얻어 1947년 일본인 스즈키 가즈노부가 고안한 경기다. 골프와 당구를 합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가로 25m, 세로 20m의 코트에서 각각 5명으로 이뤄진 두 팀이 스틱으로 각자의 공을 치는 경기다. 3개의 게이트를 통과하고 경기장 가운데에 세워진 막대(골폴)을 맞히면 득점한다. 게이트 1개를 통과할 때마다 1점씩을 준다. 마지막으로 골폴을 맞히면 2점을 준다. 30분 안에 5명이 모두 골폴까지 맞혀 25점(5명×5점)을 먼저 얻으면 이기는 방식이다. 만일 30분 안에 두 팀 모두 25점을 얻는 데 실패하면 많은 득점을 한 쪽이 이긴다. 타격기회는 1인당 차례로 1번씩 주어진다. 하지만 게이트를 통과할 때 자기 공으로 다른 공을 맞히는 ‘터치’를 하면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 자기 공으로 상대팀 공을 경기장 밖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경기 전에 얼마나 요령있게 선수들의 타격순서를 배치하느냐가 경기 승패의 관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이트 볼은 한 순간에 큰 힘을 내야하는 동작이 없기 때문에 특히 노인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게이트 볼은 골프나 테니스를 치던 사람들이 주로 많이 즐기는데 개인운동 측면이 강한 골프에 비해 게이트 볼은 5명이 팀을 이뤄 하는 단체경기여서 팀워크와 작전이 필요하다. 또 작전을 짜느라 머리를 써야 하므로 치매 예방도 되고 계속 걷다 보면 운동량도 만만치 않다. 게이트 볼 전국 회원수는 대략 30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90% 이상이 60살 이상의 노년층이다. 수원, 서울, 전주, 광주, 제주 등지에는 전용경기장까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애호가들이 많은데 부인과 함께 게이트 볼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은 게이트 볼을 즐길 여력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공원에서 우두커니 혼자 또는 삼삼오오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지방자치단체 당국이 공원에 게이트 볼 경기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노인은 너무 쓸쓸해 보인다. /임병호 논설위원

식탁의 평화

인류 역사에서 불량식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대 로마시대라고 전한다. 알로에 등을 넣은 인공포도주가 문제가 됐다. 1819년에는 양조업자 등 100여명이 맥주에 맥아와 호프 대신 대용물질을 집어넣다가 쇠고랑을 찼다. 첨가물 중 하나인 코쿨러스 인디커스는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다. 우유와 맥주에 물을 타거나 커피에 치커리 뿌리를 넣는 것은 그나마 양심적인 축이었다. 19세기 탄화납이 첨가된 설탕과 광물성 염료로 뒤덮인 사탕, 납, 고춧가루는 도시 빈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20세기에는 음식의 오염도 한 단계 더 타락했다. 비양심적 제조업자의 개인적 비리가 집약 농업과 상업화된 목축업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번져나간 것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폭발하면서 소수의 농부가 다수의 도시 일꾼을 먹여 살리려면 방법은 많지 않았다. 기술발전의 미명 아래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축산업은 음식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 초식동물에 육식 사료를 주면서 벌어진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좁은 우리, 항생제 범벅의 사료, 농약 덩어리의 야채, 화학첨가제가 섞인 가공식품 등은 먹을거리의 오염이 산업사회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영국은 식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격으로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했던 영국정부는 전후 식량증산에 온 행정력을 투입했다. 농업보조금이 도입됐고 농약을 살포하는 트랙터가 전 농가에 보급됐다. 소들은 고단위 유기인계 농약을 먹고 살이 올랐고, 양식 연어는 화학약품을 먹으며 고밀도의 양어장 안에서 목숨을 지탱했다. 심지어 정부는 군사용 신경가스에서 추출한 독을 소의 등뼈에 주입해 기생충 박멸을 명령하기도 했다. 결과는 광우병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인간 광우병 사망자 150여명 중 영국이 143명을 차지했다. 지금 온 세계는 식탁에 번지는 재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값싸게 대량으로 식량을 얻어내는 것이 실은 값비싼 대가를 유예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소비자가 유기농식품을 사는 개별적인 선택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식탁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임병호 논설위원

타이슨

1990년대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으로 스포츠 재벌에 올랐던 마이크 타이슨(38)이 파산을 겨우 면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무하마드 알리 이후의 전성기를 누렸던 타이슨은 ‘핵주먹’으로 불리는 주먹 하나로 2억달러(2천300억원)를 벌어 들였다. 이런 데도 재산은 커녕 4천400만달러의 빚을 진 모양이다. 1천400만달러는 그의 프로모터가 갚고 나머지 3천만달러는 자신이 4년간 나눠 갚는다는 빚청산계획을 최근 뉴욕 파산법원이 받아들여 가까스로 파산선고만은 모면했다는 소식이다. 벌어서 갚는다는 게 결국 링에 다시 오른다는 것이지만 이미 바람 든 차돌처럼 빛바랜 왕년의 ‘핵주먹’이 전성기의 상품가치를 낼 것으로는 보기가 어렵다. 뱅골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길렀을 만큼 호사를 일삼고 잇따른 성폭행 송사 등으로 흥청망청 돈을 물쓰듯이 한 결과가 이런 걸 보면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는 우리나라 전래 속담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국내 스포츠 스타들은 돈 관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스포츠 여러 분야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의 수입이 아주 짭짤하다. 비록 타이슨만큼은 많이 벌진 못해도 평소에 수입관리를 잘하여 은퇴에 대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체력과 기량의 한계에 대한 대비인 것이다. 지난 10일 미 프로축구(MLS) 시즌 마지막 LA 홈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축구 스타 홍명보 선수는 거액의 사재로 후배들을 위한 ‘홍명보장학재단’까지 세웠다. 스타플레이어의 명멸이 심한 게 스포츠 세계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고, 챔피언은 빼앗기 위해 있고, 승부엔 의외성이 있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부침을 거듭해가며 명멸한다. 어찌 스포츠세계 뿐이겠는가,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권은 유한하다. 이 정권의 권력자들은 이 정권이 물러간 뒤의 자신을 생각하여 자기관리에 많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중엔 자신의 오만을 후회해도 타이슨처럼 이미 때는 늦다. /임양은 주필

한국어 공부 열풍

외국인의 한국어 공부 열기가 한창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만이 아니다. 외국의 현지인들도 상당수가 한국어 배우기에 열성이다. 일본은 유수한 대학들이 한국어 강좌 수를 늘릴 정도로 한국어 열기가 대단하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홍콩 베트남 중동 유럽 등지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현지인들이 날로 느는 것 같다. 얼마전 정부가 실시한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1만7천531명중엔 해외 동포는 10% 뿐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원한 외국인들이 무려 90%를 차지했을 정도다. 한국어를 배우고싶어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류(韓流)에 호기심이 생겨서, 비즈니스를 위해서, 그냥 한국을 좀더 알고 싶어서 배운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가 어떻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져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 강사 양성, 교재 개발 등 정부의 뒷받침이 적극 강구돼야 할 것이다. 외국인의 한국어 열기는 우리의 문화를 해외에 파급시키는 데 더 할 수 없는 좋은 계기가 된다. 예컨대 노벨 문학상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문학인들 중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만한 작품이 꼭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묻혀가는 아까운 작품이 있다. 이의 영문 번역 보급도 좋지만 외국인이 자국에서 인세를 내가며 번역하는 기회를 외국인의 한국어 공부로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한국어 공부 열기는 일차로 경제적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없지 않다.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도 세계 여러 나라의 말과 글을 공부하여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뿐만이 아니고 비문명권이나 약소국의 희귀성 언어도 잘 아는 전문가를 양성해 둘 필요가 있다. /임양은 주필

우주의 무법자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질주해 온다. 미국 대통령은 소행성 폭파를 추진한다. 무게 5천억t 규모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인류 공멸의 재앙을 맞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주선이 출발한다. 핵 폭탄으로 소행성을 폭발시키기 위해서다. 우주선은 소행성에 안착, 천신만고의 작업 끝에 폭발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소행성을 겨우 두 조각으로만 냈을 뿐 당초 계획한 공중분해는 이루지 못한다. 지구는 이제 두 개의 소행성으로 공포에 잠긴다. 미국 대통령은 소행성 충돌이후 3년을 견딜 수 있는 산간벽지 동굴로 제한된 사람을 선발하여 피신시킨다. 홍수의 ‘방주’가 아닌 방주구실을 할 소행성의 동굴인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두 개의 소행성 중 작은 것이 대서양에 떨어진다. 대서양은 가공할 해일을 일으켜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 여러 도시를 비롯한 미 동부지역을 휩쓸면서 쑥대밭을 만든다. 이미 떨어진 작은 소행성보다 훨씬 더 큰 또 하나의 소행성도 벌써 대기권을 들어서 지구로 돌진한다. 지구는 거의 절망이다. 이 때 우조선 선장은 남은 핵 폭탄을 우주선에 실은 그대로 큰 소행성에 뛰어들어 자폭함으로써 공중분해 시키는 데 성공한다. 우주선 대원들의 비장한 순직으로 지구를 구출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하고 미미 레더가 감독한 영화 ‘딥 임팩트’의 내용이다. 물론 황당한 공상영화다. 그러나 근래 외신이 전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발표는 영화 ‘딥 임팩트’를 연상케 한다. 지난달 29일 길이 4.6㎞ 폭 2.4㎞ 규모의 소행성이 지구를 스쳐갔다는 것이다. 스쳐갔다는 게 지구와 달 사이의 4배인 160만㎞라지만 이같은 근접은 천문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으로 드문 현상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소행성이 지구의 육지에 떨어졌다면 공룡멸종과 같은 재앙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핵 폭탄 수십개, 수백개가 폭발하는 위력으로 뿜어내는 잿빛구름이 햇빛을 수년동안 가리게 된다. 천문학계는 크고 작은 이같은 소행성이 3만개에서 4만개로 추정하고 있다. 소행성은 태양계를 멋대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우주의 무법자다. /임양은 주필

身 敎

조선시대의 ‘교수(敎授)’는 중등학교의 유생을 가르치는 교원과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기술직 관리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중등학교는 서울에 있던 사학(四學)과 지방의 향교를 가리키는데 사학의 교수는 성균관 관리가 겸하고 향교의 교수는 문과출신이나 생원 진사 중에 임명되는 것이 일반 관례였다. 기술직 교수에는 신학교수, 율학교수, 의학교수, 한학교수 등이 있었는데 해당분야의 관청에 근무하면서 후배를 가르치는 임무도 병행했다. 조선시대의 교수의 직급은 종6품으로 중급관리 중에서 제일 낮은 등급이었다. 기술직 교수는 전문분야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교수와 공통점이 많지만 고급관리로 진출할 수 없는 중인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박사(博士)’라는 관리도 있었다. 국왕 자문기관인 홍문관이나 국가문서를 작성하는 숭문원,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성균관에 소속된 실무관리였다. 이들은 정7품의 하급관리였지만 학문을 응용하는 기관에 소속돼 고급관리로 승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수와 구별됐다. 대학이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때 이에 해당하는 기관으로는 시강원과 강서원, 성균관이 있었다. 이 세 기관은 왕세자, 왕세손, 문과에 응시할 유생의 교육을 담당했으므로 이들 기관의 관리가 오늘날의 대학교수에 해당한다. 그런데 세 기관의 책임자는 고급관리가 겸임했다. 시강원과 강서원의 책임자는 스승을 의미하는 사(師)와 박(博)였는데 이는 최고 지도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였으므로 최고위 관리인 의정부 정승이 담당했다. 이에 비해 성균관의 책임자는 그보다 직급이 낮은 홍문관 대제학이 겸임했다. 이 세 기관의 관리는 지도자의 양성을 담당한 이상 ‘학식과 행실에 대한 평판이 사림(士林)들 사이에 뛰어난 사람’이어야 했다. 높은 학식과 모범적 품행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학교수에게 요청되는 자격과 다를 바 없다. 전통시대의 교육에서는 말로 하는 ‘언교(言敎)’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신교(身敎)’가 중시됐다. 스승의 일상적 말과 행동을 통해 학생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수행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수들이 필히 생활화해야 할 덕목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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