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베드타운인가?

엿장수 마음대로라더니 건설교통부 마음대로다. 건교부는 고양 행신2지구(22만7천평), 광주 진월지구(20만4천평), 남양주 가운지구(15만평), 의왕 청계지구(10만2천평), 의정부 녹양지구(9만2천평) 등 5개지구 77만5천평에 국민임대주택 9천454가구를 포함한 1만6천860가구분의 아파트 단지를 세운다. 주택공사를 통해 2006년말까지 지어 입주시킬 모양이다. 예정지구가 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므로 환경훼손이 심화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심각한 것은 베드타운의 증가다. 보나마나 서울 사람들이 대거 입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자치단체는 지방세 세입보다 훨씬 더 많이 드는 상·하수도 및 청소 등 이밖에도 숱하게 쏟아질 행정수요로 마냥 시달릴 것이다. 중앙정부는 경기도 비대화를 이유로 모든 시책에서 홀대를 일삼고 있다. 역차별의 홀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장도 마음대로 못짓게 하고 대학 입학정원도 동결하기가 일쑤다. 이러면서도 도내에 베드타운만 자꾸 양산하는 것이 중앙 정부다. 원인 제공을 자기네들이 해놓고는 이를 트집잡아 부당한 역차별을 능사로 삼는다. 실로 적반하장이다. 도내 어디를 가도 차가 막히는 교통난의 가중, 이로 인한 대기오염의 심화 또한 중앙정부가 베트타운을 양산한 데 크게 연유한다. 자기네들 입맛대로 주물러 놓고는 뒤책임은 지방행정에 떠넘기는 것이 이 정부의 잘못된 수도권 정책이다. 이젠 하다못해 그린벨트 해제 지역까지 침범해 가며 베드타운을 또 만든다고 한다. 말이 해제지역이 지 사실상 해제해서는 안되는 청정의 자연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 공사의 긍정적 측면은 다만 건축 경기의 내수에 도움을 주어 침체된 경제를 지탱하는데 다소나마 힘이 되는 것이다. 경기도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희생만 당하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당하지마는 않을 것이다. 경기도 지역사회도 민심은 살아 있다./임양은 주필

김장

김장은 겨울 양식의 반이라고 했다. 한 집에서 배추가 보통 반접(50포기) 또는 한접(100포기)씩 담궜고 대가족 집에서는 여러 접(수백 포기)을 담궜다. 배추만이 아니고 무우도 담궜다. 이래서 김장하는 날은 온 집안이 잔치집처럼 떠들석하여 이웃끼리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기도 했다. 지금 김장을 이렇게 담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많아야 열포기 스무포기 정도 담그는 것이 고작이다. 전같지 않아 먹꺼리가 많아졌고 사시사철 채소가 출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 지 이젠 이나마 김장을 담그지 않는 집이 늘어간다.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310명의 주부가운데 ‘올해 김장을 담지 않겠다’는 사람이 33.2%(103명)나 된다. 이 중 20대 주부는 ‘담글 줄 몰라서 담지 않은다’는 응답이 가장 높다. 김장을 담지 않겠다는 응답자들은 부모나 친지들에게 얻어먹지 않으면 사먹겠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 참 많이 편해졌다. 이리하여 김치가 기업화 품목으로 주문생산할 정도가 된 것 같다. 김치 하나 담글 줄 몰라도 당당해 하는 신세대 주부들이 부럽기도 하다. ‘김장을 담지 않겠다’는 주부가 앞으로는 더욱 더 늘어 김장을 담그는 게 오히려 시대에 뒷떨어져 보이는 세태가 올 줄도 모른다. 돈주고 사먹으면 될 일에 애써가며 김장을 담그는 것은 비경제적이란 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인스턴트식품이나 규격식품에 길들여져 가는 주부들이 가족의 식탁위에 얼마나 정성어린 음식을 올려 놓는지는 의문이다. ‘음식맛은 주부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옛말이 점차 무색해져 간다. 생활양식은 바뀌어도 가족의 건강은 식탁을 통해 주부가 책임지는 가정생활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김장철이 곧 다가온다. 설령 김장을 담글 줄 잘 몰라도 단 몇포기나마 자기 손으로 담근 김치를 가족들 식탁에 올려놓고자 하는 가족사랑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희귀질환 관리시스템

의학적으로 원인이 확실하지 않고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후유증이 생길 우려가 있는 병이 희귀병이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병을 천형(天刑)으로 알고 본인들이 걸머지고 간다. 발병 단계에서 치료까지 각종 장벽 앞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중 대부분은 희귀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원인불명의 병으로 알고 체념한다. 50만명으로 추정되는 희귀병 환자 중 1만3천여명만이 희귀병 확진을 받았다. 200여종에 달하는 희귀병의 증세가 뭔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면 어디서 진단을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자료가 없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도 않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못지 않게 엄청난 진료비에 절망한다.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좁아 진료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국고 지원 기준도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내 숨지게한 전모씨의 경우 3년간 총 진료비가 1억7천100만원으로 이 중 49%인 8천300여만원이 환자 부담이었다. 전씨는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팔아 사글세로 옮겼으며 그래도 부족해 5천만원의 빚을 졌다. 광주(光州)에서 윌슨병을 앓던 아버지(59세)가 같은 병을 앓는 외아들(28세)을 목졸라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희귀병 환자나 가족을 ‘자살’이나 ‘살인자’의 길로 내모는 데에는 정책 부재, 사회적 냉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 복지부가 연내에 희귀병 환자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희귀병 전문 홈페이지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키로 한 것은 다행이다. 내년 5월에는 만성병 관리법을 만들어 희귀병 지원 근거를 담는다고 한다. 기왕이면 건강보험 이외에 별도의 재정을 마련해 희귀질환자들에게 의료비 혜택과 장기요양시설을 제공하거나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민간 사회복지시설을 지원·감독하는 ‘희귀질환 관리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희귀병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문화재적 육림정책

경복궁 정전(正殿)이자 국내 최대 중층 건물인 근정전(勤政殿·국보제223호)이 4년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11월 일반에 공개된다. 근정전은 2009년까지 총 1천789억원이 투입된 경복궁 권역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68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1999년 전면 보수에 들어가 최근 공사가림막이 철거되면서 장엄한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임금이 정사에 힘쓴다는 뜻을 지닌 근정전은 문무백관의 조하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법전으로 태조 3년(1394)에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고종 4년(1867)에 재건됐다.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등 임금들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근정전은 상하 월대 위에 이층으로 지은 건물이지만 내부는 아래 위층 구분없이 중층으로 이뤄졌다. 고종 4년에 중건된 이후 130여년만에 전면 보수공사를 착수한 근정전은 당초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에 맞춰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훼손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공사기간이 연장됐다. 특히 근정전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주기둥 4개 중 소나무를 쓴 1개를 제외한 나머지 전나무 기둥 3개의 부식이 심각한 상태여서 건물 전체를 재보수하는 전면 공사로 확대되는 곡절을 겪었다. 게다가 높이 15m, 하부 직경 68cm에 달하는 기존의 기둥들을 대체할만한 나무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 공사가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산림청에 의뢰해 전국산하를 찾아 헤맸으나 수령 300~ 400년된 나무를 찾지 못해 고심끝에 내구성이 뛰어난 미국산 소나무 더글러스를 근정전의 기둥으로 세웠다. 미국산 소나무의 수입가격은 네그루 합해 5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높이가 100m, 지름이 5m에 달하는 더글러스 소나무는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가벼워 미국과 유럽 등에서 건축자재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궁궐을 대표하고 조선왕조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경복궁 근정전 복원에 미국산 소나무를 쓴 사실이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궁궐뿐 아니라 각종 문화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국가문화재 차원의 육림정책 마련이 시급하다./임병호 논설위원

가짜 행세

1957년 8월30일 저녁 8시쯤, 한 청년이 “나 이강석인데…”하고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화들짝 놀란 서장은 청년이 있다는 다방으로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황송해하는 서장의 인사에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고 대꾸했다. 자유당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였다. 청년은 3일동안 경주에 머물렀다. 경주는 물론 영천·안동·봉화 등지를 돌며 경찰서장과 군수로부터 향응과 칙사 대접을 받았고 40만환이나 되는 거액도 받았다. 9월1일 밤, 청년은 경북 도지사의 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이날 청년은 가짜 이강석인 것으로 밝혀져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북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을 청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용돈이 궁해서 꾸민 연극인데 그렇게 굽신거리고 쩔쩔맬 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9월18일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살아야 했다. 진짜 이강석은 3년 뒤 4·19혁명 직후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까지 권총으로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고, 가짜 이강석도 3년 뒤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까지도 진짜를 따라하는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지만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씨 성을 가진 39세의 여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대통령 친형 노건평씨 딸)’로 행세하고 다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녀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부터 부쩍 광주 노씨 해음공파 종친회에 자주 들러 노 대통령의 친조카 노릇을 했다. 고졸, 연예인 의상 코디네이터가 경력의 전부인 그녀가 한미문화예술교류재단 주최로 지난 6월26일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행사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측 대표로 참석, 연설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단측이 현지 호텔비와 항공비 등 2천800여만원을 대신 지급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노릇한 사람보다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더 더욱 한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자연과학의 장래성

장사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무슨 장사가 좀 잘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하며 쏠리는 것을 본다. 하지만 소문이 났을 땐 이미 늦다. 이 무렵쯤 되면 가게를 비싼 권리금을 받고 팔아넘긴 주인은 또 다른 아이디어의 장사를 모색하는 것을 보곤한다. 장사를 하는데도 요즘은 이처럼 두뇌를 쓴다. 대학에서 중국어과가 홀대받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시엔 중국을 중공이라 불렀고 물론 국교도 없었던 시절이다. 중국과 선린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전망조차 어려웠으므로 중국어과는 인기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야심을 갖고 중국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중국과의 교류가 불가피하다고 본 그 무렵의 중국어과 학생들이 지금 중국관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같은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아랍어 전공자가 칙사대접을 받게 된 것은 희소가치성이 얼마나 높은가를 또 말해준다. 이즈음은 대학의 이·공계 지망이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는 이·공계로 진학했다가 그만 두고 의대로 다시 입학하는 사례까지 있다. 전국 대학의 물리학과 학과장 70여명이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육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은 의미심장 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제7차 교육과정에서조차 기초과학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경고한 대목은 정부가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한다. 기초과학은 첨단 기술의 기본이다. 금세기 정보사회에서 생산의 부가가치를 드높이는 것은 기초과학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연과학의 발달만이 장차 나라가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 공부 잘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일 것 같으면 의대나 법대, 인문과학도 좋지만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것이 더 장래성이 있는 점을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시대를 앞서 보는 눈, 그리고 희소가치성이 중요하다. 지금 인기가 있는 학과를 무작정 눈앞의 인기만 보고 선호하는 것은, 한창 잘 되는 장사가 곧 한물가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임양은 주필

와신상담의 보검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의 백제성이 있던 지역이 지난 6월 양쯔(揚子)강 싼샤(三峽)댐으로 담수되기 전 제갈량 보검찾기가 있었다. 제갈량이 임종 전에 “내 병서와 보검을 양쯔강 절벽에 숨겨라”고 유언했다는 전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리를 잘 아는 이 지역 주민들을 동원, 양쯔강 절벽을 뒤졌으나 미확인된 여러 잡동사니 유물만 나왔을 뿐 제갈량 보검은 끝내 찾지못한 채 전설은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제갈량은 1천700년 전의 인물이다. 제갈량 보검 찾기에 실패한 중국이 이번에는 이보다 8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2천500년 전 월나라 왕 구천(句踐)의 보검을 발견했다며 난징(南京)에서 일반에 공개했다. 대만의 어느 수집가가 소장해온 것을 찾아 전시했다는 이 보검이 어떤 방법으로 진짜 구천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양 날로 된 검의 조형미와 찬란한 무늬며 광택이 현대 주조 기술자들도 감탄할 만큼 청동합금 기술의 완벽품으로 명성에 걸맞게 여전히 날카로움을 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명검의 주인이 복수의 절치부심으로 유명했던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주인인 점 또한 흥미롭다. 구천이 자만하다가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하여 굴욕의 회계산 항복 끝에 나라를 빼앗긴 게 BC 494년의 일이다. 이에 구천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충신 범려의 보필을 받으며 등을 찌르는 섶에 누워 쓴 쓸개를 맛봐가면서 해이해지기 쉬운 심신을 스스로 채찍질하여 마침내 부차를 죽이고 나라를 회복한 것은 망한 지 장장 21년만이므로 BC 473년이 된다. 범려는 나라를 되찾고 나서는 “이젠 할 일이 없다”면서 만류하는 왕의 곁을 굳이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춘추전국시대의 와신상담 고사에 얽힌 보검이 지금도 전해져 있다는 것은 실로 신비스럽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와신상담의 의지없이 너무 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만 한다. 또 주군(主君)이 잘되면 범려처럼 곁을 떠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은 않고 자리를 얻어 누를 끼치는 사람들이 많다. /임양은 주필

자멸하는가?

아시아의 금융 허브, 이는 이 정부가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을 지향하면서 내건 비전이었다. 동북아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하는 물류·산업·금융의 복합 발전을 모델로 했다. 이러한 꿈이 이루어지기는 고사하고 시작도 못하고 꿈 자체가 붕괴되어 간다. 국내의 대표적 외국계 은행인 미국 씨티은행, 영국 HSBC은행이 인터넷뱅킹 전산센터를 싱가포르와 홍콩으로 옮겨간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47개 은행 가운데 27개가 전산설비를 다른 나라로 이미 이전했다. 이같은 외국계 은행의 국내 전산센터 이전은 고객 관련 정보의 이탈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전 지역인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는 아시아 금융 허브를 둔 경쟁국이다. 우리 나라는 손한번 변변히 써보지도 못한 채 경쟁국에게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인천·부산·광양의 동북아 중심 물류기지화, 남북 및 유라시아 대륙연계교통망 구축, 종합물류정보망 구축 IT인프라 확충 및 첨단산업육성, 부품·소재·R&BD허브화, 세계적 기업 적극 유치 규제완화 등 금융 외환제도 선진화, 금융 외환시장의 인적 물적 인프라 확충, 금융시장의 안정성 확보 등 그리고 이를 위한 수도권의 비전과 역할이 강조됐었다. 그러나 결과는 외국기업의 이탈이 점증하는 가운데 외국계 은행의 전산센터마저 경쟁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사정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불안하고, 노동시장이 불안하고, 북 핵이 불안하고,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는 정쟁을 일삼고, 경제는 침체되고, 사회는 무책임한 시위 아니면 집단이기의 목소리만이 넘친다. 모두 정신들을 차려야 한다. 염통밑 곪아가는 줄은 모르고 손톱밑에 가시든 것만 탓해서는 미래가 어둡다. 경쟁국들에게 자멸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힘을 모아 분발해야 한다./임양은 주필

특별 과외

조선의 왕세자는 3정승을 비롯한 당대의 학자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학습에 필요한 시중을 드는 하급 관리를 거느렸으며, 교육에 필요한 서책을 관리하는 장서각 관리를 따로 두었다. 오늘 날로 말하자면 20명의 과외 교사, 39명의 학습 도우미, 13명의 개인 사서를 둔 셈이다. 왕의 맏아들인 ‘원자(元子)’의 교육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계속됐다. 보양청과 강학청에서 담당한 어린 원자 교육은 ‘천자문’, ‘동몽선습’ 등 경서 학습 뿐만 아니라 음식과 옷차림을 보살피는 일까지도 포함했다. 아침에 일어나 왕실 어른께 문안을 올리고 저녁에 잠자리를 보살피며 식사를 살피는 게 기본이었다. 행사에는 반드시 전례(典禮)가 따랐다. 어린 왕자가 스승을 처음 만나는 상견례, 강의를 시작할 때의 개강례, 성균관에 가서 사부에게 교육을 받는 입학례 등을 올렸다. 국가 행사가 있으면 국왕을 수행하여 국가 전례를 익혔으며 외국 사신이 왔을 때는 국가를 대표해 손님을 접대했다. 왕자의 일과는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조강에 들어갔으며 낮과 저녁에는 주강과 석강, 수시로 관리를 불러 공부하는 소대(召對), 밤중에 침실로 불러 공부하는 야대((夜對)가 있었다. 여기에다 수시로 경서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구술시험을 봐야 했고 닷새에 한번은 배운 내용을 모두 점검하는 문제은행식 시험을 봐야 했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 본격적인 제왕수업을 위한 세자시강원이 설치됐다. ‘효경’과 ‘소학’을 쉽게 풀어 쓴 ‘효경소학초혜’나 역대 국왕의 행적 가운데 모범이 되는 사례를 모은 ‘조감’등 특별 편찬된 책을 교재로 택했다. 친히 밭을 가는 친경례와 누에를 치는 침잠례 등을 통해 백성의 삶 체험에도 동참했다. 왕세자의 신분으로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이 왕세자 교육의 마지막 코스였다 . 그러나 왕세자들이 모두 훌륭한 왕이 되지는 못했다. 지도력 부족도 원인이겠으나 올바르지 못한 인성탓도 있었다. 대통령이 왕은 아니지만 한국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력과 반듯한 인성을 갖춘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흰개미와 목조문화재

흰개미는 세계적으로 열대·아열대 지역에 7개과 2천800여종 이상이 분포,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급 분화가 돼 있고 1만~2만마리가 군체(群體) 생활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먹이인 목재를 찾기 위해 지중으로 이동하며 4~5월에는 지상으로 나와 떼지어 날아 목조건조물의 지붕부분인 서까래에 침입하기도 한다. 한번에 50m 정도 날 수 있다. 국내에는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때 철도침목에 묻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별로는 서울은 3월에서 11월말까지 활동하며 겨울이 따뜻한 부산 등 남부지방에는 연중 내내 활동한다. 흰개미는 숲에 버려진 썩은 목재를 섭식, 분해해 토양에 질소를 고정시키는 등 생태계에서는 유익한 곤충이지만 목재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목조문화재나 목조건물에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목재 부재를 먹어 콘크리트 건물을 무너뜨릴 정도다. 국내에서는 1998년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국보 52호)이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응향각에서 흰개미가 발견됐고, 1999년 서울 종묘 정전(국보 227호)의 기둥도 피해를 입어 교체됐다. 종묘 외에도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개궁 전역에서 흰개미가 발견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을 받아 전국적으로 목조문화재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1999년 강릉 객사문(국보 51호) 등 전국 85건의 문화재를 조사한 결과 18%에 달하는 15건의 문화재에서 흰개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떼지어 날기도 하지만 주로 지하에서 건물로 침입하기 때문에 목조건물의 아랫부분과 기둥, 마루, 기타 부재의 순으로 흰개미 피해를 입었다. 흰개미 방제대책으로는 지금까지 연기나 독가스 등으로 살균하는 훈증(燻蒸) 처리와 목조건물 주변에 살충제를 투약하는 토양처리, 목재 방충방부처리 등의 방법이 사용돼 왔다. 그러나 훈증처리는 효과가 1개월 정도, 토양처리와 목재방충방부처리는 6~10년 정도 유지되지만 근본적인 방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목조문화재는 화재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데다 흰개미까지 신경을 쓰게 하고 있다. 흰개미를 일거에 박멸하는 살충제가 속히 만들어져야겠다./임병호 논설위원

가을 낙지

낙지는 서남해안, 그중에서도 서해안 개펄에 널리 분포해 서식한다. 낙지는 썰물 때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있는 데다 ‘타우린’이란 영양소가 34%나 들어 있고 인과 철분, 칼슘 등 각종 무기질과 아미노산을 듬뿍 함유하고 있어 바닷가 농어민들의 영양식품이다. 타우린은 생선류에 들어있는 황(S)을 포함한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시력을 회복시키고 빈혈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1945년 8월9일 가고시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본 해군 특공대가 출격하려는데 비행기 조종사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시력이 모두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이들에게 꼴뚜기 끓인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모두 시력을 회복했다는 일화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형(兄)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봄철 농사철을 맞아 논과 밭갈이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낙지 2~3마리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기록했고, 어민들은 ‘뻘속의 산삼’이라고 극찬한다. 서남해안의 농민들은 농사철에 지친 소에게 낙지를 소가 좋아하는 풀에 싸서 먹여 기운을 되찾게 했는데 흑산도에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한 정약전이 이같은 모습을 보고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낙지는 또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먹는다”는 속담을 남기고 있다. 낙지가 뻘속에 구멍을 파고 산란을 한 뒤 알이 부화될 때까지 돌보다 새끼가 태어나면 기진맥진해 껍질만 남은 상태로 죽기 때문이다. 양력으로 6 ~ 7월 산란기 낙지는 영양가가 없는 데다 산란전의 포획 방지, 비브리오 패혈증 예방 등의 지혜가 담긴 속담으로 풀이된다. 낙지는 서해안 개펄속에 구멍을 뚫고 사는 ‘뻘낙지’가 최고다. 세발(細跋) 낙지란 발이 길고 가는 어린 낙지를 뜻한다. 6 ~ 7월에 부화된 낙지를 찬바람이 부는 10월 하순 무렵부터 어민들이 잡기 시작하는데 이때 잡힌 어린 낙지가 세발낙지다. 낙지는 어느 음식재료와도 잘 어울려 영양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게 요리연구가들의 얘기다. 그래서 ‘맛의 환상궁합’이라고도 한다. 여름이 보신탕의 계절이라고 한다면 가을은 낙지의 계절이다./임병호 논설위원

후터스 걸

옷문화는 장소와 밀접하다. 잠옷 차림은 안방에서만 어울린다. 집 마당만 나와도 남이 보기에 흉하다. 야회복 차림은 야간 연회에서는 썩 멋있어 보이지만 길거리에 나오면 어색해 보인다. 육상 선수의 유니폼은 경기장에선 당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걸 입고 음식점에 나타나면 이상해 보인다. 올빼미란 뜻의 ‘후터스’는 미국에선 여성의 가슴을 의미하는 일종의 속어다. 미국 레스토랑 체인점 후터스에 종사하는 여성 종업원을 일컬어 후터스 걸이라고 한다. 허벅지가 다 나오는 짧은 바지에 소매없는 엷은 천의 웃옷을 입는 후터스 걸은 홀 서빙 모습이 야한 게 특징이다. 어느 영화배우 출신이 후터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 후터스 걸을 선보일 거라는 소식이다. 그는 육상선수들이 입는 옷과 비슷해 별 문제가 없다지만 여성 종업원의 가슴 과시를 무기화해보이려 하는 음식점이 육상경기장은 아니다. 일본에는 ‘노팡’(노 팬티) 끽다점(다방)이 있다. 끽다점 바닥은 모두 거울이 깔려 미니 스커트에 웃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종업원이 거울위로 다닌다. 이에 비하면 덜 퇴폐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어떻든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맞다. 성의 상품화는 곧 퇴폐산업이다. 사회가 퇴폐산업으로 치우치다 못해 음식점마저 노골적으로 성 상품화를 내거는 지경이 됐다. 갈수록이 자극적이고 대담해지는 것이 퇴폐산업이다. 이렇게 가다보면 또 어떤 해괴한 게 나올지 모른다. 퇴폐산업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퇴폐사회를 낳아 범죄의 온상이 되는데 문제가 있다. 어느 미래학자는 “지구촌의 성문화가 지금부터 1924년전 베스비어스 화산의 폭발로 바다속에 잠긴 폼페이 도시의 최후를 방불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후터스 걸은 미국에서도 선정성이 논란이 되어 성차별이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앞으로 국내 여성계 지도자들은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 주목된다./임양은 주필

KBS 시청료

이원홍 전 문화공보부 장관은 KBS 사장을 지냈다. 5공시절이다. 신군부가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하는 일엔 직접 참여하진 안않으나, 지금의 KBS-2 채널인 동양방송을 KBS와 강제 합병한 직후의 KBS 사장을 했었다. 이런 이 전 장관이 KBS-2 채널을 원래의 주인인 삼성으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매우 흥미롭다. 헌정동지회에서 발행하는 책자의 기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어떻든 KBS는 당시 교육방송인 지금의 EBS까지 장악하여 KBS-1·2·3 등 3개의 채널을 지닌 거대공룡이 됐다. 3채널은 EBS로 분리되어 나갔으나 KBS는 여전히 방송황제다. 돈이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다. 프로그램 해외제작 중 일어난 어느 PD의 호화쇼핑 파문도 알고보면 KBS에 돈이 많아 흥청망청한 출장비 탓으로 생긴 일이다. 한나라당이 KBS의 송두율 영웅만들기를 지탄, 정연주 KBS 사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시청료의 전기요금 분리 납부를 추진하고 있다. KBS가 독자적으로 징수하던 시청료를 전기요금 고지서에 결부시켜 징수하게 된 것 자체가 애시당초 잘못된 일이다. 편파 방송 시비가 계기가 된 것은 좀 뭐하긴 하지만, 한국전력이 KBS 시청료 징수 대행기관으로 전락한 건 시정돼야 마땅하다. 시청료의 전기요금 분리는 문제의 본질을 보아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수도권 시청자는 특수 안테나 시설을 갖춘 유선방송과 접속하지 않으면 TV시청이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 남산 타워와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높은 산이 가로 막힌 것도 아닌데도 실정이 이렇다. 개성에서 넘어오는 저쪽 전파를 방해하다 보니 이쪽 전파마저 저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수도권 시청자들은 KBS 시청료 외에 유성방송 시청료까지 부득이 이중부담을 하고 있다. 시청료를 면제해 주든지, 아니면 유선방송 시청료를 보전해 주든지 해야 한다. 이는 오랫동안 동면해오고 있는 현안이다./임양은 주필

청와대 비서실

파워 게임인지 세대 갈등인 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두가지가 다일 수도 있다. 통합신당이 청와대 비서진 특히 젊은 30대 대통령 보좌진을 맹폭, 38세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결국 사표를 냈다. 통합신당의 공격에는 “특정인이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고도 했다. 어떻든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을만큼 이 정권이 이완된 데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일괄 사표가 비록 반려됐다고는 하나, 비서실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으므로 수세에 몰린 건 사실이다. 통합신당측은 이 여세를 몰아 국민투표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개편해야 한다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5급이상 직원의 86%가 30대들이다. 무척 젊다. 그래서 전문 식견과 경륜이 없다는 말을 듣고있다. 지난 ‘국군의 날’ 행사 때 노 대통령이 조영길 국방부장관이 펴든 우산을 받지않고 우중에 그대로 사열을 받았으면 정말 보기가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아쉬운 대목이었다. 청와대 누구의 생각이었는 지는 몰라도 처음엔 국방부가 우의로 정했던 것을 비서실에서 우산으로 바꾸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이게 다 경륜이 모자란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산 파문은 사실적 판단의 오류에 속한다. 정책적 판단의 오류는 더욱 심한 부정적 파장을 일으킨다. 젊디나 젊은 청와대 비서실의 공과를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젊다고 청렴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다고 노련한 것도 아니란 점이다. 젊어도 탐욕스럽고 나이 들어서 고집스러울 수가 있다. 이런 반면에 나이가 들면 초탈할 수 있는가 하면 젊은 사람도 그 중에는 경륜이 있는 이도 있다. 문제는 사람 나름이다. 나이가 기준일 수 있지만 만능의 잣대는 아니다. 이리하여 사람 볼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나이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사람 됨됨이를 보는 눈이 이래서 더욱 중요하다./임양은 주필

생로병사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떨면서 힘겹게 아주 힘겹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사고능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파킨슨병’ 환자의 전형적 증상이다. 파킨슨병은 그동안 뇌중풍, 치매 등 노인성 퇴행성 질환으로 오인돼 왔다. 파킨슨병은 서서히 근육이 굳으며 마비현상이 나타난다. 팔다리가 떨리는 수전증의 경우 주로 밥을 먹거나 글을 쓰는 등 동작을 할 때 나타나지만 파킨슨병은 가만히 있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이 부족해 병에 걸린다는 사실 외에 뚜렷한 발병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에 발견할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어느 정도 방지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엘도파’외에 여러 약이 개발되고 몇 년 전부터는 ‘심부대뇌자극술’이란 수술요법이 개발됐다. 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수술법도 있으나 윤리적인 문제와 공급량 부족으로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파킨슨병이 국내에서도 1천명당 1명꼴로 걸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엔 100명당 1명꼴로 급증한다니 보통 무서운 병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네가지 고통(四苦)’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였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로 타계하는 것 보다 그래도 생로병사가 인간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중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에 비하면 나은 편이겠지만 늙어서 각종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세기의 성인(聖人)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90년대 중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왔다. 관절염까지 겹친 고통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교황이 10월 16일 재위 25년, 은경축(銀慶祝)을 맞았다. 교황은 25년동안 102차례의 해외 사목활동에 나서 129개국을 순방했다. 1984년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83세의 교황이 지금 죽음에 임박했다는 외신이 들려 온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던가. 생로병사 앞에서는 교황도, 제왕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형제도

9월30일 현재 우리나라의 사형수는 52명이다. 하지만 1998년 소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은 없었다. 국제인권감시기구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에 따르면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112개국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7월 천주교·불교·기독교·천도교 등 7대 종단으로 구성된 ‘사형제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 연합’이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29일에는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한국기독교 사형폐지운동연합회 주관으로 사형폐지를 위한 여야 의원 및 범종교 대표 모임을 갖고 사형폐지특별법안이 16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사형폐지특별법안은 2001년 여야 의원 155명이 서명을 했지만 국회 법사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9월 27일 조선일보사와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8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가 52%, ‘폐지해야 한다’는 40.1%였다. 단순히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하지만 ‘살인 등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해서만 사형제도를 적용하고, 양심범이나 정치범에 대해서 사형제도를 폐지’ 하는 것에는 찬성(68.1%)이 반대(25.2%)에 비해 훨씬 많았다. 연령별로 20대와 30대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이 비슷했고 40대와 50대 이상에서는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당연한 여론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땅 구덩이 속에 밀어 넣고 흙으로 생매장한 흉악살인자를, 늙은 부모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패륜살인자를, 저항력이 없는 부녀자를 윤간하고 목졸라 죽인 성폭행살인자들을 사형제도 폐지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그런 살인 만행들이 용서된다면 악순환만 반복 또 반복된다. ‘살인 등 반인륜적 흉악범은 예외로 한다’는 사형제도 폐지는 수긍이 간다. 국민 여론도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연경(烟經)

‘연경’은 조선후기의 담배 경작법,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경로, 담배를 쌓고 자르는 법, 담배와 관련된 도구, 담배 문화 등을 서술한 이를테면 ‘담배 백과사전’이다. 19세기 문인 이옥(李鈺)의 저서다. 담배를 통해 조선 후기 시정 생활도 생생히 그렸다. “어린 아이가 한 길 되는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우다가, 가끔씩 이 사이로 침을 뱉는다. 가증스러운 놈!” “규방의 다홍치마를 입은 부인이 낭군을 마주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운다. 부끄럽다.” “젊은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 앉아 안개를 토해내듯 담배를 피워댄다.” “패랭이 쓴 거지가 지팡이 같은 담뱃대를 들고서, 길 가는 사람 가로 막고 담배 한대를 달랜다. 겁나는 놈이다.” 담배 피우는 것이 미워질 때의 상황을 묘사한 내용이다. 담배가 맛있을 때의 5가지 상황도 정해 놓았다. “글 읽기를 오래 해서 목구멍이 탈 때 피우면 달기가 엿과 같다.” “대궐에서 임금님을 모시다 퇴궐하자마자 담배를 피우면 오장육부가 향기롭다” “겨울 밤 첫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한대 피우는 담배맛은 봄이 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흡연을 금하는 경우는 16가지를 규정했다. “어른 앞, 귀한 사람 앞, 제사 때” 등을 언급한 것은 오늘날 예절과 다르지 않다. “매화 앞에서, 몹시 덥고 가물 때”는 흡연을 삼가라고 했다. 격조를 중시했던 선비문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술과 밥, 담배 가운데 부득이 꼭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버리겠소?” “밥을 버려야지요” “부득이 이 둘(술·담배) 중에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버리겠소?” “술을 버려야지요. 술과 밥은 없어도 담배는 하루라도 없을 수 없소.” 애연가와 그 친구의 대화다. 담배를 끊기 어려움을 생생히 전한다. 절의 법당에서 부처를 마주하고 담배를 피워 스님이 괴로워했다는 골초의 경험담도 실려 있다. 금연구역, 금연법이 있는데도 담배를 못 끊는 애연가들의 극성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기야 금연법을 어겨 처벌 받았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금연법은 있으나 마나한 법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B급사원 우대론

스포츠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하늘과 땅과 같다. 은메달이 수십개라도 등위(等位)로는 금메달 하나를 따르지 못한다. 이는 서구의 챔피언십이 가져온 인식이다. 동양에서도 물론 정상 지상(至上)의 관념은 별 다름이 없다. 그러나 2인자를 인정하는 차상(次上)의 순위가 서구보다 뚜렷하다. 이것이 서구적 인식과 동양적 관념의 차이다. 한고조 유방을 도운 소하, 모택동을 도운 주은래가 이래서 유방이나 모택동 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빛난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씨는 생전에 신입사원 모집에서 필기시험의 수석은 무조건 불합격 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두뇌가 총명한 것만 믿어 인간미는 없을 수 있을 것으로 본 해석이 가능하다. 하긴, 시험꾼이 있다. 지지대子가 전에 근무했던 신문사에 수석합격한 재원이 있었다. 몇달 뒤에 D일보에 다시 응시하여 역시 수석합격 하였다. 한동안 외국 특파원으로 지면에 이름이 오르 내리더니 그만 두었는 지 기명 기사를 못본 지가 꽤 오래 됐다. 얼마전에 어느 중앙지에 흥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기업에서 A급 사원들 보다는 B급 사원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A급은 머리가 좋으므로 회사가 위기에 부딪히면 곧 바로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지만 B급은 묵묵히 회사를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급 사원의 특징을 그대로 옮기면 ‘승진에 목숨 걸지는 않지만 도전하는 일을 원하고, 회사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별로 개의치 않고, 외교적이지 않지만 정직하고, A급과 달리 권력과 지위와 돈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물론 A급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 다만 이는 동양 전래의 잠언인 ‘재승덕’(才勝德)을 경계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면 된다. 재주가 지나쳐 덕을 흠집 입히는 것을 옛 동양인들은 삼가야 할 인간의 도리로 알았다. 챔피언십을 추구하는 서구의 미국 사회에서 차상의 B급에 대한 동양적 관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다. /임양은 주필

고령 政客

고령 정치인이 많기로는 일본이 단연 앞선다. 70·80대의 고령 정객이 수두룩하다가 지난 2000년 중의원 선거 때 40여명의 여야 의원들이 은퇴했다. 지난 10일 있었던 중의원 해산으로 치르는 이번 선거에서도 중의원 정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근 50명이 불출마 등 은퇴할 것이라고 전한다. 은퇴하는 고령 정객들은 거의가 10선이 넘는다. 고령 정객들 중엔 특히 비례대표 출신이 많다. 이래서 집권 자민당은 내규로 이번 선거부터 73세 정년을 적용키로 했다. 관록을 내세운 고령 정객들이 비례대표 앞자리를 도맡아 차지하는 바람에 유망한 젊은 인재의 당내 진출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카소네 전 수상 등 몇몇 고령 정객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개헌 등 평소 주장해온 일이 본격 논의되므로 중의원 의원을 더 해야 한다”며 당 내규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앞자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중의원 20선의 나카소네는 무려 85세의 나이다. 고령이므로 정계를 은퇴하라고 하면 근래 많이 쓰이는 말로 위헌이라 할지 모른다. 특히 지역구 출신 의원은 선거구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므로 나오라, 나오지 말라고 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국회의원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는 일 같은 건 걱정없는 형편이고 보면 후진들에게 물려주는 게 미덕이다. 나라 안에서도 한나라당 당내 소장파가 고령 정객들의 은퇴 요구가 있었다.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또 언제 세대 교체론이 일지 모른다. 이같은 기풍은 비단 한나라당 뿐만이 아니고 다른 당에서도 거의 비슷한 기류여서 국내 정치권의 현안이기도 하다. 40대면 벌써 나이든 사람으로 취급되는 조기 퇴출의 사회풍조도 문제가 많지만, 이른바 관록을 지역구든 전국구든 공천에 무임승차의 프리미엄 삼는 고령 정객이 많은 것도 좋지는 않다. 고령 정치인들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진퇴를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국민 투표

‘제72조(중요정책의 국민투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국민투표에 관한 헌법 조항이다. 또 있다. 헌법 개정에 관한 조항으로 제130조(개정안의 의결과 확정·공포)는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라고 돼있다. 이같은 헌법 조항을 근거로하여 제정된 국민투표법은 ‘국민투표에 관한 운동’ 조항을 제6장(25조~48조)에 규정해 놓고 있다. 이에 의하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적극적 행위로 신문·방송과 정당연설회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대통령 선거 등 보다는 제한됐다. 국민투표가 정쟁 수단화 되는 것을 방지키 위한 배려로 해석된다. 국민투표는 집권자가 좀처럼 패배하지 않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통상적 관례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드골 대통령은 주요 정책에 관한 4차에 걸친 국민투표의 승리를 통해 강력한 프랑스의 위업을 이루었으나 1969년 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에서 마침내 패배해 하야와 함께 향리로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헌정사상 모두 3차의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이중 1972년 제4공화국의 유신헌법(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 1980년 제5공화국 헌법(대통령 선거인단을 선거하여 대통령을 선출)을 확정한 2차의 국민투표는 독재에 이용당한 것이었다. 마지막 3차 국민투표는 1987년 제6공화국의 현행 헌법을 확정시킨 투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거론되고 있다. 국민투표의 경험이 있는 이들도 상당수가 국민투표법이 있는 줄조차 모를만큼 잊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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