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사이트

“일제 강점기에 행복했다”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모두 애국자다” 일본인들의 망언이 아니다. 요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정신 나간 일부 한국인들의 글이다. 이것 참 야단 나도 보통 난 게 아니다. ID ‘KFC’에 의해 2002년 11월 개설된 ‘더러운 조센징’이란 카페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글들은 한국을 비난하는 내용과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으로 도배질돼 있다. 회원이 2만명이 넘는 이 사이트에서는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조센징’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황국신민에 대한 진실’이란 친일 카페가 등장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강변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제주도도 일본 땅’이라는 어이 없는 난상토론 게시판까지 개설했다. 이완용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일장기와 함께 내걸고 있는 카페가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친일카페가 인터넷에 10개가 넘고 회원수도 사이트별로 최소 1천명이 넘는다. 문제는 유사 사이트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인의 친일 주장에 동조해 또 다른 네티즌들이 친일 카페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카페에 ‘한국이 망하거나 일본의 속국이 되어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야말로 반민족적인 이런 친일사이트는 1994년 한 친일 작가가 ‘일본을 존경하는 마음’이란 카페를 만들어 일제 강점기를 미화했던 데서 비롯됐다. 당시 이 카페는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로 폐쇄됐지만 대다수 네티즌들이 친일 주장에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욕설을 올리는 것은 재고해야 할 점이다. 그들의 작전에 휘말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이버 친일파들은 한국의 부조리한 면만을 들추어내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든 뒤 관심을 끌게 하고 있는 수법을 동원한다. 어쩌면 친일 사이트 운영자들은 한글과 우리 역사를 잘 아는 일본인일 수도 있다. 현재로는 카페를 폐쇄할 뚜렷한 규정이 없다고 하니 그들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신 나간 자(者)들과 백번 얘기해봤자 스트레스만 쌓인다. 제 풀에 주저 앉게 만드는 방법은 무대응밖에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좋은책

"보카초(1313~1375)의 대표적인 소설 ‘데카메론’은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펼치는 음담패설 등을 모은 것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성적 욕망과 속임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근대소설의 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호색적이고 음란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20세기초 일본에서도 판매금지를 당했다. 미국 관세국도 음란서적으로 판정한 바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오늘날 민주사상의 씨앗을 뿌리고 근대 교육철학의 기반을 구축한 개혁사상가이지만 당시에는 군주와 귀족들에 정면으로 대든 이단아이자 ‘정신 이상자’였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사유재산의 발생이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주장, 사상이 불온하고 과격한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인생론’을 발간한 즉시 판매금지 처분을 당했고, ‘부활’에서는 동방정교회를 비판해 파문을 당한 후 방랑의 세월을 보내다가 시베리아의 시골역에서 객사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 발전에 공헌한 위대한 저작들은 작가의 목숨을 바치고 얻은 값진 대가이기도 하다. 사상적 선지자들은 대부분 남보다 몇 십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기존 권위나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기성세력과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서양철학을 알려면 금서목록을 읽어라’는 말이 있을만큼 오늘날 고전으로 인정받는 상당수의 책들은 대부분 금서(禁書)였다. 우리나라에도 특히 1970년대에 소위 ‘금서목록’이 있었다. 노동관련 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 체제에 저항하는 문학서적, 음란서적도 포함됐다. 신문지상에 판매금지 서적 목록이 게재되고 단속실적까지 보도됐으니 마치 ‘구해서 읽어 보라’는 격이었다. 니체(1844~1900)는 저작(著作)에 대해 “쓰인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저자의 피로 쓴 것만을 애호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니체의 이 말은 함부로 책을 낸 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캐리커처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지난해 여름(8월14일~9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회관에서 열렸던 서양화가 강형구씨의 개인전이 다시 생각난다. 당시 지점토로 빚은 전·현직 한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선보였는데 대통령 각자의 개성을 과장한 캐리커처(Caricature)작품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턱과 입을 쑥 내밀었다. “경쟁자에 대한 시샘, 또 세상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는 표정”이라고 강형구 화가는 말했다. 그런데 귀가 없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성격 아닌가”라고 화가는 되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 전 재산은 누가 뭐래도 29만원”이라고 딱 잡아떼는 표정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 화가는 “약간 유들유들한 미소야말로 이 분의 특징”이라며 “겉은 온화해 보이지만 속은 알수 없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두 뺨은 홀쭉하다. “한때 민주화의 우상이었지만 지금은 무력한 지도자의 얼굴”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고집과 강단을 읽을 수 있었다. 화가는 “박 대통령의 표정은 불행한 최후를 암시하듯 좀 비극적”이라고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약간 언짢은 듯 누구를 쏘아보고 있었다. 화가는 “지난 3월 TV로 중계된 ‘검사와의 대화’에 등장했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역대 대통령들의 표정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얼굴은 강삼재 의원을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지원 비서실장을 사면시키지 못해 서운해 하고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100억 괴자금에 연루된 차남 일로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돈 민씨 문제로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캐리커처이건 실물이건 파안대소하는 대통령의 얼굴이 안보이는 것은 유감이다./임병호 논설위원

배우 김흥기씨

"배우 김흥기씨가 동숭아트센터 분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지난달 30일 낮 공연을 마친 뒤 분장실에 들어선 그는 연극 ‘에쿠우스’(피터셰퍼 작·김광보 연출)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박사 역 분장을 한 그대로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서라벌예대를 나와 1968년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한 것이 36년 배우생활의 시발이었다. ‘닥터 지바고’등 수 많은 연극 출연과 함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중후한 연기를 보였다. “배역을 맡으면 배역의 인생에 자신의 혼을 담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느 사람은 자신의 인생밖에 살지 못하지만 이 김흥기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배우생활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너털 웃음을 짓곤 했다. 텔레비전 사극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을 리얼리티하게 해낸데 이어 최근에는 방영 중인 ‘무인시대’에서 정중부 역을 박진감 있게 소화했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그의 열연이 아직도 각인돼 있을 정도다. 흔히 연극인들은 연극에 대한 애정표현으로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수사를 쓴다. 프랑스의 연극배우 몰리에르드는 1673년 실제로 무대에서 연기 도중에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연극 ‘에쿠우스’의 다이사트 역은 두 시간의 연극을 시종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역할이다. 여기에 두달동안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하는 강행군을 한 것이 이래저래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연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에쿠우스’는 예약이 4천여명이나 될만큼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게 좋아 배우 생활이 좋다는 그가 무대(분장실)에서 쓰러진 것은 정말 아깝다. 아무리 연극인은 ‘무대에서 죽고 싶다’ 지만 50대의 원숙한 연기가 여기서 좌절되는 것은 손실이다.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조속한 쾌유를 빈다./임양은 주필

서민가계 축내는 ‘로또’

"노변 가게에서 어느 날품 노동자(이런 사람이 진짜 노동자다)가 일당으로 받은 만원짜리 다섯장 중에서 한 장을 꺼내어 로또 복권을 사는 것이었다. “무슨 희망이 보여야지요. 생각하면 정말 만원이 아까워 못할 일이지만, 그래도 바늘 구멍 같은 대박의 꿈이라도 꿔야 (살)맛이 나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계면쩍게 웃었다. 원래 복권은 레저다. 여유돈으로 놀이(게임)삼아 사는 것이 복권이고, 판매 이익금은 사회로 돌려지는 것이 복권사업이다. 이러한 복권 판매의 고객 대부분이 서민층인 것은 바로 그 노동자와 같은 심정 때문인 것이다. 근면성실은 곧 성공으로 통하는 것이 사회상식이다. 물론 이같은 사회상식은 지금이라고 부인될 수는 없다. 그러나 희망을 갖지 못한 서민층 중 많은 사람들은 복권 대박으로 이른바 인생역전을 꿈꾼다. 심지어는 복권에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당첨이 안 되어도 복권 산 돈이 그리 아깝지 않을 사람들 보다는 가계비라도 쪼개어 복권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다. 국내에는 이런 복권 저런 복권해서 복권이 참으로 많다. 무려 49가지나 된다. 이 많은 복권사업 가운데 망했다는 말은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복권사업은 그만큼 이권사업이다. 문제는 서민층의 호주머니가 털리는 데 있다. 로또 열풍은 여전히 세차다. 당첨만 되면 수 십억원은 보통이고 최고 400억원대까지 100억원대를 챙기는 것이 로또 복권이다. 정부는 오는 8월부터 로또복권의 게임당 판매가격을 절반으로 내리기로 했다. 당첨금도 물론 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로또는 여전히 인기를 누릴 것이다. 다른 복권 당첨금도 크게 올렸지만 역시 로또 당첨금이 최고 금액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와 서민부담을 고려해 사행성을 완화키 위해 로또 판매가격을 내린다’는 정부측 말이 외계인 소리 같기만 하다./임양은 주필

대통령님 전상서

"노무현 대통령님, 정말 그러셨습니까? ‘노 대통령은(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 직후 참석한 시·도시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박맹우 울산시장이 국립대 설립을 건의하자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국립대가 없는 것은 합리적이 지 않다”며 박봉흠 대통령 정책실장에게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도 내용이 맞는지요. 그렇다면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국립대 없는 곳이 또 있다면 어떻시겠습니까. 수원 역시 100만이 넘는 데도 국립대가 없습니다. 울산시는 울주군 등을 넣어 억지로 인구를 늘렸지만 수원시는 단일 도시권의 인구로 100만이 넘습니다. 아니, 경기도는 1천만이 넘습니다. 이런데도 국립대가 없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종합대학의 국립대도 그렇지만 교육대 조차 없어 가까스로 인천교대 경기캠퍼스를 빌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초등학생을 두고 있는데도 교육대 하나가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될법 합니까.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이도 지방균형 발전이란 것인지요. 우리는 도내에 국립대를 세워 달라는 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제발 부탁 드리는 것은 역차별만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경기교대는 마땅히 독립시켜 세워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구 1천만이 넘는 곳에 교육대가 없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국립대까지는 원하지 않으니 제발 도내 대학을 차별대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이 나라 대학이면 다 혜택받는 각종 지원을 도내 대학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제외시키고 있잖습니까. 사회적 문제와 교육적 문제를 혼동하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처사입니다. 그래, 수도권 대학은 다른 나라 대학입니까? 수도권에 사는 것이 무슨 원죄입니까? 우리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왜 유배지역 취급하는 지요. 통찰해주시기 바랍니다. /임양은 주필

우리車 이름

"올해 거리에 ‘못 보던 차’가 쏟아져 나온다. 국내 신차의 경우 새로운 모델이 7개,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까지 합하면 10여종에 이른다. 현대차가 3월쯤 “스포츠 실용차(SUV·프로젝트명 JM)를, 7~8월에는 EF쏘나타의 후속모델 (NF)을 내 놓는다.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는 3월쯤 유럽시장을 겨냥한 소형차(SA)를, 8월에는 단종된 스포티지 후속 차종으로 소형 스포츠실용차(KM)를 출시한다. 10월에는 옵티마 부분변경 모델이 예정돼 있다. GM대우차는 3월에 라세티 해치백을, 11월쯤에는 마티즈 후속인 신형 경차(M200)를 선보인다. 쌍용차도 4월쯤 고급 미니밴을 준비하고 있고, 르노 삼성차는 올해 신차 출시 계획이 없다고 한다. 수입차는 40종이 넘는다. 일본차의 경우 작년 말 신문들이 경차 ‘스바루’를 들여온다고 보도했다. ‘스바루’는 “황소자리 어깨 부분에 보이는 플레이아데스 별무리”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은 자동차 이름으로 ‘닛산(日産)’ ‘도요타(豊田)’ ‘혼다(本田)’ 등을 지어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자동차 이름만이 아니다. 특급열차도 일제 때 부산서 신의주까지 ‘아카쓰키(曉)’가 달렸고, 지금도 일본 신칸선을 ‘고다마(兒玉)’ ‘쓰바메(燕)’ ‘히카리(光)’들이 달리고 있다. 화성 탐사배 이름은 ‘노조미(望)’다. 모두 일본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에 자동차 이름으로 ‘새나라’가 잠깐 나타났다가 없어지고 지금은 우리말로 이름붙인 자동차가 거의 없다. ‘누비라’는 우리 말 이름인가? 4월1일 개통된다는 고속철도 열차 이름도 ‘KTX’라고 한단다. 나라밖 여러 곳에서 태권도 용어의 ‘차렷·옆차기·돌려차기’등 세계화하는 우리 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번개·독수리’등을 고속철도 열차이름으로 왜 안썼는지 안타깝다. 자동차 이름도 ‘길벗·나들이·무지개·빙그레·아리랑·아침나라·해바라기’ 등으로 해봄직도 한데 자동차업계에서 우리 말은 쓰지 않는다. 아마 내 나랏말을 세계에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임병호 논설위원

배고픈 서러움

"영국의 일요일자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25일 ‘한 여대생이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몸값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팔겠다는 광고를 냈다’고 보도했다. 18세의 이 여대생은 이달초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이 같은 내용의 광고를 냈는데 25일 현재 400여명의 남성들이 최대 1만파운드(약 1천870만원)를 지불하겠다며 입찰했다고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이 여대생은 “3년 후 졸업시절엔 1만5천파운드의 빚을 질수 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같은 무렵 한국 서울에서는 지방 국립대 건축학과에 다니다 휴학한 K모 여대생이 편의점에서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등 6천650원어치를 훔친 죄로 경찰에 붙잡혔다. “뻥튀기로 배를 채우려 했는데 진열된 음식을 보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충동적으로 음식을 훔쳤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학업을 이어 갈 수 없자 1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한 K씨는 지난해 11월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다. 텔레마케터 일을 시작했지만 한달 만에 해고 당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취업난에 구직은 쉽지 않았다. 한달치 월급은 숙소인 고시원비와 생활비로 금세 날아갔다. 고향에서 다시 생활을 하려고 설연휴 때 찾아 갔지만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K씨가 서울로 와 있는 동안 사업이 실패해 부모가 잠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K씨 수중에는 1만1천원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굶은 K씨는 1만1천원 중 1천원어치 뻥튀기를 산 후 심한 허기를 못 이겨 음식물을 훔쳤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5일 K씨를 절도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영국 여대생은 학비가 없어 처녀성을 팔겠다고 광고를 냈고, 한국 여대생은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쳤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여기저기서 취업제의 등 연락이 답지했다. 그러나 K씨는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고 이런 일때문에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다”면서 연락을 끊었다. 영국 여성과 한국 여성은 이렇게 다르다. /임병호 논설위원

수원문화원의 虛와實

"수원문화원은 전국 문화원 중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에도 각 분야별로 25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엊그제 열린 수원문화원 이사회는 총27명 중 18명이 참석하여 정관 일부 변경과 올해 사업계획 및 세입·세출예산(안)을 심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세입·세출예산(안)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세입예산액이 14억1천400여만원인데 세출이 15억800여만원인 것이다. 아무리 (안)이라 하더라도 세입·세출이 비슷하거나 세입이 조금 많아 잔여금이 있어야 상식인데 되레 부족분이 9천400여만원이나 됐다. 더구나 2003년도 집행사업 미지급액이 4천300여만원인 데다 적립이 안된 직원 퇴직금까지 합치면 빚이 2억원에 달한다. 그러니까 작년에 4천300여만원의 빚을 진 문화원이 올해에 또 9천400여만원의 빚을 지겠다는 포부(?)를 과시한 격이다. 월 수입이 100만원에 불과한 데 300만원을 지출하겠다는 경우여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게다가 문화원 일반관리비 부족분 8천여만원은 근본대책 없이 원장, 부원장,이사들이 내는 연회비 및 후원금과 일반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사의 직분을 다해 특별회비를 갹출하자’ ‘신임 원장이 1, 2천만원은 내야 되지 않느냐’ ‘가정도 이렇게 막연히 살림을 꾸려 나가지는 않는다’ 는 식의 격론과 과다채무를 넘긴 전 집행부가 최소한 빚의 절반 이상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는 사이 문화원 관련 부서 시 간부공무원(당연직 이사)은 자리를 떴다. 27일 오후 5시부터 9시40분까지 식사를 거르고 장장 4시간 40분간 진행된 이사회에서 결정난 것은 고작 이사들의 매년 회비 50만원과 50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거두어 문화원에 전달해야 된다는 정도가 됐다. 특히 연회비를 미납하는 이사는 정관상 회원의 의무를 이행치 않은 것으로 간주(제명)한다는 인식은 아무래도 문화원을 무슨 특권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심란하다. 유병헌 원장이 무슨 비장의 카드를 간직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수원시와 경기도의 특별 재정지원이 없는 한 만성적자에 허덕일 수원문화원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랑의 실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다. 하물며 바다에선 더 말할 게 없다. 망망대해 대서양에서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널빤지를 발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오르면 그만 물에 잠기곤하여 한 사람밖에 오를 수가 없다. 여자만이 널빤지에 올리고 자신은 살을 에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 몸을 잠긴 채 남자는 “어떻게든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희망을 지핀다. 이윽고 두 남녀는 추위에 지쳐 잠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널빤지 위여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물속의 남자는 잠 든채 숨졌다. 대작영화 ‘타이타닉’(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실존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무려 3시간여에 걸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대목이다.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는 이미 시신이 된 잭(레오나르도 디카리오 분)의 주검을 보고 절규하듯이 통곡한다. 많은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실체는 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상대의 조건을 순수한 사랑으로 착각한다. ‘타이타닉’에서 보여준 잭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죽음도 각오하는 희생정신이다. 이즈음의 많은 연인, 많은 부부들은 얼마나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정신을 가질 수 있는 지 실로 의문이 많은 세태다. 희생은 여성 보호의 본능을 지닌 남성의 의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입으로는 희생적 사랑을 다짐 하지만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란 여간해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의 실체가 확실한 사람은 잭처럼 기꺼이 자신의 희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조사한 가운데 미혼 응답자 1천387명 중 ‘결혼계획이 있다’는 응답이 남성은 55.5%, 여성은 4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직 사랑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상대를 못만나서일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고 싶다. /임양은 주필

한파(寒波)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추워 견디지 못해 나왔다’는 속담이 올 겨울엔 무색했다. 으레 대한 추위보단 먼저 다가오는 소한 추위가 더 매서웠던 게 올 소한은 어떻게 넘어간 지도 모르게 넘어갔다. 설 전날의 대한부터 시작된 한파는 설 연휴 내내 강세를 보여 수도전 동파 사고가 곳곳에서 사태를 이루었다. 눈까지 간간이 내린 길이 얼어붙은 데가 많아 특히 응달진 이면도로에선 설 대목 행인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엉금엉금 기곤하였다. 수도권이 영하 12℃까지 내려가는 한파는 실로 오랜만이어서 올 겨울은 막바지 들어 겨울답게 넘기는 것 같다. 하긴 올 겨울 한파는 세계적으로 몰아쳤다. 미국의 동북부는 영하 20℃가 넘는 한파가 3주나 계속되어 3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유럽에서는 우리의 설 연휴와 같은 기간에 영하 30℃까지 내려간 살인적 한파로 30여명이 사망했다. 심지어는 인도나 홍콩에서도 동사자가 나왔다. 그러나 추위도 상대적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선 영하 20∼30℃는 예사다. 러시아 사람들로서는 우리 나라나 미국 유럽의 한파를 유별난 한파로 여기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인도나 홍콩의 한파를 한파로 여기는 덴 괴리감이 없지 않다. 홍콩에서 동사자를 낸 한파란 것은 겨우 영상 5℃였다. 우리가 설 대목 한파에 별나게 추위를 탄 것은 그만큼 내성이 약해진 탓이다. 폭설이 무릎까지 잠기도록 내리고 입김으로 서리가 일던 예전 추위에 비하면 지난 추위쯤은 추위도 아니다. 진짜 강추위에도 예전 아이들은 팽이치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등으로 추위와 맞서가며 놀았다. 지금의 아이들은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즐기는 방안퉁수가 됐다. 다음 달에 한파가 또 한 두차례 몰아칠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있었다. 자연의 조화속인 강추위야 봄이 되면 물러가게 마련이다. 해동이 기약되지 않은 채 얼어붙은 민심의 한파가 더 무섭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10만원권이라니?

“차 떼기꾼들 가방 떼기로 편리해서 좋겠네” 서민들의 이런 푸념이 있었다. 만원짜리 한 장 쥐기에도 바쁜 서민들에게 하루 벌이도 더 되는 10만원권 지폐 발행 소식은 정말 화나는 것이었다. “국민의 생활 불편을 덜기위해 10만원권 지폐 발행이 필요하다”고 재경부가 말하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 어느 계층의 국민인 지 궁금하다. 10만원 짜리가 없어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인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침체된 소비 진작에 획기적 대책이 될 것”이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얘기 또한 무책임하다. 10만원권 발행은 인플레 심리를 낳아 실제 상황으로 악화되는 것이 필연적 수순이다. 쇠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게하는 거나 다름이 없게 된다. 기업 경영에서도 온라인 결제가 대부분이다. 10만원권이 없어 경영에 애로가 많다는 주장은 자기 억지다. “부패문화를 부추긴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주장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뇌물 단가가 높아져 부패지수가 더 올라갈 지도 모른다. 차 떼기, 책 떼기 등 대선 불법자금에 멍이 든 서민들 가슴을 더 이상 분노케 해서는 안된다. 수표 발행 비용이 연간 수백억원이 들고 수표의 이서가 아무리 불편하다 하여도 10만원권 발행 검토는 중단해야 한다. 자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것이 예금실명제다. 고액권 발행은 예금실명제 취의에도 어긋난다. 그같은 얄팍한 술수로는 성장 잠재력을 해치지 않는 경제회복, 알맹이 있는 서민층의 실질소득 증가를 기할수가 없다. 국내 경기가 나쁜 병리현상의 진단을 10만원권 화폐가 없다고 보는 것은 환부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돌팔이 같은 위인들이 겁없이 고액권을 만들어 서민층 생계를 더 어렵게 만들 지 않을까 하여 심히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스포츠와 체벌

"운동선수 지도에 가끔 말썽이 되는 게 체벌이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토끼뜀이나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땅 바닥에 댄 채 두 손은 뒷짐 지게하는 이른바 원산폭격 같은 기합을 넣는 수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매를 때리기도 한다.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국내 여자배구 대표팀과 게임을 가졌을 때다. 일본팀이 한참 뒤지자 고지마 감독은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선수들을 불러들인 그는 뺨을 차례로 냅다 갈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작전 지시는 한마디도 없이 코트로 내보냈다. 관중은 물론이고 체벌을 예사로 알던 국내체육인들도 눈이 휘둥그래진 광경이었다. 고지마 감독은 여자배구에서는 처음으로 유도의 전방회전낙법처럼 몸을 던지며 상대의 볼을 받아치는 롤링 리시브를 주입시킨 사람이다. 훈련시에 두어명을 엎드리게 하여 뛰어넘는 강도높은 이 훈련이 일본 여자배구에서 성공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비로소 시작했다. 고지마의 뺨 때리기는 기합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의 일이다. 지금은 턱도 없는 일이다. 선수 지도에 그땐 주입식이 통했지만 이젠 아니다. 현대의 선수 지도는 개발식이다. 스포츠의 과학화가 이리하여 요구된다. 선수마다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을 상세히 파악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기술지도만이 아니고 정신지도도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기합만 넣으면 선수들로부터 무식한 감독이라는 소릴 듣기가 십상이다. 이러므로 스포츠 지도자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칭찬과 질책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분위기를 띄울줄 아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공부를 부단히 해야한다. 개인적 감정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약간의 체벌이라면 전혀 필요치 않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일본 여자배구 선수들도 게임이 끝나자 고지마 감독을 무동 태우며 환호하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이젠 주입식은 안된다. 도내 어느 고교 축구팀이 중국에서 훈련 중 감독이 선수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했다는 현지 보도의 소식이 매우 우울하게 한다. /임양은 주필

가요와 쇼

"음악의 개념이 동력화 하긴 한다. 예컨대 재즈 편성의 음악이나 고전에서 전승된 무곡(舞曲)같은 댄스음악이 이래서 연유한다. 음악을 주로하는 오락프로그램의 뮤지컬쇼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여 특수제조된 디스크로 영상과 음향을 텔레비전 화면에 재생시키는 비디오 디스크 플레이어 (VDP) 또한 같다. 이 모든 것들은 동력이 곧 특수성이다. 가수의 요란한 몸짓, 춤꾼의 춤이 이래서 무대배경을 이룬다. 안무(按舞)는 가곡 또는 가요에 따른 무용의 틀이나 진행을 창안하는 무대예술로 각광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노래와 앙상블을 이루는 춤은 장르, 즉 유형이 따로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트롯에서도 안무를 수반하는 것이 현대적 대중가요의 흐름이다. 대중가요를 유행가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대중가요는 지금도 유행가이긴 하나 그 무렵엔 ‘대중가요’란 말이 따로 없었다. 유행가라고 했던 시절의 가수는 제스처가 지극히 빈약했다. 꼿꼿이 선 채 그냥 노래만 부르다시피 했다. 지금은 비록 무대 배치에 춤꾼이 없어도 노래만 그냥 부르는 가수는 없다. 가요의 무대 동력화가 그만큼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의 동력화는 실로 화려하다. 현장 관객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시청자들에도 풍성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눈요기거리가 가창력을 우월해서는 가요무대일 수 없다는 점이다. 형형색색의 입체조명, 드라이 아이스 등 뭉게구름 피우기, 폭발적인 전기섬광, 남녀 가수나 남녀 보조춤꾼의 섹시한 옷차림 그리고 율동, 실로 현란한 무대 연출이 놀랍도록 발 빠르게 발전한다. 하지만 이런 무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가수의 가창력이다. 가창력은 별 볼품없으면서 무대연출만 요란한 것은 다만 쇼일뿐 가요프로그램이라 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의 가요프로가 점차 쇼프로화 해간다. 특히 지난해 연말 결산의 가요행사 프로는 거의가 가요잔치이기 보다는 주객이 바뀐 쇼프로화한 경향이 특히 심했다. /임양은 주필

육적칠해

"중국고어 중 ‘육적(六賊)’, 즉 여섯가지 나쁜 일은 이렇다. 첫째, 신하가 대규모로 궁실·누각·정자를 짓고 노래와 춤을 즐기게 하여 임금의 덕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둘째, 백성이 농사 짓고 누에 치는 일에 힘쓰지 않고 방탕하게 놀며, 국법을 위반하면서 관리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일이다. 셋째, 신하가 붕당을 만들어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가로 막아 임금의 총명을 가려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넷째, 선비가 반항과 위세로 다른 나라의 군주들과 교제하면서 자기의 임금을 중하게 여기지 않아 임금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다섯째, 신하가 벼슬과 지위를 경시하며 관리를 천하게 여기고, 임금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공신의 노고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여섯째, 종친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업신여겨 서민의 생업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일곱가지 나쁜 자, 즉 ‘칠해’의 첫째는, 아무런 지략이나 책략도 없으면서 상과 높은 벼슬만을 탐내 경솔하게 전쟁을 벌여 요행으로 승리하기를 바라는 者다. 둘째, 헛이름만 있고 실질은 없으며,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말이 다르다. 어진 사람은 덮어버리고 악한 사람은 치켜 세우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교묘히 하는 자다. 셋째, 자기의 몸과 의복을 일부러 검소하고 남루하게 하여 이름도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위선자다. 넷째, 기이한 차림새와 말재주로 헛된 논의만 일삼으며, 선한 얼굴로 위장, 궁벽한 곳에 거처하면서 시속을 비방하는 자다. 다섯째, 참소와 아첨으로 관직을 얻고, 큰일은 도모하지 아니하나 이익이 있으면 움직이며, 고상한 말과 헛된 논의만 임금에게 늘어놓는 자다. 여섯째, 장식을 하고 갖은 기교로 호화롭게 꾸며 농사에 지장을 주는 자다. 일곱째, 허위의 방술, 이상한 기술, 방자한 방법 등으로 남을 저주하며, 사악한 도술과 상서롭지 않은 말로 선량한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다. 왕도야 따로 있지만 신하된 신분으로 이 ‘육적칠해’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완전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제는 가식을 버리자. 2004년 올해는 원숭이해 갑신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판교신도시

성남시 판교신도시가 드디어 조성된다. 2005년 4월에 착공, 283만여평 부지에 2만9천700여 가구가 입주하는 새로운 도시가 형성된다. 정부는 비록 미니도시 이지만 서울 강남 못지않은 신도시를 만들 계획인 것이다. 물론 결과는 두고 봐야 안다. 땅 보상이 시작되면서 벼락부자가 되는가 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 딱한 처지 등 명암이 교차되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땅 임자는 6천689평에 대한 보상금으로 212억원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런가 하면 쪽방생활의 세입자들은 4인 가족의 경우 주거 이전비로 760만원을 받고 방을 비워 주어야 한다. 어디가서 월세방 하나 얻기도 힘들 판이다. 임대아파트를 준다지만 2007년에나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기다릴 형편이 못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 끄기가 다급한 사람들이다. 이런 세입자가 1천600여가구나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임대아파트를 받으려면 쥐꼬리만한 주거이전비 마저 포기해야 한다. 정부의 주거대책이 없으면 임대아파트를 받기 위해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이런가 하면 벼락부자들도 많다. 수억원은 약과고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212억원을 받는 그 사람은 알짜배기 토박이 농부로 받을 만하다. 조상으로부터 17대째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으려 하니 돈도 좋지만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을 것 같다. 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거금을 받은 돈으로 뭣을 하며 살까하고 걱정하는 농부들은 그 사람 말고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가짜 농민들도 많다. 판교 신도시 땅은 그동안 투기꾼들의 손에 넘어간 것이 엄청많다. 언젠가는 약 40%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떻든 그 수는 확실히 알수 없지만 투기꾼들에게 보상은 마침내 벼락부자가 되는 계절임은 틀림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부가 투기꾼들이 챙긴 시세 차익의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환수, 이 재원의 재정자금으로 세입자들에게 전세자금을 융자해 주는 것이다. 판교신도시는 축복의 땅인 지 아니면 저주의 땅인 지를 아직 잘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女經協 회장선거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다음 회장 선거를 놓고 꽤나 시끄러운 것 같다. 여경협회장 선거는 이미 지난 24일 치렀다. 대구중앙청과 대표로 대구·경북지회장인 정 아무개가 광림무역 대표로 서울지회장으로 있는 이 아무개를 79 대 70으로 7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어나 선거관리위원장이 무효를 선언했다. 기업경영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여성이라고 하여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고 여겨서는 큰 착각이다. 예컨대 바둑도 그렇다. 여류 프로기사는 물론이고 여성 아마 고단자들 바둑을 보면 남성 기사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여성 경제인들 모임이라고 하여 조용하란 법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시끄러운 게 여경협 회장 자리를 정계 입문의 징검다리로 보아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고 보는 객관적 관점은 좀 씁쓰레하다. 여경협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다. 이런 점을 노려 회장 자리를 탐낸다면 그 또한 유감이다. 미국의 대기업 여성임원은 367명인데 비해 국내 대기업의 여성 임원은 고작 19명이라고 한다. 이런 대기업 말고도 중소기업의 여성경영인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많지 않은 여성 경영인들의 모임이 잡음을 내는 것은 보기에 썩 좋지 않다. 사회의 여성참여가 더욱 다양하게 넓혀져가는 추세다. 이런 터에 남성위주의 못된 정치판 흉내나 내는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리는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여성 경영인들은 여성계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여성계 어느 분야보다 심한 사회적 제약을 뚫고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성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로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여경협은 오늘 재선거를 강행하는 것으로 전한다. 어떻게든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폭탄주

이른바 ‘폭탄주’의 공통점은 폭약과 뇌관으로 사용되는 두 종류의 술을 섞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위스키를 마실 때 물이나 얼음에 희석해 마신다. 사람이 술의 맛과 향을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알코올농도는 20도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실험실에서 위스키의 향을 판정할 때도 20도로 낮춰 맛을 감정한다. 이를 감안하면 위스키를 물에 희석해 마시는 음주법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소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일본인들을 본 적도 있다. 폭탄주의 알코올농도는 위스키 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8∼10도 정도로 조절된다. 위스키와 맥주의 주원료는 보리로 같다. 그러나 술의 성질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맥주는 자체의 맛과 향이 진한 술이다. 호프 본래의 쓴 맛이 살아 있고, 발효과정에서 알코올 이외에 부산물로 생산된 200가지의 화학성분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반면 위스키는 증류를 통해 알코올 이외에 부산물을 걸러낸 맑은 술이다. 이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과정을 거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위스키는 맛과 향이 다른 30∼40종류의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만든다. 예민한 미감을 지닌 블렌더가 맛과 향을 조절한다. 이처럼 성질이 전혀 다른 맥주와 위스키를 섞으면 폭탄주가 되는데 지갑이 가벼운 주당들은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신다. ‘맥소’ 또는 ‘소맥’으로 불린다.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마시는 ‘막소’도 있고, 코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코소’라는 폭탄주도 있다. 웬만한 주당들도 폭탄주 몇잔 마시면 금방 취한다. 정신건강은 별탈 없겠지만 신체건강에 좋을 리 없다. 사람들은 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장인들 중 술에 약한 사람들은 회식을 두려워 하기도 한다. 바로 폭탄주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의 한 직원 아내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연말을 맞아 직급이 높은 사람이 권하는 술 때문에 남편의 간이 상해가는 것을 보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며 “폭탄주를 강요하는 남편의 상사를 몰아내달라”고 호소했겠는가. 하지만 직원들끼리 술도 못 권하는 사회가 돼가는 것 같아 유쾌하지는 않다. 폭탄주가 아니면 괜찮을는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선행이 지구를 살린다

‘종말(終末)’의 사전적 의미는 ‘맨 나중의 끝’이다. ‘끝판’이다. ‘종말론’은 유태교·기독교에서 세상의 종말을 믿고, 그때에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선인과 악인은 그 운명을 달리하여 신(神)의 선(善)이 영원히 승리한다는 설(說)이다. 종말관이라고도 한다. 신학(神學)에서는 종말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똑같으나 영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마지막 날들(last day)’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날(the Last Day)’이다. 처음 것은 예수의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의 모든 기간을 말하고, 두번째 말한 것은 예수의 재림의 때(말세지말)를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마지막 날’을 말하기 때문에 혼돈이 일어난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 날을 꼭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여러번 예수의 재림의 날을 예언하여 물의를 일으킨 소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사이비 종교의 시한부 종말론 주장이 나왔었다. 바울은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종말)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 ~2)고 경고했다. 바울은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나니”(살후 2:3)라고 예언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네 가지 징조를 말하고 있다. 첫째,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고 둘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일어나고 셋째,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게 되고 넷째,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하였다. 폭우나 태풍 전에 먼저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날씨가 후텁지근하듯 먼저 여러 징조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사회가 말할 수 없이 혼탁해지면 ‘말세’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선행이 종말을 막아 주는 것이다. 종말이 오지 않는 것은 악행보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잘 먹고 잘 살자'

‘웰빙(Well being)족’은 몸과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연·건강·안정·여유·행복이 웰빙족을 특정 짓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 식품을 주로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꺼린다. 동시에 요가와 단학, 아로마 테라피 등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꾀한다. 산업계에서 웰빙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신체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제식품업계다. 웰빙족은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했고 식품업체들은 상향 조정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무공해·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쏟아냈다. 올해 유기농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2∼3배나 비싸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현대인에게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제공하며 사랑받아 온 패스트푸드점은 이제 냉대받기 시작했다. 라면업계도 기름에 튀긴 면을 생면으로 바꾸고, 재료를 다양화하면서 웰빙족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웰빙족은 음료시장의 판도도 바꿔 놓았다.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던 콜라의 올해 매출액은 18%나 급감했고, 커피 음료도 된서리를 맞았다. 반면 녹차음료와 주스·두유·생수 등 건강지향성 음료는 경기침체를 무색케 했다. 특히 칼슘·검은콩·깨 등을 넣은 분유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유업계의 오랜 고민이던 분유재고를 해결했다. 화장품업계도 ‘자연주의’를 내걸고 웰빙족을 부르고 있다. 피부에 자극이 없다는 천연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고, 친환경 포장도 눈길을 끈다. 패션업계는 천연 섬유와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늘리고, 디자인과 색상에서도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깃발을 내걸고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웰빙족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제시하며 산업계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본래의 뜻과는 달리 웰빙이 고소득층의 사치스런 소비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내 돈 내가 쓰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내 입맛에 맞게 골라 먹는데 참견하지 말라는 웰빙족이 더러 있는 탓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