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간 언어의 이질화가 매우 심각해졌다. 특히 초·중·고 교과서는 번역없이는 뜻이 통하지 않을 정도다. 한 예를 들어 북한 고등중학교 1학년 (중 1) 국어 교과서 내용 중 “일남이는 고기를 잡느라고 물참봉이 된 바지를 억이 막혀 내려다 보았다. (중략) 일 없어,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꽝포장이가 되거던” 은 남한에서 “일남이는 고기를 잡느라고 물에 흠뻑 젖은 바지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괜찮아, 난 오늘 물고기를 꼭 잡아야 해. 못 잡으면 허풍쟁이가 되거든”이라는 문장이다.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와 남북어문교류위원회가 분단 이후 최초로 지난 4월부터 4개월간 북한 초·중·고 교과서 7개 과목 9권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질화된 언어가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사이시옷·두음법칙이 없고 외래어는 어원대로 쓴다. 예컨대 홰불(횃불), 내물(냇물), 메돼지(멧돼지), 로동자(노동자), 량심(양심), 래일(내일) 등이다. 외래어는 어원대로 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산), 마쟈르(헝가리), 뽈스카(폴란드), 에네르기(에너지) 등 철저하게 원음 주의에 따르고 있다. 더부치(호주머니), 물드레(하늘소), 솔솔이(물뿌리개), 삼촌 어머님(작은 어머님), 값이 녹다(값이 싸다), 칼자리(칼자국), 짜르다(짧다), 피타다(애타다), 내굴(연기), 매게나라에서(나라마다), 농마(녹말) 등 표준어도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북한은 1949년 한자 폐지·한글전용 실시 이후 지속적으로 말다듬기를 펼쳐와 세평방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 녀성고음(소프라노), 소리표(음표), 집짐승(가축), 산줄기(산맥) 등 언어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남한과 비교된다. 우리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며 정신적 고향이다. 우리 민족은 온갖 역사적 수난과 상처 속에서도 말과 글을 지켜 왔다. 그러나 분단 50여년 세월은 남북의 언어를 ‘번역’해야 이해할 지경이 됐다. 표준어와 사투리는 다르다. 남북 교과서 언어통일을 위해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표준어)를 연구하는 공동대책기구 설립 문제가 절실해졌다./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3-09-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