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관

중앙이고 지방이고 관공서의 공보관은 소속 장에게 칭찬받기는 무척 어려운 자리다. 잘 해야 본전일 때가 많다. 애쓴 본전을 못찾으면서도 조직과 소속장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공보관의 입장이다. 지금은 잘 몰라도 그래서 공보관이나 공보관실에서 고생했던 사람의 다음 자리는 기자실서 책임지다시피 하여 소속장으로 하여금 승진시키거나 영전토록 하는 관아 풍속이 전엔 있었다. 또 공보관을 잘 해낸 이들은 대개가 승승장구하여 출세하는 공무원이 많았다. 웬만 해선 감당키 어려운 자리를 감당해낸 역량을 다른 자리에서도 발휘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용병술을 터득하기가 공보관 자리만큼 더 한 게 없는 것도 이유가 된다. 지지대子도 그랬지만 저마다 다 잘 난 맛으로 까다로운 그 많은 출입기자들을 오래 상대하다 보면 다루는 이력이 생겨나는 게 공보관 자리다. 공보관을 지낼 땐 어울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던 기자들도 공보관이 막상 자리를 옮긴 뒤엔 남다른 정을 갖는 것은 역시 인지상정이다. 중앙의 공보관은 2·3급이고 지방의 공보관은 4·5급 공무원들이다. 국정홍보처가 중앙의 2·3급 공보관을 1·2급으로 올려야 한다는 건의를 대통령에게 낸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실 개방 및 브리핑제를 위해 장·차관과 자주 접하면서 정책 감각을 정확히 익혀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럴싸 하지만 직급을 올려야 장·차관과 자주 접촉할 수 있다는 대목은 틀린 말이다. 공무원을 직능 위주로 보지않고 직급 위주로 보는 구악은 이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신에 위배된다. 공무원 조직에서 직급 상향의 남발이 국민부담의 가중과 연결되는 것을 고려치 않는 것도 잘못된 발상이다. 말을 하자면 공보관 직급을 올리기 보단 ‘못난 아제 항렬만 높다’는 식으로 하릴 없이 급수만 높은 다른 직급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 공보관을 정 생각한다면 직급만 올려놓고 물 먹이기 보다는 현행 급수대로 해도 직능 중심을 살려 더욱 활성화 시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임양은 주필

청와대 기자실

청와대 기자실은 5공,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 때까진 당시의 사회에선 속된 말로 선망의 출입처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예를 들어 어느 재벌 총수가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 가려면 “기자실도 한번 들르시지요”하곤 했다. 그러면 총수가 빈손 들고 찾지 않는 게 관례였다. 이런 것 말고도 청와대 출입기자는 기자를 그만 두고 대개 좋은 자리에 들어앉는 등 권력의 접근율이 꽤나 높았다. 6공 들어 노태우 정권까지는 그런대로 관행이 계속되다가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점점 별 볼일이 없게 됐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는 아주 찬밥 신세가 되었다. 지난 대통령 방미 때 수행 기자들 비용을 자사에서 부담한 것은 전례 없었던 일이나 이런 것 등은 좋은 변화다. 문제는 춘추관(기자실)이다. 청와대 비서실을 마음대로 취재하기가 어렵게 되어 대변인이 배급하는 발표문이나 베껴쓰는 메신저로 전락했다. 대통령 회견에도 질문자 수를 미리 배급 하는 청와대 입맛에 맞는 관행은 계속 써먹었다. 경남 진영 땅 문제로 대통령이 특별회견을 가졌던 날도 그랬다. 그날 “무슨 질문이 저러느냐?”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쏟아진 건 역시 관행대로 중앙·지방일간지, 방송사 등으로 나눈 순번 따라 질문자가 정해져 맹탕 질문을 한 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악관 기자들이 송곳 질문으로 땀 흘리게 만든 역대 대통령이 많았던 것은 잘 아는 이야기다. 미국 대통령 회견은 자유질문이다. 춘추관도 자유질문토록 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돼 뒤늦게나마 수용된 것 같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기자실로 한정 시켰으면 대통령 회견 때 질문이나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있다. 껄끄러운 기자에겐 질문 기회를 제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기자실 개방이란 명분으로 춘추관 문호를 활짝 열어 누구든 출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인 건 이미 들은 말이다. 취지는 그럴듯 하지만 언론사 같지 않은 언론사 기자들로 가득차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선심 쓰는 척 하면서 언론을 무력화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춘추관이 백악관 브리핑 룸 같을 날은 언제쯤일까./임양은 주필

임진강 황복

황복은 복어목 참복과의 민물고기로 바다에서 4~5년 자란 뒤 진달래꽃이 필 무렵 강으로 올라와서 산란하고, 다시 바다로 내려가는 특이한 생태를 갖고 있다. 옆구리에 노란색을 띠며 검은 반점이 등 양쪽에 하나씩 있는 게 특징이다. 복어의 등가죽을 흑피라 부르고, 뱃가죽은 백피라고 하는데 가장 맛있는 부위가 뱃가죽 부위다. 복어는 회 또는 매운탕으로 많이 먹는다. 복어는 단백질이 20% 정도, 지방은 1% 이하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지방이 적어 칼로리는 낮으면서 맛이 담백하다. 복어는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 예방에 좋다. 또 간장 해독작용이 뛰어나 숙취제거, 알코올 중독 예방에 특별한 효과가 있고 혈액을 맑게 하여 피부를 아름답게 하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어는 맛도 좋지만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다. 복어의 독은 겨울에 늘기 시작하여 산란기인 5~7월 사이에 최고에 달한다. 복어의 내장, 특히 알에 있는 맹독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것으로 때로는 수놈에도 섞여 있다. 테트로도톡신은 복어의 학명인 테트로와 독(毒)을 말하는 톡신을 붙인 것으로 치사율이 60%나 된다. 이 독은 동물의 중추와 말초 신경에 작용하여 지각이상, 운동장애, 호흡장애, 혈류장애를 일으킨다. 사람의 몸속에서 분해와 흡수가 빠른 것이 특징인데 극히 소량으로도 1~8시간이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복어를 먹고 “그 맛,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은 테트로도톡신을 가지고 있어 한 말로 생각된다. 황복은 남북한을 흐르며 서해와 맞닿아 있는 임진강에 사는 것이 특히 유명하다. 맛으로도 전국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한때 무분별한 남획으로 임진강 황복이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7~8년 전부터 치어 방류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인 결과 최근에는 어획량이 늘어났다. 어민 한 명이 한 해에 3~4마리를 잡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00여마리를 잡는 ‘대풍’을 거뒀다. 황복은 아직까지도 ㎏당 10만원이 넘는 귀한 물고기여서 서민들이 먹기가 쉽지 않은 게 아쉽다. / 임병호 논설위원

공무원 윤리강령에 불만 많다?

공무원윤리강령이 시행된 지 불과 1주일쯤 지났는데 벌써부터 각종 편법이 나돌아 다닌다. “강령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여기 저기서 나온다. 식사값을 일정 액수로 제한한 게 ‘비현실적인 항목’ 1순위로 꼽힌다. 그래서 ‘꼼수’가 생겨난다. 값을 맞추기 위해 카드 전표 등 영수증의 날짜를 달리 하거나 식사값과 술값을 나눠 두 세장으로 떼기도 한다. 1인당 3만원 이내로 제한된 식사비용을 맞추기 위해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법도 쓴다. 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고기집들은 단속(?)을 피해 ‘원정식사’를 하러 오는 공무원들로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변한 것은 일식·한정식 대신 대중식당으로 향하는 점이다. 양주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 대신 소주와 맥주를 이용한 폭탄주나 소주와 전통주를 섞어 마시는 소위 ‘50세주’가 인기라고 한다. 골프모임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축·부의금 액수를 따지는 사람들도 많다. 축의금, 부조금은 품앗이 성격인데, 예전에 5만원, 10만원을 받았다면 그 금액만큼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업무관계자’의 범위가 애매해 결혼식 때 친지, 친구에게만 청첩장을 돌리고 공무원생활 하면서 사귄 이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공무원 윤리강령이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으레 있었던 일이니 초반에는 몸조심하자”는 공무원들의 분위기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남 몰래 호화판 접대를 받는 소수 때문에 전체가 비리를 저지르는 것 처럼 오해를 받고 있어 사기만 꺾였다는 공무원들이 많다. 하긴 그렇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윤리강령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인당 한끼 식대가 1만원이면 벅차다. 점심 도시락을 의무화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반신반의 한다. 최근 경찰청에 의해 드러난 공무원 접대 비리나 촌지수수 관행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마치 거머리처럼 관련 업체를 착취했다. 따지고 보면 공무원윤리강령이 또 생긴 것은 공직사회가 자초한 셈이다. 공무원들의 의식이 이번에는 정말 혁신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까시꽃

“ 동구밭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끗 /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 노래 ‘과수원 길’의 가사에 나오 듯 아카시아 꽃은 우리와 친숙한 꽃이다. 나무 한 그루당 보통 20만원어치의 꿀이 생산된다는 꽃은 그냥 먹어도 달콤하다. 그런데 사실은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acacia)’는 요즘 꽃이 한창인 나무가 아니라 아열대 이남에서만 자라는 열대작물이다. 아까시나무는 학명에서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아카시아로 된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일제가 소나무를 마구 베는 등 산까지 수탈하고 그 자리에 응급복구용으로 들여와 심었다고 한다. 1890년대에 인천의 한 일본 우선(郵船)회사 지점장이 상하이에서 묘목을 구해다 인천 월미도에 심었다는 등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번식력이 강해 8·15 해방 이후 한동안 연료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심기를 권장하기도 했다. 아무리 잘라도 극성스럽게 자라는 줄기(일명 맹아지)와 그 줄기에 붙은 무성한 가시는 아까시나무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만들어낸다고 한다. 자르지 않은 아까시나무는 곁가지 없이 전나무처럼 쭉 뻗어 올라가며 큰다. 식물학자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은 “사람들이 자꾸 베어버리려고 하니까 아까시나무는 살아 남으려고 더 많은 가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린 가지의 잎은 영양가도 많고 맛 있어 산짐승이 탐내 이 역시 무성한 가시로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 하다. ‘아까시꽃’보다 ‘아카시아’가 세련된 것 같지만, 그러나 ‘아까시’ ‘아까시’하고 오래 부르다 보면 연인 이름처럼 정겨워질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도심만 조금 벗어나면 꽃내음이 가득히 흘러 내려오는 아까시나무 그늘에서 “아까시꽃, 아까시꽃” 하고 불러 보니까 마치 ‘아가씨꽃’ 같이 어감이 부드러워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옹기 가업(家業)

장독대를 보면 그 집안의 살림 형편과 살림 솜씨를 안다고 했다. 드넓은 장독대에 크고 작은 장독이 즐비하면 가세가 넉넉한 집안이며, 장독마다 매끄럽게 닦여 단아해 보이면 살림 솜씨가 괜찮은 집안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간장은 해가 묵을 수록이 진한 맛이 더 하므로 여유가 있는 집에선 간장독이 많았고, 장독 관리는 아낙들의 부지런함이 배어들게 마련이므로 장독을 보면 그 집 아낙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독은 옹기다. 옹기엔 또 오지그릇과 질그릇 두가지가 있다. 오지그릇은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굽는다. 검붉은 윤기가 나고 질기다. 질그릇은 그냥 진흙으로 굽고 오짓물을 입히지 않으므로 겉이 테석테석하며 윤기가 없다. 오지그릇보다 더 잘 깨져 ‘질그릇 깨지듯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옹기는 우리 식품문화의 전통적 보고다. 겨울김장을 옹기에 담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꺼내먹는 그 맛이란 냉장고가 비할 바가 아닌 아주 일품이다. 세월이 달라져 지금의 도시 사람들에게는 장독대를 둘 곳도 없고 심지어는 김장옹기 하나를 묻을 땅이 없을만큼 온통 시멘트바닥 투성이다. 김치냉장고에 갖가지 플라스틱 제품이 나와 옹기가 추방되다시피 하였지만 옹기는 역시 고유의 식품문화 보고로 우리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여주 김일만씨(62·경기도 민속자료11호) 아들 네형제 등 5부자가 7대 200년의 가업으로 전통 옹기의 명맥을 이어 간다는 보도 내용은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세월이 바뀌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장인정신은 우리의 전통을 이어 준다. 가업에 자부심을 갖는 전통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옹기는 비록 사양산업이어도 그렇다고 없어서는 안되는 제조업이다. 김씨 일가의 옹기 가업에 경제적 보람도 함께 있기를 바라고 싶다./임양은 주필

정부 홍보

홍보의 시대다. 홍보는 광고·선전·보도의 개념을 다 포함한다. 방송 3사는 지난해 모두 막대한 광고수익을 냈다. 공영방송인 KBS도 1천60억원 가량 낸 순이익 중 대부분이 광고수익이다. 상업방송인 MBC는 7천63억원, SBS는 6천218억원의 광고수익을 올렸다. (기자협회보 5월14일자 보도) 이에 힘입어 방송사마다 큰 흑자를 기록하였다. ‘흑자’ 효자노릇을 한 광고 매출액은 물론 광고 수익금액보다 훨씬 높다. TV광고에 나가지 않으면 상품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인식받기 어렵다는 것이 TV광고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TV광고료 말고도 모델료 CF 제작비 등 연간 수 조원대의 TV광고 시장은 결국 상품가격에 포함되므로 고스란히 소비자(시청자)가 부담한다. 광고성 선전, 홍보성 보도 이런 것들을 일컬어 PR(public relation)이라고 한다. PR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주로 많이 하지만 관공서에서도 한다. 홍보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홍보에 광고 윤리란 게 있는 것처럼 관공서 홍보가 ‘구렁이 제몸 추듯’ 자화자찬에 흘러서는 신뢰성이 있을 수 없다. 일반 관공서도 아닌 정부가 ‘참여정부’의 100일 성과를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적극 PR토록 하는 국무조정실의 각 부처별 홍보 계획이 보도돼 눈길을 끈다. 장·차관들이 TV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자청해 나가 홍보하고 신문 등에 홍보 칼럼 등을 게재토록하는 한편, 언론사 간부나 기자단과 홍보성 간담회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언론 주무장관이 ‘언론이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하는 판에 언론을 통한 정부 홍보설이 나오는 것은 자못 역설적이다. 정부 홍보를 한다니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정부 정책이야 국민들이 잘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행여 ‘구렁이 제몸 추듯’하는 PR이 되어서는 국사에 바쁜 장·차관들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임양은 주필

권문세가

권문세가엔 사람들이 들끓게 마련인 게 자고로 사람이 사는 세태이긴 하다. 조선시대 연산조의 권신 임사홍 집이 그랬고, 자유당 정권 때 이기붕 집이 그리하여 세인들은 서대문에 있는 그의 집을 가리켜 ‘서대문 경무대’(청와대)라고 하였다. 하지만 드물긴 했으나 그렇지 않은 권문세가도 더러 없진 않았다. 조선시대 세종조의 황희는 영의정 자리에 있었으나 그의 초가집에는 평소 청탁배들이 감히 근접을 못했을 만큼 청렴하였다. 이처럼 성품이 관후정대하여 정승만도 무려 24년을 지내는 장구한 벼슬살이로 네 임금을 섬길 수 있었다. 역시 자유당 때 외무부장관 등을 지낸 변영태는 청렴강직하여 외국 출장을 다녀와서는 근검절약하여 남긴 출장비를 국고에 반납하곤 했다. 날마다 운동삼아 아령을 했던 그가 외국에 나갈 땐 짐이 무거워져 운임으로 공연히 출장비가 더 든다며 비서가 짐 보따리에 챙겨 넣은 아령을 공항에서 끄집어낸 일화가 있다. 성품이 이토록 깐깐하여 그의 집엔 아예 잡인들이 들지 못했다. 그러나 권문세가를 찾는 세태 중엔 그 당사자 뿐만이 아니고 권문세가의 사돈네 팔촌까지도 찾아 다니는 더욱 못된 세상 인심도 또한 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 집 앞에서 걸핏하면 농성하곤 하는 민원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마을 주민들이 민원들인에게 자제를 호소했다고 한다. 어느 버스 주주들이 회사내 갈등을 해결해 달라며 한 달 남짓이나 농성하고, 재건축 문제를 둘러싼 부산 아파트 주민 90여명이 농성을 한다니 마을 사람들도그렇지만 건평씨도 참 딱한 입장이다. 민원인들은 건평씨 집을 권문세가로 보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형님이면 형님이지 회사내 분쟁이나 재건축 같은 문제를 무슨 수로 해결해 달라는 것인지 민원인 그들부터가 크게 잘 못 됐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찍이 권문세가나 그 친인척들의 처신에 더욱 조신을 설파한 선현들의 경구가 있었던 것 같다. /임양은 주필

에이즈 감염 확산

올해 1분기(1~3월)동안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감염된 사람이 모두 115명으로 하루 평균 1.28명씩 감염됐다는 국립보건원의 발표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3.3% 증가한 것이다. 또 이 기간에 19명의 감염자가 환자로 전환됐으며 21명이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 등으로 사망했다. 국내에 에이즈가 유입된 지난 1985년 이후 지금까지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2천122명으로 그중 1천656명의 감염경로가 확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 경로가 확인된 사람의 97.4%(1천613명)가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됐으며 47%(777명)는 ‘국내 이성과의 성 접촉’, 30.1%(498명)는 ‘동성과의 성 접촉’, 20.4%(338명)는 ‘외국인 이성과의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됐다고 한다. 1998~2002년 사이에 에이즈 감염자는 연평균 33.3%씩 증가했으며 50대 이상의 장·노년층도 이 기간 연평균 18.5%씩 증가했다. 이는 요즘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 넣고 있는 ‘사스’보다 확산속도가 빠르고 무서운 것인데도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에이즈 감염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당사자의 무리한 성생활 탓이지만 보건당국의 에이즈 감염자, 특히 외국인 관리가 형식적인 것도 그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경기 북부지역의 경우 경기도 제2청과 시·군보건소가 만성전염병 관리차원에서 에이즈 외국인 감염자들에게 면역검사비와 진료비 등을 무료로 지원해 주고 술집과 다방 등 유흥업소 1천200여 곳의 종사자 2천여명을 대상으로 수시로 보균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의정부보건소에 올 들어 에이즈 감염자 18명중 7명이 병원을 다녀와 진료비를 청구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에이즈에 감염된 불법체류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출입국 관리 당국의 추적을 피해 국내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는 국내 기업에 취업했거나 윤락가를 전전하면서 국내에 에이즈를 확산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불법 체류자는 엄연한 범법자다. 에이즈 감염자는 특히 그러하다. 사업장이 일괄적으로 건강검진을 관리하거나 자진신고토록 해 에이즈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백령도 민들레

민들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마치 밟고 밟혀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같다고 하여 민초(民草)로 비유되기도 한다. ‘앉은뱅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은 두상화서(頭狀花序)를 이뤄 주로 봄에 핀다. 꽃 필 때는 흰털이 있으나 나중에는 거의 없어지고 두상화서 밑에만 흰털이 남는다. 열매에도 흰털이 나 있어 열매를 멀리 운반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꽃피기 전의 전초(全草)를 포공영(蒲公英)이라 하여 감모발열(感冒發熱)·인후염·기관지염·임파선염·안질·유선염·간염·담낭염·소화불량·소변불리·변비·정창( 瘡)의 치료제로 이용한다. 또 뿌리와 줄기는 자르면 하얀 젖같은 물이 흘러서 민간에서는 최유제(催乳劑)로 이용하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고미건위(苦味健胃)의 약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성인병 퇴치의 산채(山菜)로 이용하고 있다. 민들레 어린 순은 봄나물로 무쳐 먹거나 뿌리로 국을 끓여 먹었다. 민들레는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어 봄철에는 아침 저녁 쌈으로 싸먹었고 꽃이 피기 전에는 통째로 말려 물에 타먹기도 하였다. 뿌리에 들어 있는 물질은 베헨산(behenic acid)과 같은 지방산과 이눌린(inulin)이 들어 있고 타락세롤(taraxerol) 카페산(caffeic acid)이 있다. 변비·간장병·황달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민들레를 요즘은 ‘차’로 끓여 마시는 것이 널리 퍼지고 있다. 민들레차만 가공하는 농업기술센터도 생겨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을 정도다. 민들레 국수까지 나왔다. 지난 어버이날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위치한 해병대 흑룡부대 장병들이 고향의 부모에게 우송한 선물은 민들레 줄기로 만든 ‘민들레즙’이었다. 부대 주변에 많이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고 장병들이 여가시간을 이용, 20포대 분량을 캐 찬물에 하나 하나 정성껏 씻어 햇볕에 말린 뒤 민들레즙을 만든 것이다. 백령도 민들레는 예전부터 토질이 비옥하고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에서 자라 기관지염과 천식 등에 특히 효험이 크다고 한다. 민들레가 만병통치약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문화재 관리

국립공주박물관에 강도가 침입, 국보 및 국보급 문화재 4점을 강탈해 달아난 사건은 한 마디로 당국의 안이한 문화재 관리와 총체적인 보안 불감증이 빚은 불상사다. 국보 19점, 보물 4점 등 1만여점의 문화재를 전시·보관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으로서는 방범 체계가 너무 허술했다. 현장상황을 모니터로 통제하는 종합방제실이 없고 사건이 발생한 1층 전시실에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감시용 폐쇄회로 카메라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방범을 담당하는 전담직원이 없고 야간 당직 또한 1명뿐이었다. ‘국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스럽다. 공주박물관의 방범 및 보안관리 수준이 금은방이나 가정집보다 못한 것으로 속속 드러나면서 전국 각처에 있는 공립박물관들이 걱정스럽다. 종합방제실을 두고 방범전담 직원들이 박물관 안팎을 전체적으로 감시하는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뿐이다. 지방박물관은 학예사들이나 시설보수를 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방범업무까지 함께 하고 있다니 지금까지 무탈한 게 다행이다. 1994년 이후 도난 당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는 188건에 7천 403점이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에서 문화재가 강탈된 것은 처음이다. 도난 당한 문화재 중 회수된 것은 34건 608점에 불과하다. 경주의 경우 신라왕릉 36기 중 11기가 도난 당했다. 이번에 강탈 당한 문화재 중 ‘공주의당금동관음보살입상’은 7세기경 백제시대의 걸작이다. ‘청자상감포류문대접’ ‘청자상감국화문고배형기’는 고려시대의 유물이다. 이들 문화재가 외국으로 밀반출되거나 공식적인 경매를 통해 팔릴 가능성은 없다고 당국은 밝히고 있지만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최근 복제품 문화재를 관광상품이나 선물용으로 구입해 출국하는 사람들이 많아 출입국시 검색을 심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불화 등 우리나라와 일본 국경을 넘나들며 유통되는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1996년 6월 개관한 경기도박물관에는 5천500여점의 문화재가 보관돼 있다. 청경 8명이 철저히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공주박물관과 같은 불상사가 없도록 더욱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무원 행동강령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경험하였다. ‘국민의 정부’ ‘문민정부’ 시절 개혁 차원에서 그랬고, 그 이전의 정부에서도 서정쇄신이란 이름으로 수차 있었던 일이다. 심지어 한 임기의 정부에서 몇차례씩 시도된 적도 있다. ‘공무원 행동강령’(윤리강령)은 이토록 습관성 유산인 것이 숙명이다. 유사한 명칭에 내용도 한결같이 비슷하였다. ‘준칙’ ‘훈령’ 등 형태도 여러가지였던 것을 이번엔 ‘대통령령’으로 한다지만 습관성 유산을 면할 전망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시행 첫날 관가 주변의 고급 음식점들이 한산한 것도 과거 실패한 경험과 똑같다. ‘3만원 초과 식사 금지’ ‘5만원 초과 경조금 금지’ 등등, 이런 것들은 결국 지켜질 수 없는 것들이다. 여럿이 먹다보면 덜 먹을 수 있고 더 먹을 수도 있다. 경조금 봉투 또한 일일이 얼마나 들었나 하고 열어보고 받는 것은 아니다. 지켜질 수 없는 것은 이밖에도 많다. 이런 강령 따위로 공무원 사회의 부패가 추방될 것으로 기대하는 발상 자체가 유치하다. 냉소거리 밖에 안되는 선언적 규정으로 이를 위반하면 징계한다는 으름장 역시 웃기는 이야기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으레 하는 소리로 치고 처음 한동안만 바짝 긴장하다 마는 전철이 또 되풀이 되는 것 같아 영 씁쓸하다. ‘부패방지위원회’는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 곳인지, 정 한 건 올리려거든 좀 그럴싸한 작품을 내놔야 할 것이다. 기껏 실패한 습관성 유산의 전작을 표절해서는 새 정부의 권위만 흠집낸다 할 것이다. 정부 기관은 무슨 일에 포장만 거창하게 하기보다는 내실을 먼저 생각해가며 일을 하는 것이 참다운 개혁적 자세라고 믿는다. 공무원 사회의 청정화는 당연한 과제이지만 이런 겉치레 틀을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 행동강령’(윤리강령)에 대해 표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노여움 역시 바로 이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임양은 주필

법이 존중되는 이유

얼마전에 보도된 대학생들의 보수단체 활동소식은 흥미롭다. 진보성향 풍조만이 풍미하는 것으로 여겨온 대학가에 보수성향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래한국연구회’ ‘청년우파연대’ ‘보수학생연대’외에 또 ‘청년한국대학생연합’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성된지 3개월~9개월된 이 보수단체는 회원 수가 각기 800여명에서 1천500여명에 이른다니 작은 단체가 아니다. 시장경제, 국가안보, 자유통일 등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이심전심으로 뜻을 같이하게 된 이들 단체는 세미나·토론·집회 등으로 젊은 생각들을 피력하는 모양이다. 예컨대 북 핵문제, 이라크전쟁 같은 걸 주제로 삼기도 하고 사회문제도 다룬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생들 가운데는 보수·진보 어느 단체든 가입하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다만 한총련처럼 진보성 단체만이 아니고 이젠 보수성 단체가 존재한다는 게 세태의 또 다른 변화를 실감케 한다. 전체주의는 단원화 사회인데 비해 자유민주주의는 다원화 사회다. 단원화 사회는 단독선의 맹종을 요구하는데 비해 다원화 사회는 공동선의 토론을 추구한다. 북에서는 유일사상과 신격화 승복만이 존재하는데 비해 남에서는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의 구사가 이래서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점이다. 상대를 부정하면 나도 존립할 수 없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취약점이면서 또한 최대 강점이다. 그러므로 법질서가 존중돼야 한다.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의 어떤 학생단체이든 간에 법질서를 이탈해서는 자신의 활동을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은 유신정권이나 신군부 독재시대가 아니다. 헌정을 파괴하는 독재에는 법질서를 이탈하는 투쟁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를 혼동하는 일부 대학생들의 잘 못된 판단이 심히 안타깝다./임양은 주필

골프와 공무원

골프가 좋은 운동인 것은 사실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는 운동인 것이다. 드넓은 초원에서 즐기는 호연지기도 있고, 또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친근감을 복돋는 사교의 재미도 일품인 건 틀림이 없다. 이런데도 좋지않게 보는 이유는 딱 두가지다. 그 하나는 골프장 조성자체가 자연파괴라는 점이다. 외국에선 특히 스웨덴 같은 북구에서는 골프장을 우리들처럼 안만든다. 자연상태를 그대로 두고 골프장을 만드는 것이다. 길이 있으면 그대로 놔두고 바위가 있어도 그대로 놔두고 능선이 있으면 또한 그대로 놔둔채 홀을 조성한다. 이 때문에 골프장에 산짐승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이 길따라 마음대로 다니기도 한다. 우리네 골프장은 이와 반대다. 산야를 온통 깎고 허물어 가면서 만들고는 인근 사람은 접근도 못하게 한다. 골프장을 만든 뒤에도 잔디에 초맹독성 농약을 뿌려 환경파괴를 일삼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돈이 많이 드는 점이다. 골프를 치기위해 장비만도 다 갖추려면 수백만원 또는 천만원 돈이 든다. 흔히 골프가 대중화 됐다지만 천만원 채비가 드는 운동을 즐길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골프의 대중화란 그렇게 말하는 그들만의 대중화인 것이다. 돈이 채비에만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골프 치러 한번씩 나가려면 현찰보다 수표가 많아야 한다. 10만원짜리 수표 서너장쯤 없애는 것은 약과다. 더 많은 돈이 들기 예사다. 골프장에선 고급승용차를 탄 사람이 아니면 사람 축에도 못낀다. 공무원의 ‘접대골프’ 파문이 있었다. 중앙 부처 국장급 공무원 10여명이 관련 업계에 골프접대를 요구한 사실이 사정 당국에 의해 뒤늦게 밝혀져 징계토록 통보됐다. 비단 이번에 그친 일이 아니고 또 이들 공무원만의 일은 아니다. 부패 공무원이 아니고는 골프를 즐길 수가 없다.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지 않아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제 월급 돈으로 가족들 먹이고 아이들 공부시켜 가면서 골프 칠만한 공무원은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공중전화

세계적으로 전화기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변신’을 거쳤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처음 개발한 전화기는 자석식이다. 교환원이 통화를 성사시켜 주는 수동교환 방식이다. 1980년 나온 공전식은 전화국의 축전지에서 가입자에게 일괄적으로 전류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화를 걸 때마다 발전기를 힘들게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자동식은 1891년 개발됐다. 교환원이 수동으로 통화를 연결시키는 불편함을 없애준 전화기다. 한국 최초의 전화 통화는 1896년 한성 궁내부(임금이 살던 곳)에 자석식 전화기가 설치되면서 이뤄졌다. 1902년 한성~인천간 전화가 개설되고 한성전화소에서 전화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들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교환수는 신(新)문명을 다루는 엘리트로서 자긍심이 대단한 높은 직업에 속했다. 1908년 공전식, 1935년 자동식이 도입됐지만 당시 전화기는 총독부의 관용이거나 일부 특권층의 사치품이었다. 전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체신부가 국산 최초 전화기 ‘체신1호’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부터다. 1980년대 들어 국가가 보급하던 전화기의 구입 절차가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자급제로 바뀌면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의 전화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과거의 ‘영화’를 잃은 공중전화도 한국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처음 보급될 때에는 자석식으로 교환원을 불러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준 후 원하는 상대방과 통화하는 방식이었다. 옥외 무인 공중전화는 1962년 서울 산업박람회장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 통화료는 5원이었다. 시내 통화만 가능했던 공중전화는 1978년 시내외 겸용 체제로 바뀌었고 1983년 시외용 DDD 방식을 거쳐 1986년 아시아경기를 계기로 카드식 공중전화가 등장했다. 요즘 핸드폰시대가 됐다고 공중전화 설치수를 줄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용론은 더 더욱 그러하다. 핸드폰이 있어 공중전화를 사용하려고 줄지어 서 있지 않는 것은 좋다. 또 앞사람이 길게 통화하면 ‘짧게 하자’고 말해 시비가 붙곤 하던 일이 지금은 추억거리가 됐다. 문득 공중전화로 추억 저 편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 날이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환대출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육박하면서 ‘대환대출 확대론’이 나왔다. 연체대금을 신규대출로 전환해 연체를 해소해 주는 방법이다. 일시에 카드대금을 다 갚기 어려운 사람에게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게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다. 일단은 연체자의 숨통을 틔어주는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금 신용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등 사용한도를 너무 급격히 줄였기 때문에 신용불량 문제가 심각해졌다. 따라서 급격한 환경변화로 어려움에 처한 연체자들을 연착륙 시킬 필요가 있다. 신용불량자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환대출이 신용불량자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고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 이라며 오히려 더 큰 부실과 위기만 불러온다는 반대 입장도 있다. 대부분 대환대출을 받는 10명 중 8명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결국 대환대출은 한 사람을 보증한 친척과 친구 등 여러 사람의 파산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불량을 막기 위해 금리가 살인적인 사채를 쓰는 것 보다는 대환대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2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자에게 대환대출을 해주면 회수율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9개 전업계 카드사의 3월말 현재 대환대출 규모가 10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말 (4조7천억원)에 비해 6개월 만에 2.23배로 증가한 것이다. 연체율이 올라가면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지만 대환대출은 신규대출로 분류돼 연체율 상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선호한다. 문제는 대환대출 때 세우는 보증인 제도다. 대다수가 보증인을 구하지 못해 대환대출을 못 받는다. 신용카드사들이 보증인 제도를 없애고 대출금 중 본인이 원하는 만큼 매월 갚아나가는 리볼빙 제도를 활발히 도입한다면 대환대출은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좋은 제도가 될 것 같다. 이제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는 폐지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스승의 날’ 역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현재 강경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은 5월8일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상에 있는 스승 진동만 교사와 퇴직 교사들을 위문하며 이 날을 ‘은사의 날’로 정했다. 이후 학생들은 5월8일 ‘은사의 날’마다 스승에게 꽃을 달아주고 기념행사를 갖는 전통을 만들었다. 이 사실이 충남지역에 퍼지면서 청소년적십자사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21일을 ‘은사의 날’로 정해 도내 모든 단원들에게 이에 동참토록 했다. 이듬해 1964년 전주에서 열린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부르기로 하고 날짜도 5월26일로 바꾼뒤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을 발표했다. 전국 규모의 첫 민간 스승의 날 행사가 열린 것이다. 날짜가 5월15일로 확정된 것은 1965년 부산에서 열린 제15차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였다. 이 협의회는 세종대왕 탄신일(1397년 5월15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전국 초중고 학생회장에게 제2회 스승의 날 기념식을 갖도록 호소문을 보냈다. 정부가 개입을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다. 유신 시절 학생집회 불허 방침에 따른 ‘서정쇄신’으로 ‘스승의 날’ 행사가 폐지됐다. 그러나 1982년 정부가 다시 부활키로 결정, 5월15일을 ‘정부 기념일’에서 ‘스승의 날’로 바꿨다. 요즘에는 스승의 날 선물에 ‘청탁성’이 짙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스승의 날을 학년말인 2월로 옮기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 생전에/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의 ‘스승의 은혜’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더도 말고‘스승의 은혜’ 노래 후렴만이라도 불러 보면 생각날 것이다.“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임병호 논설위원

호주의 변(辯)

선친이 작고하여 호주 상속을 받은 지가 20여년 된다. 적잖은 세월이다. 하지만 호주란 것을 의식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호주 권한을 행사한 일이라고는 더욱 없다. 호주제가 무슨 천하의 악법인 것처럼 야단 법석이다. 어머니 할머니되는 집안의 어른 여성을 놔두고 어린 아들이나 손자 등 남성이 호주가 되는 것을 성차별의 큰 폐악처럼 떠든다. 심지어 남편이 죽거나 이혼한 뒤에 재혼하면 데리고 간 전 남편의 자녀 성씨마저 재혼남편 성씨 따라 고쳐야 한다고 우긴다. 말이야 아이를 위한다지만 재혼녀 여성을 위하는 소리다. 생모가 시집갈 때마다 성씨를 몇번씩 바꾸는 아이들이 안나온다 할 수 없다. 호주제 대신 일본처럼 가족부를 만들거나 미국처럼 1인1호적제를 만들자고 한다. 그래야 선진국형 가족제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호주를 반납한다 해서 유감스런 건 조금도 없다. 나이가 많으므로 생각이 고리타분한 것인지 스스로 성찰도 수없이 해보지만 아무래도 한다는 소리들이 이상하다. 만약 아버지 성씨 승계의 민법 강제조항을 폐지하면 제멋대로 성을 만들어 족보도 못만들 지경의 난장판이 되어 성씨의 의미가 없게 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전통적 가족제도가 붕괴될 것이 심히 두렵다. 여성이 결혼을 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본연의 성을 그대로 갖는 여권 존중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다. 일본의 가족부나 미국의 1인1호적이 최상의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일본이나 미국처럼 우리의 여성도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제도에 찬동할 것인지 묻고 싶다. 성차별은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호주제가 과연 성차별인가엔 깊은 생각이 요구된다. 유행병적 개혁은 개악일 뿐 개혁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관념이 왜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들도 자식이고 딸도 자식이다. 인간다움에 성별을 가릴 이유는 없다. 남성이나 여성이란 입장보단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요구된다. /임양은 주필

종교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욕심과 미움, 절망과 번민을 떨치고 아기 예수와 함께 평화와 사랑의 생명잔치에 참여하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백도웅 총무) 이는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 내용이다. 불교측의 덕담도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다” (불교 조계종 정대 전 총무원장) 이에 이어 올 석탄일엔 천주교측의 덕담이 있었다. 종교는 이처럼 권력과 금력 앞에 초월할 때 비로소 빛을 뿜는다. 종교의 진정한 관심은 오로지 어린 양들인 중생들만이 대상이다. 담임 목사의 연봉이 1억2천300여만원에 달해 ‘너무 많다’는 신도들의 이의가 제기됐던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연봉은 7천300여만원이었지만, 이 역시 많은 것으로 인정돼 신도들로 구성된 ‘목회자사례연구회’에서 5천700만원으로 조정했다. 또 어느 교회에선 장로를 시켜준 목회자에게 새로된 장로들 수명이 돈을 모아 외제 수입 승용차를 선물로 주었다. 지난 석탄절 어느 사찰의 연등은 권력자 순으로 대웅전 앞 VIP라인에 걸려 신도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기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고,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났으면서 영화를 버리고 고행을 택하셨다. 이 분들에게 권력과 금력은 아무 의미없는 초개같은 것이었다. 어지러운 이 세태에 종교마다 교세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 하다. 종교활동 역시 소비가 따르므로 돈이 필요한 것 또한 마땅히 인정된다. 다만 일부 종교인들이 권력과 금력앞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궁금해하는 많은 신도들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 궁금하다. 권세와 영합하여 권력화하거나 금전과 영합하여 기업화하는 종교인은 없을 줄로 믿고싶다. 종교지도자들의 메시지는 종교인의 준칙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과 같은 진솔한 등불을 켜야 한다”는 것은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의 이번 석탄일 봉축 법어다. /임양은 주필

스승과 제자

근래 청와대 소식 중 정말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게 있었다. 은사들 초청담은 신문에 난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가슴 찡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대통령은 나를 모를끼다”란 스승의 말에 “왜 모르겠습니까. 선생님 별명이 ‘서도끼’ 아니었습니까”라고한 제자 대통령간 대화는 사제지간의 진한 정감이 넘친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고교시절 과학을 가르쳤던 이에겐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무척 무서웠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교장 선생님을 각별히 우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사회의 행사에는 반드시 교장 선생님을 초청하도록 하였다. 초청할 뿐만 아니라 좌석배치를 꼭 상좌에 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학생들이 참가하는 행사에는 이렇게 함으로써 교장 선생님의 위엄을 높이는 교육 효과와 함께 학원 내부의 자긍심을 배양케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등학교 때의 일본인 은사와 국경을 초월한 교분을 잊지 않은 일화가 있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얘기다. 사제지간은 이토록 영원한 인연이다. 그래서 부모의 인연과 버금 간다고도 한다. 잘나도 못나도 자식이고 잘나도 못나도 부모인 것처럼, 잘됐든 못됐든 제자이고 잘났 건 못났 건 스승인 것이다. 흔히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들 개탄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훌륭한 스승, 성실한 제자들은 지금도 많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한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은 것을 뜻하며 이를 사도(師道)의 으뜸된 보람으로 꼽는다. 교장단과 전교조의 갈등이 심화하고 사회가 혼란스럽다. 이런 시기에 노 대통령의 은사들 청와대 초청은 시사되는 의미가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꼭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의 학생들도 장차 선생님들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스승을 기쁘게하는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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