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황사현상은 삼국유사나 이조실록 등 고문헌에도 나온다. 토우(土雨), 즉 ‘흙비’라고 했다. 그 때도 꽤나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옛 황사는 순수한 흙먼지의 입자였던 것에 비해 지금은 공해물질 투성인 점이 다르다. 중국이 개발지상주의로 치달으며 내뿜는 중금속 등 갖가지 오염 물질로 뒤범벅 된 게 이즈음의 황사다. 황사가 지나간 뒤 승용차에 수북이 덮친 황사를 문지르거나 세차해보면 얼마나 오염됐는가를 알 수 있다. 병균이며 병충도 옮긴다. 벼 농사에서 가끔 나타나는 신종 병해충은 황사를 타고 건너온 것들이다. 황사현상으로 사람들이 앓는 안질은 더러운 흙 먼지가 들어가 그렇다손 쳐도, 한 때 소에 무서운 질병으로 번졌던 구제역도 원인에 황사설이 있었다. 황사는 실로 봄철의 불청객이다. 몽골, 중국의 화북과 남만주 등에서 편서풍을 타고 이동하는 황사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거쳐 북태평양까지 날아간다. 하늘에는 4천m 높이까지 오른다. 중국에선 옛적에 황사를 가리켜 ‘황진만장’(黃塵萬丈)이라고 했던 게 지나친 말은 아니다. 황사현상이 극심하면 태양마저 빛을 잃어 황갈색으로 보이고 시계가 악화돼 항공기는 물론 지상의 차량 운행도 제한을 받는다. 정부가 황사 대책에 나섰다. 한·중 공동으로 올 연말까지 중국에 공동 감시관측소를 두 곳에 만들고 내년에 세곳을 더 설치한다는 것이다. 또 황사 발원지역에 방풍림 조성을 지원키로 했다. 일본도 방풍림 조성 지원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장기사업이다. 황사를 근절시키는 것도 아니다. 최선의 인력을 다하는 것 뿐이다. 자연의 황사대책도 좋지만 황사가 묻혀 옮기는 인재의 공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게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다. 황사의 계절이 또 닥쳤다. /임양은 주필

'꽃동네'

‘꽃동네’ 소식이 우울하다. 85만여명의 후원회 회원 가운데 2천여명이 탈퇴하고 2천여명의 자원봉사자들 중 300여명이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 시설인 ‘꽃동네’가 후원금 횡령 의혹의 검찰 수사에 휘말려 이처럼 곤혹을 치르고 있다. 꼼짝달싹 못하는 장애인 등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켜 주고 방안 청소며 빨래를 해주는 것이 자원봉사자들이다. 전국에서 각자가 형편 닿는 대로 매월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이 후원회 회원들이다. 오웅진 신부가 회장 자리를 그만 두고도 의혹설로 인한 타격은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꽃동네’가 아니더라도 좋다. 이런 불우한 이웃들에게 단 한번의 자원봉사를 해봤는가, 후원금을 한 푼이라도 보낸 적이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래된 이야기다. 고아원에 구호품 옷가지만 잔뜩 들어와 원장이 옷보다 더 필요한 쌀을 사기위해 옷가지 몇 점을 팔았더니, 고아원장이 구호물자를 팔아 먹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쓴적이 있다. 꽃동네 의혹설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검찰수사가 안끝나 잘 모르지만 우리는 ‘꽃동네’를 아끼고 싶다. 평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던 사람일 수록이 의혹의 눈길에 뒷 말만 더 많다. 그래도 후원회나 자원봉사를 그만 둔 사람보다는 묵묵히 계속해서 돕고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아주 다행이다. 뒷 말이 어떻든 이에 개의치 않고 인간애를 꽃피우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한다. ‘꽃동네’가 하루 빨리 구설수에서 벗어나 전처럼 활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불우한 이들의 천국인 ‘꽃동네’는 여전히 아끼고 보호되어야 한다. ‘꽃동네’가 아닌 다른 대부분의 사회복지 시설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양은 주필

'꿈이 익는 가게'

‘지나가는 사람이든 동네 터줏대감이든 언제든 들러 차 한잔 마시면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는 곳입니다’ 수원 지동의 새 명소로 지난 14일 문을 연 ‘꿈이 익는 가게’의 안내문 내용이다. 시민들로부터 헌 물건을 기증받아 종류별로 분류하고 손질해서 싼값에 판 수익을 공익과 자선을 위해 쓰고 환경을 살려간다는 취지로 설립된 알뜰 가게다. 보건복지부 지정 113호 경기수원우만자활후견기관(관장 정용준)의 자활 사업 일환으로 오픈하였다. 이 후견기관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저소득층 대상자들을 자활근로에서 자활공동체까지 지원하고 있다. ‘꿈이 익는 가게’엔 옷가지, 액세서리, 희귀음반, 도서, 명사 기증품, 기타 생활용품 등 코너 외에 방석 같은 것으로 자체 생산품도 팔고 또는 위탁판매도 한다. 비록 헌 물건이라지만 정성들여 재생시킨 게, 특히 옷가지 등은 거의 새 것이나 다름이 없을만큼 정갈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기증하고 위탁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꿈이 무르익기를 소망한다. 경기수원우만자활후견기관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사업으로 자활근로 방문 미용 사업단, 자활근로 리메이크 사업단, 자활근로 복지 간병 사업단, 자활근로 깨끗한 수원만들기 사업단, 자활근로 집수리 사업단, 푸드델리 사업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의 ‘꿈이 익는 가게’는 리메이크 사업단에서 문을 연 것이다. 위치는 지동초교에서 못골 길로 들어 약 300m 지점이다. 전화번호 031-258-8019 /임양은 주필

'쌔씨족'

1960년대, 기존 체제에 매이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문화를 주장했던 ‘히피족’은 물질적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적 자유를 중시하는 현대적 의미의 ‘보헤미안’ 문화를 대변했다. 특정한 세대나 직업별·문화별 그룹이 ‘족(族)’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것이다. 상업적 의미의 족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미국 ‘여피족’이 최초다. 여피(yuppie)는 젊고(young) 도시화된(urban), 전문직업인(professional)을 뜻한다. 물질에 연연하지 않는 히피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딩크족’은 1990년대 중반에 회자됐다.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는 여피 중에서도 가정생활보다 개인의 인생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딩크족은 수 많은 아류를 갖고 있다. 한 두명의 자녀를 가진 맞벌이 부부를 나타내는 ‘듀크족’, 남편이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는 전통적 가정형태를 유지하면서도 2세는 갖지 않는 ‘싱크족’,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손자·손녀를 돌보는 데도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취미생활로 말년을 즐기며 보내는 부부 ‘통크족’,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를 가리키는 ‘딘트족’이 있다. 맞벌이로 생활은 넉넉하지만 자녀 대신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키우는 ‘딩펫족’은 최근에 등장했다. 20세기말부터 히피족으로 대변되는 보헤미안 전통과 여피족으로 상징되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함께 지닌 ‘보보스(BOBOS)’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정보기술(IT)도 새로운 족을 낳았다. 디지털카메라에 심취한 ‘디카족’, 핸드폰에 장착된 카메라로 무장한 ‘폰카족’, 디지털화한 자신의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는 ‘웹캠족’,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포테이토칩을 먹으며 PC에만 열중하는 ‘마우스포테이토족’도 있다. 요즘엔 25~35세의 성공한 전문직 여성을 상징하는 ‘쌔씨(sassy)족’이 한국에 상륙했다. ‘쌔씨’는 미혼(single), 경제적 여유(Affluent), 성공(successful), 멋쟁이(Stylish), 젊은이(young)를 뜻한다. 쌔씨족? 활력 넘치는 여성이 연상돼 좋다. 그러나 너무 고급스럽고 값 비싼 소비생활에만 탐닉하는 ‘무늬만 쌔씨족’이 늘어나는 게 걱정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奸과 惡

중국 춘추시대 제(帝) 환공은 역아라는 신하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렀다. “듣자 하니 요리를 잘한다고?”라고 물었다. 역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이 세상의 맛있는 요리라면 먹어 보지 않은 것이 없는데 단 한가지 사람고기는 못 먹어 보았다. 사람고기의 맛은 어떤가?” 물론 농담이었다. 환공은 별뜻 없이 한 말인데 역아는 그냥 들어 넘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역아는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살난 자기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들어서 환공에게 바쳤다. 처음에 환공은 역아의 이런 행위에 마음이 언짢았지만 역아가 자기 자식보다 황제인 자기를 더 사랑한다고 여겨 역아를 총애하였다. 나아가서 명재상 관중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도록 맡기기까지 했다. 동한의 질제는 황제가 됐을 때 아홉살이었다. 양기라는 자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질제는 나이는 어렸지만 총명하고 예리하여 제멋대로 설치는 양기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한번은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양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자가 자기 멋대로 설쳐대는 장군인가!”라고 창피를 주었다. 이 일로 원한을 품은 양기는 기회를 엿보다 내시를 시켜 병에다 독약을 넣어 질제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것을 약인 줄만 알고 삼킨 질제는 배가 뒤틀려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이렇게 간신에게는 미치광이에 가까운 권력욕이 있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탈취하고 지키기 위해 정신 나간 이리처럼 사람을 해친다. 필요하다면 사람 죽이고 재물 빼앗기를 서슴지 않는다. 처자식이나 부모 형제 마저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제물로 삼는다. 그러나 그들은 살인마처럼 드러내 놓고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교활하다. ‘악’은 ‘간’과 같지 않지만 ‘간’과 ‘악’은 뗄수 없는 관계다. 간악은 흉악보다 더 흉칙하고 잔인하다. ‘환공’과 ‘질제’는 ‘역아’와 ‘양기’의 간악함을 모른 권력자였다. 역아와 양기는 지금도 죽지 않았다. /임병호 논설위원

3.13 운동

‘3·13운동’은 중국 지린성 룽징(龍井)에서 3·1운동의 감격을 12일만에 재연한 거족적 민족운동이다. 1919년 중국 룽징에 거주하고 있던 김약연·정재연 등 민족지도자들은 조국으로부터 3·1운동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들은 고국의 독립운동 열기를 해외에서 다시 한번 점화하기 위해 3월 13일 정오를 기해 룽징의 서전 장터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이 13일 새벽부터 골목마다 보초를 세우고 행인을 수색하며 가로 막았지만 눈보라 속에서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중국 거주 동포들은 어느새 3만여명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점점 늘어나는 군중을 해산하기 위하여 비무장이었던 동포들을 향해 발포를 시작, 이 시위에서 수십명이 사망했다. 룽징의 3·13운동은 이후 옌볜지구와 만주의 동포들에게 반일투쟁의 불씨를 제공했으며, 특히 무장한 적은 무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이때부터 옌볜의 반일운동은 반일 무장투쟁으로 전환되면서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빛나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시작됐다. 룽징은 함경북도와 접해 있기 때문에 3·13운동은 거꾸로 국내의 만세운동에 다시 한번 영향을 끼쳤다. 만주 지역의 중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줘 넓게 보면 중국 5·4운동에도 단초를 제공해 줬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이 국내만의 운동이었다면 중국인들의 도움과 지원아래 펼쳐졌던 3·13운동은 국제적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어 한·중 연대투쟁의 역사로 새롭게 정립, 중국과의 긴밀한 교류속에서 이를 기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룽징 3·13운동의 역사현장은 형편없이 방치돼 있다고 한다. 3·13운동 당시 사망한 13명의 열사 유골이 안치돼 있는 ‘의사릉’은 부지조차 매입하지 못한 상태이고 중국 현지의 3·13운동 기념사업회가 세운 비석만 하나 외롭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중국 룽징시도 3·13운동을 조선민족의 역사이자 중국 항일투쟁의 역사로 인정해 유적지를 사적지로 지정, 성역화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룽징시 재정이 워낙 열악해 진척이 없다는 소식이다. 당연히 우리 정부가 복원, 지원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결제와 결재

신용사회는 신용카드로부터 시작된다. 은행생활의 대중화와 더불어 신용카드 또한 대중화됐다. 이로 인하여 매월 결제일이 다가온다. 한달동안 쓴 지불 예약금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고 하였다. 신용카드 거래 땐 현금 지불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감각이 둔할 수가 있다. 그러다가 막상 날아든 카드 이용대금 명세서를 보면 덜컥 정신이 들기도 한다. 예금 잔고에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서민층 카드 이용객은 결제일이 이래서 두렵다. 결제를 말하다 보니 결재와 가끔 혼동하는 것을 보는데 대해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신용카드 대금을 갚는 것은 결제(決濟)다. 카드대금 외에도 당좌수표나 약속어음 등 돈 거래 관계에 변제의 의무를 다해 일단 매듭을 짓는 것을 일컬어 결제라고 한다. 이에 비해 결재란 게 있다. 결재(決裁)는 재량권 행사를 의미한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중간 또는 최고 책임자가 아래에서 올라온 서류 진달의 안건에 가부의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 결재다. 이러한 조직엔 정부 또는 국가공무원사회, 공공의 지방자치단체 같은 관의 조직도 있고, 기업 또는 일반 사회단체 같은 민간조직도 있다. 어떻든 결재는 결제와 달라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채무이행을 지는 결제와는 달리 결재하는 과정이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분이 지나쳐 과도한 재량권 행사로 아랫 사람을 애먹이거나 민원인을 골탕 먹이는 수가 없지 않다. 하지만 권한에는 의무가 따르므로 결재 역시 결제와 마찬가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거부해야 할 것을 결재하거나 해야할 결재를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이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결제와 결재로 신용사회도 발달하고 조직사회도 활성화하는 그런 국가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임양은 주필

'곰신'이 '곰돌'이

군 입대와 관련한 여성의 애틋한 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더 덮을 것은 없다. 물론 아버지도 군대에 간 아들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정은 더 하다. 이리하여 아들이 군대에 갈 적에 입고 갔던 사복을 군부대에서 돌려보낸 우편물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한국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군사모’라는 모임이 있다. 비록 준 말이 유행되는 시대이긴 하나 ‘사군사모’가 선뜻 이해가 안되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모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의 모임’이 곧 ‘사군사모’다. 그렇다. 군 입대로 인한 사랑하는 청춘 남녀의 이별은 기약이 있는 것이긴 하나 가슴 아픈 것은 사실이다. 애인이 입대해 있는 동안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를 거부하고 애틋하게 기다리는 동병상련의 모임, 그리하여 서로가 위로하는 ‘사군사모’의 모임은 굉장히 건강하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회원들을 일컬어 고무신의 준말로 ‘곰신’이라고 한다는 이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가며 애인이 제대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 모임은 ‘곰신’들의 정기적 만남은 없어도 인터넷 이용이 증가하여 꽤나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만기 제대가 2년2개월이든가, 이 기간동안 외길 사랑을 걷는 ‘곰신’들이 때로는 서로의 애인이 같은 부대에 복무하면 집단 면회도 가는 모양이다. 배신이 밥 먹듯하는 세상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무상한 남녀간에 이토록 군대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곰신’들의 순정이 풋풋하도록 싱그럽다. 군대에 가 있는 ‘곰신’의 상대라면 ‘곰돌’이라 할 것이다. ‘곰신’이 ‘곰돌’들이여, 부디 그 마음 그대로 행복이 있으라. 축복을 빈다./임양은 주필

낚시 면허제

민물낚시철이 됐다. 겨울철 바다낚시 가기가 좀처럼 어려웠던 꾼들에겐 설레이는 시즌이다. 겨울철 얼음낚시가 있지만 얼음 구덩이를 파 낚시를 드리우는 극성은 정도가 아니다. 민물낚시철이 되긴 했지만 막상 나서려면 마땅한 곳이 별로 없다. 오염된 곳이 해가 갈수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유료 낚시터가 있으나 둠벙같은 곳에 총총히 들어앉아 낚시를 하는 건 낚시의 정취에 걸맞지 않다. 만만치 않은 입어료도 부담이 된다. 이래저래 서민들이 즐기는 낚시 레저도 환경 문제로 인하여 제약이 적잖다. 해양수산부가 2006년부터 ‘낚시면허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면허제는 전에도 논의가 있다가 말곤 했지만 이젠 도입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바다와 내수의 무분별한 낚시로 수산자원이 고갈되는 것을 막고 수질 및 환경오염을 방지하자는 것이 그 이유다. 일정한 조건 속에 면허증을 받은 사람만이 낚시가 가능하고 이도 제한된 시간에 한해 낚시가 가능하다. 물론 교육도 받게 된다. 수질 오염으로 낚시터가 점점 사라지긴하나 낚시꾼들이 낚시터 환경을 망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낚시터마다 쓰다 버린 각종 폐품이며 쓰레기 등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낚시면허제’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민물낚시의 경우 미끼로 사용하는 떡밥을 쏟아 붓듯하는 건 역시 수질을 오염시킨다. ‘낚시면허제’로 얻어지는 수익은 물고기 보호와 수질 보전을 위해 쓴다는 것이 해양수산부의 계획이다. 기왕이면 외래 어종의 추방 작업도 병행됐으면 한다. ‘낚시면허제’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이밖에도 실시하는 나라가 많다. 외국의 사례를 모델 삼아 면허기간, 낚시시간, 허용어종, 낚시장소 등 갖가지 규제에 낚시꾼들의 취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효과적인 면허제 방안이 강구되기를 바란다. 좋은 낚시터는 좋은 자연환경을 의미한다. / 임양은 주필

대통령과 스포츠

이승만 초대 대통령(1948∼1960년 재임)은 스포츠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전통무술 택견의 고수를 불러 경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1963∼1979년 재임)은 1966년 프로복서 김기수가 당시 세계챔피언 벤베누티(이탈리아)와의 대전료 5만5천달러 때문에 애를 태우는 것을 알고 정부가 직접 대전료에 대한 지불보증을 서주도록 지시했다. 이때 김기수는 한국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WBA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1976년엔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 엘리트 스포츠에 큰 관심을 갖고 곧 바로 한국체육대학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한국체대는 1977년 정식 개교했다. 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 재임)때는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 서울유치가 확정되면서 1982년 체육부를 신설했다. 1984년에는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창설됐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축구를 했던 전 대통령은 경기장에 갈 때면 해박한 축구지식을 자랑했다.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 재임)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생활체육 활성화 쪽으로 정책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1991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창설됐다. 노 대통령 자신도 틈나는 대로 테니스를 즐겼다. 김영삼 대통령(1993∼1998년)때는 체육업무가 문화체육부 속에 흡수됐다. 김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등산과 조깅을 즐겼다. 외국에서 승리한 대표팀을 격려하다 코너킥을 페널티킥으로 잘못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1998∼2003년 재임) 시절에는 정부 내의 체육기구가 더 축소됐다. 체육업무는 문화관광부 속에 흡수됐고 부처 명칭에서도 아예 ‘체육’이라는 말이 빠졌다. 체육담당 부서는 1개국으로 줄었다. 다행히도 월드컵이 성공리에 치러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때 요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의 스포츠정책 공약은 스포츠산업 육성과 생활체육 확대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부조직이 미흡하다. 50대의 대통령이 스포츠 정책을 어떻게 펴나갈는지 궁금하다. 자고로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밴댕이

밴댕이는 서민들의 생선이다. 회로 치면 고소하고, 한치 등과 버무리면 매콤하고 쫄긴 맛을 낸다.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젓갈로 담가 밑반찬으로 먹어도 된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지방에 따라 ‘반댕이’ ‘빈징이’ ‘순뎅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청어과에 속하며 몸이 납작하다. 커봤자 어른 손바닥 크기 밖에 안되는 밴댕이는 희멀건 눈과 형편없는 몸매 등 외모는 별볼 일 없지만 맛만은 겉다르고 속다르다. 하기야 돼지도 못생겼지만 고기는 맛있고 금붕어는 예뻐도 먹는 사람들을 못봤으니 밴댕이의 외모를 말하는 것은 괜한 소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밴댕이는 젓갈을 담그거나 몇몇 뱃사람들만 회로 먹을 뿐 일반인에게는 거의 관심없는 생선이었다. 성질이 급해 육지 구경도 하기 전에 그물에서 죽어 버리는 데다 살이 물러 부패하기 쉬운 탓에 보관도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아 보니 밴댕이는 특히 강화도 것은 임금 수랏상에까지 올랐다. 또 밴댕이젓은 진미중 하나로 취급됐으며 진상품이나 공산품에도 끼었을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밴댕이의 진공을 관장하던 별도 기관까지 있었다. ‘난중일기’ 5월21일자에는 이순신 장군이 밴댕이젓을 전복 어란과 함께 모친에게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4월부터 7월중순까지 주로 잡히는데 “강화도의 밴댕이를 포식했으면 외박하지 말라” “ 80대 노인이 밴댕이를 자주 먹으면 주책을 부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흔히 속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 편협하고 쉽게 토라지는 사람을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말한다. 어부들이 성질이 급한 밴댕이의 특성을 일상 생활에 빗대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말이다. 그물에 잡힐 때 받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몸을 비틀며 올라와서는 파르르 떨다가 곧 바로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엔 아닌 게 아니라 ‘밴댕이 같은 사람’이 더러 있기는 있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사람은 절대 되지 말라 ”고 스스로에게 당부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지지대자 역시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맛은 좋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무원증 패용

지난달 27일 취임식에 개인 소유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와 화제를 낳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앞으로 달지 않겠다고 선언한 국무위원 ‘배지’가 또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다. 배지는 제1공화국 시절인 1948년 8월 국무위원과 차관들에게 교부하면서 부착 관행이 시작됐다. 1988년 2월엔 국무회의와 차관회의 배석자로 교부대상이 확대됐고, 1996년 11월부터는 차관급 청장에게 지급됐다. 현재의 배지는 장관 또는 장관급, 차관 또는 차관급 58명에게 임명과 동시에 두개씩 지급된다. 국무회의에 참가하는 경제부총리 등 국무위원 19명과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한 배석자 3명 등 22명의 장관(급)에게는 ‘국무위원 배지’가 주어진다. 또 차관회의 구성원인 행정부처 차관 19명과 차관급 청장 17명등 36명의 차관(급)에게는 ‘차관 배지’가 지급된다. 같은 장·차관급이라 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장, 부패방지위원장, 인권위상임위원·사무처장 등 국무회의·차관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장관 배지는 국회의원 배지처럼 규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분 확인용으로 만든 ‘비표’라는 점이 문제다. 정부청사를 드나들 때 신분증을 제시하는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한 용도라는 것이다. 국무위원 배지는 지름 1cm 정도 크기의 금도금으로 홍색 바탕원에 무궁화 꽃 문양이 들어가 있고 차관 배지는 크기와 문양은 동일하지만 바탕이 청색이다. 조선조 관복과 가슴에 두르는 흉배(胸背)를 원용한 것이다. 조선조 관복은 태조 때부터 장관급인 2품까지는 홍포, 3품부터 6품까지는 청포, 7품부터 9품까지는 녹포를 착용했다. 흉배는 단종 2년인 1454년 처음 사용됐으며 복색과 일치되게 바탕색을 썼다. 그러니까 장·차관들이 관련 규정도 없는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은 신분 과시용이다. 모든 공무원에게 신분증이 있는데 유독 장·차관만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은 권위의식 탓이다. 정부에서나 장·차관이 벼슬이고 행세하는 자리이지 국민에게는 일개 공복에 지나지 않는다. 장·차관 배지를 달고 전철을 타거나 저자거리를 걸어 봐라.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 장·차관 배지 부착 대신 공무원증을 패용하기 바란다/임병호 논설위원

닭이 선봉장?

강원도 냇물에서 나간 연어 치어가 북태평양까지 갔다가 팔뚝만한 대어가 되어 산란을 위해 회귀할 땐 정확히 태어났던 냇물로 돌아온다. 시베리아와 남양 군도를 오가는 철새는 수십만리를 날아간다. 제비는 지난해 둥지를 지었던 집으로 다시 날아들곤 한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다. 연어가 어떻게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고, 철새가 어떻게 방향을 알고 날아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학계의 자기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다만 설일뿐 딱 부러지게 규명해 내진 못하고 있다. 신비로운 건 또 있다. 출항하여 파선하게 될 배는 쥐가 미리 알고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배에서 도망쳐 나온다. 지진이 일어나려면 동물들이 미리 알고 이상 조짐을 보인다. 작은 개미, 큰 산짐승, 물고기 할 것 없이 지진을 미리 감지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고, 우주선을 하늘에 쏘아대는 인간이지만 미물보다 못한 면이 있는 게 역시 인간이다. 이라크 공격 태새에 들어간 미국 지상군이 이동할 때마다 닭장을 신주단지처럼 트럭에 싣고 다닌다고 한다. 닭이 화학무기 탐지용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오염지역에 진주할 때 독가스 등 화학적 작용에 의한 병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닭실험을 KFC(Kuwaiti Field Chicken)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닭을 미리 풀어 죽는 등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병사들로 하여금 방독면을 착용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탐지장비가 고장난 것에 대비키 위한 것이라지만 하필이면 닭이 오염지역 선봉장으로 선택된 게 흥미롭다. 닭이 그만큼 화학반응에 예민하기 때문이긴 하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엔 최첨단 무기가 동원된다. 최첨단 무기로 벌이는 전쟁에도 원시적 방법의 유독가스 탐지가 불가피한 것은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의 신비와 섭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임양은 주필

성매매

전국의 성매매 전업 여성(창녀)이 33만여명에 이들의 연간 화대가 24조원으로 추정하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 여성단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무슨 소리냐, 80만여명으로 보고 있는데 33만여명은 축소됐다는 것이다. 대책을 세우려면 실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여성단체의 지론이다. 대책을 세우는 것은 좋지만 수의 규모가 대책과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경찰 당국자가 성매매 집결지(사창가)를 찾아갔다. 매우 측은한 표정으로 성매매 전업 여성들에게 직업을 알선하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들은척도 않더라는 것이다. 더러는 감금된 성매매 여성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성매매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한동안은 ○○방, XX방을 통해 성행된 준성매매 여성이 공공연히 연결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여관을 무대로하는 주부윤락까지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뿐이 아니다. 꽃뱀은 제비가 날뛰는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그렇게 여겨질 수 없는 인텔리층 여성들 중에도 꽃뱀이 있다. 이들은 고급 꽃뱀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업가나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성을 유혹해 마침내 협박으로 거액을 우려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차라리 성매매 전업여성이나 준전업여성들은 고급 꽃뱀족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인간적이다. 어쩌다가 여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됐지만 그런 건 아니다. 남창도 있고 여성의 순정을 등치는 사기꾼도 있고 제비족도 있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성매매를 전업여성 대상만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다. 전업여성이든, 준전업이든, 꽃뱀족이든 간에 원하는 남성이 있기 때문에 제공하는 여성이 있게 마련이다. 성매매는 어떤 형태이든 남성의 책임 역시 크다. 그러긴 하나, 조건을 찾아 성을 상품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잘 못된 풍조는 극히 일부이겠지만 비전업 여성에게까지 번지는 세태가 안타깝다. /임양은 주필

YS와DJ

김영삼(YS), 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은 팔십 고개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 분들도 젊음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40대 기수론’이다. 야당시절이다. 1971년 대선 때 신민당의 두 40대 기수는 유진산 총재에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맞설 사람으로 젊은 후보를 강조하고 나섰다. 전당대회 경선 결과는 1·2차 투표에서 앞섰던 YS가 결선 투표에서 져 DJ가 후보가 되었다. 이에 앞서서도 두 사람은 민중당 대변인을 주고 받으며 지내는 등 항상 라이벌 관계였다. 나이는 DJ가 1925년생, YS는 1927년생으로 YS가 두살 아래지만 정계 입문은 5대 국회에 들어간 DJ에 비해 YS는 3대 때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입문해 선배가 된다. 두 사람은 제2공화국 장면 정권 시절의 민주당 안에서도 DJ는 신파, YS는 구파로 정파를 달리했다. 1984년 민추협 공동의장을 지내면서도 역시 라이벌 관계에 놓여 끝내 다 같이 대통령에 출마한 바람에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김대중 야당총재가 공격을 일삼았고, 김대중 대통령 땐 퇴임한 YS가 곧잘 DJ에게 독설로 시비를 걸기가 일쑤였다. 한국정치사에선 두 분을 민주화운동의 쌍벽이라고들 말한다. 돌이켜 보면 YS는 DJ, DJ는 YS가 있었으므로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다. 정적이면서 동지였던 두 분은 다 같이 대통령을 지내고 이제 평민이 됐다. 지난달 25일 가진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장엔 전직 대통령 다섯 분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유독 YS·DJ, DJ·YS만이 서로가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는 보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착잡하게 한다. 굳은 얼굴로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국가 원로로 더 이상 무슨 고움과 미움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다 걷어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술잔을 나누면서 회고의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40대 기수론’을 부르짖던 그들도 고령이다. 세월을 받아 들이는 넓은 우정을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새들도 전쟁을 반대한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녈(BLI)’은 전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활동중인 국제 조류보호단체다. 이 BLI이 최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이라크정부, 유엔환경계획(UNEP)에 이라크전이 환경에 미칠 위협들을 담은 보고서를 보냈다. BLI는 환경 재앙 내용에 대한 각종 정보는 물론 지도와 사진 등을 포함한 이 보고서에서 전쟁은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전쟁이 끝나고도 오랜 기간 지속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중요한 야생생물 및 서식지의 훼손을 피해달라고 유엔과 이라크측에 촉구했다. BLI는 1991년 걸프전 당시 환경파괴 현황과 최근 벌어진 발칸반도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 따른 각종 자료를 참고로 작성했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신체적 파괴 및 장애, 전투와 고의적 손상으로 인한 원유유출 및 유전화재에 따른 독성물질 오염, 대량살상무기 사용 및 군사·산업시설에 대한 폭격으로 인한 방사능·화학·독성물질 오염, 야생동물 감소 및 서식지 훼손 등을 중요한 위험으로 지적했다. BLI는 각종 식물류의 파괴, 토착종의 멸종 위기, 사막 파괴 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걸프전 당시 600만∼800만 배럴의 원유가 유출돼 사상 최대의 해상오염을 기록했으며 그 결과 해안에서 560㎞ 떨어진 곳까지 오염돼 간조와 만조 사이의 해양 생태계를 거의 말살시켰다. 특히 ‘생태계의 보고’인 습지의 경우 제1차 걸프전 당시 1만5천㎢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90% 이상이 파괴돼 50㎢로 줄어 들었다고 한다. UNEP에 따르면 이라크의 고의적인 파괴로 습지가 거의 황폐화되다시피 했으며 이로 인해 시베리아에서 남아프리카에 이르는 범지구적 생물다양성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환경재앙은 인류가 겪는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라크 공격준비를 끝냈다고 공언하고 있다. BLI의 주장처럼 새들만 인간들의 전쟁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산천초목은 전쟁을 증오한다. 인간들은 특히 전쟁광들은 짐승들의 목소리, 초목의 숨소리를 듣지 못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오다리'

‘오다리’는 의사의 지시(Order)를 받아 의료행위를 벌이는 비의료인을 일컫는 의료계의 은어다. 병원에서 오래 근무해온 보조원이나 남자 직원들이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뒤 의사와 함께 직접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최근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의사인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병원들이 이들을 암묵적으로 고용해 수술 등 전문적인 의료행위에까지 가담시키고 있다. 이들은 중요한 수술 준비는 물론 지혈 및 봉합, 심지어 부러진 뼈 맞추기 등 전문적인 수술행위를 담당하고 있다. 오다리 가운데 일부는 간호 조무사 자격을 갖고 있지만 이들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의사·간호사)을 보조하는 단순업무만 맡도록 돼 있어 수술의 경우 전등 조절, 바닥 청소, 환자 옮기기 등만 할 수 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하고 재정이 열악한 지방 병원이 방사선과 촬영기사, 구급차 기사, 원무과 직원 등을 교육해 오다리로 고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지방병원의 경우 이들 오다리가 없으면 정상적인 수술이 어려울 정도다. 오다리 경력을 가진 원무과장이 병원을 개업하고 관리의사를 고용한 뒤 오히려 의사에게 성형수술 기법을 가르칠 정도다. 통상 종합병원에서 다리뼈가 부러진 환자를 수술할 때는 정형외과 의사 4명이 동원된다. 절개 부위를 양쪽으로 벌리는데 2명, 부러진 뼈를 맞추는데 1명, 맞춘 뼈를 고정시킬 금속판을 대고 나사를 박는 의사 1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다리를 고용할 경우, 의사 1명과 오다리 1,2명, 간호사 및 마취의사 각 1명이 참여한다. 집도의를 제외한 의사 3명이 해야할 일을 모두 오다리가 맡는다. 병동을 회진하며 상담과 처치까지 할 정도의 ‘준의사’ 오다리도 있다. 오다리가 외과수술까지 하는 곳도 있다니 환자생명을 포기하는 꼴이다. 전국적으로 500여명의 오다리가 활동중인 것으로 의료업계에서는 추정한다. 그러나 환자나 그 가족들은 오다리와 의사를 구분 못한다. 그것이 문제다./임병호 논설위원

'김사모'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한 50여년 정치 역정을 마감하고 24일 오후 5시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사저로 5년만에 ‘퇴근’하더니 바로 이튿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이희호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만에 전직 대통령이 된 그의 얼굴은 한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71년 평생의 정치적 경쟁자인 김영삼 의원을 물리치고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대선전을 벌일 무렵이 그에게는 가장 전성기였다. 하지만 선거에서 분패한 그는 망명과 투옥, 가택연금, 그리고 4번에 걸친 죽음의 문턱을 넘겨야 했다.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내리 패배한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번복, 절치부심끝에 1997년 대선 4수에 성공,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그의 5년 대통령 재임은 그야말로 영(榮)과 욕(辱)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한국 경제를 기사 회생시킨 것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과를 평가하는데 있어 대전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일관된 햇볕 정책으로 인내심있게 밀어 붙여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데 이어 2000년 6월15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금강산 육로관광의 길이 열리면서 남북분단 55년의 빙벽도 허물어졌다. 노벨평화상 수상과 한반도 긴장 완화는 월드컵대회와 부산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의 밑거름이 됐다.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 등으로 비판받은 면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동교동 사저로 귀가했다.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때 그를 위하여 ‘김사모(김대중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등장한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김사모’ 회원들은 지난 16일 모임 명칭을 ‘DJ Road (DJ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향한 끝없는 여정,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꾸면서 ‘djroad.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다. ‘김사모’ 회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앞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보다는 ‘김대중 선생님’으로 추앙받는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 ‘김대중 선생님’으로 불리던 시절에 그는 영웅이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애경

김애경씨. 이름보다 얼굴이 더 많이 알려진 여배우다. MBC-TV 탤런트 1기생이다. 동덕여대 국문학과 2학년 재학시절에 탤런트가 된 게 1970년이다. MTV ‘제1공화국’에서 비중 높은 박마리아역을 하기도 했지만 조연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녀의 조연은 특별하다. 극중 분위기를 살리는 감칠나는 맛이 일품이다. TV드라마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없이 많이 출연하고도 주연은 못해봤지만 시청자들에겐 이래서 낯익은 얼굴이다. 주연은 연극 영화 쪽에서 많이 했다. 극단 민중극장에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타이틀 롤 블랑슈 역을, 영화 ‘밤의 열기속으로’(장길수 감독)에서는 중년 여인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연극은 40여편, 영화는 60여편을 출연한 천의 모습을 지닌 연기자다. 좋은 배역을 욕심내기 보다는 언제나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심성을 가진 여배우다. 심심한 걸 못견디는 성미여서 일이 없으면 일 거리를 만들어 집안을 이리저리 바꾸어 꾸며보기도 한다. 취미삼아 가끔 화필을 잡는 서양화 솜씨가 아마추어로는 수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주 오래 전이다. 전에 있던 신문사에서 방송국 출입했을 때의 일이다. 회사가 기획한 스타작품전에 그녀는 숲속에서 노니는 한쌍의 노루를 그린 그림을 비롯, 두점을 흔쾌히 기증했다. 비가 오는데도 작품을 승용차에 소중하게 실어 갖다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근래엔 텔레비전 출연이 뜸한가 싶더니 사업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파주에선가 체인점을 둔 ‘김애경 칼국수’를 경영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칼국수 조리가 특기라는 말을 들은 게 생각은 나지만 막상 ‘칼국수 사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도 세월이 그만큼 많이 흘러서인가 보다. 어느 것이 주업이고 부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직도 연기자로 아는 그녀의 사업가 변신이 주목된다. / 임양은 주필

생방송 늑장

1997년 8월 30일 0시35분 다이애나빈이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숨졌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모든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즉각 중지하고 사고중계에 나섰다. CNN, ABC, NBC 등에선 생생한 현장 화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유독 CBS만이 한가하게 프로 레슬링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지방 가맹사와 시청자들의 잇따른 항의로 다이애나빈 사고 방송에 나선 것은 한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CBS는 이를 ‘악몽의 한시간’으로 규정했다. 뉴스담당 책임자인 배나르도스 부사장을 좌천시키는 등 대대적인 문책 인사가 단행됐다. 지난 18일 오전 9시55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국내 TV 3사는 짤막한 자막 뉴스 등으로 내보냈을뿐 정규방송을 그대로 계속하면서 낮시간대에 MBC는 여자프로농구, SBS는 검도왕대회 등 스포츠 중계에 열올렸다. KBS-1TV는 오후 2시50분, MBC-TV는 오후 3시50분께 비로소 생방송에 들어갔다. SBS-TV는 낮시간대에 15분짜리 뉴스특보를 두차례 내보냈으나 만화 퀴즈 등 정규방송을 계속 방영하다가 역시 뒤늦게 생방송에 나섰다. 이미 며칠 지났다. 지난 일을 두고 새삼 말하는 것은 그러고도 문책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뉴스의 생명은 속보성과 현장성이다. 미국의 CBS가 다이애나빈 사고의 생방송을 놓친 한시간보다 몇배가 되도록 속보성과 현장성을 외면하고도 국내 방송은 태평인 것 같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는 것을 당초엔 미처 예측 못했다 할지라도 생방송 시작 시간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 때문이다. 특히 MBC나 SBS의 경우 그렇다. 공영방송을 자칭하면서 광고 때문에 속보성과 현장성을 외면하는 것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일본의 NHK는 남의 나라 사고인데도 낮 12시 뉴스에서 7분간에 걸쳐 보도한 이후 오후 5시부터 50분간의 특집 뉴스를 통해 상세히 보도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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