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인정한 임차인 갱신요구ㆍ손해배상청구권

최근 지인의 소개로 주택임대차계약에 관한 법률자문을 하였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하겠다며 선수(先手) 치는 바람에 갱신을 요구할 엄두도 못 내고 어렵게 대폭 인상된 차임을 지급하고 새 임차물건을 구해 살고 있었는데, 약 1년 후 건물등기부와 국토부 실거래가 등 공개된 정보를 살펴보니 임대인이 제3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알게 되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법)이 보장하는 손해배상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개정법은 임차인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과도한 시장 개입을 불사하고 파격적인 임차인 대우를 선언했다. 법률이 인정한 사유가 아니라면 임대인은 계약 갱신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였고, 만약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을 거절한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액 산정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하면서 그 중 가장 큰 금액을 손해로 인정한다. 실입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계약 갱신을 거절했지만 제3자에게 임대한 것이 밝혀진 임대인도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첫 번째 손해배상액 산정 방법은 갱신거절 당시의 환산월차임 3개월분이다. 환산월차임이란 임대차보증금을 법령이 정한 금리(근래 약 2.5~2.75%)를 곱해 12개월로 나눈 다음 이를 별도의 월차임과 더한 값을 의미한다. 가령 보증금과 월차임 둘 다 있으면 보증금 환산금액과 월차임을 합산한 금액이 환산월차임이고, 그 3개월분이 손해배상액이 된다. 둘째 방법은 임대인이 제3자에게 임대하여 얻은 환산월차임과 갱신거절 당시의 환산월차임 간의 차액(差額)의 24개월분이다. 임대인이 부당하게 갱신거절 한 경우라면, 새롭게 체결한 임대차계약을 통해 얻을 임대인의 이익의 사실상 전부를 갱신을 거절당한 임차인에게 주겠다는 입법자의 징벌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셋째 방법은 임대인의 갱신거절로 인하여 임차인이 입은 손해이다. 그 손해가 무엇인지는 향후 판례를 통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고, 임대인 또는 그 직계존비속의 실거주하겠다는 갱신거절 사유에 한하여 적용된다. 둘째 방법에 의할 경우 손해액이 수천만 원을 넘는 등 첫째 방법과 차이가 크다. 그 이유는 최근 부동산 매매가(賣買價)의 급등이 있고, 임대차3법은 민간의 임대차 물건 공급을 위축시키는 내용이기에 결국 물건 품귀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 초래되었으며, 법 개정에 발맞추어 보증금의 월세 전환율이 4%에서 2.5%가량으로 낮춰지면서 보증금의 가치가 하락한데다가, 저금리의 지속과 세(稅) 부담의 가중으로 인해 임대인이 보증금 비중을 줄이고 월세(월차임)를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1억 원의 보증금이 종래 40만 원의 월세로 환산되었다가 대략 25만 원 수준이 되었다. 자문받은 사안은 갱신거절 당시에는 보증금뿐인 임대차계약이었으나, 임대인이 제3자에게 임대하면서 보증금 비중을 1/3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월세를 대폭 인상한 결과 둘째 방법으로 산정한 손해배상액은 대략 5,500만원에 이르렀고, 첫째 방법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개정 법령에 근거하여 산출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임대인으로서는 그 절반 수준이라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변경된 법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판결이라는 강제력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다만 입법자들이 이런 수준의 손해배상액까지 생각했는지, 또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에 따른 산출 손해액의 과도한 차이도 염두에 두었는지 의문이 든다. 둘째 방법과 첫째에 의하면 첫째 방법의 3~4배를 한도로 한다는 캡(cap)을 설정함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천자춘추] 공상과학의 시간

지난달 스타필드 하남에서 열렸던 경기콘텐츠진흥원의 문화기술전람회에서 백남준아트센터는 《공상과학예술가, 백남준》이라는 전시를 기획해 백남준의 텔레비전 로봇 작품들을 선보였다. 백남준을 부르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지만 공상과학예술가라는 표현을 새롭게 사용한 제목이다. 전시된 것은 역사적 인물들인 칭기즈 칸, 슈베르트, 찰리 채플린, 율곡, 밥 호프를 여러 대의 텔레비전으로 로봇처럼 만든 작품들이다. 인공지능, 홀로그램,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의 문화적 체험을 제공한 전람회에서, 아날로그 기술로 된 백남준의 TV 로봇 작품들은 자칫 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백남준이 말했던 공상과학의 뜻을 안다면, 백남준의 로봇들은 지나가 버린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문화와 기술을 접목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주는 매우 현대적인 예술로 다가온다. SF 소설이나 영화는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아주 먼 미래의 세상을 그린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럴 법한 미래가 실감 나게 그려지고 그 상상력이 실제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거나 소설, 영화 속 미래가 정말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 상상력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 같은 공상과학이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이를 네거티브 공상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네거티브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양극과 반대되는 상태인 음극을 네거티브라고 하듯이,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공상과학의 상상력을 투영한다는 뜻이다. 백남준은 우리가 이 네거티브 공상과학의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이 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과거에 일상이라고 부르던 많은 것을 멈춰야 했으며, 예전 일상에서 너무 익숙해 미처 소중함을 몰랐던 부분들을 다시 깨닫게도 되었다. 미술관들도 코로나로 인해 가해진 제약을 타개하고자 메타버스 전시처럼 온라인 기술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미술관에 몸소 찾아와 주는 관람객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히려 배우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쏟은 끝에 11월이면 마침내 일상의 회복을 위한 첫 단계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 회복은 그냥 원래대로 똑같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에서 우리가 놓쳤던 것들, 묵과했던 것들을 바로잡아 채우고 윤내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의 시간, 코로나로 멈췄던 시간, 그리고 이른바 코로나와 함께라는 시간들까지, 백남준이 말했던 공상과학의 상상력으로 되감아 본다면 그러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예술의 쓰임새, 기술의 모양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천자춘추] 전세대출 우리는 불안하다

요즘 전세대출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분들이 많다. 느닷없이 가계부채를 억제한다면서 전세대출을 막고 DSR규제에 전세대출도 포함할 수 있다는 말에 실수요자들은 출렁였다. 다행히 전세대출의 문이 다시 열렸고 전세대출을 DSR규제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나왔지만 놀란 실수요자들 가슴은 여전히 불안하다. 전세대출이 총량규제에는 빠져 다시 재개되었지만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은 10월 27일부터 전세 갱신계약의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세금) 증액 범위 이내로 제한한다고 한다. 전세금이 4억원인 전셋집에서 전세대출을 3억원 받아 들어간 A씨가 전세갱신계약을 하면서 5% 인상하여 4억2천만원으로 증액이 되었다고 하자. 지금까지는 4억2천만원의 80%인 3억3천600만원까지 전세대출이 가능했기에 이미 받은 3억원을 제외한 3천600만원 전세대출이 가능했지만 10월 27일부터는 인상된 2천만원까지만 전세대출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신규전세대출은 종전과 같이 전세금의 80%까지 가능하다. 전세대출 신청시점도 변경된다. 기존에는 전세금 내고 입주한 뒤에도 3개월 내에는 전세대출이 가능했지만 임대차계약서 상 잔금지급일까지만 전세대출이 가능하다. 또 1주택 보유자의 비대면 전세대출 신청도 막혀 이제는 은행창구에 가서 전세대출 신청을 해야 한다. 전세대출의 문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예전보다 문턱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기에 전세금 마련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전세 실수요자들은 전세계약 전에 미리 은행창구를 방문해서 전세대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전세는 금융적으로 거주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무이자대출을 받는 것과 같아서 전세대출로 인해 높아진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면서 최근 집값 폭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민주거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세대출을 갑자기 손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집 사기 싫어서 전셋집에 거주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다들 내 집 마련이 여전히 꿈이다. 지나치게 많이 올라버린 집값의 문턱 앞에 꿈을 이룰 수 없게 된 서민들의 좌절과 상실감을 정부가 헤아려주지는 못할망정 전세대출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 된다. 또 최근 대출 총량규제로 주택뿐만 아니라 상가 등 비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도 강화되면서 계약을 한 후 잔금을 앞둔 실수요자들이 불안해하는데 적어도 규제 시행 전에 계약한 분들에 대해서는 피해를 받지 않도록 대출의 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가계부채는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당연히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총량규제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대출총량규제로 대출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당장 필요가 없음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일단 최대한 받고 보자, 대출상환능력이 됨에도 굳이 상환하지 말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으며, 1금융권 대출이 막힌 분들은 대출이자가 높은 2금융권이나 사금융으로 눈을 돌리면서 오히려 가계부채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주택 수가 늘어나거나 가격이 오를수록 가계부채 총액은 당연히 늘어난다. 아이러니하게 총량규제를 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과 고 신용자 신용대출은 가장 안전한 대출상품이다. 가계대출의 명목수치만 보고 일방적인 총량억제만 하기보다는 대출연체나 미상환 등 대출부실화를 관리하고 향후 금리 인상 및 유동성 회수, 공급증가 시 발생할 수 있는 주택가격 하락에 대비해 주택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

[천자춘추] 우리 시대의 명당

오봉산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의왕시청과 도서관 사이에 조선 중기 사람인 김인배의 처 안동권씨의 묘역이 보인다. 안동권씨의 묘역은 풍수가들에 의해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김인배의 아들이 이곳에 모친의 묘를 쓴 이후 청풍김씨 가문에서 6명의 재상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안동권씨의 묘역은 대표적인 음택풍수 지역이다. 풍수에는 양기, 양택, 음택풍수 등이 있다. 음택풍수는 무덤에 대한 풍수를 말한다. 조상 묘를 잘 써야 후손들이 번창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양기풍수는 양의 기운을 받는 공동체 삶터와 관련된 풍수를 말한다. 우리 민족이 사는 한반도에 대한 풍수와 서라벌, 개성, 한양처럼 도읍에 대한 풍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 터 등을 말한다. 양택풍수는 개인적인 삶터를 지칭한다. 우리 조상은 양기, 양택, 음택풍수 등을 고루 활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새 풍수라고 하면 후손들과 관련된 묏자리를 고르는 게 주를 이루게 됐다. 음택풍수가 널리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손쉬운 식민지 통치를 위해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제가 공동의 이익이나 공동체 의식이 강한 양기나 양택풍수보다는 개인 가문의 영광이나 개인 자손의 영달이 우선인 음택풍수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특정한 성씨의 가문이 번창하는 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공동체의 번영과는 연관을 맺기 어렵다. 명당이라고 하는 곳도 땅 주인에게나 해당되지 그 지역 주민들의 흥망성쇠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지형지물에 따라 사람이나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강과 산의 지형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변화된 시대에 맞게 명당을 고른다면 우선시 되는 것은 무엇일까? 특정한 개인이나 가문이 아닌 공동체 모두의 안녕과 번영,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는 우리 시대의 명당이다. 경기도는 의회와 집행기관이 모범적인 협치를 통해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민생정책들을 만들어냈다. 경기도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책으로 경기도민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정만족도 조사 1위를 연이어 차지했다. 서울의 변방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에서 대한민국의 명당이 된 것이다. 대선의 시간이 돌아왔다. 경기도에서 시행된 민생정책들이 경기도라는 울타리를 넘어 대한민국을 명당으로 만들 수 있는 정책논쟁의 장이 되길 빈다.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천자춘추] 평등한 삶의 질 누리는 경기도 기대

경기도의회는 10월 초에 경기도 여성친화도시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여성친화도시는 지역정책 수립 및 시행과정에 양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공평히 돌아가면서 여성의 역량강화, 발전 및 안전이 구현되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지역이다. 여성친화도시에서의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상징이며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노인에 대한 배려를 포함해 만들어 가는 도시다. 도시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소수집단의 삶의 조건과 정책적 요구를 고려하고 양성평등 참여를 추구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성친화도시조성에서 경기도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여성친화도시는 여성가족부가 직접 여성친화도시 조성계획을 제출한 시군을 여성친화도시로 지정해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에 시군은 자체 조례를 제정해 여성친화도시조성을 추진해 왔다. 경기도에서 여성친화도시 활성화를 위해서 교육과 시민참여 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재단의 사업이면서 안정적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광주광역시는 여성친화도시 광역모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해당 자치구와 광역시 모두 여성친화도시로 지정 받았다. 올해는 마을단위의 돌봄 기반 구축, 일자리 창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해 자치구의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재단에서 여성친화도시 추진체계 실효성 증진방안을 연구(노경혜, 2020)한 결과에 의하면 시군 담당자들은 경기도 특화 공통과제 선정 및 공모사업 추진, 시군 공무원 역량 강화, 정책특화 네트워크 및 협력 망 구축, 여성친화도시 컨설턴트 양성 및 시군 컨설팅 지원, 우수시군 포상 및 사례 확산 등을 경기도에 기대하고 있다. 특히 조직, 예산, 민관협력 기반이 취약한 시군은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시군의 균형적 발전에 경기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례 제정으로 여성친화도시 활성화를 위한 도의 계획 수립과 시군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경기도는 조례에 근거해 시군 여성친화도시 조성 지원사업, 여성친화도시 협의체 운영 및 시ㆍ군 시민참여단 네트워크 지원사업, 여성친화도시 활성화를 위한 컨설팅 및 교육 지원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조례 제정을 계기로 도민의 동등한 참여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경기도와 시군의 협력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임혜경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천자춘추] 경기옛길서 만나는 경기도 현대사

가을이 한창이다. 기후 변화로 봄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 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전형적인 천고마비의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가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단풍 명소 여행마저 자유롭지 않기에 올가을은 이대로 보내야 하나라는 아쉬움을 가진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럴 때 근교 도보길에서 혼자만의 걷기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경기옛길은 가을의 풍광뿐만이 아니라 길에서 역사를 음미할 수 있도록 조성한 특별한 도보 코스다. 서울에서 경기도를 거쳐 전국으로 뻗어나갔던 조선 후기 6대로를 기반으로 조성한 경기옛길은 현재 삼남길, 영남길, 의주길, 평해길 등 4개 길을 도 권역 내에 개통했으며, 강화길과 경흥길을 조성 중이다. 경기옛길에서는 많은 역사와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 오늘은 근현대 경기도의 면면을 보여주는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농촌진흥청과 우장춘 박사 수원시 서둔동의 농촌진흥청(2014년 전주로 이전)은 정조의 화성 축성과 축만제, 서둔의 맥을 이어받아 농작물 시험연구개발 및 보급과 연구지원, 농업인의 양성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근처 여기 산에는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우리나라에 현대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많은 우량종자를 개발한 농학박사 우장춘의 묘소가 있다.(삼남길 4길) △달래내 고개와 경부고속도로 달래내 고개는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청계산 자락의 고개다. 이 고개를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한다. 근대화의 초석이자 상징으로 평가받는 경부고속도로지만 단 2년여의 공사기간과 기술의 부족, 안전장치 미비로 많은 이들이 공사 중에 목숨을 잃었다. 달래내 고개에서도 공사에 참여했던 한 공병이 사망했다.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추모비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영남길 1길) △몽양 여운형 기념관과 생가 양평 양서면 신원역 뒤쪽 마을 어귀에 생가와 기념관이 함께 있다. 친필자료와 생전에 사용했던 가구, 암살 피격 당시 입고 있었던 혈의 등도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로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으며, 한국현대사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선생의 삶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평해길 4길) 이지훈 경기학센터장

[천자춘추] ‘종전선언’ 실체 없는 허상 vs 항구적 평화

여당은 종전선언이 중요하다고 하고, 야당은 안보가 우선이라고 한다. 종전선언과 안보는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보편의 상식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하는 것은 총체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도 조심스럽다. 정부의 대북 정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 종전선언 제안과 관련,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종전선언이 과연 평화의 첩경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한반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종전선언만 놓고 본다면 높은 관심도 있다. 24일 방한한 성김 미 대북특별대표는 종전선언을 포함 한미 간 다양한 논의와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즉,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가설을 시험하고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으로 남북, 북미 간 대화의 강화, 인도주의적 지원, 경제개발 지원 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양쪽의 주장이 그 어느 쪽이 우선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쟁을 끝내자는 선언이 적대시 정책의 해소이기 때문에 시혜적 전략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남북 간 신뢰의 결여와 북한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용기가 적고, 적절하게 기여되지 못한 것을 국민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잇따른 탄도미사일 시위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래서 종전선언 문제는 나라와 국익을 위해,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다시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동족 간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잠재적 위험을 제거해야 하지만, 실제적인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종전선언만을 주장할 수도 없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일상과 평화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평화를 실제로 보장해 주는 공동체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시민 평화의 본질은 안보와 안전이며, 이는 국가의 핵심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가의 강한 힘과 의지가 있어야 자유와 평화도 담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보로서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역설이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우선 정책 기조가 그 시사점이다. 전쟁과 평화의 딜레마에 관한 측면들은 대개 복합적이고, 상호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안보와 평화정책의 궁극적인 명분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다. 따라서 정부의 남북문제가 혼자 가기보다는 위협적인 무기를 감축하고 해체하는 양자 간 상호 신뢰와 우방과의 다국적 계획에 의해 긴장의 사다리를 낮추면서 점진적, 호혜적 방향으로 마련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화해는 결코 일방적 조치로 끝나지 않는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천자춘추] 시대를 이기는 평생교육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연일 화제다. 오징어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드라마는 승자가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 패자를 기억하게 한다. 살아남은 누군가는 죽도록 노력해서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죽은 누군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당한 인간의 선택은 비참하다.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가 겪는 불안을 강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서바이벌 게임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오징어게임 열풍을 보면서 이 드라마가 반영하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넘어설 길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도 이미 불안사회에 들어선지 오래다. 저출생 고령화,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와 전통적 양극화에 덧붙여 코로나 대유행까지 겪고 있다. 인구절벽, 직업 소멸, 일자리 불안, 지역 소멸의 위기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일상생활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불안에 맞설 수 있을까? 불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설 희망이 없는 것이 더 고통일 수 있다.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죽기 살기 게임에서도 양보하는 어떤 연대일까, 좀 더 치열한 계산일까, 요행으로 얻어지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친구를 뜻하는 깐부 맺기일까. 문득 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판을 바꿔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학교중심의 교육체제를 바꾸는 판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산업화 시기 근대적 학교교육의 틀을 만들고 전 국민이 교육받는 시대를 만들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마치고도 일자를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뿌리산업의 위기로 중장년의 일자리는 더 찾기 어렵다. 또 은퇴 후 긴 노후를 견뎌야 한다. 한 번 배워서 평생 먹고살던 시대가 끝났다. 그러나 교육체제는 여전히 학교 중심이다. 실제 교육부 예산의 99%는 11%밖에 안 되는 학교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투자하고 있다. 학교교육 중심 체제는 현상을 유지 시킬 뿐이다. 시대를 이기는 교육은 결국 학교 말고도 계속돼야 할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평생교육이라 부른다. 김제선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

[천자춘추] 국군의 날 ‘늙은 군인의 노래’ 유감

지난 10월1일은 제73주년 국군의 날이었다. 사상 최초로 경북 포항에서 해병대 주관으로 해군 함대와 해병대 수륙양용전차의 합동 작전을 펼치며 국군의 날 행사가 진행됐다. 예전에는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광화문까지 최신 무기와 함께 행진하는 국군의 모습에서 나라를 지키는 확고한 결의를 보았다. 과거의 병영(兵營)생활은 힘들고 고달팠다. 암기사항도 많았다. 직속상관 관등성명부터 고참들 서열에 따른 계급과 이름 그리고 군인의 길과 국민교육헌장 등 외우다 한자라도 틀리면 고참들에게 군기가 빠졌다고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 오직 복창(復唱)뿐이었다. 발톱이 빠졌던 행군, 악에 받친 유격훈련, 무자비한 구타로 새겨진 상처는 훈장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고통스럽던 기억도 재미있고 낭만적인 무용담으로 각색된다. 젊은날의 군(軍)생활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심어주었으며 밤낮으로 부르는 군가(軍歌)는 전우애를 더욱 돈독히 해주었다.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몇몇 군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른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눈 내리는 전선을 간다. 행군하면서 불렀던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뜬금없이 군가 얘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난 국군의 날 행사때 피날레를 장식한 군가는, 군가가 아닌 대중가요 늙은 군인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오랜세월 시위 현장에서 늙은 투사의 노래로 탈바꿈에 단골로 불렀다. 1974년 육군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 복무중이었던 김민기가 전역을 앞둔 부사관 상사의 부탁을 받고 만들어준 노래다. 대가는 부대원들과 나눠 마실 막걸리 두 말이었다. 늙은 군인의 노래 가사를 간추려 보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2044 나 죽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2044 아 다시 못 올 내 청춘 푸른 모자 푸른 옷에 실려간 내 청춘2044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 딸들아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 일세 또 다른 대중가요 전우야 잘자라에서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2044 우리는 전진한다이다. 공식 행사에서 금지곡으로 부르지 않았던 이유와 같은 늙은 군인의 노래는 슬픈 곡조로 군기를 빼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적절치 못한데, 무슨 연유인지 이 노래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군 관련 행사때 마다 불리고 있다. 차라리 행사를 주관한 해병대 군가를 불러야 했다. 공식 행사에 공식 노래인 군가를 당당하고 우렁차게 불러야 한다. 필자는 월남 참전 용사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천자춘추] 50억 게임으로 얻은 교훈

성남 대장동 지구 관련 의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토건비리 세력과 정치권력, 법조계와 언론의 카르텔이 매우 공고했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득을 챙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연루된 사람들의 죄를 명명백백 밝히는 한편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정책적 대안은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교훈은 공공택지-공영개발의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장동 개발에서 화천대유가 막대한 개발이익을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공익사업을 위해 싼 가격에 강제 수용해 놓은 토지를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민간에 매각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공익사업을 위해 확보한 토지가 일부 민간업자의 막대한 개발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둘째, 민관합동 개발 시 개발이익 중 민간의 귀속비율에 상한을 둬야 한다. 화천대유의 개발이익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사업 시작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졌지만, 이를 제한하거나 환수할 법ㆍ제도적 방법이 없었다. 셋째, 개발이익 환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비율을 상향해야 한다. 현행법에는 개발이익 환수 기준이 없고, 실제 환수되는 규모도 매우 적은 수준이다. 지난 5년간 징수된 개발부담금은 연평균 약 3천억원 수준으로, 이마저도 약 6천억원이 미수납돼 있다. 이에 대한 징수율을 높이는 한편 개발부담금을 재건축부담금과 같이 약 50%까지 상향하는 것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넷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종합적인 공영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방도시개발공사법 제정이 필요하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지구 개발을 민관합동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행법상 지방공기업이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방 도시개발공사가 도시개발 및 주택공급 사업을 제대로 담당하기 위한 근거 법률이 필요하다. 다섯째, 또 다른 특혜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3기 신도시 공공택지 민간매각 규제가 필요하다. 인천계양의 경우 54.7%의 용지를 민간건설사에 매각했는데, 이를 통한 민간의 개발이익은 약 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서민 주택 공급을 취지로 시작된 3기 신도시가 일부 민간사업자들의 수익 사업에 활용되고 있는 셈으로, 공공택지 개발 사업의 경우 적어도 80% 이상의 공영개발이 필요하다. 이번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은 토건비리세력들이 개발사업에서 활개를 칠 수 없도록 개발이익을 민간이 독식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공공환원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재 부재한 개발이익의 공공환원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과 수단, 기준을 투명하고 명확하게 만드는 법ㆍ제도 정비를 위해 국회와 정부, 공공이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천자춘추] 올바른 지도력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많은 사람에게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기자들이 그에게 통솔력의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말없이 책상 위에 50cm 되는 실을 늘어놓고 뒤에서 밀어 보라고 했다. 기자들이 그대로 했지만 실은 꼬부라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잠시 후 아이젠하위는 앞에서 실을 끌어당겼고, 꼬여 있던 실은 곧게 끌려갔습니다. 이어서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다. 짐승은 뒤에서 몰아야 하지만, 사람은 앞에서 인도해야 합니다.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것이 통솔력의 비결입니다. 지도력이라는 말의 뜻은 사람들을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다. 어떤 지도력이 세워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지도력에 따라 그와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지도력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기업의 CEO가 어떤 가치관과 지도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가치는 달라진다. 학교에 올바른 지도력을 갖춘 선생님이 계실 때, 그 학교를 통해 역사에 위대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배출될 수 있다. 올바른 지도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지도력은 소수의 대표성을 띈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올바른 지도력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지도력을 나타내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책이 있다고 지도력까지 갖춘 것은 아니다. 어떤 직책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갖췄는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가정이든, 학교든, 기관이든, 그 어디에서든지 올바른 지도력을 갖춘 자가 필요하다. 어떤 조직과 모임이든 올바른 지도력을 갖춘 그 한 사람 까닭에 구성원들이 참된 행복과 기쁨,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올바른 지도력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이 올바른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사람의 약함을 이해하고, 눈물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올바른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사람이다. 역사의 흐름을 알고, 시대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 조직과 구성원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일에 자신이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며, 뒤처지고 넘어진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일으켜 세워 함께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도력이 올바른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올바른 지도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에 거룩한 흔적을 남기고, 민족과 사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하고도 참다운 흔적을 남기는 지도력이 되고 싶다.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ㆍ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천자춘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미시건 대학교 베이크 박사 팀의 파리와 꿀벌을 대상으로 벌인 실험은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같은 수의 꿀벌과 파리를 한꺼번에 유리병에 넣어 병 바닥을 창문 쪽으로 향하게 눕혀놓고 병뚜껑을 열어서 꿀벌과 파리가 어떻게 유리병을 빠져나오는가를 실험하였다. 지능이 높은 꿀벌들은 밝은 쪽이 출구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밝은 창 쪽을 향해 쉴 새 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윙윙거리다가 마침내 유리병 바닥에 부딪혀 죽거나 지쳐서 굶어 죽었다. 반면에 아예 고정관념이 없는 파리는 비록 지능은 낮았지만 밝은 곳이든 어두운 곳이든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다가 마침내 병 주둥이를 통해 모두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규칙적이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변함없이 똑같은 순서와 일정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행동 규칙을 고정행동유형이라고 한다. 엘런 랭거는 무조건 싼 것은 비지떡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비싼 것은 모두 명품일 것이다라는 무의식적인 판단의 행동 규칙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의미하며, 상대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떤 집단의 지역이나 출신, 사회적 계층 등에 대해 단순하고 일반화된 편견이 신념으로 고착된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타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나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의 창의력이나 독창성을 제한하거나 가로막는 데 있다. 새는 반드시 양 날개를 퍼덕여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섰기 때문에 인류는 비행기를 발명하였고, 지구는 네모난 구형체여서 먼 바다 끝이 낭떠러진 절벽이 아니라 둥근 지구는 여러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했던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고정관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단 하나의 고정관념으로만 사는 사람들이다. 생각의 폭을 넓히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올해 도쿄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금메달 제조기로 화제가 되었던 나이키는 1970년대 이전에는 경쟁사였던 푸마와 아디다스에 비해 열세였지만 운동화 밑창은 평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와플처럼 요철을 가미함으로써 가볍고 탄력성이 높은 운동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운동화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달리 생각하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객관화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를 청개구리로 키워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개구리는 거꾸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남이 보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밝혀내고 남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는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있다. 뒤집어 생각하거나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의 성공자가 될 수 있다. 사과는 왜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만 떨어지는가 하고 생각한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였다. 상상력을 키우려면 당연하다거나 물론 그렇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내일의 두려움에 한 발을 디디고 어제의 실수에 남은 발을 디디고 서 있다면 천하장사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해마다 새로운 직업이 수없이 생겨나고 기존의 직업이 사라져가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생각의 틀을 깨고 멀리 넓게 그리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청소년들에게 요구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천자춘추] 수도권 메가시티 2030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50%를 넘었다. 생산인구나 혁신인력의 집중도는 이보다 더 높다. 지방의 청년들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카카오와 네이버 같은 플랫폼기업, 테크기업, 정보통신업체들은 강남과 판교에 집중한다. 이런 기업들은 혁신인력들이 좋아하는 쾌적하고 편리한 대도시의 중심지에 모인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도 수도권으로의 인구이동이 증가했지만, 경기회복과 함께 정상화되곤 했다. 지금 진행 중인 변화는 경기변동이나 거시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 보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기술역사적인 대변동에 따른 것이다.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고 연결이 강화된다. 자동차나 항공기의 속도도 빨라지지만, 실제 주행속도는 고속철도가 단연 압권이다. 대도시의 도심과 도심을 땅밑에서 연결하기 때문이다. 교통 간의 연결이 좋아진다. 고속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 버스와 승용차, 개인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일이 전에 없이 편리해진다. 복합환승센터 중심으로 새로운 인구와 산업이 집중한다. 광역철도망이 확산된다. 광역철도로 30분 안에 연결되는 통근권이 30㎞ 밖으로 확산된다. 수도권인구는 증가하나, 서울인구는 감소한다. 서울시내의 높은 주택가격이 서울인구를 경기도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GTX와 지하철 연장선이 연결되면 서울의 광역화는 더욱 촉진될 것이다. 2030년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수도권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신성장산업의 성장세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인구는 작년보다 더 감소할 것 같다. 서울시내 주택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서울은 이미 국제대도시에 비교해 가장 밀도가 높다. 서울은 25구 1천만도시가 아니라 3천만 메가시티로 성장, 확산 중이다. 추진 중인 광역철도망이 연결되는 2030년이면 수도권의 인구분포는 훨씬 광역화될 것이다. 일자리는 서울에서 증가하니 통근거리가 길어진다. 긴 통근거리는 삶의 질을 저해하고 탄소배출을 증가시킬 우려가 크다. 통근시간을 줄이고, 자동차보다는 철도이용이 촉진될 수 있도록 광역철도의 환승역세권을 고밀복합화해 자족적 신도시를 공급해야 한다. 이는 탄소중립시대의 다핵분산형 메가시티의 미래비전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1개의 메가시티와 4개의 대도시권으로 전환 중이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천자춘추] 일에 대한 자세

대부분 맞이하는 아침은 몸은 천근만근이며 1초1분이 아쉬워 뒤척이다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현장으로 향할 테다. 공휴일을 제외한 모든 이의 현장노동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고, 권태에서 자유롭게 해주며 나에게 의무를 부여해 준다. 지금 하는 일이야말로 나를 존재하게 한다. 노동과 일에서 반드시 현실과 자기 실력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과 신발을 찾지 않아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단순한 대가를 위한 노동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적성이라 함은 내가 하는 노동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천직이라는 말이 있고, 일에 일생을 바쳐 시간 가는지도 모르는데 국가가 퇴직 시기를 정하는 어처구니 없음은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노동은 인간 천형인 동시에 헌법에 명시된 의무기도 하다. 현실은 물론 녹록지 않다. 당장 피곤함과 유혹,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에서부터 오늘 하루 쉬자는 당연함이 스스로 합리화한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던데 그것도 지나치면 변비로 고생이며 과하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듯 무노동은 사람을 과하게 피폐하게 만드는 것 또한 어엿한 현실이다. 업무는 있는 자리에서 전문가가 돼 방법을 찾고 개선해서 현실을 인정하고 발전해야 한다. 일과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겠어?, 그런 건 위에서 알아서 할 거야! 등의 피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과 긍정, 아울러 자신감과 자신을 존경하는 자만으로 충만해야 일을 통해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다. 세상은 참으로 역동적이며 노동도 쉬고 싶은 욕망도 같은 부류다. 노동과 정반대인 놀고 싶은 현실은 항상 사람 마음에 함께한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이해 못 할 불운 앞에 투덜대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습관적으로 노동과 일에 대해 징징대는 버릇부터 다잡아야겠다. 김홍 한국중고배구연맹회장

[천자춘추] 디지털 산책, 일상에서 만나는 미래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더욱 촉발된 디지털 전환이 경제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 촉진 법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정부도 디지털 뉴딜 2.0을 발표하며 초연결 신산업을 최우선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디지털 전환의 시대적 흐름을 준비하는 것이 어디 중앙정부뿐이겠는가?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도 VRAR을 넘어 이제는 메타버스 산업의 경기도 생태계를 조성하며 디지털 전환의 핵심인 미래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그럼 디지털 전환이 그리는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찾아가는 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여러 가지 미래기술이 연결, 구현된다면 얼마나 설렐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상 속 거리에서 미래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이 경기도에서 열렸다. 작년에 의정부시에서 최초로 마련되었던 이 색다른 쇼가, 올해는 시흥시에서 한층 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찾아왔다. 퓨처쇼 2021이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총 4일간 디지털 산책, MEET THE FUTURE를 슬로건으로 시흥시 배곧지구 광장에서 개최된 것이다. 퓨처쇼 2021은 작년에 주목받았던 미디어 파사드 뿐 아니라, 300대의 드론과 실시간 통신기술을 이용한 화려한 라이트 쇼를 밤하늘에 선보였다. 인공지능 센서를 활용한 실시간 양방향 미디어 체험과, 증강현실(AR)을 활용한 인공지능 라이브 콘서트도 일상에서 만나는 미래다. 미래와 사람을 연결하는 이벤트는 비단 이런 체험과 전시행사로 그치지 않는다. 지역 소상공인과 연계하여 선보인 가상현실 기술들은 미래기술을 통해 현실과 디지털이 접목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지는지를 경험으로 제공했다. 이 모든 경험이 철저한 방역규정 하에 진행됐다. 미래 기술도 안전한 행사진행을 도왔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비대면 예약대기 시스템과 자율주행 순찰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 차량도 퓨처쇼를 방문했던 여러분을 마중 나갔다. 어떤가? 막연하게만 들리던 디지털 전환이 막상 일상 속 거리에서 만나보니 모두에게 열려 있다. 퓨처쇼를 놓쳤다고 아쉬워만 말자. 13일부터는 스타필드 하남에서 문화기술 전람회가 열려 홀로그램, 미디어아트 등 또 한 번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기술을 관람할 수 있다. 여러분도 기술이 그리는 우리의 미래로 디지털 산책을 떠나보자. 박무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

[천자춘추] 케냐 초원의 사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 케냐의 드넓은 초원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생물을 관찰한 것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광활한 초원에 그토록 많은 야생동물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은 매우 신비로웠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이 장엄하게 서 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케냐에서 가장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마사이마라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 수천마리의 야생동물이 먹을 풀이 가득한 비옥한 토지를 찾아 떼를 지어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과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를 오가며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사이마라는 킬리만자로 산을 배경으로 광활한 초원지대에 야생동물 600종이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인 야생의 보고다.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가녀린 임팔라, 가족 사랑이 넘치는 코끼리, 키 큰 나무 사이에 숨어 사람을 경계하는 기린 가족, 멋있는 뿔을 자랑하는 누, 까맣고 하얀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흑갈색 근육의 버펄로 등의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마사이마라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동물들의 세상이 아니다. 매일 수백 대의 관광용 사륜구동 사파리 트럭이 다니는 시끄러운 관광지다. 안내자들은 서로 무전을 통해 동물들의 위치를 파악해, 사파리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가까이 차를 몰고 다닌다. 서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관광객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자가 나타나면 수많은 차량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벌 때처럼 몰려든다. 순식간에 사자 주위에 수많은 트럭이 둥글게 대열을 형성한다. 그 대열은 마치 동물원의 우리와 같았다. 그 우리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사자가족의 시달림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욱한 흙먼지와 카메라 셔터 소리, 사람들의 환호소리는 사자가족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멸절시켰으면 인간을 생태계의 파괴자라고 했을까. 인간의 관광행태가 마사이마라의 사자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영화 라이온킹의 배경 무대인 마사이마라, 그 왕국에 위협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비가 오지 않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초원이 말라가고 있다. 풀을 뜯어먹고 살아가는 초식동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초원의 초지가 말라가면서 동물들이 풀이 있는 산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인이 애써 넓은 초원에 물을 뿌려보지만 역부족이다.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마사이마라의 자연생태계를 지켜내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다. 야생동물이 존재함으로 얻게 되는 가치를 재인식하여 동물의 삶을 위협하는 지금의 야만적 관광을 지양하고 야생동물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자연친화적 관광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천자춘추] 대선의 함정과 정치의 책임

한국 사회는 다이내믹하다. 정치에서 경제까지, 권력자에서 일반 소시민까지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난다. 그래서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정치는 권력을 잡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는 가치와 신념을 표방하지만, 선거는 사건의 폭로로 표출된다.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가 끝도 없는 논쟁을 벌이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 논란은 대선 이후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을 놓고도 정치적 논란과 법적 공방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 국회의 국정감사장도 대선전의 또 다른 무대가 됐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이다.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작용뿐만 아니라 행정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뜻한다. 이와 같은 국감장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은 거의 대장동과 고발사주에 대한 얘기들이다. 국민의 민생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바람직한 사회는 무엇일까. 피터 드러커는 이노베이터의 조건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기본적 신념과 가치가 지켜지는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정치는 과연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것인가. 신념과 가치를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패거리의 이익과 도덕적 면허(moral licensing)의 굴레로 결과되는 많은 사례가 있다. 역사의식과 철학이 없는 천박한 신념과 가치가 정치, 종교, 교육 등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는 관심도 없다. 효율성과 기능을 강조하지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효율인지를 따져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물론 기업과 노동조합, 종교단체, 학교 등 모두 예외일 수 없다. 개발사업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오직 자신들의 사익만 극대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가 되려면 기능을 수행하면서 기본적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사회가 돼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치와 신념을 지켜야 한다. 이처럼 대선전이 흘러가다가는 국민이 무관심과 회의, 냉소와 절망에 빠져들지 않을지 걱정된다. 지금이라도 사회의 모든 기관과 구성원이 가치와 신념을 지키면서 기능 해야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국민이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책임이 여기에 있다. 이동현 평택대학교 국제물류학과 교수

[천자춘추] 약속(約束)은 사회적 책무이자 의무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누군가가 무언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정하는 행위를 말하며, 딱히 손가락을 걸지 않아도, 문서로 인증하지 않아도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약속이라 한다. 또한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의 사회학과 사회에서의 약속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사상적 인상(ideological impression)이나 책무(commitment)이자, 번영의 답례로써 우리가 사회에 행하는 책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약속(約束)과 관련해서 영국에는 이런 내용의 동화가 있다. 길을 가던 담요 장사가 당나귀를 만나 금 두 냥을 줄테니 장까지 짐을 실어다 줄 것을 부탁하고 당나귀는 이를 수락한다. 이후 당나귀는 까마귀에게 등에 파리를 쫓아주는 조건으로 금 석 냥을, 까마귀는 참새에게 먹이를 잡아주는 조건으로 금 네 냥을 제안하고 각자는 본분에 충실한다. 장이 시작되자 담요를 본 참새가 장사꾼에게 금 네 냥에 팔 것을 약속 받고 까마귀에게 약속한 금 네 냥을 달라고 하였으나 까마귀는 석 냥만 주겠다는 일방 통고 이후 당나귀에게 금 석 냥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당나귀 또한 석 냥은 너무 많다며 금 두 냥만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장사꾼에게 금 두 냥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장사꾼은 참새에게 금 네 냥을 요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판결은 서로 간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책임을 물어 장사꾼은 감옥 행과 동시에 담요를 몰수당하고 당나귀는 몽둥이 열대를, 까마귀와 참새는 꽁지 털을 다 뽑아 버리는 형을 내렸다고 한다. 장사꾼은 참새를 탓하고, 참새는 까마귀, 까마귀는 당나귀, 당나귀는 신음을 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장사꾼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서로가 지킬 의향도 없이 무심코 함부로 한 약속이 사회 저변에 가져올 파장과 불신에 대한 꼬집음이 가슴에 와 닫는 동화다. 작게는 개인 간의 약속에서 크게는 사회나 국가 간의 약속에 이르기까지 현실 사회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약속을 통해 서로 간의 관계를 맺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이를 통해 자기 발전과 자기책무를 배운다. 그래서 개인과의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구성원 간의 약속은 그 무게가 더욱 무겁다. 결국 주어진 위치와 자리에서 지키는 다양한 약속들이 모여서 개인과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건너야 한다는 약속이 없다면,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된다는 약속이 없다면 그 혼란의 양상은 상상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더욱이 북한과 같이 국가 간의 이익이 달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과 전쟁 등 그 사태의 심각성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 왔다. 머지않아 지방선거와 대선 등 선거철이 도래한다. 수없이 많은 공약이 말과 언어의 공해로 난무할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각 후보들은 지역 예술문화 발전을 위해 크고 작은 약속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소수의 지자체를 제외 하고는 그 임기가 다해감에도 약속의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식언(食言)으로 전락 했다. 약속이란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고 꿈을 꿀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약속이 우리가 속한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협력하고 상생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실행이며 궁극의 가치인 점을 감안 한다면, 혹여 그 이행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돌아보며 열매 맺게 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때이다. 약속은 의무이자 사회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영길 수원예총 회장

[천자춘추] 천만 노인시대, 노인을 위한 일자리

지난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통계청이 9월29일 발표한 2021 고령자통계를 보면 올해 기준 노인인구는 853만7천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16.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불과 3년 뒤인 2025년에는 1천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2051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40%를 초과할 전망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노인고용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노인고용률은 34.1%로 2019년 대비 1.2%p 상승했다. 노인 근로는 노인빈곤과도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고용률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노후소득보장이 미비한 상황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노인들이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인을 위한 근로현장은 노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은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노인들은 많이 일하는 경비원은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예외다. 노인들이 많이 일하는 택배업의 경우 단가가 너무 낮아 소득보전으로 역할이 미비하다. 한편,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근로의욕을 가진 건강한 신세대 노인이 급증하고 있으며, 의학발달로 평균수명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도 일할 능력과 의욕이 충분함에도 은퇴 이후 여가만 즐기면서 30~40년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과 노인의 정서적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활동을 넘어선 직업경력을 활용한 전문적인 일자리를 고민해야 한다. 천만 노인시대를 위한 소득과 전문적인 일자리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유병선 경기복지재단 연구위원

[천자춘추] 문화도시의 사회적 가치, 문화민주주의

올해는 할아버지 묘를 찾는 일이 잦아지면서 제주도를 분기에 두 번 정도는 간다. 할아버지가 사신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옛 집터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올레길을 나름 개척하고 있다. 산책자로서 인근 지리와 문화지형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서귀포문화도시 센터장을 맡은 후배에게 연락하게 됐다. 과거에 문화정치를 주제로 같이 공부를 했던 사이라서 둘이 만나면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자연스럽게 문화도시가 화제로 떠오른다. 서귀포시는 자연 그대로의 삶이 묻어나는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露地) 문화 서귀포를 비전으로 삼는다. 제주도는 촌락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을의 생태적 문화가 온존하고 있기에 적절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인류학자 더글라스(Mary Douglas)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물체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며 오로지 그들만의 환경이 문화적 건립체(cultural construct)이다. 즉, 인간은 사회적 힘의 지배나 적용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다. 예컨대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재해석함으로써 시민의 문화 자주권이 실현되는 문화독립도시 천안, 철강 산업 종사자를 위한 문화 3교대를 마련하고, 생활 속 영웅을 찾는 철인 프로젝트의 철학문화도시 포항, 시민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듣는 도시의 생활문화도시 부천 등에서 보여주듯이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할 것이며 총체적으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 근래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한 교육열과 부동산 투기를 보면 아직도 개인적국가적 관심사는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려는 정치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문화도시는 사람들 간의 사회관계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한층 고양된 생활방식에 대한 문제인식을 설정한다. 이것이 총체적 생활방식(way of life)을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지 문화 서귀포의 추진과정을 들여다보면, 문화도시는 마을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회적 계층이나 지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의 제도 환경을 조성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현광일 더좋은경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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