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화도시의 사회적 가치, 문화민주주의

올해는 할아버지 묘를 찾는 일이 잦아지면서 제주도를 분기에 두 번 정도는 간다. 할아버지가 사신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옛 집터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올레길을 나름 개척하고 있다. 산책자로서 인근 지리와 문화지형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서귀포문화도시 센터장을 맡은 후배에게 연락하게 됐다. 과거에 문화정치를 주제로 같이 공부를 했던 사이라서 둘이 만나면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자연스럽게 문화도시가 화제로 떠오른다. 서귀포시는 자연 그대로의 삶이 묻어나는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露地) 문화 서귀포를 비전으로 삼는다. 제주도는 촌락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을의 생태적 문화가 온존하고 있기에 적절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인류학자 더글라스(Mary Douglas)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물체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며 오로지 그들만의 환경이 문화적 건립체(cultural construct)이다. 즉, 인간은 사회적 힘의 지배나 적용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다. 예컨대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재해석함으로써 시민의 문화 자주권이 실현되는 문화독립도시 천안, 철강 산업 종사자를 위한 문화 3교대를 마련하고, 생활 속 영웅을 찾는 철인 프로젝트의 철학문화도시 포항, 시민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듣는 도시의 생활문화도시 부천 등에서 보여주듯이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할 것이며 총체적으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 근래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한 교육열과 부동산 투기를 보면 아직도 개인적국가적 관심사는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려는 정치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문화도시는 사람들 간의 사회관계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한층 고양된 생활방식에 대한 문제인식을 설정한다. 이것이 총체적 생활방식(way of life)을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지 문화 서귀포의 추진과정을 들여다보면, 문화도시는 마을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회적 계층이나 지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의 제도 환경을 조성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현광일 더좋은경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천자춘추] 나의 간호 인생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직업을 선택하는 청년기에 내가 택한 길은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칸에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늘 적어 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에서도 보건의료 계통이 적합하다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간호대학을 다니면서는 과연 이 길이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인가 하는 갈등도 많았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좋은 학우들과 떠밀리듯 시간은 흘렀다. 그래도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이팅게일 선서식이다. 친구, 가족 등 많은 사람 앞에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한 선서식은 잊을 수가 없었고, 그날의 촛불 의식은 내 마음속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바로 병원에 입사하고 선배들과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학생 시절의 임상실습보다 훨씬 사명감과 책임감이 강해지고 보람도 많았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면서 근무를 나갔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초년병 시절에 아버님이 소화가 안 돼서 집 가까운 병원에서 위장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서 내가 일하는 병원에 오셨다. 나는 일로 바빠서 함께 있어 주지도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아버지는 딸이 제일 잘난 줄 알면서 간호사인 것을 대견해하고 딸이 일하는 병동에 입원하셔서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후 병원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녀 일과 학업의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바쁘지만, 의미 있게 보냈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겨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교수인지 학생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시절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좀 더 성숙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수많은 제자가 나를 스승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간호는 3H다.라고 정의한다. 3H는 Head, Heart, Hand로 머리는 전문적인 지식을, 심장은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손은 섬세하고 기술적인 능력으로 3H 간호를 하라고 가르치면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강의, 연구, 봉사하는 교수로서 학과일, 학교일, 학회일 등을 하면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의 꿈인 간호사와 선생님 둘 다를 잘 이룬 것 같다.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퇴직하고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폐암으로 점점 숨이 차오면서 분명하게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 코로나 시국이라 보호자가 1명만 병실에 있어야 해서 산소치료와 통증을 조절하는 어머니 곁에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인 내가 함께 있는 걸 제일 편안해하셨고, 퇴직하여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간호학생을 가르치며 4학년 2학기 마지막 강의에서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수많은 코스모스가 있지만, 이 꽃들은 자세히 보면 색깔, 모양, 크기 등이 다르다. 그렇지만 코스모스를 보고 국화라고 부르진 않는다. 일란성으로 태어난 사람도 다르고 이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간호의 대상자는 인간이기에 간호의 출발선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겼다. 간호사로 산 지난 40년을 되돌아볼 때 나는 간호사여서 참 좋다. 간호학과를 가고자 하는 예비 간호학생, 간호학을 공부하는 예비 간호사에게 자신의 진로를 정말 잘 선택했다고 응원한다. 간호학과를 지원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늦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간호사를 꿈꾸는 용기를 주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간호사가 되는 걸 꿈 꾸길 바란다. 전화연 경기도간호사회 회장

[천자춘추] 전쟁의 종식, 주먹을 펴야 악수할 수 있다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 맥아더 장군이 인용한 플라톤의 금언이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여전히 끝없는 전쟁과 분쟁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제76차 UN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북한의 관심 있는 반응이 주목되지만, 국민의 여론과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사(修辭)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치된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그럼에도 남북 간 서로 다른 정치적 상황과 상호 불신은 대화보다는 긴장과 대립으로 표류했다. 대외적으로도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지형을 바꿀 수 있는 주요한 정책결정은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다. 더구나 바이든 시대 외교는 동맹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더욱 현실적이고 단호한 상황이다. 최근 미 하원에 이어 상원의 2022회계 연도 국방수권법안(NDAA, 미 국방예산의 규모ㆍ용처 등을 정한 법안)에서도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말하는 강한 미국의 청사진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에 두는아메리카 퍼스트이다. 세계 경찰의 지위에서 내려와 자국 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돌보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은 한국에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전술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지향의 안보체제는 어떻게 가야 할까? 몇 가지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주요 안보 현안이 평화의 관점에서 다뤄져야지, 파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만으로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는 남북 간 평화문제 해결은 한국의 국익이 아닌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과 한중관계도 양자택일이라는 이차원적 선택이 아니라, 동북아의 공존과 공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측면에서 선택해야 하는 과제이다.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위협을 넘더라도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은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안보적 위협으로 대두될 수 있다. 외교와 협상도 중요하지만, 국제안보적 대응력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강(自强)이다. 물론 종전이라는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전쟁 종식과 안보력 강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고민으로 보인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분명한 목표이며 열망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힘의 축적 없는 평화는 허상이며, 언제든지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은 지난 28일에도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다고 밝혔다. 감성으로 평화를 강조할 수 있지만, 군은 냉혹한 힘으로 평화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이다. 이는 국방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종전선언은 현실적 상황을 감안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어떻게 발생하고 그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를 직시하는 자세도 그만큼 필요한 것이다. 결국 전쟁의 종식은 쥐고 있는 주먹을 펴야 악수할 수 있다. 안보는 혼자 가기보다는 양자 및 다국적 상황에 의해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종전선언의 의지가 추상과 공론(空論)의 영역에서 실종되지 않고, 국가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전쟁의 대비와 동시에 70년간 지속하여온 전쟁의 공포와 상흔을 치유해 나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ㆍ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천자춘추] 자영업자와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열풍이 국내를 넘어 새로운 한류를 만들고 있다. 오징어 게임 시청 유무에 따라 대화의 소재도 달라진다. 드라마에 등장한 우리네 어릴적 추억의 놀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다시 대유행 할 정도라니, 그 인기가 얼마큼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한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어떻게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이들 모두는 빚에 쫓기며 현실이 더 지옥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드라마 속에 나 나올법한 비현실적 주제를 다뤘지만, 극한의 순간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바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자영업자들은 오징어 게임이 현실에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목숨 걸고 뛰어들고 싶다고 말한다. 빚더미에 쌓인 그들이 극한의 게임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다.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전후로 인생이 뒤바뀌었다. 몸은 좀 힘들어도 고생만큼 보상이 온다는 생각에 온몸이 녹초가 돼도 가게를 지켜 왔는데, 코로나 위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지속되면서 개점휴업 상태로 내몰린 지가 어느덧 2년째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버틴 사람은 용한 재주가 있는 편이다. 큰 손해를 보더라도 가게를 서둘러 접은 경우도 많다. 소상공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거리두기 장기화로 지난 1년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천여개, 하루 평균 1천여개 매장이 폐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영업자 대부분은 성실하게 소득을 증빙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착한 삶을 살아왔다. 거리두기로 인한 영업 피해는 이들의 과세 자료 등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신규 창업 점포도 유사 업종보다 손실을 추산해 낼 수 있다. 영업에 자유를 줄 수 없다면 손실이라도 국가가 보상해 주는게 맞다. 이익을 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빚더미에서는 벗어나게 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에 빗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풍자가 이어진다. 정부의 각종 대책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탈락 된다인데, 자영업자가 비유되는 대표적 피해자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자영업자를 게임에서 탈락시켜선 안된다. 특히 불공정 게임으로 낙오시키는 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궁지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손실 보상을 통해 삶의 희망을 주길 바란다. 최영은 행동하는 여성연대 사무총장

[천자춘추] 참된 ‘꼰대 의식’

최근 예술원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기본적으로 예술원이란 예술 각 분야의 대표성을 가지는 원로들이 국민에게 예술적 감흥을 주는 동시에 사회적 모순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제공하는 시대의 어른이 모인 곳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즉 그러한 것과는 전혀 다른 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예술원 회원을 뽑는 절차는 가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후진적 모습을 보는 불쾌감을 동반하게 된다. 또 예술원 회원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적지 않은 지원금을 보며 이 시대의 어른을 생각해 본다. 문화예술의 현장도 예외 없이 자본주의적 경쟁에 남녀노소가 없음을 보아온 터이고, 완고한 섹트주의의 발호도 실은 이러한 데서 비롯된 점이 있다. 이러한 물질중심의 사고에 대해 예술 분야의 어른들께서 앞에 나서 지적도 하고 혼도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손가락질당하는 꼰대 의식은 어른들의 자기중심적 행위와 양보 없음이 밑바탕에 깔린 결과일 것이다. 시대가 변해 당연히 어른들의 위상과 역할도 많은 변화가 있을 터이다. 진정한 꼰대 의식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항의 어른도 술 사주고 밥 사주고 격려하고 잘못된 행태는 꾸짖을 때 적어도 말발이 서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술원의 어른들이란 여기에 더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실어주는 분들이 아니겠는가? 예술원도 각 분야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고 당연히 직면한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예술로 국민에 봉사하고 진정한 영감을 준다면 기왕에 예술원과 관련된 비판적 논의는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은 위대한 것이다. 이 위대한 것으로서의 도전 대개 물질로 치환해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이제 우리는 노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어른들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말로 들린다. 시대에 약간 뒤처진 듯하지만 이익과 상관없는 중심 잡힌 어른의 말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이 시대의 어른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대식 시인경기민예총 집행위원

[천자춘추] 남대천 연어

지난 15일 폐회된 제354회 임시회는 7년이 넘는 의정 활동 기간에서 가장 힘든 시간 중의 하나였다. 전 도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의회만 바라보는 도민들을 생각하면서 버텨냈다. 어쩌면 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고향인 양양에서 며칠을 보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양양의 익숙한 길들을 걸었다. 동해 바닷길, 울산바위가 한눈에 보이는 설악산 자락, 그리고 남대천. 설악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은 양양 읍내를 관통해 동해로 흘러들어 가는 제법 큰 하천이다. 이맘때가 되면 남대천에는 수많은 연어가 거센 물살을 헤치며 상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산란을 위해 자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대천에서 태어난 새끼 연어들은 약 1년 정도를 살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동해를 거쳐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해협을 빠져나가 북태평양에서 약 34년 정도를 살다 몸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산란을 위해 2만km를 헤엄쳐 고향인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지구 둘레가 4만km이니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셈이다.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연어들의 고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대천의 거센 물살들과 보들이 연어들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거센 물살들을 헤치고, 자신의 크기보다 몇 배나 높은 보를 뛰어넘어 태어난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다 쏟아부어 알을 낳고 죽는다. 목표물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분투, 그리고 사멸.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을 바라다보면 신비함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문뜩 미국 작가인 마크네포가 쓴 연어의 생태와 관련된 문장이 생각난다. 연어는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끊임없이 그들을 가로막는 물살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물살이 가장 센 곳에 이르면 그곳으로 힘차게 뛰어든다. 물이 막힘없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는 장애물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길이야말로 가장 험난하지만 확실한 곳이다 연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에게 가장 험난한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민생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약함을 버리고 다시 의정 활동을 위해 돌아오는 설악산 고갯길에서 거대한 울산바위가 변함없이 꿋꿋하게 인사를 건넨다.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천자춘추] 추석 이후 부동산시장 어디로 가나

집값 상승이 1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라도 너무 오른다. 서울이나 수도권 유명지역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평가 지역이라 불리는 외곽지역의 아파트와 빌라까지 급등하고 있다. 마치 통제 불능 상태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정부는 최근 대출규제, 기준금리인상, 신도시 추가 공급, 오피스텔 등 비주거시설의 규제완화를 통한 공급확대 등 여러 대책을 쏟아 내고 있지만, 집값 상승 열기를 꺾기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격이 급등하자 차라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는 볼멘 목소리가 공감을 얻는 요즘이다. 9월 7일 발표된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부동산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전략)에서 원인과 답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자. 부동산시장의 변화를 간과한 채 기존의 규제, 과세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답습했기 때문이라고 정책의 실패를 지적한다. 변화하는 주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 후 다양한 정책수단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정책 이념에 따라 조세, 대출 정책의 틀을 바꾸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가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다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이나 사회적인 합의 없이 복수의 주택 소유를 다주택자라고 규정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조세 중과만 했다. LTV(담보대출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대출규제를 투기지역 중심으로 하면서 자기자본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주택구매 기회를 제약했고, 이런 과도한 대출규제로 인해 편법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시장안정을 저해할 수 있어 실수요 목적의 부동산 수요자를 위한 합리적인 대출규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동산시장 정책의 핵심은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부동산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시장을 억누르면 풍선효과 탓에 예상치 못한 문제만 생길 뿐이다. 추석 이후에도 주택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저금리, 유동성 기조가 갑자기 사라지기 어렵고 국책연구기관에서 제시한 여러 문제점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보고서의 결론에 나오는 부동산시장에 대한 경고다. 최근의 집값 급등은 정상적인 거래를 통한 실물가치가 상승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유동성과 정책의 실패에 따른 명목가치만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원가에 비해 터무니 없이 오른 평가가치의 급등은 실질소득의 한계와 시간의 경과하면서 금리가 정상화되거나 실물경기가 침체되면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고 자칫 가격 급등 찰나의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산버블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발생가능성은 작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인 블랙스완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하는 만큼 우리는 항상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관리는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

[천자춘추]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 존중하자

한국사회에서 여성건강은 주로 임신ㆍ출산에 국한하고 있으며 정부는 국가목표에 따라 여성의 출산을 통제해 왔다. 경제개발시기에는 출산을 제한하는 정책을 폈고, 저출생 사회가 도래하면서 출산을 장려하는 등 국가발전의 관점에서 접근해 온 것이다. 국제사회는 일찍이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주목했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월경,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을 비롯한 삶의 전 과정에서 안전ㆍ존엄ㆍ건강과 자율성을 보장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1994년 카이로 행동강령은 누구나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적절하고 수용 가능한 방법에 대해 필요한 정보와 보건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고 받을 권리를 명시했고 이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유엔아동권리협약,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 여러 국제 협약과 규약에도 포함해 왔다. 2016년 유엔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위원회도 성재생산권리가 건강에 대한 권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했으며, 국제사회의 공동목표인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에도 성재생산건강을 17개 목표 중 하나로 포함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은 모자보건법에 근거한 모자보건사업 위주이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건강가정기본법,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에도 주로 임신, 출산 건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행히 정부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성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정책이 포함되고, 제2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 성인지적 건강증진기반강화를 포함하는 등 여성건강의 관점에서 성재생산건강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임신과 출산 위주다. 특히 모자보건법은 여성의 생애 전반에 걸친 성재생산건강권을 보장, 보호하는 근거법으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국가적으로 성재생산건강권 존중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포괄적인 계획 수립과 추진체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재단에서는 올 상반기에 경기도와 함께 성재생산건강권 존중을 위한 정책포럼을 추진했다. 경기도는 전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급해 월경 건강을 지원하며, 의료서비스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공공산후조리원 설치하는 등 성재생산건강 권리 존중에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제도의 미비로 인해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모자보건사업은 주로 공급자 중심의 정책으로 전 생애주기 여성의 특성과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성재생산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적 인식과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고,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기본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여성인권과 성평등 관점에서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임혜경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천자춘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뒤 혼기에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교회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한다 등으로 많이 사용 되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행복과 불행, 선과 악, 생명과 사랑,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 부요와 빈곤, 높고 낮음도 모두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의 명작 안나 카레리나에는 마음에서는 선택했으나 행동으로 선택하지 못한 슬픈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코젠세브와 바렌카는 서로 사랑해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버섯따러 간 날 청혼하려 했지만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버섯 이야기만 하고 돌아온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선택은 무의미하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W. Somerset Maugham)의 대표작 달과 6펜스는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이다. 달이나 6펜스(영국의 최저 단위의 은화)는 둘 다 은색으로 빛나는 둥근 모양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예술을 추구하는 달 같은 인생이냐, 돈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세속적 6펜스 인생이냐는 선택에 달려 있다. 인도의 간디는 런던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호화롭게 살 수 있었지만, 변호사로서의 삶 대신 고난 받는 민중의 길을 택해 2338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위대한 정신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역사에 존경받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장자옥의 마지막 남은 생명이란 글에 두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형수는 죽기 전에 고기나 실컷 먹고 싶다며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팔아 받은 10만원으로 고기를 주문해 먹었다. 그러나 3만원어치도 먹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다른 사형수는 자신에게 남은 전 재산 15,000원을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하던 중, 형무소에 위문 온 찬양대와 전도사님을 만나 좋은 일에 써달라는 말과 함께 드렸다. 그 전도사님은 교도소 내에 예배당을 지으며 그 돈으로 강대상을 봉헌했다. 헌당식 날 그 사형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참석한 모든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고 그 후 사형수는 감형으로 삶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당장 눈앞에 유익을 위한 선택 보다는 더 멀리, 더 크게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선택해야 한다. 나만의 만족을 위한 선택 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두루 더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매일의 삶에 찾아오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지혜를 구하자.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자. 고명진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천자춘추] 독서의 계절

시성 두보가 말한 하늘이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계절(天高馬肥) 가을을 우리는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에는 뛰어가는 자는 걷고, 걷는 자는 멈추고, 서 있는 자는 뒤를 돌아보라고 했고, 성리학의 대가 주자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고 타일렀지만 되돌아보면 후회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시카고 대학은 미국에서 그다지 역사가 길지 않은 대학이다. 그럼에도 그간 800개의 노벨상 중에서 74개 이상을 휩쓴 명문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후발 대학의 이러한 탁월한 성과는 1920년대에 총장으로 부임한 로버트 허친슨 교수의 고전 읽기(The Great Book Project) 덕분이었다. 학생들의 전공과 상관없이 전교생에게 고전을 읽게 한 독서정책은 그 대학 출신들이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 굳건한 기초가 되었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 세 가지 소리가 나야 한다고 했는데 어린아이 우는소리와 다듬이 방망이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책 읽는 소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선비는 내가 선비임을 증명하고자 새벽부터 책을 읽어야 하며,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문장으로 증명해야 한다. 고 연암 박지원은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운명의 절대적인 힘을 강조하는 주역에서조차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에 친절과 자아 성찰과 함께 독서를 들고 있다. 약속을 잘 지키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가 약속을 잘 지키듯이 책 읽기를 즐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안다. 기약 없는 유배 생활의 울분과 외로움을 참고 견뎌야 했던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의 두 아들에 보낸 글에 폐족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직 독서 하는 것 한가지뿐이라고 썼다. 이 얼마나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처절한 부탁이었는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많다. 누구나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월을 아껴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독서를 습관화하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낸다는 말은 시간을 정해놓고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하루 30분씩 독서 시간을 만드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청소년에게는 운동도 필요하고 또래 활동도 필요하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늘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 성공은 그 뒤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독서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배움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흡수하려는 능동적인 마음이다. 따라서 독서를 위해서는 몇 가지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책을 읽은 다음에는 반드시 읽은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게 하고 독후감을 기록하도록 하며, 내용에 의문이 있으면 질문을 하게 하고, 부모와 함께 토의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천자춘추] 출산은 축복이며 미래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로 1960~70년대 배고픔 설움에서 벗어나 려는 산아제한(産兒制限)이 중요한 국가 시책이었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인구 억제 정책을 시행했다. 이 시기 정부는 해외 원조로 들여온 피임약을 배포하고 피임기구시술을 하며 인구가 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인구 저출산 절벽 수준을 넘어 대지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세계인구의 날인 지난 8월11일을 전후해 곳곳에서 저 출산 해결을 위한 인구 정책 토론회가 열렸지만 해마다 똑같은 토론에 뾰족한 수는 없었다.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100 년 뒤 우리나라 인구는 1천510만명으로 줄어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출생 통 계에선 지난해 출생아 수가 27만2천377 명으로 전년 보다 10%감소했다. 연간 출생아 수 마지노선으로 비교하던 30만명 대로 무너지고 처음으로 20만명대로 떨어진 것이다. 19년 전인 2001년 50만명대 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줄어든 수치다. 전쟁과 휴전 1950년대 중반 이후 베이비부머 시절 출생아수는 70~80만명이었다. 당시 대구직할시 인구가 늘어난다고 했다.올해에도 46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으로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을 끌어 올 리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기존의 형 식적이고 실효성없는 정책들로는 안된다. 좀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이 절실 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 해 저출산 예산이라고 책정된 분야 중 상당 부분이 복지지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산 육아 등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책 마련과 예산 투입이 이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산 사회 경제 구조의 불안은 일과 삶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인내와 노력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다 해주기만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전쟁의잿더미위에서 빈손으로 넘어야했던 온갖 험난한 세상에 조부모 세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출산은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요로운 계절, 며칠 후면 조상을 기리는추석이다. 정성을 다해 곡식을 가꾼 농부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넉넉한 수확의 계절이 온 것이다.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는 가정은 이 지상에서 단란함 이 최고로 빛나는 기쁨이요 자녀를 보는 즐거움이 가장 성스러운 행복이라고 했다. 가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자녀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다산(多産)은 미덕이요 가족이 많아야 행복이었다. 율곡 선생이 태어나지 않고 대학자로 길러내지 않았다면 신사임당이 존경받는 여성으로 어머니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이 엄마,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별을 헤이는 가을 밤 아기 울음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천자춘추] 맹모삼천지교?

어머님 기일을 맞아 성묘를 다녀왔다. 참 좋은 가을 하늘 아래서 회한에 잠겼다. 우리네 부모들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우리 어머니는 일찍이 혼자되셔서 늦둥이 어린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가서 열린 첫 재판 날이 어머니 회갑 날이었다. 재판 끝나고 교도소로 면회 오셨는데 고운 한복을 입으신 것을 보고서야 회갑이신 것을 알게 됐다. 불효막심했다.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르는 가운데 문득 우리 어머니는 고생만 한 어머니가 아니라 늘 배우시는 분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공드리러 절에 가고 염불 올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화두를 들고 참선의 길로 나아가셨다. 고승 대덕의 가르침을 녹음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으시며 늘 배우고 깨닫고자 노력하셨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평생학습자이셨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에서 살다가 자녀 교육에 좋지 않아 시장으로 옮겼는데 이도 마땅치 않아 서당 근처로 옮겨 아이를 잘 가르쳤다는 이야기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한석봉 어머니 이야기도 전해진다. 글씨 공부를 떠난 아들이 공부 10년 약조를 어기고 3년 만에 돌아오니 석봉의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아들은 글씨를 쓰게 하고 자신은 떡을 썰었다. 한석봉은 글씨를 제대로 못 썼는데 어머니는 떡을 가지런하게 썰었다. 석봉은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고 공부에 전념해 명필이 됐다는 이야기다. 다들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옛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석봉 어머니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맹모산천지교는 좋은 학군을 찾아다니는 수준이지만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녀에게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보여준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어머니는 배움은 이미 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學而不可以已)는 순자(荀子)의 금언을 실천하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한석봉의 어머니 같은 분이었지만 자식은 한석봉이 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성묘에서 돌아오면서 배움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 집중해서 실천하는 것임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성인 학습자들의 학습 의지를 북돋고 지원하는 사회체제는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한다. 김제선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

[천자춘추] 경제사령관의 무게

16.4%.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고령인구 비율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를 향해 급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만 보더라도 전국 고령인구비율과 맞먹는다. 경기도는 그나마 고령사회 문턱에 걸려 있다. 하지만 동두천, 포천, 여주, 연천, 가평, 양평 등 일부 지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수년 내에 초고령사회가 된다는 것은 성장잠재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소비위축은 말할 것도 없다. 소비위축은 세수감소로 직결된다. 소득 없는 초고령사회는 재정부담으로 이어진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경제사령관의 말에는 무게가 없다. 오락가락이다. 그의 말은 180도 달라져 있다. 국가채무에 대한 그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순간 국가채무의 마지노선이 국내총생산 기준 40%에서 60%로 절반이나 급상향했다. 주변 우려를 의식했는지 통합재정수지를 함께 결합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한다고 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60%, 통합재정수지는 -3%를 기준으로 하되,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하면 재정지표 관리가 가능하도록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현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 확대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있는 일이다. 적극적인 재정 운영을 말할 때 항상 보기 좋게 내세우는 근거가 OECD 회원국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알고 그러는지 애써 외면하는지 언제나 그렇다. 수출이 거시경제의 핵심인 우리나라는 국가채무 비율과 내용이 국가 신용등급과 대외 신인도와 직결돼 있다. 더욱이 기축통화국도 아닌 우리나라는 적정 외화보유고 유지도 거시경제 안정에서 필요충분조건이다.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 이미 올해 국가채무는 900조원를 넘어 내년도 국가채무는 1천조원를 돌파할 예정이다. 국가채무 가운데서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4대 연금 적자와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4대 보험 적자 등 소위 나쁜 채무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앞으로 초고령사회 진입 문턱에서 노년부양비 등 복지재정 확대로 인한 재정부담은 더욱 늘 수밖에 없다. 지금 시기에 다소나마 재정부담을 덜고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길은 일하는 사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초고령사회를 대비하고 나라 곳간을 걱정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

[천자춘추]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공정성의 회복

일산대교는 한강 최북단에 위치한 교량으로 2009년에 개통했으며, 매일 약 7만대의 차량이 이용하고 있다. 주요 이용 차량은 같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고양ㆍ김포ㆍ파주의 200만 시민들이다. 일산대교의 거리는 1.8㎞, 통행료는 1천200원이고, 이는 타 민자도로와 비교하면 1㎞에 6배에 달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왕복하기 때문에 매일 2천400원을 부담하는데, 출퇴근학원병원 등 일상생활을 위한 교량 횡단에 통행료를 납부하다보니 시민들은 도강세를 납부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도로는 이동권이라는 기본권 실현의 수단이기 때문에 무료가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유료로 운영할 때에는 「유로도로법」에 따라 선택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산대교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김포대교는 8.1km 떨어져 있어 30분가량 우회해야 하고, 대체교량을 지으려고 해도 민간투자자와 계약 관계상 위약 행위가 되어 지을 수도 없다. 일산대교는 인근 시민들에게 필수적이고 유일한 교량이다. 만약 한남대교가 일산대교처럼 유료였다면 어땠을까? 서울시내에서 시민들이 일상적이고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교량에 매번 통행료를 부과한다면? 무료로 횡단하려면 30분 이상 소요되는 다른 교량을 이용해야 한다면, 이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졌을까? 국민연금은 ㈜일산대교를 2천516억원을 들여서 매입했는데, 인수 이후 2회에 걸쳐 통행료 인상을 했고 자기대출 형태로 선순위 차입금 8%, 후순위 차입금 20%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 다시 묻고 싶다. 한남대교가 유료였다면, 인근 시민들은 국민연금의 수익 창출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민연금은 수익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 방식이 특정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는 것이라면 공정하지 못하며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경기도는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남경필 지사 당시였던 2015년, 재무구조 원상회복을 통한 통행료 인하를 추진했다가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고,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자금 재조달 요구 △매입 등 협상 요구를 해왔지만, 국민연금은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 공익처분은 일산대교 운영의 불공정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물론, 경기도는 법률과 협약에서 정한 대로 국민연금의 주주수익률을 존중하여 정당하게 보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통행료 인하 방법으로는 통행료를 인하하는 만큼 유료 운영 기간을 늘리는 재구조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민 고통을 장기화하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고 공공성 회복과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었다. 때문에 경기도는 현재의 부담을 미래세대로 전가하는 재구조화 방식이 아닌, 매입 등 더욱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왔다. 일산대교의 공공성 회복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검토했던 모든 방안과 노력 끝에 나온 유일한 방법이 지금의 공익처분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연금이 보상 등의 협의에 성실히 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바라며, 하루빨리 공정성이 회복되고 통행료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일산대교를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박상혁 국회의원

[천자춘추] 부끄러움 없는 사회

오래 전 드라마에서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코로나 19는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고 서민 경제는 바닥을 치고 이러한 와중에 부동산 값은 폭등해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절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면서 최근에 발의되거나 제정되는 몇몇 법안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518 왜곡 처벌법을 보며 느끼는 소회는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필자의 세대에게 518은 언제나 원죄의 역사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부인해 본 적이 없다.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망발이 오늘날의 주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법으로 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듣기 싫은 일부의 목소리 때문에 법을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의 진실을 틀 안으로 가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역사왜곡방지법이나 위안부왜곡처벌법 발의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바를 믿지 못하고 법률로 정하려는 것은 그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논어를 꺼내 든다. 인도하기를 법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려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법으로써 국민의 삶을 재단한다면 법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국민에게 어떠한 도덕과 염치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지런한 사회가 될지 몰라도 결국 자율성이 거세된 타율성의 사회로 가는 길이 될 터이다. 옛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열린 사회로 가려면 법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다. 우대식 시인ㆍ경기민예총 집행위원

[천자춘추] 교통발달과 도시성장

도심은 간선도로가 만나고, 도로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강남의 상업지역은 강남대로와 영동대로, 그 사이의 테헤란로를 따라서 선형의 상업지역이 그려졌다. 교통을 처리하는 기반시설의 용량을 도로폭으로 본 것이다. 강남개발 이후, 50년이 지난 현재, 땅 아래로는 고속의 열차가 달린다.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환승역세권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 현재의 도시계획수법과 제도는 산업혁명기에 만들어진 틀에 기초한다. 공장과 주거를 분리하는 데에서 용도지역제 틀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는 산업이 주거와 상충되지 않는다. 일자리와 주택이, 다양한 서비스 기능이 한 건물 안에 있어도 괜찮다. 초등학교 중심으로 주택과 상가를 배치하는, 근린주구 이론은 4인 가구 시대에 채택되었다. 1,2인 가구 중심의 현재는 다른 형태의 단지계획이 요구된다. 출산율은 감소하고 1인 가구는 더 빠르게 늘어난다. 비대면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상가는 줄어들고 물류회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2030년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더욱 빨라지는 고속열차와 통신의 발달은 전통적인 지리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이미 초고밀상태인 서울시내에 얼마나 많은 주택을 더 공급할 수 있을까? 물론 오래된 주택의 정비는 꾸준히 이어져야겠지만 GTX 등 고속열차의 환승역세권을 고밀 복합화하여 이동의 필요성을 낮추고, 이동거리를 짧게 하며, 이동하는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컴팩트한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절반을 차지하는 메가시티로 성장 중이다. 중심도시 서울로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모이고 고급서비스가 집중될 것이다. 강남으로 몰리는 혁신인력과 플랫폼기업, 연구개발기업들을 외곽의 초환승역세권으로 분산시켜 통근거리를 줄이고, 강남 부동산 열기를 식히며, 팬데믹에 강한 생활권도시(15min city)의 중심지로 만들어가야 한다. 일극중심의 수도권을 다핵분산형 대도시권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3기 신도시가 입주하는 2030년이면 GTX와 자율차가 달리며, 하늘 위로는 드론택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현재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택과 자족 일자리는 고속열차의 환승역세권을 따라 분산되고 수도권은 수개의 컴팩트한 거점을 가지는 다핵분산형 메가시티로 성장할 것이다. 이것이 탄소중립적이며, 팬데믹 대응형 공간구조다. 이러한 미래비전을 그려둔 다음에 신도시건설이 나와야 한다. 신도시는 주택공급의 수단뿐 아니라, 일자리, 통근, 탄소 중립 고민과 함께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현수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천자춘추] 눈먼 자의 개천 탓

인간은 태생적으로 남 탓하고 변명하기 적합하게 진화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자기 눈에 들보는 못 보면서 남 눈에 있는 작은 티끌은 보인다. 왜 그리 남에 것에 신경 쓰고 크게만 보이며 비교가 되는 걸까. 인간 본성이라 여기고 말면 편할지 몰라도 이건 분명히 아니다. 내가 잘못하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고 상대에 피해가 되는 것이 분명하므로 짚고 넘어가고 반성해서 고쳐야 할 각자의 인격문제다. 왜 남의 떡만 커 보이는가. 내 떡은 항상 불만이고 맛 없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햄릿들의 증상은 세 가지다. 뭐든 고르기가 버거워진 결정 장애 어른 아이 바로 나. 책임을 미루는 결정 회피자 그리하여 비교하며 남 탓하는 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사안일주의자 나다. 독단과 자기 확신과 지적 오만함이 강렬한 빛을 비춰주는 그 길을 따라가면, 결국 어두운 숲이 나올 거라는 확신을 떨치기가 어렵다. 자존이야말로 모든 미덕의 초석이다. 자신을 적절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구성원들과 협동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를 살며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대접을 원하게 되고 갑 질은 시작된다. 비교는 당연히 뒤따른다. 왜냐하면, 바로 나만 최고이니까. 나 먼저 바뀜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어찌 된 노릇인지 늘 새로운 이야기며 실천하기 버겁다. 세상에 흔히 아는 이치는 눈먼 자 개천 탓에서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지팡이로 더듬더듬 길 가다 개천에 빠진 눈먼 자는 버럭, 왜 여기에 이런 게 있느냐며 화부터 냄이 십중팔구다. 진작에 자신 처지를 알아 항시 순리와 준비로 원하는 길을 찾는다면 늦더라도 목적지에 이르련만 말이다. 아무리 서툴러도 우선 실행하는 것 외에 더 잘할 방법은 없다. 내 탓, 남 덕으로 세상을 보면 어떨까. 내 눈이 잘못된 것이지 분명 남의 눈에는 이상이 없으니 나를 바로 보고 뒤 돌아보고, 확장과 축소. 축소와 확장의 연속성에서 나는 항상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없으면 귀신이거나 신앙인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에 있는 것이다. 너무 이기적인 발칙한 발상은 아니다. 은혜는 돌에 남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면 남 탓은 없어질 게 분명하다. 자, 지금 바로 나부터 실행하자. 김홍한국중고배구연맹회장

[천자춘추] 송림골,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학창시절 즐겨 읽은 김춘수 시인의 꽃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구에게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심이요, 사랑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나와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한다. 도시의 거리에도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 수 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거리, 통영의 윤이상 거리, 군산의 근대유산을 고풍스럽게 살린 근대문화거리 등은 지역의 인물이나 자원을 공간에 투영하여 새로운 장소를 만든 것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무형의 탱고를 상징화한 아르헨티나 보카 거리, 쇠퇴한 지역을 재생한 토론토의 양조장 거리, 폐 철로를 시민의 공원길로 재탄생시킨 뉴옥의 하이라인 모두 쇠퇴한 지역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여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곳이다. 이러한 공간은 현대 거리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자아낸다. 필자에게 그 거리는 기억이 생생하고 깊은 감동을 주어 다시 가보고 싶다. 인천의 송림골도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거리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모두가 방문하고 싶은 명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오랜 세월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근대문화자산이 있어 근대문화거리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는 개항기 역사, 3ㆍ1운동 발상지의 역사 이야기를 곁들이면 풍성한 감성적 거리로 거듭날 수 있다. 붉은 벽돌의 고색창연한 근대 서양식 건물이 잘 드러나게 하고, 거리의 질감 있는 풍경을 연출해 낸다면 사랑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맛깔나는 해설이 더해진다면 방문하고 싶은 거리가 될 것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과 아울러 지역의 이야기 콘텐츠를 디지털화 해서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메타버스라는 플랫폼의 사이버 공간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동구 송림골의 또 다른 세상으로 사이버 영토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다. 개항의 시대로 들어가 그 시대의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체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때 그 시절의 도시 풍경이 더 활기차고 재미있었으리라. 송림골 근대문화거리가 물리적으로 새롭게 정비되고 사이버 공간으로 만들어진다면 주목받는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송림골 근대문화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이며, 기독교 서양문명이 유입되어 우리의 전통문화와 융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공간을 해석하고 그 역사가 우리 세대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그 치열했던 격변의 시대에 온몸으로 살아낸 선조의 발자취를 그리면서 변화의 물결을 생각해 보자. 부디 송림골 근대문화의 거리가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해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길 기대한다. 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천자춘추] 디지털에 철학을 담자

디지털 기술과 기계에게 지배받는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는 것은 80년대 탄생한 SF 장르의 특징이었다.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인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영화 블레이드러너),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영화 토탈리콜)에서도 미래 기술에 대한 우려를 보여준다. 뒤를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 사이버펑크의 정점을 보여준 아키라와 공각기동대의 기계기술에 인류가 지배받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영화 매트릭스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게임을 통해서 대중에게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과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는 풍요로움이 가져다줄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염려하고 경계하는 자성의 바램이기도 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통해 두려워하던 그 미래가 2021년인 지금이고,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시시해 보이기까지 한 현재라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초월적 발전과 비대면플랫폼 경제 및 인공지능의 대두는 현실이 되었으나, 사이버펑크에서 얘기하던 디스토피아적 모습보다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많은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세상으로 느껴진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중심의, 그리고 인간을 향한 기술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류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통해 기술에 잠식당하는 인류의 미래를 경계해온 상상력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필자의 의견이 너무 지나친 비약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유토피아 건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개인이 취득할 수 있는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깊은 사색과 토론을 반복했으며 이를 통해 자기만의 이데올로기와 철학을 완성해갔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는 각자의 철학과 신념은 실종되고, 개인의 생각들은 검색과 SNS라는 툴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파편화, 즉시화, 반복화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든다. 검색으로 찾은 타인의 철학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생각과 신념으로 내재화된 개인의 철학들을 절실히 요한다. 기술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사이버펑크를 통한 다양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경계했듯,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철학과 신념을 잃지 않도록 고민하고 있다. 오죽하면 멍 때리기 대회까지 생기겠는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각자 생각에 잠기는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실천의 한 모습이다. 박무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

[천자춘추] 기후변화 위기, 해양이 해법이다

IPCC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려고 1988년에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다. 이 기구에서 8월 초 공개한 보고서가 충격을 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40년 지구 평균 온도가 19세기 말 산업화 이전보다 1.5℃ 높아진다는 것이다. 3년 전 예측치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졌다. 폭염과 가뭄, 폭우, 홍수 등 전례 없는 기상이변 현상들이 증가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비해서도 기후위기는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일 것이다. 인류의 재앙이 시작된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남태평양 국가의 일로 치부되던 수면상승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50년 이후부터 인천, 평택 등 서해안 지역의 도시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위기가 먼 미래가 아닌 현재, 먼 나라가 아닌 여기,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지구적인 것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해양과 기후의 통합적 접근은 바람직해 보인다. 해양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자원이자 공간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 해양은 기후변화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스, 물 및 열을 대기와 교환하고, 세계 곳곳에 재분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양은 온실효과에 의해 생산된 열의 90% 이상을 흡수하고, 인간에 의해 생산된 이산화탄소의 25%를 흡수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방지한다. 건강한 해양이 기후 시스템의 원활한 기능에 기여하는 핵심 요소다. 해양과 기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해양정책을 통해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기후정책을 통해 해양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 해양과 수산에 기후를 통합해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최근 기후변화에 답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다름 아닌 이산화탄소 농도, 바다 온도, 열대성 폭풍, 빙하의 양, 긴급사태 등이다. 모두 해양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번 대선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들이 언급되고 있다. 구호적 공약이 아닌, 과학과 산업을 포괄하고 자연과 인간을 연계하는 실효적인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해양과 기후에 대한 정책을 통합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 해양기후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한 해양과 기후에 대한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현행 해양수산부와 기상청을 통합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동현평택대학교 국제물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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