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1970년대 초 명절에 고향 갈 때 손목시계를 차면 성공한 사람으로 여겼다. 부잣집에만 대청마루 벽에 괘종시계가 걸렸다. 손목시계는 몇 달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다. 그땐 날짜판이 있으면 고급시계였다. ‘오리엔트’와 ‘시티즌’등 수입한 부품으로 만든 국산 조립시계가 전성기를 이뤘었다. 그런데 전자시계가 나오면서 값이 뚝 떨어졌다. 결혼 예물로 시계가 등장했다. ‘오리엔트 갤럭시’ ‘오메가’ ‘라도’ 등의 브랜드가 나오면서 홍콩산 가짜도 나왔다. 1990년대 초엔 국민소득 상승과 함께 해외 여행객이 증가했다. 롤렉스 등의 명품을 들여 오기 시작했다. 덩달아 모방 제품들이 생겨났다. 롤렉스· 불가리·샤넬의 모방 제품은 꽤 고가였다. 전에는 멀리서 봐도 판별이 됐는데 케이스와 바늘·무게·촉감 등 세심하게 감정해야 할 수준이 됐다. 2000년대에 들어와 ‘가짜 시장’과 ‘진짜 시장’이 따로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모방 제품에 대한 명품 제조사의 태도도 달라졌다. 예컨대 롤렉스 측은 모방 제품에 대한 단속 의뢰를 안 한다. 가짜에 대한 수요층을 진품에 대한 잠재 수요층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교한 가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전당포가 속출했다. 별의별 짝퉁이 다 나와 전당포 주인의 ‘고민 1호’는 ‘가짜와의 전쟁’이 됐다. 롤렉스나 카르티에, 프랭크 뮐러, 피아제 등 명품 시계의 모조품은 탄성이 터질 정도다. 전당포의 주인도 속을 만한 수백만원짜리 스위스제 카르티에는 무게도 촉감도, 케이스의 정교함도 진짜다. 그런데 뒷면 뚜껑을 열면 부품에 ‘메이드 인 재팬’이 찍혀 있다. 하지만 가짜를 들고 온 사람들은 태평이다. 미안하다거나 얼굴 붉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답이 똑 같다. “선물 받은 거예요. 저도 몰랐어요”하면 그만이다. 가짜에도 등급이 있다. 중국산은 B급, 홍콩산은 A급, 대만산은 특A급이다. 전당포 주인들이 “야 ~아. 이거 정말 잘 만들었다”고 감탄할 정도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 시계방에 가서 수백만원의 수업료를 내고 구별법을 배운다. 다이아몬드로 덮인 피아제 시계는 시중값이 1억원이란다. 시계 얘길 하다보니 비싼 것도 아닐텐데 시계를 잡히고 외상술을 먹거나 전당포에 갔던 청년 시절이 그리워진다.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면서 고장 난 시계를 차고 다닌 멋쟁이도 있었다. / 임병호 논설위원

‘붉은 악마’ 개명?

독일월드컵 축구대회 기간 중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은 지구촌에 큰 인상을 남겼다. 선수없는 경기장과 전국의 도심 광장에 모인 거대 인파는 한국, 한국인의 역동성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외신들도 한국의 응원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격찬했다. 돌이켜보건대 과찬이 아니었다. 누가 불러 모은 것도 아닌데 붉은 셔츠를 입고 ‘대 ~ 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러나 한국축구가 16강 진출이 좌절된 후 열정이 식었다. 의기소침해진 탓인가. 최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삼성하우젠컵 제주 유나이티드 대 울산 현대의 경기를 지켜본 관중이 고작 1천1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와 구단 관계자를 제외하면 1천명도 안 된다. 경기장 좌석수가 4만여개라면 관중없는 경기를 치른 셈이다. 앞으로 열릴 각종 축구경기장에서도 어쩌면 국내 경기는 여전히 푸대접을 받을 지 모른다. 축구는 월드컵이 아니면 응원할 맛이 없다는 것인가.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 탓인가. 그런데 ‘붉은 악마’에 대한 문제가 또 제기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 전부터 한국 축구 서포터즈의 명칭 ‘붉은 악마’의 부적합을 끊임없이 지적해온 종교계,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종순 목사가 “4천800만 한국인이 붉은 악마라고 하는데, 기독교인은 붉은 악마가 아니다. 우리는 악마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불교계의 송월주 전 총무원장도 “마땅치 않은 명칭이다. 축구협회나 정부 당국도 서포터즈들을 설득해 명칭을 변경해야 하는데 방치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기독교 사회인 유럽에선 특히 악마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래서 독일의 한국인 교포들은 ‘붉은 악마’라는 명칭 대신 ‘붉은 호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축구서포터즈 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유럽 국가 벨기에의 ‘붉은 악마’라는 명칭 ‘디아블르 루즈’는 악마라기보다 ‘악동’이라는 의미에 가까워 직접 ‘악마(Devil)’란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응원단의 자율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탄’을 뜻하는 ‘악마’ 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변경했으면 나을 듯 싶다. ‘붉은 천사’라는 말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축구 응원단의 함성이 국내의 경기장을 예전처럼 뜨겁게 울렸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농협 송죽동지점

은행은 돈 있는 특별한 사람만 드나드는 곳으로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이에 비하면 지금의 은행은 대중 창구다. 신용시대가 열리면서 여신도 많아지고 은행거래가 보편화하면서 수신도 많아졌다. 은행 고객의 저축이 늘어 이 돈이 산업자본으로 나가는 것이 건강한 자금의 흐름이다. 이래야 사람사는 사회 형편이 점점 나아진다. 은행통장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하나만도 아니다. 보통 몇 개씩 지녔다. 그중엔 돈이 들어오면 나가기가 바쁜 실속없는 통장도 있지만, 아무튼 통장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 출입도 잦다. 하다못해 각종 공과금을 내기 위해서도 은행을 가야할 때가 많다. 현대생활은 곧 은행생활이라고 할만큼 은행과 일상의 접촉이 잦다. 은행 또한 참 많다. 어느 은행 할 것 없이 다 고객제일주의다. 이런 가운데 농협(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을 뿌리로 한 점에서 각별하다. 농협은 농협자금을 ‘민족자본’이라고 한다. 사실은 ‘국민자본’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한 명칭의 K은행이 있어 ‘민족자본’이라고 한 것 같다. 틀린말이 아니다. 농협경기지역본부송죽동지점이 농협중앙회 전국 점포 가운데 최우수 CS컨설팅 점포로 뽑혔다는 본지 보도가 있었다. 고객 만족을 위한 서비스 제고가 전국에서 으뜸인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들어서면 웬지 좋았던 점포 분위기가 그같은 노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들 말하는 손님이 많다. 손님마다 일을 챙기는 자세가 먼저 알아서 해주고자 하는 직원들 친절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최민호 지점장은 틈만 나면 손님들 객장 가운데서 돌볼 일을 찾는 시간이 많아 고객이 심지어 지점장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금융개방이 거론될만큼 금융업 또한 무한서비스 시대로 치닫고 있다. 다각적 고객 만족의 추구는 건전한 금융점포로 가고, 건전한 금융점포는 건강한 자금 흐름의 첨병이다. 농협송죽동지점의 최우수 CS컨설팅 점포 선정은 이래서 더 돋보인다. / 임양은 주필

태풍 에위니아

비구름을 동반한 태풍 에위니아가 제주에서 내륙까지 휩쓸고 갔다. 어제 영·호남 지역을 특히 강타한 초속 38㎧의 에위니아는 남해에 최고 280㎜의 폭우를 쏟았다. 이밖의 영·호남엔 최소 120㎜이상의 비를 내렸다. 전남 여수 앞바다에선 선박 컨테이너 135개가 수장되고 제주도는 초등학교가 전면 휴교하고 전남에서도 70개 학교가 휴교했다. 국내선 항공편이 전면 결항한 가운데 101개 항로의 여객선 운항이 전면 통제됐다. 경북 상주의 산간 계곡에선 급류에 휘말려 한꺼번에 2명이 숨지는 등 영·호남에서만도 계곡 급류에 익사하거나 실종된 피해자가 7명에 이른다. 저지대 곳곳의 농경지 수천㏊가 물에 잠기고, 전남 고흥군 도양면 일원이 침수로 한동안 고립되는 등 도시 농어촌 여러 지역의 수백가구가 침수소동을 빚었다. 마을이나 학교의 뒷산 절개지 또는 야산이 무너져 토사가 덮치고 국도변의 산사태로 교통이 두절되기도 했다. 태풍으로 가로수가 부러지거나 뿌리가 드러난 채 쓰러진 가운데 전주가 넘어져 2천여가구가 정전의 고통을 겪은 곳도 있다. 빗길 교통사고 또한 많아 경남 진주에서 시내버스가 남강으로 굴러 떨어졌으나 다행히도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태풍 에위니아의 인명피해와 재난피해 집계가 앞으로 상당히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태풍은 불가피한 여름철의 불청객이다. 여름철 때가 되면 태풍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은 연례적 일상의 생활이지만, 대비를 게을리했거나 생각이 미치지 못해 대비를 못하면 천재가 아닌 인재를 당하곤 하는 것이 태풍 피해다. 평소, 아니 평생 공들인 재산을 일시에 잃는 것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목숨을 잃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이다. 에위니아는 오늘 새벽 한반도를 빠져나가면서 경기·인천 지역에도 남쪽지방 같진 않지만 피해를 냈다. 에위니아는 사라졌으나 태풍은 오는 초가을까지 몇 차례 또 온다. 더 큰 태풍이 올 수도 있다. 이번의 에위니아를 교훈삼아 대비에 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도·시군이 앞장서야 한다. / 임양은 주필

안보 경각심

이번 북의 미사일 발사 당시 가장 심각하게 여겨야 할 남쪽 사회가 너무 이완됐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다못해 일본 사회보다 긴장감이 덜했다는 것이다. 딴은 그렇다. 미사일 보도에도 불구하고 바캉스도 여전하고 해외 나들이도 여전했다. 그동안 북에 갖다준 게 얼만데 설마한들 전쟁이야 일으키겠느냐 하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6·25전쟁 발발 당시도 그랬다. 1950년 6월25일 새벽에 인민군대가 일제히 남침한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이날 오전 국군 헌병대 지프가 한강에 나와 확성기로 외쳤다. “괴뢰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했으니 외출중인 장병들은 빨리 원대복귀하라! 원대복귀하라!!”고 했다. 물론 서울시민들도 확성기소릴 들었다. 그러나 태무심하고 여전히 보트놀이를 즐겼다. 설마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사흘뒤 폭파된 한강 인도교가 피난민 인파에 밀려 강물로 떨어져 죽는 주검의 사태를 이룰 줄은 꿈에도 상상못했던 것이다. 북의 이중플레이 역시 6·25 때와 비슷하다. 6·25를 일으키기 직전 북측은 체포된 남파 거물간첩 김삼룡 이주하와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된 민족주의자 조만식 선생과의 신병 교환을 제의해왔다. 이번 또한 북측은 미사일을 쏘기에 앞서 군사회담 연락장교회의를 제의해온 것이 3일 낮 12시5분이다. 연락장교의 만남을 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갖자는 것이었다. 그래놓고는 5일 새벽에 미사일을 7기나 쏘아댔다. 6·25 포화로 불 밝히고, 동시다발의 미사일 불꽃으로 불 밝힌 것도 다 새벽이다. 만약 그 중 단 하나의 미사일이라도 남쪽에 떨어지면 그 피해가 가공할만 하다. ‘불바다를 만든다’는 저들의 위협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동족에게 차마 그럴리가 있겠느냐는 설마의 믿음이 있을지 모르지만,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들이댄 6·25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미사일을 쏘아댄 사람들이다. 국가 안보는 100%를 추구하여야 한다. 단 1%의 누수가 99%를 무너뜨리는 재앙이 될 수가 있다. 안보 경각심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임양은 주필

문제점 많은 학교급식법

이르면 내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될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6월30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알맹이가 많이 빠졌다. 학교급식 개선 요구가 2001년부터 제기돼온 사실을 생각하면 최근 발생한 수도권 일대 대규모 급식사고가 오히려 정치권을 움직인 ‘효자 노릇’을 한 셈이다. 학교급식법 중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농산어촌(도서벽지 포함)에 있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급식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좋다. 문제는 지자체가 학교급식을 교육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의지가 없으면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지원을 안할 수도 있는 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직영급식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한 것도 그렇다. 교장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점에서 막상 닥치면 기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농산물 의무 사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품질이 우수한 농산물’로 규정한 것은 농민의 고충을 외면한 처사다. 농약을 많이 살포한 뒤 코팅처리 등을 통해 싱싱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값싼 수입 농산물이 우수 농산물로 둔갑할 우려가 적지 않다. 우수 농산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고, 유전자변형 농수산물의 표시를 거짓으로 기재한 식재료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처벌키로 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유전자변형 농수산물의 경우 표시를 거짓으로 할 때만 처벌키로 했을 뿐, 안정성이 크게 의심되는 유전자변형 농수산물 사용에는 아무런 제재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부모 단체에 의한 위생급식 감시 활동을 ‘의무사항’으로 하지 않고 ‘권장사항’으로 한 규정 역시 미약하다. 학교급식법을 재개정, 우리 농산물 사용 의무화를 명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재개정이 어려울 경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한 것과 같은 정도의 대책은 가능하지 않나 싶다. 또 생산자단체가 우수 농산물을 인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국산 농산물이 학교급식 식재료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할 만한 일이다. 세계 최대 농업강국인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 농산물 수입 급증 외에도 농촌 붕괴와 식품 안정성 훼손 등 2·3차 피해가 ‘도미노’처럼 발생한다. 학교급식법에서 조차 농업을 무시하면 농민들은 정말 살 길이 막막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엄포 미사일

북한이 5일 새벽 3시32분부터 8시17분까지 동해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와 중거리인 ‘스커드’, ‘노동’ 미사일 등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엄포의도가 다분하다. 발사 시점을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춘 이유도 미국 등 국제사회를 향한 무력시위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지난 5월 초부터 미사일 발사 준비를 시작했지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능력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이 많았다. 특히 미사일 발사가 미뤄지면서 “결국 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실패’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번 발사를 통해 자신들의 미사일 능력이 ‘실제 상황’이란 것을 과시한 셈이다. 물론 미국을 미·북 양자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계산도 담겨 있다. 핵·미사일 등 안보 현안을 풀려면 미·북 양자 협상에 응하라는 취지였다. 위기 상황을 만들어 협상으로 이끄는 것은 북한이 상용해 온 수법이다.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해 1년 뒤 미·북 협상에서 타협을 이끌어냈었다. 북한이 5일 새벽 6발 발사 후 오후에 추가로 1발을 발사한 까닭은 미국이 오전의 미사일 발사를 ‘실패’로 규정하자 이에 대한 반발성 대응차원으로 보인다. 또 국제사회의 규탄에 전혀 기죽거나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미사일 시험 발사를 규제할 국제적 장치도 없는 상태다. 특히 일본이 이날 만경봉호의 입항을 금지하자 ‘일본은 북한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엄포용으로도 생각된다. 실제로 일본은 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만경봉호 입항금지, 인적교류 제한, 일·북 전세항공기 취항 금지 등 9개항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동했다. 앞으로의 문제는 추가 발사 조짐이다. 북한은 “정상적인 군사 훈련에 시비를 걸거나 압력을 가하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분명히 공언했다. 이미 발사장에 ‘노동’ ‘스커드’ 등 중·단거리 미사일 3~4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추가 발사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미사일을 인공위성이라고 우긴 정부라서 믿어지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인의 對美감정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눈에 대한 명칭이 23개 있는 것처럼 한국에는 미국에 대한 8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미국 뉴욕의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외교관계위원회(CFR)의 남미 담당 이사인 줄리아 스웨이그가 그녀의 저서 ‘아군을 향한 오발(Friendly Fire) : 반미의 세기에 친구 잃고 적 만들기’에서 한 말이다. 스웨이그는 “한국에는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와 숭배하는 ‘숭미’뿐 아니라 혐오하는 ‘혐미(嫌美)’, 찬성하는 ‘찬미’, 연대하는 ‘연미(聯美)’, 이용하는 ‘용미(用美)’, 저항하는 ‘항미’, 비판하는 ‘비미’ 등 8개 단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스웨이그는 한국내 반미감정의 역사적 배경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필리핀 강점에 대한 일본의 묵인을 대가로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인정한 것과 한반도에 군사분계선을 그어 놓은 미·소 얄타회담, 미국의 젊은 대통령들에 의한 분할통치 제안, 반탁시위 등을 들었다. 스웨이그의 지적은 정확하다. 미군의 한국전쟁 참전이 구세대에게는 보은의 감정을 품게 했지만 전후 분단 상황과 미군의 주둔은 적대감으로 연결됐으며, 이는 ‘독립’을 이루지 못한 좌절감이 반미감정으로 나타났다. 특히 1980년 당시 군부 지도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한미연합사령부 책임 장교에게 사전 통지 없이 광주로 병력을 이동시킨 뒤 이를 마치 미국이 승인하고 대량 학살을 묵인한 것처럼 한국인들을 오도했다.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미 감정은 가라앉는 듯 했지만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 노근리 사건, 여중생 사망사건, 북핵위기를 둘러싼 한·미 공조 마찰 등으로 더 심화됐다. 미국의 군사력 등 하드파워는 강해지고 있으나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는 매력, 즉 소프트 파워가 약해지고 있는 사실을 반미 원인으로 꼽은 스웨이그의 분석력이 돋보인다. 미국에 대한 극단적인 반미와 친미, 숭미는 있을 수 없다. 용미, 연미가 있을 뿐이다. 1880년 8월 동북아의 격동 속에서 조선이 생존을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일 청나라 공사 하여장(何如璋)이 부하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을 통해 권고한 “중국과 친하게 지내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이으라(聯美國)”는 내용이 생각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조남철 9단

“조남철이 와도 못 산다!”고 했다. 아마바둑 얘기다. 상대의 대마를 더는 꼼짝달삭 못하게 잡아놓은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발버둥 칠 때 던지는 회심의 한 마디가 “조남철이 와도 못산다!”는 말이었다. 조남철 9단은 그만큼 한국 바둑의 상징이었다. 국수자릴 10년간 지키기도 했다. 국내 프로 바둑은 조남철-김인-조훈현 시대를 거쳐 이창호 시대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땐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등 ‘바둑4인방’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이세돌·최철한·박정상 등 신예가 이창호 시대 후반을 간단없이 위협하고 있다. 조남철 9단은 국내 현대 바둑의 선구자다. 1945년 광복 전후 한성기원설립을 시작으로 오늘의 재단법인 한국기원이 있기까지 외곬 바둑인생으로 일관한 개척자다. 바둑 용어에도 일제 잔재가 남아 예컨대 ‘우떼가시’라고 하던 것을 ‘환격’(還擊)으로 고치는 등 우리말로 바꿨는가 하면, ‘끊으면 뻗으라’는 등 바둑격언을 만들기도 하고 이밖의 무한한 반상 변화에 통설의 이론적 체계를 확립했다. 지금은 입신(入神)이라고 하는 9단 승단이 조훈현의 제1호 9단을 시작으로 꽤나 많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손꼽을 정도였다. 그 무렵 8단이었던 그는 자신이 만든 까다로운 승단 규정을 지켜 20년동안 8단에 머물러 있었다. 후배 9단들이 자동 9단 승단을 수차 주청했으나 규정을 어겨선 안 된다며 끝내 거부하여 한국기원은 할 수 없이 명예 9단으로 추대해 간신히 수락을 받아냈다. 사실상 은퇴 상태였던 때 명예 9단이 된 조남철 9단은 가끔 한국기원에 들러서도 미소만 띤 채 말이 별로 없어 ‘신선’이란 말을 들었다. 노환으로 지난 2일 여든셋을 일기로 세상을 뜬 그가 오늘 9시 서울 삼성병원에서 한국기원장으로 가진 영결식에 이어 선계로 떠났다.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한 바둑의 이치인 것처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스스로를 절제해 보인 분이다. “조남철이 와도 못산다!”고 했던 말은 조남철시대가 지나고도 한참동안 있었다. 바둑의 올드 팬들은 아직도 기억하는 신화다./ 임양은 주필

독일월드컵 오심

독일월드컵도 이제 막바지다. 내일 모레 이틀동안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와 포르투갈 등 4강팀 준결승전이 벌어진다. 세계 최강인 브라질이 프랑스에게 0-1로 덜미를 잡히는 등 남미축구가 8강서 모두 탈락해 유럽축구의 독무대가 됐다. 이변인 건 포르투갈이 4강에 진입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2002년 대회때 우리에게 졌다. 박지성이 가한 회심의 일격으로 격침됐다. 이탈리아 역시 안정환의 골든볼로 패배를 안겼다. 이번 대회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른 프랑스는 G조 예선에서 우리와 1-1로 비겼던 상대다. 그런데 우리는 16강 진출을 좌절당했다. 독일월드컵이 ‘오심월드컵’으로 한동안 논란이 됐다. G조 예선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와의 대전에서 우린 부심이 선언한 오프사이드가 무시된 채 득점으로 인정되는 주심의 횡포를 겪었다. 호주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종료 3초전 상대에게 억울하게 허용한 페널티킥 성공으로 8강 진출이 꺾였다. 그러나 주심의 페널티킥 판정은 비디오 판독에서 오심으로 나타났다. 호주 수비수의 태클은 정당한 것이었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비유럽권 국가들 사이에는 유럽권에 비해 불리한 판정이 많다는 불만이 파다했다. 베켄바워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도 “심판이 월드컵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며 주심들의 잦은 오심을 간접으로 꼬집었다. 그런데 비디오 판독으로 나타난 오심이 번복되지 않은 건 FIFA가 비디오 판독을 원천적으로 인정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 금지는 경기의 스피드와 박진감을 줄이고 진행에 지장이 있는 이유도 있지만 FIFA의 보수성이다. 판정을 기계보다 인간에 의존한다. 판정 실수도 축구의 일부라고도 한다. 다만 오심이 현저한 심판은 자질 문제가 제기되어 경기 배정에 불이익을 받기는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가 없을 순 없겠지만 이로인해 영향받는 팀은 정말 죽을 맛인 것이다. 고의적 실수 같으면 더 기막히는 일이다. 남은 준결승전, 결승전의 심판 판정을 주목하는 것도 중계방송 관전의 포인트가 된다./ 임양은 주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는 다 같은 민선 4기의 출발이 아니다. 합중국 연방주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는 특별한 광역자치단체다.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한 특별자치는 외교·국방을 제외한 중앙행정의 권한을 행사한다. 이를 위해 144개 분야에 걸친 1천62건의 권한을 이양받았다. 몇 몇가지 예를 든다. 자치경찰제가 실시되고 법률안제출 요청권을 갖는다. 공·사립 초·중·고교 과정의 자율학교 설립이 가능하고 국제고의 내·외국인 입학이 전면 허용된다. 외국인 대학 및 병원 설립 또한 개방된다. 외국인 카지노가 허가되고 무비자 입국이 확대된다. 투자진흥지구의 기업은 지방세가 10년간 100% 감면된다. 특별자치의 특별한 대목은 이밖에도 많다. 제주도를 싱가포르나 홍콩 등과 같은 전략적 거점지역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특별자치의 목적이다. 싱가포르는 교역물류 및 금융부문의 동남아 비지니스, 홍콩은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 거점도시로 도약한데 비해 제주도는 관광·교육·의료 1차산업, 첨단산업 등의 육성도시로 브랜드화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특별자치에 앞서 지난해 7월 주민투표를 통해 기초자치단체를 폐지, 제주도를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하는 행정구조 개편을 선택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없지 않다. 우선 재정자립도 제고가 당면 과제다. 중앙의 통제하에 있는 여객선 및 공항출입국 사무와의 원활한 연계도 모색돼야 할 숙제다. 하지만 내륙의 일반자치에 비하면 특별자치는 엄청난 변화다. 자치단체가 지방비로 인건비를 주면서 행자부에 공무원 정원, 기구 등을 승인받아야 하는데 비해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체 권한으로 다 해결한다. 지방자치 본연의 개념으로는 국내 16개 시·도가 다 제주특별자치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 옳다. 언젠가는 이토록 달라져야 한다. 특별자치로 말하면 ‘경기특별도’ 설이 있었는 데 감감해졌다. ‘경기특별도’ 제정 역시 전문적 검토와 추진을 능히 고려할 만 하다. / 임양은 주필

옛날 어린이

‘어깨동무’는 어린이들이 나란히 걸어갈 때 서로 팔을 올려서 어깨를 겯는 행위다. 서로의 친밀을 나타내기도 하고 협동·단결을 상징한다. 학교에 오가거나 들길을 걸을 때 곧잘 한다. 어깨동무를 하여 걸을 때에는 행진곡조의 여러가지 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맞추어 나간다. 특히 ‘어깨동무 내동무’는 전승노래로 널리 분포돼 있다. “어깨동무 깨동무 / 미나리밭에 / 깨반찬”, “어깨동무 내동무 / 싸리밭에 / 깨동무”하거나 “각씨 어디 가데 / 신랑 따라 가더라 / 신랑 어디 가데 / 각씨 따라 가더라 / 실 어디 가데 / 바늘 따라 가더라 / 바늘 어디 가데 / 실 따라 가더라 ”하는 노래를 부른다. 어깨동무는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우정의 상징이다. 노래를 부르며 걸을 때에는 자신들은 물론 보는 사람들까지도 즐거운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정경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골목길을 누비는 어린이들의 음악대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동네 어귀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모습은 멋지다. ‘어린음악대’라는 동요는 듣기 좋고 재밌다. 김성도(金聖道)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 / 따따따 따따다 나팔붑니다 / 우리들은 어린음악대 /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 // 쿵작작 쿵작작 둥근차돌로 / 쿵작작 북을 칩니다 / 구경꾼은 모여드는데 / 어른들은 하나 없지요” 예닐곱 명의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의 모자나 운동모자를 쓰고 동네를 활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멋진 음악대가 보이지 않는다. 몇십년 전만 해도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올 때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여자 애들은 새침데기여서 남자애들과는 어깨동무를 거의 하지 않으려 했다. 여자애들끼리만 어깨동무를 하였다.주먹손으로 나팔을 불고 둥근차돌로 북을 치며 동네를 돌아 다닐 때에도 여자애들은 구경꾼처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동요 노랫말에는 “구경꾼은 모여드는데 / 어른들을 하나 없지요”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어린이들도 옛날 어린이들처럼 씩씩한 개구쟁이였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어린이 신문

어린이신문은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교육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시사적인 기사는 어린이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데 안내 역할을 한다. 오늘날 청소년들 가운데 상당수는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신문을 구독한 추억이 많을 터이다. 어린이신문은 만화를 읽으며 깔깔대며 웃게 만들고 퀴즈나 낱말 맞추기를 통해 상식의 탑을 높게 쌓아준다. 동시·동화 발표란이 있어 어린이들에게 문학적 소양도 길러 준다.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에 참가하여 입상했거나 어린이신문 또는 일반신문 어린이면에 동시와 산문을 발표한 것이 좋은 계기가 돼 문인이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어린이신문들은 나름대로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달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학교에서 특정매체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게 하거나 교육활동에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문제점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학교에서 구독하고 있는 학생은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구독하도록 하라”는 지침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이 “교육부가 공문까지 동원해 구독여부를 간섭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을 통한 교육’(NIE)의 중요성을 모르는 처사”라며 “어린이 수준에 맞게 사회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봉쇄하겠다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는 교원단체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반강제적인 구독이라면 학부모에게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자녀가 둘 이상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가정의 경우, 같은 신문을 2부 이상 볼 수도 있다. 알아보건대 학교가 학생들에게 신문을 강제로 구독하도록 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설령 교육적인 가치가 있어 구독을 해야 한다 하더라도 전교생이 모두 구독한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학교운영위의 결정이라고 하여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어린이신문이건 일반신문이건 자율적으로 선택, 구독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이다. 어린이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문제점을 대화로 풀어나가기 바란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책개발비

국회의원들은 ‘입법지원 및 정책개발비’ 제도에 따라 의정 보조금인 ‘정책개발비’를 받는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매년 100억원에 이른다.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도움이 되는 공청회와 세미나 비용을 사후 보전해주는 제도다. 자료 발간비, 초청장 인쇄비, 전문가 사례금, 물품 구입비, 주차료 등 일반 수용비와 접대비, 연회비, 교통비, 숙박비 등 일반 업무비와 특수 활동비가 여기에 쓰인다. 1인당 2천12만원의 정책개발비를 주는데 670만원씩 두 차례 추가 지원도 가능하다. 또 두 번의 성과보수 경비 제도가 있어 600만원씩 더 지원받는다. 예산이 남을 경우엔 계속해서 추가지원 기회가 생겨 상한선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 정책개발비가 본래의 목적과 달리 오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애초 취지와 달리 정치 행사 경비, 식대 등 개인적으로 사용되는 모양된다. 물론 건실한 의정 활동과 투명한 경비 사용 등으로 높은 의정 평가를 받고 있는 의원들도 많다. 그러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의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간과할 수 없는 ‘도덕적 해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책개발비 사용에 따른 제도적 미비이다. 집행 기준이 모호하고 검증 시스템이 없다. 후원금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책개발비의 집행 범위가 광범위해 오용 가능성이나 유혹성이 없지 않다. 국회예산에서 자체 지원됨으로써 정치자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점도 잘못됐다. 선의의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위해 정책개발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입법기관으로서 스스로 법을 지키고 행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이 정작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규제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 더 많은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인사들이 주로 정치인들이다. 입만 열면 개혁과 변화를 외친다. 개혁과 변화의 우선 대상이 특히 정치인들인데 막대한 세비는 물론 각종 특혜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 세금을 ‘눈먼 돈’이나 정치후원금으로 여기는 것은 중병(重病)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급식사고

학교가 도대체 학생을 위하는 건지 업체를 위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제 본지에 보도된 동두천 D여중과 성남 H고가 집단식중독사고를 둘러싸고 보인 행태가 이러하다. D여중은 80여 명의 학생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지 8일이 지난 23일에야 교육청과 보건소에 보고했다니, 역학조사를 어렵게 만들어 일부러 은폐를 시도했다는 지적이 있을만 하다. 더욱이 이날 위탁급식된 순대야채볶음과 돼지떡갈비 등은 식자재를 삼성에버랜드가 공급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주목할만 하다. H고교는 19일 40여 명의 학생이 일으킨 식중독의 식자재가 CJ에서 공급된 사실을 학교측이나 급식업체에서 보고치 않은 것은 도시 이해가 안 된다. 학교급식의 집단식중독사고는 매우 불행한 현상이다. 그러나 선도 높은 식자재와 조리과정의 청결만 유지하면 있을 수 없는 것이 식중독 사고다. 이를 위한 예방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런데도 집단식중독이 발생한 것은 이도 일종의 후진국형 사고다. 잘못된 의식이 이런 사고를 유발시킨다. 급식업체나 식자재 납품업자의 의식도 문제지만 누구보다 학교가 잘 해야 된다. 만일의 경우에 발생되는 학교급식의 집단식중독은 학교가 문제의 시발점이면서 종착지다.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딱 두 가지다. 식중독 환자를 한시 바삐 병원에 옮겨 치료받도록 하면서 소상한 사고 전말을 관련 당국에 신속히 보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우물쭈물 하거나 보고에 누락사항이 있으면 사태 수습은 더 어려워진다. 학교가 학생을 위한다면 이에 소홀함이 있을 수 없다. 이번 집단식중독사고를 계기로 위탁급식이 아닌 학교 직영급식이 거론되기도 한다. 일장일단이 있어 어떤 게 절대적으로 좋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그런데 위탁급식에서 일어난 집단식중독을 일부 학교가 ‘쉬쉬’한 경향을 보면서, 학교 직영급식에서 생긴 사고인들 더 그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개운찮다./ 임양은 주필

‘검사와 여선생’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인정비화는 점심에서 시작된다. 이 초등학교 여선생은 제자 장손이가 집이 가난하여 점심때면 굶는것을 알고 자신이 싸온 밥을 주게 되면서 각별한 사제간이 된다. 여선생의 격려와 보살핌을 받은 제자는 장성하여 검사가 됐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선생이 살인범으로 체포된 신문 보도를 본 제자는 사표를 내고 스승의 변호사로 나선다. 여교사는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한 게 망나니 같은 남편을 잘못만나, 한날 술취한 남편이 아내를 죽인다며 칼을 들고 문지방을 넘다가 넘어지면서 제풀에 찔려 죽은 것을 살인혐의를 뒤집어 쓴 것이다. 이에 제자는 은사의 누명을 천신만고 끝에 벗겨 마침내 무죄석방되는 장면에 이르러 “아! 청명한 하늘을 다시 보게 됐으니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 어찌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더란 말인가!!” 하는 변사의 대사에 그만 눈물을 글썽거린 관객들은 우레같은 박수를 터뜨리곤 했다. 지금은 도시락이라고 하지만 일제문화의 잔재로 그 땐 ‘벤또’라고 했다. 도시락은 고리버들 등으로 길고 둥굴게 엮어 만든 점심밥을 담는 그릇으로 시골에서 산에 나무하러 갈 때 많이 싸갔다. 알루미늄 제품인 ‘벤또’는 학생들이 학교가면서 그리고 월급쟁이는 직장가면서 점심밥을 싸갔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때라 주부들이 아침이면 부엌아궁이 가마솥에서 남편과 아이들 ‘벤또’를 겹겹이 쌓아놓고 담는 것이 큰 일과였다. 퇴근길이나 하교길엔 가방이나 책보속의 빈 ‘벤또’ 반찬통이 어쩌다가 뛰기나 하면 딸그락 소릴 내기 일쑤였다. 지금은 도시락이라고 해도 고리버들짝도 아니고 ‘벤또’는 더욱 아니다. 보온밥통에 식수까지 담아가는 첨단 도시락이지만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도시락을 싸가는 일은 없다. 학생은 학교나 외부의 급식을 이용하고 직장인들은 대개가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그런데 급식업체의 대형 식중독사고로 많은 학생들이 급식대란을 겪고 있다. 사고의 원인 조사와 더불어 이런 저런 대책을 강구하려면 한 두달은 가야할 모양이다. 다시 보온밥통 도시락이라도 싸가는 학생은 괜찮겠지만 문제는 급식이 끊기면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다. 신파극의 인정가화 ‘검사와 여선생’이 이래서 새삼 생각난다./ 임양은 주필

꼴불견 ‘○정인수위’

관선단체장시절엔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바뀌어도 업무 인계인수가 간단했다. 도정이나 시군정 현황 문건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냈다. 민선단체장이 시작되고도 처음에는 당선자측의 ‘인수위원회’구성이 없었다.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시작된 것이 지방자치 단체장에까지 유행된 단초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할 것 없이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에 업무를 소상히 파악하려는 의욕은 좋다. 그런데 이런 본연의 관점과는 먼 다른 잡음이 적잖다. ‘○정인수위’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도청 및 시군청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높다. “도대체 인수위의 역할은 무엇이며,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인수위’란 사람들이 마치 감사하듯이 따지고 자료 제출을 명령하다시피 한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정말 꼴불견이다. 이같은 행태는 업무 인계인수의 한계를 일탈한 월권이다. ‘인수위’란 것이 법률적 기구도 아니다. 당선자 편의에 따라 임의로 만든 기구의 민간인이 당선자 하나를 믿고 공무원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는 것은 ‘호가호위’의 망발이다. 더 더욱 웃기는 것은 ‘인수위’의 시책 남발이다. ‘인수위’는 업무 인수 기구일 뿐 당선자의 새로운 시책 제조기구가 아니다. 업무 인수를 위한 현황 청취에 그친 단견으로 ‘뭣은 어떻고 무엇은 어떻게한다’는 식으로 당선자도 아닌 인수위 측근들이 중구난방으로 외쳐대는 것은 그 자치단체에 몸 담아왔던 공무원들이 보기엔 정말 가관인 것이다. ‘인수위’를 보면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망발이 생각되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당시 자고나면 새로운 정책이 몇 가지씩 거의 날마다 쏟아졌지만 임기 중반이 넘도록 국정은 엉망이다. 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은 지각없는 ‘인수위’의 월권이나 부도에 그칠 시책 발표의 어음 남발은 지금이라도 자제토록 엄중 조치해야 할 것이다. / 임양은 주필

법제사법위원회

국회가 후반기 원 구성을 하면서 형사재판에 계류 중인 박성범(무소속)·김명주(한나라당)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배정한 것은 가당치 않다. 법원과 검찰측이 반발하는 것은 백번 타당하다. 국회 법사위는 법률안의 심사와 법무부·법원 사법 행정 등에 관한 사항을 다루는 상임위원회다. 국민을 대신해 법원과 검찰을 견제·감시하는 곳이다. 해당 기관에 자료를 요구하고, 간부들을 불러 따져야 한다. 물론 국정감사도 한다. 박성범 의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중구청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 명품 모피코트 등 1천400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및 선거법 위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명주 의원은 경남 고성군수 출마 희망자에게서 사무실 전세보증금 2천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정식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설령 나중에 무혐의로 판결난다 하더라도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들이 법원 관련 법안을 심의하는 법사위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다. 더구나 올 가을에 있을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들이 감사 증언대에 서야 하는데 비리로 기소된 의원의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김 두 의원의 법사위 배정은 개정된 국회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개정 국회법(제40조 2)은 “상임위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을 받는 것 역시 법사위의 직무와 관련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박 의원의 경우 “내 사건과 관련해 상임위 관련 부처에 부담을 안 주는 정도의 양식은 있는 사람”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치도의상, 국민정서상 받아 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무소속인 박 의원을 상임위에 배정한 의장단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박 의원을 한나라당 소속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임시국회부터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지원자가 극소수여서 열린우리당은 8명을 모두 ‘강제 배정’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판 중인 의원을 법사위에 넣을 수는 없다. 해당 의원들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의장단과 한나라당이 속히 재조정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수도권 대통합론’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경제 5단체의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 완화 건의’에 대해 정부가 ‘수용하기 어렵다’는 종래의 의견을 밝힌 것은 김문수 경기지사 당선자를 비롯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시·도지사 당선자들이 제시한 ‘수도권 대통합론’도 반대한 셈이다. 수도권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허용할 경우 과밀 현상을 부추기고 그동안 추진해온 지방 균형발전 정책에 어긋난다고 되풀이했다. ‘수도권 대통합론’과 유사한 정책은 과거에도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 김문수 당선자가 당위성과 함께 해법을 제시했으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 그 점이 아쉽다. 수도권 대통합론이 수도권만 잘 살고 지방은 죽으라는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실 서울은 대부분 발전했지만 수도권 특히 경기도는 낙후한 곳도, 과밀한 곳도 많아 나눠서 골고루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합은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건대 경기도 전체를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적으로 규제하거나 대학·공장의 신설을 막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근시안적 정책이다. 수도권에 공장 신설을 막는다고 해서 수도권에 투자하려던 기업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음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수도권 규제 정책이 지방경제를 발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 기업들을 중국·인도·베트남 등 해외로 내쫓은 결과를 빚었다. “수도권 공화국화를 추진하는 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수도권 간 연대를 통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지원과 충청권 광역교통망 체계 구축 등을 위해 대전시장·충남지사·충북지사 당선자들이 출범시키겠다는 ‘충청권정책협의회’를 만일 수도권이 반대한다면 어쩌겠는가. 정부의 큰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의 경제력 제고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기업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경제 5단체의 수도권 공장입지 완화 건의는 ‘수도권 대통합론’과 그 맥을 같이하는 국론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는 아무래도 물 건너 간 듯 싶기도 하다. 잘못되면 수도권-비수도권으로 갈려 분쟁만 거세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무공훈장

육군의 한국전쟁 무공훈장은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의 5등급이 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킨 전쟁 영웅들의 무공훈장 9만여 개가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은 전공을 세운 장병 16만2천여 명에게 훈장 ‘가수여증’과 ‘약장’을 발부했지만 실제 발급된 훈장은 7만3천여 개 뿐이다. 육군이 전후 8차례나 무공훈장 찾아 주기 운동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9만여 장의 훈장증서가 주인을 잃은 채 빛을 못 보고 있다고 한다. 호국의 징표는 소용돌이치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대부분 주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훈장증이 나온 줄 모르고 전역하거나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된 사이에 훈장증이 나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례로 82세가 된 천영길씨의 경우,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 입대한 뒤 30여 차례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무공훈장 수훈자란 사실을 모른 채 전역했다. 육군이 뒤늦게 노병의 전공을 확인하고 올해 4월 화랑무공훈장을 전달했다. 양구 전투에서 적의 포탄공격을 받아 입은 호국의 상처를 평생의 굴레로 안고 살았던 노병은 빛바랜 훈장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공병대 하사로 전쟁에 나갔던 김영환(75세)씨는 전후방 부대 교대과정에서 세운 전공으로 훈장수여자가 됐지만 척추부상을 입고 후방병원에서 전역하는 바람에 반세기 만인 지난달 뒤늦게 훈장을 찾을 수 있었다. 훈장 가수여증을 분실하는 바람에 전공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 훈장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공훈장이 유족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차정석씨는 한국전쟁 당시 1103 야전공병단에 배치돼 수 차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무공훈장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 채 평생을 살다 지난해 운명을 달리했지만 올해 3월 아들(61세)이 부친의 무공훈장을 대신 받았다.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가 유족도 없이 숨진 경우처럼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한 때는 훈장의 주인을 찾아 주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전사했더라도 유족들이 관련사실을 입증하면 훈장뿐 아니라 국가유공자로서 일정액의 보훈연금도 받을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더라도 무공훈장의 주인공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무공훈장 주인공들이 있어 지금 대한민국이 존립함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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