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

전어(錢魚)는 예로부터 ‘가을 물고기’로 유명했다. 전어를 ‘바다의 깨소금’으로 비유했다. 전어는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에 영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에 기름기가 흘러 회로 먹거나 소금구이, 무침 등으로 먹는다. 봄 전어가 지방함량이 2.4% 정도인데 가을 전어는 6%라고 한다. 전어를 구워 접시에 담으면 바닥에 흥건하게 기름이 고일 정도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가을 전어 대가리에 깨가 서 말’이라고 했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엔 ‘기름기가 많고 달콤하다’고 써 있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도 있다. 가을이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돈 생각도 않고 먹는다 해서 전어(錢魚)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몸길이 15~31㎝인 전어는 2, 3년 자라면 가장 맛있는 크기인 15㎝로 자란다. 몸매가 둥글고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서 싱싱하고 맛있는 전어다. 썰었을 때 살이 단단하면서 볼그스름한 빛이 감도는 게 좋다. 가을 전어는 맛도 좋지만 영양도 뛰어난 ‘웰빙 식품’이다. 불포화 지방산이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내고 뼈째로 먹기 때문에 칼슘 섭취에도 도움이 된다.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는 얘기다. 전어를 구워 먹을 경우 비늘을 긁지 않고 내장을 그대로 둔 채 소금을 뿌려 굽는다. 구이로 먹을 때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구우면 맛이 좋지만 회로 먹어야 영양파괴가 적다. 회로 먹으면 치매예방과 시력에 좋은 DHA, EPA 등 지방산을 그대로 먹게돼 좋다. 일부 지역에선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무쳐 즐겨 먹는다. 젓갈을 담그기도 하는데 전어새끼로 담근 것은 ‘엽삭젓’ 또는 ‘뒈미젓’이라 불리고 내장만을 모아 담근 것은 ‘전어 속젓’이라 한다. 내장 가운데 위만 골라 담은 것은 ‘전어 밤젓’ ‘돔배젓’이라 부르며 전라도에선 전어 깍두기를 담가 먹기도 한다. 요즘 전남 광양, 보성, 충남 서천 등에서 ‘전어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전어는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전어값이 금값이라지만 원래 이름이 ‘錢魚’ 아닌가. 친구들과 연인과 가을 속에서 마주 앉아 전어를 안주 삼아 소주 두어병 마시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운치있는 삶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간질

고향 친구 중 L은 간질을 비관하다가 20대 초반에 자살했다. 고교생 시절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던 L이 간질로 고생하는 걸 알고 친구들은 참 난감했다. 얼굴도 잘 생기고 활달해 여고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L이 간질 증세가 나타난 것은 고1 때라고 지지대子에게 고백했다. 비참한 자기 얘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말까지 했다. 여러 병원에 다니며 진료받고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 봤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호숫가의 물거품이 특효라고 하여 먹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무당한테 들었다면서 사람 해골에 고인 물을 먹으면 간질이 낫는다는 말을 하며 내 의중을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경찰 간부인 아버지의 전근지로 이사 간 후 L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간질은 한마디로 경련 증상이 여러 번 반복되는 질환이다. 인간의 뇌에는 전깃줄과 같은 신경세포가 수백억개가 모여 있는데 이 신경세포 중 일부가 합선되면 ‘스파크’가 일어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전기가 흐르게 된다. 결국 뇌는 전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뇌세포들이 흥분, 경련 발작이 일어난다. 간질은 주로 유전적 요인이 있거나 뇌에 생긴 이상 때문에 발생하지만 다른 병에 의해 뇌 기능 장애가 일어나 2차적으로 생기기도 한다. 과거엔 간질을 악령 혹은 신이 내린 천벌쯤으로 생각해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완치가 불가능한 정신질환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간질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는 중이다. 약물요법만으로도 특별한 뇌 손상없이 85%까지 경련발작을 억제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약물을 병용하는 방법으로 조절이 안 되는 난치성 간질의 경우에도 뇌수술을 통해 경련발작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간질을 앓았지만 시대를 뛰어 넘어 이름을 남긴 위인도 많다. 나폴레옹, 알렉산더, 소크라테스, 피타고르스, 반 고흐, 도스토예프스키, 단테, 헨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9월9일은 ‘귀의 날’이자 ‘자살예방의 날’ 이었지만 ‘간질의 날’이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간질을 비관하다가 끝내는 세상을 떠난 L의 얼굴이 생각난다. L의 부탁대로 소설을 써 그의 영전에 바치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일본의 복고풍

일본 열도는 태어난지 삼칠도 안 되는 갓난 왕손으로 아직도 들떠있다. 일본 아키히토 국왕의 둘째 며느리인 기코 왕자비가 아들을 낳은 도쿄 왕실병원에서 퇴원한 게 지난 15일이다. 퇴원길에도 출산 때와 같은 인파가 연도를 뒤덮었다. 일장기며 축하 피켓을 든 인파 중엔 기코 왕자비 내외가 탄 승용차가 지나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왕실에선 41년만에 태어난 아들이라 그렇다지만 왕손 출산을 나라의 큰 경사로 감격해하는 들뜬 정서가 지금도 요란하다. 아기는 큰아버지되는 나루히토와 아버지인 후미히토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이 세 번째다. 현 국왕은 두 아들에게 아들이, 그러니까 세손이 없어 왕실전범을 고쳐 큰 아들의 딸로 왕위 계승자를 삼으려다가 둘째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바람에 왕실전범 고치는 일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왕의 두 며느리는 왕실의 안정을 위해 여전히 더 많은 아들을 바라는 출산의 압력을 은근히 받고 있다. 이번에 아들을 낳은 기코 왕자비도, 아들을 못 낳은 마사코 왕세자비도 다 같은 처지다. 국왕의 큰 며느리인 마사코는 올해 마흔두살이고, 작은 며느리인 기코는 설흔아홉살이다. 아이를 더 갖기엔 좀 어려운 나인데도 왕실과 일본 사회는 아들의 출산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심 스트레스가 쌓인 큰 며느리는 지금 친정 부모가 있는 네덜란드로 여행 중이다. 일본의 나라꽃은 벚꽃이지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다. 국화가 새겨진 문양은 신성시 하는 것이 일본의 국민성이다. 일본 헌법의 국호는 ‘대일본제국’이다. 제국이긴 하지만 일본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왕실을 극진히 받드는 일본 국민들은 국왕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땐 죽은 히로히토 국왕을 ‘살아있는 신’(神)이라고도 했다. 갓난 왕손으로 열도가 열광하는 일본 국민들의 모습에서 일본의 복고풍을 발견한다. / 임양은 주필

김 지사의 실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14일 경기도자유회관에서 가진 경기도안보단체장협의회 초청 간담회 발언에 아직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날 협의회측은 김 지사에게 지자체 지원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인한 재정난 심화를 들어 지자체 소유의 공공건물 사용과 안보관련 행사를 위한 예산지원, 그리고 민방위교육에서 삭제된 안보교육 교과과목을 경기도만이라도 재편성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 지사의 답변은 동문서답이었다. “보수단체가 돈에 집착하면 정신으로 무장한 좌파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등 안보단체장들은 장황한 훈화만 들어야 했다. “뜨거운 마음으로 구국활동을 해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말들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문젠 이를 모르는 안보단체장들이 아니란 사실이다. 안보단체장들은 거의가 지역사회의 원로급 인사다. 나이로 보아서나 경험으로 보아서나 김 지사의 훈시를 들을 계제가 아니다.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말라’는 속담이 있다. 하물며 안보단체장들의 요구는 동냥도 아니고 쪽박도 아니다. 할만한 얘길 했다. 이에 예산지원 등을 하기 싫으면 거절하면 그만이지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장황한 말로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구는 안 들어줄망정 봉변을 주어선 안 되는 결례를 김 지사는 범했다. 그래도 여기까진 참고 봐줄만 하다. “평택 대추리의 대학생 시민단체 등은 국가예산이 아닌 자발적으로 일어나 미군 기지이전 반대운동을 펴고 있다”고 안보단체장들을 나무라듯이 말했다. 김 지사는 지난 6월 정부가 1억9천만원의 지원금을 범대위 소속 5개 단체에 지원키로 한 사실을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진 몰라도 실언이다. 그같은 지원에 대한 시비가 아니다. 김 지사의 실언이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행이 너무 가볍다’는 말을 항간으로부터 듣지만 그래도 도지사이기 때문에 처신에 신중을 촉구하는 것이다. 안보단체장협의회 초청 간담회 자리에서 보인 행태는 잘했다기 보단 해도 너무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양은 주필

이어도

제주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져 있는 수중바위 이어도는 전설의 섬이다. 제주지방의 선남선녀들이 집단 이주한 유토피아적 설화가 전래하기도 하고, 살기좋은 남쪽을 찾아 떠난 낭군이 돌아오지 않은 환상의 섬이기도 하다. 제주지방엔 이래서 구전된 전설에 엉킨 이어도 관련의 민요가 많이 전해졌다. 이어도란 명칭의 섬이 제주 남쪽지방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전설속 관념으로만 여겼던 게 섬은 아니지만 수중바위의 이어도를 실제로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해수면에서 불과 4.6m 아래 잠겨있는 이 수중바위는 바로 전설이 시사한 이어도의 발견으로 구전이 실체화 되다시피 됐다. 우리 정부가 이어도에 해양탐측과학기지를 건설한 것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가 이어도의 한국 영유권에 이의를 달고 나왔다. 양국간에 동중국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설치된 이어도 구조물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장쑤(江蘇)성 최동단의 퉁다오(童島)섬에서 이어도까지의 거리는 마라도에서 이어도간 149㎞보다 훨씬 먼 248㎞나 된다. 거리상으로 보아서도 중국측 주장은 억지다. 동중국해 수역의 중간선을 경계로 삼자는 우리측 입장과 해안선 길이 등을 참작해 경계를 정하자는 중국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 EEZ 경계 획정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들고나온 중국의 이어도 시비는 해양 영유권 분쟁 키우기를 의도하는 것이다. 이어도 주변의 해저는 한국측 대륙붕이다. 엄연한 우리의 영유권에 속한다. 이어도를 발견하기 전엔 이 부근의 해상 영유권에 아무 말이 없다가, 우리가 해양기지를 세우고 나니까 이러쿵 저러쿵하고 들고 나선다. 중국은 이미 백두산을 야금 야금 자국 영토로 잠식하고 있다. 이번엔 이어도까지 넘본다. 동북공정과 함께 백두산에 이어 이어도까지 자국 영토화를 획책하는 중국의 역사침략, 영토침략 수법이 집요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 임양은 주필

법 어기는 국회

입법 기관인 국회가 법을 어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회의 위법은 대부분 처벌조항이 없는 훈시규정이라는 이유로 여야의 정치 공방 와중에 발생하지만 이건 국민을 경시하는 것이다. 국회의 위법사례 중 대표적인 경우가 예산안 처리다. ‘회계연도 개시 30일전(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헌법 54조2항에 명시돼 있지만 국회는 번번이 기한을 넘긴다. 2004년 12월31일, 2005년엔 12월30일에야 처리했다. 모두 여야의 극한 대립 탓이다. 예산안 처리의 지연은 중앙정부의 예산공고, 집행계획 수립, 분기별 배정계획 등 집행 준비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극심한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한다. 국회법상 절차와 기한 규정도 수시로 어긴다. 국정감사 및 및 조사법 2조1항엔 ‘국회는 국정전반에 관해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9월 10일부터 20일간 감사를 행한다’고 규정했지만, 올 국감은 10월11일 ~ 30일로 시기를 변경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선거는 총선 이후 첫 본회의에서 실시한다. 처음 선출된 의장과 부의장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임기만료일전 5일 이내 실시한다’고 국회법 15조에 규정했지만, 2004년 17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당시 6월5일 첫 본회의에서 의장만 선출, 부의장은 이틀 뒤 선출하는 등 2006년 후반기 원 구성에 법정기한을 넘겼다. 국회 원(院)구성을 할 때도 여야가 서로 더 많이 더 좋은 상임위원회를 차지하려고 자리 다툼을 하는 바람에 법정기한을 거의 지키지 못한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업무 특성상 다른 상임위원의 임기(2년)와 달리 4년 임기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당내 자리다툼 때문에 편법으로 정보위원을 교체해 국회법을 어긴다. 이렇게 국회가 관행적으로 법 조항을 어기는 이유는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키지 못할 법은 고치든가, 아니면 강제성을 부여해 지키도록 해야지 국회가 법을 위반한다면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는 꼴이다. 여론을 통한 통제가 가장 현실적이지만 문제는 정치권이 여론에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타성에 젖어 있는 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예산안의 경우 중대한 사안이므로 법정기한 내 처리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자성을 촉구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도박

인간은 도박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보들레르는 “인생에 있어서 참된 매력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도박의 매력이다”라고 했다. 도박에 빠져드는 인간의 속성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겠다. 도박은 불확실성과 우연 속에 숨어 있는 ‘한 탕’을 노린다. 파스칼은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고 했다. 도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횡행했다. 조선조 후기엔 특히 투전이 성행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에 의하면 투전은 서민 뿐 아니라 양반층에도 널리 퍼졌다. 영조 때 우의정까지 지낸 원인손은 투전계의 고수였다고 전해진다. 문학작품 속에서 나오는 도박 이야기는 처절하다. 1930년대 작가 김유정의 소설 ‘소낙비’에 등장한 춘호는 노름빚에 쫓기다 못해 아내한테 돈을 얻어오라고 윽박지른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노름빚을 변제하기 위해 돈 많은 남성에게 몸을 맡긴다.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사례는 많다. 1960년대 말 가난한 농민들이 겨울밤을 지새운 건 거의 마작이나 화투때문이었다. 밤새 돈을 잃고 두 눈이 퀭한 상태로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새벽길은 지옥행이나 다름 없었다. 오늘날은 더 하다. “세상이 온통 고스톱판으로 보였다. 아파트 2채를 날리고 아내가 폐결핵에 걸려 다 죽어가도 눈 하나 꿈쩍 안했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버지가 경륜에 미쳐 외박하고 돌아오면 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는데 이젠 내가 인터넷게임 중독자가 됐다”는 사람도 보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오락기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는 대학생, 성인오락실을 드나들며 1억원의 빚을 진 뒤 자살한 30대 남자, 남편 모르게 집 문서를 저당 잡혀 대출 받은 돈을 주부도박단에서 모두 날리고 이혼당한 주부 등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도박은 말과 훈계로 억제할 수 없는 중독성을 지녔다. 마약과 같다. 더구나 경마와 경륜, 카지노, 성인오락실 등 사행성 산업이 전국 도처에 널려 있어 그야말로 ‘도박공화국’이다. 전국에 1만5천개가 넘는 사행성 게임장이 있다니 정부가 조장한 셈이지만, 그러나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손목을 절단해서라도 끊어야할 게 도박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聖 人

성철(性徹) 큰 스님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진정한 성자였다. 마하트마 간디가 평생 최소한의 의식주로 살았듯이 스님 또한 근검절약에 엄격했다. 양말도 손수 기워 신었고 누더기 장삼도 40년을 그냥 입었다. 중생들의 보시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늘 남을 생각했다. 불공의 대상이 부처님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중생이 불공의 대상이었다.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의 명과 복을 빌어주는 것이 불공이 아니라 남을 도와 주는 것이 참다운 불공이라고 강조했다. “중이란 가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중생을 앞서 생각하는 성철 스님은 수행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되지 않았는데도 참선을 시작한 지 42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앉으나 서나,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상관 없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음력 10월1일부터 다음해 1월 31일까지 수행 정진하는 ‘동안거(冬安居)’ 동안 한 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잠을 자지 않았다. 몇 해 동안 밤에도 잠은커녕 고개를 한 번 떨구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는 그의 꼬리표가 됐다. 수행할 때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한다고 해서 ‘철 수좌’(참선하는 스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국 불교계에 이바지 한 공도 헤아리기 어렵다.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불교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한국 불교를 올곧게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1947년 청담·자운·성철·향곡·월산·성수·도우·법전·홍경·종수 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의’를 단행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규칙(공주 규약)’을 만들고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선(禪)을 중시해온 한국 불교의 맥을 살려 엄격한 수행을 강조했다. 동안거, 하안거 중 꼭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하게 하고 포기하면 쫓아내 버린 것은 성철 스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 됐다. ‘실천하는 불교’와 ‘중생에게 다가가는 불교’라는 한국 불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말씀은 아무도 높이와 깊이를 모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아! 백두산

해발 2천744m의 백두산은 배달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개국의 단군신화가 깃든 민족의 발상지다. 백두산 산정은 연중 거의 백설로 뒤덮이고 산세가 흰 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백두산이란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천지의 수질은 무색 무취의 청정수로 플랑크톤이 없어 물고기가 살 수 없을만큼 깨끗하다. 금·은·동 등 40여 가지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묻혀있고 갖가지 고산식물과 천연림이 빽빽하여 지상자원 또한 무성하다. 휴화산으로 양질의 온천수가 솟아나는 데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어 관광자원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중국의 백두산 접근이 관광용비행장 건설 등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둥베이(東北)사범대 휴호우성(劉厚生)교수의 심상치 않는 논문이 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일환으로 완성되어 주목된다. ‘창바이산(長白山)의 역사성 귀속 문제에 관한 연구’란 논제를 통해 창바이산은 중국 고대 인류를 키운 요람이란 게 이 논문의 요지다. 즉 고대부터 중국 왕조의 행정관할에 든 중국 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때문에 백두산을 자기네 이름을 붙여 창바이산이라고만 부른다. 논문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962년 맺은 국경협정이다. ‘중국과 조선이 맺은 이 조약으로 창바이산이 비록 조선과 분할돼 있지만 주봉과 천지는 여전히 중국에 속한다’고 피력돼 있다. 외교부는 최근 중국의 백두산 유네스크 세계자연유산등재 추진설에 대해 지방의 생각일 뿐 정부의 의견은 아닌 것을 중국 정부로부터 확인받았다고 밝혔으나 뭘 모르는 소리다. 북은 중국에 ‘찍’소리도 못하는 가운데 남쪽은 저들의 동북공정에 이처럼 끌려만 간다. 세계에 창바이산만 있고 백두산이 없으면 결국 중국에 빼앗기는 셈이 된다. 역사침략, 영토침략의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애국가 가사의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백두산이 중국에 맥못추는 후손들로 인해 울고 있다. 백두산의 상당 지역을 중국 영토로 할양한 북녘의 비밀협정이 비극의 단초다. 백두산을 되찾는 외교적 노력을 남과 북이 민족공조 차원에서 추진해야 된다./임양은 주필

역사드라마의 역사 날조

텔레비전 사극마다 조선조 당쟁을 붕당의 궁중 암투쪽으로만 치우쳐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이래서 광활한 만주 벌판에서 기상을 드높였던 북방사를 소재로 하는 역사물을 촉구한 적이 있다. 근래에 시작된 MBC ‘주몽’ SBS ‘연개소문’은 북방사 드라마이긴 하다. 그런데 엉터리도 너무 엉터리다. 역사적 사실을 극화하는 덴 허구가 들어가긴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선 역사 날조이지 작품상 용인되는 허구가 아니다. 주몽의 아내 소서노는 부족장 연타발의 딸로 주몽이 동부여에서 망명했을 당시엔 이미 전사한 장수의 남편 사이에 비류와 온조의 두 아들을 둔 과부다. 주몽은 여덟살 연상의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아내의 도움을 얻어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국 후 동부여에 있던 본처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가 고구려로 와 유리가 태자가 되자,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하여 온조로 하여금 이번엔 백제를 건국케했던 여걸이다. 이것이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소서노를 처녀로 둔갑시켜놨다. 이만 저만한 망발이 아니다. ‘연개소문’에서 안시성 대첩의 지휘관을 성주 양만춘이 아닌 대막리지 연개소문으로 묘사한 것은 이 역시 역사 날조다. 당 태종 이세민이 패전하고 돌아가면서 연개소문과 마주보며 서로 칭찬하는 투의 덕담을 나눈 장면은 허구로 보기엔 한마디로 웃기는 유치한 허구다. 을지문덕은 연개소문보다 마흔살 남짓 더 먹어 같은 시대의 사람일 수가 없다. 이밖에도 잘못된 점이 많은 가운데 의상이나 머리모양이 고구려 벽화와 차이점이 있어 고증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아스럽다. 문제는 텔레비전 방송의 영향력이다. 이런 엉터리 사극의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오인하는 시청자가 있을까봐 두렵다. 고대사 무대를 재현하는 오픈세트며 의상비 등 제작비가 실로 막대하다. 수 억, 수십억원 대의 돈을 들여가면서 역사 왜곡보다 더한 말도 안 되는 역사 날조를 일삼는 사극 제작에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을 보면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임양은 주필

별난 도둑들

세상이 별나서인 지 살기가 힘들어서인 지 희한한 도둑이 다 있다. 학교 정문에 교명을 붙인 구리 명판을 떼어가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지난 여름방학기간 동안 도내에서는 군포 시흥 등지에서 20여개교의 명판이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에서도 7개교가 명판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아마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명판 도난이 또 있을 것이다. 구리 명판을 떼어가야 많은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학교의 구리 명판을 만들려면 구리값만도 약 30만원이어서 교명 새기는 공력 비용을 합쳐 50만원 가량이 든다. 하지만 도둑이 갖다 팔려고 하면 구리값도 제대로 안쳐준다. 기껏해야 몇 만원이다. 고물상이 장물인 약점을 악용하여 헐값에 사들인다는 것이다. 남의 집 철대문도 뜯어가 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족들이 외출하여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철대문을 뜯어간다는 것이다. 누가 왜 뜯느냐고 하면 새철대문으로 바꿔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면서 태연히 뜯는다는 것이다. 정말 눈 감으면 코 베어갈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전선도둑도 있었다. 인적이 드문 들판에서 멀쩡한 전깃줄 동선을 절단해 거둬가 팔아먹는 것이다. 근래에는 맨홀 철제 뚜껑도 도둑질 당하기가 일쑤다. 가을이 짙어간다. 좀 있으면 추수기의 들곡식 도둑이 또 걱정된다. 고추 같으면 빨간 고추만 따가는 게 아니고 뿌리 째 뽑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도망가기가 예사다. 가마니 곡식은 훔쳐도 멍석 곡식은 안 훔친다고 했는데 멍석에 깔아 말리는 벼도 훔쳐가는 것이 요즘의 곡식도둑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없던 이런 도둑 등쌀에 추수기가 되면 농민들의 걱정이 여간 아니다. 인삼밭 같은데선 아예 삼포집 주인이 불침번을 서기도 한다. 이런 판에 교명 구리 명판을 떼어가는 신종 도둑이 또 생긴 것이다. 명판을 도둑맞은 학교에서는 도둑이 겁나 아예 구리 명판에서 대리석 명판으로 바꿔 단다고 한다. / 임양은 주필

팩션소설

‘국내 문화예술계에 ‘팩션(faction)’ 바람이 한창이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인 팩션은 소설의 경우 최근 오세영씨가 조선시대 22대 왕 정조와 다산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하는 ‘원행’을 펴냈다. 다산이 1795년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 즉 원행 때 왕을 시해하려는 자들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이정명씨의 ‘뿌리 깊은 나무’도 조선시대의 역사에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으로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집현전 학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추리한다. 현재 진행형의 역사를 소설 공간에 끌어 온 김진명씨의 ‘신의 죽음’은 북한 김일성의 사망이 중국의 동북공정 음모와 관련이 있다는 전제 아래 한반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국제열강의 파워게임인데 방대한 자료를 제시해가며 파헤친다. TV 드라마 ‘김구’를 집필한 이봉원씨의 소설 ‘국새’는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새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렸고, 김재희씨의 ‘훈민정음 암살사건’은 우연한 소매치기 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세종의 친필문서를 열쇠로 한글 창제의 비밀과 이를 은폐하려는 일본 우익들의 음모가 드러난다. 정치사가 아닌 문화예술사를 작품소재로 삼은 오명근씨의 ‘그 이상은 없다’는 한국형 팩션의 진화로 볼 수 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문인들의 일상과 연애담을 소설 형식으로 꾸민 이 작품에선 이상·김유정·임화·정지용·노천명·모윤숙·최정희씨 등 당대의 문인들이 주인공인데 애욕에 시달리는 보통 인간으로 그려진다. 소설의 팩션 현상은 ‘다빈치 코드’의 성공 이후 밀어닥친 외국 소설의 팩션 붐과 함께 영화, TV드라마의 팩션이 인기를 끈 것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오락성에 치우쳐 극적갈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의적 역사 해석, 왜곡의 문제가 발생된다. 또 역사 인물이든 현존인물이든 명예훼손의 우려도 상존된다. 금강산을 배경으로 실존 화가의 생애를 다룬 한 소설이 실제 본인이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 논란에 휩싸인 게 한 사례다. 독자의 흥미는 끌 수 있으나 현존하는 인물의 행로를 사전 동의 없이 소설에 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한반도에 쌀이 전해진 시기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6000 ~ 7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북쪽을 통해 들어온 쌀농사는 남부로 퍼졌고, 농사 조건이 좋은 영·호남지방에서 발달했다. 그런데 1988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구석기유적 토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1만년 이상 된 것으로 분석돼 쌀농사를 짓기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생벼를 채집해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330년쯤 만들어진 대규모 저수저인 전북 김제 벽골제는 당시 백제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벼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농업용수 확보에 노력했다는 증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문루왕이 즉위 6년 (32년)에 명을 내려 논을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보다 앞서 주몽이 큰뜻을 품고 고구려를 세우기 위해 북부여 땅을 떠날 때 어머니 유화부인은 곡식의 씨앗을 전해준다. 신화 속에서 주몽의 어머니는 농사를 관장하는 곡모신(穀母神)으로 표현된다.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 속 방석 아래에는 으레 곡식 낟알을 깔았다. 유화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집안의 생명줄을 지켜나갈 볍씨 관리를 신부의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던 것이다. ‘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브리히(Vrihi)’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니(Ni)’ ‘누안(Nuan)’ 등으로 불렸다. 이는 우리말 ‘논’과 비슷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는 벼를 ‘바디(Badi)’ ‘빈히(Binhi)’ 등으로 부르고 있어 우리와 유사성(類似性)이 있다. 쌀도 고대 인도어 ‘사리(Sari)’를 어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벼이삭을 본뜬 상형문자다. 일부에서는 ‘米’자를 ‘八十 + 十八’로 분해, 66차례나 손길이 가야 하는 쌀농사의 특성을 표현한 글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쌀사랑범국민운동본부가 8월18일을 ‘쌀의 날’로 정한 연유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집을 다스리는 신을 성주대감이라고 일컬었다. 대청 한구석에는 성주단지 또는 신주단지로 불리는 쌀 항아리를 고이 모셔 놓았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 우리 민족의 소원은 ‘흰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쌀이 넘쳐난다. 그래도 쌀은 여전히 소중한 영원한 외경(畏敬)의 대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드레스 코드

(술을 한 잔 걸친)중년 남자 : “푸줏간에 걸린 고기 같네.” // (허연 어깨가 다 드러나는 탱크톱에 아슬아슬한 미니 스커트 차림의)아가씨 : “아저씨, 방금 뭐라고 그랬어요?” // 중년 남자 :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푸줏간에 걸어 놓은 고기 같다고 ~ .” // 아가씨 : 이건 인격 모독에 해당된다. 하지만 수치심과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남자에게 핼끔 눈을 흘기더니 (전철의)뒤칸으로 달아난다. 아주머니A : “저렇게 입고 다니면 시원하긴 하겠네.” // 아주머니B : “시원하면 뭐해! 보는 사람은 짜증나는데. 그리고 정말 더워서 저러고 다니는 줄 알아?” 얼마 전 서울 신도림역 1호선 전철 안에서 있었던 광경이다. 신문에 보도됐었다. 노출 붐을 타고 손바닥만한 미니스커트와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핫팬츠 등을 입은 옷차림의 직장인들이 늘었다. 정장 대신 자율복장을 권장하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직장인들은 남성의 경우 ‘여성 직원의 옷차림이 불편하다’는 응답이 61.7%, 여성의 경우는 33.3%가 남성의 노출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설문조사 결과 나타났다. 남성 직장인이 말하는 여성의 꼴불견 옷차림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지나치게 짧은 미니 스커트, 깊게 파인 민소매 상의 등을 입은 ‘노출 패션’, 허리를 숙일 경우 바지(골반바지)가 내려가 속옷이 보이는 ‘민망 패션’, 눈에 띄게 화려한 차림 또는 청바지·티셔츠· 슬리퍼 등을 좋아하는 ‘파격 패션’이다.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온 남자 동료에게 “패션도 좋지만 사무실에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라”고 충고하는 여성도 있지만, 만일 남성이 반바지나 찢어진 바지 차림으로 출근한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그래서 특히 여름철에 기업에선 ‘드레스 코드(dress code)를 권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드레스 코드는 원래 파티 초청장 하단에 참석 복장에 대한 안내를 뜻했는데 ‘직장 내 복장 규정’으로 확대됐다. ‘개성’과 ‘취향’을 살리는 건 물론 좋다. 그러나 여자든 남자든 사무실에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복장을 입는 게 무난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공관 ‘안방정치’

고관(高官)의 공적 저택이 공관(公館)이다. 공관을 찾는 많은 손님 중엔 사적 용무도 있고 공적 용무도 있을 것이다. 수원시 화서동 팔달산 자락에 경기도지사 공관이 있다. 도지사 공관 역시 이런저런 많은 손님이 찾을 것이다. 그런데 공적 용무인지 사적 용무인지 모를 손님들이 있다. 오늘 낮에 예정된 도내 한나라당 원내·외운영위원장 부인 40여 명의 오찬모임이다. 오찬 초대는 도지사 부인이 했다. 민원청취, 여성단체운영 등 의견 수렴이 목적이라는 도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다고 보도됐다. 글쎄, 도지사 부인이 굳이 그런 의견 수렴을 해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도 내조인지도 또한 보는 이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한나라당에 국한하지 않고 열린우리당 원내·외운영위원장 부인들도 초대해 간담회를 가질 모양이다. 그런데 도내 시장·군수 부인들은 벌써 지난 7월초 공관 초대 모임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도지사 부인의 안방정치가 꽤나 활발한 것 같다.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손님들의 접대 비용이다. 도지사가 월급받은 돈으로 손님을 치렀으면 깨끗하다. 그러나 만약에 업무추진비로 치렀으면 아니다. 업무추진비는 도지사직 업무추진비다. 도지사 부인직 업무추진비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공관 운영비가 있다고 해도 또 그렇다. 공관 운영비는 일상의 비용이다. 도 예산으로 지출될 수 있는 손님 접대비는 어디까지나 공식모임이다. 도지사 부인이 초대하는 손님 접대를 공식모임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도지사는 “예산을 단 1원도 헛돈은 안쓴다”고 했다. 설마 부인의 안방정치 내조에 도 예산을 갖다 썼을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그래도 궁금해 한다. 혹시 공관 운영비로 모든 손님, 즉 공사를 막론한 공식·비공식 모임의 손님에게 다 쓸 수 있도록 예산이 짜였다면 그런 공관 운영비는 마땅히 공개돼야 한다. 도지사 부인이 공관에 손님을 대거 초대하는 집단 모임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어서 새삼 짚고 넘어가는 전례없는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다. / 임양은 주필

분실된 왕조국새

나라의 도장인 국새는 국권의 상징이다. 국새를 지녀야 왕권 계승의 정통세력으로 인정됐다. 이 때문에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국새부터 챙겼다. 국새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조선 고종31년(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고 나서다.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대내적으로는 서구식 정치 도입과 함께 반상(班常) 제도를 철폐한 국가사회의 일대 개혁이 갑오경장이다. 그 이전엔 외교문서에 사용하는 국새는 고려 때부터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만들어 보냈다.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되돌려주면서 새 국새를 청했으나 명나라는 늑장을 부리다가 태종3년(1403년)에야 ‘朝鮮國王之印’(조선국왕지인)이란 황금 인장을 보내왔다. 갑오경장 후에는 청나라에서 보낸 국새를 폐지하고 ‘大朝鮮國寶’(대조선국보)와 ‘大朝鮮大君主之寶’(대조선대군주지보)를 만들어 사용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는 ‘大韓國璽’(대한국새) ‘皇帝之璽’(황제지새) ‘大元帥之寶’(대원수지보) 등을 만들어 썼다. 그런데 역대 왕조의 이런 국새가 모두 분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분실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갑오경장 이후의 ‘大元帥之寶’ 등은 약 10년 전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도 행방이 묘연한 모양이다. 역대 왕조 국새들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분실 경위조차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간 국새 분실설은 분분했으나 이처럼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다. 국새는 대한민국에도 있다. 1948년 건국 이듬해 5월 사방 6㎝의 정방형 인형에 ‘大韓民國之璽’(대한민국지새)라고 새긴 국새를 만들었다. 국새 규정을 고쳐 사방 7㎝의 정방형 인형에 한글로 ‘대한민국’ 전서체 넉자를 가로로 새겨 써 오늘에 이른 것은 1970년 3월부터다. 조선 왕조시대엔 승정원에서 관리하던 국새를 지금은 행정자치부가 보존 관리하고 있다. / 임양은 주필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

‘재산 상속에서의 외손, 친손의 구분도 없고, 딸 아들의 차이도 없었던 것이 조선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사위와 평생 함께 살거나, 가까이에 집을 얻어주는 것도 흔했다. 놀랍기만 한 이 ‘새로운 전통의 풍경’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역작(力作)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의 저자(김영사 펴냄)인 소설가 이기담 여사는 그 의문을 여러 사대부가(家)의 ‘분재기(分財記)’를 통해 풀었다. 분재기는 자손이나 기족에게 나눠 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로 ‘분재기에는 혼인한 딸이나 어미 잃은 외손에게도 똑같이 재산을 나눠주던 선인들의 정신이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를 ‘지극한 자식 사랑이나 애틋한 형제애와 같은 드라마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엔 외손에게도 분재된 재산 상속의 개방적 탄력성에 비하면, 비록 딸에게도 상속권이 있는 것으로 개선되긴 했으나 현대사회의 재산 상속은 아직도 폐쇄적 경직성을 면치 못했다 할 수가 있다. 저자는 특히 역사소설 분야에 개성있는 민족사관의 일가견을 이룬 것으로 정평이 난 작가다. 얼마전 방송이 시작된 MBC-TV ‘주몽’, KBS-TV ‘연개소문’ 그리고 지난 1일 첫회가 방영된 ‘대조영’에 앞서, 이미 수년 전 ‘소서노’(전 2권) ‘발해시황 대조영’(전 3권) 등을 출판, 전인 미답의 고대 북방사를 작품화하는 데 앞장 섰다. 작가는 이를위해 만주지역의 고구려 및 발해 유적지와 요동반도를 수차 탐사하는 고행을 감수했다. ‘꿈꾸는 자는 죽는가’(전 2권)에선 망해가는 명나라와 신흥 세력의 청나라간 북방외교에서 철저히 국익을 추구한 광해군의 영명성이 당쟁으로 희생되는 과정을 리얼한 필치로 새롭게 조명했다. 이외에 고려 공민왕을 미완의 개혁군주로 본 ‘공민왕과의 대화’는 시공(時空)을 함께하는 가상 인터뷰의 독특한 형식을 정립해 보였다. 이런 향토 작가가 조선시대의 재산 상속을 섭렵한 다큐멘터리를 단행본으로 낸 것은 역사소설과는 또다른 노작(勞作)이다.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은 이황, 이언직, 김종직 등 거유(巨儒) 등을 사례로 든 고증으로 일관해 가히 연구논문수준급으로 자료가 풍부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필치로 흥미있게 엮은 것이 특징이다. / 임양은 주필

안보개념 상태

일본 육상자위대가 지난달 27일 시즈오카(靜岡)현 고텐바시 인근에 있는 후지(富士)산 자락에서 실탄사격 훈련 ‘후지종합 화력훈련’을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196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연례행사이지만 특히 올해 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일본을 침공한 적을 요격하는 내용으로 진행된 훈련에는 전차 60대, 대전차헬기 등 항공기 20대, 대포 40문, 병력 2천여명이 동원됐다. 훈련에 소모된 실탄만 약 35t(3억2천만엔 상당)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야말로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고 외신들이 전했는데 대만 육군 총사령관이 훈련을 참관, 중국 정부가 일본측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일본 최대의 석유비치기지가 있는 홋카이도(北海道) 도마고이시 인근에서 유사시를 대비한 국민보호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은 석유탱크 폭발을 가정한 진화작업으로 시작됐다. 외견상 현지 경찰과 소방대들의 움직임이 부각돼 재난 대비 훈련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육상자위대 7사단을 비롯해 항공·해상자위대까지 참여한 본격적인 군사훈련이었다. 자위대를 중심으로 경찰, 소방대,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총리관저와의 화상회의 등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도주로를 차단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2004년 제정한 국민보호법에 따른 것으로 2005년 후쿠이(福井)현에서 첫 훈련이 실시됐으며 매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일본이 9·11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하는 목적이 군사대국화임은 기정사실이다. 특히 자위대 해외파병 항구화법 제정,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조기 도입, 방위예산 증액 등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세계를 향한 무력시위다. 이미 막강해진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정작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서두르고 일부 공무원노조가 을지연습 폐지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김승규 국정원장이 밝혔듯이 북한은 핵실험을 위한 주변시설 등이 항상 준비상태에 있고 기술적 능력도 100% 갖췄다. 도전적인 북한 정권에 비해 우리 안보 개념은 너무 태평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무궁화꽃 축제

장미는 영국의 국화(國花)로 유명하다. 매년 각 도시마다 크고 작은 장미 축제가 열린다. 가장 큰 축제는 1876년부터 열리고 있는 햄턴코트 궁전 장미축제다. 매년 새로운 종(種)의 장미들이 쏟아져 나와 다양한 빛깔과 모양을 뽐내며 품종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중국은 아직 국화가 없다. 국화를 둘러싸고 매화와 모란이 1980년대 이후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중국을 상징하는 꽃은 모란 쪽에 약간 기울어 있는 듯 싶다.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모란(牡丹)을 ‘만화일품(萬花一品)’이라 불러 왔다. 당나라 문인 구양순도 “낙양 흙은 꽃에 가장 어울려 모란이 세상에 제일”이라고 극찬했다. 별칭이 모란성(牡丹城)이기도 한 낙양에선 1983년 첫번째 낙양 모란꽃축제를 연 이후 해마다 모란축제를 펼친다. 16세기 말 해상무역을 선도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양의 한 구근(球根) 식물에 흠뻑 반했다. 튤립 하나에 집 한 채 값이 오가는 등 ‘튤립 투기’ 바람이 일기도 했다. 현재 네덜란드는 매년 20억 송이의 튤립을 전세계에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1949년 이래 매년 3월 하순에서 5월 중순 사이에 퀘켄호프 지방에서 네덜란드 최대 튤립축제가 열린다. 일본은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황실의 상징인 국화(菊花)와 더불어 벚꽃을 나라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춘분 무렵 벚꽃이 북상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면 일본인들은 ‘하나미(花見·꽃구경)’에 마음이 설렌다.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에 일본 제일의 히로시키((弘前) 벚꽃 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홍천군이 전국 제일의 무궁화 고장이다. 홍천군은 일제 강점기 한서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 묘목을 전국에 보급하면서 ‘무궁화십자당(無窮花十字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한 곳이다. 홍천군이 1978년부터 한서문화제를 만들어 무궁화사진전·무궁화전시회·무궁화그리기대회·무궁화백일장 등을 개최한다. 한서공원·무궁화동산·무궁화양묘장 등이 있는데 27년 동안 군내 도로변 등 120㎞에 100만 그루의 무궁화를 심었다. 매년 6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온다. 그야말로 ‘무궁화 천국’이다. 무궁화동산에서 동상(銅像)으로 계신 남궁억 선생께서 이젠 미소를 지으실만 하다./임병호 논설위원

무궁화 이름

꽃말이 ‘섬세한 아름다움·일편단심’인 무궁화 품종은 우리나라 고유의 70여 품종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200여 개에 이르는데 국내에선 160여 종이 생장한다. 꽃잎이 한 층으로 나란히 있는 ‘홑꽃’은 한국과 중국에서 사랑 받고 있으며, ‘겹꽃’은 일본과 서구에서 좋아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전통적인 홑꽃 무궁화는 꽃 중앙부의 색깔과, 꽃잎 전체의 색깔에 따라 품종이 구분된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온통 새하얀 무궁화는 ‘배달계’, 흰 꽃잎에 중심부분이 빨간색인 것은 ‘백단심계’, 붉은 빛의 꽃잎에 빨간색의 중심부를 가진 무궁화는 ‘홍단심계’, 푸른빛의 꽃잎에 빨간 중심부를 가진 것은 ‘청단심계’다. 홍단심계는 꽃잎이 빨간색인지 자주색인지에 따라 ‘적단심계’와 ‘자단심계’로 세분된다. 흰색 꽃잎에 붉은 무늬가 있는 품종은 ‘아사달계’다. 꽃 이름은 그 품종을 가장 먼저 발견하거나 개발한 학자가 지어준다. 꽃의 특징을 상징화한 이름이나 평소 좋아하던 사람, 사물의 이름이 주로 붙여진다.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얀 ‘소월’, 타는 듯한 날개를 펴고 곧 날아오를 것 같은 ‘불새’, 아름다운 여자 화랑 ‘원화’, 하얗게 오그라드는 모양이 옥처럼 깨끗한 여성 같다는 ‘옥녀’ 등 의미가 오묘하다. 배달계는 옥녀, 백조, 옥선, 한서, 옥토끼, 눈뫼, 사임당, 소월, 눈보라, 새한이란 이름이, 백단심계 이름으론 새빛, 선덕, 신태양, 심산, 한얼단심, 원화, 우정, 청단심계는 파랑새. 자옥, 첫사랑, 꽃잎의 윗부분에서 퍼져 나온 붉은 빛이 아름다운 아사달계는 칠보아사달, 아사달, 천사, 바이칼라로 등이 있는데 무궁화는 서로 다른 색깔, 이름을 지녔지만 한 송이, 한 송이가 모두 신비롭고 향기롭다. “수각 난간에 시원한 바람 나에겐 부질없어 / 책 속에 파묻혀서 긴 세월 살아가네 / 붉은 앵도, 돋아난 죽순 모두 철 지나네 / 그러나 갓 핀 무궁화, 터지는 석류 모두 좋구나 / 병약한 몸 지친 마음 손 대접도 귀찮고 / 그저 꾀꼬리 소리 들으며 낮잠만 즐기네 / 젊고 건강한 시절 모두 지나간 옛일 / 그래도 꽃 많이 피었으니 취한 신선 돼볼까”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최충(984 ~ 1068)의 ‘시좌객(示坐客)’이다. 무궁화를 심고 가꾸고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궁한 삶을 희구하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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