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과 거물 변호사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변호인단이 구속기소되고 나서 크게 바뀐 모양이다. 검찰수사 땐 법무부 장관 대검총장 중수부장 등 굵직굵직한 검찰 출신의 거물 변호사들이었던 게 재판을 앞두고는 이번엔 판사 출신의 거물 변호사들로 변호인단 진용을 짰다는 얘기다. 피고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변호인단을 어떻게 구성하든 그건 자신의 기본적 인권이긴 하다. 그런데 법원에 보석신청을 하고 나서는 기존의 고위직 판사 출신 변호사 외에 대법관을 지낸 J·L 변호사를 보강했다는 것이다. 기왕 변호인을 선임하면서 유력하다고 보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인지상정이긴 하다. 그러나 돈타작하는 것 같아 보기에 떨떠름한 것은 이처럼 호화군단의 재야 법조인을 수십명씩이나 꼭 동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검찰수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 선임료가 모두 100억원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돈을 주체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재벌회장이 돈 100억원쯤은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수사나 재판은 이런 엄청난 돈을 들인 변호사들을 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예를 들면 재판부가 보석을 허가하고 싶어도 사회적 눈이 부담스러울 수가 있다. 적정 수의 웬만한 변호사를 댔으면 그냥 보석을 허가할 수 있는 것도, 무더기 거물 변호사 공세에 굴복하는 인상을 사회에 줄 것 같아 허가를 늦출수도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변호사 선임’을 가리켜 ‘변호사를 산다’고 했다. 변호사 선임엔 언제나 선임료, 즉 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이 나왔다. 정 회장이 그 많은 고관 출신의 변호사들을 돈 주고 산 것이라면 그 많은 고관 출신의 변호사들은 돈에 팔렸다 할 것인지, 해석하기가 영 찜찜하지만 이래서 앞으로 재판의 추이를 더 지켜볼만 할 것 같다. / 임양은 주필

바둑스포츠

바둑이 경기인 점에선 스포츠다. 게임의 요소를 지녔다. 그러나 육체적 단련이 요구되는 스포츠 개념으로 보아서는 바둑을 스포츠로 보기가 어렵다. 이는 오랜 그간의 논쟁이었다. 이럴 때마다 바둑계에서는 두뇌 스포츠라고 했다. 즉 두뇌 단련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두뇌 단련이나 육체 단련이나 다 같다는 것이다. 어떻든 근래 바둑이 스포츠로 인정됐다. 대한체육회가 대한바둑협회를 준가맹단체로 영입했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경기도 있을 전망이다. 이로써 국내 바둑은 한국기원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바둑과 대한바둑협회의 아마바둑 양대산맥이 형성됐다. 그러나 바둑의 스포츠 출발은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 많다. 우선 실업팀들이 창단돼야 하는데 이게 쉬운일이 아니다. 대학 특기생이나 병역 특기자 혜택은 아득하다. 병역 특기 대상의 바둑스포츠 국제대회도 없고 특기생을 받아줄 대학도 명지대 한 군데 뿐이다. 대학에 바둑과를 둔 대학이 다른 덴 없다.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의 관계 정립도 과제다. 희망은 있다. 명지대에서 학문으로 정립한 바둑을 대한바둑협회가 스포츠화 못할 이유는 없다. 보드게임인 체스가 카타르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치러진다. 바둑 역시 아시안게임 진출이 가능하다. 문제는 아마 바둑계 자체에 달렸다. 바둑의 묘미는 오묘한 기리(棋理)와 무궁무진한 전술 전략이다. ‘소탐대실’ 등 위기십결의 잠언은 인간사에도 새겨 들어야 할 말이 많다. ‘끊으면 뻗으라’는 등 전술적 격언, ‘대치하고 있는 중앙이 크다’는 등 전략적 용어가 숱하지만 수 위에 또 수가 있는 것이 가히 무한하다. 대한바둑협회는 바로 이같은 바둑의 이치를 본받아 협회가 먼저 기리에 충실한 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바둑의 스포츠 연착륙이 가능하다.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바둑협회 전국 시·도지부 결성에 따라 경기도 지부도 곧 결성하게 된다./ 임양은 주필

‘마음의 그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설할 때 카랑카랑하고 강단 있는 목소리로 국민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박 전 대통령은 논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참모들이 써온 원고를 읽으면서 군더더기를 빼고 자신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집어넣으려 애썼다. 발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입을 정확히 벌리려고 애썼다는 얘기도 있다. “보통 사람, 이 사람 믿어 주세요”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조가 잔잔해 직접 대면하는 듯한 친근감을 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특유의 보스형 설득력과 유머감각이 연설에 묻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연설 고수’에 속하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참모들은 연설 때마다 초주검이 된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연설을 위해 모두 7개의 초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초안을 하나 선택한다. 열린우리당 당 의장 경선에서 3등을 차지한 김두관 최고위원은 참모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연설원고를 작성했다는데 격정적인 연설이 특징이다. 절정의 순간에는 눈을 감은 채 날개를 펴듯 양팔을 벌리며 “노무현 정신에 투표해 달라”고 외쳤다. “노무현교 전도사의 부흥회에 온 듯 하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연설이나 강연을 할 때 눈에 잘 띄는 곳에 메모지 한 장을 붙여 놓는다고 한다. 메모지엔 ‘쉽게, 짧게, 두괄식으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교수 출신인 손 지사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다’라는 방법을 실현한다. 우리나라 정치인에서 명연설가로는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거론된다. 해공은 원고를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해공은 중간중간 호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식의 ‘틈’을 보여 청중을 편하게 만들었다. 연설 내용은 “권력자들이 거머리처럼 국민 정강이에 달라붙어 있다”(1956년 한강백사장 대통령선거 유세)는 식으로 추상 같았다. 그러나 어조는 언제나 잔잔했고 그리 흥분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러움·솔직함·일상성· 대중성’이 대중연설의 원칙이라고 했다. 영국 격언도 ‘연설은 마음의 그림’이라고 했다. 정치인 연설의 생명은 스스로의 자연스럽고 솔직한 ‘마음’을 국민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다. 5·31 지방선거에서 가슴에 스며드는 연설을 들었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過慾?

정부도 그렇지만 북한이 24일 경의선과 동해선의 시험운행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측이 난감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군부가 열차 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아서 열차 시험운행을 취소한다”는 전화통지문 한 장으로 7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연결한 남북 철도 시험운행 합의가 깨져 버렸다. 40억 원어치의 철도 자재와 수백억 원어치의 경공업 원자재를 주기로 했는데도 합의를 파기한 것은 과거의 선례로 봐 북한의 속뜻은 딴 데 있는 게 분명하다. DJ측이 “지난번(22일) 금강산 실무 접촉에서 남북의 의견이 엇갈려 29일 개성에서 열릴 2차 방북 실무접촉에서 계속 협의하기로 한 부분”이라며 여운을 남기는 등 열차 방북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철도 연결의 모태가 2000년의 6·15 남북 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취소 통보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남북 사이의 기찻길을 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사업인데 아쉽고 유감스럽다”고 일제히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DJ가 “(다음 달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통일문제를 협의하겠다”고 23일 밝힌 점이다. 2000년 6·15정상회담에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신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다시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DJ는 현재 통일 방안을 논의할 ‘당사자 적격(適格)’을 갖고 있지 못하다. DJ의 연합제안은 개인적인 ‘3단계 통일방안’의 첫째 단계로, 국회 동의를 받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남북연합안과 다르다. 더구나 ‘개인적 방북’이라면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통일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월권(越權)이다.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특사자격 방북을 부여해야 한다. DJ의 역할은 1994년 북핵 위기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돌파구를 마련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중재자’에 국한돼야 한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 하여도 대통령 시절의 권력과 권한을 잊지 못하는 과욕(過慾)으로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명연설

훌륭한 연설은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는 표현이 나온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그랬다. 이 연설은 불과 272개 단어로 이뤄진 2분짜리 연설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로 가는 열차 속에서 펀지 겉봉에 대충 쓴 것이란 얘기도 있지만, 그러나 링컨이 오랫동안 ‘언어의 음악적 특성’을 연구해 왔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콘텐트를 압축적인 문장에 담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후일 밝혀졌다. 영국 수상 처칠은 거꾸로 ‘연설 같지 않은 연설’ 스타일로 명성을 쌓았다. 처칠은 원고를 단상에 내놓긴 했지만 거의 외워 연설 중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청중은 마치 대화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설 틈틈이 잠깐씩 멈추기를 되풀이해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긴장을 끌어냈다. 말을 조금 더듬어 ‘S’ 발음을 잘 못 하는 단점을 자신만의 연설 스타일로 덮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64년 동료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서 5시간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한 것은 압권이었다. 한국 정당사상 최장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로 기록돼 있다. DJ는 각종 현안에 대해 ‘첫째, 둘째…’ 식으로 접근한 뒤 마지막에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박수를 유도한다. 강조할 대목에서 오른손을 들어 칼로 도마를 내리치는 듯한 ‘칼도마 손짓’이 곁들여진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거제도 뒷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연설 연습을 했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 2학년 때 정부 수립 기념 웅변대회에 참가, 2등으로 입상해 외무부장관상을 받았다. 웅변대회 입상을 계기로 당시 장택상 외무부장관과 인연을 맺어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YS는 문장을 짧게 끊는 ‘단문형’ 기법을 구사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 김영삼이를 밀어 주십시오” 식이다. YS는 1980년대 야당 총재일 때 특히 연설에 힘이 있었다. 1952년부터 34년간 하원의원을 했고 그중 10년을 하원의장으로 보낸 미국의 거물 정치인 팁 오닐은 “정치인의 말은 정치의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을 지켜라”는 연설을 남겼다. 한국 정치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명연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故 李鍾郁 WHO 사무총장

그가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0일 집무실에서 격무 중 뇌혈전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더니 끝내 비보가 제네바에서 날아들었다.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타계한 22일은 총회 개막일, 갑작스런 소식에 세계 각국 보건장관들은 충격속에 비통해 했다. 평범한 의사의 길을 거부한 채 인술의 박애주의를 몸소 실천했다.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부터 라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일본인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씨를 만난 것도 그녀가 당시 한국에 나와 라자로마을에서 일했던 봉사활동을 통해서다. 부부는 이어 1970년대를 사모아 등지서 한센병 퇴치운동을 벌인 게 WHO와 인연을 맺게되어 서태평양지역 한센병 자문관이 됐다.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1994~1998) 정책자문관(1998~1999) 결핵관리국장(2003~2003)을 거쳐 지난 2003년 7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백신국장으로 있으면서는 소아마비 퇴치사업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백신의 황제’란 말을 들었고, 결핵국장 땐 결핵과 에이즈 퇴치 및 예방운동에 힘썼으며, 사무총장이 되고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에 온 힘을 쏟았다. 가는 곳마다 맡은 일마다 정력적으로 활약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면서도, 사생활은 소형승용차를 이용할만큼 검소하고 사람됨은 후배들에게 겸손하단 말을 들을 정도로 소탈했다. “그는 우리 보건장관들이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 비범한 인물, 비범한 리더였다” 이는 WHO 총회를 애도와 묵념으로 시작한 살가도 총회 의장(스페인 보건장관)의 말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산하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던 그가 간 나이가 아직은 아깝다. 해방둥이니까 이제 예순한 살, 더 한창 일할 나이에 무심한 하늘은 왜 그토록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을 우리들로부터 빼앗아간 것일까, 삼가 명복을 빈다./ 임양은 주필

확성기 소음

5·31 지방선거의 특징 중 하나가 확성기 선거운동이다. 확성기 선거운동은 과거에도 있었다. “아무개 군을 국회로 보냅시다!”하고 확성기로 외쳐대는 선거운동 차량이 상대 후보의 차량과 맞부딪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럼, 상대측 역시 “아무개 군을 국회로 보냅시다!!”하고 더 크게 외쳐댄다. 그 땐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군’(君)이라고 불렀다. 맞부딪친 길이 그래도 큰 길일 것 같으면 그러다가 비껴가는데 골목길 같으면 사정이 다르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고성 경쟁으로 버티다가 급기야는 감정싸움이 되기 일쑤다. “(상대) 아무개 군을 국회로 보내지 말고 우리의 아무개 군을 국회로 보냅시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일이 이렇게 되면 선거운동은 그만 양측의 주먹다짐운동으로 번지곤 하였다. 선거운동꾼들은 선거운동이니까 그런다손 쳐도 이 바람에 골탕먹는 것은 소음경쟁에 시달리는 주민들이다. 엊그제 주말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각급 선거 후보자들의 확성기선거운동을 볼 수가 있었다. 네 가지 지방선거를 한꺼번에 치르는데다가 입후보자들도 많아서 확성기에 뒤섞여 쏟아져 나오는 선거운동 소리가 잡탕인 게 이건 예전의 국회의원 선거운동 확성기보다 더 엉망이다. 5·31 지방선거를 치르기까지는 앞으로 주말이 한 차례 더 끼어 확성기소음이 또 예상된다. 이에 선관위측에선 볼륨 조절을 종용한다지만 말을 잘 듣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선거운동은 교통사고 현장같은 목소리 높이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접촉사고를 내고 큰 소릴 치는 사람이 잘하는 걸로 알지만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다. 하물며 선거는 더 말할 게 없다. 확성기 선거운동 소릴 높이는 것은 기 싸움도 아니고 과시도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들로부터 멸시당하기에 딱 알맞는 치졸한 선거운동 방법이다.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면서 유권자들을 소음 경쟁으로 괴롭혀서 되겠는가, 확성기 선거운동이 왜 되살아 났는지 모르겠다. / 임양은 주필

정치테러

1945년 8월15일 광복부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있기까지의 정치 테러는 주로 요인 암살이었다. 민족진영의 우익에선 송진우·장덕수가 암살되고 좌우 합작파의 여운형이 암살당했다. 심야에 자택에서 피습당한 송진우·장덕수의 살해범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주에 승용차를 타고가는 여운형을 저격한 범인이 모두 붙잡혔다. 범인은 붙잡혔으나 배후는 모두가 오리무중으로 끝났다. 김구를 저격한 안두희 역시 마찬가지다. 안두희의 그뒤 호사생활로 보아 권력층의 비호가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어 보였지만 배후의 최고위층이 누구인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은 채 미궁에 빠졌다. 하긴, 막강한 첩보력을 지닌 미국 CIA도 케네디 암살의 진상은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붙잡은 암살범이 암살당한 후 한동안 추리만 난무했다. 김대중 납치사건 역시 진실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있다. 일본에서 납치당해 배로 현해탄을 건너며 수장될 뻔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사건이다. 그러나 이도 당시 중앙정보부가 납치한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구의 지시로 그랬는진 여전히 장막에 가려졌다. 한동안 잊었던 정치테러가 발생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은 같은 정치테러 중에서도 선거테러인 점에서 주목된다. 범행이 살인의 의도까진 있어 보이지 않으나 피해가 꽤나 중상이다. 문제는 범행 동기다. 그리고 배후다. 그런데 이 역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것인지 의문이다. 만약에 배후가 있는데도 개인의 소행으로 둘러대는 가운데 경찰이 증거를 잡지 못하면 진실은 묻히고 만다. 5·31 지방선거의 최대 불상사가 정신이상자 같은 사람의 잔인한 한바탕 해프닝으로 결론날 공산이 없지 않을것 같아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인상학

인상학의 이론은 영·혼·육의 상호작용이 끊임없는 인간의 삶, 동양의 인생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즐거우면 밝은 인상으로, 분노하면 찌그러진 인상으로, 슬프면 어두운 인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은 사유의 방법에 따라 표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근육의 변화를 이뤄내 마침내 그 얼굴 속에 자신의 운명과 삶의 방향 등이 나타나게 된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의 모습, 체상, 언상, 걸음걸이 등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과 행동에도 나타난다. 체형은 선천적으로 생물학적 유전에 기반하므로 불변하는 것이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체형도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희로애락이 신체의 근육활동을 촉진하면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한다. 얼굴이 캔버스라면 채색을 하는 물감과 붓은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라는 얘기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뼈대야 고치기 힘들다지만 얼굴의 색이나 분위기는 자신이 어떻게 마음 먹는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은 사실이다.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인상은 만들 탓이다. 얼굴의 30% 정도가 타고나는 것이라면 70%는 후천적 환경이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얼굴의 근육은 좋은 사람 만나서 활짝 웃고, 기분 좋게 살면 눈빛이나 화색이 달라져 인물이 달라지게 된다. 긍정적 마음의 작용이 건강한 몸과 어우러질 때 인상이 좋게 변한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 ’라는 유행가 가사가 증명한다. 자기 인생을 반듯하게, 힘차게 사는 사람은 그 코도 힘이 있고 반듯해 보인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은 얼굴근육이 올라붙어 나이가 들어도 동안으로 보인다. 항상 열심히, 목표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눈빛이 맑고 빛이 난다. 소크라테스가 인상학도 연구했다는데 제자인 플라톤은 선생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담고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마음 관리를 했다고 한다.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인상학의 입장에서 보면 한편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는 대로 생긴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다. “인상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인상학자 주선희씨가 정의했었다. 그렇다. 마음이 변하면 인상도 변한다. 가끔 긍정적인 사고로, 낙관적인 인생론을 가슴에 품고 맑게 닦은 거울 속에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비추어 보자. 맑고 밝고 따뜻한 인상이 떠오를 것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 해군력

하도 오래 전에 읽은 문학작품이어서 작가와 제목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재일동포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아들이 어머니에게 “한국 해군과 일본 해군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라고 묻는다. 어머니는 “지금은 잘 모르지만 철이가 어른이 되면 한국 해군이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보니 제목이 ‘철이와 군함’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문예지(신문?)가 실시한 현상모집에 당선된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인이 쓴 작품을 일본 문예지가 당선작으로 뽑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 ‘철이’가 지금은 50살이 넘었을 것이다. 일본의 독도 근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해저 탐사를 둘러싸고 독도 영유권 분쟁이 촉발됐을 때 그 ‘철이’가 떠올랐었다. 국방백서와 2004~2005 제인연감(Jane’ s Yearbooks) 등에 따르면 해군력의 경우 우리 해군이 3개 함대사령부에 병력 6만8천670명(2004년 기준, 해병대 2만7천60명 포함)을 보유한 반면 일본의 경우 호위함대사령부(기동함대)와 지방대(地方隊·해역함대)에 4만5천842명(2005년 기준) 규모다. 일본은 먼 바다는 ‘호위함대’가 지키고, 호위함대를 뚫고 들어온 적은 사세보(佐世保) 등 다섯 곳에 사령부를 둔 ‘지방대’가 일본열도를 방어하는 이중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병력수에서는 한국 해군이 다소 우월하지만 함대·잠수함·해상초계기 등 모든 전력을 비교하면 한국 해군 전력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만일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독도 문제로 동해상에서 맞붙을 경우 냉정히 말해 반나절도 안돼 싸움이 끝날 것”이라는 합동참모본부의 분석도 나왔다. 군과 더불어 각각 동해의 경비를 맡고 있는 한국·일본 양국간 해양경찰력도 힐본 해상보안청의 무기나 장비에 비하면 한국해양경찰청의 장비들은 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려니와 그나마 현재 보유중인 장비들도 낡은 것이 많아 실전에서 전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열강이 한반도를 병탄하려 할 때 특히 독도 현실은 국방비 증액을 필요로 한다”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 임병호 논설위원

운곡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의 ‘회고가(懷古歌)”다. 이성계의 역성(易姓) 혁명으로 무너진 고려를 애도한 비가(悲歌)다. 원천석은 여말선초(麗末鮮初)라는 격동의 변혁기를 살았던 문인이다. 불사이군의 줏대로써 정치의 탁류를 건너뛰고, 마르지 않는 시심으로써 생의 부조리를 관조한 인물이었다. 원천석은 과거에 붙어 진사(進士) 명함을 얻기는 했지만 정작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문재는 일찍이 중앙에 두루 알려졌다. 이색(李穡)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문예적 교유를 지속했다. 조선 개국의 으뜸 공신이었던 정도전(鄭道傳)과는 동갑 나이로 청년시절부터 교제가 돈독했다. “동년(同年)인 원군이 원주에 숨었으니 / 다니는 길 험하고 산골도 깊어라 / 멀리서 온 친구 말을 멈추니 / 겨울바람 쓸쓸하고 날은 저물었네 / 그리던 나머지라 흔연히 웃고 나서 / 통술 앞에 다시 마음을 털어 내니 / 나는 노래 부르고 그대는 춤추네 / 이 세상의 영욕을 이미 잊었네” 공민왕 9년(1630년), 정도전이 치악산의 원천석을 찾아와 읊은 詩다. 원천석이 詩로 화답했다. “그대와 동방(同榜)한 지 몇몇 해인가 / 사귄 도리 새삼 깊다 얕다 할 것 없네 / 제각기 일에 끌려 두 곳에 있지만 / 사람 만나면 상세히 안부를 물었는데 / 오늘의 뜻밖의 걸음 하늘이 시킴인가 / 마시고 또 웃고 세세히 얘기하네 / 부디 그대는 돌아갈 길 재촉 마시라 / 우리의 이 뜻 자중하고 어렵게 여겨야 하리” 원천석은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각림사(覺林寺)에서 어린 이방원(李芳遠)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이방원이 훗날 조선조 3대 임금 태종(太宗)에 등극, 왕위에 오르기 직전 옛날의 스승을 찾아 치악산을 찾았다. 고명한 은사를 관직에 앉혀 정사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선 왕권에 이바지할 의사가 없는 원천석은 이를 미리 알고 자신의 거처인 치악산 정상부 산골창인 변암(弁岩)의 굴바위를 떠나 은신했다. 원천석은 치악산 비로봉에 치악단을 조성하고 국운융성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곤 했다. 조선의 성립 자체는 천운이라 하여 긍정했지만 건국 주체들의 패륜과 오륜은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치악산에 가면 1천114편의 詩를 남긴 원천석의 시혼이 보인다. / 임병호 논설위원

국군유해 발굴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이 곳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로 유명했던 철의 삼각지 인근이다. 1951년 6월부터 9월 사이 국군 2사단 17연대·32연대가 중공군 20군 예하 부대를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유품과 함께 55년만에 발견됐다. 유해가 참호속 여기저기 흩어진 것으로 보아 포탄에 전사한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녹슨 철모 탄창 대검 등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이름없이 산화한 한 젊은이의 주검이 반세기가 지나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육군은 DNA검사로 신원을 확인한 뒤 국립현충원에 봉안할 계획이다. 그간 전사자 유해가 상당수 발견됐으나 DMZ서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단을 창설, 발굴작업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현재 19명으로 된 육군소속의 ‘유해발굴팀’을 국방부 직할의 ‘국방유해발굴감식단’으로 확대 개편키로 했다. 대령급 단장 밑에 장교 10명, 사병 78명으로 구성되는 부대 창설을 위한 ‘국방유해발굴감식단령 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6·25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2000년부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인력 및 장비 부족의 한계가 심해 전문 부대를 창설키로 한 것이다. 국방부가 추산하고 있는 발굴 대상의 유해는 모두 14만5천여 위로 보고 있다. 이 중에 발굴된 유해는 1천309위로 약 0.9%에 머문다. 비록 많이 늦긴했으나 이제부터라도 유해발굴을 본격화 할 부대 창설을 서두르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미국은 하와이에 40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연간 600억원을 들여 2차대전 유해를 발굴하는 실종자 탐색 발굴부대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녘 땅에서 숨진 미군 전사자 유해를 북측에 발굴 사례비를 주어가며 인도받기도 한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국군 유해를 아직껏 다 수습지 못한 것을 우린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 임양은 주필

대통령들의 휘호

전직 대통령들의 휘호가 경매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다. 그의 ‘개척과 전진’은 2004년 12월 6천300만원에 낙찰돼 최고를 기록했다. ‘先國後己’(선국후기) 액자는 3천700만원에 팔렸다. 심지어는 붓글씨가 아닌 친필메모도 비싸게 팔린다. 서울옥션이 얼마전 가진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편지지에 적힌 메모지가 500만원에 낙찰됐다. ‘국방대학원장 귀하, 귀 대학원 교직원들에게 위로금조로 사용하시오’라고 한문으로 쓴 뒤에 ‘1991.7.20 박정희’라고 이름은 한글로 쓴 메모지다. 다음은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다. ‘民主救國의 길’(민주구국의 길) 액자가 2004년 12월 1천500만원에 낙찰됐다. 윤보선 대통령의 휘호는 보통 200만~400만원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大道無門’(대도무문)은 250만원이다. 최규하·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휘호는 경매에 나오지 않는다. 최 대통령은 재임기간도 짧았지만 원래 휘호를 거의 쓴 적이 없다. 그러나 전·노 대통령은 가끔은 휘호를 썼다. 경매시장에 전혀 출품되지 않는 이유가 뭔진 알수 없으나 이렇다 보니 가격형성이 안 됐다. 어쩌면 출품해도 경매가 안 될지도 모른다. 경매에 출품 안 되긴 이승만 대통령 휘호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노 대통령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 대통령의 붓글씨는 원래가 알아주는 명필이다. 휘호가 귀하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닌데도 경매에 안 나오는 것은 소장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서예 솜씨가 워낙 뛰어나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경매장 주변의 얘기다. 흥미로운 건 전직 대통령들의 이런 휘호 가격차가 정치적 평가와 관계가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 같다.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의 휘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이승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들은 서예에 전문가들의 사사를 받았다. / 임양은 주필

‘판사 브로커’

판사는 양심으로 재판한다. 증거능력의 인정 여부, 채증의 법칙, 유무죄 판단·형량의 재량 등에 영향을 미치는 자유심증주의는 곧 판사의 양심인 것이다. 재판에 필요한 사실의 인정에 관한 증거의 가치 판단을 판사의 심중에 일임하는 재판형식이 자유심증주의다. 쉽게 말해서 판사 마음대로 판단하는 법의 집행이다. 물론 판사가 마음대로 판단해도 법을 적용하는 것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법을 적용하는 것도 판사 마음이다. ‘판사는 법으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으로 재판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인천의 어느 변호사가 서울서 부장판사로 있을 적에 법조 브로커에게 돈을 받아먹은 사실이 들통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전직 부장판사는 양심으로 재판한 게 아니고 돈으로 재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죄질이 아주 고약하다. 서울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인천에 있는 판사가 재판하는 사건에 잘 봐주도록 말해주겠다며 2천수백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맡은 사건도 아닌 다른 판사의 사건까지 법조 브로커 청탁을 받아 ‘판사 브로커’ 노릇까지 한 것이다. 지지대子가 법조출입할 때다. 아주 괴팍한 성격의 판사가 있었다. 친구든 누구든 외부에서 잘 봐달라고 부탁이 들어오면 판결문에 기껏 집행유예로 썼던 것도 지우고 실형을 때리는 판사였다. 한번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양심에 따른 판단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려고 했는데, 부탁이 들어오면 부탁받고 한 것 밖에 안되지 않느냐”며 반문하는 것이었다. 판사도 많아서 여러 질이겠지만 ‘판사 브로커’는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장 판사를 하다가 그만둔 것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판사는 ‘양심으로 재판한다’는 말을 법정에서나 집무실에서나 항상 잊어선 안된다. / 임양은 주필

성매매 산업?

독일은 2002년부터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성매매 여성이 약 40만명이다. 그런데 요즘 월드컵 축구경기 개최를 앞두고 독일에서는 ‘월드컵 특수’를 노린 성매매 산업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고 한다.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 인근에는 지난해 9월 이미 ‘아르테미스’라는 초대형 매춘업소가 등장했다. 650만유로(약 76억원)를 들여 지어진 ‘아르테미스’는 4층 건물에 40개의 침실이 있으며 건물 내에 사우나와 수영장, 일광욕 시설 등까지 갖춰 하나의 ‘리조트’처럼 꾸며졌다. 물론 건물 곳곳에 축구 경기 시청을 위한 대형 텔레비전도 설치돼 있다. 업소측은 월드컵 기간에 하루 평균 500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데 베를린 뿐 아니라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도시 곳곳에 이같은 대형 매춘업소가 등장했다. 독일 성매매 여성은 물론 유럽 각지의 여성이 성매매를 위해 독일로 몰려들 경우를 대비해 벌써부터 윤락업체들간의 경쟁이 치열한데 유럽 내 가장 큰 홍등가로 불리는 쾰른의 파스카 지역 윤락업소 연합은 최근 손님들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반나체 여성의 사진 위에 월드컵 참가 32개국의 국기를 담은 대형 포스터를 내걸었다. 홍등가 입구 빌딩에 내걸린 가로 8m, 세로 24m의 이 포스터에는 각국 국기와 함께 “친구를 사귈 좋은 기회’라는 월드컵 슬로건을 패러디한 ‘여자친구를 사귈 좋은 기회’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축구가 성매매와 연결된다는 사실에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연합(EU), 독일 정부는 성매매에 나선 여성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나머지 인신매매 및 불법 성매매 근절을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독일은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세금·의료보험료·연금까지 납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이 전국 24곳을 ‘성매매 적색지역’으로 정하고 대대적 단속에 들어간 현실을 보자니 독일 매춘업이 비교된다. 아무리 단속해도 근절되지 않는 게 매춘이다. 단속을 강화하면 장소를 옮겨 또 다른 ‘적색지역’을 형성한다.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이라는 매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창(男娼)도 버젓이 생긴다. 과연 인간의 욕정은 끝이 없는가. 독일이 성매매를 합법화한 이유를 알 것 같다. / 임병호 논설위원

혈압 올리기

병역면제 수단으로 과거에는 신체를 훼손하는 외과적 수법을 많이 썼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는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손가락 끝마디를 잘랐다. 1960년대는 ‘석회가루 마시기’가 유행했다. 결핵환자처럼 X레이 사진이 하얗게 나와 한때 유행했다. 1970년대의 ‘쇳가루 바르기’는 신체검사 전 가슴부위에 쇳가루를 바르면 X레이 폐 사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나타났다. 1980년대말과 1990년대에는 스포츠선수들이 고의로 무릎연골을 제거하고 면제를 받으려 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일부러 몸에 문신을 해 병역면제를 받으려 했다. 내과질환쪽으로 병역면탈의 루트가 ‘개발’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위장 사구체신염’이 대표적인데 개인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소변에 단백질 성분의 약물과 피를 섞어 제출하는 수법이다. 종합병원에서는 신장내 크레아티닌 수치를 높이기 위해 다량의 커피를 물에 타서 검사를 앞두고 계속 음용하는 방법이다. 병무청 재검에서는 약물과 자신의 피가 섞인 액체를 요도에 주사로 주입, 결과를 조작함으로써 사구체신염 판정을 받고 병역을 피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을 쓴 병역 면탈자들은 2004년 적발돼 모두 사법처리됐다. 일어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혈관미주신경성 실신’(Vasogal Syncope)이라는 희귀병이 병역 급수를 조작하는데 이용됐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는데 이번엔 신검 때 혈압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신검 하루 전 1.5ℓ들이 간장 한 병을 마시는 수법이다. 간장을 마신 뒤 목이 말라 많은 물을 많이 먹으면 인체특성상 일시적으로 혈압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신검 하루 전날 하루 종일 생활혈압계를 착용한 상태로 밤을 새워 생체리듬을 떨어뜨리고, 혈압을 측정할 때 배와 팔에 힘을 주는 방법으로 혈압을 높이는 것은 흔한 수법이다. 군의관(4급) 대신 공중보건의(5급)로 빠지려고 혈압측정 전에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약물을 복용하는가 하면, 혈압 측정 전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제자리 뛰기나 침대에 엎드려서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는 수법으로 혈압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심부전 치료제인 ‘디기톡신’이나 항암제인 ‘사이클로스포린’등 혈압 상승 약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병역을 피하려고 요리조리 잔꾀를 쓰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한국땅에선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어 열풍

“언어는 어느 무엇보다 탁월한 무기이며 원자폭탄보다 무섭다”고 작가 게오르규가 그의 작품 ‘대학살자’에서 말했다. 언어의 힘은 총칼에서 나오는 군사력보다 강력하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라는 21세기엔 더더욱 언어의 힘이 막강해진다. 언어 자체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자원이기 때문이다. 국력이 클수록 그 나라 말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고,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나라 국력이 커가게 마련이다. 오늘날 지구촌이 쓰는 언어는 대략 4천~5천개로 이 중 사용자가 100만명 넘는 언어가 148개, 10만명 이상인 언어가 396개라고 한다. 사용 인구에서 1위는 단연 중국어다. 세계 60억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쓴다. 2위는 모국어와 공영어 사용자를 합쳐 8억~10억명에 이르는 영어다. 한국어는 남북한 인구가 7천500여만명이라면 13~15위권이다. 우리 교역규모가 세계 12위, 경제규모(GDP) 11위인 것을 생각하면 ‘언어국력’이 경제력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7일부터 10일까지 국빈 방문한 몽골에 한국어 배우기가 한창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그만큼 신장했다는 증거다. 몽골 국립대, 울란바토르대 등 12개 대학이 한국학 또는 한국어과를 개설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대는 목사인 윤순재 총장이 1993년 몽골에 세운 ‘한국어학당’이 발전한 것으로, 2002년 종합대로 승격됐고 현재 16개 학과 1천6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몽골에서 한국어 또는 한국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수가 2천500여명, 한국 체류자까지 합치면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몽골인은 수만명에 이른다. 노 대통령이 8일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한국학 및 한국어를 전공하는 몽골 학생들을 만나 ‘자유와 평화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을 강조했다. 해외순방 중 현지인들과 통역없이 한국말로 장시간 대화하기는 처음인데 몽골 학생들은 유창한 한국말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서 노 대통령은 “(몽골 학생들이)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는데, 한국말 배우는 것이 손해가지 않도록 , 반드시 좋은 기회가 되도록 국가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격려했다. 1231년부터 1258년까지 28년 동안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 고려인들이 국운을 걸고 대몽항전을 펼치게 했던 몽골이 지금은 국익차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흐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英文사대주의

정부나 자치단체의 용어에 영어가 갈수록 더 범람한다. 보편화된 외래어와는 다르다. 도대체 이해할만한 계층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의심스런 영자 단어를 마구잡이로 쓴다. ‘독도 태스크포스’ ‘수도권 패키지’ ‘로드맵’ ‘컨셉’ ‘글로벌 인재’ ‘경영마인드’ ‘컨설팅업체’ ‘스킨십’ ‘마케팅’ 등 다 열거하기엔 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담화’나 ‘대담’이라고 하면 될말도 ‘컨버세이션’이라고 하기가 일쑤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판교기술마을’이나 ‘판교기술단지’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굳이 영어로만 쓴다. 한 때 축구에서 우리말 쓰기 일환으로 코너킥을 ‘구석차기’ 프리킥을 ‘놓고차기’ 등으로 쓰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국제경기종목의 공용어까지 우리말로 쓰는 것은 되레 치졸하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공문서 주요내용이 대한민국 말보단 영·미 말이 판을 치는 상황이니 이건 또 무슨 변괴인지 알 수 없다. 꼬부랑 말이나 꼬부랑 글씨로 써야 권위가 있다고 여긴다면 이야말로 사대주의적 문화사상이다. 그런 영문 표기의 남용을 해득하지 못하는 국민층은 위화감을 가질 게 뻔한데, 아마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정부나 관가에서 이렇다 보니 사회도 덩달아 영자 간판이 넘쳐난다. 예컨대 ‘통닭튀김집’이라면 될 것을 굳이 ‘치킨센터’라고 쓴다. 무슨 의상실 같은 것은 으레 꼬부랑 말을 붙이는 걸로 됐다. “남조선 길거리를 보면 완전히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것을 알 수 있습네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녘선수단 응원차 왔던 미녀군단의 한 대학생이 했던 말이다. 자주나 반미를 입버릇 삼는 사람들이 영문표기라면 사족을 못쓰고 즐기는 것을 보면 그도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굳이 영자가 아니어도 예쁜 우리말로 쓸 수 있는 말이 많다. 과다한 영문표기 추방운동을 제의한다. /임양은 주필

젊은이들에게

어제 ‘어버이 날’을 어떻게 보냈는 지, 빨간 카네이션 꽃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렸는가 그 것 좋지. 더 좋은 것은 마음의 꽃이지, 생화든 조화든 없어질 카네이션 보다는 영원히 살아있는 마음속 카네이션, 그것이 부모님을 위한 참 꽃이지. 마음의 참 꽃을 형상의 겉 꽃으로 표현했는지, 참 꽃은 없으면서 겉 꽃 치레만 했는지를 자식들은 모를 줄 알겠지만 부모들은 다 알지. 부모님 모시고 외식을 했는가 그것도 좋지. 좋아하시는 별미를 나들이 삼아 사드리는 건 좋은거야. 하지만 부모는 값비싼 별미만 좋아하는게 아니야 푸성귀 하나라도 부모가 좋아하는 식성따라 챙겨드리는 평소의 성의가 더 고마운거지. 여느 땐 관심도 없다가 어버이날이라고 ‘반짝 효심’으로 갑자기 갖는 외식이 부모는 오히려 서러워 목이 메어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미소를 짓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렸는가 그도 좋지. 하지만 자식이 준 용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 그 보다는 처 자식까지 둔 자식이 독립을 못해 이 구실 저 구실로 부모 돈 뜯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부모를 위하는 참 마음이지. 부모가 모질게 마음을 다그쳤다가도, 그래도 모질지 못해 돈을 자식에게 뜯기고는 돈을 가져간 자식도 잘 못된 채 노후자금만 없앤 부모가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런 노인들이 많은 게 이즈음 세태야. 예전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득을 보여주는 걸 효도로 쳤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야. 자식이 부모에게 폐를 안 끼치는 것이 현대사회의 큰 효도야.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보아 이러하지) 부모들 입장에서는 자식들이 지네 식구들 건강하고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면 더 바랄것 없는 효도로 알지. 한 마디로 젊은이들은 부모속 썩히지 않는 것을 으뜸가는 효도로 알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야./ 임양은 주필

고흐의 유작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파리 화단에서 활약하다가 설흔일곱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다. 정열적 색채의 노랑 해바라기를 자화상처럼 그리길 좋아해 ‘태양의 화가’로도 불리운다. 감수적인 선율, 극력한 색조, 적극적인 화풍은 광기가 서릴 정도다. 1900년대 초 프랑스의 반아카데미파 화가 마티스 등이 굵은 선으로 대담하게 단순화하는 혁신적 화풍이 시작된 것이 야수파의 등장이다. 고흐의 파격적 화풍은 사후 10여년만에 본격화한 야수파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얼마전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서 4천30만 달러(380억원)에 팔린 고흐의 그림 ‘아를르의 여인, 마담 지누’는 1890년 작품이다. 그러니까 말년작으로 파리 근교 아를르에 살면서 자주 찾았던 카페의 여주인이 모델이다. 그러나 당시엔 고흐의 화풍이 인정을 받기는 커녕 되레 비판이 혹독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였고 육체적으로 불행했다. 처음엔 농민이나 직공 등을 그리길 좋아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소시민층을 옹호했던 것 같다. 생전엔 가난뱅이 화가의 그림이 사후 116년만에 4천30만달러에 팔린 것을 보면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세계다. 팔린 돈의 100분의 1, 아니 그보다 더 적은 돈이라도 살아있을 적에 고흐에게 있었더라면 요절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독특한 화풍만큼 성격 또한 괴팍하여 타협을 몰랐던 고흐는 가난과 신병을 어쩌면 자학적으로 즐겼다. 처음에는 사실적 화풍을 지녔다가 인상파에 정진하면서 돈의 유혹으로 다시 사실적 화풍을 요구받았으나 끝내 거절했다. 말년에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태양의 화가’ 고흐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가운데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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