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금 집사면 낭패’라고 한다.(청와대) 이런 말을 곧이 들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아마 청와대 식구들 중에도 믿지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탓도 많고 탈도 많더니 이젠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나온다. ‘지금 집사면 낭패’라니, 집없는 서민들은 듣기만 해도 화가 더 치민다고 한다. 집살 돈은 고사하고 먹고 살기에도 바쁜 판이니 청와대 말은 갈수록 약만 올린다는 서민들의 분노가 높다. ‘거국내각 구성의 용의가 있다’(청와대)고 한다. 내각책임제도 아닌 대통령책임제에서 거국내각을 하면 무슨 소용인가, 칼자루는 대통령이 쥐고 앉았는 데, 대통령 비서실보다 못한 내각이 뭐라고?’ 하는 냉소의 눈초리가 많다. 국정 파탄이 책임을 떠넘기려는 물귀신작전이라고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지방을 갔다’(청와대)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을 들러 막후 회동을 갖더니 호남지방은 왜 갔을까, 요지경속인 것은 김 전 대통령은 부산을 간 사실이다. 교차방문의 꿍꿍이 속이 신당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좌파정권 연임의 대명제가 맞아 떨어진 두 분의 이해관계가 얽혀 갑자기 찹쌀궁합이 됐다. 이런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은 실패가 검증된 햇볕정책의 재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노 대통령 못지않게 동분서주한다. “가만히 계시면 대접을 받을 터인데 공연한 욕심을 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시는 천방지축이던 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패하고 나서는 그 험구가 그래도 말같은 말을 내놨다. “선거 패배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다”라고 했다. 오만에 가득찬 평소의 면모와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내 탓이다’라고 한 얘기는 들어볼 수가 없다. 심지어 ‘국민들 탓’이라고 까지 말했을 정도로 실정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 권력에 아무리 도취됐다 해도 이제 15개월 남았다. 오기만 부리지 말고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권력 중독 증후군이 너무 심하다. / 임양은 주필

안보불감증

독일 통일 협상 과정에서 서독 정부의 특사를 맡아 깊숙이 개입했던 호르스트 텔시크 박사가 “북핵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데도 한국 사람들이 너무 평온한 것에 놀랐다”면서 “2002년 월드컵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인파처럼 북한 핵실험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1977~1990년에 독일연방의회 기민당 원내대표를 지낸 후 정계를 은퇴, 독일 컨설팅회사인 텔시크어소시에이츠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한독(韓獨)산학협동단지(KGIT)연구센터 개소식 참석차 방한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꾸 반복되는 안보불안 상황때문에 안보불감증에 걸린 데다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에 체념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칼 요한 하그만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신임 회장도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고 해선 안 된다. 한국 밖에서는 북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유럽과 미국 회사 간부회의의 화제는 온통 북한 미사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킨 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덧붙였다. 국제정세에 밝은 두 외국인이 한국을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에서 “북핵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할 수 있을 만큼 현재로는 군사적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군과 국민, 한미동맹, 국제사회의 역량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견해다. 노 대통령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안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북핵의 위협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윤광웅 국방장관도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환수)로 생길 수 있는 군사력 공백 문제에 대해 “면허증이 있으면 포니를 운전하는 기사가 에쿠스도 (운전)할 수 있다.”고 국정감사에서 답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믿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지금 이 정권은 만성적인 안보불감증에 빠져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사형수’ 사담 후세인

‘아랍의 맹주’였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11월 5일 교수형 선고를 받았다. 이란과의 8년전쟁과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1차 걸프전 이후에도 살아남은 후세인은 권력의 정점에 선 지 23년 만에 이젠 사형수 신세가 됐다. 1937년 티크리트 지역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후세인은 양아버지의 구박을 못 이기고 외삼촌에게 도망가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반영(反英) 성향의 외삼촌 영향을 받은 후세인이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 것은 20세때 급진적인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한 바트당에 입당하면서부터였다. 후세인은 1968년 사촌인 아메드 하산 사담 장군이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1979년 7월 권력을 쥐기까지 후세인은 10년간 비밀정보기관을 이끌며 2인자로 버텼다. 당시 후세인이 ‘가짜’ 쿠데타 기도를 조작, 군부대 잠재적 라이벌 22명을 처형한 일화는 유명하며, 이같은 잔인성은 후세인의 철권정치의 바탕이 됐다. 반인류범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게 한 1982년의 두자일 시아파 148명 집단살해, 1987~1988년 할라브자 등에서 화학무기로 쿠르드족 5천명을 살해한 안팔작전 등은 후세인의 잔혹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후세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12세기 유럽의 십자군전쟁에 맞선 이슬람 영웅 살라딘으로 각인시켰다. 그러나 후세인은 1979년 이란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한 미국의 전폭적 지원하에 이란과의 전쟁을 개시하는 등 한때 친미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1차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과 멀어졌다. 후세인의 몰락은 이미 2003년 이라크전 개전과 같은해 12월 13일 고향 티크리트 인근 농가에서 미군의 ‘붉은새벽 작전’으로 체포되면서 예견됐다. 체포 당시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미군에 끌려나오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중동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재판 1년여만에 후세인이 사형선고를 받자 이라크내에서 “모든 이라크인들에게 가장 기쁜 날”, “후세인에 대한 사형선고는 불공정하며, 단지 미국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상반된 입장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러나 후세인의 사형은 반드시 집행돼야 한다. ‘한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범이지만, 수백명을 죽인 자는 영웅’이라는 말도 아닌 말이 또 유포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전시 작전통제권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외국과의 동맹사례로는 신라와 당나라, 조선과 명나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군사지휘권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다. 당 태종은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온 김춘추(604~661)에게 “두 나라(고구려·백제)를 평정하면 평양의 남쪽과 백제땅은 모두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살리라”고 맹약했다. 결국 나·당연합군은 양국의 실리를 챙겼다. 당나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고구려를 정벌했고,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남쪽의 고구려땅과 백제땅을 영토로 확보했다.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땅을 잃은 채 반쪽 통일에 그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공세에 견디다 못한 조선은 명나라에 지원요청을 했고, 명나라는 못이기는 척하며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우리 역사상 외국 지원군대가 국내에 들어 온 것은 명나라 군대가 처음이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땅에 들어온 뒤 조선 군사들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군사지휘권을 거머쥔 명군이 조선군을 지휘했고, 명군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조선군의 출동이 가능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명군 제독 진린의 방해와 제재를 받았다. 육지에선 명군 장수 이여송이 같은 역할을 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급박한 위기에 몰려 우리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내준 것과 같은 사례다.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배제하고 강화교섭을 벌인 것도 한국전쟁 당시와 흡사하다. 당사국인 조선은 옵서버에 불과했고, 명나라와 일본 양국은 제멋대로 협상을 벌였다. 그때 선조는 협상반대와 항전을 외치면서 영토회복을 도모했다. 비록 묵살되긴 했지만 다른 나라끼리 조선 땅을 분할 통치하려는 논의가 벌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최초로 외국군이 들어와 군사지휘권을 갖고 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당사국인 조선을 제외하고 전쟁중단의 외교교섭을 벌인 사례다. 한·미동맹을 맺은 한국과 미국이 지난 10월21일 제38차 안보협의회(SCM)를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에 합의함에 따라 작통권 전환에 본격적인 드라이브가 걸렸다. 작통권 환수 시기를 놓고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가져야 할 군사지휘권이다. 자주국방이 더욱 절실해졌다. / 임병호 논설위원

노부부(老夫婦)

여든네살된 노인이 일흔다섯살인 부인이 지병으로 숨지자 자신도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부인은 3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혈압에 당뇨병 합병 증세까지 겹쳤다고 한다. 노인은 식사 등 집안 살림을 살면서 거동을 못하는 부인을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다니는 등 병 수발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너희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너희들이 준 용돈을 쓰지않고 장롱밑에 모아놨다” 서울 사는 아들에게 노인이 전화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상은 남양주 현지발로 어제 보도된 ‘안타까운 思婦曲’ 제하 기사의 요약된 내용이다. 그 노인은 물론 사별의 외로움이야 더 말할 수 없이 컸겠지만,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대개의 노부부는 나이를 더 할수록 금실이 좋다. 인생황혼기의 고독도 고독이지만 젊었을 적에 서로가 고생시켰다는 미안한 죄책감에서 새로운 깊은 애정이 싹튼다. 안노인 보다는 바깥노인들이 이런 마음을 더 많이 갖는다. 유한한 수명에서 부부의 사별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정작 닥치고 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아무리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던 아내였을지라도 막상 이승을 떠나고나면, 몸져 자리 보전만하고 있어도 더 살았으면 좋았을 걸… 더 잘해주지 못했던 회한이 가슴을 치미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늙어 병들면 부부뿐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환자를 간병하는 사람은 거의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다. 자녀나 며느리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단 이유로 손님처럼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이지만 부모들은 그래도 크겐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웬만한 처지면 자식이 벌어서 준 용돈을 차마 쓰지못하고 되도록이면 모아두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남양주의 그 노인 분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노인도 젊어선 부모의 마음을 몰랐으니,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그런 부모 마음을 모른들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여든넷이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조만간 부인의 뒤를 따라 갈 것을 그토록 서둘러 간 것이 안타깝다./ 임양은 주필

‘노들강변’

세월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 중 경기민요의 하나인 ‘노들강변’만큼 절묘한 것도 드물다. 정서적 서사조의 노랫말과 세마치 장단 가락의 조화가 아주 잘 어울린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무정세월 한허리 칭칭 동여서 매여나볼까/에헤요 봄버들도 못믿으리로다/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무정한 세월을 못가게 버들가지에 동여매도 무심한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는 ‘노들강변’은 193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신불출 노랫말에 문호월이 가락을 붙였다. 신불출은 일제치하에 저항하는 해학적 만담으로 성가를 널리 떨쳤던 만담가다. 8·15 광복이 되고나서 얼마 안 되어 월북했다. 문호월은 독학으로 음악 수업을 하여 악단 단원으로 활약하면서 ‘노들강변’ 외에 ‘봄맞이’ ‘섬색시’ 등 신민요조의 가요를 작곡했다. 그의 고향 경북 김천엔 1980년에 세운 ‘노들강변’ 노래비가 있다. 노들강변은 노들나루 강변이다. 노량진의 옛 지명이 노들나루로 교통의 요지였다. 관아에서 배를 두어 서울에서 남행하는 행인이나 영호남과 기호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행인들이 한강을 건너도록 편의를 도모했다. 이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도승’(渡丞)을 두었다. 품계는 종(從) 구품(九品)의 미관말직이지만 당당한 벼슬자리다. 큰 나루터에만 두었던 벼슬이다. ‘도승’을 ‘도진별장’(渡津別將)으로 직명을 바꾼 것은 영조 때다. 세상사는 어수선해도 한치 어김없이 가는 것이 세월이다. 태평세대나 난세나 세월이 가는덴 다름이 없다. 오늘은 입동(立冬)이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 엊그제까지 시원하게만 느껴졌던 차가운 아침 세숫물이 싫어져 데운 물을 찾는다. 길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터워졌다. 집안 살림의 겨우살이 채비가 바빠졌다. 이달도 어언간 보내면 올 마지막 한달인 12월이다. 없는 사람 살기엔 어려운 것이 겨울이다. 하지만 겨울도 한 철이다. 노량진 옛 노들강변엔 지금도 버드나무가 있다. 한강수처럼 흐르는 세월을 버들가지에 묶어둘 수는 없어도,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는 새봄은 어김없이 또 온다. 희망을 억지로라도 갖고 산다. 희망은 따먹는 다 익은 열매이기 보단, 잘 익도록 열매를 가꾸는 것이 행복을 일구는 길이다./ 임양은 주필

말 같잖은 말들

말 같지 않은 말이 마구 쏟아지는데 요즘 청와대서 나오는 소리가 이 모양.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여당의 정치공세’라고. 외교안보 라인의 코드 개각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 등의 위기관리내각 구성 요구에 김만수 청와대 대변이 이렇게 말한 것. 듣다 듣다보니 이젠 별 희한한 소리를… 정권과 더불어 가는 집권당에 정치공세를 한다고 우기니, 야권의 듣기싫은 비판을 걸핏하면 ‘정치공세’라며 얼버무리던 수법이 정권내의 듣기싫은 충고까지 버릇되어 옮은 모양이지만 일찍이 역대 정권에선 듣지못한 소리. 부동산 문젠 가관.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아닌 밤중에 총두께식 신도시 발표로 하룻밤 새에 억대 이상 뛰는 아파트 가격 폭등 사태에도 ‘나는 부동산 전문가’라며 큰 소리 치는 가운데 나온 청와대 진영의 혼선이 괴이. 김수현 사회정책 비서관은 “8·31 부동산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것이나 단기적으로는 실패했다”며 체면치레의 ‘장기’ 단서 꼬리표를 붙인 채 실패를 사실상 시인.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또 국감의 부동산 추궁에서 “부동산 전문가냐?”는 질문에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북 핵 실험을 둔 말은 도대체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헷갈리기가 일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간첩단 사건은 유감이지만 간첩이 오갔다 해서 햇볕정책이 실패해다고 보지 않는다. 동맹국 사이에도 간첩은 오간다”는 말은 말을 구성한 세 구절이 완전히 상충되는 모순. 결국 간첩이 오더라도 계속 퍼주겠다는 건대 이게 어느 나라 장관인지 의심되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안보위협 과장 말라면서 “북한이 핵 실험했어도 군사균형 안 깨진다”며 대화 거부하는 대통령은 앞으로도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 누가 대화를 거부해야 한다고 했나? 문젠 상호주의가 아닌 햇볕정책 같은 맹종주의 대화가 오늘날의 핵 실험 사태를 야기. 더우기 한 방이면 수십, 수백만 명이 죽는 핵에도 “균사균형 안 깨진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근거를 제시해야.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소리가 없을진 몰라도 보통사람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사람들로서는 무책임하기가 짝이 없는 소리들. / 임양은 주필

인류최고 베스트셀러

구약성서는 구전으로 전해 오다가 기원전 1천년께 ‘토라’라고 하는 모세5경이 일단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이후 기원전 6~7세기 예언서와 역사서가 히브리어로 기록되면서 오늘날의 구성을 갖췄다. 기원전 3세기께 그리스어로 다시 번역됐는데, 이것을 통칭 ‘‘70인역 성서’라고 한다. 신약성서는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집필됐다. 인류에게 익숙한 성서의 이름은 대부분 ‘70인역 성서’에서 비롯됐다. ‘창세기’는 ‘창조’, ‘시편’의 제목도 ‘손가락으로 뜯다’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바이블’이라는 단어 역시 ‘두루말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구약과 신약 성경들이 포함된 현재 형태의 성서가 등장한 때는 4세기 후반이다.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번역본이 그것으로 성서의 텍스트는 그후 1천여년간 큰 변화없이 보존됐다. 특별한 일들도 있었다. 11세기에는 양손으로도 들수 없을 정도로 필사본 크기가 커졌는가 하면, 13세기엔 거꾸로 아주 자그마한 휴대용 성서가 주류를 형성했다.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책들 중 하나인 그림성서도 등장했다. 이미 사어가 돼버린 라틴어 대신 일상언어로 성서를 번역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났지만 기존 교회에 의해 엄격히 제지당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서의 역사는 곧 번역의 역사가 됐다. 사람들은 성서를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성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도입된 이래 어떤 텍스트보다 많이 제작되고 보급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세계적으로 매년 평균 2천500만부가 반포되는 ‘가장 위대한 책’이다. 세계 언어별로 보면 2천403개다. 우리나라에서만도 170만부가 반포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성경을 “지나간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내다보며 지혜를 터득해 온 창”이라고 말했고, 평론가 조지 스타이너는 “하나의 책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장 8절이다. 성경 책장을 넘기다보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씀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빛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전직 대통령들의 건강

최규하 전 대통령이 ‘급성심부전’으로 10월22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후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전두환(11~12대), 노태우(13대), 김영삼(14대), 김대중(15대) 전 대통령이 칠순과 팔순의 고령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노태우(74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 수술을 받은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달 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을 때도 응하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정기진료를 받는다. 등산이나 동네 산보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측근들이 전한다. 폐렴 증세로 입원했던 김대중(80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중 최고령임에도 최근 목포를 방문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친다. 지난해 신장기능 이상으로 주기적인 투석치료를 받던 중 폐렴증세까지 겹쳐 입원했지만 북한 핵 실험 이후 국내외 언론들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전남대와 서울대 등에서 강연도 했다.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고 손체조를 하는 정도로 건강을 관리한다고 한다. 김영삼(79세) 전 대통령은 워낙 건강체질인데다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아침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단다. 매일 아침 1시간 30분간 배드민턴을 치고 산행을 즐길 정도로 건강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학생 때부터 33년간 조깅을 하신 체질이어서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다. 전두환(75세) 전 대통령도 매일 아침 5시 이전에 일어나 마당에서 아령과 줄넘기로 체조를 하고 일요일 마다 동네에서 지인들과 배드민턴을 친다. 육사 시절 축구팀 골키퍼를 맡았던 전 전 대통령은 지금도 건강엔 문제가 없다. 특별한 지병도 없고 감기도 1년에 한두번 앓을까 말까하는 정도란다. 재임시절, 누구랄 것 없이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생 인정 많은 국민들이다. 4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지금 무슨 생각에 젖어 지내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업적 자랑하는 ‘자서전’은 말고 ‘참회록’을 집필하면서 장수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민노당)은 과거 운동권의 양대 산맥이었던 민족해방(NL) 계열과 민중민주(PD) 계열의 연합체적인 성격을 띤 정당이다. NL계열은 통일운동에 주력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인 반면 PD계열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노동운동의 주도성을 강조한다. 양측은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2002년 대선 때 중도파인 권영길 후보를 중심으로 세 확산을 시도했고, 현재까지 그 같은 골간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두 세력이 진보정당이란 명분 아래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감한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민노당이 정파간 대립으로 혼란을 겪는 이유다. 최근 북한 핵실험 파문이 불거졌을 때 ‘모든 핵을 반대한다’는 강령이 엄연히 있음에도 당 지도부 일각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자위적 수단”(이용대 정책위의장)이란 얘기가 나와 파문이 일었던 것도 이 같은 세력 구조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민노당을 친북 정당으로 규정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우선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 당원 7만여 명 중 소위 운동권이 아닌 당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NL계열의 대다수는 자생적인 통일론자여서 이른바 ‘주사파’(주체사상파)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권영길·김혜경 전 대표나 문성현 대표 등 중도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당 대표를 맡아왔다는 점은 적어도 민노당 내부에서 NL계열과 PD계열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노당의 인적 구성을 좀 더 깊이 분석해보면 사실 오해의 소지가 없진 않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친북’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PD계열이 다수이지만, 당원들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된 최고위원은 NL계열이 많다. 더욱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NL계열 내에서 주사파가 적지 않은 세를 확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민노당 NL계열의 일부가 ‘주사파’에 가깝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민노당은 국회 의석 9석을 가진 엄연한 대한민국 제도권 정당이다. “북의 추가 핵 실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사를 전하고 핵무장 해제를 설득하겠다”며 평양에 간 민노당 문성현 대표와 권영길 의원단 대표 13명의 언행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에 들러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시계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손목시계를 부쉈다. 정부와 함께 있다가 그만 참모회의 시각에 5분을 지각하게 됐다. “이보게! 내 시계가 늦은 건가?” 히틀러는 회의장에 들어서자 마자 이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미리 분침을 늦춘 시계를 옆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풀어 내동댕이 쳤다. 스위스제 시계였다. 히틀러는 1945년 5월 연합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직전 지하 벙커에서 그 정부와 함께 권총 자살했다. 그 무렵은 시계가 무척 귀했다. 신사의 사치품이 시계였다. 1960년대까지도 귀했다. 식당에서 외상이 안통하면 으레 시계를 잡히곤 했다. 유별난 시계도 아니다. 그냥 보통 시계인데도 시계가 그만큼 귀중품처럼 취급됐다. 손목시계만 귀한 게 아니라 벽시계 같은 것도 귀했다. 지금은 흔해빠진 게 시계다. 이런 시계, 저런 시계 할 것 없이 생활 주변에 널린 게 시계다. 명품 시계가 아니고는 시계를 외상으로 저당잡을 음식점이 있을 수 없다. 아니, 명품시계라도 안잡을지 모른다. 가짜 명품이 많은 탓도 있지만 시계 자체가 귀중품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핵 실험에 따른 대북제재결의에서 사치품 거래 중단이 포함됐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나라에 웬 사치품인가 싶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지만 그래도 좀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스위스가 유엔 제재에 따라 대북수출 금지 품목으로 시계를 들고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스위스제 시계는 세계 최고의 명품이다. 평양정권은 스위스 시계를 무던히도 좋아했던 것 같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동안만 해도 약 240억원에 해당하는 2천400만달러 어치를 사갔다는 것이다. 시계 개수로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스위스 시계가 비싸긴 해도 꽤나 엄청난 분량일 것이다. 시계란 시간만 잘 맞으면 그만이다. 요즘 시계 치고 시간 잘 안맞는 시계는 없다. 명품 시계 선호는 일종의 사치병이다. 선민의식 일지도 모른다. 설마 누구처럼 스위스 시계를 체면 치레로 일부러 내동댕이 치진 안했을 것이다. 선물용 하사품으로 스위스 시계가 많이 쓰인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로봇시대

1923년 체코의 작가 차펙이 쓴 ‘인조인간’이라는 희곡에서 로봇(Robot) 개념이 시작됐다. 로봇의 어원 역시 체코어로 ‘일하다’는 뜻을 지닌 로보타(Robota)에서 유래된 것이다. 초기 로봇은 전기와 자기를 이용했다. 수동식이었던 것이 컴퓨터문화가 발달하면서 자동식으로 전환했다. 이제 인공지능까지 갖추게 됐다. 로봇 의사의 정교한 수술은 선진국의 실험단계를 지나 조만간 일반화 할 것이다. 간병인 로봇 또한 대중화가 그리 멀지 않다. 각종 로봇이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경비병 로봇이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시력이 뛰어난 경비병 로봇은 일정 거리에 들어온 적을 향해 빗발같은 자동사격이 가해진다. 명중률이 백발백중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가 경비병 로봇을 두고 있다. 연예인 로봇이 개발됐다. ‘에버투 뮤즈’(Ever-2 Muse)로 불리는 신장 165㎝ 체중 60㎏의 이 20대 미인은 여가수다. 유감스럽게도 입맞춤 노래를 하는 가수지만 춤 실력은 대단하다. 수 많은 다양한 관절로 구성되어 섬세한 감정 표현과 함께 간단한 대화도 한다. 세계 최초의 이 연예인 로봇은 국산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4억원을 들여 제작했다. 얼마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로보월드 2006’ 개막식에서 ‘눈감아 줄게요’라는 발라드풍 노래를 춤과 함께 립싱크로 불렀다. 이러다간 배우도 로봇 배우가 안 나온다 할 수 없다. 특히 배우의 위험한 장면을 대역하는 스턴트 맨을 대신할 로봇 스턴트 맨 출현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언젠가는 로봇 정찰병, 로봇 파일럿도 나올 수가 있다. 가장 일상화할 가능성이 많은 게 산업 로봇이다. 각종 생산라인은 상당부분 이미 자동화하였다. 여기에다 장차 자동화 생산라인마저 사람이 아닌 산업 로봇으로 관리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만큼 일자릴 잃는다. 사람이 로봇에 밀려나는 시대가 안 온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이만이 아니다. 로봇은 사람이 조종하는대로 움직인다고 하여 남의 조종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가리켜 로봇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봇의 인공지능 발달은 장차 언젠가는 로봇이 사람을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공상영화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로봇과학이 발 빠르게 발달한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인간생활을 향상시키는 반면에 인간생활을 위협하기도 한다./ 임양은 주필

번호판이 네 가지

자동차 번호판은 자동차의 족보다. 무엇보다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번호판이 가지 가지다. 자가용의 경우 우선 시·도명이 적혀있는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된 지역번호판이 있다. 2004년 1월 전국번호판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기존의 번호판이다. 기존의 지역 번호판에 이어 나온 새 전국번호판 역시 바탕은 초록색이지만 시·도 표기를 없앴다. 그런데 새 전국번호판 디자인이 엉성하다는 네티즌의 비난이 번호판이 나오자마자 빗발쳤다. 건설교통부 실무자들이 도안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건교부는 이래서 그동안 준비해온 새 전국번호판을 또 만들었다. 흰 바탕에 검정 글씨로 번호를 새긴 길쭉한 모형의 번호판이다. 세련된 유럽형의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오는 11월부터 새 차에는 이 번호판을 달도록 했다. 한데, 이게 또 문제가 생겼다. 길쭉한 번호판을 달 수 있도록 범퍼가 새로 설계된 차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존의 차종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차종까지 유럽형 번호판을 달도록 하려면 자동차업계의 부담이 너무 커 건교부는 결국 또 하나의 번호판을 만들었다. 기존의 크기와 같은 그러니까 색상 등은 유럽형 번호판과 같아도 길쭉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기존 차종의 새 번호판을 만든 것이다. 이러므로 오는 11월부터는 흰색바탕의 두 가지 새 번호판이 쓰이게 되어 기존의 두 가지 번호판과 함께 무려 네 가지 번호판이 달린 차량이 거리를 누비게 된다. 이 무슨 혼돈인가, 웬만한 사람은 헷갈리기 마련이다. 알아보기 쉽도록 하는 자동차 족보의 기능을 제대로 다 한다할 수가 없다. 건설교통부는 명색이 중앙정부 부처다. 중앙 부처에서 하는 일이 이 모양이다 보니 이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고달프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일들이 안일해도 너무 안일하다. 이러고도 누구 하나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네 가지 자동차 번호판이 굴러다니는 나라가 우리 말고는 다른 나라엔 그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심히 창피한 노릇이다. / 임양은 주필

성폭력 사건 보도 문제점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공공성보다 선정성이 짙다”는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지적을 우리 언론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민우회가 서울에서 발행되는 6개 일간지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성폭력 관련 기사 전체를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수긍을 안할 수 없다. “발바리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 “‘발바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서울 발바리’도 잡아라” 등 ‘발바리’란 말을 사회면 가십난에서 자주 썼는데 가해자의 속칭인 ‘빨간 모자’ ‘산다람쥐’ ‘ 발바리’ ‘원조 발바리’ 등은 경찰이 검거 실적을 발표하면서 언론 보도에 ‘먹힐’것을 겨냥해 부풀려 놓은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흥미 본위의 속칭을 남발하는 이런 보도는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희화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피해자에게 명백한 폭력인 사건을 남녀 사이의 연애 관계, 짝사랑이 빚은 결과 등으로 묘사한 것도 그렇다. 예컨대 “성인이 되면 (피해자와)결혼하려 했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옮겨 써 폭력과 성애를 구분하지 않는다. “옷 위로 살살 자극을 주다가…” “처녀막이 파열됐다” “최 의원에게 가슴을 잡힌 여기자”등은 불필요하고 선정적인 묘사다. 소설에서나 나올 문장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모가 이혼해 결손가정에서 생활해 온 12세 소녀가 가출했다가 끝내 성폭력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보도는 성폭력 피해가 가정 환경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왜곡한 기사다. 성폭력으로 피해를 본 것을 ‘상태가 나쁘거나 타락했다’는 사전적 의미인 ‘전락’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다. 성폭력은 극악한 자들이나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해서 뿌리 뽑힐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피해자의 82%가 ‘아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조사에서 나타나듯 성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비교적 흔한 범죄인데 “딸 키우는 죄 어찌하면 좋습니까” “부모가 자녀들에게 수상하거나 낯선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교육을 해야 한다”는 등 보도는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라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 줄 수 있다. 민우회가 이달 말 발표한다는 ‘성폭력 보도 기준’을 언론인들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國旗와 國歌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0년대에 국기 강하식이란 게 있었다. 오후 6시가 되면 누구나 하던 일, 가던 길을 멈추고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다. 특히 관공서에선 예비군 세 명이 국기 게양대에서 태극기를 향하여 거수경례를 하였고 내려진 태극기는 국기함에 정중히 보관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따라 나왔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1968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가 자발적으로 만들어 보급한 것이 시초다. 이후 당시 문교부가 1972년 8월 9일부터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시행토록 했다. 1980년엔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실시하도록 했고, 1984년 2월에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지정할 정도로 강화됐다. 그러나 이 규정은 시대 변화에 따라 1996년 개정돼 국기 강하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맹세문 낭송은 생략하도록 했다. 미국 공립학교 학생들도 매일 수업 시작 전에 “나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 나라입니다”라는 맹세를 일제히 낭송한다. 이 충성맹세는 침례교 목사인 프랜시스 벨러미에 의해 1892년 처음 제정돼 1942년 법률로 공식 승인됐다. ‘하느님 아래’라는 구절은 없었지만 1954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으로 의회 결의에 따라 삽입됐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 충성맹세가 법률로 공식 승인된 이듬해인 1943년 ‘아동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선 이 판결이 대부분 무시됐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국가 강하식을 하지 않지만 각종 행사에선 국민의례를 통해 ‘국기에 대한 맹세’는 한다. 애국가 제창도 보통 1절만 하고 국민의례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 앞에 개인은 없다’는 국가지상주의는 위험하지만 국기와 국가를 경시해선 안 된다. 국가가 존립해야 개인이 살고, 개인이 존재할 때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계량단위 위반 과태료

산업자원부가 내년 7월부터 비(非)법정단위를 계약서나 광고, 상품 등에 사용하는 기업이나 업소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6월까지 홍보를 한 뒤 7월부터 단속을 벌여 ‘㎡’ ‘m’ ‘g’ 등 법정계량 대신 ‘평’ 근’ ‘자’ 등의 비법정계량단위를 사용하면 처벌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점이 적지 않다. 세계 각 나라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길이, 무게, 면적, 부피 등에 관해 다양한 계량단위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척관법(尺貫法), 1790년 프랑스 파리과학아카데미가 만든 미터법,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야드·파운드법이 대표적인 예다. 1875년 체결된 국제미터협약은 전 세계가 미터법을 사용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계량체계가 도입된 것은 1902년 궁내부(宮內府)에 도량형 사무를 관장하는 평식원(平式院) 설치가 시발점이다. 1905년 대한제국 법률 1호로 제정된 도량형 규칙은 척관법을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과 혼용토록 했다. 이때 척관법에서 길이의 기본단위인 자 또는 척(尺)을 0.303m, 무게의 단위인 관(貫)은 3.75㎏으로 규정했다. 이후 1961년 제정된 계량법은 거래와 증명에 미터법만 쓰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동산중개업의 88%가 ㎡ 대신 평을, 귀금속판매업의 71%가 3.75g 대신 1돈쭝을 사용한다. 비법정단위를 사용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건 1961년 계량법에서 국제단위계(미터법·SI)를 법정계량단위로 채택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실생활에서 여전히 여러 단위가 함께 쓰여 혼란이 크기 때문이란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써야 한다는 정부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비법정계량단위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지기’의 경우 경기지역에선 1마지기가 495㎡이지만 충청지역에선 660㎡, 강원지역은 990㎡다. 식품을 파고 살 때 쓰는 ‘근’만 해도 1근이 쇠고기는 600g이지만 채소는 400g이다. 그렇다 해도 산자부의 자세는 마뜩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척관법을 잘 모르는 것처럼 시간이 가면 법정계량단위는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중고령 세대의 감각을 존중, 전통 단위를 병기토록 해야지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건 행정만능주의다. ‘삼척동자’를 ‘91㎝ 동자’로 쓸 수는 없잖은가./ 임병호 논설위원

의료정보화사업

환자의 진료를 범인 수사와 비유한다. 어디가 아픈가를 정확히 알아내어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정확한 진범을 가려내어 제대로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환자가 진료받던 병원을 옮기면 으레 되풀이 되는 것이 각종 검사다. 전에 진료를 받던 병원에서 진료기록부를 떼어다 주어도 소용이 없다. 환자가 이에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 이의를 제기하면 의사가 하는 말도 일리는 있다. 전의 검사나 처방을 확인해야 정확한 진단과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의사가 진단한 병명이나 상태 등이 진범인 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가령 오진한지도 모른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환자들 진료 내역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병원 간을 연결하는 보건의료정보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중 삼중으로 받는 검사를 중복으로 받지않게 된다. 연간 약 4조원의 의료비가 절감된다니 꽤 많은 돈이다. 그런데 반대론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개인정보의 누설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질병기록은 남이 알기를 가장 꺼리는 프라이버시에 속한다. 이런 프라이버시가 병원 간에 공유하는 의료정보화로 새어나가면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모양이다. 의료정보 누설은 고의로도 있을 수 있지만 고의와 상관없이 누설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정보화사업이 개운찮은 이유는 또 있다. 병원을 옮기는 것은 진료효과가 신통치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이 잘 낫고 있으면 굳이 병원을 옮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로 간 병원의 주치의가 전에 진료받던 병원의 각종 검사 등을 다시 확인 검사하는 것은 중복검사이긴 해도, 확인 안 하면 환자가 꺼림칙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보아 의료정보화사업으로 환자가 중복진료를 안 받게 하는 것을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문제점은 두 가지다. 개인정보 누설과 병원 간의 상호 신뢰 문제다. 개인정보 누설도 중대하지만 더욱 중차대한 것이 진료의 신뢰 관계다. 병원간 병원, 의사간 의사 간에 서로가 믿을 수 있는지가 솔직히 의문이다. 의료정보화사업은 이런 의료계의 신뢰 담보가 전제 조건이다. 충분한 검토와 많은 의견을 듣고 결정할 일이다./ 임양은 주필

가짜 외국박사

박사(博士)는 삼국시대의 벼슬 이름이다. 학문이나 전문기술의 권위자에게 이 벼슬을 주었다. 고구려의 태학(太學)박사, 백제의 오경(五經)박사, 신라의 국학(國學)박사 등 이밖에도 많은 박사가 있었다. 고려에서는 성균관, 사천대, 태의감 등에 박사의 벼슬 자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승문원 등에 두었다. 품계는 구품도 있었으나 대개 칠품이었다. 현대사회의 박사는 전문 학술에 관하여 연구가 깊고 일정한 업적을 올렸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학위다. 각 대학교 대학원위원회의 학위 논문 심사를 전공 부문에 따라 거친다. 예전처럼 박사가 귀하진 않지만 그래도 박사쯤 되면 일가견을 이룬 학자다. 꽤나 많은 것으로 알려진 ‘가짜박사’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들통나곤 하여 세인의 냉소거리가 되고 있다. ‘가짜박사’는 외국박사가 단골이다. 국내박사보다 외국박사가 더 행세하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속에 가짜 외국박사가 판을 친다. 이번에 알려진 가짜 외국박사는 미국 퍼시픽웨스턴대, 퍼시픽예일대, 코언신학대 그리고 러시아 극동예술아카데미 등 네 군데다.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학술진흥재단이 확인한 결과 자국에서도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받은 가짜 외국박사 중엔 석사 학위를 받은 지 1년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예도 있다는 것이다. 학적에 이름만 걸어놓고 돈 주고 가짜학위를 산 셈인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이름만 걸어놓은 재학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짜박사는 학문의 절도범이다. 형설의 공을 닦지않고 돈주고 가짜학위를 사는 학문의 절도행위는 가히 파렴치범이다. 학술진흥재단은 이 네 군데의 박사학위로 신고된 154명의 가짜 외국박사의 학위 인정을 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사람이 적잖은 모양이다. 대학 교수, 큰 교회 목사, 정부 산하기관 간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이들의 얼굴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 지 궁금하다. 외국박사의 국내 인정 절차에 대해 허점이 없는 보완책이 강구돼야 한다./ 임양은 주필

개성 ‘춤꾼’들

열린우리당의 난데없는 춤바람 시비가 요란하다. 지난 2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일행이 들쭉술 등을 반주삼은 오찬석상 무대에서 북측 종업원 미녀들과 어울려 춤을 춘 것이다. 원혜영 사무총장이 부채춤을 3~4분, 김근태 의장과 이미경 의원은 어깨춤을 1분여동안 춤춘 보도사진이 실로 가관이다. “딸 같은 아이들이 권해서…”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란 게 춤꾼 당사자들의 변이다. 짐작컨대 이날 점심을 빙자한 주연은 북측의 계략임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는 그쪽 종업원 미녀들이 감히 이쪽 사람들에게 춤을 강권할 순 없는 일이다. 김 의장이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다는 그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였는 진 잘 모르겠다. 어떤 분위기였던 북측 계략이 연출한 분위기만은 틀림이 없다. 집권당 지도층이 개성에서 분위기에 취해 춤판을 벌인 바로 그날 그 시각에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핵실험 성공 축하 군중대회가 열렸다. 운집한 군인 시민 등 10만 군중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쉬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 정부는 대북 제재 수위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미·중·일본은 유엔 안보리 결의 후속조치에 바쁘다. 이런 판에 덩실거리며 겉돈 집권당 지도층의 개성 춤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말 넋나간 위인들이다. 항우가 유방을 죽이려 했던 홍문연 잔치에서 벌인 검무는 호탕했으나 살기가 난무하는 춤이었다. 2차대전 때 파리에 입성한 나치 독일군이 베르사유궁전에서 프랑스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가진 무도잔치는 화려했으나 프랑스 점령정책의 시발이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개성공단행은 원래가 당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던 방문이다. 그렇게 만류해도 뿌리치고 기어코 가더니 사고를 치고 말았다는 자탄의 당내 목소리가 들린다. 북을 보듬는 것도 제 정신으로 해야 약발이 먹힌다. 주접 떨며 마냥 끌려가서는 체신머리만 더 잃는다. 북에 아양떤다고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북에 정색한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김 의장 일행의 아양은 ‘혁명’을 말하는 저들에게 기만 더 살려주었다./ 임양은 주필

캐디

골프장 경기보조원 ‘캐디’에게는 애환이 많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부 골퍼들의 무례한 언행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비신사적인 골퍼 유형으론 ‘치한형’ ‘몸매 감상형’ ‘ 과시형’ ‘오줌싸개형’ ‘작업형’ ‘깡패형’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강패형은 샷이 빗나갈 때마다 클럽을 집어 던진다. 그린에서 퍼트가 빗나가면 “네가 브레이크를 잘못 읽어서 그렇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잘 되면 제 실력, 잘못되면 캐디 탓’을 하는 골퍼들 때문에 캐디들이 골치를 앓는다. 작년엔 라운딩 하던 현직 은행장이 캐디의 다리를 걷어 찼고, 모 방송사의 드라마에선 캐디에게 노골적인 수작을 거는 장면이 방영돼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건 직장인으로서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이다. 캐디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으로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데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부당 해고나 산재 사고 등에 거의 무방비 상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경기진행 독촉 등 골프장 수입 증대에 직결되는 업무를 하고, 회사의 직접 지휘 명령을 받고 있으며, 사실상 회사가 직접 모집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캐디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평가했지만 그러나 ‘직장 생활’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한 골프장은 올해 신규채용을 하면서 기존 캐디 가운데 32살 이상, 키 162㎝ 이하인 사람만 골라 계약을 해지했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정년 35살 이상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만 받았다. 또 다른 골프장의 캐디는 “라운딩 도중 다쳐도 회사는 책임이 없고, 손님과 보조원이 일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휴가는 모두 무급이었고 심지어 고객이 골프채를 잃어 버렸을 때 캐디가 배상하는 골프장도 있다고 한다. 특히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2002년 이후, 사용자 쪽이 형식적인 계약 형태를 용역이나 파견 형식으로 바꾸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최근엔 직접 채용하는 형식을 피하기 위해 ‘캐디 양성학원’을 통해 취업 희망자를 알선 받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회사가 직접 뽑고 지휘하면서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건 법적으로 분명히 시비를 가려야 할 고약한 일이다. 캐디들이 계속 약자로 설움을 받을 순 없다. /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