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人事

대통령의 인사권이 고유권한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상한 사람들이 장관 자리에 앉은 예가 적잖다. 심지어는 O부 같은 부처의 공무원들중엔 X 같은 이상한 사람이 장관으로 취임하는 것이 마뜩해도 지나가는 ‘과객장관’이러니 하고 체념했단 소리도 들렸다. 대통령은 인사권을 이토록 고유권한이란 구실로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둘렀다. 대통령 선거 이후의 재보선, 지방선거 등에서 잇딴 열린우리당의 완패는 이 정권의 경기 불황 등 여러가지 실정이 겹친 가운데 또하나 꼽히는 것이 실패한 대통령의 인사다. 열린 인재 등용이 아니고 끼리끼리 나눠먹기식인 닫힌 인사라는 것이 세평이다. 국민을 의식한 장관 기용이 아니고 청와대 편의용 장관 기용으로 일관했다. 대통령이 민심 부담의 요인이 되어 선거마다 패배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선거에 지곤한 것은 대통령이 있는 당에 표를 주고 싶지 않았던 민심의 반영이다. 열린우리당이야 말은 집권 여당이지만 여당노릇 한 번 제대로 한 적도 없는 별 하릴없는 들러리 여당에 불과하다. 이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모처럼 당의 목소릴 낸 것이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퇴 압박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 불가론이다. 그런데 이도 역풍을 맞았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통령 인사권 흔들기는 국정의 누수’라는 경고성 메시지에 이어 친노파 사람들의 맹렬한 반격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가진 열린우리당 지도부 청와대 오찬회동 자리에서 ‘대통령 인사권은 고유권한’으로 거듭 확인됐다. 그러나 이를 알아야 한다. 고유권한이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고유권한을 잘못 행사하면 이의도 듣고 지탄도 듣는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사의를 밝힌 게 지난 2일이다. 법무부 장관 발령 때 함께 후임을 발표한다 해도 사표는 수리했어야 하는 게 순리다. 노무현 대통령은 엿새가 되도록 김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오기’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사표 수리도 장관 임명도 ‘오기인사’다. 민심으로부터 이래서 더 멀어진다./ 임양은 주필

북한의 폭우피해

대북 지원단체인 ‘좋은벗들’이 내는 소식지 ‘뉴스레터’가 북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실종자만 4천명에 이르고 “최종 집계되는 실종자와 사망자 수는 1만여명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뉴스레터’는 또 “북한에서 이번 홍수로 130만~150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 ‘좋은벗들’은 “미사일 발사를 시도해 정성들여 가꾸어 온 남북간 신뢰를 한번에 앗아간 북한 당국의 의도가 실망스럽고 밉지만, 현재 북한 수해 상황을 이런 마음으로만 볼 수 없다”며 인도적 지원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하여 자유아시아방송(RFA)은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주재하고 있는 알리스터 헨리 국제적십자연맹(IFRC) 동아시아지역 대표단 단장이 RFA와의 회견에서 인명피해 1만명설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헨리 단장은 “국제적십자연맹은 현재 국제기구로는 유일하게 북한 현지의 물난리 피해 주민들에게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7월말 현재 141명이 숨지고, 112명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아무튼 큰 수해를 입은 건 분명한데 북한은 대한적십자사가 지난달 26일 베이징에 있는 IFRC 동아시아 대표단을 통해 북한의 조선적십자회에 수해구호 지원 의향을 전달했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은 1일 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을 통해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선군혁명 총진군을 힘있게 다그치자”면서 “오늘 우리 당은 전체 인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더욱 높이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독려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데도 마다하면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하자면 전사회적으로 내부 예비를 적극 탐구·동원하고 절약투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내막이야 머지않아 드러나겠지만 수해를 입은 주민들만 딱하게 됐다. 그런데 국정원 전신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출신으로 대표적 강경보수파인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이 “동포애적 입장에서 김정일 체제와 인민과는 구별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주도해 (수해를 입은 북한 주민의)기초적 구호에 나서자”며 “북한 수재민들에 대한 의약품 및 생필품 지원을 정부에 공식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형근 최고위원의 행보를 북한 정권이 어떻게 판단할는지 궁금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승엽

‘스타’는 특히 스포츠세계의 스타는 단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보통 얘기하는 신데렐라는 더욱 없다. 피나는 훈련과 승부처의 냄새를 맡는 직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야구선수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바로 그렇다. ‘11년 3개월’, 이승엽이 프로 첫 홈런을 터뜨린 뒤 한·일 통산 400홈런을 때려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경복고를 졸업한 이승엽은 1995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 프로무대에 뛰어 들었다. 당시 이승엽은 좌완 투수였다. 그러나 얼마뒤 이승엽은 왼팔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선수로서 첫번째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승엽은 좌절하지 않고 타자로 전향했다. 프로데뷔 첫해인 1995년 5월2일 이승엽은 광주 해태(현 KIA)전에서 6회 솔로포를 쏘아 올리면서 홈런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승엽은 첫해 13개, 이듬해 9개의 홈런을 쳐낸 후 1997년 32발, 1998년 38발, 1999년 54발을 터뜨리며 한국 최고 거포로 우뚝 섰다. 특히 2003년 56발의 홈런을 쏘아 올려 오시다하루(玉貞治)가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신기록(55개)를 갈아 치웠고, 같은 해 6월22일 대구 SK전에서의 홈런은 26세10개월4일의 나이로 터뜨린 세계 최연소 300홈런 신기록이었다. 2003년 일본무대로 진출한 이승엽은 현지적응에 실패,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2005년 하루 1천번의 스윙과 삭발 투혼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좌투수가 나오면 벤치를 지키는 ‘플래툰시스템’의 수모를 겪으면서도 30개의 홈런을 폭발시켰고, 한신타이거스와 벌인 일본시리즈 4경기에선 홈런 3방, 6타점을 몰아치며 일본 전역에 이승엽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지난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홈런(5개), 타점(10개) 1위에 오르며 ‘한국 최고 거포’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 이승엽이 지난 1일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에서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400호의 홈런을 날렸다. 이어 401호 홈런, 2일에도 4번 타자의 방망이가 투혼의 불꽃을 피우면서 개인통산 홈런 402호를 기록했다. 이승엽의 500호, 600호 홈런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비상할 날도 머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겸손한 이승엽 선수! 한국의 자랑이다. 정말 장하다. 훌륭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우주 강국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2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도 ‘해상도 1m급’ 인공위성 보유국이 됐다. 우리나라가 아리랑 1·2호, 우리별 1·2·3호, 과학기술위성 1호, 무궁화위성 1·2·3호 등 모두 9기 위성을 자랑하는 세계 7위 위성보유국(상용위성 기준)으로 도약했다. 7월 28일 오전 11시 5분(한국시간 오후 4시 5분) 러시아 우주기지 플레세츠크에서 발사된 아리랑2호는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을 돈다. 한반도 상공은 하루에 2~3회 통과한다. 이때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를 찍은 영상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지상국으로 내려 보낸다. 위성에 달린 다중대역카메라(MSC)는 흑백으로 찍을 땐 사방 1m, 컬러는 4m를 한 점으로 사진을 찍어 보낸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차장에 있는 차량 숫자, 한강다리를 건너는 자동차대수는 물론 차종이 버스인지 승용차인지까지 구분할 수 있다. 평상시엔 지상 685㎞ 높이에서 움직이지만 필요에 따라 300㎞까지도 높일 수 있어 유사시에는 군사위성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2004년 북한 용천폭발사고 때 아리랑1호는 사고지역 사진을 찍어 피해가 났다는 사실 정도만 파악할 수 있게 했을 뿐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리랑2호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트럭으로 옮기는 경우 미사일 종류와 수량, 이동경로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보 획득의 독립은 전쟁 억지력과 직결된다.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북한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로 볼 때 상대방 특히 북한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를 미리 아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21세기는 우주시대이며 어느 나라나 공유할 수 있는 우주영역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0년까지 4기의 인공위성을 추가 발사할 계획인데 성공여부는 과학기술과 함께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 국가의 과감한 예산투입이 절대적인 조건이다. 아리랑2호 발사 성공에 이어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건 내년에 완공되는 고흥 우주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인공위성(과학위성2호)을 자력으로 발사하는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도 가능한 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첩보전 ‘미인계’

미국 영주권자인 우엔후창(55)은 월남 패망 때 사이공을 탈출한 보트 피플이다. 그의 베트남인민공화국 반체제 활동은 굳이 여기에 나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주목되는 것은 서울고등법원이 우엔후창을 정치범으로 규정, 베트남인민공화국에의 인도 의무를 배제해 석방케 한 사실이다. 우엔후창은 지난 4월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한국 경찰에 의해 체포됐었다. 베트남 정부와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그의 체포를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민공화국 정부는 테러리스트로 지목해 수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범은 일반 범죄인과 달라서 인도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서울고법의 판결이다. 법원의 인도 심사는 단심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곧 확정 판결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엔후창의 체포 과정이다. 미모의 여인과 함께 있다가 체포된 건 미인계로 보는 것이 그 계통의 관측이다. 이탈리아 국적의 베트남 여인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미국에 있는 우엔후창에게 접근, ‘협의할 일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곤란하니 한국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유인했다고 보는 것이 첩보 계통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베트남 정부 사람으로 판단되는 그 여인은 우엔후창이 체포되면서 안개처럼 사라졌다. 흔히 첩보활동의 미인계로 일반에게 정평이 난 것은 영화이긴 하지만 영국 첩보국의 007이다. 007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주변엔 이래서 항상 ‘본드걸’이 들끓는다. 007 시리즈 영화는 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 모델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특수부대 첩보장교로 눈부신 활동을 펼쳤던 피터 스미스 경이 그 주인공이다. 스미스 경은 지난달 14일 아흔두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본드걸’ 같은 미인계는 첩보전에선 필수 요건인 것 같다. 베트남 반체제 인사 우엔후창을 유인한 미인계 역시 같은 양상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본드걸’의 미인계 암약이 있을 법 하다. / 임양은 주필

미사일

창던지기나 돌던지기는 고대 근거리 무기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병기로 이를 적극 권장했다. 고대 중국에선 신무기로 투석기를 만들었다. 미사일(missile)이란 말은 원래가 던지는 무기란 뜻으로 쓰였다. 고대 근거리 무기가 원거리 무기로 개발된 게 현대 미사일이다. 로케트나 제트 엔진으로 추진되어 전파 관성 레이저 등에 의해 목표에 유도되는 첨단 병기다. 유도탄이라고도 한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이 있다. 핵 무기를 실어 폭발시키는 핵 탄두미사일이 또 있다. 그러나 공격이 있으면 방어가 있다. 이의 방어 무기가 마시일요격미사일이다. 고성능 레이더로 적이 발사한 미사일 비행 경로를 포착, 고속 전자계산기로 산출된 탄도를 쏘아맞춰 부수는 것이다.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기도하고 저고도에서 요격하기도 한다. 고속으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요격해야 하기 때문에 미사일요격미사일은 고가속의 발사가 요구된다.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로 조기 경보를 위한 미사일 탐지위성이 또 있다. 특히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한다. 발사를 분진 단계에서 적외선으로 탐지, 요격 태세로 들어가는 경보를 울린다. 미국 공군의 미다스위성이 이런 위성이다. 그런데 미사일의 비행 경로에 지표를 부여하는 미사일유도방식이 있다. 미사일 유도에는 지령유도, 프로그램유도, 호밍(homing)유도외에 이 세 가지를 종합한 유도방식이 있다. 미사일 발사엔 여러가지가 있다. 땅에서 땅으로 쏘는 지대지(地對地)미사일, 지대공(地對空)미사일, 공대지(空對地)미사일, 공대공(空對空)미사일 등이다. 미사일 잠수함은 해상이나 수중에서 바다 하늘 땅 등 자유자재의 목표물에 발사한다. 지난달 5일 새벽 북이 7발을 발사해 동해에 떨어뜨린 미사일은 지대지미사일이다. 거액의 개발비를 제쳐두고 발사 비용만도 600억원 상당이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군 당국의 추산이다. 인민은 굶주리게 하면서도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는 흥청망청이다. 핵무기에 이어 미사일로 협박하는 벼랑끝 도박전술의 끝이 안 보인다. 생존의 수단 치고는 너무 위태롭다. 어쩌다가 같은 동포가 이 모양이 됐는 지 걱정된다./임양은 주필

치우와 魃

중국 전설의 삼황(三皇) 중 한 분인 황제(黃帝)는 2천700년 전에 역법 도량형 잠업 등 문물과 제도를 확립, 인류의 문화생활에 기초를 닦은 것으로 전한다. 이 무렵에 있은 비의 신(神)인 괴물 치우(蚩尤)는 골칫덩어리였다. 장대비가 아니면 짙은 안개로 백성을 괴롭히기가 일쑤였다. 황제는 치우의 토벌에 나섰으나 풍신(風神)의 지원까지 얻어 반격에 나선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방향 가늠을 어렵게 하는 안개 타개의 신무기로 지남차(指南車)를 만들어 대처했으나 여의치 않은 황제는 불의 화신인 딸 발(魃)을 하늘에서 불러내려 도움을 청했다. 발은 추녀였지만 열기가 태양처럼 들끓어 짙은 안개를 무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비의 신인 치우를 맥못추게 만드는 막강한 힘을 가져 마침내 항복을 받아내어 그 행패를 저지하는 덴 성공했다. 그런데 발 또한 치우와의 싸움으로 힘을 소진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 머물러 그녀가 가는 곳마다 가뭄이 덮쳤다. 비록 하늘로 올라갈 힘은 쇠진하였지만 지상의 영향엔 여력이 있어 인간 세계에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이에 황제는 딸인 발을 연금하기도 했으나 곧잘 뛰쳐나와 가뭄을 일으킨 것으로 고사는 전한다. 가뭄을 한문으로 표현하는 한발(旱魃)의 가뭄발자 ‘魃’은 바로 황제의 딸인 불의 신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름철 동반자인 장마는 해마다 있다. 그렇지만 올 장마는 한달 넘어 너무도 많은 장대비를 쏟았다. 장마도 비가 덜오는 마른 장마가 있는 것에 비하면 이건 완전히 물벼락 장마였다. 너무 많은 희생속에 치른 것 같다. 그런데 장마끝에 가뭄이라고 농사에 지장을 주는 가뭄이 엎친데 덮쳐 잇달지 않을까 염려된다. 장마는 그쳤어도 태풍에 겹친 물벼락이 또 있을 수 있다. 치우와 발의 조화가 있기를 기원한다. 농사일, 사람 사는 일은 이래저래 대자연의 섭리를 넘어설 수 없는 것 같다./ 임양은 주필

영화 ‘한반도’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과 북한이 경의선 철도의 완전 개통에 합의했다. 그러자 일본이 100년 전 대한제국과 합의한 문서를 근거로 경의선 운영권이 일본에 있다고 주장하며 개통에 반대한다. 미국은 일본의 주장이 정당하다며 일본을 지지하고, 중국 , 러시아도 거기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일본은 자위대 함대를 동해 군사분계선 바로 앞으로 출동시키는 무력시위까지 감행한다. 대한민국 정부 안에서는 경제적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일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쪽과 그럴 순 없다는 쪽으로 편이 갈린다. 국무총리(문성근)가 전자를 대표한다면, 후자를 대표하는 건 대통령(안성기)이다. 고심하는 대통령 앞에 경의선 운영권 이양 문서에 찍힌 대한제국의 국새(國璽)가 가짜이며 진짜 국새는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 최민재(조재현)가 나타난다. 대통령은 진짜 국새를 찾을 특별팀을 만들지만, 국새가 나타나길 원치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가 주권을 세우려는 쪽과 강대국에 의존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쪽의 대결이 벌어진다. 영화 ‘한반도’는 국가 주권을 위협하는 외세와 맞서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세워가는 이들을 그린, 다분히 선동적인 이야기다. 영화는 최민재의 입을 빌려 과거든 현재든 “문제는 내부의 적”이라고 말한다. 강대국에 의존하고 살 수 밖에 없음을 강변하는 국무총리나 원로 정치인들의 대사가 이따금 섬뜩할 만큼 실감을 준다. 대통령이 해군 제독에게 교전권을 부여하는 등 가공된 적을 앞에 세워 강한 지도자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몇 곳의 연출이 국가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지만, 비약과 단순화는 픽션에서 불가피한 요소다. 영화 중 대통령을 현재의 대통령으로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전직 대통령 사진들 맨 끝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있으므로 그 건 아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를 조심하면서도 한국은 시도 때도 없이 건드린다. 정말 오락 영화라면 일본과 한번 교전하게 하고 휴전시킨 뒤 일본이 퇴각하도록 했을텐데 그건 못했다.”는 강우석 감독의 말처럼 영화 ‘한반도’는 한국의 정치·이념 지형에서 민족주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읽게 한다.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는 소식이 참으로 반갑다. / 임병호 논설위원

특수대학원

이른바 ‘특수대학원’은 ‘직업인 또는 일반 성인을 위한 계속 교육을 주된 교육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1조에 나온다. 하지만 ‘전문직업분야 인력의 양성에 필요한 실천적 이론의 적용과 연구개발을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전문대학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수대학원이 설립된 분야 대부분이 전문직업분야인 것을 감안한다면 말장난이지 싶다. 특수대학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헷갈려 한다. 차이를 물어보면 ‘학위과정의 차이’라고 답변한다. 특수대학원에서는 석사학위 과정밖에 없지만 전문대학원은 박사학위 과정까지 설치할 수 있다는 게 두 대학원의 정체성을 판가름짓는 요소라고 한다. 특수대학원이 전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으면서 대학과 교육 수요자 사이에서는 묘한 거래가 성립된다. 대학 입장에서는 전문대학원보다 ‘쉽게’ 가르치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돈만 있다면 ‘쉽게’ 배우고 학위도 얻어 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물론 전문지식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맺거나 정계진출을 위한 학력세탁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원개선팀이 내놓은 ‘대학원 교육 관련 참고 자료’를 보면 특수대학원은 우후죽순격으로 설립됐다. 2000년 642곳, 2001년 687곳, 2002년 727곳, 2003년 770곳, 2004년 792곳으로 5년 사이 150개교가 증가했다. 특수대학원이 늘어나는 게 나쁜 현상일 수는 없다. 일부 특수대학원들의 부실한 학사관리가 문제다. 출석을 강화하고 상대평가를 도입하는 등 강력하게 학사관리를 하는 곳도 있지만, 한 학기에 두번 출석한 변호사에게 B학점을 준 특수대학원이 있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논문 주심을 시간 강사가 맡는 교육대학원도 있다고 한다. 예컨대 지리학과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대학의 지리학과 시간 강사가 논문 주심이 되는 경우다. 강사의 실력여부는 차치하고 학생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원숭이 공화국

일본 오이타(大分)시 서쪽 다카사키(高崎)山에는 1천200여 마리의 일본 원숭이가 살고 있다고 했다. 원숭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매일 지정된 집합장소에 모습을 나타내며 관광객들에게 친근감을 나타낸다. 그런데 다카사키산의 원숭이는 사육되고 있는 게 아니다. 원숭이들이 무리를 이뤄 해발 628m의 산 전체에서 집단으로 생활한다. 다카사키산에는 에도(江戶)시대부터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는데 인가가 있는 마을로 내려오다가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우에다 다모스(上田保) 시장이 산 전체에 울타리를 두르고 원숭이를 모아 1953년 자연동물원을 개원했다. 원숭이 공화국을 만든 셈이다. 원숭이 공화국에 들어서면 원숭이들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가 서로 털을 골라주는가 하면 새끼 원숭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며 논다. 원숭이 공화국의 가장 볼거리는 하루에 한 번씩 실시되는 원숭이 무리의 교대 장면이다. 무리를 이룬 원숭이들은 서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무리부터 먼저 집합장소에 모인다. 동물의 세계 권력도 인간세계와 같아서 두 무리의 보스끼리 결투를 벌여 승리한 하나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집권자가 된다. 인간사회의 정당으로 비유하자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뉜다. 집합장소에 교대로 모이게 하는 건 자연동물원 운영자가 고구마 등 간식을 주기 위해서다. 주식은 직접 산에서 해결한다. 관리인이 산 쪽을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면 수백마리의 대무리가 내려오고 집합장소에 있던 다른 무리 수백마리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다른 동물원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집합장소에 한 무리가 다 모이면 보스가 사람들 앞에서 늠름한 모습을 잠시 선뵈는데 체격이 최고 답게 우람하다. 가관인 것은 보스를 따라다니는 몇 마리의 원숭이다. 관리인의 말인즉슨 사람으로 치면 ‘수행비서’ 격이라는데 아부하는 몸짓과 표정이 영락없이 인간 간신을 닮았다. 침팬지나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전투형’ 道政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일을 스스로 앞장서 해내는 자진형이다. 한 번은 비서가 호화로운 고급 상들리에를 집무실에 달려고 하자 제지했다. 바쁜 집무에 그런 걸 쳐다볼 여유가 없다며 트루만 부통령 방에나 다르라며 내쳤다.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그해 3월인가, 루즈벨트가 심장마비로 죽고나서 대통령직을 계승한 트루만은 일처리가 숙의형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세계대전 종결을 이끌어낸 원폭 투하도 숙의형 결정의 소산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의 주요국가 지도자들 면모를 내친김에 간단히 소개하면 처칠 영국 수상은 결단형이다. 예를 들면 세 권의 책을 놓고 어떤 책을 먼저 읽을것인가 하고 궁리하는 동안에 머뭇거릴 것 없이 세 권의 책을 다 읽어버리는 스타일이다. 일본의 군벌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수상은 이판사판의 불문형이고, 스탈린 소련 수상은 집권을 크고 작은 숙청으로 일관한 공포형이다. 히틀러 독일 총통은 일전불사주의의 호전적 전투형으로 12년의 권좌를 마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첫 확대간부회의서 ‘전투형’ 도정을 주문했다 해서 화제가 된 것 같다. 가히 ‘순국의 각오로 일하자’는 것은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하자는 다짐일 것이다. 도지사가 아무리 일을 잘 하려고 해도 밑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작품이 될 수 없다. 또 밑에서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도지사가 몰라보면 이 역시 작품이 되지 않는다. 역대 집권자 중에 공무원을 가장 잘 부린 권력자가 박정희 대통령이다. 가장 못부린 집권자는 김영삼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의 자긍심을 한껏 드높여 주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라고 까지 했다. 일을 신바람나게 하도록 만들었다. 공무원들이 다투어 행정가치 창출에 심혈을 쏟도록 했다. 이와 반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공무원사회를 우범시했다. ‘복지부동’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다. 김문수 도지사의 ‘전투형’ 도정의 의욕이 나쁜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신바람나게 일을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행정가치 창출의 자가발전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래야 히틀러식이 아닌 생산적인 김문수식 ‘전투형’ 도정이 된다./ 임양은 주필

천재와 인재

천재와 인재의 한계는 어느 선일까, 인간들은 인간의 한계에 부단히 도전하면서도 불행히 막상 닥친 재해엔 인재의 반성에 앞서 천재로 돌리기가 일쑤다. 파주시 문산읍은 물의 도시였다. 예컨대 1996년 7월에 내린 200㎜의 빗물로 온 시가지 주택가가 물이 허리에 잠길 정도로 물바다를 이루었다. 1998년과 이듬해 여름 집중호우에는 수마가 일부 주택의 지붕까지 넘실대는 물소동을 빚었다. 이처럼 상습수해지역으로 소문났던 문산읍내가 올핸 아무 탈 없이 넘겼다. 이 며칠 전에도 200㎜ 가까운 비가 내렸다. 그러나 상습수해지역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평온했다. 파주시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천억원을 들여 수방개조사업을 이룬 성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문산천과 동문천 제방을 높이고 임진강과 지류의 제방 또한 높이면서 하상정리작업을 마쳤다. 문산읍내 배수펌프장이 한 개이던 것을 여섯 개로 늘렸다. 이밖에도 임진강 수위를 파주시 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하는 등 갖가지 보조시설과 보조시스템을 갖췄다. 광명시 역시 상습침수를 면치못하긴 마찬가지였다. 50~100㎜의 비만 내려도 시가지 곳곳이 물난리를 겪곤 했다. 그러나 올 여름같은 물난리에도 침수소동이 없었다. 안양천 목감천 지역의 철산펌프장 하안펌프장 등의 배수가 작동됐기 때문이다. 광명시는 이밖에도 시내 요소 요소에 펌프장을 꾸준히 증설한 것이 물난리를 면한 요인이 됐다. 신문 보도는 이번 비도 닷새동안에 320㎜가 내리고 한꺼번에 216㎜가 쏟아진 적이 있었지만 끄덕 없었다고 전했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다. 지역주민의 수해를 막는 자치단체의 이같은 노력이 좀 더 확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물론 불가항력의 천재가 있긴 있다. 그러나 천재 대응의 노력을 소홀히하여 당하는 재해는 인재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수해복구비

수해보고는 줄이고 수해복구비는 부풀리가 일쑤였다. 관선자치단체장 때의 일이다. 수해 상황을 줄인 것은 문책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음 인사에 불이익이 우려되는 연유도 있다. 그래놓고는 수해복구비를 부풀려 요구하는 것은 줄여 보고한 수해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의 민선자치단체장 시대엔 이런 폐단이 없다. 문책당할 것도, 불이익을 당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수해를 사실대로 보고하고 복구비 또한 사실대로 요구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없지 않다. 정부 지원의 복구비란 것이 늑장 지원이기 때문이다. 복구비 지원은 농작물 지원과 시설물 지원이 있다. 시설물 지원은 또 공공시설과 개인시설이 있다. 늑장 지원으로 공공시설 복구에 애 먹는 것은 도로 복구 등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더 애를 태우는 것은 농민의 농작물 피해 지원, 가옥 등 복구의 개인시설물 복구비 지원이다. 각 시·군에서 이를 수재민 별로 파악하여 요청하는 데도 시일이 걸리지만 상부에 요청해도 하대세월(何待歲月)이다. 시·도를 거쳐 중앙의 관련 부처에서 처리해 수재민의 손에 자금이 쥐어지기까진 세월이 마냥 걸린다. 서류가 가는데마다 행정결재 투성이다. 기관마다 일일이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이도 별 탈이 없으면 다행이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유관부서끼리 따로 협의하는데 시일이 걸린다. 이래서 흔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국민의 세금을 허술하게 집행할 수도 없는 것이 또 수해복구비 예산이다. 문제는 행정간소화다. 수해복구비 파악, 지원액의 적정성, 지원예산 집행 등에 엄정한 책임을 분담시키는 것이 행정간소화의 요체다. 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않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어렵고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를 간소화하는 것이 행정의 발전이다. 수많은 수재민들이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까마득하다. 이도 행정이 현실화하지 못한 탓이다. / 임양은 주필

체질 바로알기

여름이 되면 인체는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소화기와 체내 장기의 기운이 차가워진다고 한다. 몸이 덥다고 차가운 음식만 찾게 되면 차가워진 위장·간장 등 내부 기관들이 손상을 입는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체내의 단백질·비타민 소모가 더욱 많아져 단백질 함량이 높은 보양식(保養食)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 보양식은 오히려 독이 된단다. 사람들이 자기 체질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소음인(少陰人)은 대체로 체구가 작다. 소화 기능이 약해 여름철만 되면 맥을 못추고 체력이 떨어진다. 위장장애가 오기 쉽다.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따뜻한 음식이 좋다. 삼계탕이나 추어탕은 소음인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 선생은 인삼·닭·계피로 구성된 계삼고(鷄蔘膏)라는 처방으로 소음인의 학질과 이질을 치료했다고 전한다. 돼지고기·냉면·참외·수박·냉우유·빙과류 등은 해로운 편이란다. 소양인(少陽人)은 가슴 부위가 잘 발달하여 어깨가 딱 벌어진 느낌을 주는 반면 엉덩이 부위가 빈약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불안하다. 속에 열이 많아 맵거나 뜨거운 음식은 맞지 않는다. 싱싱하고 찬 음식이나 채소·해물류가 좋다. 해삼·굴·멍게·가물치·수박·참외·빙과류 등이 좋다. 그러나 뜨거운 약재나 음식으로 만들어진 삼계탕·추어탕·영양탕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태음인(太陰人)은 일반적으로 체구가 크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다. 비교적 위장기능이 좋다. 동·식물성 단백질이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이롭다. 더덕·녹각·갈금을 우려낸 국물에 닭과 밤·찰수수를 넣고 끓이는 삼계탕이 좋다. 호흡기·순환기 계통에 병이 올 수 있는 체질이므로 자극성이 강한 음식과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나쁘다. 삼계탕·추어탕 등은 소양인보다는 낫지만 태음인에게 딱 맞는 음식은 아니란다. 태양인(太陽人)은 1만명 당 3~4명 있을 정도로 드문 체질이다. 더운 음식보다는 날 음식이나 서늘한 음식, 메밀냉면·새우·해삼·붕어·문어·오징어 등이 좋다. 자극성이 있는 음식과 지방질이 많은 것은 피하는 게 낫단다. 자신의 체질을 모르는 채 보양식을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게 한의사들이나 식품영양학자들의 한결같은 당부다. ‘더위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몸에 맞는 보양식을 먹는 것도 삶의 지혜다./ 임병호 논설위원

權慾(권욕)

소현세자(1612~1645)는 조선 16대 왕 인조(1595~1649)의 장남이다. 동생은 봉림대군(효종)이다. 인조가 1623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2년 뒤 1625년 14세에 세자로 책봉됐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이듬해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세자는 청나라 선양(瀋陽)에 인질로 끌려갔다. 선양에서 소현세자는 청 태종의 명에 따라 사냥에 따라 나서야 했고 명(明)과의 전쟁에 출정해야 했다. 청은 툭하면 트집을 잡아 조선과 세자를 질책했다. 온갖 수모를 겪은 8년간 통한의 볼모생활을 견디고 1645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맞은 것은 아버지 인조의 냉대였다. 세자 귀국전 인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조씨는 “청나라가 세자 대신 인조를 인질로 불러들이려 한다”고 모함했다. 이에 인조는 선양에 밀정을 보내 세자를 감시했었다. 인조는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삼았다. 소현세자는 참으로 불행한 왕의 아들이었다. 귀국 후 두달여만에 34년 짧은 생을 마감했고 처와 자식들도 온전한 생을 다하지 못했다. 세자가 죽은 이듬해 부인 민회빈 강씨가 인조의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의심을 받아 사약을 받았고 세 아들 중 원손이었던 석철과 둘째 석린은 유배된 뒤 각각 13살과 9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세자 책봉에서 부터 죽음까지의 20년 세월을 일기로 남겼다. 최근 서울대학교 규장각 연구팀이 완역한 소현세자의 일기는 소현동궁일기(1625~1636·12책), 소현분조일기(1627·4책), 심양일기(1637~1644· 8책), 동궁일기(1645·1책) 등 모두 4종 25책으로 200자 원고지로 2만6천646장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이 담지 못한 왕세자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당시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했다. 조선 후기사와 한국학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는 소현세자의 일기를 인조가 읽었다면 부자 관계가 그토록 냉혹하지는 않았을텐데 권욕은 참으로 비정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발소

이용원 또는 이발관이라고도 하는 이발소(理髮所)는 본래 서양에서 외과병원을 겸했기 때문에 간판이 적색·백색·청색으로 돼 있다. 이러한 간판의 시초는 1540년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사상에 의해 머리털은 신체와 함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그것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효(孝)의 시작이라고 하여 장발(長髮)을 지켜 왔다. 그러나 1895년 (고종 32) 11월 단발령이 내려지면서부터 서구식 이발이 시작됐다. 단발령을 발표한 날 고종은 대신들과 함께 머리를 깎아 짧게 깎은 머리의 1호를 기록했다. 당시 일부 대신들은 단발령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것이 급기야는 을미의병운동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머리의 모습은 1920년을 전후로 많은 청년들이 일본에서 유학하면서부터 외형적 변화를 크게 일으켰다. 당시 문학지에는 “하이칼라 머리에 망토를 걸친 …”등의 말이 유행했다. 광복 이후부터 1960년대초까지 남자머리모양의 유행은 가리마를 타는 것과 가리마 없이 완전히 뒤로 빗어 넘기는 ‘올백 형’으로 나뉘어졌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젊은층이나 중년층 할 것 없이 장발이 유행하여 귀를 덮는 머리 모습이 성행하였다. 따라서 이발소에서는 기계보다는 가위를 주로 사용했다. 어린이의 머리는 광복 후 한동안 짧은머리와 상고머리가 계속되다가 1960년대 이후 점차 길어지게 되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1960년대초까지는 대체로 짧게 깎다가 점차 ‘스포츠 형’이라 하여 앞머리를 3~5㎝ 정도로 기르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너무 길어져 장발 학생들의 풍기를 단속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81년 문교부가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를 발표하면서부터 귀만 덮지 않은 정도의 긴머리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발소의 종사원은 1960년대까지 모두 남자들이었는데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머리를 깎고 다듬는 일은 남자 이발사가 하고, 면도하는 일은 ‘면도사’라 하여 여자가 담당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발소의 내부 모습도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 대도시에 칸막이의 밀실이 등장, 당국의 단속 대상이 되었다. 일부 이발소들이 밀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일삼는 음란퇴폐업소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다./ 임병호 논설위원

두 故事와 盧 정권

이 정권의 처신은 두 가지 고사를 생각나게 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과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노(魯)나라에 미생이란 사람이 있어 어느날 다리 밑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폭우가 내려 홍수가 난 가운데 비는 계속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와 약속했던 여인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적절치 않게 된 상황 변화로 약속이 무위해졌다고 여겨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시간 전에 나가 시각이 지난 뒤에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은 불어난 홍수에 휘말려 익사하고 말았다. 순정으로 보기엔 너무도 어리석은 고집이다. 중국의 고전인 회남자(淮南子) 사기(史記) 등에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사다. 이목지신의 고사는 진(秦)나라 효공(孝公)때의 일이다.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않아 한 번은 현상금을 걸고 시험해봤다. 한 그루의 거목을 시장 남문바닥에 세워놓고는 나무를 시장북문에 옮겨놓는 사람에겐 십금(十金)을 주겠노라고 방문을 내걸었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도성 사람들은 방문을 보고 괴이하게만 여길 뿐 누구 하나가 나무를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방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에 백성의 신뢰를 일깨우는 얘기로 사기 상군전(商君傳)에 전한다는 고사다. 노무현 정권의 하향평준화정책은 대표적인 미생지신이다. 분배위주가 이러하고, 교육시책이, 이러하고 지방균형발전론 등이 이러하다. 양극화 해소는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상위가치를 깎아내려 하위에 맞추는 방법은 방법이 아니다. 덜한 것, 못한 것을 부추겨 좋은 것, 잘한 것 수준 가까이 끌어올리는 것이 진정한 양극화 해소다. 대북정책의 짝사랑 일관도 철저한 미생지신이다. 정부를 불신하는 이목지신의 민중정서는 심각하다. 경제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해도 곧이 듣는 피지배계층의 국민은 거의 없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말, 듣기좋은 시책을 발표해도 신뢰를 주지못한 경험에 비추어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정권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산다. 불행한 것은 민중이다./ 임양은 주필

현대도시와 빗물

현대도시의 강우량은 거대한 세숫대야에 담기는 물과 같다. 내린 비가 스며들 맨땅이 없는 게 현대도시다. 땅이란 땅은 아스팔트가 아니면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도시시설이든 공공용지든 개인의 것이든 간에 흙을 밟을 수 있는 맨땅은 거의 없다.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은 하수도가 유일한 탈출구다. 그런데 이 하수도가 문제다. 하수도 용량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겨우 간선도로만 포장을 하고 인가도 지금과는 비할수 없을 만큼 적었던 예전의 규모 그대로인 것인 지금의 하수도다. 간선 배수시설인 하수구야 물론 있지만 하수구로 연결되는 첫 단계 배수시설인 하수도가 이 모양이어서는 포장도시의 빗물이 제대로 빠져나가기가 벅차다. 이나마 준설이 잘 안 됐을 것 같으면 배수기능이 더욱 어렵다. 길거리의 담배꽁초를 비롯해서 온갖 잡동사니가 하수도 뚜껑 틈새로 버려지기 일쑤인 마당에 소통이 100% 잘 된다고 보긴 난감하다. 이러니 걸핏하면 시가지가 물바다가 되고 심지어는 주택가 침수 소동이 안 벌어질 수가 없다. 도시 근교의 소하천이 예전보다 범람이 잦은 이유 역시 거대도시의 포장화에 있다. 전 국토가 도시화하는 추세다. 거대도시 뿐만이 아니고 소도시도 모두 포장화됐다. 거대도시든 소도시든 도시는 해마다 팽창하여 포장면적은 점점 확대돼간다. 이 바람에 전 같으면 땅으로 스며들던 빗물이 스며들지 못해 모두 소하천으로 몰려든다. 이런 소하천 빗물이 지류를 통해 강으로 강으로 흘러들다보니 범람하게 마련이다. 도시가 1시간에 40㎜의 비만 내려도 물난리를 겪는 연유를 과학적 수치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각 자치단체마다 도시면적에 비해 강우량에 따라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 가를 조사하는 것이 현대도시다운 정책적 치수 자료라 할 것이다. 주먹구구식 시책으로는 한계를 넘어선지가 벌써 오래됐다. /임양은 주필

憲法小史

내각책임제도 해봤고, 민의원과 참의원을 둔 국회 양원제도 해보았다.(제2공화국 헌법)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헌정(헌법)이 한차례 중단된 이후, 제4공화국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유신체제 그리고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대통령선거인단제에 앞선 국보위 군부정권 시절 헌정을 중단시키는 등 이변의 사태를 세차례나 겪었다. 제1공화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건국 과정상 제헌국회에서 선출했고, 윤보선 대통령은 내각책임제의 대통령이므로 국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했다. 대통령 3선 개헌도 두 차례나 했다.(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 때 사사오입 개헌과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 때 유신헌법 개헌)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3선도 있었지만)으로 하다가 현행 5년 단임으로 한 지가 19년이 됐다. 헌법은 1948년 5·10 총선으로 구성된 초대 국회, 즉 제헌국회가 제정해 그해 7월17일 공포한데 이어 8월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5·10 총선은 당시 선거를 방해한 남로당 등 공산주의자들의 투표소 급습, 방화, 죽창살인 등의 난동속에 치러졌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29일의 9차 개헌으로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됐다. 정체(政體)상으로는 제6공화국 헌법이다. 전두환 5공 정권하에서 민주화 요구를 들고 일어난 6월 민중항쟁이 이룬 산물이다. 오늘 제헌절을 맞아 헌법을 돌아보면 현행 6공 헌법이 가장 장수한 헌법이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의 개헌론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데 그 저의가 역시 과거의 개헌과 마찬가지로 권력구조 변경이 주안인 것은 정치권을 위한 개헌론 밖에 안된다. 권력구조 변경을 꼭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이만을 위한 개헌이 되어선 안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개헌이 돼야 한다. 예컨대 국리민복 규정의 포괄형 조문은 열거형으로 선언적인 대목은 규제적으로 하는 등 헌법 조항 해석이 좀더 분명해 지도록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 임양은 주필

새머리

새의 몸은 하늘을 나는 데 적합하도록 진화해 뼈도 비어 있고 머리도 작다. 그래서 나온 말이 ‘새대가리’다. 주먹보다도 작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호두알만한 뇌를 ‘단순무식’의 상징처럼 여긴다. 다만 까마귀 같은 일부 새들은 예외적으로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왔는데 앵무새, 비둘기, 굴올빼미도 그에 못지 않다고 한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사람과 가깝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사람과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다. 바로 말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자음과 모음을 구별해 소리를 내는 새가 있다. 즉 말을 한다. 앵무새나 구관조가 사람들의 사랑과 경탄을 받는 이유다. 특히 말하는 새의 음성기관 구조가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사실이 발견돼 더욱 흥미롭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가브리엘 엑커스 교수팀은 앵무새가 사람처럼 혀의 모양과 위치를 바꿔가며 다양한 소리를 낸다고 발표했다. 고차원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복잡한 음성기관이 진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는 조류가 소리를 내는 기관인 ‘울대’를 조절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공중을 가르며 순식간에 수㎞씩 이동하는 새들은 용케도 집을 찾아 온다. 그런데 새들의 뛰어난 기억력이 길을 찾는 데 한 몫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취리히대 한스페터 립 교수팀이 비둘기의 등에 조그마한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한 뒤 이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했더니 집에서 최대 80㎞ 떨어진 곳까지 돌아다녔다. 다수의 비둘기들이 방향을 바꿀 때에도 고속도로 출구까지 이동한 뒤 이를 기준점으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들이 도로 위로만 달리 듯 새들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게 밝혀졌다. 작은 동물을 주로 잡아먹는 굴올빼미 집 주위에는 구수한 똥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새끼들을 키울 시기에 냄새가 심하다. 미국 플로리다대 동물학자 더글러스 레비 박사는 이런 현상이 새끼를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냄새 위장’일 것으로 추측하고 좀 더 자세히 관찰한 결과 굴 주위의 똥은 냄새 위장용이 아니라 굴올빼미가 가장 즐겨먹는 쇠똥구리를 유인하기 위한 ‘밑밥’임이 밝혀졌다. 낚시꾼이 밑밥으로 물고기를 유인하는 것과 흡사하다.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은 ‘새대가리’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됐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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