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 웬일인지 별하나 보이지 않고 / 남은 별만 둘이서 눈물 흘린다” 1999년 7차 교육과정 개편 전까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작사한 동요 ‘형제 별’이다. 작곡자는 정순철이다. ‘형제 별’은 지금도 소파가 작사한 한국창작동요 효시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 동요가 일본 음악가 나리타 다메소오(1893~1945)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지학자 서웅렬씨가 보관해 온 잡지 ‘부인(婦人)’ 4호(1922년 9월치)에 소파도 스스로 나리타의 작품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소파가 나리타의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파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어린이’라는 말을 실제로 처음 쓴 사람은 육당 최남선(1890~1957)이라는 증거도 제시됐다. ‘어린이’라는 말은 육당이 잡지 ‘소년’ 창간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소파가 1920년대 이후에 ‘어린이’라는 말을 널리 펴서 생활용어가 되게 했는데, 이것이 처음 만든 사람으로 후대에 잘못 전해졌다는 얘기다. 소파는 일상생활에서 어린이들에게 경어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 5월호에 실린 아동문학가 신현득씨의 논문 ‘방정환 바로 알기’에 나오는 이런 주장이 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증거가 있어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파는 만 32세의 짧은 생애에 어린이들이 존중받도록 각종 운동을 펼쳤으며, 이를 위해 여러 잡지를 만들고 수 많은 장르에서 글을 썼던 문호이자 위대한 활동가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연구해 온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위대성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 알려진 사실은 바로 잡는 것이 위인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신현득씨의 설명은 맞는 말이다. 여러 문헌 증거로 볼 때 ‘어린이 날’ 제정을 처음 발의한 사람은 소파이지만 1922년 천도교 소년회가 ‘어린이 날’을 선포할 당시 소파는 일본 유학 중이어서 국내에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 날’ 제정은 소파 단독이 아닌 천도교 소년회 지도위원들의 합작품으로 보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성범죄 예방대책

흔히 ‘거세(去勢)’는 남성의 음경이나 고환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궁에서 왕의 시중을 드는 내시(환관)를 만들거나 죄인을 처벌하는 형벌로 거세술을 사용했다. 정자와 발기를 동시에 없애는 잔혹한 벌이다. 고환은 정자뿐 아니라 성욕과 관계된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등 호르몬을 분비한다. 특히 테스토스테론은 주로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호르몬으로 남성은 물론 여성의 성욕을 관장한다. 여성에게서도 일부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지면 성욕이 왕성해진다고 한다. 만일 고환이 제거되면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에 피부나 목소리, 성격도 여성처럼 바뀐다. 최근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성폭행사건의 재범률을 줄이기 위해 성폭행범의 ‘그것’을 거세하자는 강경론이 대두되는 것은 그만큼 성폭행범죄가 사회적·윤리적으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의 재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 성욕을 감퇴시키는 화학물질을 주사하자는 ‘화학적 거세’ 주장도 나온다. 몸에 화학물질을 주입해 성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자는 방법이다.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차단하는 약물이나 에스트로다이올과 같은 여성호르몬이 들어오면 성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들며 성욕도 감퇴한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데포프로베라’라는 여성호르몬 복합물을 주사한다. 원래 여성 피임약으로 개발됐지만 남성에게 주사하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춰 주기 때문에 성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몸에 손을 대지 않고 ‘현대판 내시’를 만드는 형벌인 셈이다. 좀 더 근원적으로 성욕을 억제시키기 위해 뇌의 성욕담당 부위를 잘라내자는 ‘섬뜩한’ 발상이 제기된 적도 있다. 뇌의 시상하부는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자극하는 물질(세로토닌)을 만들어낸다. 또 자체적으로도 여러 종류의 성욕 관련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고환 제거 수술을 받은 100명의 성범죄 전과자들과 거세술을 받지 않은 집단의 35명을 비교한 연구 결과가 독일에서 나왔는데, 거세 수술을 받은 집단의 성범죄 재범률은 3%에 그친 반면, 그냥 놔둔 성범죄 가해자들은 46%가 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거세’와 ‘화학적 거세’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성범죄 전과자들의 고견은 어떠한 지 궁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방선거 ‘이방인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어느 지방의원 예비후보자의 푸념이다. 명함을 주었더니 보지도 않고 길가 쓰레기통에 넣더라는 것이다. 지방의원만이 아니다. 자치단체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지사 나온 사람들 이름 아느냐고요? 몇 명이 나왔죠?” 참외 행상인의 말이다. 한 식당 아주머니는 더 기막혔다. “시장 선거요? 신경 껐어요” 지방정치권은 5·31 지방선거 열기가 달대로 달아올랐다. 그런데 막상 표를 거머쥔 유권자층은 냉랭하다. “찍을 사람 정했느냐고요? 글쎄 투표장에 갈지 잘 모르겠네요” 40대로 보이는 어느 낚시꾼의 얘기다. 도지사·시장군수와 도의원·시군의원 등을 뽑는 4大선거의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선거다. 이런 지방선거가 대체로 유권자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지역주민이 ‘지방자치’란 것에 별 매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출마하는 사람들은 그들 멋으로 살고 우리같은 사람은 우리 맛대로 사는 게 아닙니까?” 시장 상인의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 뭣부터 잘못된 것인지 진단하기도 어렵고 처방을 내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같은 냉소주의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란 점이다. 오는 16~17일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양상이 좀 다를진 모르지만 후보자들 열기만큼 뜨겁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림당한 그 지방의원 예비후보자는 또 이런 걱정을 했다. “선관위에서 보내는 선거공보물인들 어디 제대로 보겠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다. 거둬가지 않은 선거공보물이 아파트 수취함마다 가득했던 적이 있다. ‘작은 투표용지 한 장에 큰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선관위의 투표 권고 구호다. 지방선거도 나랏 일이다. 큰 지역행사다. 기왕이면 선택에 좀 적극적인 유권자층의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 /임양은 주필

국회의원들

광역단체장 소환엔 유권자의 10%, 기초단체장은 15%, 지방의원은 20% 이상의 찬성으로 주민소환투표를 발의할 수 있다. 소환은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투표에 과반수 찬성으로 정한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제법안의 골자다. 발의 요건이 10%·15%·20%이면 너무 많아 사실상 불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적어 남용될 우려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공청회 한 번을 안 거쳤다. 유권자의 30% 투표로 소환 여부를 정하는 것이 전체 의사로 볼 수 있는지의 대표성 여하에 대한 공론 한 번을 듣지 않았다. 주먹구구식 책상머리 법안이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주민소환 대상에서 국회의원은 제외한 점이다. 임기 중 부적절한 행위가 있으면 유권자가 투표로 해임을 결정하는 것이 주민소환제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무척 조심스레 접근해야 할 문제다. 그래도 주민소환제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 같은 선거직이면서 국회의원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자기네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집단이기다. 잘은 몰라도 소환대상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게만 있고 국회의원은 없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인 자신들에게 불리한 건 빼놓는 입법은 몰염치한 처사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의원님’들의 형편없는 윤리성이다. 근래 일본의 지바현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호스티스 출신의 20대 여성이 도쿄대학을 나온 통산성 관료 출신을 제치고 당선되어 화제가 됐다. 민주당 오타 후보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합공천인 사이토 후보에게 밀리다가 호스티스 경력까지 폭로당해 완전히 코너에 몰렸으나, 그녀는 “그렇다! 나는 땅 바닥을 기면서 살아온 여자다”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나서 분발했다. 오타가 대역전극을 벌여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정직성에 대한 동정표였다. 이탈리아에선 지식층에 대한 반발로 포르노 여배우를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너무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윤리성이 낮아도 너무 낮다. 이러다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보다 이력은 별 볼일 없어도 정직한 서민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올 법도 하다. 잘 난 사람의 농간이 못 난 사람의 농간보다 해악이 더 심한데가 국회란 곳이다./임양은 주필

음주손실비용

술은 왜 마시는 것일까, 그냥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나눠 기분이 좋아서 마실 때가 있고 기분이 언짢아 마실 때가 있다. 알코올에 의한 인간의 정서 반응은 묘하다. 기분이 좋아 마시는 술은 흥을 북돋아주고 언짢아 마신 술은 언짢음을 마비케 한다. (술 주정이나 행패의 주벽은 잘못된 버릇이므로 별개의 문제다) 술은 그래서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술이 과하면 뒤탈이 있다. 연세대보건대학원이 분석한 ‘음주경제손실비용’이라는 게 흥미롭다. 음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생산성 감소 ▲생산인력 손실 ▲주류소비 ▲질병치료 ▲재산피해 ▲각종 행정비용 등으로 분류했다. 이를 통틀어 지난 2003년 한 해동안 음주로 인한 우리 사회의 경제적 손실비용이 24조2천719억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 국내 총생산(GDP)의 3.33%로 일본 1.9%, 프랑스 1.42%, 캐나다 1.09%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조사 내용은 예컨대 질병치료는 음주관련의 25개 질병 치료비, 숙취로 인한 생산성 감소, 조기 사망에 따른 생산인력 손실, 음주관련의 교통 및 화재사고로 인한 재산피해 등이다. 한 마디로 한국인은 술값도 술값이지만 술로 인한 뒤탈 손실이 세계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분석에 의하면 술값 자체는 4조2천579억원인 데 경제손실비용은 24조2천719억원인 것이다. 문제는 2000년엔 손실비용이 14조9천352억원이던 게 9조3천367억원(62.5%)이나 는데 있다. 술 먹는 사람이 그토록 늘어난 것도 아니다. 연구팀은 ‘음주인구는 3년동안 큰 변화가 없는데 음주횟수(음주량)가 늘었다’고 밝혔다. 주 1회 이상 음주인구가 28.8%에서 43.6%, 날마다 마시는 인구도 30대 남성은 0.07%에서 0.08%, 40대 남성은 0.13%에서 0.20%로 늘었다. 이 추세로 미루어 봐 2004년엔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일까, 기분이 좋아서 마시기보단 기분이 언짢아 마시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렇긴 해도 지나친 음주는 삼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된다. 경제적 손실비용이 너무 엄청나다. / 임양은 주필

파주 LCD공장

LCD(액정화면)는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얇은 화면 장치를 말한다. LCD를 제작하는 공장은 LCD를 만들 수 있는 유리 기판(基板)의 크기로 구분한다. 한 세대가 올라갈수록 기판은 물론 공장 규모가 커진다. 4월27일 준공한 LG필립스LCD(이하 LPL) 파주 7세대 공장에서는 가로 1950㎜, 세로 2250㎜ 크기의 LCD 기판을 이용한다. LPL파주공장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10㎞ 떨어진 접경지역에 조성됨으로써 외국 투자자들에게 안보불안을 해소시켜 준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서 기여하는 바 크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비무장 지대 인근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을 발견한 한국인들’이라며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충남 아산 탕정단지 LCD공장에 이은 LPL 파주공장의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대만·일본 등의 추격을 뿌리치고 600억달러 규모의 세계 LCD 패널(반제품 상태의 화면 부품)시장에서 1위 자리를 더욱 굳힐 수 있게 됐다. 이름하여 ‘파주 LCD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집적단지)’가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업과 중앙·지방 정부의 유기적 행정 협조의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2002년 LPL이 경기도와 공장건설 협의에 나서면서 “100억달러(약 10조원)를 투자해 지을 공장 부지가 있느냐”고 문의하자, 경기도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공장 유치 작전에 나섰다. 중국 난징(南京)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하던 회사는 결국 파주를 택했다. 경기도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 산업자원부·환경부 등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기본계획 수립, 산업단지 지정 신청· 승인 등의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투자의향서(MOU)가 체결된 지 불과 5개월 후인 2003년 7월 ‘파주 LCD 산업단지’ 지정이 확정됐다. 파주 디스플레이 클러스트는 이번 공장을 필두로 2015년까지 27조원을 들여 140만평(LCD공장 50만평, 협력단지 60만평, LG계열사단지 30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직접적 고용효과만 4만2천명에 달하는 사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私)기업 행사에 참석, 덕담식 축사를 한 일도 보기에 아주 좋았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공무원들이 정말 큰일을 해 냈다. /임병호 논설위원

미인

미인의 얼굴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관상학자들의 ‘여성 얼굴론’에 따르면 왕조의 초창기엔 턱과 얼굴이 큰 여성이 미인으로 대우받았다. 이 시기엔 진취적인 분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른스럽고 남성적인 미인형, 즉 턱과 얼굴이 큰 미인을 선호했다. 안정기엔 보통 크기의 턱과 얼굴의 여성이 미인으로 꼽혔다. 퇴폐조짐이 보이는 말기에 이르면 턱과 얼굴이 작은 여성이 미인으로 대접받았다. 말기엔 외형적이고 감각적인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화가 중 조선 후기 풍속화가인 혜원 신윤복 (蕙園 申潤福·1758~1813 이후)의 ‘미인도’(19세기 초, 114X45㎝, 간송미술관 소장)는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미인도로 꼽히는 걸작이다. 이 ‘미인도’는 아름답고 고혹적이다. 여인의 자태는 곱고 여리다. 가녀린 어깨선과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 치마 밑으로 살짝 나온 왼쪽의 버선발이 전체적으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얼굴도 아름답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빗은 트레머리, 작고 반듯한 코에 앵두 같은 입술, 무언가 아련함이 뚝뚝 묻어나는 뽀얀 얼굴, 그리움이 가득해 애처로운 눈빛이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보면 볼수록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조선 시대 기녀 초상화(미인도)의 최고 명품 또는 조선 시대 여성미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눈여겨 볼 것은 노리개와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는 여인의 손이다. 신윤복이 아니고서야 그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보는 사람 마다 시각이 다르다. 노리개를 푸는 모습, 노리개를 여미는 모습, 저고리 고름의 나비 매듭을 푼 뒤 마지막 매듭을 풀어 내리는 모습, 노리개를 옷고름에 매어 늘어뜨리는 모습이라는 등 한 작품을 놓고 느끼는 생각이 각양각색이다.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타난 얼굴처럼 아담한 얼굴에 작은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좁고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에 쌍꺼풀 없이 가는 눈, 어리고 정적인 얼굴을 한국의 전통 미인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얼굴은 조선 후기의 미인형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미인은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렸다. 무릇 ‘꽃처럼’이 아니라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여성의 얼굴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유혹

“세포(細胞)는 이리저리 헤엄을 치다가 다른 세포의 편모(鞭毛)에 스친다. 동성일 경우에는 ‘미안, 착각을 했어요’라고 말하고는 각자의 길을 가지만 이성을 만나면 그때는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서로 더듬으며 애무를 시작한다. 서로의 편모로 감싸며 핵(核)끼리 접촉할 수 있도록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 프랑스의 식물학자이며 시인인 클로드 귀댕의 저서 ‘살아있는 모든 것의 유혹’에 나오는 대목이다. 생명체가 최초로 발견한 유혹의 기술은 색(色)이었다. 40억년 전 지구의 표면에 떠 있던 원자들이 합성하는 단계에서 기적적으로 색깔의 아버지인 엽록소가 탄생했다. 세포는 분자의 합성 사슬 모양을 수정해 가며 색에 이어 냄새를 만들고 페로몬이나 동식물성 호르몬의 근저가 되는 스테롤과 카로티노이드가 생성된다. 6천500만년 전 공룡의 멸종도 유혹의 관점에서 보면, 운석충돌로 태양빛을 받지 못한 식물들이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들지 못해 멸종했고 제대로 먹지 못한 공룡 역시 멸종을 재촉했다. 그런데 식물·곤충·어류·조류·포유류의 유혹의 기술은 사람보다 격정적이고 신비롭다고 한다. 프랑스 토종 난초인 오프리스 아피페라는 페로몬을 뿜어내며 암벌의 엉덩이 모양을 빼닮은 꽃부리로 수벌을 꼬드긴다. 이는 머리카락에 수직으로 붙어 배를 밀착시킨 채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며 심한 경우 수컷이 탈진해 죽기까지 한다. 식물은 다채로운 꽃잎의 화관, 암술 위에 올라앉은 씨방, 화분을 담은 수술 등 유혹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이로운 생물체다. 농어는 오럴섹스를 발명해냈고 버지니아의 암컷 거북은 ‘1분에 여섯 번’이나 눈을 깜박여 수컷에 관심을 표시한다. 달팽이들은 서로를 유혹할 때 엄청난 양의 점액을 분비해 더없이 부드러운 애무를 즐긴다. 포유류에 이르면 꼭 수태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성행위를 하고 상대를 유혹한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의 초절정 고수지만 사실은 곤충이나 어류, 파충류, 조류 등이 자랑하는 그 어떤 장식도 갖지 못한 불쌍한 존재라고 한다. 미용술과문신 등으로 자연을 모방해 복잡한 유혹의 기술을 만들어낼 뿐이다. 사람의 자연미는 그래서 생각나는 모양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정 회장 사법처리

아니나 다를까, 예의 죽는 시늉이 나왔다. 검찰이 현대차·기아그룹 회장의 신병처리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론이 제기됐다. 안다. 체코 공장 착공식도 연기되고 해외 기업설명회도 취소되고 해외 신인도에도 지장이 있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현대차·기아그룹 산하 협력업체에선 정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냈다. 그룹 임원들은 비상대기 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회장이 없으면 경영에 공백이 생기고, 공백이 생기면 수출이 저해되고, 수출이 저해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룹측이 토로하는 선처 호소의 이유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재벌의 비리가 항상 그같은 이유로 더 이상 두둔되어서는 재벌은 항상 부정을 일삼기 마련이다. 재벌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재벌의 오만을 고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재벌은 예컨대 정치자금 제공을 즐겼으면서 정치자금을 뜯기는 것처럼 엄살을 피워왔다. 물론 정치권도 나쁘지만 이러한 재벌도 나쁘다. 검은 정치자금 거래를 단절키 위해서도 재벌의 체질이 달라져야 한다. 정 회장 문제를 두고 ‘경제 위기론’과 ‘경제 정의론’이 있는 것 같다. 위기론은 예의 경제 악화설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경제 정의론’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한다는 판단을 갖는다. 그룹 총수가 자유롭지 못하면 경영에 어느 정도의 지장이 있을 걸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현대차·기아그룹이 조직체라면 이를 극복할 조직의 기능을 다할 의무가 있다. 국제유가는 날마다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환율은 날로 떨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환경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기다. 그렇지만 아니다. 이번 기회에 고질이 된 재벌의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 검찰은 삼성의 편법상속을 선처한 전례가 정 회장 문제를 두고 무척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형평에 어긋난단 말을 들을 순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이번만은 아니다. 경영권 승계, 비자금 조성 등에 배임 및 탈세 등 혐의가 알려진대로 확인됐으면 만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 재벌들에게 본때를 보이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임양은 주필

김병조 씨

초등학교 여교사와 결혼하려면서 장인될 분에게 방송인이라고 했다.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반대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TV에 안 나오느냐는 처가 될 집 어른들의 질문에 서울 등 수도권에만 나오는 방송국이라고 했다. 김병조씨가 무명시절의 얘기다. MBC-TV에서 그는 마침내 간판격 코미디언으로 떠 전성기를 누렸다. 어린이 프로의 짓궂은 ‘뽀병이’역에서 노역의 서당 훈장역까지 다양다채로운 배역을 섭렵했다. 수입이 좋아 돈도 꽤 많이 모아 신혼의 가난에서 탈출하였지만 그는 방송가에서 알아주는 짠돌이다. 월급주는 자가용승용차 기사 자릴 남 주기가 아까워 싫다는 동생을 데려다가 쓰는데, 차는 고물차인데도 바꿀 줄 모를만큼 짰다. 한 번은 차가 중앙청 앞에서 갑자기 꺼진 시동이 걸리지 않아 그 복잡한 거리에서 차를 밀어대야 했다. 방송 스타의 차가 그 모양인 것을 본 교통경찰관이 어이없어 했다. 전남 장성이 고향으로 전라도 사투리 쓰기를 거리낌없이 한다. “허평태평 쓰면 아무리 벌어도 소용없으라우…” 짠돌이의 변이다. 코미디대본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에서 옛 고문(古文)을 내는 것은 단골이었다. 한시(漢詩)나 한문 잠언(箴言)을 인용하는 대본은 그의 전문이었다. 집엔 고서(古書) 등을 닥치는대로 모아두고 문헌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다. 심지어는 족보도 자기 집 족보, 남의 집 족보를 가리지 않고 갖다놓고 보학(譜學)에 열중하곤 했다. “집에 있으면 저런 것만 들여다 본다”는 게 그 무렵 부인의 말이다. 김병조씨가 오늘 아침 (사)경기언론인클럽이 호텔 캐슬 다이아몬드홀서 갖는 조찬포럼에서 ‘명심보감으로 본 현대정치’를 강연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 다운 해학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익힌 그로썬 명심보감은 달달 외울 것이다. 현대 지성인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옛 문헌 탐독을 고집스럽게 우기더니 조선대 사회교육원 초빙교수로 대학 강단에 섰다. / 임양은 주필

아름다운 세상

신문을 배달하면서 담장 너머로 던진다는 게 담장 밖에 떨어진 줄 모르고 그냥 가는 것을 길가던 사람이 신문을 주워 담장 안으로 던져준다. 횡단보도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부축여 안전하게 길을 건너게 해준다. 시내버스 안에서 하차 벨을 눌러야 하는데 거리가 멀어 더듬는 승객의 불편을 대신해 벨을 눌러준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이 베푸는 소박한 1일 선행 3행이다. 공익광고로 나오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 하루에 1분이면 충분합니다’가 그 주인공이다. 이 TV광고는 두 가지를 생각케 한다. 하나는 지루한 광고 홍수 속에서 신선한 납량감을 갖는다. 프로그램 제공 광고, 토막광고 등 프로가 바뀔 때마다 잇달아 쏟아지는 광고 사태에 짜증이 나다가도 그같은 공익광고를 보면 불편하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 하나는 그 공익광고의 대사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 하루에 1분이면 충분합니다’는 정말 명언이다. 길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 담장 안으로 던져주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게 해주고, 시내버스내 하차 벨을 대신 눌러주는 친절을 베푸는데 드는 시간은 모두 합해야 1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알게 모르게 도움받는 친절의 파장 효과는 크다. 하루에 1분이면 충분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어찌 그 공익광고에 나오는 세 가지 일에 국한하겠는 가를 생각해 본다. 돌아보면 많고 많다. 그런데도 대개는 외면하고 지나간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큰 일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사소한 일도 주요하다. 개개인의 작은 친절이 모이면 사회에 큰 친절의 강이 이루어진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처럼 사소한 일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대부분 서민생활에 속한다. 생활이 어려운 우리의 서민생활 일상에 작은 친절 베풀기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아름다운 서민사회로 만들어 갈 것을 생각해 본다. /임양은 주필

축제 없는 봄날

올 봄은 ‘5·31 지방선거’ 때문에 전국적으로 지역축제가 거의 없다. 아니 개최하지 못한다. 열린다해도 축제 기분이 덜 난다. ‘선거 전 60일 전 부터’라는 선거규정에 따라 4월부터 두 달간 ‘법령에 규정된 행사’ 등을 제외하고는 자치단체들이 각종 문화행사를 지원할 수 없어서다. 경기도의 경우, 연천군은 다음달 4일 열리는 ‘구석기(고인돌)축제’에서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못하게 됐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구민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한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연천군은 뾰족한 대안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보로 이동하는 등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관람객이 적을 것은 보나마다다. 그런데 이천시의 ‘도자기축제’는 사정이 좀 낫다. 행사장과 시외버스터미널 등을 오가는 무료 버스 운행에 대해 선관위로부터 ‘매년 열렸던 행사인 데다 지역주민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등 해당 선거구 외에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만큼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연천군의 ‘구석기축제’도 이와 다르지 않는데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지역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이천시 남사면이나 장호원읍 등 행사장과 거리가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던 교통편은 아예 제공하지 않기로 해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다른 시·도 역시 지자체 봄 축제가 선거법 때문에 울고 있다. 먹을거리축제의 경우 더욱 심하다. 신라의 도읍지 경주(慶州)의 ‘한국의 술과 떡잔치 2006 ’ 행사는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술이름 알아맞추기’ 행사가 없어졌다. 지역별 고유 술 이름을 맞힌 참가자에게 술 한 병을 상품으로 주는 행사가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위를 금지하는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왕조 56명과 992년의 신라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56가지 술을 992개 술잔에 담아 관람객들에게 맛보게 하는 ‘992 술잔’ 이벤트 역시 ‘선거법’에 발목을 붙잡혔다. 경주의 술맛과 고도의 정취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아쉽기 짝이 없다. 온갖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는 4월, 5월에 지역축제를 못하게 만들어 놓아서 그런가? 봄날에 때 아닌 강풍·돌풍이 불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더니 폭설까지 내렸다. “그 놈의 선거가 도대체 뭐길래”하는 사람들의 장탄식 사이로 오늘도 서정과 낭만이 없는 봄날이 간다. / 임병호 논설위원

빠른우편 폐지

우리나라의 우체국 수는 1946년 646개에서 1975년 1천945개, 1988년 3천199개 등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992년 3천422개를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2005년 2천742개가 됐다. 이에 따라 우체국 1곳당 관할 인구수는 1992년 1만2천700명 이었지만 2005년 4만9천53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국제우편은 1946년 발송 181통, 도착 501통에서 산업화 및 세계화의 영향으로 1992년 발송 3만4천561통, 도착 6만2천654통 등 크게 증가했지만 e메일의 활성화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2005년 발송은 1만4천444통, 도착은 1만4천562통 이었다. 반면 인구 1인당 우편 이용량은 1946년 4.8통에서 1970년 18.1통, 1995년 75통, 2005년 97통 등 증가추세다. 개인 이용량은 줄고 있지만 공문, 광고 책자, 홍보물 등 단체와 기업 이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편사업 독점권을 쥐고 있는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3월1일부터 빠른우편 제도를 폐지하고 익일특급을 신설하여 우편고객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배달소요 시간은 비슷한 데도 빠른우편은 한 통에 310원 이었고 익일특급은 한 통에 1천810원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요금부담이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민간 택배업체를 이용하더라도 파손에 대해서는 업체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강화를 이유로 요금을 사실상 대폭 올린 것은 설득력이 없다. 문제는 또 있다. 한 통에 220원하는 보통우편을 이용하면 3 ~4일 걸려 너무 불편하다. 금요일에 보통우편을 이용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우체국이 주5일 근무를 하는 데다 먼저 우편집중국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수표 제출시 부과료도 이해가 안 된다. 예컨대 우체국에서 7만여원 등기요금을 수표를 내면 수수료 1천원을 요구한다. 농협의 경우 타은행 수표로 송금을 하거나 쌀 등의 물품을 구입할 때 수수료가 없는 것에 비교하면 지나치다. 2004년 1천450억2천만원, 2005년 783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우정사업본부가 “빠른우편은 자동화가 안 돼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등 인건비가 많이 들고 우편사업 중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수익성을 고려하여 폐지했다”고 해명하는 것은 이상하다. 말만 바꾼 익일특급은 우편사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 임병호 논설위원

‘소설’과 ‘진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폭로(?)한 이른바 ‘이명박 서울시장의 별장모임’은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선 ‘별장모임’이 있었던 시기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이명박 시장측, 선병석 전 서울테니스협회장의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우리당은 선 전 회장을 직접 만났던 안민석 의원의 말을 빌려 “모임 시기가 2003년 10월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시장측의 정태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모임은 2004년 7월 한 차례로 안다”고 말했다. ‘분명하다’가 아니라 ‘안다’인데 선 전 회장은 기자들에게 처음엔 “쌀쌀했던 초가을로 2004년 10월”이었다고 말했다가 “서울시 말이 맞을 것”이라며 2004년 7월로 정정했다. 2003년 10월과 2004년10월은 별 차이가 없지만, 7월과 10월은 계절이 다르고 복장이 다르다. 사생활을 위하여 비공식 일정은 밝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장이든 도지사이든 행사명과 행선지를 기록하는 ‘비서실 일지’를 확인하면 금방 알게될 일이다. 참석자 규모와 여성 참석자 수가 다른 것도 이상하다. 우리당은 “남성과 여성 5명이 참석했다. 이 중 여성은 모 대학 성악과 강사와 선 전 회장과 함께 온 젊은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시장측은 “20여명의 동호인들이 참석했고, 이 중 일부 여성 회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선 전 회장은 “14~15명의 동호인이 있었고, 4~5명의 여성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미상불 헷갈린다. 김한길 대표가 “경악할 만한 비리”라고 표현한 것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그러나 우리당은 “검찰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한길 의원은 화제작 ‘여자의 남자’를 쓴 소설가다. ‘정치 기획의 황태자’,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을 세우고 유지하는데 탁월한 지략을 발휘한 ‘환승(換乘)의 달인’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김 의원은 1996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김한길의 세상 읽기’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플라톤의 명언을 뒤틀어 ‘정치적 인간은 짐승인가’라고 물었다. ‘독설은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고 했는데, 김 의원이 예고한 ‘별장 파티’가 허구의 소설인지 경악할 진실인지 궁금하다. ‘정치는 요지경 속’이라는 말에 재삼 공감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언어문화

프랑스어인 마담(madame)은 기혼녀의 존칭으로 원래 상류사회에서 썼다. 우리 말로 치면 여서(女史)쯤 될 것 같다. 여사란 또 고대 중국에서 후궁의 기록과 문서를 관장했던 여관(女官)의 직함에서 유래됐다. 마담의 직역어는 부인이다. 그런데 이 고급용어가 국내에서 평가절하된 것은 다방 여종업원의 관리인을 마담으로 부르면서였다. 다방은 한국동란 때 성업을 이루면서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업종이다. 지금은 사양업이 됐지만 사무실 없는 브로커에겐 사무실로, 갈곳없는 실업자들에겐 휴게실로 또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곤 했었다. 전쟁 때 이중섭이 저명한 동물그림을 담뱃갑에 그렸던 곳도 다방이다. 다방 주인이나 주인 대리인 여성을 마담으로 부르다보니 술집에서도 마담이란 말이 생겼다. 프랑스어의 미혼녀 존칭은 우리 말로 양(孃)이란 뜻이 되는 마드므와젤(mademoiselle)이다. 그런데 프랑스 여성단체들이 결혼에 관계없이 여성을 마담이라고 불러달라고 정부에 청원하고 나섰다. 남자는 기혼이든 미혼이든 무슈(monsieur) 하나로 통하는데 여성만 마담, 마드므와젤로 구분하는 것은 남녀차별이란 주장이다. 프랑스 여성단체의 마드므와젤 없애기운동은 일종의 세태 반영이다. 동거여성의 마드므와젤이 많은가 하면 나이든 독신의 마담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미스(Miss), 미세스(Mrs)를 통틀어 일컫는 미즈(Ms)란 말이 나온 것은 유엔에서 비롯됐다. 여성외교관들 중에는 라이스 미국무장관처럼 나이는 많아도 독신여성이 적잖아 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급 용어인 마담이 국내에서 고급스럽지 못하기는 지금도 다름이 없다. 아마 ‘○○○여사’ 대신 ‘○○○마담’이라고 부르면 화를 낼 여성이 많을 것이다. ‘마담 버터플라이’는 미군과 일본 여성의 비련을 주제로 한 롱의 유명한 가극으로 ‘나비부인’이란 뜻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예컨대 특수층 중매의 뚜장이를 가리켜 ‘마담 뚜’라는 비속어로 인용해 쓰인다. 국어사전에도 ‘부인, 유한~, 술집이나 다방 또는 여관 같은 데의 안주인’이라고 ‘마담’을 설명해놨다. 언어문화의 유행과 언어문화의 정서 차이를 마담이란 말을 통해 또 한 번 실감한다. / 임양은 주필

코끼리 비스킷

4조5천억원 가운데 1천억원의 수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 아무튼 45분의 1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되판 양도차익 4조5천억원중 1천억원을 한국사회발전기금으로 기부하겠다고 재경부에 통고했다. 또 7천250억원은 말썽이 된 세금추징의 과세 논란이 끝날 때까지 국내 은행에 예치해 두겠다고 했다. 론스타가 4조5천억원의 양도차익을 챙긴 것은 고작 3년 사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외환은행을 사고 팔면서 그같은 엄청난 돈을 번 것이다. 정작, 미운것은 때린 시어머니(차액을 남기고 되파는 론스타)보단 말리는 시누이(과세에 나선 한국정부)다. 론스타가 양도차익에 큰 폭리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살 때 싸게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게 판 배후에는 국내 관련 인사들이 주동이 됐다. 덜 부실 은행인 것을 심한 부실 은행인 것처럼 감정을 조작해 헐값으로 넘겼던 것이다. 정부 당국과 금융권의 책임이 크다. 외국계 펀드야 장삿속이니까 싸게 사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손 치더라도 국민의 울화통을 치밀게 하는 것은 정부 당국과 금융권 인사들의 국부 유출이다. 이래놓곤 아직도 큰 소릴 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다른 얘기로 현대차도 그렇다. 20억원의 뇌물을 주고 550억원의 공적자금 빚을 탕감받았다. 떼인 공적자금 92조원의 행방을 궁금해했더니 이런 식으로 증발됐던 것 같다. 다시 은행 얘기로 돌아와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을 샀던 회사다. 이 회사가 지난해 제일은행을 되판 이익금 1조1천500억원중 200억원의 기부금을 낸 적이 있다. 외환은행을 되판 론스타는 이같은 뉴브리지캐피털의 전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4조5천억원 중 1천억원은 그야말로 코끼리 먹이의 비스킷 부스러기와 다름이 없다. 큰 국부를 유출해 놓고 그들이 던져주는 비스킷 부스러기나 받아 먹어야 하는 건지, 실로 이 정권의 도덕성 해이가 극심하다.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지 못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게 다 부도덕한 이 정권의 책임이다./임양은 주필

‘사모님족’

공천장사로 말썽이된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돈거래 당사자는 부인들이다. 수차에 걸쳐 김 의원에게 들어갔다는 4억4천만원도, 케이크 상자에 든 미화 21만달러를 박 의원이 받았다는 것도 모두 그의 부인이다. 박 의원 부인은 이밖에도 모피 코트와 명품 핸드백 등을 덤으로 얹혀 받았다.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검은 돈 뒷거래에 으례 등장하는 것이 ‘사모님’으로 불리우는 부인이다. 남편되는 사람의 한결같은 뒷얘긴 자기는 몰랐다는 것이지만 말이 안된다. 옛 이야기 중엔 아내의 내조로 남편을 반듯하게 출세시킨 이야기가 많은데 현 이야기 중엔 아내가 남편을 망친 이야기가 많다. 제(齊)나라 재상 안자(晏子)는 유능하면서도 청렴결백하여 치세의 사표로 사기에 꼽히는 사람이다. 안자의 아내도 어질었지만 그의 마부 아내 또한 그랬던 것 같다. 한날 안자를 마차에 태워 퇴청시킨 마부가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짐을 싸고 있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물은 남편의 말에 아내의 대답은 “당신같은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의 말은 이러했다. 정작 마차를 탄 재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표정인데, 마차를 모는 남편은 온갖 거드림을 피우는 모양새가 제대로 된 남편같지 않아 같이 못산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하면 어울리지도 않은 폼을 쟀다할까, 마부는 아내의 말에 자신의 용렬함을 크게 깨달았다는 고사가 있다. 사모님 같지 않은 ‘사모님’을 가리켜 남편이 중사면 아내는 상사고, 남편이 대령이면 아내는 준장이고, 남편이 과장이면 아내는 국장이다라는 속설이 있었다. 남편을 망치는 ‘사모님족’의 아내는 그 옛날 마부의 아내보단 못한 사람들이다. 어찌 김·박 의원 두 사람만이겠는가, 사과상자 케이크 상자 좋아한 ‘사모님족’들의 검은 돈 뒷거래 얘기가 앞으로도 심심찮게 나올 것만 같다. /임양은 주필

미선나무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한국특산종으로 식물학상 또는 관상용으로 매우 귀중하다. 언뜻 개나리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흰색의 꽃이 앙증맞고 향기가 난다. 또 옅은 분홍색이나 상아색을 띤 품종도 있어 은근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풍긴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미선나무란 이름은 열매 모양이 전래동화 속 선녀들이 지닌 둥근부채(미선·尾扇)와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개나리보다 열흘쯤 이른 3월부터 꽃을 피운다. 충북 진천·괴산·영동과 전북 부안의 산기슭과 석회암 돌무더기 지대에서 자란다.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을 피해 척박한 돌밭에서만 산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조선육도목’이란 별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엔 전국에 분포했던 것 같다. 미선나무는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1919년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처음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 발견지는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으나 사람들이 꺾어가고 캐어가는 바람에 완전히 훼손돼 1969년 해제됐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자생지는 충북 괴산의 송덕리· 추점리· 율지리 등 3곳, 영동읍 매천리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청림리에 각각 1곳 등 모두 5곳인데 이달 초 충북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의 농경지와 인접한 야산에서 동북아식물연구소(소장 현준오)와 한국교사식물연구회(회장 권희정) 조사단이 탐스럽게 꽃을 피운 미선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가파른 야산 중턱에 키 1~2m의 미선나무들이 헤치고 나가기 힘들만큼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흰색 또는 분홍색꽃을 단 새 가지와 둥근 열매를 매단 지난해 가지들이 섞여 있어 가경(佳景)이라고 한다, 이런 군락이 산비탈 약 1㎞ 범위에서 5~6군데나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다른 지역의 미선나무 자생지보다 학술적 보호가치가 크다. 특히 미선나무가 최초로 학계에 보고된 곳과 인접한 장소에서 자생지가 발견돼 의미도 깊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꺼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유지 개발이나 산불 발생을 생각하면 지정이 나을 것 같지만, 외부로 알려질 경우 벌채꾼의 손을 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환경부나 산림청의 ‘보호구역’ 지정이라도 필요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수급(首級)’은 ‘싸움터에서 벤 적군의 머리’이다. 그런데 황석영의 ‘삼국지’에 “장비의 수급을 베어든 범강과 장달은…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장비의 목을 벤…”이 맞는다. 이문열의 ‘삼국지’에 “집에 돌아 와 급히 말에 안장을 매면서도 유비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문장이 있는데 “안장을 매다”보다는 “안장을 메우다”가 더 안성맞춤이다. ‘메우다’는 ‘말이나 소의 목에 멍에를 얹어서 매다’라는 뜻이다. 장정일 ‘삼국지’에 “조조의 대군이 들이 닥치는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산속으로 피난 가는 바람에…”에서 ‘피난’은 ‘피란’으로 고쳐야 한다. ‘피난’은 ‘홍수 따위의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이고, ‘피란’은 ‘난리를 옮겨 감’이기 때문이다. 1968년 학생잡지 ‘학원’의 편집기자로 시작해 30여 년 동안 취재와 편집 일을 하며 ‘남의 글을 눈 여겨 보아 온’ 권오운 시인이 최근 펴낸 책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을 보면 문학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유명 소설가 50여 명의 글 실수를 집어낸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가운데 이런 문장도 있다.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김별아)에서 ‘고상’은 오문이다. ‘언행이 고상(高尙)하다’라고 쓸 수는 있지만,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다. “장사하는 일로 일생을 늙어와서 잔푼돈의 셈에 민감한 그런 사람들”(배수아)에서 잔푼돈은 ‘잔돈푼’(얼마 안 되는 돈)의 잘못이다. “그녀는 배신자이며 도둑이며 화냥녀였다”(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봉순이’는 ‘화냥년’이 아니다. ‘화냥기’는 ‘계집의 바람기’, ‘화냥질’은 ‘서방질’, ‘화냥년’은 ‘서방질을 하는 계집’이다. ‘봉순이’는 유부녀가 아니라 처녀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 ‘화냥녀’는 ‘화냥년’이 아니라 ‘화냥女’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다. “매니큐어를 한 내 발톱”(김인숙의 ‘물 위에서’)도 틀렸다. 매니큐어는 손톱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이고, 발과 발톱을 곱게 다듬는 화장법은 ‘페디큐어’다. “성실한 독자라면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어휘 사용의 문제를 짚어 낼 수 있다. 작가들이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술 한 잔씩 사야 할 것”이라는 권오운 시인의 말이 그럴듯 하게 들린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바보상자’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이 TV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돌아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곤했던 가족문화가 TV란 괴물이 나오면서 망가졌다. 초저녁 거실 공간에서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려가며 멍청하게 TV만 바라보던 가족들은 이윽고 황금시간대가 지나면 잠 자려고 각기 제방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그날 일과는 끝이다. 소중한 가족간의 저녁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곤 한다. 토크쇼라야 시시콜콜한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연속극이래야 그야말로 연속극적으로 일부러 짜맞춘 얘기다. 이런데도 TV화면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TV노예가 됐다. 중독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TV 없이는 못산다는 TV족속이 적잖다. EBS가 2004년 12월에 ‘20일간 TV끄고 살아보기’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131가구 중 130가구가 여전히 TV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것을 보면 TV중독이 얼마나 극심한 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아직도 TV없이 사는 집이 딱 한 군데 있는 과천 어느 40대 가장의 집 저녁 가족 얘기는 정말 다정다감하다. TV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가족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케 한다. 국내 TV가 흑백에서 컬러로 방영된 것은 1980년이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초법적으로 통치하면서 민중영합책으로 준비가 덜 된 컬러방송을 우격다짐으로 몰아쳐 앞당겨 방송케 한 것이 컬러방송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지지대子가 있었던 신문사에 TV칼럼을 연재했던 소설가 최인호씨는 TV를 가리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바보상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TV가 ‘바보상자’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뉴스의 속보성, 현장성은 TV의 강점이다. 볼만한 다큐멘터리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TV중독증의 폐해는 갈수록 더 심해진다. TV채널에 매달리는 시청이 아니고, TV채널을 끌 줄도 아는 신생활 시청의 지혜가 있어야 할 때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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