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관람했다.
7,8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어서인지, 향수를 일으키는 장면에, 그때는 그랬었지 하다,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동, 태도, 문화 등이 불편한 모습들로 다가왔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신문과 책은 한문이 가득해서 읽기도 어려웠고, 실내 흡연이 가능했으며, 여직원의 커피 심부름은 당연지사, 가족 내 남아선호 사상으로 딸들은 눈물지어야 했다.
가정폭력, 학대는 훈육이라는 양육방식으로, 학교에서 사랑의 매는 감사함으로, 직장 내에서 차별과 억울함은 늘 약자의 몫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거니와 이른바 정권의 뜻에 반하면 소리없이 죽어나가도 찍 소리도 못 내는 울분의 세상도 거쳤다. 더 과거에는 교육이 특권이었고, 시간을 더 거스르면 태어날 때부터 노비인 기가 찰 인생도 있었고, 인간을 계층화한 골품제도도 있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인종이 다르다며 짐승처럼 처우하고, 말도 안 되는 이념을 내세워 가스실에서 살육을 서슴지 않던 슬픈 역사적 기억들이 떠올랐다. 세상은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세상은 안 변해. 이름만 변해 냉소를 띄던 여배우의 대사에서 암흑 같은 미래가 몸부림치도록 암울했었다.
분명히, 세상은 나아진 것 같은데, 꿈도 없어지고 모두 살기 어렵다고 한다. 누가 주류냐, 비주류냐, 누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로, 우리 안에서 구분 짓고, 이분화하고,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지난달,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영전에 국민훈장이 헌정되었다. 문 대통령은 추서식에서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 하시겠지요. 이어, 전태일 열사가 했던 주장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며 하루라도 쉬게 해달라는 외침이 주 5일제로, 시다공의 저임금 호소가 최저임금제로 실현됐다. 노동존중사회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발걸음이 더디지만,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했다.
맞다. 세상은 조금씩 변했다. 흡연율 80% 사회가 금연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한글로 작성된 신문과 책으로 국민은 지식에 한 걸음 더 다가갔고, 대학 진학률은 80% 이상이 되었다.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도 생겼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도 생겼고, 이제는 찍 소리라도 SNS에 남길 정도의 세상은 되었다.
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많이 바뀌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이, 할 것이 있다. 아직도 70년대, 조선시대, 신라시대와 똑같은 노동현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하청공장 근로자, 비조직화된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근로기준법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식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곳은 여전히 70년대이다. GDP 3만 불 시대에, 노동존중사회를 얘기하면 여전히 출신을 내세우고, 구분 짓기를 내세운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구분 짓기의 열악한 입장으로 바뀔 수 있는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는 지금, 누가 주류냐 비주류냐 따지며, 우리 안에서 구분 지으면 안 된다.
성찰과 자기반영을 통해 성숙한 시민으로서 존중의 문화를 잘 유지하고 후세들에게 남겨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성숙한 시민, 용기 내는 리더가 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새 물이 흐르면서 고인 물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계속 변화될 것이고, 그 모습을 보고 후세들이 더 좋은 변화를 위해 움직일 것이다. 정현정 유한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
오피니언
정현정
2020-12-15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