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하고 풍요로운 경기의 천 리안팎의 산하가 모두 견고한 요새라네도덕정치가 펼쳐질 형세마저 아울렀으니그 역사는 천 년을 기약할 수 있다네』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던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새로운 국도(國都)인 한양 건설의 총책을 맡았다. 1395년(태조 4) 10월 그는 자신이 그리는 한양의 모습을 시로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바쳤다. 성리학으로 통치되는 유교적인 이상사회(Neo-Confucian Ideal Society)의 전개였다. 이 시는 그가 지은 〈신도팔경(新都八景)〉 중에서 첫머리에 실린 경기산하이다. 사방을 관통하는 사통팔달의 잘 정비된 도시, 민본(民本)을 위한 질서정연함을 갖춘 관청, 육로와 해로를 통한 활발한 물산교류, 그런 나라를 지탱할 굳건한 국방력 등 〈신도팔경〉에서의 지향은 유교적인 교화(敎化)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이었다. 이들은 또 그림으로 그려지고, 8곡 병풍으로도 만들어져 유통됐다. 아쉽게도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후 그 전통은 권근(權近, 1352~1409), 최연(崔演, 15031549), 이식(李植, 1584~1647) 등을 거쳐 조선후기까지 〈경사팔경(京師八景)〉, 〈경도팔경(京都八景)〉, 〈한도팔경(漢都八景)〉, 〈한양팔경〉 등으로 이어져 조선사회 문인들의 시와 그림으로 남았다. 그들에게 경기산하는 유교정치의 정점으로 여겨졌던 인화(人和), 덕치(德治), 덕화(德化)가 펼쳐지는 문명화된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은하수처럼 흐르는 한강 굽이굽이마다 가지 열린 듯 멧부리 밑에 조성된 도시에는 배와 수레에 가득히 실린 물산이 넘쳐나는 모습을 갖춰야 했다. 현재의 경기산하 역시 마찬가지다. 녹록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그것이 유교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만, 문명화(文明化)의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방의 물산이 모인 저잣거리, 노동요가 흥겨운 산업 현장, 글 읽는 소리가 가득한 곳, 이런 문명화된 공간이 경기산하여야 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예전에 경기가 민본의 태평성대 왕업을 이룰 터전이었다면, 현재의 경기는 민주사회의 문명화를 이룰 터전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서로 생각을 모을 때이다. 천 년 경기역사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김성환 경기도박물관장
오피니언
김성환
2021-01-12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