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벽난로가 있어 신기해했던 빌라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오르내리기가 힘든 집이 되었다. 그러나 텃밭도 있고 옥탑방도 있는, 정말 정들어 떠나고 싶지 않은 보금자리다. 시골에서 농사일만 하셨던 시어머니도 여기서 사셨고, 미국에서 친정 오빠도 오시면 계셨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던 아이들도 여기서 커서 이제 40줄에 들어섰으니 추억과 아픔도 함께했던 떠나고 싶지 않은 집이다. 현관문 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환하게 맞이해 주신 영상과 성심을 다해 모시지 못해 죄스러운 나의 양심이 교차하고, 따박걸음으로 따라올라 오던 나의 아이들의 귀여움이 여기저기 서려 있는데, 가족들은 모두 우리 곁을 떠나고 이제 방마다 짐들만 가득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절반 정도의 평수로 집을 줄여 가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하는데 버릴 수가 없다. 새집으로 갈 물건과 버릴 물건으로 갈라놓았다가도 그 물건을 다시 보면 정말 정말 버릴 수가 없다. 2년 정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쓸모없는 것이니 버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모질게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인지 물건을 쌓아 두기 위한 집인지 갈등하면서 새 아파트가, 다시 물건 꽉 찬 집으로 되어 가고 있음을 예감한다. 김장할 때마다 나의 시어머니가 쓰셨던 큰 양은 대야를 보며 며느리가 어머니, 양은 대야는 저 주세요 요즘 젊은 며느리가 다 찌그러진 양은 다라 두 개를 물려 달라하는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나. 양은 대야는 나의 이삿짐 속의 1번이 되었고, 그렇게 버려질 수 없는 물건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틀림없이 이사를 다 하고 나면 우리 딸애는 다시 엄마의 짐을 체크하고 버리려 들 것이다. 오늘은 이사할 아파트에,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했지만 나이가 먹으니 좋은 것도 탐이 나서 침대와 QLED TV 2대와 냉장고와 리클라이너 1인용 소파 두 개를 들여왔고 식탁은 며칠 뒤에 도착한다 한다. 남편은 오늘부터 당장 살자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안 된다고 하며 정든 빌라로 다시 왔다. 내일은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45명이 엎드려 1년이면 열세 번이나 제사를 지냈던 우리 집. 어머니 계실 때, 5명의 시누이들이 친정이라 찾아와서 나름 시집살이 시키려던 우리 집. 아이들 잘 키우려 우리 부부가 최선을 다했던 우리 집. 나의 교사와 교감과 교장의 과정을 지켜 봐왔던 우리 집. 30여 년간 함께 해준 벽난로, 장롱, 냉장고, 싱크대, 아들의 꿈을 키워 주었던 복층 옥탑방, 봄부터 가을까지 한약 먹고 각종 채소를 길러 준 무공해 텃밭. 두고 가서 미안하다. 그리고 눈물 나게 고맙다. 인정의 한자녀더갖기운동연합 평택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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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의
2019-03-05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