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

청소년인권행동가가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국회도서관에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게 하는 건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청와대 자료실이라면 혹 몰라도 도서관 출입에 연령을 제한한 규정은 잘못된 일이다. 청소년들이 동아리나 단체관람 등의 이유로 국회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도서관 책들은 읽지 못한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전문서적을 읽기에는 수준이 안 되고 입법활동 지원이 국회도서관의 목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입법활동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청소년의 국회도서관 출입을 배제시킬 순 없다. 세계의 지식정보자원을 수집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 발전과 국민의 알 권리 확대에 기여하고, 입법부의 역사적 활동 및 인류의 지적문화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승한다는 게 국회도서관의 일이란다. 말인즉슨 옳다. 그러나 청소년도 분명 그런 지식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 국민이다. 청소년의 국회도서관 출입 금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차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다. 국회도서관 이용 수준을 운운하는 것 역시 모순이다. 수준이 높다, 낮다라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다. 수준의 높고 낮음을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국회도서관이 해명을 내놨다. 전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 소속 공무원, 대학생 또는 18세 이상인 자, 그 밖에 도서관 소장자료가 필요하다고 국회도서관장이 인정하는 자가 현재 국회도서관의 이용자 범위다. 앞으로 청소년에게도 규정에 따라 국회도서관 소장자료가 필요하다고 국회도서관장이 인정하면 소장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재학 청소년은 타 도서관에 자료가 없는 경우에 학교장의 추천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비재학 청소년은 타 도서관에 자료가 없는 경우에 개별적 심사를 통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비재학 청소년에 대해서는 개별적 심사가 아닌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추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강구하겠다고 한다. 듣고 보니 더 복잡하다. 18세 이하 청소년이 국회도서관에 가서 지식을 터득하려면 국회도서관장의 인정을 받고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비재학생은 시장군수구청장시의원 등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니 번거로워서 누가 국회도서관에 가겠는가. 관리상 애로사항은 좀 있겠지만 국회도서관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람다울 ‘仁’

仁이라는 글자가 나타나 있는 최초의 문헌지로는 기원전 743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경과 서경이다. 시경에선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말을 탄 사람을 두고 아름답고 인하다고 표현했다. 인의 최초의 의미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공적 공간에서의 장식, 언행, 특출한 능력을 발휘해 주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공자(기원전 551~479)는 인의 의미를 확대해 나를 닦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세습적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자기 수양으로 풀이했다. 공자의 이런 관점은 요즘 고위공직자들에게 비교적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맹자의 인은 논어의 인과 달리 마음과 관련된다. 앞으로 가면 우물이 있는데도 어린아이가 계속 나아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상황에서 누구든 아이를 구하겠다는 순수한 생각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는 도덕감정을 인으로 본다.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는 인을 기 및 음양사상과 결합시켜 자연과 사회 전체에서 생명이 가득 넘치게 하는 하늘의 의지이자 사람이 본받아 지상에 실현해야 하는 과제로 보게 된다. 이 단계의 인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에 견줄 수 있다. 송나라와 명나라에서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인은 형이상학적인 특성을 갖게 돼 신성과 같은 본성, 즉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이끌어 가는 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다. 청나라 때는 인의 개념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잘 습관화한 행위와 그로 인해서 늘어나는 공동체와의 통합을 가리키게 되고, 강유위(康爲)에 이르면 사람 사이, 나라 사이의 소통을 증대시키는 심력(心力)으로 바뀌게 된다.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는 저서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에서 仁을 어질 인이 아니라 사람다울 인으로 바꾸어 읽기를 제안한다. 仁을 사람답다로 옮기면 영어 번역어 hum- anity와도 잘 어울린다. 공자도 사람다움을 인이라고 했다. 임병호 논설위원

판결문

조선조말 사법제도 도입 당시엔 판결문을 붓으로 썼다. 이어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후엔 펜으로 썼다. 붓글씨는 지금도 서예로 남아있다. 그러나 펜을 잉크에 묻혀 썼던 펜글씨는 일몰됐다. 펜글씨 판결문이던 것이 한글 타자기로 바뀐 것은 획기적 변화다. 한글 가로쓰기 판결문이 처음 나온 것도 1962년 한글 타자기 판결문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젠 컴퓨터 자판 판결문이 보편화 된지 오래다. 판결문 글씨는 달라져도 내용이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대개의 경우, 재판 당사자가 법정에서 낭독하는 재판장의 판결문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한다. 나중에 누가 보충 설명을 해줘야 알아 듣는다. 법률 용어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판결문 자체를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장은 법원 판결문의 통상적 특징이다. 한 문장 속에 ~한바 등의 연결어미가 열번도 더 한 끝에 ~다로 끝나기가 예사다. 문맥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곤 해 주문을 듣지 않고는 도대체가 유죄라는 것인지, 무죄라는 것인지 종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경찰 조서에 한문을 쓰던 시절이다. 右手拳(우수권)으로 被害者(피해자)의 顔面(안면)을 數次(수차)에 亘(긍)하여 强打(강타)해 地面(지면)에 轉倒(전도)시켜 (오른쪽 주먹으로 피해자 얼굴을 수차례에 걸쳐 때려 땅에 넘어뜨려)라는 문체가 많았다. 지금은 경찰서 문서보관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서다. 그런데 법원 판결문은 여전히 어렵다. 어려운 것이 권위가 아니다. 판결문을 알아듣기 쉽게 쓰는 것, 또한 법정의 민주화일 것이다. 판결문을 쓸데없이 어렵게 쓰거나 길게 엿가락 처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법원 내부 의견이 나온 것은 신선하다. 얼마전 법원도서관은 민형사 사건의 모범판결사례집을 펴내어 전국 법원에 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결하고 자연스런 구어체 판결문을 쓰도록 권장 했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한번쯤 읽어봄직 하다. 모처럼 펴낸 사례집을 읽지 않고, 외면하는 판사들이 없지 않을까 하여 걱정된다.임양은 주필

이집트 사태

이집트 아랍공화국은 지중해에 면한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다. 아프리카 국가면서 자고로 아프리카보단 유럽과 아시아 나라와 역사적 관계가 깊다. 아시아에 있는 터키가 사실상 유럽권 국가인 것과 비슷하다. 민주화를 요구한 이집트의 민중 시위가 보름 동안 이어진 가운데, 미국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버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무조건 버티던 그가 집권당 당수직을 내놓는 등 권력 이양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밝힌 무바라크는 이집트 국민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그가 올바른 결정을 하길 바란다고 한 말이 결정타가 되었다. 미국은 친미 무바라크가 집권한 지난 30년 동안 중동 평화를 위해 그를 지지했으나, 독재의 단죄를 더 두둔하는 덴 부담이 많아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집트 사태를 더 악화시키면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의 집권을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속셈도 있다.무바라크 30년 독재는 경찰국가의 통치다. 경찰력의 자의적 행사에 의한 국민 통제 수단으로 고문 등이 성행했다. 독재는 폭정과 아울러 부패를 낳는다. 무바라크는 700억 달러(78조원가량) 상당을 부정 축재했다. 오는 9월 대선에 안 나온다면서도, 당장 사임을 거부하는 것은 부정 축재 내용이 폭로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올해 83살인 무바라크는 둘째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세습하려고까지 했다. 아들 가말 무바라크는 집권당 정책위 의장으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평판났던 것이 민중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무산됐다.이집트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 나일강 하류에 발생한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다. 당시에 이미 통일국가를 형성, 고대 농경문화의 번영을 이룰 적에 현재의 미합중국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도 안된 황무지였다. 이토록 유서 깊은 이집트가 역사적으로 마케도니아로마사라센터키영국 등 지배 하에 있다가, 1922년 독립되고도 미국 대통령 입김 하나로 대통령 자리가 왔다갔다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독재가 유죄다. 임양은 주필

대통령의 좌담회 중계

주사기자가 있었다. 1973년 한국방송공사가 생기기 전이다. 그러니까 한국방송공사 전신인 중앙방송국 시절이다. 중앙방송국은 관공서로 공부처에 속했다. 기자들 또한 공무원이다. 주사기자사무관기자서기관기자 등이 있었다.당시는 라디오 방송이 주가 되어 방송기자는 대중매개체로 별 인기가 없었다. 또 민영방송도 별로 없었던 때다. 관영방송 기자는 고독했다. 어쩌다가 기자실에 들르면 신문사 기자들이 어이, 주사! 공무원은 좀 나가시오하기가 예사였다.이토록 홀대받던 방송기자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텔레비전 방송이 활성화 하면서다. 전에는 기관장들이 기자회견 등에 방송기자들은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 방송기자를 기다릴 정도가 됐다. TV 카메라가 번쩍거려야 회견을 할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국정좌담회가 텔레비전에 85분이나 생중계됐다. 이에대한 엇갈린 평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시청자의 시청권 제재다. KBS 1TVMBC TVSBS TV 등 지상파 3사는 물론이고 OBS TV도 동시방송했다. 심지어 보도전문 케이블 채널인 YTNMBN도 같은 시간에 방송했다. 대한민국 방송의 보도채널이 모두 동시방송 한 것이다. 시청자의 시청권 박탈도 이런 박탈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안볼 수 없고, 할 수 없이 보면 홍보가 될 것으로 안다면 사고방식이 수준 미달이다. 오히려 좌담 내용엔 상관없이 욕부터 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이런 점은 있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같으면 방송의 주요 기능인 보도분야이므로 동시방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좌담회는 아무리 신년 국정을 밝힌다해도 회견과는 다르다. 시청자의 시청권을 빼앗을만큼 동시방송할 성격이 못된다. 궁금한 것은 그같은 동시방송이 과연 방송사의 자의냐는 것이다. 왜냐면 땡전 뉴스를 일삼던 5공시대의 방송을 방불케한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아닌 신년좌담회나, 이의 일제 동시방송은 경위가 어떻든 적절치 못하다. 임양은 주필

로또복권

매주 일약 억만장자가 되는 게 뭔가의 난센스 퀴즈 정답은 로또다. 인생 역전이 된다고 보면, 난센스라고만 말하기도 또 그렇다. 어떻든 매주 로또 1등 당첨으로 수억 또는 수십억원을 거머쥐는 행운아가 쏟아진다. 1등 최고 당첨금은 117억원, 최저 당첨금은 5억1천만원이다. 117억 대 5억 같으면, 같은 1등 당첨금 치고는 격차가 심하다. 그러나 차이가 심해도 좋으니, 제발 1등 당첨만 되길 바라는 것이 로또 구입자의 심리일 것이다.그토록 어려운 1등 당첨의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 147명이나 된다. 당첨금으로 부동산 구입이 29%, 주식 등 재테크 투자 23%, 대출금 상환 20%, 기타 28%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설문 조사 결과다.이 조사 결과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가진 계층은 로또를 별로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또 단골은 주로 없는 계층이다. 1등 당첨자는 서울,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월 평균 300만원 미만의 소득과 85㎡(25평) 이하의 아파트를 소유한 고졸의 기혼 40대 생산직 관련 종사자 및 자영업자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은 복권위원회의 분석이다.1등 당첨에는 또 1만원 이하의 구입을 매주 꾸준히 한 사람이 77%로 나타났고, 로또 구입 이유로는 일주일간 즐거운 상상과 재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당첨자가 43%로 조상꿈 39%, 좋은 꿈 17%보다 많다.로또 이익금은 가진 것 없는 사람, 즉 복지기금으로 쓴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로또 고객은 서민층이다. 결국 서민층 돈을 울궈내는 것이 로또다. 로또 중독으로 그나마 없는 돈을 탕진하기 일쑤다. 1등은 고사하고 5천만원짜리 2등 당첨만 되도 좋은데 안된다는 사람들이 쌔고 쌨다. 한데, 1등 당첨금이 원인이 되어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행운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를 막기 위해 1등 당첨금을 일시불이 아닌 연금식으로 바꾸는 모양이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무인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이다. 부속 도서란 한반도에 속한 섬을 말한다. 한반도라면 북녘땅도 포함한다. 북녘 섬도 우리의 영토지만 수가 아주 적다. 한반도의 96%가 넘는 섬이 남쪽에 있다.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섬이 모두 3천358개다. 유인도는 482개, 2천876개가 무인도다.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서해 5도 중 백령대청소청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다. 우도는 강화군이다. 강화군엔 무인도 17개를 포함해서 섬이 28개다. 옹진군은 백령도를 비롯, 모두 100개의 섬이 있는데 무인도가 74개다.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역은 전남 신안군으로 무려 1천4개의 섬이 있다. 그 중 931개가 무인도다. 전체 섬 가운데 무인도가 85.7%로 수는 많지만, 면적은 적어 전체 섬 면적의 2.0%(76.47㎢)에 머무른다. 흥미로운 것은 사유지 무인도다. 무인도의 1천478개는 국공유지인 데 비해 1천398개는 사유지다. 섬은 국토 경계의 주요 역할을 한다. 영해, 대륙붕 등 해양영토의 기준이 된다. 조그마한 무인도라도 매우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경기도 내 무인도는 34개다. 경기도는 이를 절대보전준보전이용가능개발가능 등 4가지 유형별로 나눠 체계적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이용가능 무인도서는 해양레저 활동과 도서 탐방, 공유수면 점용이 가능하고 개발가능 도서는 시장군수의 승인 하에 개발이 가능하다. 무인도의 이 같은 개발은 해양도서의 자원화다. 이에 반해 절대보전과 준보전 무인도서는 건축물은 물론이고 도서 출입이 제한된다. 이는 해양도서의 보전화다. 도내 무인도의 관리유형 구분은 해양 전문기관에 이미 용역을 발주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대상 무인도 34개 가운덴 사유지가 9개 도서다. 임양은 주필

사군자 향기

매(梅)란(蘭)국(菊)죽(竹), 사군자(四君子)에 정감이 가는 것은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온 까닭이다. 눈(雪) 속에 매화를 찾아다녔다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나, 국화를 심고 이를 가꾸며 유유자적했던 진나라 때의 도연명, 대나무 없는 곳에선 살 수 없다고 했던 왕휘지 등의 고사는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매화시 60여 수로 매화시첩을 엮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이황의 매화 사랑이 유명하다. 정비석의 소설 명기열전(名妓列傳)을 보면, 이황이 매화의 기품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또 19세기 화가 조희룡은 매화시를 읊고 매화차를 마시며 사는 곳도 매화시 백 수를 읊는다는 뜻으로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고 이름 지었다.사군자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재 5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려 있는 월매도는 조선시대 최고의 매화 화가로 불린 어몽룡의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그림은 굵고 곧은 매화 줄기가 오랜 풍상을 겪은 듯 모두 끝이 부러져 있고, 가지는 기운차게 뻗어 올라 잔가지에 듬성듬성 매화꽃과 봉오리를 달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不二禪蘭)이 난초 그림을 통해 초탈의 선(禪) 경지를 표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추사로부터 난 그림을 배운 흥선 대원군은 자신의 정치적 역정에 따라 심상을 반영하는 필법을 구사하며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가꿨다.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서 민씨 세도정치의 중추세력이었던 민영익은 대표작 노근묵란(露根墨蘭)을 통해 시대에 대한 울분을 분출했다.정조대왕의 국화 그림 야국(野菊)은 담백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려진 국화와 풀벌레의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문예부흥을 주도해 나간 군왕의 지혜가 엿보인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전환되는 시기에 살았던 문인화가 신위는 묵죽(墨竹)에서 당대고금을 통하여 짝할 사람이 없다는 극찬을 들었다. 그가 72세에 그린 죽석도(竹石圖)는 죽기 직전까지 선비의 기품을 간직하려 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가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군자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은 데는 사군자를 읊은 시문(詩文)과 그림, 사군자화(四君子畵)의 영향이 크다. 한파 속 설중매의 개화가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의 젊은이들

해군 UDT 대원이 되기 위해선 폭파, 대테러, 특수 타격 훈련 등 인간병기로 거듭나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선발된 요원들은 특수전 초급반 과정에서 12주 동안 수영, 턱걸이, 갯벌훈련 등을 받는다. 맨몸 수영 4㎞ 이상, 오리발 수영 12㎞ 이상, 구보 40㎞ 등이 요구된다. 지옥주 훈련은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재우고 고무보트 조정훈련, 갯벌훈련, 구보를 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신병 훈련이 6개월이나 된다. 해군에 따르면 1년에 한번 접수받는 해군 특수전여단(UDT수중폭파대 / SEAL육해공 전천후 특수타격 / EOD폭발물 처리 / CT해상 대테러)에 지원 문의가 쇄도한다고 한다. 청해부대 최영함의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천안함 피격 이후 구조작업 중 순직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고 한주호 준위도 청해부대의 1진 요원이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UDT 대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더욱 늘어났다. 올 1월 해병대 1천11명 모집에 4천553명이 지원해 4.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과 함께 실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7월 해병대 자체 모집에서 병무청 주관 모집으로 선발 방식이 바뀐 이래 최고 경쟁률이다. 월 단위로 모집하는 해병대의 이전 최고 경쟁률은 4.03대 1이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후 북한의 무력도발을 단호히 응징하자는 결의 때문임은 물론이다. 외국에 나간 유학생들도 해병대 지원을 희망할 정도다.해병대는 원래 귀신 잡는 해병대로 표현될 만큼 막강한 군대다. 공식 슬로건은 작지만 강한 해병대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자부심도 유명하다. 해병대 훈련 강도가 세고 정신력 또한 높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군대 생활이 실전처럼 위험하고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을텐데 해군 특수전여단, 해병대에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젊은이들이 강인하다는 증거다. 문제는 기성세대들이다. 특히 병역을 기피한 사실을 정당화합법화하는 소위 지도층 인사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해군특수전여단, 해병대에 지원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주민통제

북녘은 김정은 청년대장 후계체제 확립이후 주민통제 강도를 더욱 높인 것으로 대북관련 단체 소식통이 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개처형이나 즉결처분이다. 즉 재판없이 총살한다. 지난 3일 황해북도 사리원시 문화회관 광장에서 주민 500여명이 지켜보는 중 40대 여성과 30대 보위부원 등 2명이 공개 총살 당했는데, 대북전단을 주워 돌려본 혐의라는 것이다. 처형당한 두사람의 가족은 평양남도 개천14호관리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14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창바이 땅을 밟은 양강도 혜산시 주민 7명이 뒤따라 추격한 인민군들 사격으로 5명은 그자리에서 숨지고, 부상한 2명은 끌려갔다는 것이다. 중국측은 이 같은 북측의 소행에도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었다고 한다. 탈북자와 대북전단에 이처럼 더욱 민감해진 것은 김정은 청년대장 취임후 민심 동요를 제압하기 위한 특별지시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서 미국 기자의 질문을 받고도, 짐짓 못들은체 넘긴 일이 있었다. 미국 기자가 재차 왜 인권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느냐고 따지자 후진타오는 통역과 해석문제로 질문을 듣지 못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질문인 줄 알았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유발했다. 후진타오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에 엉뚱한 말로 둘러대어 부드럽게 피한 것이다. 중국의 인권문제는 미국의 끊임없는 추궁 대상이 되는 취약점이다. 미국의 이 같은 인권문제 제기에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하면서도, 내심으로 꿀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평양정권은 더한다. 중국은 그래도 재판은 한다. 민주화를 탄압해도 사법질서는 갖춘다. 그러나 북녘은 그나마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하거나 공개처형하기가 예사다. 이도 그들 법률이다. 지구상에서 북녘 아니고는 볼수없는 참으로 가혹한 주민통제다. 임양은 주필

공자 청동상

중국의 패권주의는 자국문화의 세계화로 공자(BC 552~479)를 내세우고 있다. 마오쩌둥의 거대 초상화가 내걸린 베이징 천안문 경내는 아니지만, 초상화가 마주 보이는 건너편에 공자의 청동상이 건립됐다. 동상은 기단 높이 1.6 m에 신장 7.9m로 높이가 9.5m에 이른다. 마오 초상화 너비 4.6m 높이 6m보다 훨씬 크다.지난 11일 낙성식을 가진 공자의 동상이 마오가 있는 천안문 안이 아니고 좀 벗어난 국가박물관 북문 광장에 세워진 것은 마오 생전의 비림비공운동 때문이다. 정적 임표와 임표가 옹호한 공자사상을 싸잡아 배척한 것이 비림비공운동이다. 마오를 따랐던 홍위병들은 대륙에 산재한 전국의 공자 사당을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매도하며 불지르는 등 모조리 박살냈다. 이토록 1960년대부터 마오가 죽은 1976년까지 모질게 박해를 가했던 공자에 대해 수년전부턴 복고풍이 불더니, 이젠 그의 동상 건립으로 완전히 복권됐다.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로 유가(儒家)의 비조를 이룬 공자는 지금의 산동성에 자리잡았던 노나라 사람이다.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도 학문에 뜻을 세워 인(仁)을 바탕으로 한 이상정치를 구현하려고 관리가 됐으나, 반대파의 모함을 받고 국외로 망명해 육국을 섭렵했다. 말년엔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사서삼경은 그의 학문이다. 동양 삼국의 정치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르는 게 역사 일 수도 있다. 마오 사후 35년만에 공자가 마오 초상화보다 더 거대한 청동상으로 마오 앞에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도 비림비공운동의 본거지로 백만 홍위병들이 돌아가며 공자를 저주했던 천안문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한 일이다.중국은 서구문화의 대항마로 내놓을 공자의 자국문화 콘텐츠 개발이 한창이다. 공자사상을 중화사상의 모태로 삼고 있다. 잘은 몰라도 언젠가는 중국에서 마오쩌둥 격하 운동도 벌어질 수 있다. 임양은 주필

반간계(反間計)

중국 고대사에서 유방과 항우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툴적에 유방의 책사 진평이 항우 진영에 쓴 것이 반간계다. 항우가 보낸 사절을 진평은 반갑게 맞이 하면서 범증 선생님은 잘 계십니까, 이번에는 무슨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던가요? 하고 물었다. 항우 측 사절은 진평의 말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진평은 짐짓 몰랐다는 듯이 그럼, 범증 선생님이 보내신 게 아닌가요, 허! 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만하며 혀를 찼다. 항우 진영 사람은 그만 돌아가 겪은 사실을 그대로 고했다.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해 마침내 그를 내쳤다. 범증은 정략과 전술 전략에 능한 항우의 책사로 유방의 장량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항우가 해하대전서 패해 오강에서 자결한 것은, 억울하게 내쫓김 당한 범증이 하향길에 등창이 도져 죽은지 얼마 안되서다. 항우는 진평의 반간계로 자신의 책사를 첩자로 의심해 자신의 수족을 자신이 잘라낸 셈이다.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잘못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아들의 서울대 로스쿨 부정입학설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제보 받은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관계자는 행정관 이상의 고위직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이간질하려는 저급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의 반박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술 더떠 민주당에 종종 제보했던 분이라며 녹취자료도 있다고 말했으나 그가 누구인 것은 신상보호를 위해 공개할수 없다고 했다. 문젠 이 대목이다. 설령 제보가 사실이었더라도, 제보자가 원치 않으면 공개해선 안되는 점을 이용해 청와대에 민주당 첩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또한 반간계다. 민주당의 헛방폭로에 반간계를 이용, 청와대를 끌어 들이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정치술수는 정말 어지간하다. 하지만 저급한 것 또한 사실이다. 우주를 왕내하는 이 첨단시대에 중국 고대사에 쓰인 반간계가 등장하는 국내 정치수준이 정말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농·어촌 약국

건강복지공동회의 등 2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밝힌 주장은 관철돼야 한다. 이들은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 허용의 당위성으로 현행 의약품 2분류(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체계를 전문의약품약국 약자유판매약 등 3분류로 변경할 것을 내세웠다. 여기서 자유판매약은 소화제진통제해열제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이다. 이는 종전 주장에 비해 훨씬 후퇴한 요구다. 최근 한국소비자원도 일반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심야 활동 등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에서도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는 필요하다. 하물며 약국이 크게 부족한 농어촌지역에서의 약국 외 판매는 더욱 절실하다. 한국소비자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5개 기초행정구역(1읍, 214면)엔 아예 약국이 없다. 우리나라 전체 약국 2만831곳 중 91.6%인 1만9천79곳이 시 단위 이상 도시지역에서 영업을 한다. 군 단위 시골지역엔 1천752곳(8.4%)밖에 없다. 농어촌 의료여건은 이렇게 취약하다. 더구나 대한약사회가 공휴일 의약품 구입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당번 약국제를 실시했으나 참여율이 극히 저조하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도 야간에 문을 여는 약국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심야에 약을 구하기가 어려워 배려가 더 절실한 농어촌 산간지역과 중소도시는 심야응급약국이 아예 설치되지 않았고, 대도시 중심으로 운영돼 지역적 불균형의 문제가 심각하다. 군 단위 이하 농촌지역 상당수의 주민들은 소화제 한 알도 제때에 사 먹기 어렵다는 얘기다. 의료취약지역에 살고 있는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상비약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면 너무 속이 상한다. 검증된 단순의약품만이라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농민들의 하소연이 안 나올 수 없다.문제는 6만여 약사들의 단체인 대한약사회의 반발이다. 일반의약품도 약사의 복약(服藥)지도를 통해 안전하게 사용되고 관리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반대한다. 하지만 약사도 각종 병환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인이다. 도시지역에서의 약국 외 판매에 당장 동조하기 어렵다면 약국 없는 농촌지역에서만이라도 가정상비약을 구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건배송

지난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첫날인 11일,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업무 겸 만찬을 갖는 동안 배우자들은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만찬을 가졌다. 이날 미리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입구에서 G20 국가 퍼스트레이디와 국제기구 대표 배우자 등 30여 명을 영접했다. 만찬장은 사방에 커다란 현대미술그림이 내걸린 아담한 공간이다. 김 여사는 이날 이렇게 건배를 제의했다. 한국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오랜 친구들과 다시 만난 기분입니다. 한국과 여러분의 깊고 깊은 우호 관계가 오래 이어져 정상회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원합니다. 이어 배우자들은 건강과 우정을 위하여라는 김 여사의 건배사에,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부딪쳤다.오바마(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 란 건배사가 화제였던 때여서 김윤옥 여사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건배사는 인상 깊었다. 그 오바마를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길이라고 풀이했다면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직을 잃진 않았을 터다. 술자리의 건배사로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 진달래(진실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등이 있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모임에선 9988이 유행한다. 2008년 1월 당시 한덕수 총리가 중소기업인 신년 인사회에서 한 건배사다.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기업의 99%,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며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의미라는 그의 설명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럴 듯한 건배사가 많지만 얼마 전엔 건배송을 다 들었다. 수원시문화상수상자회 신년 하례식 장소였는데 지휘자 송태옥 선생의 제의에 따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 아름다운 문화의 꽃 찾으러 간단다라고 동요 산토끼를 불렀다. 신묘년 토끼해에 생각해낸 송 선생의 건배송이 동화적이었다. 누가 또 건배송을 제의할지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점상

올 겨울엔 노점상이 별로 안보인다. 새해 1월들어 내내 몰아치는 혹한 때문이다. 군고구마나 군밤은 노점에서 흔히 맛볼 수 있었던 겨울철 별미다. 불을 쬐며 장사를 할 수 있는 이런 노점도 별로 없다. 한파로 행인이 줄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예년같으면 주택가 골목 어귀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던 붕어빵 장사도 역시 흔치 않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물가가 너무 올라 수지 맞추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20㎏들이 연료용 가스 가격이 4만원이던 것이 4만3천원으로 오르는 등 밀가루값이며 설탕값이 모두 올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붕어빵값을 덩달아 올릴 수 없는 것은 손님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붕어빵을 돈많은 사람이 사먹는 것도 아니고, 역시 어려운 서민들 간식인 터에 비싸면 누가 사먹겠냐는 것이다. 생필품을 비롯한 물가가 턱없이 올라 어렵게 번 돈이 헤프게 쓰인다는 비명이 속출한 진 오래다. 이에 정부가 서민물가안정종합대책이란 것을 내놓았지만 서민들 체감 물가와는 거리가 멀다. 공공요금 등을 동결하거나 인상을 최소화 하고, 공산품의 부당한 담합과 가격 인상에 단호히 대처한다는 것은 전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동안 찔끔찔끔 나왔던 얘길 종합선물로 재포장한 것이 이번의 서민물가안정종합대책이다. 하긴, 정부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까 만은 문제는 거시정책의 빈곤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등 해외 인플레이션 요인이 한 두달새 생긴 것은 아니다. 이런 조짐은 벌써 오래됐다. 한데, 이에 대비한 것도 없고,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제정책의 출발점이 서민경제인 것처럼 종착점 또한 서민경제여야 한다. 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시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이 정부는 무던히 서민경제를 챙기는 듯 한데, 도대체가 약효가 없다.강추위에 노점상마저 얼어붙은 서민경제가 봄이되면 계절따라 다소나마 풀릴까, 그러자니 겨울 나기가 너무 힘겹다. 길거리 노점상 장사라도 좀 잘 됐으면 한다. 아니면 겨울철 체면이 그만하면 섰으니, 날씨라도 좀 풀리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판사의 품성

오는 2013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42기생들부턴 곧바로 판사가 될 수 없다. 이 해부터 법조 일원화시책에 따라 변호사 등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이는 로스쿨 시대의 영향이다. 대학 4년 졸업 후 입학하는 로스쿨 졸업생은 로스쿨 입학 전의 대학 교과과정이나 경력 등이 각양각색이므로, 사법연수원의 성적순에만 의존해 오던 것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이엔 또 오는 2017년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과도기의 배분 비율 문제가 있다.하지만 어떻든 내후년부터 판사 임용 선발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거나, 기존의 변호사 등으로 3년 이상 된 임용 후보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과 면접으로 판사를 뽑는다. 심층 인터뷰는 물론이고 기존 직장에서의 평판 등도 선발에 작용된다.서류전형과 면접 위주의 임용은 그 사람의 품성 됨됨이를 보는 것이다. 변호사 같으면 법률지식은 다 거기서 거기다. 판사의 자질 여부가 임용의 주요 관건인 것이다.판사의 자질은 뭘까,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엊그제 발표한 2010년 법관평가가 이의 잣대로 볼 수 있다. 이 법관평가는 공정청렴성품위친절성성실성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총점 100점 만점제로 했다. 이에 의하면 부드러운 말로 재판을 매끄럽게 진행하면서 피고인이 충분히 납득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는가 하면, 고압적인 반말투로 피고인의 소명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는 판사도 있다는 것 같다.항상 하는 말이지만, 재판은 판사의 양심으로 한다. 자유심증주의는 곧 판사의 양심이다. 법률적용의 법리해석, 증거능력의 인정 여부, 유무죄나 형량 결정 등을 형성하는 심증이 양심인 것이다. 판결문은 말하기에 달렸다.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법창 주변의 말이 이래서 나왔다. 내후년부터 실행되는 새로운 판사 임용제도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우수 평가를 받은 판사 같은 사람이 많이 기용되면 좋겠다. 판사는 한마디로 종합인간의 품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임양은 주필

경기도의 반론문

5일자 홍보대사 제하의 지지대 칼럼 내용에 대해 경기도청 홍보담당관실에서 지난 14일 다음과 같은 8개항 요지의 반론문을 보내왔다.(각항 첫머리는 칼럼 지적사항) 1. 연예인 일색: 배우 5명, 가수 7명, 운동선수 6명, 개그맨 3명, 화가 1명, 방송인 1명, 전 축구감독 1명, 일반시민 3명. 홍보대사 특성상 대중 인지도가 높은 사람으로 위촉.2. 홍보가 없다: 도정 홍보영상, 각종 행사, 자원봉사, 자선경매 등을 활용 다양한 홍보활동 전개.(모두 70회)3. 활동비 150만원 지급: 행사 참석시 교통비, 식비 등 최소한의 경비 제공. (서울시도 동일한 기준 적용) 민간에선 섭외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소요. 4. 홍보대사 섭외시 흔쾌히 승낙: 대다수가 거절, 섭외가 어려운 관계로 다양한 인맥 동원 및 수개월에 걸쳐 섭외.5. 타 시도와 겹치는 홍보대사: 타 시도 중복 7명(25%) 타기관 중복 10명(37%) 홍보대사 섭외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섭외하는 관계로 일정 부분 중복.6. 대부분 경기도와 무관: 27명의 홍보대사 중 16명(59%)이 경기도 출신 및 경기도 거주나 경기도 소재 학교 졸업. 기타 11명도 경기도 시책에 공감을 표시하고 홍보대사 섭외 수락. 7. 최근 3년간 5천만원 지출은 도민 혈세 낭비: 연간 2천만원~3천만원을 가지고 경기도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을 통해서 알리는 것은 결코 많은 비용이라 할 수 없음.8. 구습인 홍보대사 위촉은 더 이상 없어야: 정부지자체기타 기관에서는 홍보대사를 활용, 소속기관 정책을 홍보하고 있는 실정임. 홍보대사를 활용 각 기관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은 구습이 아니라, 홍보대사를 어떻게 활용 홍보하느냐가 문제임. *참고: 반론문은 별첨1 홍보대사 사실관계, 별첨2 홍보대사 활동 현황, 별첨3 경기도 홍보대사 타기관 중복 및 경기도와 연관성 등을 함께 제시하였음. 임양은 주필

초선 국회의원들

18대 국회는 의원 299명 중 초선의원이 143명이다. 적지 않은 구성원이다. 하지만 여야가 충돌할 때마다 전위로 동원됐다. 그랬어도 초선의원들이 스스로 2010년 정치를 부끄러움으로 기억하는 건 다행이다.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 민본21 의원들은 다시 살고 싶지 않은 2010년으로 소회를 집약했다. 개인적으론 예산안이나 법안 내용조차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행처리에 동참하게 돼 비참함을 느꼈고, 국가사회적으로는 남북관계도 최악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국민도 근래 느끼지 못한 안보적 불안함을 체감한 한해였다고 자평했다. 다른 의원은 정치행태에 대한 방관은 부끄럽다. 입법부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구태의 반복에 대해 무기력했던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예결위 상임위화를 통한 연중 국가예산 심의의 제도화를 꼭 하고 싶다고 부연했다.야당 의원들은 소수라는 무력감이 컸다. 4대강 전선의 맨 앞에 있었던 민주당 한 의원은 국회가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일할 수 있나 싶다. 국정감사에서 담합입찰 문제를 지적한 것은 중요한 것인데 (여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국정이 무슨 개발회사처럼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다른 의원은 (한 해 동안) 한 번도 정치적으로 자부심을 느꼈던 적이 없다고 무력감을 피력했다. 자유선진당 한 의원은 연말에 폭력국회가 다시 재연됐다는 점이 너무 부끄럽고 분노스럽다. 예산국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한 의원은 날치기로 해가 저물게 하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부정당하는데 미력하게 할수 있는 것이 없는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사실이다. 2010년 정치는 갈등과 불안으로 점철됐다. 유난히도 정치적 곡절과 파란, 반전이 이어진 한 해였다. 12월 8일 예산안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을 때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필사적으로 막는 과정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장면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선정한 2010 올해의 사진에 꼽혔다. 대한민국 국회가 세계적으로 망신 당했다. 그러나 초선 의원들이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초선의원들이 선두에서 올해 정치판을 일신해주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정상비약

약국들의 반발은 능히 예상된다. 약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당장 대한약사회가 국민 안정성을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편의성만 강조하다 안전성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다. 약국은 약물 오남용이나 불량약품 회수교체 등을 책임지는 안전장치라는 논리다. 시민의사단체는 국민 편의성을 강조하며 자율판매 허용에 찬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2일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감기약, 미국은 슈퍼에서 파는데 유럽은 어떠냐? 자세히 아는 사람 없느냐고 거론했대서가 아니다. 감기약, 반창고 같은 가정상비용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것은 대세다. 우리나라는 일반의약품은 약사법에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약을 분류할 때 먼저 일반의약품을 분류하고 나머지를 전문의약품이라고 한 것은 즉, 국민이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약을 먼저 분류하고 나머지는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일반의약품의 경우 해열제진통제 뿐만 아니라 비타민음료 하나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약사에게 증상을 말하거나 정확한 약 이름을 말해야 한다. 약사가 골라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전문의약품은 다르다.지난달 말 대한개원의협회, 대한공중보건사협의회가 낸 성명서는 설득력이 있다.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팔게하라는 내용으로 국민불편 해소를 내세웠다. 특히 약국이 문을 닫는 밤시간을 문제 삼았다. 약물 오남용 문제는 국민의식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가장 큰 문제는 주무부처인 복지부다. 이 문제가 시민단체의사,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 사회 갈등으로 확산될 것을 노심초사하는 것은 짐작하지만 여태껏 입장이 불분명하다. 국민 편의, 약물 오남용 등 찬반 입장 모두 무시할 수 없다며 우선 해외 실태 분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고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등에서 자율판매하고 있다. 독일에는 인터넷약국도 있다. 최빈국인 아이티도 대형마트에서 해열제를 판다. 복지부가 이런 추세도 모르고 있다면 심히 곤란하다. 복지부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찬반논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결자해지(結者解之)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입장 발표에 (공개적) 절차와 방식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홍 수석의 말은 대통령 인사에 집권여당이 반기의 불가를 내거는 것도 부당하고, 설사 좀 그렇더라도 내부 건의가 아닌 공개 표명은 심했다는 뜻인것 같으나 옳지 않다. 청와대가 정동기 인선에 당과 사전 한마디 없었던 마당에 당의 의사 표명을 청와대에 먼저 알리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은 경우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불가 표명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 또한 당치 않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정동기 거부 표명은 당내외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동기 감사원장 기용에 대한 비토는 민심이다. 이때문에 당내에선 소속 국회의원들이 감사원장 인사청문특위에 끼는 것을 서로가 꺼렸을 정도다. 대통령더러 탈당하라는 것이냐 당에 뒤통수 맞았다 레임덕 상황이다라는 청와대 측 격앙은 대통령에게 아무 도움이 안된다. 설령 대통령이 당에 섭섭하게 생각했을 지라도, 제대로 진언하고 보좌하는 것이 비서실의 올바른 소임이다. 지금 같아선 당이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아 흥분한 것으로, 이는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을 방불케 한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레임덕이 와서 온게 아니라, 비서실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재촉해서 오게 만든 꼴이 된다. 문젠 대통령이 하기에 달렸다. 청와대나 당이나 더 얘기가 안나오도록 빨리 진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체면치레로 시일을 자꾸 끌면 더 체면이 아니다. 정동기 내정자가 문제가 없는 걸로 봤는데, 문제가 있다면 취소 한다거나 본인의 자진사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된다. 정동기 후유증의 최고 책임은 한나라당도 아니고 비서실도 아니다. 자신이 결정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남을 탓해선 안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을 일러둔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