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전관(前官)은 이전에 그 관직에 있던 관원으로 원임(原任)이라고도 한다. 전관예우란 퇴임 후에도 재임 당시의 의례를 베푸는 것이다. 의례는 형식을 갖춘 예의나 의식 등을 말한다. 그러니까 전관예우는 모든 관직에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풍양속의 관직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미풍양속이 아닌 담합의 성격이 짙어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가령 A지역에 근무했던 판검사가 옷 벗고 나와 변호사를 개업하면, 그지역 현직 판검사는 그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으례 좋게 봐주는 관행이 전관예우로 통용되고 있다. 좋게 봐주는 것은 검찰 같으면 무혐의 처분하거나 정식재판이 아닌 약식기소로 돌리는 것 등이다. 법원 같으면 주로 집행유예 선고다.그러나 사건 자체를 살피기 보단, 변호사가 누군가인가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면 자칫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죄가 무거운 것을 가볍다고 보거나, 죄가 있는 것을 없다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법원의 집행유예나 검찰의 약식기소 등엔 일정 비율이 있다. 갑자기 높아지거나 턱없이 낮아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러므로 전관예우로 사건을 봐주면, 정작 약식기소되고 집행유예 받을 사람이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할 수가 있다. 며칠 전까지 부장검사나 부장판사 또는 그 이상이나 이하 직위의 한솥밥 먹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어 변론사건을 가져가면, 후배 또는 동료 판검사가 잘 안봐줄 수 없다고 여기는 게 법조계 묵계다. 이래서 판검사가 퇴직하면 마지막 근무지에서 일정 연한은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잘 안되고 있다. 그같은 제약은 위헌의 소지 또한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의 여러가지 자질 시비 가운데, 전관예우의 변호사로 거금을 챙긴 사실이 있어 전관예우가 새삼 또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법조인의 양식으로 없애야 할 해악이다. 전관예우는 유전무죄의 돈 놀음으로 사회정의에 반(反)한다. 임양은 주필

정동기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대통령이 예비후보 시절 말죽거리 땅 의혹을 무혐의처분한 게 그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억측이 아니고도 내정자는 감사원장으로 적절치 않다.그는 한 달에 1억원씩을 번 사람이다. 대검차장에서 나와 2007년 11월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 변호사를 맡고 나서다. 불과 일곱 달 동안에 무려 7억원을 벌었다. 전관 예우의 득을 톡톡히 봤다는 것이 법조 주변의 평판이다. 1억원은 민초들에겐 평생 가도 만져도 못 볼 거금이다. 이런 돈을 한 달에 벌었으니 귀신이 곡할 일이다. 그도 일곱 달 동안에 7억원이면 서민은 정말 기절할 노릇이다.세금을 다 냈다. 본인의 말이다. 그중 3억원을 세금으로 냈다는 것이다. 쉽게 번 돈이어서 세금이 많은지는 몰라도 많이 내긴 했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 4억원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청와대 측 말이다. 세금도 다 냈으니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의라는 것이 있다. 법보다 도의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특히 고위 공직자에겐 그렇다. 토털 7억원대의 전관 예우를 받은 이가 감사원장으로 사회정서에 얼마나 합치될지 의문이다. 이건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 문제다.적절치 않은 점은 또 있다. 정동기 내정자는 대통령직인수위 법무행정분과위 간사를 거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즉 대통령 비서를 한 대통령 사람이다. 직무의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다분하다고 보는 객관적 관측에 이유가 있다.적재적소는 인사 용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는 적재적소가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감정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반대는 그런 게 아닌 사실적 정서다. 생각컨대 청문회에서 낙마하기보단, 본인이 알아서 사퇴하거나 청와대가 내정을 취소하는 것이 나을 성싶다.딱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다. 인사를 이런 식으로 자기 사람으로 하다 보니, 예컨대 재산을 다 내놓고도 좋은 소릴 못 듣는다. 임양은 주필

곧은 소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곧은 소리를 잘한다. 지난 12월 16일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예산안 강행처리 후 대통령 전화를 받은 것에 대해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에 출연, 위로이건, 격려전화이건 필요없는 전화를 한 것은 대통령의 실수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대통령이 전화했다는 게 처음에 믿기질 않았다며 전화 받은 사람이 이를 공개한 것도 잘못이고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모두 말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산안 강행처리도 한 마디 했다. 대통령이 회기 내 예산안 통과를 공개적으로 얘기한 게 실수였고 이는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정치성 구호보다 말 없는 행동을 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박희태 국회의장에게도 무조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직권상정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라며 국회의장은 대통령과 동격인데 부당한 말은 절대 들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이제 (임기) 후반에 들어섰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첫째, 모든 일을 나 혼자 하겠다는 독선적 생각을 버리고 장관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 보면 대통령이 혼자 다한다. 그러니 (국민은) 장관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둘째, 말수를 줄였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말이 너무 많으니까 정치에 혼선이 오고 국민도 헷갈린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게 된다. 영어 격언에도 스피치 이즈 실버, 사일런스 이즈 골드란 말이 있다. 정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지휘자는 손끝으로 지휘한다. 본인이 지휘하다가 내려가서 클라리넷 불고, 북치고 피아노 치고 이런 건 아니다. 4년차인데 임기 동안에 많은 업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절대 갖지 말아야 한다. 업적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얘기다. 물가, 민생 등 하고 있는 일만 조용히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실제로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를 했으면 정말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폐단이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가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이 갈가리 찢어져 있다. 소통의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제는 대통령이다. 정치 선배, 노정객의 이런 말을 쓴소리, 헛소리 곧은 소리 중 어떤 말로 받아들이냐 하는 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학교보안관

보안관, 하면 보통 서부영화에서 악당, 무법자들을 소탕하는 정의로운 주인공 건맨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서부영화를 즐겨보는 이유다. 보안관은 미국의 경우 대개 군(郡) 지역에서 주민들의 투표로 뽑히는 주요 행정관이다. 사법 집행관이기도 하며 3~4년의 임기를 갖는 공직자다. 보안관이 대리자를 임명하고 보안관의 의무를 위임하기도 한다. 보안관과 대리자는 치안을 유지하며 따라서 형벌을 집행할 땐 경찰관의 권한을 갖는다. 이들은 지방 경찰서의 기능 가운데 일부를 떠맡을 수도 있고 포세 코미타투스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 소집된 郡 민병대)를 출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보안관의 주요 사법 의무는 소환장 발부, 보고서 제출 및 영장 집행, 특히 공매나 재산 압류 같은 판사의 판결을 집행하는 일이다. 잉글랜드에선 1965년 사형폐지법이 제정되기 전엔 보안관이 사형 집행도 책임졌다고 한다.서울시가 오는 3월부터 시내 547개 모든 국공립초등학교에 학교보안관을 2명씩 배치키로 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위해서다. 학교보안관은 매주 월~토요일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인 오전 6시부터 방과 후 학교가 끝난 뒤인 오후 10시까지 2 교대 방식으로 근무한다. 현재 서울의 초중학교엔 안전사고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청이 배치한 배움터 지킴이가 활동하고는 있다. 하지만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학교 폭력을 차단하는 덴 한계가 있어 보다 강력한 형태가 요구돼 왔다. 학교보안관은 교내를 순찰하며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발생 시 응급조치를 한다. 외부인 출입이나 차량을 통제하는 일도 한다. 학교 안팎의 폭력유괴감금 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방 활동이 주 임무다. 2012년에는 여자중학교 등으로 학교보안관을 확대하고 2014년까진 시내 1천270개 모든 초중고에 배치할 계획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등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안경호청소년상담 전문가 출신의 학교보안관 배치는 적절한 일이다. 학교보안관은 경기도에도 필요하다. 모든 학교에 배치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도시 초등학교에만이라도 배치해야 된다. 사법권은 없지만 각 학교에서 근무하는 학교보안관이 서부영화의 보안관처럼 학교를 지키고 학생들을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홍보대사

경기도는 대사를 좋아한다. 홍보대사다. 지난 해까지 모두 29명의 홍보대사를 위촉했다. 탤런트, 가수 등 연예인 일색이다. 이름을 대면 금방 알만한 일급 스타들이다. 경기도는 연예인 스타를 좋아하는 것 같다. 홍보대사는 많아도 이들의 홍보는 없다. 위촉으로 끝나는 것이 홍보대사다. 위촉패를 든 연예인이 도지사와 찍은 사진을 신문에 내고 나면, 그 뒷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연예인에게 홍보대사 명목으로 도지사와 사진 한번 찍는데 주는 일당은 일금 150만원이다. 우리네 생각으로는 큰 돈이다. 그렇지만 연예인들 입장에선 하루 출연료도 안된다. A급 탤런트 같으면 연속극 1회분을 녹화해도 이보다 몇배 더 많고, 일류가수 출연 또한 마찬가지다. 이래도 그들이 홍보대사 섭외를 흔쾌히 받아 들이는 것은 경기도 홍보대사란 게 무슨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면서, 이미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타 시도와 겹치는 홍보대사들도 있다. 대부분은 경기도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아무 연고 없는 그들이 홍보대사 활동에 관심이 있을리 없다. 지난 3년만해도 위촉된 29명의 홍보대사에게 나간 돈이 모두 5천여만원이다. 문젠 도대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홍보대사 위촉을 이토록 남발, 주민세금을 왜 헛되게 썼느냐는 것이다. 이도 사라져야 할 전시행정이다. 실속없이 보여주는 행정이 전시행정이다. 전시행정은 근대 행정문화의 유물이다. 첨단의 스마트폰 시대에 이미 사라진 청색전화 시대의 행정유물이 상존하는 것은 머리가 덜 깨인 소치다. 경기도는 정녕 두뇌가 그렇게 밖에 안돌아가는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중앙부처 못지 않게 명석하다고 본다. 다만 관습으로 그랬다고 여겨 이 해 부터는 홍보대사 관습에서 벗어나 더는 위촉이 없었으면 한다. 그래도 홍보대사가 필요하다면 연예인이 아닌 지역사회 각계의 상징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검토가 촉구된다. 홍보대사는 홍보대사 역할이 있어야 홍보대사 답다. 임양은 주필

폭설

올 겨울은 눈이 꽤나 많이 내렸다. 우리나라만도 아니다. 지구의 북반구는 거의가 마찬가지다. 유럽이나 미국은 더 많이 내려 피해 또한 상당하다.뉴욕시는 폭설을 이틀 동안 치우지 않고 방치한 바람에 차량이 곳곳에서 얽혀, 뇌졸중 환자 응급차가 6시간 묶이고 임산부 응급차가 9시간이나 지각한 사태가 벌어져 볼룸버그 뉴욕시장이 시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뉴저지주에서는 최대 80cm의 폭설로 고속도로 곳곳에 차가 처박히는 등 일대 교통지옥을 이뤘는데, 때마침 크리스티 주지사는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서 휴가를 즐기는 중이어서 구설에 올랐다.외신이 전한 흥미로운 또 하나의 폭설 현상은 보스턴시내에서 벌어진 주차장 싸움이다. 폭설이 쌓인 주차 공간을 애써 삽으로 눈을 치우는 곤혹을 치러야 했던 것, 이렇게 주차 공간을 만든 사람은 쇼핑 카트나 선풍기 등을 갖다 놓고 자기 공간임을 나타내곤 했는데, 갖다 놓은 물건을 치우고 엉뚱한 사람이 주차시키기도 해 화풀이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분쟁이 속출했다는 것이다.도내엔 유럽이나 미국처럼 극심한 폭설까진 아니지만, 아무튼 눈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 운행은 많이 자제해야 했다. 건축물관리자의 제설 및 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 등이 있다. 이토록 어렵지 않고 좀 쉽게 된 명칭도 있는데 내용은 모두 내 집 앞 눈 치우기가 골자다. 그런데 시군마다 이게 잘 이행되지 않고 있어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조례에 벌금은 당치 않다. 불법이다. 벌금은 형벌의 일종이어서 법률로 제정돼야 한다.행정벌인 과태료 부과는 타당하다. 그러나 막상 따져 보면 누구한테 매겨야 할지 잘 모르는 모호한 경우가 숱하다. 내 집 앞 눈 치우기가 잘 안되는 연유가 이 때문이다. 가령 다가구주택 앞 눈 치우기는 어떻게 책임 지우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단독주택 앞길 눈도 그대로 놔두는 데가 태반이다. 또 인력으로는 당장 치우기가 어려운 폭설의 눈 치우기 한계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는 것도 문제다. 조롄 어차피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시민정신에 맡길 일이다. 우리네 지자체장은 미국처럼 눈 때문에 욕 먹은 일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임양은 주필

‘대한민국의 어머니’

나는 가출길에 군대에 갔다. 취직은 고사하고 노동판 막일 자리도 차지하기 힘들 때, 집을 나가 고양군 신도면 어느 공사판에서 일을 했다. 한데, 일이 서툴러 먹고 자는 한바집 밥값 대기가 어려웠다. 일을 한 것만큼, 그러니까 요즘 말로 성과주의로 임금을 주는데, 그나마 장마가져 공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들의 행방불명으로 애를 태우시던 어머니가 논산 제2훈련소에서 부친 나의 사복 소포를 받아보고 우신 것은 한참 뒤였다.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반가웠겠으나, 군대에간 자식의 옷 소포를 보는 모정은 또 달랐던 것 같다. 이런 모정을 몇십년 후 집사람에게서 보았다. 아내는 군대간 큰 애의 부대에서 보낸 사복 소포를 받아보더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난 전에 어머니가 우셨단 말씀을 듣기도 했지만, 아내의 모습이 숙연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며칠전에는 며늘아이의 모정을 또 보았다. 대학을 갓 입학, 2학기를 휴학하고 입대한 손자의 옷 소포를 받아들더니 눈물을 주르륵 쏟는 것이다. 손자는 연평도 포격 추가 도발 우려로 오늘 전쟁날 지, 내일 전쟁날 지 모를무렵에 군대갔다.아들을 군대보낸 모정 3대 얘길 했다. 어찌 이뿐이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다. 내가 군대에 간 것은 휴전되고 얼마 지나서다. 그 이전엔 625 전쟁 때 아들을 전쟁터 사지로 군대 보낸 모정이 있었다. 나는 며늘아이에게 너도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다. 군대간 아들의 옷 소포를 눈물로 얼룩지게 한 어머니야 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어머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앞으로도 이어진다.어느 국회의원이 병역을 마치지 않은 사람은 장관이 될 수 없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 같다. 장관만이 아니다. 기왕이면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병역기피가 아니고, 군대에 갈 몸이 아니어서 면제 됐으면 공민권을 제한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군대에 안 간 것을 무슨 자랑으로 아는 도착된 가치관이다.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해야 된다. 새해에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임양은 주필

근하신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새해가 밝았습니다. / 여명의 바다 수평선 붉은 태양, / 출렁이는 태산준령 장엄한 서기(瑞氣). / 사람들 가슴마다 가슴마다 / 눈부신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 살아온 길 돌아보면 / 그래도 지난 해, 세월 좋았습니다. / 올해는 더욱 다복하겠지요. / 예감이 아주 청청(靑靑)합니다. //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 세상은 살만한 데 입니다. / 새벽마다 어둠을 헤쳐주는 먼동 / 밤이면 달빛 별빛 아름답습니다. // 봄이면 꽃 피고 새들 지저귀고 / 여름엔 산천초목 싱그럽지요. / 가을이면 무르익는 오곡백과, / 단풍빛은 얼마나 곱습니까, / 사유(思惟)가 깊어가는 겨울 밤 / 대춘부(待春賦) 또한 살아가는 이치입니다. // 새해 아침입니다. / 기다림과 기다림이 만나 / 푸른 미래로 출발하는 / 상쾌한 날 입니다. // 노친(老親)님은 연치(年齒) 거꾸로 잡수시어 / 날이 갈수록 회춘하시고 / 한 살 더한 청춘남녀 / 그만큼 슬기로워 / 몸과 마음 한층 장대합니다. 순결합니다. 삼강오륜 은은합니다. // 영혼 기울여 생각할수록 / 여자는 지순(至純)히 아껴야 합니다. / 남자를 지성(至誠)으로 섬겨야 합니다. / 사랑을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 간혹 외로운 순간 있다 하여도 / 어쩌다 서러운 일 있다 하여도 / 지금은 비록 가난하다 하여도 / 시냇물 건네주는 징검다리 입니다. // 먼 길 일수록 돌아서 가고 / 강물 소리에 가슴 적시며 / 뉘우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 오늘 다시 뵙게 되어 / 정말 반갑습니다. / 어제보다 혈색이 좋으시군요. / 바라옵건대 올 한 해도 / 강녕하세요, 강녕하세요. (詩 근하신년)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가슴이 설레입니다. 지난해 이루지 못했던 꿈이 올해엔 성사될 것 같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우연히 상봉하게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하여 일하고 싶습니다. 백인백색이라는 말처럼 사람마다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행복하려면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라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옛길은 새길과 만나고, 새길은 옛길에서 만나게 됩니다. 2011년이 소통(疏通)의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구제역 원인

성경 신구약에선 인간은 동물 위에 군림하거나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며 하느님과 동물 사이에 중재적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구약은 동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창조 섭리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임을 명시하고 있다(창 1 :26, 시 50 : 11). 신약에선 새 한 마리까지도 먹이는 하느님의 배려를 기록하고 있다(마 6 : 26).하느님은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육식을 허용하였으며(신 12 : 20),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짐승 중 새김질하는 정결한 짐승을 먹을 것을 명령하였다(레 11 : 13). 그러나 인간은 과도하게 육식을 선호했고 결과적으로 좁은 공간에 동물을 최대한 밀집시키고 비육 기간을 단축시켜 도축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자연에서 방목되는 동물과 달리 집중적으로 사육되는 가축은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현창기 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구제역이나 광우병은 방목이라는 자연계의 순리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특히 구제역은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강조하다보니 생겨난 질병이라고 설명한다.성경은 동물도 안식일 휴식에 포함시켜야 하며(출 20 : 10), 짐을 지고 가다 넘어진 나귀라 할지라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고 일러준다(출 23 :5). 특히 가나안 이방사람들이 다산과 많은 소출을 위해 어미 염소의 젖으로 새끼를 삶던 풍습을 철저하게 금지했다(출 23 : 19). 적절한 휴식이나 잔인한 행동 금지 규정을 통해 피조물 보호를 명령하였다. 경희대 유정칠 동물생태학 교수도 소는 원래 초장에서 풀을 뜯어 먹어야 하는데 인간의 생각에 따라 동물 사료를 먹고 좁은 공간에서 짜 맞춰 지내다보니 질병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밀집 사육의 결과 면역성이 떨어지고 바이러스 전파율이 높아지는 문제점을 초래했다고 한다. 항생제와 살충제를 놓고 있지만 엉뚱한 미생물의 내성만 키워 슈퍼 박테리아를 출연시키고 있다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방목하고 성장호르몬과 항생제가 들어간 동물성 사료의 남용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무 죄 없는 소 돼지 32만여마리가 살(殺) 처분 됐다.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 터이다. 명복을 빈다. 임병호 논설위원

박주영 골 세리머니

골 세리머니는 골을 넣은 선수가 자신만이 맛보는 희열의 극치를 표현하는 몸짓이다.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선수들은 자신들만의 세리머니(ceremony)가 하나씩 있다.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경기 때 골을 넣은 후 손에 낀 반지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아내를 사랑하는 뜻으로 알려져 반지의 제왕이란 애칭까지 얻었다. 한국축구팀 히딩크 감독이 넥타이를 날리며 올려치는 어퍼컷 세리머니 또한 일품이었다.고종수 선수는 전성기 시절 텀블링 세리머니로 유명했다. 결국 공중제비 도중 허리 근육 부상을 당해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2008년 대전에서 활약하던 고종수는 FC서울과 K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높이 점프했지만 착지와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크로아티아 출신 용병 샤샤 밀라이모비치 역시 공중제비를 하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왼쪽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월드컵에서 통산 14골을 기록한 독일의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 북한의 인민루니 정대세도 텀블링 세리머니로 유명하다. 그러나 부상 위험이 있으니 텀블링 세리머니를 자제하라는 구단의 요청에 따라 최근 공중제비를 그만뒀다. 스페인의 공격수 다비드 비야는 유로 2008 조별리그 러시아와의 예선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후 페르난도 토레스와 격한 포옹을 나누다 손가락에 금이 갔다. 북아일랜드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스티브 머로우는 1993년 아스날에서 뛸 당시 동료 토니 애덤스의 어깨 위에 올라가 기쁨을 표현하다 떨어지면서 쇄골이 부러졌다. 골 세리머니로 불행해진 선수들은 많다.스트라이커 박주영 선수(AS모나코)가 지난 23일 소쇼와의 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해 아시안컵 출전을 포기한 것은 골 세리머니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박주영은 이날 시즌 6호골을 넣은 후 특유의 기도 세리머니를 하던 중 팀 동료들이 무더기로 올라타면서 연골이 파손됐다. 무릎을 꿇고 잔디에 미끌어지는 박주영의 골 세리머니에 대한 위험성은 여러번 지적돼왔다. 신앙심이 깊어 기도 세리머니를 바꾸지 않는다고 하는데 새해 1일 모나코로 떠나 소속팀에 합류한다. 박주영 선수의 쾌유와 건강을 빈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정배의 입

욕을 하면 욕을 먹는다는 것은 의미가 함축된 명언이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평범한 말이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당연한데도, 일상생활의 실행이 어려워 잠언으로 꼽힌다.고대 로마의 희곡 작가 플라우투스의 말이다. 그는 생전에 130개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21편이다. 거짓말쟁이 라는 희곡에서 욕을 하면 욕을 먹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정치권의 말이 거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깽판이라는 말을 가끔 썼다. 국어대사전(만중서림)엔 없는 말이다. 일을 훼방하거나 망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는 컴퓨터 어학 사전에 나온다. 그러니까 깽판은 비속어다. 속어이긴 해도 표현의 사실성(寫實性)은 있다. 또 욕설은 아니다. 비속어는 다만 점잖지 못할 뿐인데 비해 욕설은 점잖지 못한 정도를 넘어 저주다.(전략) 국민 실망시키는 이명박 정권 어떻게 해야하나, 확 끌어내려야 하지 않나.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 (후략)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의 말이다. 지난 26일 수원역에서 가진 장외순회 투쟁연설에서 그같이 말했다. 말썽이 된 것은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변인끼리 공방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문젤 이렇게 본다.확 끌어내려야 하지 않나는 것은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도하차를 의미해 심히 부적절하다. 또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는 것은 정작 실행 의지는 없는 과장일 지라도 국회의원의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막말보다 더한 저주 섞인 욕설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끔찍한 범죄가 많아 사회가 살벌한 마당에 죽여버려야 한다는 정치인의 폭언은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잘했다는 착각은 자유다. 며칠 전엔 차기 대권 출마를 시사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욕을 하면 욕을 먹는다는 플라우투스의 잠언을 곱씹어봐야 할 그가 아닌가 생각된다. 임양은 주필

중국의 동해 진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극심한 빈부와 이런 빈부 인구의 현저한 편차 때문이다. 예컨대 자기네 땅을 마차로 한나절을 달리는 대지주의 농민이 있는가 하면, 자기땅 한 뼘을 갖지 못한 소작농이 수두룩했다. 빈자는 40살이 넘어도 장가를 들지 못한 반면에 부자는 처첩을 5~6, 10여명씩 데리고 살았다. 이런 부자가 가령 한명이라면 빈자는 수십명, 수백명이었던 게 근대의 중국 사회였다.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작가 펄 벅(1892~1973)이 쓴 대지는 주인공 왕룡을 통해 낡은 인습에 속박된 중국 사회의 고통을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대하소설이다. 공산주의 혁명 후 농촌체제를 인민공사로 개편하고도 잘살진 못했다. 다만 다같이 가난하여 질시할 부자가 없었을 뿐이다. 이랬던 중국이 현대국가로 변모한 것은 인민공사를 혁파, 개혁 개방으로 치달으면서 부터다. 나라가 부강해진 것은 자본 회전이 더딘 농업기반 위주에서 자본 회전이 빠른 상공업 기반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는 균형을 이루고 나서다.중국은 이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도 고도화된 자본주의다.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위한 정치적 장치일 뿐이다. 개발도상국 행세를 하면서도 강대국의 자부심에 충만해 있다. 핵무기도 있고 우주선도 쏴 올렸다. 초대형 항공모함도 만들고 있다.중국은 패권주의로 치닫고 있다. 일본과의 도서영토 분쟁을 즐긴다.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지역 패권또한 추구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이용한다는 점이다.며칠전 본란은 중국의 위화도 등 개발 제하로 중국의 함경북도 나진항 개발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또 들리는 소식이 중국이 나진항을 50년간 빌려 쓰기로 협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훈춘에서 두만강을 통해 나오는 중국 배가 나진항에 정박할 수 있게 된다. 이 배엔 군함도 있을 수 있다. 중국의 나진항 임차는 동해 진출의 거점화를 노린 무서운 미래전략이다. 임양은 주필

박지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자중지난책으로 박근혜 의원을 무척이나 꼬득였다. 4대강 문제를 놓고 박 의원의 입장을 밝혀라고 파상공세를 벌였으나 소득이 없자, 불법 사찰 의혹에 박 의원도 당했다며 확실히 따져야한다고 끌어 들이기 물귀신작전을 폈지만 또 실패했다.그러자 한나라당 단독 국회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에는 박근혜 표 복지예산이 필요할 터인데 왜 아무말이 없냐며 입장을 밝혀라고 또 채근했다. 그래도 박 의원이 대꾸를 않자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유리한 얘기일 때는 고개를 들고 말한다고 박 의원을 직접 공격했다. 초한지에 한나라 진평이 초나라 항우가 범증을 불신케한 이간계책이 있었고 삼국지에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장계취계가 있었지만, 상대편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의 이간책은 처음보는 책략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런다고 덩달아 입장 표명을 할 박근혜 의원도아니고 보면, 거듭된 그 같은 요구 자체가 함량 미달이다. 그런데 이런 박지원 원내대표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 당내 고위정책 회의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자연산 실언을 문제 삼아 보온병 포탄도 자연산이 있는가 묻고 싶다며 안 대표의 보온병 실언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호재로 삼았다.물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연평도 보온병 발언이나 자연산 운운의 여성 비하는 경망스럽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을 통해 한나라당 분란을 그토록 부추기고도 실패를 맛본 박지원 원내대표가 절로 생긴 안 대표의 실언을 즐기는 것은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등식을 방불케 한다.남의 실언을 희화화 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원인 제공을 한 사람 또한 모자란 사람이다. 국내 정치권 수준이 기껏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싶어 입맛이 씁쓰레 하다. 임양은 주필

‘토끼전’의 문학성

용백구선견주부(龍伯求仙遣主簿) 용왕이 약 구한다 별주부를 보내려고 /수정궁벽조린부(水晶宮闢朝鱗部) 수정궁에 물고기 모여 회의를 한다 / 월중도약토신령(月中搗藥兎神靈) 달에서 약 찧는 신령스런 토끼를 / 저사릉파규한토(底事凌波窺旱土) / 어찌하여 업신여겨 육지 엿봤나 19세기 중엽에 이유원이 남긴 관극팔령팔수(觀劇八令八首) 중 하나다. 토끼전의 판소리 수궁가를 듣고 그 감상을 남긴 시다. 이유원은 토끼를 신령스런 동물로 평가하고 토끼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병든 용왕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어족회의(魚族會議) 자체가 매우 헛되고 어리석은 것임을 풍자적으로 강조했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에 들어 있는 기록은 이유원과는 평가가 상반됐다.동해파신현개사(東海波臣玄介使) 동해의 자라가 사신이 되어 / 일심위주방령단(一心爲主訪靈丹) 임금 위한 충성으로 약 구해 나섰네 / 생증결구편요설(生憎缺口偏饒舌) / 얄미운 토끼는 요설을 펴서 / 우롱용왕출납간(愚弄龍王出納肝) 간 두고 왔다고 용왕을 우롱하네. 이유원의 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드러내고 있는 시각은 상반적이다. 송만재는 자라의 충(忠)을 부각시키면서 토끼의 지략을 요설이라고 깎아내리고 용왕을 우롱한다고 비판하였다.현전(現傳) 이본(異本)만 120여 종에 이르는 토끼전은 일제 강점기 판소리가 전래동화로 개작될 대 심청전과 함께 제일 먼저 전래동화화됐다. 거기서 강조된 것은 별주부(자라)의 충성과 토공(토끼)의 지혜였다. 이와 함께 토끼와 별주부의 대립은 혁신적인 이념과 보수적인 이념의 충돌이라고까지 문학적인 논리가 전개됐다. 이유원과 송만재의 관극시(觀劇詩) 두 편이 대표적인 예다.토끼전은 풍자와 더불어 해학이 넘쳐난다. 어족회의에서 중신들은 한결같이 무능력자 일색이었으며 급기야 용왕에 의해 밥반찬거리와 술안주거리로 희화화된다. 용왕 또한 자신을 포함한 조정을 칠패 저잣거리로 비유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봉건국가의 통치 질서를 정면에서 비판하는 날카로운 풍자의식으로 하층민들에게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시켜 준다. 어제 동물원에서 호랑이 등에 앉아 있는 토끼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다가오는 신묘년이 의미심장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토끼전’

별주부전 토생원전이라고도 불리는 토끼전은 한국의 구전 소설이다. 본래 구전되던 것이 조선 후기에 기록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한다. 필사본, 목판본의 이본(異本)이 다수 존재하며, 판본에 따라 결말이나 내용이 다르다. 판소리 수궁가의 원 작품이고, 개화기 소설 토의 간이 이 소설로부터 창작됐다고 한다. 토끼전은 오늘날 현실을 반영했다고 봐도 괜찮다.토끼전은 용왕과 별주부(자라), 그리고 토끼가 펼치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조선 후기의 모순된 현실과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우언적으로 그려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토끼는 힘센 동물이나 인간으로 표상되는 지배계층의 핍박을 받으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일테면 민초(民草)다. 별주부는 이런 토끼에게 수궁(水宮)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며 유혹한다. 별주부의 유혹에 빠진 토끼는 수궁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꿈의 공간으로 믿고 수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수궁은 자신이 갈망하던 그러한 세계가 아니다. 육지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임을 간파한다. 토끼는 용왕의 간(肝) 요구를 지혜롭게 거부하고 더 나아가 용왕을 철저하게 조롱하여 희화화시킨다. 토끼는 체험을 통해 용왕과 수궁의 본질을 꿰뚫고 새로운 인식을 정립한다. 별주부는 수궁 지배층의 일원이지만 다른 부류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육지에 나가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용왕의 명령에 대해 모든 신하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머뭇거린다. 이때 별주부는 말석에서 기어나와 목숨을 건 육지행을 자청한다. 별주부의 목숨을 건 자원에는 자신의 한미(寒微)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음직도 하다. 하여간 별주부의 자원은 육지행을 꺼리는 다른 신하들과 대비되는 의지를 보여준다. 토끼를 놓친 후에도 자신의 충성이 부족함을 원망하며 용왕과 사직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목에서 그러하다. 2011년 신묘년(辛卯年)의 정황이 아무래도 토끼전 내용과 비슷하겠다. 수궁에서 호사를 누리는 다른 별주부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토생원들의 건재를 빈다. 임병호 논설위원

중국의 위화도 등 개발

중국이 압록강의 위화도와 두만강의 나진을 개발하는 데 나섰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속한 위화도는 압록강 토사의 퇴적으로 강 가운데 생긴 섬이다. 면적이 11.21㎢다. 모양새는 길이 9㎞ 평균너비 1.4㎞에 하안선은 21㎞다.역사적으로는 1388년(고려 우왕 14년)에 원나라를 도와 명을 치는 요동정벌에 나선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이곳에서 회군, 조선을 개국하는 쿠데타의 계기를 마련했다.중국은 단둥시를 내세워 이 위화도에 100년 임차계약을 맺어 내년 5월부터 개발을 본격화한다는 소식이다. 이미 중국 투자가 기업인들의 현장답사도 마쳤다는 것이다. 개발 모델은 미니홍콩형인 것으로 전해졌다.함경북도 나진시는 두만강이 동해로 빠지는 해안도시다. 북측은 이 나진 개발권을 중국에 넘겼다. 이에 따라 중국땅 훈춘에서 나진까지 4차선 도로 축조 공사를 내년 4월에 착공한다. 이는 중국의 동해 진출 교두보를 확보키 위해서다. 즉 훈춘에서 나진 동해까지 15㎞ 구간을 북녘땅인 두만강과 4차선 도로 등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선박 등 출해권을 갖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나진 개발권 등은 지난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 2차 방중 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제의에 따라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금 설계 중인 4차선 도로는 2012년까지 중국 지린성이 2억5천만위안, 우리 돈으로 약 425억원을 들여 마친다. 나진 개발은 경협사업, 위화도 개발은 앞서 말한 대로 임차사업으로 하는 것이지만, 왠지 중국에 땅을 야금야금 먹히는 것 같아 찝찝하다. 북측은 625 전쟁 당시 중국이 참전해 준 대가로 1955년 백두산의 저쪽 절반을 중국에 할양했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오를 수 있는 게 이 때문이다. 그 이전엔 다 이쪽 땅이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것은 헌법의 영토(3조) 조항이다. 북녘땅이 실효적 지배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헌법상으로는 우리의 영토다. 우리 영토를 중국이 잠식하고 있다. 임양은 주필 yelim@ekgib.com

교사 수난

길가는 어느 노인 발치에 담배꽁초가 날아들었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운 중학생 아이가 튕긴 것이다. 화가 치민 노인의 말이 좀 험했다. 넌 에미 애비도 없냐? 그래, 없다 와? 아이는 이러면서 눈을 부라렸다. 노인은 그만 참았다. 그리고는 인근 집 대문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느새 뒤 따라왔는지 집 괜찮네! 하는 그 아이의 말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노인이 경찰에 신고한 보호 요청의 사연이다. 한데, 이만이 아니다.교사 수난시대다. 남선생도 학생들의 봉변을 당하기 일쑤이지만 여선생은 더한다. 고등학생이 교재를 가져오지 않아 꾸짖는 여교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중학생이 싸움을 말리는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았는가 하면, 지각한 학생이 나무라는 선생을 밀치며 침을 뱉고, 수업시간에 떠드는 중학생을 질책하던 여교사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또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역시 학생 싸움을 말리다가 얼굴을 얻어맞아 피가 났다. 이젠 인터넷에 여교사 희롱 동영상이 나도는 지경이다. 이밖에도 또 많은 사례를 여기에 더 예시하기가 민망하다.학생들이 이토록 멋대로 굴어도 교사는 속수무책이다. 피해교사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들도 곁에서 타이르면 학생들로부터 비아냥만 돌아와 아예 아무말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 기피 분위기는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체벌금지 등 조례 자체도 문제지만 교권 홀대 분위기가 그같은 제멋대로 학생을 낳고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그림자는 고사하고 선생님들 신변이 학생들에게 봉변당하는 세태 인 것이 인간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이랄 수는 없다. 도교육청은 체벌 대체 프로그램 마련을 말하지만, 교사들은 효험을 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어떤 이들은 일부의 학생들 소행이라며 별 문제시 하지 않으려고 하나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소수의 일부 학생들이 그러는 건 사실이지만, 일찍이 지금처럼 학생이 교사에게 대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책임이 크다. 임양은 주필

‘빅딜예산’ 유감

경기도의 빅딜예산에 대한 추고(推考)다. 결론부터 말한다. 도 집행부는 한나라당 출신의 도지사 사업비 59억6천만원을 확보키 위해 민주당 도의회에 사실상의 무상급식비인 G마크농산물 학교지원예산을 당초 58억원에서 342억원을 더한 400억원으로 늘렸다. 이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에 문제가 있다. 즉 59억6천만원을 얻어내려고 342억원을 내줬다. 59억6천만원 대 342억원은 불균형이 심하다.민주당으로서는 남아도 크게 남는 장사다. 도 역시 돈으로서는 밑지는 교환이지만 도지사 사업비 마련을 위해서는 그 같은 조건이 고육지책이었다. 민주당이 당초 예산을 전액 깎아 버렸던 국제보트쇼, 세계요트대회, 국제항공전, 민원전철 365, 도민안방 운영 등은 김문수 도지사 간판 사업이다. 특히 국제보트쇼, 세계요트대회, 국제항공전은 해마다 해온 행사다. 이를 의회가 예산을 전액 깎아 중단하게 됐으니, 답답한 집행부가 궁여지책으로 짜낸 것이 이른바 빅딜이다.그러나 문제가 없지 않다. 도지사 행사를 위해 평소의 소신이던 무상급식 반대를 접은 건, 그로 인해 지출되는 불요예산이 막대하고 보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국제보트쇼며 세계요트대회나 국제항공전이 얼마나 수익성이 있는진 잘 모르겠다. 장래성 역시 마찬가지다. 도에선 수익성과 장래성이 있다고 해서 그런가 하지만, 실체는 파악되지 않는다.더욱이 이 같은 전시위주의 국제행사가 김문수 도지사 이임 후에도 계속될 것인진 의문이다. 지방자치 출범 이후 전임 지자체장 사업은 후임 지자체장마다 중단시켜 온 것이 그간의 관습이다. 김문수 도지사 후임이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또한 예외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무상급식을 과잉복지로 안 보는 시각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하겠으나, 자기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집안의 자녀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과잉복지로 예산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현직 도지사가 떠나면 그만둘지 모를 행사를 위해 도민의 세 부담 상당액이 낭비된 게 이번의 빅딜예산이다. 임양은 주필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에 있는 해발 155m의 봉우리 애기봉(愛妓峯)에서 맑은 날 북녘을 바라보면 북한의 선전마을과 개성 송악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어 625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4 후퇴 이후 해병 독립 5대대가 중공군 인민군과 50여 차례나 격전을 치르며 지켰다. 지금도 해병 2사단 소속 청룡부대가 관할한다. 원래 쑥갓머리산이었으나 1966년 이곳을 들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사랑하는 여인의 애달픈 일화를 듣고 애기봉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휴전 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해병대가 이곳의 소나무를 이용해 작은 성탄 트리를 만들었으며 1971년 현재의 높이 30m 등탑을 설치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예배를 드렸지만 2004년 6월 열린 제2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때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키로 한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 북측이 애기봉 철탑과 자유로 차량 불빛이 우리를 가장 자극한다며 철거를 요구했고, 우리가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을 자행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올 성탄절을 기해 애기봉 등탑에 다시 성탄트리를 만들고 점등식을 갖자고 제의한 데 군(軍)이 흔쾌히 받아들인 연유다. 다른 종교단체들이 등탑 점등을 요청해도 허가할 방침이라고 한다. 애기봉의 등탑 설치 허용은 군의 대북 심리전 활동이 재개된 것과 무관치 않다.애기봉 성탄 트리 재점등은 종교적, 정치군사적으로 의미가 각별하다. 한국 교회는 625전쟁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북녘 동포들에게 알리기 위해 성탄 트리를 만들었다. 매년 5천여개의 오색 전구를 달고 북쪽을 향해 성탄의 불빛을 보냈으며, 점등식과 함께 치르는 성탄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21일, 7년 만에 다시 켜지는 애기봉 등탑 점등식엔 교계 지도자와 신도 등 4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애기봉 등탑에 점등된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북녘 동포들의 어두운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성탄트리를 점등하면 개성에서도 훤히 보인다고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회의장 직권상정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라는 공식용어는 없다. 다만 국회법 제85조 2항에 법안심사 기간 등에 대해 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의장은 중간보고를 들은 후 다른 위원회에 회부하거나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을 편의상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라고 부른다. 이 조항이 바로 문제다. 상임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안건마저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바로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권한이다. 본회의에 상정되고 나면 다수 의석을 점한 집권당이 밀어붙이기로 쟁점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직권상정은 군사정권 때 도입됐지만 실제로 활용된 것은 그 이후다. 직권상정은 1973년 9대 국회 때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11대 국회 때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직권상정은 1985년 4월11일 시작된 12대 국회부터 평균 1년 반에 한 번 정도 나타났다. 첫 직권상정은 1985년 12월17일로 당시 이재영 국회의장이 방송법 등 11개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고, 법률안은 모두 처리됐다. 18대 이번엔 박희태 국회의장이 내년 정부예산안과 예산부수 법안 외에 상임위 논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은 10개의 일반법안을 직권상정해 물리적인 충돌을 거쳐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했다.국회에서 골치 아픈 법안이나 예산처리가 직권상정으로 통과된다면 각 상임위가 필요없다는 얘기다. 직권상정이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된다면 결국 국회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을 포기하고 스스로 청와대의 하수인 역할을 자초하는 셈이다. 한나라당 역시 야당시절엔 직권상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이재오 특임장관은 2006년 야당 원내대표시절 직권상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 공개선언했었다. 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의 중심 세력에 있는 이 장관이 직권상정을 반대했다는 얘긴 아직 못 들었다. 직권상정은 국회의장 1인이 위원회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왜곡된 정치 행위다. 미국 등 의회 선진국에도 없는 제도다. 국회의장을 대통령의 한낱 하수인으로 추락시키는 제도다. 18대 국회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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